11.

학창시절의 나는 아마추어 시인이었다. 한번도 시를 출품하지도, 그럴 생각도 못했지만 나는 자주 시를 썼다. 고등학교 내내 100여 편의 시를 썼다. 당시의 소원 중 하나는 언젠가 자작시들을 엮어 시집 하나를 출간하는 일이었다. 소원을 이루진 못했다. 누군가에게 비평을 받기도 전에 스스로 그 시들에게 낙제점을 주었기 때문이다.

 

삼십대 후반을 향하는 지금은 시인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산다. 20대 중반 이후로 나는 기업교육 강사가 되기 위해 노력했고 삼십 대 초반까지 많은 강연을 했다. 학교와 기업 그리고 각종 단체에서 강연을 한 것이 2012년에는 1천회를 넘겼다. 언젠가부터 강연장에서 많은 이들을 만나기보다는 소수의 사람들을 깊이 만나는 쪽을 택하기 시작했다. 요즘엔 글쓰며 살고 싶다. 여전히 한 달에 서너 번은 강연장에 서지만 점점 더 글쓰는 삶에 초점을 두고 싶다.

 

2013년 2월, 문학평론가 권성우 교수의 강연을 들었다. 대중을 위한 강연이라 평이한 내용을 다뤘다. 강연의 핵심은 아니었지만, 나의 삶을 되돌아보게 만든 말이 있었다. 문학평론가의 길로 접어들게 된 데에는 김윤식 교수의 책이 강한 영향을 주었단다. 지금까지의 삶을 후회하지는 않지만 그때 그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다른 삶을 살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라는 권성우 교수의 말은 내 청춘 시절을 돌아보게 했다.

 

내가 기업교육 강사가 된 데에도 몇 권의 책이 결정적 영향을 주었다. 지그 지글라의 『정상에서 만납시다』와 하이럼 스미스의 『10가지 자연법칙』은 당시의 내게 필요한 책이었고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잇달아 읽게 된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은 '한국리더십센터'에서 일하고 싶다는 소망을 갖게 했다. 나는 내 삶에 질문을 던졌다. '내가 그 책들을 읽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문학 강연이 내게 준 뜻밖의 화두였다.

 

'글쓰는 삶을 살겠지.' 현재로서의 내 답변이다. 외부의 자극이 적고, 순수한 욕망대로 사는 게 비교적 쉬웠던 학창 시절의 내 관심이 시쓰기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문학의 길로 갔을지도 모르겠다. 시인보다는 소설가나 에세이스트 쪽이 확률이 높겠다. 평론가의 길은 더욱 가능성이 높다. 리영희, 강준만, 진중권 등의 책에 열광했고, 문학평론에도 관심이 많았으니까. 스무살 무렵, 실용서 대신 문학을 읽었더라면 내 삶은 바뀌었을까?

 

기업교육 강사로서의 십 년은 내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다. 실용적 지식을 안져 주었고, 경제적 독립을 가능케 했다. 앞으로도 비슷하게 살까? 아니면 다른 삶을 살까? 내 기질과 재능을 찾으려 노력하면서 욕망을 쫓아 살아보아야겠다. 이루고자 하는 욕망과 살아지는대로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조화시키고 내게 찾아든 기회도 붙잡으면서 말이다. 찬찬히 내 안의 직관과 욕망을 살펴본다. 나는 나를 알고 싶다. 그리하여 나답게 살고 싶다.

 

12.

자기이해와 자기경영, 문학, 심리학, 역사, 철학, 와인, 학습, 영화, 야구.

나의 관심 영역이다. 방대하지만 모두가 나의 흥미를 끈다. 이것들을 보고 있자면 열정의 세포들이 박동하는 느낌이 든다. 공부하고 싶어진다. 열심히 살고 싶어진다. 관심 영역의 중심은 자기경영, 문학, 심리학이다. 중심에 대해서는 깊이 천착할 것이다. 나는 다음과 같이 묻고, 답변을 찾으며, 나의 관점을 세워갈 것이다.

 

- 자기경영이란 무엇인가? 효과적인 자기경영의 노하우는 무엇인가?

- 문학이란 무엇인가? 문학도로서 알아야 할 최소한의 지식은 무엇인가?

- 심리학의 핵심지식은 무엇인가? 내가 추종할 만한 심리학자는 누구인가?

 

13.

"교육은 유년기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나는 올해로 미수(88세)에 접어들었지만 내가 가진 미약한 능력으로도 아직 배워야 할 것들이 많다." 아일랜드의 극작가 버나드 쇼의 말이다. 이 말에 공감한 것은 나 역시 배움을 즐거워하여 평생을 살며 최대한 많은 것들을 깊이 배우고 싶기 때문이다. 쇼가 이 말을 한 나이가 88세였음에 주목한다. 

 

나는 내 생의 깊이 뿐만 아니라 길이에도 관심이 있는데, 최소한 60세까지는 살고 싶다. 그 전에 죽기엔 너무 아쉽다. 신을 원망할지도 모르겠다. 최대한의 목표는 87세다. 목표를 이루더라도 버나드 쇼의 생애보다는 짧다. 여전히 배워야 할 나이다. 평생 배움에 힘써야 하는 이유는 널렸다. 내가 타고난 기질이 그러하고, 본받고 싶은 사람들도 배움의 삶을 살았으니까.

 

14.

나를 좋아해 주었던 여인에게 물었던 적이 있다. 내가 왜 좋아? 이상형이니까. 니 이상형이 뭔데? 난 딱 세 가지 밖에 없어. 키 크고, 마르고, 똑똑한 것. 대답은 간단했다. 내가 원했던 것과는 동떨어진 대답들이었다. 잘 생긴데다가 좋은 인격, 훌륭한 글, 멋진 패션 감각 등은 언급도 안 됐다. 이게 나인가 보다. 키 크고, 마르고, 똑똑한 사람.

 

왠지 이런 이상형을 가진 여자들은 많을 것 같다. 어쩌면 그녀는 자기 이상형에 대해 잘 알지 못한 채로 관념적인 형태로만 갖고 있는지도 모른다.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지 않았거나. 나의 또 다른 모습을 마음에 들어하면서도 그것이 좋아함의 중요한 이유인 줄을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 말이다. 그녀는 나중에 몇 가지를 추가하긴 했다. 훌륭한 글, 괜찮은 인격 정도를. 패션 스타일도 마음에 든단다. 듣고 나니, 콩깍지다. 그러니 나를 좋아했겠지.

 

15.

균형. 내가 추구하는 가치다. 당연한 귀결로 나는 극단을 혐오한다. 가치는 삶의 여러 곳에서 호불호의 감정으로 드러난다. 내게 균형을 성장의 지표요, 가치 판단의 기준이다. 고종석을 좋아하는 이들이 많겠지만, 나는 균형 감각 때문에 그를 존경한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작품성과 탁월한 문체로 인해 흠모하는 이들이 있다면, 나는 주인공 산티아고 노인의 균형을 이룬 인격에 빠져들었다. 문체, 캐릭터, 서사, 묘사, 주제의식 등 작가의 실력을 가늠하는 잣대는 여러 가지이나, 톨스토이는 어느 하나에 치우치지 않고 이 모든 소설의 힘을 탁월하게 보여주기에 그를 최고의 소설가로 꼽는다. 

 

균형을 추구하되, 균형이 다른 모든 가치 위에 군림하지 않도록 노력한다. 용기, 자유, 비판도 힘써 추구하는 가치다. 하지만 어느 하나가 다른 가치를 지배하지 않도록 노력한다는 점에서 이것 역시 균형이니, 나는 균형 예찬론자인 셈이다. 

 

16.

이상주의자는 항상 최선을 선택하려 들고, 꿈을 현실로 데려오려 한다. (실용주의자는 현실성을 따져 최선이 비현실적으로 보일 때, 차선을 선택한다.) 낭만주의자는 감성을 중요시하고 현실을 꿈처럼 살려는 사람이다. 나는 이상주의자요, 낭만주의자다. 하지만 현실적 이상주의를 추구하며 균형을 실현하려고 애쓴다.

 

개인주의자는 공동체의 추상적 이해관계보다는 개인의 구체적 이해관계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자유주의자는 평등보다 자유를 중시한다. 공동체의 필요성과 유익에 공감하지만, 개인의 자기실현을 돕는 공동체를 반대한다. 평등과 자유를 모두 추구하나,  두 가치가 대립할 때면 자유를 선택한다. 나는 개인주의자요, 자유주의자다. 하지만 공동체적 개인주의를 추구하며 개인과 집단의 호혜적 관계를 위해 애쓴다.

 

모든 주의는 극단에 치우칠 우려를 내포한다. 이상주의 앞에 '현실적'을, 개인주의 앞에 '공동체적'이란 말을 덧붙인 까닭이다. 주의를 주의하기 위하여! 내가 유일하게 제한하는 붙임말 없이 쓸 수 있는 주의는 '인문주의'다. 인문주의는 인간을 더욱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를 탐구하는 사람이다. 나는 인문주의자다. 

 

17.

다음의 명제들은 내가 거듭하여 와우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다.

자기경영을 위한 사유들의 뿌리가 되는 기본 생각들. 

 

오늘의 그로 보라. 어제는 이미 지나갔다. 어제의 그와 함께.

현재를 살라. 과거에 대한 후회,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현재를 앗아가는 강도다.

기대할 바를 기대하라. 만나는 사람에게도, 읽고 있는 책에게도.

탁월함을 위한 필연적인 수고를 마다하지 마라. 공짜 점심은 없다.

선택하고 집중하라. 어디에나 있는 자는 아무 데도 없는 자다.

자유는 인생의 불확실성을 온몸으로 맞아들이는 자들의 것이다.

행복한 전문가가 되라. 재능은 행복을, 훈련은 전문성을 연마한다.

 

18.

나는 태어난 곳으로부터 받은 영향이 크지 않다. (아니면, 그 영향을 아직 인식하지 못했거나.) 반대의 경우도 많다. 프랑스의 자연주의 작가 모파상를 보자. 그는 1850년 프랑스의 노르망디 지방에서 태어났다. 노르망디 지방의 풍토와 생활상은 모파상 작품 세계를 이루는 중요한 소재가 되었다. 단편 「귀향」, 「쥘르 삼촌」, 「걸인」, 「노끈 한 오라기」는 그의 태생지를 소재로 쓴 단편들이다. 

 

나는 관찰보다는 연상에 능하다. 그러니 경험하고 있는 대상을 감각적으로 체험하기보다는 대상이 이끌어내는 추억, 상상, 의미에 빠져드는 편이다. 이것이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도시에 대한 기억이 객관적인 지식이기보다는 추상적이고 개인적인 의미로 남겨진 까닭일 것이다. 또한 이상적인 사람이라 내가 밟고 있는 땅보다 우러러보는 하늘에서 영향을 받기도 해서일 게다.

 

무슨 까닭인지 모르겠지만, 어렸을 적에도 경상도 사투리가 심하지 않았다. 그것이 표준어로 전환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지만, 표준어에 능숙한 것도 아니다. 사투리에도, 표준말에도 어느 것 하나 능숙하지 못했다. 그것은 경계였다. 나는 '경계'라는 개념이 나에 대한 중요한 무언가를 말해 주는 중요한 단어라고 생각한다.   

 

19.

친구 W는 만날 때마다 전화통화 중이다. 핸드폰을 귀에다 대고, 다른 한 손으로 손을 흔들어 나를 맞는 모습이 익숙하다. 오늘도 그를 만났는데, 친구는 아내와 통화 중이었다. 문득 10년 전에도 그는 같은 모습이었음이 떠올랐다. 내가 먼저 도착하든, 그가 먼저 도착하든 그는 전화통화를 하고 있거나, 전화통화를 하면서 걸어왔다. 연락한다는 것은 그에게 무엇일까? 그 답변이 무엇이든지 무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누군가를 만날 때마다 책을 읽는다. 먼저 도착하여 기다릴 때에도 책을 읽고, 도착지를 향해 걸어갈 때에도 책을 읽는다. 예외인 경우는 시간이 빠듯할 때다. 그때에는 책을 읽을 걸을 여유가 없다. 5년 전에도, 15년 전에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이동할 때, 누군가를 기다릴 때 항상 책을 읽었다. 

 

어제는 휴일인데도 무려 네 개의 일정이 있는 바쁜 날이었다. 하지만 나는 모파상의 단편소설 6편을 읽었다. 60페이지 정도의 분량이다. 이동할 때, 기다릴 때마다 읽은 덕분이다. 독서는 내게 눈 깜빡임이다. 무의식적으로 하게 되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숨쉬기는 아니다. 하지 않는다고 해서 죽는 것은 아니니까. 오래 거를 순 없다. 눈을 깜빡이지 않고 얼마나 견딜 수 있겠는가? 오버하면 눈이 따갑고 빨개지고 결국 눈물을 흘린다.   

 

20.

강화도 마니산을 오르다 쉬었다. 와우팀원이 사진을 찍었다. 구도가 훌륭하진 않지만, 자유로워보여서 좋다. 자유로워 보인 게 아니라, 실제로 자유로웠다. 어느 날씨 좋은 날, 나를 좋아해주는 이들과 한가로운 시간을 보냈으니까. 맨발, 썬글라스, 감색 바지 그리고 바위. 내가 좋아한 것들. 다른 장소, 다른 시간에는 좋아하는 것이 달라진다. 나는 현재에 속한 것들을 좋아하니까. 지금은... 노트북, 글쓰기, 성찰이 좋다. 잠시 후면 또 달라질 것이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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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