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전화 내 인생의 고민이요 숙제이고 스트레스다. 전화를 받는 것이나 거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나마 거는 것이 낫지만, 전화를 잘 받지 않다 보면 전화를 거는 일도 힘들어지기 일쑤다. 전화는 걸기와 받기가 엎치락 뒤치락 차곡차곡 쌓여가며 고민이 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고민은 커지고 버거운 숙제가 된다. 마침내 스트레스에 이르기도 한다. 어휴! 나도 모르게 나오는 이 한 숨. 

 

사람들은 내가 자신의 전화만 쏘옥 피하는 줄 안다. 결코 그렇지는 않다. (나는 스스로에게 진솔하려고 애쓰는 편이라, 오히려 덜 친해도 그의 전화가 울리는 걸 보면 받는다.) 나는 모든 전화를 외면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친구들도 예외는 없다. 주동이나 상욱이, 수범이까지도 전화를 외면하는 내 모습 때문도 열 받았을 적이 한 두 번이 아닐 게다. 모르는 전화를 받는 일은 거의 없기에, 나의 밥벌이가 될 강연 의뢰를 놓쳤던 것도 부지기수일 것이다.

 

올해는 전화 연결을 외면하면 어떤 비극이 도래하는지를 보았다. 부정적인 상황의 극한점에 다다랐던 것 같다. 출판사의 전화를 9개월 간 외면하여 법원으로부터 지급 명령을 받았고, 가족과의 연락도 원활치 않아 가족의 (합당한) 분노와 하소연을 들어야 했다. 지금의 상황보다 심해지면 나를 원수로 여기는 이들이 생기거나 사회생활이 힘겨워지리라. (이미 그 지점 어딘가에 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모습은 나의 심각한 허물이다. 여기에 쓰기가 부끄러울 만큼 그렇다. (좀 더 용기가 생기면 간단히 서술한 이런 내용을 자세히 적어볼 참이다.) 이것이 부끄러운 까닭은 나의 경우엔 영성이 깊어지면 연락이 잦아지기 때문이고, 상대방이 선호하는 연락의 방식대로 맞추지 못하는 내 모습에 얼마간은 아쉬움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나는 메일을 통한 연락이 편하지만, 누군가는 전화가 훨씬 편할 수도 있으니까. 

 

22.

나는 (남들에 대한 생각보다) 스스로에 대한 생각을 가장 많이 한다. 내 인생에 대한 창조적인 생각들을 하고 나면 내 삶이 조금씩 바뀌는데, 그 속도가 느리긴 하나 나는 그런 내 삶의 변화와 성숙하는 과정을 사랑한다. 그리고 변화와 성숙을 불러오는 모든 것들을 사랑한다. 독서, 여행, 어떤 만남 그리고 어느 고요한 장소에서 갖는 나만의 성찰의 시간을. 

 

23.

스스로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고 누군가에게 연락을 하는 일이 드물다고 해서 내가 다른 이들을 생각하지 않고 사는 것은 아니다. 다만 생각을 할 때마다 "그냥 생각나서 전화했어"라고 연락을 하기보다는 '잘 지내시게나. 건강하고 행복하게' 라고 마음으로 빌고 넘어간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가장 자주 듣는 핀잔은 "말을 안 하면 상대방은 모른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나도 의사소통의 중요성을 매우 강조하는 편이고 의사소통의 출발인 표현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것만은 이해해 주면 좋겠다. 내가 잘했다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해도 연락을 못하는 이들도 있다는 사실을.  

 

구본형 선생님과 단둘이서 만난 적이 있었다. (단둘의 만남은 단 한 번이었고, 이는 초기 연구원들 중에서는 적게 만난 축에 속한다.) 그때 나는 선생님께 선물을 드렸다. 그 만남을 위해 준비한 것은 아니다. 선생님께 드리려고 준비했던 선물인데, 기회가 없어 전해드리지 못했다가 그날 드린 것이다. 그렇게 드린 선물이 네 개였다. 브라질 여행에서 사온 전통주, 독일 프랑크푸르트 괴테하우스에서 사 온 만년필, 생신 선물로 준비한 롯데백화점 상품권, 또 하나는 비밀이다.

 

선물이 쌓인 과정은 이렇다. 생신 모임 때에 선물을 준비했다가 드리지 못한 것은 공식적으로 선물을 드리는 시간이 없어서 드릴 타이밍을 놓쳤기 때문이다. 선생님과 둘이 있었더라면 슬며시 건네 드렸을 텐데, 선생님은 내내 회중 가운데에 계셨고 그 때에 드리게 되면 내가 주목을 받을 것이 뻔했다. 나는 주목 받을 만한 인물도 못되고, 선물도 그저 소박한 것일 뿐이다. 또한 선물 준비를 안 한 사람들이 더 많았던 것도 이유였다. 그날 돌아오는 길에 내 손에는 선물을 담은 쇼핑백이 들려 있었다. 이런 식이다.

 

24.   

나는 다른 사람들의 환심을 사는 일에는 관심을 두지 않으려고 한다. 사람들의 인기를 얻기보다는 그들과 진실하고 친밀한 교감을 나누고 싶고, 친밀함 위에 존경까지 얹을 수 있다면 좋겠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알아내기 위해 쓰는 시간은 무척 아깝다. 그럴 시간이 있다면, 남들을 배려하는 데에 필요한 지식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이를 테면, 그의 취향, 습관, 관심사 등을 알려고 노력하는 게 낫다. 이것이 친해지는 비결이고, 여기에 진정으로 그를 돕고자 하는 마음이 커진다면 존경 비슷한 것도 얻게 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그에게 필요한 말이다 싶으면, 직언이라도 서슴치 않으려고 노력한다. 물론 때와 방법을 매우 신중히 선택하려고 무지 애를 쓴다. 모든 직언이 사랑을 품고 있는 것은 아니다. 자기 기질상 다른 이들을 판단하고 개선하려는 욕망이 강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사회성이나 자기조절력을 갖고 있지 못하면, 그들은 듣기 싫은 말도 곧잘 하게 된다. 그들의 직언은 사랑보다는 통제 욕구에 가까운 셈이다.

 

반면 나는 감수성이 민감한 편이다. 타고난 감성과 자라난 환경의 조합으로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일에 둔감하지는 않다. 내가 던지는 말이 상대방에게 힘겨움을 주는 것은 견디기가 힘들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와우들에게 필요한 직언이라면 적절한 때와 방법을 찾아내어 건네곤 한다. 사람들이 직언을 피하는 까닭은 그가 자신을 싫어하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내가 직언을 두려워 않는 까닭은 두 가지다.

 

1) 그가 나를 싫어해도 좋다. 그가 성장하여 더 멋진 삶을 살아간다면.

2) 나는 그를 사랑한다. 그래서 직언 이후에도 내가 그를 아낀다는 걸 보여줄 자신이 있다.

 

직언을 못하는 까닭은 자신에게 사랑이 없음이 탄로날까 봐 두렵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25.

카페에서 차를 마시고 일어날 때 앉았던 의자 정리하기는 기본적인 매너라 생각한다. 물론 깜빡 잊었다고 해서 실례를 범한 것은 아니다. 매너란 지키면 좋은 것이되, 지키지 않았다고 하여 문책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문화와 사람마다 중요하게 여기는 매너가 조금씩 다르니까. 카페의 경우, 내가 싫어하는 매너 없음이 있긴 하다. 홀로 왔음에도 4인석에 앉아서 장시간을 머무는 것. 물론 한가한 시간에야 차를 마셔주는 것 자체가 주인에게 고마운 일일 테지만, 바쁜 시간대에 과도한 자리차지를 나는 싫어한다. 

 

며칠 전, 브라질에서 삼십 년을 살다가 온 내외분을 만났다. 그들과 한국의 문화가 많이 낯설더라는 말을 주고 받았다. 그 분들은 내가 합류하기 2시간 전부터 카페에서 차를 마셨고, 내가 도착하기 직전에 다시 차를 주문했다. 주문의 이유는 이랬다. "오래 앉았으니 자릿값을 내려고, 차 한 잔 더 시켰는데, 팀장님이 오셨네." 아무렇지 않게 지나가는 말이었지만 귀에 쏘옥 들어왔다. 한 푼이라도 더 아끼는 것은 절약이라는 미덕이고, 남의 사업장에서 합당한 비용을 치르는 것도 배려라는 미덕이다. 어떤 미덕을 발휘해야 하는지 아는 것은 지혜고.

 

26.

과도한 자리차지를 싫어하는 이유는 뭘까? 언젠가 스타벅스에 갔는데, 앉을 자리가 하나도 없었다. 4인 테이블에 홀로 앉은 사람이 각각 한 사람씩 둘 있었지만, 그들은 분리할 수도 있는 테이블을 붙여 자기 소지품을 늘어놓고 있었다. 나는 한쪽 구석에 서서 아메리카노를 홀짝이며 잠시 기다렸지만 자리는 나지 않았다. 결국 홀로 앉은 남성에게 양해를 구해 테이블을 떼어 앉을 수 밖에 없었다. 그걸 지켜본 옆의 여인은 여전히 테이블 두 개를 붙이고 있었다. 카페에는 자리가 하나도 없었다.

 

남에게 폐 끼치지 않기!

 

내 삶의 중요한 가치다. 체계적인 사람은 못 되어서, 또 다른 중요한 가치로는 무엇이 있냐고 물어오면 버벅대겠지만, 폐를 끼치지 않고 살고 싶은 마음만큼은 여러가지 사례로 말할 수 있다.

 

- 카페에서 전원을 사용할 때면, 더 먼쪽의 플러그에 꽂아 다음 사용하는 이가 좀 더 쉬이 꽂도록 한다. 홀로 가서 4인석을 차지하고 있는 경우는 절대로 없다. (사실 혼잡한 시 간에 4인석 테이블에 앉은 솔로족을, 좋게 생각하지 않는다. 마음 속으로 지랄하기도 한다.)

- 혼자서는 혼잡한 식사 시간을 피한다. 반찬을 여럿 내놓는 식당을 좋아하지만, 혼자일 때에는 주로 설렁탕집과 같은 식당을 택한다. 이때도 작은 테이블에 앉는다. 

- 공용으로 수건을 사용하는 경우엔 한쪽 귀퉁이만 사용한다. 헬스장에서는 타월을 한 장만 사용한다. 호텔에서는 불필요한 수건 사용을 자제한다. 요컨대 집에서처럼.

- 택시를 탈 경우, 가까운 곳으로 갈 때에는 정차대기하는 차를 타지 않는다.

 

이런 예는 끝도 없다. 부탁을 하지 못하는 것도 폐가 될까봐 그런다. 이런 모습이 독립적으로 보일 때도 있는데, 독립성이어서 그렇기도 하나 내가 자라온 환경 탓인지도 모르겠다.

방금 말한 것들은 '사회적 규칙'이 아니라 '개인적 윤리'일 뿐이다. 내게는 중요해도 누군가에게는 전혀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다. 도덕과 윤리는 판단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 자신이 지키면 좋은 것이고, 남이 지키지 않는다고 해서 판단해선 안 되리라. 도덕이란 것이 사회, 문화, 개인마다 가중치가 다르니까.

 

27. 

어디에선가 다음과 같은 글귀를 보았는데, 딱 내 얘기다.

"고아로 자란 이들 중에는 옆에서 보기에 미련하다 싶을 정도로 참을성이 많은 사람들이 있다. 내가 필요할 때 원하는 만큼의 물리적, 정서적 보살핌을 받을 수 없었던 이들에겐 참는 것이 하나의 성격이 됩니다."

 

28. 

여럿을 관찰한 바로는, 키가 작고 통통한 체형의 사람은 몸을 좌우로 흔들면서 걷는 경우가 많았다. 계단을 오를 때엔 흔들림의 진폭이 커진다. 나는 키가 크고 말라서인지 좌우로 몸을 흔들며 걷지는 않는다. 성큼성큼 걷는 편이다. 세상을 여유롭게 살고 싶어 유유자적하게 걷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시간에 촉박하여 뛰어다닐 때도 많다.

 

자신감은 몸으로도 드러나는가 보다. 사람들은 종종 말한다. 내 걸음걸이가 힘차다고. 가끔 듣는 말도 있다. 세상을 다 얻은 사람처럼 걷는다고. 세상을 다 얻기야 했겠냐마는, 내 마음과 행동 만이라도 잘 조절하며 싶긴 하다. 자기조절력의 모범이고 싶다.  

 

(자기조절력은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개념이다. 뭔가 재미없고 계획되고 규격된 삶이라는 오해. 하지만 자기조절력이라는 개념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스스로를 컨트롤할 수 있다는 뜻이다. 나는 자유, 여유, 균형, 낭만, 탁월함 등을 구현해내고 싶다. 그것은 통제와 계획만으로는 다다를 수 없는 것들이다. 추상적 가치를 구체적 삶의 모양으로 환원하여 말하면 이렇게 될 것이다. 여행, 글쓰기, 저녁 시간의 와인 타임, 훌륭한 책 출간 등.)

 

29.

나는 삶을 사랑한다. 당연한 귀결로, 내 삶이 조금씩 아름다워지도록 돕는 것들을 아낀다. 나는 철학을 공부하는데, '이론으로서의 철학'이 아니라 '삶의 지혜로서의 철학'을 하는 이들을 좋아한다. 그래서 소크라테스, 쇼펜하우어, 니체에 열광한다. 이들에게 철학은 이론적 체계를 세우는 학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삶의 방식을 선택하는 도구였다.

 

나는 문학과 예술에도 관심이 많은데, '예술을 위한 예술'이 아니라 '인생을 위한 예술'에 관심이 많은 작가와 평론가를 좋아한다. 예술을 삶을 돕는 도구로서 바라보는 관점을 가진 이들 말이다. (유미주의자들의 열정을 좋아하지만, 그들의 가치관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몸의 『달과 6펜스』의 주인공 스트릭랜드의 꿈을 향한 몰입에 감동하나, 그의 삶을 존경할 수는 없다.)  도구로서의 예술이 무엇인지 궁금하면 알랭 드 보통의 신작 『영혼의 미술관』의 서문을 비롯한 몇 페이지만 읽어봐도 알 것이다.

  

30.

나는 책읽기를 좋아한다. 그러니 책을 사는 일도 즐긴다. 아래 사진은 사무실의 책장. 옆에 있는 박스는 책을 배달해 준 인터넷 서점의 박스들. 얼마 동안 모은 것이냐고? 2013년 가을, 나는 무진장 책을 사들였고, 아래 상자는 그 미친 기간 동안에 단 이틀 동안 온 것만 기념(?) 삼아 찍어 둔 것. 무슨 기념이냐고? 다시는 이런 미친 구매는 하지 말자는 다짐!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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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