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우리를 어떻게 치유하는가?

- 알랭 드 보통 <영혼의 미술관> 리뷰

 

다시(!) 피카소가 왔습니다.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는 <스페인 말라가시 피카소재단 25주년 기념 특별 기획전>이 열렸습니다. (2013.10.01~11.24) 기념, 특별, 기획이란 말들이 난무하여 복잡하지만, 기억해야 할 것은 스페인 남단의 항구도시 '말라가'입니다. 피카소의 고향이거든요. 그래서 이번 전시회 타이틀이 <피카소, 고향으로부터의 방문>입니다.

 

피카소의 방문은 우리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주변의 누군가는 그의 전시회를 찾아갑니다. 직접 전시회장을 가지 않더라도 방문 소식을 뉴스나 친구로부터 듣게 되고요.

어제 만난 두 명의 와우팀원은 이런 대화를 나누더군요. "이번 주에 피카소 전시회 갈 예정이예요." 듣던 이가 대답합니다. "저도 티켓은 샀어요. 전시회가 끝나기 전에 시간을 내 보려고요."

 

오늘(2013.11.05) 아침 뉴스에선 깜짝 놀랄만한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독일 나치가 1930~40년대에 유대인 미술상에게 약탈한 그림 1,500점이 발견된 겁니다. 나치 약탈의 미술품 규모로는 사상 최대의 규모이고, 가치는 무려 1조 4천억원을 넘는다네요. 세상에, 1조 4천억이라니! 작품당 평균 가격이 9억원을 웃도는군요. 피카소, 르누아르, 마티스, 샤갈 등 유명 화가의 그림이 대거 포함되어서 그렇겠지요. 

 

알랭 드 보통도 예술을 향한 우리의 관심과 예술에 매겨지는 엄청난 가치를 관찰했겠지요. 그는 <영혼의 미술관> 서문을 이렇게 시작합니다.

 

"현대 세계는 예술을 매우 중요하게, 인생의 의미에 버금갈 정도로 소중히 여긴다. 이 높은 존중을 보여주는 증거는 새로 문을 여는 미술관에서, 예술의 생산과 전시에 상당한 투자를 하는 정부 정책에서, 작품에 대한 접근성(특히 어린아이들과 소외 계층에 돌아갈 혜택을 위해)을 높이고자 하는 예술 수호자들의 열망에서, 학문으로써 예술 이론의 위상과 상업 예술시장에서의 높은 가치 평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어서 문제를 제기합니다. "예술과의 만남은 기대한 바대로 이루어지진 않는다. 명성이 자자한 미술관이나 전시회에 찾아갔을 때 우리는 예상했던 변화의 경험이 일어나지 않음에 의아해하면서 실망하고, 더 나아가 어리둥절함과 무능하다는 느낌을 품은 채 문을 나선다. 그럴 땐 자기 자신을 탓하고 문제의 뿌리는 분명 이해 부족이나 감성적 수용 능력의 부족에 있다고 자책한다." 하지만 보통은 문제의 일차적 뿌리는 개인에게 있지 않다고 위로합니다.

 

짚어볼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변화의 경험을 기대하면서 미술관을 찾는 건 아니니까요. '예술을 위한 예술'을 추구하는 유미주의적 예술관을 지닌 이들은 예술이 우리의 삶을 도와서가 아니라, 예술을 작품 그 자체로 존중합니다. 우리의 변화와는 무관하게 말이지요. 

 

여기서부터 알랭 드 보통의 예술관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는 예술을 위한 예술이 아니라 '삶을 위한 예술'을 강조합니다. (그가 설립한 아카데미의 이름도 '인생학교 The School of Life'입니다.) 유미주의자들은 경을 칠 말이겠지만, 그는 예술을 삶의 도구로 생각합니다. 더 아름다운 삶을 위한 도구! <영혼의 미술관>은 '도구로서의 예술'을 제대로 즐기는 법을 쓴 책이고요. 

 

"도구는 소망을 이룰 수 있게 해주는 신체의 연장물이다. 신체 구조상의 취약점에서 도구의 필요가 발생한다. 칼은 우리가 무언가를 자를 필요가 있는데도 자를 수 없는 무능함에 대응한 결과물이다. 예술의 목적을 발견하려면 어떤 문제들이 마음과 감정을 다스리는 데 필요하면서도 우리에게 곤란함을 안겨주는지 물어야 한다. 예술은 어떤 심리적 취약점을 도울 수 있는가? 지금까지 일곱 개의 취약점이 확인되었고, 그러므로 예술에는 일곱가지 기능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책은 예술의 일곱 가지 기능을 설득력 있게 제시합니다. 디자인, 건축물도 등장하지만 주로 미술 작품을 사례로 들면서 말이죠. '기억, 희망, 슬픔, 균형 회복, 자기 이해, 성장, 감상'의 7가지 기능을 읽다 보면, 인문적이고 심리적인 '실용서'라는 느낌이 듭니다. 글의 소재는 '예술'이지만, 글이 향하는 지점은 '삶'이니까요. 보통은 '외부 세계를 활보하는 행동'보다는 '내면 세계를 거니는 사색'이 더 자주하는 기질이기에, 그의 책에선 활동성보다는 성찰적인 색채가 짙습니다.

 

<예술의 7가지 기능>

1. 나쁜 기억의 교정책 : 예술은 경험의 결실을 기억하고 재생할 수 있게 해 준다. 예술은 소중한 것과 우리가 찾은 최고의 통찰을 좋은 상태로 유지하는 매커니즘이며, 그것에 누구나 접근할 수 있게 해 준다. 우리는 예술에 우리의 집단적 성취를 안전하게 예치한다.

 

2. 희망의 조달자 : 예술은 즐겁고 유쾌한 것들을 시야에 붙잡아둔다. 예술은 우리가 너무 쉽게 절망한다는 점을 알고 있다.

 

3. 슬픔을 존엄화하는 원천 : 예술은 삶에서 슬픔이 차지하는 정당한 위치를 깨우쳐 주고, 우리는 그로 인해 곤경 앞에서 덜 당황한다. 곤경을 고귀한 삶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4. 균형추 : 예술은 우리가 가진 좋은 자질들의 핵심을 특히 명료하게 암호화해 다양한 형태의 매개로 우리 앞에 내놓는다. 그럼으로 우리 본성의 균형을 회복시켜 준다. 예술은 우리에게 허락된 최고의 가능성으로 우리를 이끈다.

 

5. 자기이해로 이끄는 길잡이 : 예술은 나 자신에게 매우 중요하지만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것이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게 해 준다. 인간의 많은 부분은 언어로 쉽게 표현할 수 없다. 우리는 아트 오브제를 집어들고 혼란스럽지만 강한 어조로 말할 수 있다. "이게 나야."

 

6. 경험을 확장시키는 길잡이 : 예술경험에는 타인의 경험이 정교하게 축적되어 있으며, 잘 다듬어지고 훌륭하게 조작된 형태로 우리에게 제시된다. 예술은 우리에게 다른 문화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가장 웅변적인 예들을 제공하고, 그에 따라 예술 작품과의 교유는 우리 자신과 이 세계에 대한 이해력을 넓혀준다.

 

7. 감각을 깨우는 도구 : 예술은 우리의 껍질을 벗겨내고, 우리는 둘러싼 모든 것을 버릇없이, 습관적으로 경시하는 태도를 바로잡아준다. 우리는 감수성을 회복하고, 옛것을 새로운 방식으로 본다. 예술은 색다르고 화려한 것만이 유일한 해답이라고 가정하는 오류를 막아준다.

 

여기까지가 63쪽까지의 내용입니다. 저자는 이어서, 우리는 무엇을 훌륭한 예술로 간주하는가, 어떤 종류의 예술을 창작해야 하고 어떻게 사고 팔아야 하는가, 예술은 어떻게 연구해야 하는가 등의 질문을 고찰합니다. 고찰은 깊되 서술은 간결합니다. 이론적 배경을 설명하기보다는 핵심 메시지를 전달하는 식입니다. 페이지 운운하며 설명한 까닭은 예술의 문외한들도 가뿐 사뿐히 읽으실 수 있음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딴엔 예술서적이라고 일반적인 도록 크기의 판형입니다. 230여페이의 책이지만 값비싼 까닭은 큰 판형, 질 좋고 두꺼운 종이, 컬러 인쇄 때문입니다. 140 여점의 사진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필요한 선택입니다. 책의 목차를 보시면 내용을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하실 겁니다. 한 번 훑어 보시지요.

 

방법론 7

사랑 99

자연 129

돈 161

정치 197

 

책의 큰 목차로는 내용 짐작이 안 될 테니, '돈이'라는 챕터의 작은 목차도 소개합니다. 

 

자본주의 개혁의 길잡이, 예술

취향의 문제

취향 교육에서 비평가의 역할

진보한 자본주의를 향하여

진보한 투자

예술가들이 말하는 직업에 관한 조언

 

'삶의 도구로서의 예술'을 추구하는 저자가 예술에 접근하는 실용적 태도가 느껴집니다. 제가 좋아할 수 밖에 없는 책입니다. 저 역시 유미주의와는 거리를 두며 '삶을 위한 예술'을 추구하니까요. 빅토리아 시대의 저명한 비평가 매튜 아놀드는 <교양과 무질서>라는 책에서 예술을 '삶의 비평'이라 말했는데, 저나 알랭 드 보통은 모두 그의 견해를 따르는 셈입니다.

  

<영혼의 미술관>은 예술, 주로 미술 작품을 통해 삶을 들여다보는 법을 다룬 책입니다. 특히 미술이 우리의 감정을 어떻게 치유하는지를 다뤘습니다. 보통이 활동성이 강한 작가였다면, 예술은 어떻게 우리의 도전을 돕는가를 탐구했을지도 모르겠군요. 보통의 통찰은 항상 탁월한 경지에 이르렀지만, 독자인 우리는 그의 기질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겁니다. 종종 그도 실수를 하니까요.

 

"우리는 거의 항상 장밋빛의 감상적인 눈으로 세상을 보기는커녕 과도한 우울로 고생한다"고 썼지만, 세상에는 항상 장밋빛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보통이 '순간적으로' 간과했을 이런 문장은 아쉽습니다. 그는 알랭 드 보통이니까요! 하지만 미묘한 기쁨도 안겨줍니다. 알랭 드 보통의 기질적 성향을 재확인하며 작가를 조금씩 알아가는 기쁨 말입니다. 

 

한 마디 더! 책을 읽으시면서 미술의 본질을 찾진 못할 겁니다. 앞서 말한 7가지의 기능은 미술 작품만이 아니라, 소설과 같은 다른 예술도 능히 해내는 것들이니까요. 삶으로 수렴하다보니 미술, 음악, 소설 등 예술 각각의 본질을 희석시킬 수 있음이 삶의 도구로서의 예술, 다시 말해 기능적 예술관의 한계입니다. <영혼의 미술관> 뿐만 아니라 <영혼의 음악감상실>, <영혼의 소설관> 같은 책도 얼마든지 쓰일 수 있다는 거죠. 요컨대, 저는 '본질주의를 추구하는 기능적 예술관'을 추구합니다.   

 

- 예술의 존재가 고마운, 조르바.

Posted by 보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