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감상의 첫걸음] 그림 앞에서 물끄러미


절친한 친구가 그림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서른일곱이 되던 해, 그는 여러 점의 그림을 구입했다. 인사동 갤러리를 구경하다가 마음에 드는 그림 몇 점에 값을 치르거나, 밝은 채색감이 마음을 긍정적으로 만들어 준다며 고흐의 대형 유화를 침실에 걸어두기도 했다. 그와 나는 초등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같이 다닌 단짝이다. 서로의 성격과 취향을 잘 안다. 그림에는 전혀 관심 없었다. 그는 갑자기 무엇 때문에 돈과 시간을 그림에 투자한 걸까?


죽음이 다가오면 오감이 민감해진다는 말을 언젠가 들었다. 작은 소리도 민감하게 잡아내고 짙어진 감수성으로 세상을 세심히 보게 된다는 것이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친구를 통해 알았다. 친구가 그림에 관심을 가진 시기는 췌장암 말기 진단을 받은 이후였다. 2014년 1월 어느 갤러리에서, 친구는 작은 그림 하나를 마음에 들어 했다. 서울 남산을 배경으로 크게 그려진 말이 역동적으로 달려가는 모습을 담은 그림이었다. 2014년은 말의 해다. 친구는 말띠였다. 나는 그림을 선물로 사 주었다. 말의 기운을 얻어 친구가 암을 이겨내기를 바랐다. 선물한지 6개월 후, 친구는 세상을 떠났다.

 

친구에게 물었었다. 그림이 왜 좋아? 그림이 나를 위로해 줘. 때로는 긍정적인 기운을 불어주기도 하고. 친구의 대답을 들으니 그림에게 고마워졌다. 말기 암세포를 몸에 달고 사는 이가 교양을 쌓으려고 그림을 사들인 건 아닐 것이다. 그에게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 그림이 진정 자신을 위로했기에 돈과 시간을 지불했을 것이다. 갤러리에 들어가면 그는 말이 없어졌다. 그저 아무 말 없이 그림을 보았다. 누가 그린 그림인지도 묻지 않은 적이 많았다.


오주석 선생의 말이 떠올랐다. “그림을 아는 사람은 설명하고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저 물끄러미 바라본다.” 친구가 그랬다. 자기 마음에 드는 작품을 만나면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내게 한 마디씩 건넨다. 이 그림 어때? 나는 친구가 좋으면, 그게 좋은 것이라는 생각으로 대답했다. 건성이 아니라 진심이었다. 괜찮은데? 잠시 후, 친구 손에는 그림을 담은 종이백이 들려 있었다.


“오늘의 나를 키운 힘은 미술관에서 나왔다.” 세계적인 조각가 헨리 무어의 말이다. 명작에 현혹되지 않고 자기 눈에 들어오는 작품만 골라 며칠씩 보고 또 보았다. 헨리 무어에게서 얻는 교훈은 전시회를 관람할 땐 작품 아래 붙은 이름표보다는 그림에 주목해야 한다는 점이다. 작가의 명성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다. 뭉크가 좋은가? 뭉크의 작품이 좋은가? 뭉크라면, 자기 작품을 좋아해주기를 바랄 것이다. 뭉크는 몰라도, 적어도 나는 친구나 지인이 아니라면, 나보다 나의 글을 더 좋아해주면 좋겠다.


예술 세계에서는 대가의 졸작이 있는가 하면 무명의 걸작이 존재한다. 그림을 통해 위로를 얻으려면, 예술사조와 작가의 생애를 ‘읽을’ 게 아니라 작품을 물끄러미 ‘바라보아야’ 한다. 작가에 연연하지 않고 마음을 울리는 그림을 만나면 물끄러미 바라보기! 이것이 미술을 대하는 태도이자, 자신만의 감동적인 그림을 만나는 비결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굵직한 전시회가 곧 막을 내려서 안내차 올린 글입니다. 예술의 전당 전시회 <20세기 위대한 화가들>(~9.17)에서는 모네, 르누아르, 샤갈, 피카소, 마티스, 앤디 워홀, 데미안 허스트, 키스 헤링 등 근현대 거장 53명의 작품 104점을 만날 수 있고, 에드바르드 뭉크(~10.12) 전도 한창 진행되고 있답니다. 사진 좋아하시는 분들에겐 <퓰리처상 사진전>(~9.14) 관람도 즐거운 시간이 되실 테고요. 참고로, 위 그림은 노먼 록웰의 1958년 작품 <The Runaway>입니다.]


Posted by 보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