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 내가 일몰을 좋아하는 이유

 

주말을 외국의 한적한 섬에서 보냈습니다. 지금은 시애틀 여행 중인데, 근교에 사는 친구 부부와 함께 시애틀에서 100마일 떨어진 산후안 섬(San Juan Island)으로 주말여행을 떠났거든요. 이야기 속에 또 하나의 이야기 끼어들어 있는 소설을 액자소설이라 부르더군요. 산후안 여행은 시애틀 여행 속에 또 하나의 여행이 끼어든 액자여행인 셈입니다.

 

여객선을 타고 바다를 가로지르며 섬으로 향하는 동안, 태양은 수평선을 향한 전진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갑판에 서서, 태양이 빚어낸 ‘일몰’이라는 예술을 만끽했지요. 솜사탕을 길게 늘어뜨린 모양의 구름이 살구빛 태양빛과 아름다운 조화를 이뤘습니다. 이국의 바다 위에서 바라보는 햇살 좋은 날의 일몰이, 나는 무척 감사하게 여겨졌습니다.

 

시애틀에서 닷새를 보내는 동안, 무려 나흘은 비 내리는 잿빛 하늘이었거든요. 맑은 날씨가 드문 곳에 머물다 보니, 햇빛이 구름에 차단되지 않고 대지에 도달한다는 것이 경이롭게 느껴지더군요. 감사함의 주된 원인은 풍광이 여행자 세 명의 기분을 들뜨게 만들었다는 점입니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오늘’을 보다 아름답게 만들어 주었으니까요.

 

항구에 도착하여, 섬을 주행하는 자동차 안에서 친구 부부에게 물었습니다. “일출이 좋아요? 일몰이 좋아요?” 두 사람 모두 일몰이 좋다고 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고요. 이유는 저마다 달랐지요. “살면서 일출을 보았던 적이 별로 없거든요”라는 답변에는 모두가 웃었습니다. 부부가 일몰을 좋아했던 이유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제 이유는 이렇습니다.

 

1. 제 주요 정서인 회상과 그리움에는 일몰이 어울립니다. 자주 그리워하고, 종종 후회하거든요. 2. 일몰은 스스로도 빛나지만, 자신의 빛으로 사위를 아름답게 물들입니다. 일몰처럼 아름다운 노년을 맞고 싶군요. 3. 일출은 역동적이지만 일몰은 우아합니다. 나는 평생 박력의 삶을 추구할 테지만, 우아한 삶을 창조하는 게 그나마 쉬울 것 같네요.

 

주말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배에서도 우리는 일몰을 만났습니다. 나는 여객선 객실 창가에 머리를 기대어 한참동안 일몰을 바라보았습니다. 아름답다 싶을 때면, 갑판에 나가 사진을 찍고 왔습니다. 두 번을 나갔다 오고, 창밖으로 일몰을 바라보고, 그러다가 창가에 머리를 기댄 채로 잠이 들었습니다. 그윽한 햇살이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일출보다 일몰이 아름답다거나 일몰을 더 좋아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말은 아닙니다. 사람은 저마다 다릅니다. 모습이 다르고, 재능이 다르고, 취향이 다르니, 자신의 취향을 자유롭고 용기 있게 쫓으면 될 겁니다. 자연이 늘 그렇듯이, 일몰뿐만 아니라 일출 역시 우리에게 교훈을 주니까요. 지난해에 썼던 시 하나를 공유하며 물러갑니다.

 

태양을 푯대 삼아

 

태동의 순간에 필요한 에너지와

하루를 열어젖히는 흥분이

일출에 깃든다.

 

시작은 빛나야 하리

태양을 뱉어 올린 파도의 반짝임처럼

 

퇴장의 순간에 젖어드는 아련함과

하루와 작별하는 보람과 아쉬움이

일몰에 깃든다.

 

마지막은 아름다워야 하리

석양을 떠나보낸 하늘의 노을빛처럼

 

Posted by 보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