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틀랜드 3일차 오전, 오후] 2014년 12월 17일(수)

 

 

1.

포틀랜드에 살고 싶다.’ 어젯밤 호텔로 돌아오며 문득 든 생각이다. 여행을 하다보면, 몇 달 만이라도 살아보고 싶은 도시가 생기곤 하는데, 포틀랜드가 추가됨으로써 목록은 이제 바이마르, 상파울로, 몽펠리에, 시드니에 이어 포틀랜드까지 다섯 개 도시가 되었다. (팔라우와 항저우도 끌리지만 강력한 유혹까지는 아니었다.) 포틀랜드의 무엇이 내게 끌림을 안겼을까?

 

끌림은 생각하기 어려운 주제다. 머리가 작동하기 전에 몸이 반응하고 감흥이 일어나 끌림을 창조해내고 마니 당연지사다. 그래서 더욱 중요하다. 우리가 좋아하는 일을 찾으려 할 때, 이성은 얼마나 무력한가. 중요한 점을 고려하지 못해 잘못 판단하기 일쑤고 종종 무의식에 완패하고 만다. 반면 몸과 감정은 얼마나 우리의 끌림과 취향을 잘 식별하는가. 포틀랜드가 왜 좋을까? 이에 대한 답변은 포틀랜드에 관한 지식인 동시에 나에 관한 지혜이리라.

 

이틀 전 포틀랜드행 열차에서 Creativity, Craft, Classic 이라는 키워드를 꼽았는데, 이를 생각할 때마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포틀랜드 아니 미국에 대한 지식이 빈약한 상태에서도 여행을 알차게 해 보자고 시도한 것이지만, 아무래도 부끄럽긴 했다. 아무래도 3개의 단어를 꼽아 본 진짜 유익은 무모한 발언에 대한 부끄러움인 것 같다. 미국을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친미, 반미보다 지미(知美)가 중요하다는 어느 미국 전문가의 말도 떠오른다.

 

 

2. 

오늘 묵을 호텔로 이동하는 길에 스타벅스에 들렀다. 참 마음에 드는 주스를 마시며 ‘미국적인 것’을 키워드로 인터넷 검색을 했더니 스티브 잡스와 글로벌하게 진출한 패스트푸드점이 떴다. 잡스나 패스트푸드는 과연 미국적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두 번의 검색으로 알게 된 것은 그저 앎일 뿐 지식도 아니고 이해도 아니다. 지식은 체계적이거나 객관적이어야 하고, 이해는 시간 그리고 경험과 함께 오는 것이다. 그것이 간단한 단어라도 해도 마찬가지다. 하물며 한 나라라면 오죽할까. 귀국해서 몇 권의 책을 읽어봐야겠다.

 

 

스타벅스 매장 곳곳을 둘러보았다. 벽면 한쪽에 게시판이 이색적이었다. 셀프바에 꽂힌 안내 전단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적혀 있었다. Order ahead and Get more time to : sleep, read, walk around, do thing, mosey, look at stuff, sing, dance. 아! 참 잘 지었구나 싶었다. 모두 얼마나 필요한 행위들인가. 잠이야 말할 것도 없고, 느릿느릿 걸어보는 일(mosey)이나 물건을 바라보는 일, 노래 부르는 일 모두 우리의 영혼을 충만케 할 테니까. 우리네 실제 삶은 각박해져가고 철학적이기보다는 경제적이로 변해가지만, 슬로건이나 선전 문구 만큼은 점점 세련되어 가는지도 모르겠다. 실제와 구호의 이러한 괴리감이라니! 이런 생각들을 했다. 옆 테이블에 앉은 미국인들을 슬쩍슬쩍 훔쳐보면서.

 

 

3.

스타벅스에서 글을 썼다.

카페, 글쓰기 그리고 향 좋은 커피.

내겐 이것이 행복이다.

 

누군가가 읽어주어 감하고 동하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쁜 일이지만

쓴다는 사실 자체로도 충만감이 든다.

 

그래도 책상 속에 원고들을

순차적으로 세상에 내놓아야지.

잘 먹고 잘 쉬고 잘 살아가기 위해서.

 

충만감과 실존은 별개의 문제고

두 가지 모두 무척이나 중요하니까.

나는 두 마리 토끼를 쫓는 꿈꾸는 추격자다. 

 

 

 

4.

오늘 숙소는 주피터 호텔이다. 로비 곳곳에 젊은 예술가의 흔적이 묻어났다. 작은 갤러리에 온 마냥 마음이 차분해지고 내 안의 감수성이 세상 밖으로 머리를 들이민다. 이럴 때에는 나도 조금은 우아해지는 느낌이 든다. 깔끔하고 아담한 호텔, 마음에 든다. 리셉션 위에 놓인 사과마저 예술적으로 보이는 곳, 주피터 호텔.

 

 

 

 

호텔 로비에 잠시 앉았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그 곳에서 좀 더 시간을 보냈어야 했는데하는 생각과 아니야, 다음 가야 할 곳도 있고 오래 있기엔 조명이 어두웠고 편안한 분위기는 아니었어하는 생각이 교차한다. 낭만적 자아와 생산적 자아의 아옹다옹한 대립이다. 두 자아를 아우른 이상주의적 탐험가가 승리했다. ‘나를 더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곳을 찾아 그곳에서 여유와 낭만을 누리자!’

 

5.

2816 A SE Stark St, 포틀랜드, OR.

‘Canteen’이라는 작은 식당의 주소다. 이곳을 향해 호텔을 나섰다. 이 식당 주변에는 유명한 관광지가 없다. 그나마 호손 스트리트가 가까운데, 호손 스트리트는 상점 곳곳에 들어갈 시간적 여유나 바에서 술 한잔을 즐길 동행이 없이는 여행의 매력이 떨어지는 곳이다. 그러니 유기농 채식을 좋아하는 이가 아니라면 ‘Canteen’을 권하고 싶지 않다.

 

 

 

 

물론 나는 다녀왔다. 유기농도 좋아하고 채식도 즐겁게 먹으니까. 채식을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기꺼이 먹는 편도 아니다. 건강을 위해서 식욕을 절제하거나 음식을 가려먹는 쪽이라고 해야겠다. (이럴 때에는 내게서 자제력이 보여서 스스로 놀란다. 늘 나를 좀 더 컨트롤할 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겠지.) ‘Canteen’은 내가 날마다 먹고 싶은 메뉴를 선보이는 곳이라 생각했고, 실제도 먹어보니 과연 그랬다‘Canteen’은 내게 의미 있는 곳이 되었다. 이곳에서 미국인 친구를 만나 한 시간 삼십 분 동안 마음을 나누며 즐겁게 이야기를 나눴기 때문이다. 다음 포스팅의 주인공은 그가 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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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