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균의 <한정록> 제2권을 읽었습니다. 노장의 학문을 좋아하여 예법을 무시하고, 속세를 피해 죽림에 모여 제멋대로 살았다 해서 ‘죽림칠현’이라 불렸던 이들의 고사(古事)가, 아무런 설명도 없이 책의 첫머리에 다짜고짜 등장합니다. 이야기의 전문을 옮겨 봅니다.

 

혜강, 완적, 산도, 유영이 죽림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데, 왕융이 늦게 왔다. 완적이 이죽거리며 말하였다. “속물이 또 와서 흥이 깨졌다.” 그러자 왕융은 웃으며 말했다. “자네들도 흥이 깨질 때가 있는가?”

 

이야기는 끝입니다. 이게 뭐야? 나의 첫 반응입니다. 감흥을 느끼지 못했지만 책 내용은 계속 펼쳐져 있었습니다. 이어지는 고사도 짤막한데, 나를 황당하게 만들기는 매한가지였습니다.

 

혜강은 성품이 대장장이 일에 잘 맞았다. 집에 버드나무 한 그루가 있어 매우 무성했는데, 그 주위에다 물을 끌어 둘러놓고 여름철에는 그 아래에서 대장일을 하였다.

 

이렇게 끝납니다. 다음 고사도 다르지 않습니다. 나는 재미도 감동도 얻지 못했습니다. 국문학사상 최초의 소설 <홍길동전>을 지은 허균 선생은 도대체 무슨 의도로 <한정록>이라는 책을 썼을까요? 나와는 뭔가 맞지 않다는 이유로 이 책을 덮어버리면 그만인 걸까요?

 

허균 선생의 인생관이 어떠한 것인지 궁금해졌습니다. 나와 다르다는 느낌은 있었지만 무엇이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서는 어렴풋이 직감할 뿐이었습니다. 선생의 인생관이 나와는 다르더라도 그것 자체로 훌륭한 것일 수도 있고, 내게 필요한 것인지도 모를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허균 선생은 <한정록>의 머리글에 스스로를 다음과 같이 표현해 두었습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응석받이로 자라 찬찬하지 못하였고, 부형이나 스승 또는 훈장이 없어서 예법 있는 행동이 없었다. 또 조그마한 기예는 세상에 보탬이 될 만하지도 못하면서도 스물한 살에 상투를 싸매고 과거를 보아 조정에 나갔다. 그러나 경박하고 거침이 없는 행동에 당대 권세가에게 미움을 받게 되어, 나는 마침내 노장이나 불교 같은 데로 도피하였다. 그리하여 세상일 되어가는 대로 내맡기어 반미치광이가 되었다.”

 

선생의 나이 42세 때의 글입니다. 세월은 유수같이 흘렀지만 공업은 아직 이루지 못했음을 두고 슬퍼했습니다. 선생의 글은, 멋지게 살았던 선인들의 인생을 향한 동경으로 이어집니다.

 

“제일 멋지게 산 저 당의 사마승정처럼 산과 계곡에 마음과 뜻을 자유롭게 팽개쳐놓지도 못했고, 그 다음으로 멋지게 산 양나라 도홍경처럼 자녀의 혼인을 끝내고 멀리 유람하거나 관직을 사직하고 여행을 떠나지도 못했으며, 그들보다 못하지만 당의 백거이처럼 벼슬을 하다가 자연 속으로 돌아와 정회를 푼 것과 같이 하지도 못하였다.”

 

<한정록>은 이런 생각을 하던 즈음에 쓴 책입니다. 선생은 사십 평생의 삶을 회한으로 되돌아보는 동시에 앞날을 어떠한 인생관으로 살아갈 것인지를 생각하며 선인들의 글을 읽었습니다. <세설신어>, <고사전>, <하씨어림> 등의 책을 읽으며 가려 뽑아서 책을 만들어 <한정록>이라 명했습니다.

 

<한정록>은 입신양명을 돕는 책이 아닙니다. 선생이 멋진 삶이라고 꼽았던 사마승정이나 도홍경 그리고 백거이의 삶을 동경하거나 추구하고 싶을 때 펼쳐야 하는 책입니다. 내게 필요한 책이었습니다. 내 안에는 두 가지의 욕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무언가를 성취하고 싶은 욕망과 여유롭게 살고자 하는 욕망.

 

두 가지의 욕망은 서로 배타적입니다. 하나의 추구가 다른 하나를 방해한다는 말입니다. 성취하려 들수록 내 삶의 여유는 줄어듭니다. 나는 더 이상 삶의 조바심을 느끼고 싶지 않았고, 좀 더 여유롭게 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한정록>을 읽어야겠다고, 내게 필요한 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한정록>의 가치를 새롭게 인식한 계기도 있었습니다. 허균 선생은 불교와 도가 사상에 깊이 경도되었지만, 공교롭게도 나는 유교의 경전 <논어> 덕분에 <한정록>을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논어>의 옹야편에는 유명한 ‘지호락(知好樂)’에 대한 말이 나옵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무언가를 안다는 것은 그것을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

 

어느 인문학자는 “맹자의 앎, 공자의 좋아함, 도연명의 즐김”이라는 말로 공자의 지호락 비교론을 풀이한 바 있습니다. 물론 인생을 사는 데에는 예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예를 중시하느라 자신의 흥에 이르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시인 도연명의 ‘즐김의 경지’에서는 유가에서 배운 교훈과는 다른 유형의 배움을 얻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나는 다시 <한정록>을 펼쳐 들었습니다.

 

혜강, 완적, 산도, 유영이 죽림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데, 왕융이 늦게 왔다. 완적이 이죽거리며 말하였다. “속물이 또 와서 흥이 깨졌다.” 그러자 왕융은 웃으며 말했다. “자네들도 흥이 깨질 때가 있는가?”

 

완전히 새로운 독서체험이었습니다. “자네들도 흥이 깨질 때가 있는가?”라는 말에서 죽림칠현들의 즐기는 삶이 눈 앞에 그려지는 듯 했습니다. <한정록>의 다른 부분들 역시 제게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처음에는 숨어사는 행복을 다룬 구절만 와 닿았는데, 이제는 책의 거의 모든 대목에서 감동하고 배웁니다.

 

죽림칠현 중 유영과 같은 인물은 집에서 옷을 홀딱 벗고 지내는 등의 예법에 어긋난 흥으로 세상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기도 합니다. 하지만 제게는, 흥을 추구하느라 예법을 어긴 인물이나 예법을 지키느라 흥을 잃어버린 인물 모두 서로 다른 극단의 모습처럼 느껴집니다.

 

나는 ‘예를 품은 흥’을 만끽하며 살고 싶습니다. 예를 지키며 흥에 취하는 경지를 살고 싶습니다. 지금의 내 삶에는 흥이 좀 더 필요합니다. 도연명의 시나 <한정록>이 필요한 때입니다. 처음에는 새로운 지식을 배운다는 목적으로 <한정록>을 읽었지만, 지호락 비교론 덕분에 이제는 내 삶에 흥과 즐김의 영역을 넓혀가기 위해 읽습니다.

 

어느 여름날, 시원한 나무그늘 아래에서 내게 잘 맞는 일에 매진하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싶습니다. 그 즐거움이 세상을 다 얻은 것에 못지않은 기쁨임을 생생히 체험하고 싶습니다. 저 옛날 죽림칠현의 혜강 선생처럼 말입니다.

 

혜강은 성품이 대장장이 일에 잘 맞았다. 집에 버드나무 한 그루가 있어 매우 무성했는데, 그 주위에다 물을 끌어 둘러놓고 여름철에는 그 아래에서 대장일을 하였다.

 

(소설가 김원우 선생은 허균의 <한정록>에서 가려뽑아 <숨어사는 즐거움>이라는 책을 냈습니다. <한정록>과 목차와 번역이 같고 분량만 약 1/2로 줄였습니다. 두 권 모두 같은 출판사 책이라 가능한 일입니다. 분량만 다른, 같은 저자의 같은 책이라 보면 됩니다. 김원우 선생의 역주나 설명도 거의 없으니까요. 다만 <숨어사는 즐거움>에는 여백이 많아 책의 분위기와 잘 어울립니다. 두 권 중에 무엇을 추천할까 고민하다가 분량이 적고 편집이 나은 <숨어사는 즐거움>을 표제로 내세웠습니다. 허균의 <한정록>은 두 권짜리 책이거든요.)

 

- 예를 품은 흥을 즐기는, 조르바 (2013. 3. 14)

Posted by 보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