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김남주는 단 두 편의 시로 나를 사로잡았다. 주말에 도서관에 왔다. 창비시선집을 쭈욱 살핀 것은 김남주 시인을 읽기 위함이었다. 그에 대해서는 모르는 바도 아니고, 상세히 아는 바도 아니다. 노동과 투쟁의 살려고 애썼던 저항시인임을, 그의 시들이 창작과비평사에서 출간되었음을, 문학평론가 염무웅 선생이 그의 작품들을 살뜰히 모아 전집으로 간행했다는 사실 정도를 알고 있던 터였다. 나는 본격적으로 김남주를 읽을 것인가를 가늠하기 위해 『사상의 거처』를 뽑아 들었다. 창비시선 100번째 시집이었다.

 

시집에 실린 첫번째, 두번째 시의 제목이 반갑다. 어쩌면 두 편의 시로 이 시인과 나와의 궁합을 알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제목은 '시에 대하여' 그리고 '예술 지상주의'! 여기 한 시인이 있다. 그에게 시란 무엇인가를 이해하면 그 시인과 내가 공명하는지를 가늠하게 되리라. 여기 어떤 개념이 있다. 그 개념에 대한 견해와 지향하는 바가 누군가와 같다면, 그와 나는 즐거운 지적 교류를 누릴 수 있으리라. 김남주 시인의 두 시는 감동적이었고, 지적 교감을 맛보게 했다. 나는 인터넷 교보문고 장바구니에 시집을 집어 넣었다.

 

아래에 첫 시 '시에 대하여'를 정성스레 옮겨 적는다. 그러면 세 번째 읽는 것이다. 첫째는 눈으로, 둘째는 낭독으로, 셋째는 필사로. ('80년대의 저항 시인'이라는 진부한 꼬리말 정도만 알고 있어도 시를 이해하는 데에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시에 대하여  

 

할머니는 산그늘에 앉아 막대기로 참깨를 털고

어머니는 따가운 햇살 등에 받으며 호미로 고추밭을 매고

아버지는 이랴 자랴 소를 몰아 논수밭에서 쟁기질을 하고

나는 나는 학교 갔다 와서 산에 들에 나가

망태 메고 꼴을 베기도 하고 염소를 먹이기도 했지요

 

나는 보고는 했지요 어린 시절에

할머니가 깨를 터시다 말고 막대를 훼훼 저어

모밀밭을 해치는 산짐심을 쫓는 시늉을 하는 것을

나는 보고는 했지요 어린 시절에

어머니가 김을 매시다 말고 사금파리를 주워

고춧잎에 붙은 진딧물을 긁어내는 것을

나는 보고는 했지요 어린 시절에

아버지가 쟁기질을 잠시 멈추시고 꼬챙이를 깍아

황소 뒷다리에 붙은 진디기를 떼어내는 것을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내 시에는

그 시절 우리 식구들이 미워했던 것들 -

산짐승 진딧물 진드기 같은 것이 자주 나오지요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내 시에는

그런 것들을 내치느라 일손을 잠시 놓으시고

우리 식구들이 대신 들었던 것들 -

막대기 사금파리 꼬챙이 같은 것이 많이 나오지요

 

[어설픈 감상] 시인의 진정성을 드러내는 시다. 진정성은 여러 방식으로 드러나지만 - 이를 테면, 말과 삶의 일치 또는 내뱉은 말을 향한 지속적 추구로 드러난다 - 자기 작업에 대한 치열한 성찰의식으로도 표출된다. 진정성 있는 비평가는 비판 담론을 공부하기에 앞서 비평이라는 작업이 자신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묻는다. 진정성 있는 역사가는 역사가 도대체 무엇인지 또는 역사학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 묻는다. 그 자기성찰 의식이 생애의 전반부에 일어나는가 만년에 일어나는가보다 중요한 것은 한 직업인에게 그러한 의식이 존재하는가의 여부 그리고 얼마나 치열한 의식인가 하는 물음이다. 

 

김남주는 자신의 시를 살펴 보다가 문득 새로운 세상의 도래를 방해하는 것들과 그 방해물에 대한 저항의식을 많이 발견했으리라. 몸으로 동참하는 참여의식과 투쟁하는 저항의식의 예술적 표현이 이 시가 아닐까.

 

Posted by 보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