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지하게 답변하셔야 합니다. 몇 살입니까?"

"삼백서른일곱 살이에요."

답변을 한 에밀리아는 무려 337살입니다. 그녀는 아버지가 발명한 묘약을 마신 후 영원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체코의 국민 작가 카렐 차페크의 희곡 『마크로풀로스의 비밀』의 주인공 말입니다. 그녀의 비밀을 알게 된 사람들은 동요합니다. 묘약은 그녀의 후손에게 우선권이 있다고 말하는가 하면 비테크라는 청년은 다음과 같이 주장합니다.

 

"(그 약을) 공공의 자산으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만인에게, 전 인류에게 주어야 합니다. 모두가 똑같이 생명을 누릴 권리가 있단 말입니다! 하나님, 우리 삶은 너무 짧아요! 인간으로 지낼 시간이 이토록 짧다니! 상상을 해 보세요, 이 인간의 영혼, 지식을 향한 갈망, 사람의 두뇌, 과업, 사랑과 창조성 이 모든 걸 말입니다. 맙소사, 그런데 예순 평생 인간이 성취하는 게 대체 뭡니까? 뭘 배우죠? 무엇을 즐기고? 자기가 심은 나무의 결실을 손수 수확하는 일이 없어요. 이전에 살았던 사람들이 알던 지식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단 말입니다. 모든 과업은 미완으로 남겨 두고 어떤 전례도 남기지 못합니다." 그의 하소연은 이어집니다.

 

"우리는 짐승처럼 죽습니다. 맙소사, 삶 이후에 뭐가 찾아오죠? 영혼의 불멸이라는 게 뭡니까? 고작 우리 삶이 너무나 짧다는 사실에 맞서 절박하게 질러 대는 절규일 뿐이잖습니까! 인간은 이 짐승 같은 수명을 수긍한 적이 없어요. 우리는 단명을 견딜 수가 없단 말입니다. 너무 부당해요. 인간은 거북이나 까마귀보다 더 나은 존재란 말입니다. 인간에게는 삶의 시간이 더 필요해요." 그는 이제 웅변조로 긴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 논합니다.

 

"만인에게 3백 년의 생을 선사하도록 합시다! 창조 이후 가장 위대한 일이 될 겁니다! 해방! 인간은 완벽하게 새로이 재창조하게 될 겁니다. 맙소사, 3백 년 동안 우리가 이룩할 수 있는 과업들을 생각해 봐요! 어린 학생과 교사는 50년 동안 공부를 하고! 50년 동안 세계와 그 속의 만물을 발견하는 겁니다! 1백 년은 유용한 노동에 바치고, 그렇게 모든 걸 다 익히고 나면 나머지 1백 년은 지헤로 지배하고, 가르치고, 선례를 남기는 겁니다. 인간의 삶이 3백년 동안 지속되면 인간의 목숨이 얼마나 귀중해질지 생각해 보란 말입니다. 급할 일도 없고, 두려울 일도 없고, 이기적일 이유도 없겠죠."

 

스무 살 청년들에게는 어찌 들릴지 모르겠지만, 두번째 스무살을 눈앞에 둔 제게 이 청년의 주장은 어딘가 나이브한 구석이 있어 보입니다. 337년을 살아온 주인공은 제 속마음을 꿰뚫어보기라도 한 듯이 명료하게 반박합니다. "그렇게 오래 사는 건 옳지 않아! 1백 년, 130년까지는 괜찮을지 몰라. 그 후로는 영혼이 속에서 죽어 버려. 자기가 아무것도 믿지 않는다는 걸 깨달아. 아무것도. 그냥 이 공허함뿐. 베르티, 내가 노래할 때 내 몸이 얼음처럼 차갑다고 했지. 봐라, 삶이 의미를 잃은 지 오래인데도 예술적 기술은 그 의미를 보존하고 있어. 그저 일단 터득하고 나면 쓸모가 없다는 걸 깨닫게 될 뿐이지."

 

기술은 몸에 체득되어 있지만 삶의 의미를 잃은 인생을 한탄합니다. 이어 에밀리아는 부러운 어투로 말합니다. "당신네들은 만물에 가까워요. 모든 게 뭔가 의미를 갖고 있죠! 얼마 안 되는 당신네 인생에서는 만물이 값어치가 있으니, 당연히 한껏 누리며 사는 거예요. 당신네들은 모든 걸 믿잖아. 사랑, 자기 자신, 명예, 진보, 인간성, 모든 걸! 맥시, 당신은 쾌락을 믿잖아. 크리스티나, 너는 사랑과 신의를 믿지. 프루스, 당신은 권력을 믿어. 비테크는 자기가 하는 온갖 헛소리를 믿고. 모두 다, 모두가 뭔가를 믿고 있어. 얼마나 멋진 삶이야." 

 

이 말이 가슴을 쳤습니다. 무언가를 믿었던 날들이 그립기 때문입니다. 신을 믿었고 인생의 행복을 믿었던 지난 날들이...! '믿는다는 것 자체가 행복이구나' 하는 생각도 드네요. 사랑을 믿고, 우정을 믿고, 무엇보다 사람을 믿는다는 것 말입니다. 이제 에밀리아는 자신의 무감각해진 모습을 설명합니다. "아무도 3백 년 동안 사랑할 수는 없어. 아니, 희망할 수도, 글을 쓸 수도, 노래할 수도 없어. 3백 년 동안 눈을 똑바로 뜨고 살 수는 없는 거야. 견딜 수가 없으니까. 모든 게 차갑고 무감각해져."

 

나는 살아 숨쉬는 삶에 대하여, 인생의 짧음에 대하여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이 희곡을 사랑합니다. 에밀리아의 말이 얼마나 깊은 지혜인지는 모르겠네요. 글이라면 3백 년 동안 쓸 수 있지 않을까 싶지만, 아직 살아보지 않은 260년 동안 어떤 일이 일어날지 장담할 수 없으니까요. 세월은 강산 뿐만 아니라 사람의 마음도 변화시키고요. 제게 이 희곡은 보다 '오래 지속되는 삶'이 아니라 '청춘 예찬'처럼 읽히기도 합니다. 그리 생각한 구절을 옮겨 적으며 글을 맺습니다.

 

"우리 늙은이들이 너무 많이 안다고 했지. 그렇지만 당신네들을 훨씬 더 많이 알아. 이 바보들아. 훨씬, 훨씬 더 많은 걸 알고 있다고! 사랑도, 위대함도, 목표의식도 알잖아. 여전히 목숨을 유지하고 있잖아! 이 이상 바랄 나위가 없잖아! 그런데 우리는 이렇게 무감각하고, 얼어붙은 채로 계속, 계속 이렇게 지내야 해. 세상에, 더는 못 하겠어. 맙소사, 이 고독이라니!" 이렇게 말하는 에밀리아는 무려 337살입니다. 아마 그녀에게는 70, 80살도 청년으로 보이지 않을까요?

 

* 카렐 차페크, 김선형 역, 『곤충 극장』(마크로풀로스의 비밀), 열린책들

 

Posted by 보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