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은 일급의 저술가다. 나는 그를 대한민국 최고의 지식유통업자로 손꼽는다. 유통업의 가치는 유통하는 상품의 가치가 어떠한지 그리고 효과적인 매개가 이루어졌는지에 달려있다. 글로 지식을 유통하는 경우, 다루는 지식의 가치와 전달해내는 필력이 되겠다. 유시민은 섣불리 단정 짓지 않고 촘촘하고 논리적으로 사유하는 힘 그리고 정연한 문체와 독자를 사로잡는 문장력을 지녔다. 

 

나는 『나의 한국현대사』를 특히 좋아한다. 서문에서부터 일급의 저술가가 어떻게 글을 쓰는지 드러난다. 그는 현대사 서술의 위험성을 몇 문장으로 단박에 전달한다. "우리는 이승만 박근혜까지 대한민국의 역대 대통령과 그들이 한 행위에 대해 강한 호불호의 감정을 느낀다. 그들을 고려시대나 조선시대 왕처럼 느긋하게 대하지 못한다."(p.9) 그리고 역시 서너 문장으로 그 위험한 정글을 간단하고 명료하게 헤쳐나간다.

 

"나는 냉정한 관찰자가 아니라 번민하는 당사자로서 우리 세대가 살았던 역사를 돌아보았다. 없는 것을 지어내거나 사실을 왜곡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그러나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사실들을 선택해 타당하다고 생각하는 인과관계나 상관관계로 묶어 해석할 권리는 만인에게 주어져 있다. 나는 이 권리를 소신껏 행사했다."(p.11) 노련하고 유능한 필력 앞에 현대사 서술의 위험이 대폭 누그러졌다.

 

비극적인 일이지만, 뉴라이트의 등장 이후 우리는 두 개의 한국 현대사를 갖게 되었다. 이승만 대통령이든, 박정희 대통령이든, 한국 현대사의 주요 인물들은 양극단의 평가를 받는다. 유시민은 하나만 옳다는 정치적 판단을 내리지 않는 대신 객관과 주관, 좌우의 관점을 모두 검토하여 취할 것이 있다면 좌우를 가리지 않고 취한다. 관점이 없이 우유부단하다는 말이 아니다. 그는 하나의 관념에 사로잡혀 편협함에 빠지지 않는다. 내가 읽은 한국현대사 책 중 박태균 교수 다음으로 균형 감각이 빛나는 책이 아닌가 생각된다. 아래, 박정희 대통령에 관한 서술을 보자.

 

"어떤 이들은 (1960~70년대의 경제성장을 두고) '한강의 기적'이라고 하며, 박정희 대통령을 무에서 유를 창조한 '반신반인의 위대한 지도자'라고 칭송한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민생이 파탄에 빠지고 국민경제가 성장 동력을 잃었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한국 경제를 불평등과 반칙이 난무하는 약육강식의 '정글자본주의'라 비판하며 그 책임을 박정희 대통령에게 묻는다. 민주주의를 제대로 하면서 경제 발전을 이루었다면 골고루 잘 사는 나라가 될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p.103)

 

이제 유시민의 균형감각을 보자. "어느 쪽이 맞을까? 나는 둘 모두 옳고, 또 둘 다 옳지 않다고 판단한다. (중략) 대한민국은 박정희 정부 이래 개발독재와 재벌 중심의 자본 축적, 수출주도형 산업화의 길을 걸었다. 민주화를 이루었지만 낡은 경제 구조를 혁신하지 못했으며 IMF 경제 위기를 거치면서 과거와는 양상이 다른 정글법칙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되었다. 무엇이 문제인지 알고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10년의 진보정부는 '역사적 경로의존성'을 극복하지 못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사실에 부합한다고 생각한다."(p.104)

 

유시민은 역사학자가 아니지만, 역사를 다룬 책에 걸맞게 하나의 사관을 쫓아간다. (욕망사관이라 부르면 어떨까.) 나는 대한민국현대사를 만든 힘이 욕망이었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의 기적을 만든 힘은 국민이 개별적 집단적으로 분출한 욕망이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사람의 행동이며, 행동을 일으키는 욕망이다. 만약 모든 욕망을 다 채워서 어떤 결핍도 느끼지 않는다면 더는 행동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을 일어나지 않는다. 사람은 새로운 욕망을 끝없이 만들어내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어서, 인간의 욕망을 다섯 범주로 구분한 매슬로의 이론을 소개한다만약 충족하고자 하는 욕망에 일정한 순서가 있다면 사람의 행동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매슬로는 욕망에 위계(位階, hierarchy)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 가설은 개인의 행동 뿐만 아니라 역사를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은 결국 사람의 개별적·집단적 행동이기 때문이다.” 생리적 욕망, 안전에 대한 욕망, 소속감과 사랑에 대한 욕망, 자기 존중의 욕망, 자아실현의 욕망 구분이 역사 이해를 돕는다는 말이다.

 

이제 매슬로의 이론으로 한국현대사를 설명한다. “‘쌀독에서 인심 난다거나 의식이 족해야 예절을 안다는 옛말을 틀리지 않았다. 고대 그리스와 중국에서 훌륭한 삶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남긴 사람은 직접 생산활동에 종사하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는 귀족과 지식인 계급이었다. 사회적 평등과 인간의 존엄성, 천부적 인권, 자유, 평등, 연대와 같은 관념은 산업혁명으로 일찍이 없었던 부를 축적한 서유럽에서 먼저 나타났다. 민주주의는 경제가 발전해 중산층이 두텁게 형성된 곳일수록 성공적으로 자리 잡았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나라일수록 삶의 의미를 찾고 자아를 실현하는 데 도움이 되는 철학서가 많이 출간되고 읽힌다. (중략) 1959년 국민의 가장 강력한 욕망은 먹고사는 생존의 문제, 북한의 위협과 사회 내부의 혼란에서 자신과 가족의 안전을 지키는 문제였다. 사람들은 이 욕망을 충족할 수 있게 해주기만 한다면 어떤 사람이나 집단에게도 복종할 뜻이 있었다.”

 

유시민은 보기 좋은 모양의 글을 만들려고 이론을 아무렇게나 갖다 쓰는 저자가 아니다옳고 그름을 따지는 합리성과 비판적 사유를 통해 이론의 접목 가능성과 한계를 고민한다. 매슬로의 이론을 적용할 때의 주의사항을 언급한 아래 대목을 보자.

 

 욕망의 위계 가설은 개인의 심리와 행위동기를 설명하는 이론적 도구여서 사회와 국가에 그대로 적용되기는 어렵다. 매슬로도 이것이 경직된 위계는 아니라는 것을 인정했다.(중략) 먹고 마시고 좋은 곳에서 잠을 자려는 욕망을 다 충족한 후에야 더 차원 높은 욕망이 행동의 동기가 될 수 있다면 사람은 죽을 때까지 생리적 욕망과 충동의 지배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의 인간은 그렇지 않다. 흙먼지 날리는 거리에서 김밥을 팔아 모은 재산을 대학에 기부하는 할머니는 생리적 욕구나 안전에 대한 욕구를 다 충족했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 아니다. 근로기준법 준수를 요구하면서 자기 몸에 불을 붙였던 청년 노동자 전태일도 그렇다. 그들을 사로잡았던 욕망은 사회적 존경, 자기 존중, 존엄, 정의, 자유 같은 것이었다. 인간의 여러 욕망 사이에 엄격한 위계는 없다. 사람에 따라, 시대에 따라, 환경에 따라 달라지는 상대적 우선순위가 있을 뿐이다. 이렇게 느슨하게 해석하면 욕망의 위계 가설은 역사를 이해하고 해석하는데 무척 유익하다."

 

좌우를 통합하는 양극적 사유와 옳고 그름의 합리성을 따지는 비판적 사유는 『나의 한국현대사』에서 십분 발휘된 유시민 사유의 특징이다. 책의 내용은 제목대로 한국 현대사다. (현대사라고는 하지만 유시민 선생의 생몰연도에 한하여 서술되어 해방 이후의 정국과 대한민국 건국의 과정 그리고 한국전쟁은 제외되었다.) 두 개의 한국현대사를 비교적 중립의 입장에서 서술한 책이다. 진보사관의 대표주자인 서중석, 한홍구 대 뉴라이트 사관의 책들 사이 합리적 지점에 위치하려고 애쓴 것처럼 보였다.

 

나는 민족문제연구소가 내놓은 연구 결과와 사관이 백번 옳다고 믿지만(유시민 선생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서술 방식만큼은 유시민 선생이 더욱 지혜롭고 세련된 방식이라 생각한다. 덜 감정적인 태도를 취했고, 양극적 사유에 더 능통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쉬운 문체인데다가 필력이 좋아 지식인들과 대중 모두에게 편안하게 다가서리라. 한국은 지금 국정 교과서 등 역사 문제로 진통하고 있다. 깨어있는 국민의 관심과 참여가 필요한 시대다. 내게 발언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의 한국현대사』와 박태균 교수 그리고 민족문제연구소를 소개하고 싶다.

 

Posted by 보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