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과 깨달음의 이야기 보따리

- 레이첼 나오미 레멘의 『할아버지의 기도』


나는 자주 글을 씁니다. 메모도 많이 하는 편이고, 어딘가를 여행할 때 사진도 적잖이 찍어대는 사람입니다. 고등학교 때에는 시집을 내겠다고 너스레를 떨었고(실제로 80여편의 시를 쓰기도 했지요), 대학생부터는 언젠가 책을 내겠다는 목표로 꾸준히 글을 썼습니다. 자료를 수집하고 보관하는 일도 즐겼습니다. 10년 동안 와우스토리랩의 리더로서 수업을 진행한 기록들, 수백 번의 강연을 하며 작성한 PPT 자료들, 책을 내기 위해 꾸준히 써 왔던 9편의 원고도 노트북의 폴더로 가지런하게 정돈해 두었지요. 그러다가 불행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2011년 1월 19일, 노트북 하드디스크에 문제가 생겨 저장된 데이터를 모두 날려버린 겁니다. 복구를 제일 잘 한다는 회사에서 두달 동안 갖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허사였습니다. 많이 울었고 힘겨웠습니다. 3월 17일에 살릴 수 없다는 최종 통보를 받고서 느낀 허탈감은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입니다. 자료를 백업해 두지 않은 걸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릅니다. 항상 백업을 해 오다가 사고가 발생하기 6개월 전에 백업 자료를 모두 지웠거든요. PC를 사용해 온 15년 동안 외장하드가 아닌 하드디스크가 말썽을 일으킨 적은 한 번도 없었기에 백업하는 시간이 아까웠던 겁니다.


가장 소중한 것을 통째로 잃어버린 느낌이었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싶진 않지만, 가장 힘겨웠던 실연의 경험과 맞먹을 정도로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보다 더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강연 의뢰가 들어올 때마다, 글을 쓰려고 할 때마다 모든 자료를 다시 만들어야 한다는 사실에 억울해했습니다. 그 때 나에게 많은 위로를 건네 준 한 권의 책이 있습니다. 나는 매일 아침마다 <할아버지의 기도>를 읽었습니다. 책의 메시지는 내 영혼에 위로와 (순간적이긴 하지만) 평안을 주었고, 마음을 만져 주었습니다. 새로운 비전을 얻기도 했지요. 나를 가장 깊이 위로해 준 이야기는 ‘차이 만들기’라는 제목의 글입니다. 일부를 줄여서 전해 볼께요.

 

한 노인이 바닷가를 걷다가 파도에 쓸려 온 수백 마리의 불가사리를 보았다. 그는 뜨거운 태양볕 아래에서 말라죽어가고 있는 불가사리를 한 마리씩 집어 바다로 던지기 시작했다. 노인을 어이없이 바라보던 한 젊은이가 다가와 말했다. “할아버지, 시간 낭비하지 마세요. 이 많은 불가사리를 언제 다 바다에 넣어주려고요. 세상에는 이런 바다가 몇 천 개도 넘고, 내일이면 수많은 불가사리가 다시 파도에 밀려 올 거예요. 단지 몇 마리를 바다로 돌려보낸다고 해서 무슨 차이가 있겠어요?” 젊은이는 떠나가고 노인은 집어올린 불가사리를 잠시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다시 그것을 바다로 던지며 중얼거렸다. ‘적어도 이 한 마리에게는 차이가 있지.’


나는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당시의 나는, 잃어버린 파일들을 되살리는 일을 진행하고 있었지요. 누군가와 공유한 파일을 되돌려 받고, 혹시라도 외부장치에 저장해 둔 것이 없나 확인하고, 보낸 메일에 첨부한 파일을 하나하나 체크하는 일이었습니다. 성과는 지지부진했죠. 이렇게 시간을 들여도 잃어버린 것의 1%도 복구할 수 없다는 생각, 수많은 파일을 잃어버렸는데 이게 무슨 소용인가 하는 생각에 괴로워하고 있었지요. 매일매일 기록했던 시간사용내역이나 일기, 여행 중 녹음한 기록 등은 되살릴 수 없는 자료들이 너무도 많다는 사실에 나의 노력은 정말 무의미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런 내게 노인의 말은 위로가 되었습니다. 적어도 그렇게 노력한다는 것 자체가 내게는 의미가 있었지요. 머리를 쥐어뜯으며 괴로워하는 것보다는 상실을 이겨내는 데에 도움 되었기 때문입니다. 잃어버린 것들이 떠오르면 되찾은 것들이 너무나도 하찮게 보여 허탈해지곤 했지만, 새롭게 찾아낸 하나하나의 파일도 소중했습니다. 책을 읽으며, 더 이상 내게 있지 않은 것들보다 내게 남겨진 것들에게 시선을 주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잃은 것도 많지만, 남겨진 것들도 많았습니다. 나의 경험들, 소중한 사람들 그리고 무엇보다 삶 그 자체.

 

좋은 이야기는 우리에게 위로와 평안, 꿈과 에너지를 줍니다. <할아버지의 기도>는 좋은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사랑을 회복하고 사람들을 따뜻하게 품는 일, 상실과 화해하고 강인한 영혼으로 성장하고 일,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 쉼을 누리고 평안을 얻는 일, 삶의 신비를 이해하는 일, 가슴이 따뜻한 전문가가 되는 일. 우리가 이런 일들을 잘 해내도록 돕는 이야기들입니다. 저자인 레이첼 나오미 레멘은 25년 동안 중병을 앓는 사람들을 만나 온 탁월한 상담가입니다. 그녀의 삶이 하나의 좋은 이야기이고, 그녀의 상담 현장도 감동적인 이야기보따리입니다. 그녀는 영혼을 만져주는 의사입니다. 달콤한 이야기로 우리의 고통을 잠시 잊게 해 주는 사기꾼이 아님은 다음의 구절에서 알 수 있지요.


“삶을 살아가면서 우리가 큰 상실의 고통을 체험했을 때 그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상실의 고통 안에 큰 의미가 깃들어 있으며 그것이 은총에 의해 놀라운 방향으로 승화될 수 있다는 것 역시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아스피린이 통증을 완화시키듯이 영적인 성장이 상실의 고통을 없애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기 그지없다. 영적으로 깨달음을 얻었다고 해서 우리의 삶 자체가 변화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 의미가 달라지는 것이다. 그 의미를 깨닫게 될 때 고통이 조금 줄어들 수 있다. 그러나 상실 그 자체는 영원히 지속된다.”

 

상실은 아름다운 체험이라고 말하는 사람들, 아픔을 공감하기도 전에 조언이나 하려는 사람들, 모든 경험에는 배울 것이 있다는 이유로 위로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나는 그들의 입을 틀어막고 싶습니다. 상실은 아름답지 않지요. 상실을 딛고 강인한 영혼으로 성장한 사람들의 노력과 삶의 결실이 아름다운 것이지, 그들이 지나온 과정은 결코 아름답지 않습니다.


레이첼은 상실의 과정이 슬프고 비참하다고, 그 과정을 지나는 것은 힘겨운 일이라고 말합니다. 깊은 위로를 받으면 내면에서 기운이 소생하는 걸까요? 책을 읽으며 나는 다시 일어설 기운을 얻기 시작했습니다. 그녀의 지혜를 빌어, 현실과 비전을 모두 인식한 덕분입니다. 그녀는 바닥에 쓰러진 이들의 심정을 위로하는 동시에 다시 하늘을 날 수 있는 힘을 줍니다. 언젠가 삶이 힘겨울 때면, 나는 다시 그녀의 책을 읽을 겁니다.


- 온 마음을 다해... 고마워요, 레이첼. (2012. 2. 21)


Posted by 보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