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여기 정말 좋아. 행복해." 막걸리잔을 부딪치며 친구에게 건넨 말이다. 나는 정말 행복했다. 여기에 들어오자마자 내가 사랑하는 노래들이 연이어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2016년 4월의 어느 날 밤, 김광석의 <먼지가 되어>, 이문세의 <사랑이 지나가네>, 이승환의 <기다린 날도 지워진 날도>, 김광석의 <나의 노래>를 연달아 들으며 내 마음은 행복감으로, 실내는 옛 노래들로 가득 찼다. 홍대입구역 8번 출구 근처의 <민들레 홀씨되어>라는 주점 얘기다. 김광석, 이문세, 변진섭의 노래는 나를 추억과 행복의 세상으로 초대한다.


2박 3일 워크숍을 진행할 때의 일이다. 청중들과 친해질 무렵, 몇몇 분들이 짖궂은 요청을 해 왔다. 마이크 에코가 노래방처럼 조절되면서 노래 신청을 하신 것. "문제가 있어요. 제가 신곡을 몰라요. 제가 부를 수 있는 신곡은 이덕진의 <내가 아는 한 가지>예요. 아마 1992~3년도에 나온 곡인 것 같네요." 청중들이 웃었다. 재치있게 내 말을 받은 분도 계셨다. "그 정도면 신곡이죠." 다함께 웃었던 순간이다. 내가 노래를 불렀던가? 불과 두 달도 채 못된 일인데,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창피한 순간은 아니었나 보다.


여자친구 팬과 이덕진 팬의 나이차가 가늠되는 사진


주점 '민들레 홀씨되어'에서 추억의 노래들로 행복했던 게 벌써 3개월 전의 일이다. 노래 신청을 받았던 일도 50일 정도 지났다. 나는 단골 카페에 앉아 있다. 이 모든 이야기를 끄집어 낸 것은 한 곡의 노래 때문이다. 한 노래가 가사 없이 멜로디만 흘러나왔다. 나는 이 노래를 안다. 여자친구의 <오늘부터 우리는>이다. 걸그룹의 노래를 따로 들은 적은 거의 없다. 어쩌면 <Tell me> 이후로 한 번도 없을 지도 모르겠다. 나는 <오늘부터 우리는>을 즐겁게 들었다. 신바람을 느꼈다. 한 곡의 노래가 아니었다. 나를 반긴 카페의 안주인 같았다.


<오늘부터 우리는>을 알게 된 경위는 이렇다. 10기 와우들과 졸업 여행을 떠났다. 첫날밤, 우리는 미니콘서트를 가졌다. 와우 한 분이 12살된 딸 채원이를 데리고 왔다. 채원이와 우리는 이미 여러 번 함께 여행한 사이다. 채원이는 자신이 특히 좋아하는 와우 언니와 함께 MT를 기념하는 댄스를 선보였다. 그때 반주가 되었던 곡이 걸그룹 '여자친구'의 이 곡이다. 춤은 너무나 깜찍하고 귀여웠고 음악은 즐거웠다. 아니 그 순간 자체가 작은 축제였고, 진한 기쁨이었다. 우연한 기회로 즐겁게 걸그룹의 노래 한 곡을 알게 된 것.



오늘은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법 하나를 발견한 날이다. 나만의 행복 레시피 하나를 추가한 셈이다. 나는 음악을 좋아한다. 강한 사운드가 난무(!)하는, 이를 테면 하드락 계열을 제외하고 부드러운 음악들을 사랑한다. 대중가요로는 발라드 그리고 재즈와 대중적인 클래식을 좋아한다. 때때로 뉴에이지 풍의 음악도 듣는다. 내가 좋아하는 인디 음악을 발견하는 날엔 당분간 그 음악에 취한다. 올해 봄에는 '피그말리온'을 가장 많이 들었고, 요즘엔 '모리'의 곡을 자주 듣는다. 작년에는 '심규선'이었다.


음악은 내 일상 가까이에 있다. 눈을 뜨자마자 음악부터 선곡한다. 음악은 나를 단숨에 행복의 세계로 초대한다. 분위기 좋은 곳에서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 일은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가장 단순한 방법 중 하나다. 언젠가부터 눈에 띄기 시작한 취향 하나가 있다. (아마도 서른이 넘어서는 무렵인 것으로 보인다.) 나는 조금씩 신곡과 멀어졌다. 점점 더 옛 노래를 좋아하게 되었다. 가끔씩 채널을 돌리다가 아이돌 그룹을 만나면, 먼 나라 얘기 같다. 그런데 오늘, 걸그룹의 신곡으로도 즐거울 수 있음을 체험하면서 느낀 점이 있다.


"(어떤 음악은 감상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옛 노래를 좋아하되 향수에 매몰되진 말 것! (나에게 음악은 행복이다. 좀 더 자주 나를 행복하게 만들려면) 신곡 중 좋아하는 곡을 발견할 것! (지금까지 나를 행복하게 만든 역대급 곡들을 뽑아) 애청곡 플레이 리스트를 만들어 에너지가 필요할 때 감상할 것!" 그러고 보니, 얼마 전 KTX에서 상반기 최고 인기 아이들로 '여자친구'가 꼽혔다는 기사를 읽었다. 내가 아는 바로 그 아이돌이었다. 단 하나의 곡을 아는데 그 곡을 부른 팀이 최고 인기를 누리는 걸그룹이었다. 우연이지만, 때로는 우연도 행복을 창조한다.


여기 또 하나의 우연! 지금 막 브루스 마노의 <Just the way you are>가 흘러나왔다. 사랑을 꿈꾸게 만드는 노래가 내 마음을 어루만진다. 얼른 글을 맺는다. 우연이 행복을 창조한 지금 이 순간을 향유하기 위해. 


(덧 : 이 글을 쓴 지 두 시간 후, 핸드폰으로 기사 하나가 전해졌다. 여자친구의 신곡 <나침반>에 대한 표절의혹이 제기(클릭)됐다는 것! 내가 아는 유일한 신인 걸그룹을 콕 집은 이 기사가 의혹에 그쳤으면 좋겠다. 좋아하는 음악과의 만남은 행복인 동시에 그 가수의 삶에 간접적인 관심을 갖게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를 몰랐으면 갖지 않았을 크고 작은 걱정이 생기기도 한다는 의미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Posted by 보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