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 달쯤 지났으려나. 초등학교 친구로부터 불쑥 연락이 왔다. 상욱이 기일을 물었다. "7월 6일이야. 음력으로는 6월 10일이고." 친구가 전한 말은 이랬다. 어려울 때 상욱에게 많이 의지했다고, 상욱이 가족이라도 한 번 들여다봐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된다고, 아직도 그 사실이 안 믿긴다고... 그러면서 덧붙였다. "상욱이 생각할 때마다 너도 생각한다." 의외의 얘기에 "나까지?"라고 반문했다. "응, 상욱이가 너는 마누라 같다고 했었지." 불쑥 그리움이 몰려왔다. "그 얘길 너한테도 했구나." 마누라 얘길 여기저기에다 많이도 했음을, 녀석이 세상을 떠나고 난 후에 더 잘 알게 되었다.


2.

문득 섬세한 그녀가 떠올랐다. 어쩌면 그 섬세함으로 인해 폭풍처럼 힘든 젊음을 보냈을지도 모를 그녀는 잘 살고 있을까? 여전히 젊은 나이지만, 더 이상 20대는 아니기에 종종 자신의 젊은 날들을 그리워하며 살 테지. 일상의 순간에 파묻혀 지내다가도 불쑥 치고 들어오는 회상에 개키던 빨래를 잠시 손에서 내려놓겠지, 세상에는 기쁨과 함께 슬픔이 존재하고 밟음과 함께 어두움이 실재함을 선명히 인식하며 깊어져가고 있겠지. 때로는 섬세한 감수성이 빚어낸 정확하고 세심한 문장들로 스스로를 자위하며 살겠지.


4.

이제 곧 추석이고, 일주일 후면 상욱이 생일이다. 나는 또 상욱이가 잠들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길 것이다. 할머니를 모시고 엄마에게도 다녀올 테고. 납골당과 묘소에 다녀오고 나면, 삶과 죽음이 얼마나 다른지 느낀다. 망자는 말이 없다. 아니 슬픔, 기쁨, 고통, 걱정, 희망이 망자에게는 없다. 산 사람에게는 이 모든 것이 뒤섞여 있다. 우리네 삶 속에는 웃음, 분노, 기쁨, 외로움, 편안함, 희망, 염려, 후회, 눈물, 절망이 뒤섞여 있다. 삶과 죽음은 빛과 어두움처럼 다르다. 또한 삶과 죽음은 또 얼마나 가까운가. 밤에 켜진 불을 끄면 순식간에 어둠이 찾아오듯, 누군가의 삶이라는 빛은 얼마나 갑작스럽게 꺼져 버리고 마는가. 


5.

'죽음'이라는 순환 방문객은 얼마 전 '폴'을 찾아갔다. 스탠퍼드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고 예일 의과대학원에 진학에 의사를 꿈꾸던 청년이었다. 미국 신경외과 학회에서 수여하는 최우수 연구상을 받을 만큼 미래가 유망했다. 죽음 앞에서는 삶의 모든 것들이 무력하다. 죽음 앞에서 모두 멈춰서 버리고 만다. 폴의 지성도, 의학 지식도, 삶에 대한 지혜도, 죽음에 대한 사유도 모두 멈췄다. 2015년 3월, 1977년생 청년은 세상을 떠났다.


폴은 떠났지만 그의 이야기는 남았다. 『숨결이 바람될 때』라는 제목의 책이다. 책을 읽지 않아도 안다. 언젠가 나도 "이제 내 차례군요"라고 말할 때가 오리라는 사실과 죽음에 대한 사유가 곧 삶의 지혜가 됨을! 그럼에도 이 책을 이유는 충분하다. 나는 여전히 어리석으니까. '오늘'이라는 시간을 살뜰히 쓰지 못하는 이들은 하루동안 어리석음과 벗한 것이리라. 사람은 누구나 오늘을 산다. 오늘을 생생하게 살아야 비로소 삶이다.



Posted by 보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