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디에도 삶의 의미가 없었다. 부모님의 사랑은 기억조차 희미하고, 가장 편하고 친했던 친구는 그리움이 됐다. 부모님은 내가 막 사춘기에 접어들었을 무렵 세상을 떠나셨고, 37살의 친구는 췌장암에 자신의 삶을 내어주고 말았다. 존경하던 스승은 폐암으로 예순이 되기 전의 나이에 세상을 떠나셨다. 사랑과 우정 그리고 배움이 나를 외면한 느낌이 드는 내 삶의 실존들이다.
고통은 그치지 않았다. 

작가를 꿈꾸는 내게 글쓰기는 일상이다. 메모와 기록은 습관이다. ‘노트북 데이터 유실’은 엄청난 불운일 수밖에 없는데, 바로 그 일이 내게 벌어졌다. 어제까지 쓰던 자기경영 일지와 십년 동안 기록해 왔던 와우스토리랩 수업 노트가 없어졌다. 스무 살 이후 매일같이 써 왔던, 언젠가 책으로 내고 싶었던 글들도 나를 떠났다. 강연을 위한 PPT 자료도 사라졌다. 친구를 잃은 충격에서 조금씩 헤어나오기 시작한 2014년 9월 22일에 벌어진 일이다.
 
2.
나는 힘들고 슬펐다. 수년의 시간이 지나면서 슬픔은 희미해졌지만, 고통스러운 감정 하나가 늘 나를 따라다녔다. 사실 그것이 감정인지 논리인지조차 모르겠다. 어떠한 상태였다고 말해 두자. 그것은 공허감이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는 나의 관심이 아니었다. ‘왜 살아야 할까?’라는 질문이 나를 괴롭혔고, 시간이 지나도 떠나가지 않았다. 오히려 점점 더 또렷해졌다.

질문이 나를 괴롭히는 동안에도 삶은 지속되었다. 사람들과 만나 별 문제 없는 것처럼 대화도 나눴다. 그렇게 살아가고 멀쩡하게 귀가한다는 사실이 종종 생경하고 놀라웠다. 공허감이 극심했을 때는 집을 나서며 ‘오늘 밤 내가 다시 이 문을 열고 들어오게 될까’ 하는 물음이 들었다. 무섭고 슬펐다. 조금 덜한 때에는 상실의 문제가 나를 괴롭혔다. 

살다보면 누구나 상실을 만난다. 나는 그 상실을 조금 일찍 경험했을 뿐이라고 달래곤 했지만, 그러한 달램이 늘 성공적인 것은 아니었다. 어떤 사람을 만나면 십중팔구 그의 부모님이 존재하거나 등장했다. 그것이 드라마든 다큐멘터리든 TV 속 인물은 부모와 통화를 하거나 함께 식사를 하거나 대화를 나눈다. 부모는 어디에나 있었다. 나의 삶을 제외하고! 

슬픔은 나를 관통하여 지나갔지만, 공허감은 어디론가 흘러가지 않고 내 안에 머물렀다. 살아야 할 이유도 모르겠고 존재의 의미를 잃은 느낌이었다. 공허감과 무의미가 함께 나를 괴롭혔다. 이는 어느 특정한 날의 모습이 아니다. 매일의 일상이었다. 날마다 눈물을 흘렸고 밤마다 불면으로 힘들었다. 혼자일 때에는 괴로움이 더욱 짙어졌다. 

3.
실존주의자들은 목적과 의미 없이 세상에 내팽개쳐진 인간 실존의 무상함을 직시했다. 어느 날, 눈을 떠 삶의 의미를 알지 못하는 육체 덩어리가 누워 있음을 발견하는 감정을 사르트르는 '구토'로 표현했다. 그는 인간 실존의 공허를 『구토』라는 소설로 승화했지만 나는 평범하고 연약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었다. 예술로의 승화는커녕 하루하루를 견디며 살아갈 뿐이었다. '왜 사는가'라는 질문은 제쳐두고, 그저 살아보자고 생각했다. 

삶의 목적과 의미를 묻는 질문은 언젠가 내면의 힘이 채워지면 소환하리라 다짐하며 밀쳐 두었다. 당시엔 밀쳐두기가 나름의 노력이었다. 이러한 선택은 얼마간 도움이 되었다. 삶의 의미가 없다는 이유로 공허와 의미 상실감에 함몰되지는 않았던 것이다. 나는 일상을 그럭저럭 살아냈다. 겉으로 보기엔 그랬다. 최소한의 돈도 벌었고(때때로 궁색하긴 했다), 띄엄띄엄 글도 썼다(올해는 ‘리버럴 아츠’를 집필했다), 새로운 와우도 맞이했다(와우 10기와 함께 스토리 과정을 마쳤다). 

사랑하는 가족과 하나뿐인 친구가 세상을 떠나고 연인과도 헤어진 상황에서 나는 어떻게 견뎌냈을까? 지금 생각해도 아찔했던 날들이다. 기꺼이 나의 고뇌를 들어준 우정들이 존재했기에 가능했다. 가족과 고통을 나눌 수 있다면 덜 외로울 것이다. 그런 와중에도 한 가지 문제만은 여전히 나를 맴돌았다. 그 문제에 대해서는 여전히 고독했다. 삶의 의미와 자살 문제였다.

4.
자살은 심각하기는 해도 당시의 내겐 우울한 주제는 아니었다. '왜 살아야 할까? 죽어도 되나?' 이것은 피할 수 있는 물음이 아니었다. 절박한 문제였다. 당장 일주일 동안 생업을 접어 두고 고민해야 할 만큼 중요한 사안이었다. 이처럼 중요한데도 긴급한 일에 떠밀려 ‘삶의 의미와 자살’을 더 진지하게 파고들지 못한 채로 2년을 보낸 것이 나의 치명적인 실수요, 삶의 아이러니였다.

나의 불찰이지만, 죽음을 부정적인 사안으로만 받아들이는 사회 분위기도 한몫 거들었다. 나는 삶의 의미, 특히 자살 문제를 불안이나 거부감 없이 편안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를 찾지 못했다. 이것 또한 고독의 원인이었다. 카뮈가 나의 위로자였다. 카뮈는 삶의 의미 문제를 덮어두고 살 수 없는 존재였다. 그는 대표작 『시지프 신화』를 이렇게 시작했다.

“참으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뿐이다. 그것은 바로 자살이다. 인생이 살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를 판단하는 것이야말로 철학의 근본 문제에 답하는 것이다.” 이것은 카뮈의 나약함이 아니라, 그의 섬세하고 숭고한 정신을 보여준다. 진솔하고 치열하게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삶의 의미와 자살을 사유의 대상으로 삼기 때문이다. 삶의 의미에 무감각한 존재일수록 의미 상실의 고통을 덜 느낀다.

삶의 목적성이 낮은 학생들이 삶의 목적성이 높은 학생들보다 약물에 연루될 가능성이 두 배가 높다(베티 루 파델포드, 1973). 그들이 약물에 현혹되는 이유는 다름 아닌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욕구” 때문이었다. 약물 사용자들이 비사용자들보다 삶의 의미에 더 큰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의미 상실을 세심하게 포착하고 더 고통을 겪었다. 고통에 대응하는 방식은 두 가지였다. 상실감에 굴복하여 약물에 의존하거나 또는 예술로 승화하든지 삶을 예술처럼 살거나.

5.

카뮈는 삶의 의미를 알지 못하는 상태를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를 알려 주었다. 자살은 아니다. ‘안 된다’가 아니라 ‘아니다’가 중요하다. ‘안 된다’는 도덕에 묻힌 무(無사)유에서 나오는 말이다. ‘아니다’는 나의 사유가 이끌어낸 결론이다. 카뮈도 스스로 사유했다. “나는 부조리에서 세 가지 귀결을 이끌어 낸다. 그것은 바로 나의 반항, 나의 자유 그리고 나의 열정이다. 오직 의식의 활동을 통해 나는 죽음으로의 초대였던 것을 삶의 법칙으로 바꾸어 놓는다. 그래서 나는 자살을 거부한다.”


카뮈에게 자살은 비겁이었고 삶이 밝다는 긍정은 나약했다. 그는 삶의 무의미에 적극적으로 저항했다. 삶의 부조리에 ‘반항하는 인간’이 되고자 했다. 삶의 실존을 직시하면서도 긍정성을 추구했다. “우리는 시지프스가 행복했다고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반항하는 인간은 자신의 지난한 운명조차 행복하게 수행한다. 오늘 굴려 올린 돌을 내일 다시 밀어 올려야 하는 굴레 속에서도 하루치 성취에 기뻐하고 즐겁게 수행하는 영혼이다. “시지프스는 자신의 운명보다 우월하다. 그는 그의 바위보다 강하다.” 카뮈를 읽으면, 시지프스와 같은 운명애를 품고 자유와 열정으로 살아할 힘을 얻는다. 


카뮈가 삶의 의미까지 해결해 준 것은 아니다. 의미는 스스로 찾아야 할 문제다. 몇 달 전부터 나는 열정을 회복하고 싶었다. 내 인생의 르네상스였던 1998년~2002년, 2007~2012년을 다시 불러들여 다시 한 번 삶의 절정을 맛보고 싶었다. 갈망하기는 했지만, 방법을 몰랐다. 문득 이십 대 초반의 나를 구원했던 책들을 읽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십 수 년 전의 나를 만나 그때의 열정을 (회상의 세계에서) 목격하면 좋지 않을까? 그때 읽었던 책들 중 일부의 텍스트는 다시 나를 추동하지 않을까?



6.

한가위 명절에 고향으로 떠나면서 책을 챙겼다. 20대 10년 동안 내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책은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이다. 가장 먼저 챙긴 책이다. 존 맥스웰의 『생각의 법칙』은 나의 패러다임이 지혜로운지 점검할 책으로 포함됐다. 빅터 프랭클의 『의미를 향한 소리 없는 절규』는 직관이 선택한 책이다. 표지에는 “오늘날 가장 중요한 것은 삶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에 대응하는 것이다.” 나도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싶었다. 가볍게 읽을 책 한 권을 더했다. 스물다섯 살의 내가 밑줄을 긋고 메모하면서 읽었던 책이다.


명절에만 읽을 책이 아니었다. 명절에 조금씩 훑어보고 도움이 되는 책이라면 당분간 숙독할 책들이었다. 마지막에 얹은 책은 제외했다. 두 개의 장을 읽은 결과, 이미 익숙한 내용인데다가 나를 고무시키지도 못했다. 『7가지 습관』은 달랐다. 서너 페이지만 읽어도 동기가 부여되고, 한 개 챕터를 읽고 나니 나의 문제점들이 보이기도 했다. 너무나도 잘 이해하고 있던 문제에 걸려들기도 한다. 나는 “전혀 효과적이지 못한 채로 바쁘게만 살았다.” “침몰하는 배 위에서 갑판 의자를 정돈”했던 날들이었다. 


7.
『7가지 습관』은 빅터 프랭클의 말을 소개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자기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다른 이에게 물어서는 안 된다. 이 질문을 받을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우리는 자기 인생이 던지는 질문을 받는 존재다. 인생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만이 그 대답이다.” 나는 내 인생에 책임을 져야 했다. 책임을 외면한 적은 없다고 생각했지만, 심오한 질문에는 보다 능동적으로 달려들어 대답을 고심해야 함을 직감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책임감이 큰 아이였다. 나의 강점을 더욱 발휘할 시기가 왔다.

『소리 없는 절규』의 한 챕터를 읽었다. 카뮈의 말이 나왔다. “정말 심각한 문제는 어떤 삶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판단이 아니라, 삶의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이 구절을 읽으면서 카뮈, 빅터 프랭클, 스티븐 코비가 나를 도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의미 상실의 문제는 나만의 고민은 아니었다. 현대 사회를 모든 욕구를 충족시키고 있지만, 의미에 대한 욕구는 예외라고, 프랭클은 말한다. 그리고 전통적 가치의 준수를 강요받지 않는 젊은이들이 장년층보다 실존적 공허로 인한 고통을 더 많이 받는다는 연구 결과를 보여준다.

“30대 이전 세대가 센터를 찾아오는 이유를 특징지어 보면, 목적 상실감(purposelessness)이다.” - 캐롤 마샬


8.
때로는 이해가 위로를 준다. “전통의 붕괴는 실존적 공허를 설명하는 중요한 요소”다. 나의 공허감은 지금껏 써왔던 글과 수업 기록 그리고 자기경영을 위해 일상을 메모하고 읽은 책들을 정리한 데이터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사건과 무관하지 않다고 막연히 느껴왔던 터라, 전통의 붕괴가 공허감과 연결된다는 말이 나를 위무했다. 친구와의 사별은 친구와 유가족에게는 청천벽력이었고, 내게도 극도의 고통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함께했던 내 개인사의 상실이기도 했다. 또한 앞으로도 이어가야 했을 가치 있는 전통(개인기록과 원고들)이 붕괴됨으로 나는 갈 길을 잃었다. 아직 해결 방법을 모르지만, 유효한 진단 하나를 얻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가벼워졌다.

프랭클은 1장의 마지막 대목에서 더 큰 위로와 용기를 안겨 주었다. “프로이트는 보나파르트 공주에게 보낸 서신에서 ‘누군가 삶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요구하고 있다면, 그는 아픈 사람'이라고 썼다. 그의 말은 옳다. 그러나 이것이 정신적 질환을 드러냈다고 보기는 힘들다. 누군가 삶의 의미를 걱정하는 것은 자신의 인간성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삶의 의미 추구는 진정한 인간 존재가 되는 데에 필수적이다. 이것은 인간 존재의 독특한 특징이다. 다른 동물들은 생존의 의미에 개의치 않지만, 인간은 다르다.”

9.
십대 중반에 부모님을 여읜 후 나는 수년 동안 정신적 혼란을 느꼈던 것 같다. 나는 연약한 아이는 아니었던 것 같다. 내면의 혼란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는 아이였다. (드러내지 않음이야말로 연약함의 표지인지도 모르겠다.) 지혜를 찾으려고도 노력했다. 스무살 무렵, 나는 외부 활동으로는 내면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나의 혼란이 이기적인 행동으로 나타나지 않도록 노력하는 동시에 스스로 혼란과 방황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도 감행했다. 인생의 방향성을 찾기 위해 대학을 휴학하고서 사명과 목표 찾기에 애썼던 날들이 대표적이다.

제2의 부모님(외삼촌과 외숙모님)과 공동체 생활은 애정결핍으로부터 나를 구원해 주었다. 하나의 문제가 남았다. 의미와 방향 찾기는 외부로부터 기대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20대 초반의 나는 그 문제를 운 좋게 헤쳐 나갔다. 독서의 도움이 가장 컸다. 인생은 유도나 권투 경기가 아니다. 의미 찾기는 단 한방의 펀치로 해결되지 않는다. 그보다는 인생은 육상 경기에 가깝다. 인생은 100m 경기이자 마라톤이다. 때로는 전력을 다해야 하고, 때로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목적지를 향해 지난하게 달려가야 한다. 때로는 폭발적인 힘을 발휘해야 하고, 때로는 은근한 끈기와 지구력을 발휘해야 한다. 

나는 인생이라는 경주를 현명하고 강인하게 달려가는 선수가 되고 싶다. 이 글은 “어디에도 삶의 의미가 없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했다. 지금도 내 인생의 의미는 잘 모르겠지만, 스티븐 코비와 함께 사명선언문을 작성하면, 얼마간의 의미와 방향성을 찾을 것 같다는 희망도 생겼다. 빅터 프랭클의 로고테파리(의미요법)을 통해 ‘의미를 향한 의지’를 회복할 것도 같다. 아직 읽지 못한 책에 대한 기대도 있다. 삶을 바라보는 패러다임을 점검하는 일에 존 맥스웰의 도움도 있기를 바란다. 물론 이 모든 책들이 구원의 빛을 제시하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15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꽤나 다를 테니까. 

10.
2016년 내 삶의 의미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삶의 의미 찾기” 그 자체다. 의미가 생기니 기쁘다. 살아야 할 이유가 없어도 좋다. 내겐 오늘 하루의 의미, 이번 한 해의 의미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다. 그 정도면 살아갈 노력을 기울일 이유가 되니까.   



Posted by 보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