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산행 

-정희성

 

눈이 내린다 기차 타고 

태백에 가야겠다 

배낭 둘러메고 나서는데 

등 뒤에서 아내가 구시렁댄다 

지가 열일곱살이야 열아홉살이야 

 

구시렁구시렁 눈이 내리는 

산등성 숨차게 올라가는데 

칠십 고개 넘어선 노인네들이 

여보 젊은이 함께 가지 

앞지르는 나를 불러 세워 

올해 몇이냐고 

쉰일곱이라고 

그중 한 사람이 말하기를 

조오흘 때다 

 

살아 천년 죽어 천년 한다는 

태백산 주목이 평생을 그 모양으로 

허옇게 눈을 뒤집어쓰고 서서 

좋을 때다 좋을 때다 

말을 받는다 

 

당골집 귀때기 새파란 그 계집만 

괜스레 나를 보고 

늙었다 한다


*

약속 시간을 기다리면서 선물로 챙겨 온 시집을 펼쳤다. 몇 편의 시로부터 미소와 깨달음을 건네 받았다. 그 중 한 편이 정희성의 <태백산행>이다. 시는 한 폭의 그림이요, 한 소절의 노래인가 보다. 시집에서 그림 몇 점(길 나서는 사내, 태백산에서의 대화들)이 솟아오르는가 싶더니, 중년 부인이 투덜대는 소리가 귀에 울린다. 태백산을 울린 "좋을 때다"라는 말이 시공간을 뛰어넘어 나의 현재에 침투한 느낌도 들었다.


지금이 좋을 때다. 무언가를 시도하거나 행동하려던 참이었다면, 오늘이 맞춤한 날이다. '아, 잊고 살았구나! 지금이야말로 참 조오흘 때임을' 이라고 탄식해도 괜찮다. 오래 머무르지만 않는다면, 탄식과 후회가 새로운 곳으로 나아갈 폭발적인 에너지가 되기도 하니까. 나는 지금이 좋을 때임을 알고 있었다. 좋은 앎은 새롭지 않아도 자극과 감동을 주는 법이다. 삶에 밀착된 앎, 삶을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앎! 이것이 좋은 앎이 아닐까.


아름다운 예술이 좋은 앎마저 선사하니… 마음이 춤을 춘다.


Posted by 보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