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일요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책을 읽었다. 전날 밤, 침대 맡에 미리 놓아두었던 책이었다. 책 선택은 즉흥적이었다. 계속 읽어오던 책이 아니었고 수개월 전에 몇 편의 에세이를 골라 읽긴 했던 산문집이다. 요즘의 독서테마와 연결되지도 않았고, 계획된 강연과도 연관되지도 않았다. 한 마디로 지금 읽지 않아도 되는 책이었다.


삶의 소소한 습관이 지적 생활에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친다. 최소한 내게는 그렇다. 그것도 막강한 영향이다. 이 책을 읽는 바람에 휴일 아침 시간이 나의 학창시절 회상과 한 작가의 젊은 시절을 정리하는 일로 채워졌다. 눈을 떠서 읽은 글이 헤르만 헤세가 1923년에 쓴 ‘자전적인 글’이라는 제목의 에세이였던 것.


사실 어제 저녁만 해도 이튿날 오전 시간을 이렇게 보내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계획 자체가 없었다. 계획되지 않은 시간은 우리의 약점이나 습관으로 흘러가기 마련이다. 모든 것은 어젯밤 ‘잠들기 전에 뭘 읽지?’ 하는 물음에 낭만적이고 즉흥적인 기분으로 헤세의 산문집을 꼽아들었던 일로부터 빚어졌다.


이것이 중대한 불찰은 아니리라. 특히 남들의 눈에는 읽어야만 하는 책을 읽는 독서가 아니라 여유로운 끌림에 따라 읽는 나의 독서 생활이 부럽게 비쳐질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도 나의 낭만적인 독서 성향을 좋아한다. 다만 그 빈도가 ‘가끔씩’이 아니라 ‘너무 자주’가 되면 삶의 균형이 무너진다는 점을 잊고 싶지도 않다. 푯대를 쫓는 삶이 주는 유익도 크니까.


지나치게 생산적인 삶이 우리에게 독이라면, 지나치게 낭만적인 삶도 마찬가지다. 효율도 낭만은 모두 장단을 가진다. 중요한 것은 장점에서 단점으로 전환되는 지점을 정확하게 아는 일이다. 중용이란 바로 그 건강한 균형 지점에서 머무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도 중용을 최상의 가치로 꼽았다. 『니코마코스 윤리학』에 따르면,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정도의 “정확성을 추구하는 것이 교양 있는 사람이 하는 일”이다. 나는 좋은 문장들은 볼펜으로 밑줄을 긋지만, 이 말에는 형광펜으로 밑줄을 쳐 두었다.


건강한 중용의 지대를 찾고 머무는 일은 분명 이상적인 발상이다. 추구하는 것만으로도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도 있기 마련이다. 대개의 가치가 그렇다. 사랑, 용기, 중용, 정의 모두가 어디 쉽게 손에 잡았던 적이 있던가. 목표는 손에 잡아야 맛이지만, 가치는 추구함으로도 의미가 있다.


추상적인 얘기도 구체성을 덧입히면 손에 잡히고 눈에 들어온다. 저 위대한 가치 ‘중용’을 나의 상황에 적용하면 이렇게 된다. 나도 잠자리에서는 『학습하는 조직』을 읽으며 전문성을 추구하고 싶진 않다. 생각만 해도 삶이 팍팍해지는 느낌이다. 낮과 밤은 다르다. 기분이 다르고 실제로 일상의 모습도 달라진다.


헤르만 헤세


밤에 읽을 책이라면. 학습 조직보다는 헤르만 헤세의 『잠 못 이루는 밤』이 탐난다. 순서대로 읽지 않아도 좋다. 목차를 보고 마음에 드는 장을 펼친다. 제목으로 예상한 내용과 실제의 내용이 다르기도 하겠지만, 이를테면 나는 ‘밤의 얼굴’이나 ‘옛 음악’ 또는 ‘머나먼 푸른 하늘’이라는 제목의 장을 펼칠 것이다. 이때 잔잔한 재즈가 흘러도 좋겠다.


밤이 휴식의 시간이라면, 낮은 일하는 시간이다. 아쉽게도 나는 문학만을 읽으면서 살아가는 직업은 아니어서, 낮에는 일을 해야 한다. 이것은 고달픔이 아니다. 밤의 여유와 자유 그리고 낭만과 사랑을 누리는 이들에게 낮이란, 삶의 균형을 이뤄주는 필수적인 시간이다. 또한 낮의 생산적인 활동들은 밤의 가치들(여유, 자유, 낭만, 사랑)을 실현하도록 돕는 도구다.


그러니 둘은 대립적이지 않다. 상호보완의 관계가 되어 중용을 향해 손잡고 나아간다. 여기서의 중용이란 『학습하는 조직』과 『잠 못 이루는 밤』 간의 양자택일이 아니다. 그것은 타협, 무지, 포기, 아쉬움이다. 중용의 정확성을 지향해야 한다. 인생의 다른 상황들보다 책읽기에서 중용의 실천은 그나마 간단하다. 낭만과 효율을 모두 추구하려는 나의 마음은 두 가지 원칙으로 정리될 수 있을 테니까.


“밤에는 책장에서 읽고 싶은 책을 자유롭게 꼽아서 읽을 것. 최대한 즉흥적이고 낭만적일 것.” 문제는 내가 어젯밤에 헤세의 산문집을 들자마자 잠들었다는 점이다. 아침에 일어나 뒷부분을 마저 읽느라고 오전 시간을 예상하지 못한 곳으로 흘러 보냈다.


이런 나를 바라보다가 원칙 하나를 추가했다. “밤에 읽던 책은 다음 날 아침에 불러들이지 말 것. 미처 한 챕터를 끝내지 못했더라도! 낮에는 즉흥적이고 낭만적인 독서에서 벗어나 계획적이고 생산적인 독서에 몰입할 것.”

Posted by 보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