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제대로 아는 게 하나도 없구나.’ 마음이 괴롭지는 않으니 자책은 아니다. 얼마간의 부끄러움을 동반한 현실 인식이다. 겸허함도 아니다. 오만과 겸손에 대한 인식조차 없다. 그보다는 이미 알게 된 것들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고, 앞으로 알고 싶은 것들에만 시선을 둠에서 생기는 지적 열망이다. 뒤를 돌아보지 않는 자의 눈에는 나아갈 길만 보이는 법! 문득 이렇게 모르는데 강연을 하며 살아가는 삶의 관용이 고마워진다. (누군가에게 속삭이고 싶다. 저기요, 강사들의 얄팍한 지성을 주의하세요! 예외는 아주 드물 거예요.)

 

물론 내게도 열정이란 게 있어서 오랫동안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어왔고, 꾸준히 글을 썼다. 공부한 내용을 긴 글로 정리하기도 했다. 그리하여 내게 남은 것은 몇 가지의 암묵지다. 암묵지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배우고 '익히는' 학습과 '현장에서의' 경험을 통해 얻어지는 암묵지는 우리네 삶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지만, 암묵지를 평가하는 자격증이나 학위는 없다. 반면 형식지는 다른 사람과 쉬이 공유할 수 있는 매뉴얼과 같은 지식이다. 내 무지의 대상은 이 형식지를 말함이다. (실제의 나와 사회적 나의 괴리가 크다는 '사실'을 느끼는 요즘이다.)

 

며칠 전, ‘제대로’까지는 아니더라도 ‘조금’ 알고 있는 형식지들을 적어보았다. 분야, 인물, 개념, 서적을 막론하지 않고 적었더니 몇 가지는 되었다. 수잔 손택, 『그리스인 조르바』, 문예사조, 리버럴 아츠, 인문주의, 긍정심리학, 학습조직 등이었다. (관심도 많고 이미 열심히 읽어와서 조만간 목록에 추가될 몇 권의 후보 목록이 더 있긴 하다. 재능, 파커 파머, 『변신』, 김영하,『오딧세이아』와 그리스 비극! 한참 멀었지만 언젠가 포함하고 싶은 목록도 있다. 『괴테와의 대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광기의 역사』) 자기이해나 자기경영, 강의력이나 독서력은 세상에 분명히 실재하는 능력이지만, 매뉴얼과 같은 명료한 지식이 없다는 점에서 제외시켰다. 성격심리학이나 재즈는 관심이 많지만 아는 바가 얕아 빠졌다. 벤야민은... 두 전문가의 강좌도 듣고 강독 세미나에 참석하여 읽었지만, 아직은 잘 모른다.

 

나는 학위가 없다. 공부를 하다보면, 종종 제도권에서 공부해서 학자가 되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후회인가? 모르겠다. 대학생 시절로 돌아가서 생각해 보면, 그럴 분위기가 아니었다. 환경이나 남 탓이 아니다. 내가 그렸던 20대 인생 그림에는 대학 교수라는 직함은 없었다는 말이다. 전문가가 되는 길은 다양했다. 학위 취득, 현장에서의 성과, 네트워크 소속, 책 출간 그리고 진짜 실력 쌓기! 당시 나의 선택은 ‘진짜 실력’을 갖추는 길이었다. 그러면 자격증이나 학위를 대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울러 '책'으로 승부하고 싶었다. 이 생각은 이상적인 동시에 순진했다. 나다운 길이면서도 세상에 대한 무지의 발로였다.


지적 스승이 있었더라면 공부에 더욱 탄력을 받았을 테지만 나는 그런 스승을 만나지는 못했다. (구본형 선생님을 존경하고 지금도 그 마음은 여전하지만, 그 분의 힘도 암묵지에서 나왔다.) 부지런히 책을 읽고, 하나의 공동체에서 배운 것을 실현해가면서 혼자서나마 열심히 공부해왔다. 광장까지는 아니어도 골방에서의 공부는 아니었다. 카페에서 삼삼오오 대화를 나누는 식의 공부라고나 할까. 만나면 지적 교류를 즐겼고, 집으로 와서는 책을 즐겼다. 나를 전율시키는 주제를 만나면 여러 중요한 책을 읽으며 글로써 정리했다. 가장 길게 쓴 글은 인문주의와 리버럴 아츠에 관한 에세이인데, A4 100 여 장에 가까운 분량이다. 손택, 조르바도 수십 장에 달한다.

 

책으로 출간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능력이 부족했는지 아니면 출간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는지 모르겠지만(후자라고 믿고 싶다), 거의 10년 동안 세상에 내놓은 지적 결실이 없었다. 날마다의 생산성은 나쁘지 않았음을 생각하면, 빈약한 결실의 지난 삶들이 참 아쉽다. 누가 책을 출간하는가? 목표를 세웠으면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내는 자가 책을 출간한다. 실력이 아니라 목표달성능력이 중요하다. 누가 좋은 책을 출간할까? 목표달성능력을 가진 실력 있는 분들이 좋은 책을 출간한다. 목표달성능력이 출간 여부의 관건인 것이다. 나는 이 능력이 턱없이 부족했다. 세상은 나에게 자격, 학위, 저서 등의 스펙을 요구했다. 기업교육의 ‘언저리’에서 12년 동안 살아왔음이 신기하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잘 살아와 준 고마움에서 나온 미소인지, 어떻게 살아왔지 하는 의아함의 실소인지 헷갈린다. 어쨌든 웃으니, 좋다. “유머 감각이 너를 구원하리라”는 캠벨의 말도 떠오른다. 잠시 덤덤하게 나 지적 수준(내지는 현실)을 돌아보고 나니, 담담하게 결심하게 된다. 담담함은 그윽하고, 평온하고, 객관적인 상태다. 얼마나 아름다운 말인가! 그 담담함이 나를 기분 좋은 결심으로 이끈다. ‘수잔 손택과 『그리스인 조르바』만큼은 제대로 알자!’ 한동안 달려갈 나의 푯대다. 이 책들을 읽으면 희열이 느껴진다. 나의 희열을 쫒는 삶! 근사하다. 치열하게 공부하여 결실마저 맺는다면, 적어도 지적인 영역에서는 내 삶을 보면서 미소를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실소가 아닌 흡족함의 미소를. 

Posted by 보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