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생각해 본다. 내가 강의를 업으로 선택하지 않았더라면 어떤 삶을 살았을까? 십여 년 전만 해도 이런 가정을 해 본 적이 없었는데, 이젠 가정이 하나에 그치지 않고 릴레이로 이어졌다. 내가 인문학을 전공했더라면 어땠을까? 그때 읽었던 책이 스티븐 코비의 책이 아니었더라면? 가정의 행진은 내 인생의 피할 수 없는 물음을 마주하고서야 멈춰 섰다. 엄마가 살아계셨다면 내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불가피한 상황도 있었고, 선택의 기로도 있었다. 엄마와의 사별은 숙명이었다. 숙명은 강력했다. 싸울 대상이 아니었다. 책 속 현자들의 권고를 정리하니 “숙명과 화해하여 벗으로 지내라” 쯤의 명제가 되었다. 엄마 없이 25년을 살면서 이를 어느 정도는 실현했으리라. 사별 덕분에 잃은 것이 많을까, 얻은 게 많을까? 득실의 저울추가 균형을 이룰 거라는 사람들의 순진함에, 나는 그저 웃는다. 좋은 의도가 나쁜 결과를 부르기도 하는 게 인생이다. 게다가 세상은 공평하지도 않다. ‘부모 제비뽑기’보다 우리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게 또 있을까.

 

쓰고 나니 오해 사기에 딱이다. 나를 숙명론자로 보는 사람들은 이리 말한다. “사건 자체보다 그 사건을 바라보는 인식과 태도가 더욱 중요해요.” 나도 동의한다. 한 단어만 뺀다면 말이다. ‘더욱’을 삭제해야 한다. 외부 환경과 개인의 정신 모두가 중요하니까. ‘더욱’이라고 말하려면 둘을 비교한 결과여야 한다. 환경이 우리에게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우리가 얼마나 환경을 능히 극복하는지를 모두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 대개는 이러한 숙고 없이 자신이 타고난 기질대로 환경을 더 강조하거나, 개인의 힘을 더 강조한다.

  


삶은 숙명으로도 전개되지만, 내가 개입할 여지도 존재했다. 직장생활을 기업 교육회사에서 시작한 것은 나의 선택이었다. 그 선택으로 인해 내 인생에 들어온 단어들이 지금도 내 삶의 일부분이다. HR(인적자원), 기업 교육, 강연가, 학습조직, 리더십 등등. 내 책장의 일부는 다음과 같은 책들이 꽂혀 있다. 실천공동체, 살아있는 학습조직, 컨설턴트는 어떻게 일하는가, 성과측정,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책장에만 꽂힌 게 아니리라. 책의 내용들이 내 삶의 구석구석에 스며들었을 테니까. 정말이지 내 삶은 읽는 것들의 영향을 받아왔다.

 

나는 두 가지의 중대한 지혜를 터득해야 멋진 삶이 되리라고 생각했다. 숙명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그리고 훌륭한 선택을 하려면 어떡해야 할까가 그것이었다. 구체적인 방법론은 몰랐지만, 탐구할 질문을 일찌감치 발견한 셈이다. 나는 숙명과 선택을 아우르는 명제를 고민했다. 숙명을 원망치 않으며 선택의 지혜를 자유로이 발휘하는 인생을 그윽하게 표현하고 싶었다. “인생은 필연의 터 위에서 자유의 집을 짓는 여정이다.” 2010년의 결과물이다. 그럭저럭 마음에 든다. 저 문구도, 내 인생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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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