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에는 봄날의 기운이 완연했다. 포근한 햇살, 살랑거리는 봄바람. 카페 창가에 앉았다. 카페 밖 흐드러지게 핀 벚꽃이 창문을 두드렸다. 벚꽃도 싱그러운 봄 날씨에 기분이 좋았던 걸까. 바람과 함께 벚꽃 가지가 춤을 추었다. 나흘 전, 연남동 카페 <noah's roasting>에서 맛난 커피와 함께 그렇게 낭만 속의 과업을 즐겼다.



오늘 다시 같은 카페를 찾았다. 벚꽃이 창문을 두드리던 그 창가에 앉았다. 그새 풍광이 달라졌다. 벚꽃의 세상 나들이는 짧았다. 연분홍빛 벚꽃 사이로 얼굴을 내민 초록잎들! 바람이 불면 춤을 추던 벚꽃들인데, 이제는 바람과 함께 후두두 떨어진다. 벚꽃이 잠시 머물렀던 가지마다 짙은 아쉬움이 내려앉는다. 바닥을 거니는 꽃잎들이 자꾸 눈에 밟힌다.


 

"나는 벚꽃을 아주 좋아한다. 산길을 걷다 숲 속에 심심찮게 묻혀 자란, 꽃이 만발한 벚나무를 만나면 늘 그 허리를 쓸어준다. 그 밑에 서서 꽃들 사이로 하늘을 보려 한다. 바람이 불고 이내 꽃비 오듯 그 작은 꽃잎들이 떨어져 내리면 황홀하기 그지없다.” 구본형 선생님이 당신의 책에 써 두신 말이다. 나는 벚꽃이 좋지만은 않다. 바라보면 살짝 서글퍼진다. 올해도 여러 번 외면했다.

 

선생님 장례식을 치르고 집으로 돌아가던 밤을 잊지 못하리라. 가로수가 짧은 벚꽃터널을 만든 거리를 지나갈 때였다. 나무에서 해방된 벚꽃 잎들이 하늘을 날았다. ‘저 벚꽃들도 선생님과 함께 자유로워졌구나!’ 눈물이 흘렀다. 인생을 비유하는 여러 말들 : 여행, 마라톤, 하루짜리 소풍…! 모두 혜안이 담긴 말이겠으나, ‘벚꽃 같은 인생’도 아름다운 표현이다.

 

흐드러지게 피었다가(저리 단아하고 아름다울 수 있다면 겨울 추위야 능히 견뎌내야 하리라), 피어 있는 동안 사람들과 더불어 흥겨워했다가(벚꽃축제야말로 봄을 대표하는 꽃놀이가 아닐까), 때가 되면 홀연하게 떠나버리는 삶! “목련은 아름답지만 지고 난 다음 그 무거운 주검을 주체하기 어려운데, 이 작은 꽃은 살아 있을 때처럼 갈 때도 가볍기 그지없다.”


 

‘내년 벚꽃은 웃으며 만나야지!’ 선생님의 바람일 테니까. 읽던 책을 펼치니 선생님이 계신다. “시간이 지나는 것처럼 쉬운 일은 없으니 세월은 무섭게 살을 헤집어드는 사나운 채찍이다. 세월이 들어 아무것도 이룬 것 없는 자신을 보는 일은 추운 일이다. 세월이 지나 어떤 것에도 마음을 쏟지 못한 자신처럼 미운 것은 없다.”(구본형) 아, 잘 살고 싶다. 자유롭고 아름다웠던 선생님의 삶처럼!

 

오늘은 선생님의 4주기 기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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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