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사의
—침대의 필요
(시인 김선우)


그런 날 있잖습니까
거울을 보고 있는데
거울 속의 사람이
나를 물어뜯을 것처럼 으르렁거릴 때

그런 날은 열 일 제치고 침상을 정리합니다


날 선 뼈들을 발라내 햇빛과 바람을 쏘이고
가장 좋은 침대보로 새로 씌우죠


이봐요, 여기로


거울 앞으로 가 거울 속의 사람을 마주봅니다
거울 속으로 손을 뻗지 말고
여기서 손짓해 거울 밖으로
그를 꺼내야 합니다


어서 와요.


정성 다해 만져줘야 할 몸이
이쪽에 있습니다.


- 《문학동네》 2016년 가을호


*


감정적으로 힘들거나 피로감을 느끼는 이와 함께 읽고 싶은 시다. 거울 속 얼굴은 왜 사나워졌을까? 시인은 그 이유는 말하지 않았다. 짐작해 본다. (아마도 격무에 시달려) 몸이 피곤해서, (아마도 누군가로 인해) 감정이 격해져서, (때때로 누구나 그렇듯이) 삶이 고단해서, 이 셋 중 하나일 것이다.


이유를 서술하는 대신 대책을 내놓는다. 이것이 김선우 시의 힘이다. 원인분석 대신 대책모색의 긍정성! 거울 속의 그에게 왜 그랬냐고 탓하지 않는다. 거울 속에 있는 만지기 힘든 내면적 자아의 원인을 분석하는 게 아니라, 보듬을 수 있는 실체적 자아에 집중한다. “몸이 이쪽에 있습니다.”


그리고 따뜻하게 손짓한다. 가장 좋은 침대보로 침상을 정리하는가 싶더니 ‘으르렁’에게 ‘어서 와요’라고 하고 부른다. ‘으르렁’이 부드럽게 바뀌어가는 모습을 시정으로 느낀다.


부드러워질 수밖에 없다. 다름 아닌 ‘몸’을 정성 다해 만져 주고 있으니! 행복은 마음에만 있지 않고 몸(의 활동)에도 있으며, 두뇌 발달에는 독서와 사유만이 아니라 운동이야말로 도움 됨을 최신 과학이 증명해 낸, 바로 그 몸을 말이다. 시인의 대책은 시쳇말로 과학적이다. 예술적 직관은 종종 과학을 선취하는 법이다.(연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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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