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분을 참느라 혼났다. 좁은 작업실을 서성였다가 책상에 앉기를 여러 번 반복했다. 세나절 동안 모차르트를 듣다가 벌어진 일이다. 아침에 피아노 협주곡 21번으로 잔잔한 울림을 느꼈다가 오후에는 피아노 소나타 12번 2악장을 듣다가 아름다운 고요함에 전율했다. 사실 눈물이 찔끔 났다. ‘아! 모차르트의 감동이 이런 거구나.’


모차르트 평전을 쓴 필립 솔레르스는 “아주 젊은 모차르트의 작품에는 사람들은 만족시키는 모든 것들이 있다”고 썼는데, 이 과장스러운 표현에 동의하게 된 날이다. 모차르트 감상이 처음은 아니다. 여러 장의 모차르트 CD를 차에서 듣기도 했고, <돈 조반니>를 시청하다가 졸았던 경력도 있다. 하지만 모차르트로 눈물의 감동을 경험한 날은 없었다.


어느새 저녁이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듣자고 선택한 곡은 바렌보임이 연주한 <피아노 소나타 8번>이다. 오늘 왜 이럴까? 감격을 주체할 수가 없어 또 책상에서 일어나야 했다. 달랠 방도도 없다. 글을 쓰기엔 내가 차분하지 않고, 감동을 전할 연인도 없으니. 녀석에게 전화할 수밖에 없는 날이다. “박상, 통화 돼? 나 대학생 때 잠깐 피아노 배웠던 거 기억하냐?”


“글세, 잠깐만…. 아, 그래. 손톱만큼 배우다 말았잖아. 학원에 꼬마 애들 밖에 없어서 쪽팔린다고.” 기억하는구나, 역시 박상이다. “다시 피아노를 배워볼까 싶어서 오늘 좀 알아봤거든. 위드피아노라고 있어. 성인들을 전문으로 하는 학원이야. 지점이 많은데 홍대에도 있고, 분위기가 꼭 카페처럼 근사해.” 뜬금없는 말에 친구가 묻는다. “잠깐만! 그런데 갑자기 웬 피아노야?”


“모차르트의 위대함을 직접 느껴보고 싶어서. 왜 그런 거 있잖아. 괴테나 니체를 조금이라도 제대로 이해하고 싶은 독서가들이 독일어를 배우고 싶어하는 마음이랄까.” 한때 헬라어도 배우고 싶었다는 말은 꺼내지 않았다. 독일어도, 헬라어도 한 마디도 못하는 걸 알면 피아노 교습을 말릴지도 모르니까. 자자, 진정하자! 나는 지금 흥분했다. 한숨을 쉬어보자. 휴우.


(아참! 이건 알리고 가야겠다. 전화 통화가 실제로 이뤄진 건 아니다. 박상은 이럴 때(흥분, 분노, 셀렘을 느낄 때)마다 떠오르는 친구지만, 이미 세상을 떠났다. 녀석이 살아 있다면 오늘은 분명 전화통화를 했을 날이다.)


여느 때와 달리, 친구 생각에도 나는 지금 우울하지 않다. 작업실을 가득 채우고 있는 <피아노 소나타 11번 1악장>이 위로하기 때문인 것 같다. 모차르트가 속삭인다. ‘슬퍼하지 말고 명랑하게 살아가세요.’(내 나이가 모차르트보다 많다.) 이 젊은 음악 천재는 1악장 후반부로 접어들면서 나를 경쾌함으로 초대했다. 신난다. 외출 시간이 코 앞이라 3악장까지 듣진 못했지만, 나는 이미 행진할 준비가 됐다(3악장이 그 유명한 ‘터키행진곡’이다).


내가 다시 피아노를 배울 가능성은 낮다. 유투브에서 어느 아마추어가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8번>을 연주하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우연히 보게 된 그 연주는 전혀 '모차르트'가 아니었다. 처음 들을 때에는 피아노 소나타 8번이 아닌 다른 곡인 줄 알았다. 그도 꽤 오래 배웠을 텐데 나의 시청 소감은 간단했다. ‘직접 연주로 모차르트를 만나기는 쉽지 않겠구나.’ 내 둔한 귀를 훈련하는 게 빠를 것 같다.


"이번 생에는 글렀어"는 이럴 때 쓰는 말인가 보다. 윤회를 믿지는 않지만 재밌는 표현이다. 그래, 이번 생에서의 나는 연주자가 아니다. 그렇지만 좋은 감상자가 되기에는 늦지 않았으리라(고 믿어볼란다). 당분간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을 매일 하나씩 감상해야겠다. (2017. 4.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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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