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시절 나는 형의 교과서와 소설 따위를 꽤 많이 읽어 경우에 따라서는 당시의 시골 학교 동급생보다 아는 게 훨씬 많았는데도 나 자신은 누구보다 더 안다거나 앞서 있다는 생각을 당초부터 하지 않았다.” 3남 2녀의 막내로 자라난 문학비평가 김병익 선생의 말이다.(『글 뒤에 숨은 글』p.12)

 

누구와 함께 있는가. 이는 삶의 질에 영향을 미치는 물음이다.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의 영혼이란 기후, 침묵, 고독, 함께 있는 사람에 따라 눈부시게 달라질 수 있는 것이네!” 함께하는 사람이 가장 중요한 요소가 아닐까 나는 생각한다. 인간의 영혼이 연약해서가 아닐 것이다. 상호 교감하는 능력을 지녔기 때문이리라.

 

“형들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조금도 더 많이 안다고 할 수 없었고 그래서 스스로를 그저 평범한 소년으로 자족했을 뿐이다.”(김병익) 비단 한 집안의 형들만이 우리의 부족함을 일깨우는 건 아니다. 주변에 훌륭한 이들이 존재한다면 자신을 겸손하게 돌아볼 수 있으리라. ‘내가 좀 안다’는 착각은 세상의 뛰어난 이들을 만나지 못함에서 오는 불운인지도 모른다.

 

인용문에서 김병익 선생의 남다른 의식도 느낀다. 형을 둔 모든 이들이 ‘절로’ 자신의 부족함을 느끼고 자족을 배우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형에게 기가 죽거나 질투를 느끼는 반작용도 있을 것이다. 내 친구는 자신보다 매우 뛰어난 친형으로 인해 20대 초반까지 형을 모방하는 인생을 살았다(고 말했다). 그것은 자신의 삶이 아니었다.

 

선생은 열망이 남달랐다. “나는 겸손하고, 또 겸손해야 했다. 적어도 나는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기를 바랐고 그런 사람을 존경했다.” 선생의 겸손과 자족은 막내라는 집안 환경의 덕분이기도 했지만 자신의 타고난 성정이 빚어낸 가치관 때문이기도 했다. (그래서 당신의 수줍음을 환경의 영향으로만 서술한 부분에서는 살짝 불편하기도 했다.)

 

선생은 자신의 가치관을 따라 학창시절을 보냈고 인생을 살았다. 서울대 정치학과 출신의 선생이니 학창시절에는 당신보다 공부를 못하는 학생이 있었을 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선생이 자주 쓰시는 표현이다) 선생은 늘 자신보다 뛰어난 학생을 올려다보며 자신을 바로 잡았다. 그렇기에 선생에게는 “배워야 할 상대는 있었지만 경쟁할 만한 상대는 없었다.”

 

나를 성장시키면서도 겸손하게 사는 비결 하나를 배운다. 성품이나 실력이 뛰어난 이들과 함께 어울리거나 나보다 나은 사람들에게 시선을 두어 그들로부터 배우며 살기! 어렸을 적 나의 아버지는 배움이 많지 않았던 아내와 어린 아들에게 많은 말을 했지만, 당신의 영향력은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넘진 못했던 것 같다. 아버지보다는 넓고 멀리 바라보고 싶다.


Posted by 보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