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를 경멸하는 자들이여,

나는 너희들이 가고 있는 그 길을 가지 않으련다!

너희들은 내게 초인(위버멘쉬)에 이르는 교량이 아니다!"

-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

영혼과 마음이 중요하다면서 신체적 건강을 간과하는 이들이 있다.

종종 신체 컨디션이 떨어져 울적해하면서도 여전히 영혼만을 중요시한다.

자신의 일상이 스마트폰에 의해 가장 급격한 변화를 겪었으면서도

철학이 세상을 바꾼다면서 물질 세계의 저력을 무시한다.

마음 먹은 대로 살아가지 못하면서도(대지의 법칙을 모르니 당연지사다)

세상만사는 마음먹기에 달렸다면서 일체유심조만을 강조한다.

답답하고 아쉬운 일이다. 세상의 반쪽만을 보면서 살아가는 아쉬움!


결코 영혼과 정신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니체처럼 "우리는 영혼이자 육체다"라고 시인해야 한다는 뜻이다.

니체는 대지와 신체를 찬미했다. 니체는 이렇게 썼다.

"너는 신체 속에 살고 있다. 너의 신체가 바로 자기(das Selbst)다."



[사족 : 읽을 시간이 좀 더 있는 분들을 위한]


1.

지난 세월 동안 신체적 아름다움을 간과해 온 날들이 아쉽다. 몸매 좋은 남자들이 수많은 여성의 눈길을 사로잡을 때 나는 무얼 했다는 말인가! 이것은 감탄이 아니다. 탄식이다. 나는 당시의 내 거처를 알고 있다. 도서관과 서점이 나의 놀이터였다. 어쩌자고 그리 많은 시간을 책들과 함께 보냈을까! 놀이터는 복수(plural)여야 한다. 책방 뿐만 아니라 체력단련장에서도 즐겁게 놀았어야 했다.


2.

내가 신체와 대지를 간과했던 것은 아니다. 아마도 서른 무렵부터 물질과 대지의 세계를 나 역시 찬미했다. 힘이 드는 과정은 질색이라 무거운 바벨을 들지 않았을 뿐 건강 관리에도 관심이 많았다. 식습관에 보다 많은 신경을 썼다. 덕분에 건강한 식습관을 갖게 되었다. 나는 운동보다는 '활동' 예찬론자다. 많이 걸었고 자차 운전을 멀리했다. 한계는 있다. 나이가 들수록 근력이 줄어드는데 활동만으로는 근력을 키울 수가 없다. 최소한의 운동으로(힘이 드는 과정은 질색이니), 최소한의 필요 근력을 키우자.


3.

초인(위버멘쉬)는 "모든 생에 적대적인 형이상학적 가식을 버리고 사실 그대로의 삶을 긍정하며 살아가는, 그리하여 신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영원회귀가 야기하는 허무주의를 극복할 새로운 인간"(정동호)이다. 위버멘쉬는 신이 아니지만, 범인의 영역을 훌쩍 뛰어넘는 자기극복의 끝판대장이다. 위버멘쉬는 지금의 내게 위로와 목표를 제시한다. 위버멘쉬가 될 정도의 비범함은 없지만, 지금 여기를 벗어나고픈 욕망은 품고 있다. 그 욕망이 꿈틀거린다.

Posted by 보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