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고독

 

"나의 벗이여, 너의 고독 속으로 달아나라! 너는 요란한 위인들의 아우성에 귀가 멀고 소인배들의 가시에 마구 찔려 상처투성이가 되어 있지 않은가. 

숲과 바위는 너와 더불어 기품 있게 침묵할 줄을 안다. 다시 한 번 네가 사랑하는, 저 넓게 가지 뻗은 나무처럼 되어라. 나무는 조용히, 그리고 귀를 기울이며 바다로 뻗어 있다. 

고독이 멈추는 곳, 그곳에서 시장이 열린다. 시장이 열리는 곳에서 배우들의 소란이 시작되며, 독파리들이 윙윙대기 시작한다." - 니체/정동호 역,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고독은 생산적이다. 고독이 꺼려지는 이유는 외로움과 착각하기 때문이고 자신과 놀 줄 모르는 까닭이다. 외로움은 고독만큼 창의적이거나 생산적이지 않다. 쓸쓸하고 적적할 뿐이다. 외로움은 인간의 실존이다. 나만 외로운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유대관계를 회복하고 자신의 외로움을 고독으로 전환하는 법을 익혀가면 된다.

 

고독과 외로움이 물과 기름처럼 구분되진 않으리라. 현재 누리고 있는 삶에 질에 따라서 눈 앞의 시간이 고독이 되기도 하고 외로움이 되기도 한다. 관계성, 의식, 삶의 만족도 그리고 기분에 따라 달라지는 법이다. 지금 외롭더라도 내일을 희망하면 되고, 희망을 실현키 위해 지혜로운 선택을 하면 된다. 

 

본론으로 돌아가자. 고독은 무엇을 생산하는가. 감사, 명상, 창의적 아이디어 등이 있겠지만 나에게 고독이란 무엇보다 성찰과 관조의 기쁨에 이르는 통로다. 연말에 고독의 시간이 필요한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곳곳에서 니체가 말한 시장이 열리기 때문이다. 

 

2. 모임

 

SNS엔 수많은 모임들 사진이 올라온다. 뜻깊은 모임이 어디 연말에만 가능하겠냐마는, 인간이란 함께하는 사람 뿐만 아니라 환경과 시기 그리고 공간의 영향을 받는 존재다. 시기와 타이밍은 중요하다. 모임 사진들을 보면서 느낀 단상 중 하나는 '연말은 근사하고 의미있는 모임을 가질 최적의 시기'라는 점이다. 

 

(페북 세계가 종종 그래왔듯이) 사진에는 허와 실도 있으리라. 사진은 진실의 일부다. 제외되고 편집되고 꾸며진다. 세상에는 즐겁지 않은 모임도 많다. 최근 와우팀원 한 명이 모임에 간다길래 이리 말했다. "지루하고 의미 없거나 또는 의외의 재미나 소득이 있거나 둘 중 하나겠네요." 후자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었고, 이왕 가는 김에 모임에 흠뻑 집중하길 바랐다. 절친한 이들의 모임이 아니라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모임이었기에 얼마간의 염려도 있었다. 

 

이튿날 그녀가 들려준 말은 이렇다. "정말 재미 없었어요. 지루해서 혼났죠. 그냥 친한 사람들끼리 어울려서 뻘쭘하기만 했네요." 기우에 그치기를 바랐던 걱정이었는데 현실이 됐다. 친한 이들끼리의 모임이 아니라면 준비한 손길이 세심하고 정성스러워야 하는데 듣자 하니 그것도 아니었던 모양이다. ('정성스러운 손길'을 생각하니 강민지가 떠오르네. 나는 그의 모임이라면 처음 만나든 아니든 기꺼이 추천한다.)

 

(온갖 가치있는 것들이 그렇듯) 정겹고 뜻깊은 모임은 그냥 주어지지 않는다. 감사한 분들이나 자신에게 소중한 사람들을 초대한 연말 모임을 정성스럽게 준비하면 어떨까. 혼자 지내기를 즐기는 한 와우가 친밀함에 대한 책을 읽고서 송년 모임을 기획하고 준비했다. "누굴 초대할까 생각하고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만들고 하나씩 준비하는데 정말 행복하더라고요." 그녀가 활짝 웃으며 한 말이다. 영화 <위대한 쇼맨>에서 채러티 바넘은 이렇게 말했다. "모두에게 사랑 받을 필욘 없죠. 곁에 좋은 사람만 몇 명 있으면 된 거예요." 편안하고 즐거운 대화를 나누는 모임은 우리를 얼마나 고양시키고 행복하게 하는가. 

 

최근 SNS에서 조에스더 대표의 '더애인' 송년 파티 사진을 인상 깊게 보았다. 열 명을 초대한 "조에스더의 애정인 모임"이란다. 공간도 마음에 들었다. (망원동의 작은 레스토랑 '공작'이었다.) 준비한 손길도 정성스러워 보였다. 참석하진 못했으니 이리 예상할 수밖에 없다. 그나저나 묘하다. 사진 가득한 포스팅 하나를 보았을 뿐인데 이리 글로 쓰고 나니, 쇼윈도 밖에서 상점 안의 초콜릿을 바라보는 아이가 된 기분이네. ^^

 

3. 영성

 

성탄절이 코 앞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한 날이다. 크리스마스 예배나 미사를 드림으로 신을 섬기는 시간만큼 성스러운 시간이 또 있을까. 우리는 때때로 파이프오르간이 빚어내는 경건한 음악보다 거룩한 존재가 된다. 위기에 처한 이들을 구하는 의인들,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하는 극소수의 정치가들만큼이나 진실로 예배하는 자들은 아름답고 거룩하다. 일상에서 추하게 살았던 이들의 예배라고 해도 가식이 아니다. 아름답게 살고자 하는 열망이다! 

 

종교인이 아니더라도 영성을 추구할 순 있다. 신을 구하는 마음으로(무신론자라면 신이라는 말을 섭리나 지혜 또는 사랑으로 바꿔도 좋겠다) 한 해를 돌아보고 새해를 소망하는 마음을 갖는 시간은 아름답다. 자신만의 시간을 갖더라도 성스러운 느낌이 드는 공간을 찾아보기를 권하고 싶다. 학제 간 연구인 '신경건축학'은 공간이 우리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사실을 다양한 연구 결과로 보여 준다. (콜린 엘러드의 『공간이 사람을 움직인다』) 극단적 예이긴 하나 카페보다 성당에서 기도 드리기가 쉽다는 말이다.  

 

종교인에겐 미안하지만 영성을 아주 개인적 차원으로 치환할 수도 있다. 존 나이스비트와 함께 『메가트랜드』를 저술했던 패트리셔 애버딘은 21세기를 주도할 메가트렌드로 '영성'을 첫째로 꼽았다. 그녀가 말하는 영성을 일상 용어로 풀면 정체성과 방향성에 대한 감각이다. 비전과 사명의 발견, 다시 말해 영적 성장이야말로 삶의 가장 큰 변화를 불러온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우리는 종종 자신의 방향을 점검할 필요가 있는 존재다. 돌아보고 내다보는 일은 연중 언제라도 시도해야겠지만, 한 해가 저물어가는 지금 실행하는 게 가장 유익하지 않을까.

 

4. 기쁨

 

여기 두 남자가 있다. 한 남자는 성탄절마다 기쁨에 차 올라 춤을 추고 탬버린을 친다. 이와는 다른 남자도 있다. 그는 연말이면 아쉬워하고 괴로워했다. 저물어가는 한 해를 보며 심장에서 이파리 한 장이 떨어져 나가는 기분을 느꼈고 암흑의 지옥으로 한발짝 다가섰다고 생각했다. 고심하고 주저하느라 행동이 빈약했다는 사실에 비참함에 잠기기도 했다. 전자는 그리스인 조르바고, 후자는 그의 두목 화자다. 

 

아이들과 함께 흥겹게 탬버린을 두들기다가 잠시 짬을 낸 조르바가 말했다. "두목, 무슨 생각을 해요? 얼굴이 똥색이오. 오늘 같은 날 나는 꼬마로 되돌아갑니다. 그리스도처럼 다시 태어납니다. 예수님은 해마다 새로 태어나지 않소? 나도 그렇지!" 화자는 서른 다섯이고 조르바는 예순 다섯이다. 그가 송년에도 기쁨에 빠져드는 비결이 뭘까? 조르바는 현재를 살았기 때문이다. 그는 오늘을 사는 사람이었다.

 

조르바는 눈앞의 현재를 붙잡았다. “나는 어제 일어난 일은 생각 안 합니다. 내일 일어날 일을 자문하지도 않아요. 내게 중요한 것은 오늘, 이 순간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나는 자신에게 묻지요. ‘조르바, 지금 이 순간에 자네 뭐 하는가?’ ‘잠자고 있네.’ ‘그럼 잘 자게.’” 한 해가 저물고 새해가 오는 즈음의 조르바라면 이렇게 말하리라.

 

“조르바, 지금은 어떤 시기인가? 성탄절이지. 그럼 예수님처럼 다시 태어났다고 상상하며 현재를 즐기시게. 조르바 지금은 언제인가? 연말이야. 그럼 올해가 완전히 다 가기 전에 가장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보내게. 지금은 또 언제인가? 새해가 밝았지. 그럼 얼른 새해 소원을 빌게. 한 살 더 먹었으니 더 멋진 꿈을 꾸시게나.” 그렇게 조르바는 예순 다섯 살에 만난 새해를 소원을 빌면서 시작했다. 지나간 일을 아쉬워하지 않았다. 다가올 일을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그래야 현재를 붙잡을 수 있다. 기쁨은 이러한 깨어있음에 깃든다.

 

과거와 미래의 좁은 틈 다시 말해 현재에 존재하는 이들에게, 신이 기쁨을 선사하리라.

Posted by 보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