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을 ‘살아낸’ 자코메티>
- 자코메티 전시회를 다녀와서 (1/3)


1.
전시장에 들어서면 브레송이 찍은 사진 한 장과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작가 연보를 만난다. 비 오는 날 자코메티가 코트를 머리까지 올려 쓴 채로 걷는 모습을 담은 사진이었다. (브레송답게 그야말로 '결정적 순간'을 찍은 사진이었다.) 내리는 비에 아랑곳하지 않고 보행을 시작한 자코메티! 다른 행인은 없었다. 약간의 쓸쓸함, 왠지 모를 처연함, 왜 우산이 없을까 하는 궁금함... 그리고 걸어가는 자코메티! 



2.
작가 연보에서부터 감동했다. 1926년 자코메티는 자신의 작업실에 정착했다. 연보는 이후 20년을 소개하지 않았다. 곧바로 1946년으로 갔다. 길고 날씬한 독자적인 스타일을 창조했다는 1946년으로! 20년 동안 이어졌을 작업실에서의 수련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갔다. (자코메티의 모델이자 자코메티 평전을 저술한 ‘제임스 로드’의 글을 여럿 읽은 덕분이다.)


나에게 예술가란, 외부의 명성이 아닌 자신만의 기준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그 기준을 향한 끝없는 수련을 자기 삶으로 받아들인 사람이다. 기꺼이 받아들이는지, 필연으로 자기를 설득하는지는 상관없다. 중요한 건 예술을 향한 끝없는 정진이니까. 과정이 있을 뿐 완성은 없다. 자코메티는 제임스 로드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림이란 그리면 그릴수록 점점 더 끝내는 것이 불가능해지는 겁니다."


3.
표현 양식을 다듬고 벼리어서 자신만의 스타일을 창조하는 것이 목표라면 목표겠다. 천착하고 수련해야 하리라! 흉내로는 스타일에 이를 수가 없으니까. "스타일은 흉내와 더불어 죽는다. 반면 양식은 흉내내기의 네트워크를 통해 공고해진다." 철학자 김영민 선생의 말이다. '단독자적 체취'가 묻어나야 스타일이다. 스타일이 곧 그의 실력이자 존재다.


20년을 건너 뛴 연보를 보면서 음미한 생각이다.


4.
자코메티는 내성적이었다고 한다. 나무, 바위, 동굴 등 무생물에 특별한 감정을 느끼며 친구 삼았다는 전시회 벽면에 새겨진 텍스트를 읽으며 반가웠다. ‘아, 이 동질감!’ 묘한 공감을 느끼면서도 그가 나보다 더 내성적인 인물일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내성적’이라는 말에서 편안함과 동질감을 느끼면서도 이 단어가 적잖이 싫다.


5.
아버지 ‘지오반니 자코메티’는 저명한 화가였다. 아들을 경제적으로 든든히 후원했을 뿐만 아니라 예술적 가르침도 풍요로웠다. "화가란 제대로 볼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리고 미술을 공부하는 건 곧 잘 보는 법을 배우는 것이란다." 아버지의 말이 내게도 따뜻하게 들렸다.


자코메티 여섯 가족이 찍은 사진을 보았다. 다른 가족의 시선이 카메라를 향하는 것과 달리 어린 알베르토와 어머니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어머니는 평생 자코메티의 든든한 정신적 후원자였다고 한다. 자코메티는 ‘부모 제비뽑기’에서 운이 상당히 좋았던 셈이다.


6.
"우리는 모델을 우리가 아는 대로가 아닌 우리가 보는 그대로 그려야 한다. 단순히 보이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상대에 대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걸 모두 잊어버려야 한다." - 자코메티


감각한 대로 표현하기란 얼마나 어렵던가! 선입견과 소문에 의해 왜곡된 인상을 지워 버리고 지금 눈앞의 모습 그대로 바라보는 일 그리고 내가 보았던 그대로 표현하는 일! ‘감각한다는 것’ 그리고 ‘표현 양식’이야말로 예술의 본질임을 자코메티의 생각을 통해 다시금 확인한다.


7.
이사벨! 자코메티의 여러 뮤즈 중 캐롤린과 함께 가장 치명적인 여인이다. 자코메티는 이사벨에 대해 “남자를 삼켜버리는 여자”라는 후일담을 남겼다. 매혹적이지만 인격적이지는 않은, 그래서 만나면 안 되는, 엮이고 싶지 않은, 그래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여인들이 세상에는 분명 존재한다. 예술가의 뮤즈는 두 종류인 걸까. 선한 쪽과 악한 쪽! 이런 생각도 해 본다. 어쩌면 가장 강력한 뮤즈는 선악과는 별개로 강렬한 성적 욕망을 안기는 뮤즈가 아닐까, 하고.


8.
"나에게 숭고함은 예술 작품 속이 아닌 정확히 '살아 있는 사람들의 얼굴' 속에 있습니다." - 자코메티


이번 전시에서 가장 울림이 컸던 말이다. 마음속의 생각과 공명한 것이다. 읽자마자 내 안에도 예술 세포란 게 있다면 그것들이 모두 깨어나는 기분이었다. 당장 달려가 내 작품에 매진하고 싶을 정도였다. ‘작품’이라고 표현할 정도까진 아닌 글이지만, 이럴 땐 ‘누구나 예술가’라는 의심쩍은 슬로건으로 나를 둘러싸고 싶어진다.


아래에 자코메티와 공명한 생각을 적어 둔다.


‘예술가들은 세상 도처에서 숭고함을 발견한다. 세상에 깃든 숭고미를 자신만의 스타일로 표현하기 위해 정진한다. 표현 기술이 부족하다 싶을 때마다 끊임없이 기술을 수련한다. 발견이 먼저고 표현은 나중이다. 위대한 예술가일수록 깊이 감각하고 창의적 양식으로 표현하리라. 역설적이게도 감각이 깊을수록 표현은 힘겨워진다. 표현하기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치열함 역시 (근대의 관념이긴 하지만) 예술가의 모습이리라. 가까스로 표현하고 나면 사람들은 그걸 예술 작품이라 부른다. 정작 예술가에겐 여전히 미완성인, 그래서 과정에 불과한 오브제인데 말이다.’


외고 있던 자코메티의 말 몇 마디 중 하나가 떠올랐다.

“이거 정말 제대로 안 되네요. 그렇지만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끝날 수 있는 일도 아닌데요.”


9.
"내가 보기에 자코메티의 예술은 모든 존재와 사물의 비밀스런 상처만을 찾아내어 그 상처가 그들을 비추어준다." - 장주네


한쪽 벽면에 쓰인 글을 그대로 적었다. 우선 비문이다. 발언자 표기도 띄어쓰기가 잘못 됐다. 장 주네(Jean Genet)는 저명한 소설가 답게 걸출한 자코메티론을 남긴 인물이다. 인용문 만으로는 의미 전달이 쉽지 않을 것 같아 전후 문장을 옮겨 둔다. (이미지 참조)


10.
“형태가 아닌 기운을 그리는 예술가”


흔히 ‘예술=작품’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예술이 반드시 작품인 것은 아니다. 작품이 빚어낼 분위기까지 창조하려고 애쓰거나(자코메티, 이우환) 작품과 공간의 관계마저 고려하는 예술가들이 존재한다(루이스 칸의 솔크연구소). 어원적 의미로도, 예술은 작품보다 행위에 가깝다.


그렇다면 예술이란 무엇인가? 자신이 ‘감각’한 것들을 ‘표현’하기 위해 끊임없이 고뇌하는 창의적 ‘행위’가 예술이다. 그것이 물체든, 영감이든, 기운이든, 관념이든 어떻게든 감각한 대로 표현하려고 정진하는 이들! 이번 전시가 감동적이었던 이유는 자코메티의 삶 자체가 하나의 위대한 예술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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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