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월요일에 4주간의 인문정신 수업이 또 하나 끝났다. (강남역 인근에서 모여 강남학파라 불리는 모임이었다.) 인문 소양을 함양하는 실제적인 길을 보여주려고 노력했고 그 제안이 인문학의 본질과 동떨어지지 않기를 열망했다. 나의 목표를 달성하려면 수업 준비는 지극히 인문적이어야 했고 실제 진행에선 인문학의 효용에 초점을 맞춰야 했다. 인문학만이 주는 효용을 누리려면 역설적으로 인문학의 본질에 바짝 다가서야 하는 것이다. 어느 정도는 실현한 것 같아 기뻤다.


무엇이 흡족했나.


1) '인문학의 안팎을 살핀다'는 수업의 설계가 마음에 들었다. 종로 수업에서부터 시작된 이 설계 덕분에 기업이나 대학에서의 인문학 특강도 좀 더 명료하게 진행할 수 있게 됐다. 2) 수업에서는 현장의 분위기를 반영하고 유인물은 최초의 설계대로 준비한 것도 마음에 들었다. (청중 분들은 이러한 방식을 낯설게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3) 공부 인연들끼리 친밀해졌다는 사실도 나를 기쁘게 한다. 언젠가 함께 답사를 떠날 정도의 유대감을 쌓아가고 싶다. 4) 특히 4주차 수업이 나를 행복하게 했다. 나다운 내용이었고, 나다운 진행 방식이었다. 인문학 공부는 인간성을 드높이고 연대의식을 함양하는 공부가 되어야 한다는 믿음을 담아낸 수업이었다. 5) 개인적으로는 8주 동안 두 번의 인문정신을 진행하며 <인문정신을 권함> 원고를 어떻게 쉽게 풀어쓸 것인가에 대한 힌트를 얻었다. 뜻밖의 반가운 수확이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다.


1) 인문학이 일상과 동떨어진 학문이 아니라는 점은 설득했는지 모르지만 인문학 공부가 즐겁다는 사실은 보여주지 못한 것 같다. 이어지는 수업에서는 '인문학 공부의 즐거움'을 안겨 드리고 싶다. 고민할 대목이다. 2) 종로와는 달리 강남에서는 인문학 '밖'에 관한 담론을 많이 다루지 못했다. 리버럴 아츠와 후마니타스의 역사 대신 '인간성 수업'에 관해 이야기하기를 선택한 것이다. 이건 아쉬움이기보다는 앞으로의 수업을 위해 기억해 둘 점이겠다. 3) 도서 추천을 더 명쾌하고 간단하게 했어야 했나? 수업을 진행한 이로서는 '더 공부할 책'을 분명하게 추려내어 자세하게 설명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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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관점을 얻으려면 산을 오르자. 산행의 목적이 무엇인가. 산 아래에서의 신선한 공기인가. 산에 올라서 획득할 높은 관점인가. 조금 오르다 말고 자리를 펴고 먹고 마시는 이들에게도 고유한 재미와 목적 그리고 들려 줄 스토리가 있다. 정상에 등정하여 산맥을 살펴보려는 이들에게도 그들의 기쁨과 의미 그리고 들려 줄 스토리가 있다. 당신은 무엇에 끌리는가.


이는 교제 VS 고독과 같은 대립 관계가 아니다. 어느 길에나 벗과 동행이 존재하니까. 오를수록 동행이 줄어들지만 최정상이 아니라면 벗이 있기 마련이다. 돗자리에도 산행길에도 고유한 의미와 기쁨이 존재한다. 자신의 길을 선택하면 되리라. 꿈꾸는 자가 해야 할 일은 새로운 여정을 두려워하지 말고 지금 여기를 떠나 길을 나서는 것이다. 새로운 벗이 기다릴 여정을.


타성과 유혹을 넘어서야 하리라. 오르려면 돗자리를 떠나야 하고, 즐기려면 산행을 멈춰야 한다. 높이 올라 통찰을 얻고 싶다면, 신고 있던 슬리퍼를 벗고 운동화로 갈아 신자. 오르기를 열망하는 사람들, 등정에 관심 있는 사람들과 어울리자. 오르면 멀리 보인다. 새로운 관점을 얻는다. 여러 산에 갔더라도 잠깐 오르다가 포기한 경험으로는 얻을 수 없었던 것들을 추구하자.


<실천을 위한 끼적임>

:

인문정신이라는 지적 히말라야 등반을 꿈꾸며


- 개인적 인문정신부터 탐구할 것 : 공감, 자유, 용기

- 소크라테스와 에드워드 사이드를 연구할 것

- 언어 감각을 갈고 닦을 것 : 한국어, 영어

- 동서양 역사의 기초 지식을 탄탄하게!

- 나만의 문학 고전 집필을 이어갈 것

- <인문주의를 권함> 집필에 매진할 것

- 희랍 고전들을 꾸준히 읽어갈 것


Posted by 보보

1.

'누군가와 깊은 대화를 나누고 싶다. 이 책에 대해.'


『인간성 수업』이 안긴 생각이다. 올해 들어 두 번째다. 연초에 루크레티우스의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를 읽다가 감탄과 전율을 수십 번이나 느꼈다. 책을 읽다가 이런 생각도 했다. '공부 인연들과 함께 강독회를 하고 싶게 만드는 책이네. 아... 루크레티우스!


『인간성 수업』은 루크레티우스 읽기에서 한 가지가 더 가미된 독서 여정이다. 감탄, 전율 뿐만 아니라 '울음'마저 안긴 것! (지적 희열은 나를 춤추게 하지만 지적 위로는 타자를 향한 깊은 공감 만큼이나 울컥하게 만든다. 마사 누스바움은 내게 지적 희열과 지적 위로를 모두 선사한다.)


나를 위로하고 지지하고

나아갈 길을 넌지시 보여주는

책을 만나다니! 독서가의 지복이다.

 

2.

책의 메시지를 파악하고 생각과 의견을 주고받으며 한층 더 이해하고 싶은 책, 읽은 내용을 일상적 실천으로 이어가고 싶은 책, 그리하여 나와 우리가 사는 세계에 크고 작은 변화를 만들어가고 싶다는 열망을 안기는 책! 작년에는 시어도어 젤딘이, 올해는 마사 누스바움이 젊은 후학을 한없이 격려한다.


3.

오늘 아침 1시간을 할애해 두고서 『인간성 수업』을 펼쳤다. 12페이지 즈음 되는 한 절을 읽겠다는 계획이었다. 3페이지 정도 읽고서 의자에서 일어섰다. 창가로 걸어가 하늘을 바라보았다. 내 눈에는 미세먼지 가득한 하늘보다는 책에서 얻은 희열과 비전이 보였다. 하루를 살아갈 에너지로는 충분했지만(그래서 책을 덮었겠지만) 이 책은 수양뿐만 아니라 지성을 위한 책이기도 해서 다시 자리에 앉았다. 펄떡이는 가슴을 달래가며 40분 동안 12페이지를 읽었다. 읽다가 눈물을 흘렸다. (아래 구절이 안긴 축복이다. 반엘리트적, 반텍스트적 그리고 민주주의적인 소크라테스!) 책을 덮고 나서도 독서는 이어졌다. 생각에 잠겼고 실천 의지를 다졌으니까.


"역사 속 소크라테스는 모든 사람이 자기 성찰에 나서도록 일깨우는 일에 헌신한다. 그는 자신이 만나는 시민들의 믿음 외에는 아무런 지식 자료에 의존하지 않으며, 무비판적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민주주의가 이용 가능한 최선의 정부 형태라고 본다." (p.54)


기억과 희망을 위해, 최근에 지적 희열과 지적 위로를 안긴 책을 정리해 둔다. (희열은 루크레티우스, 위로는 젤딘과 누스바움이다.)


- 루크레티우스, 강대진 역,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 아카넷, 2012

- 마사 누스바움, 정영목 역, 『인간성 수업』, 문학동네, 2018

- 시어도어 젤딘, 문희경 역, 『인생의 발견』, 어크로스, 2016

Posted by 보보

휴우. 지난 한 주를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한 숨이 나왔네요. 바빴습니다. 세 번의 수업을 진행했고 다섯 번의 강연을 청강했죠. 뒤풀이로 자정을 넘겨 귀가한 적도 두 번입니다. 한 번은 택시를 타야 할 상황인데 기어코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귀가하느라 피곤함을 더했네요. 편안한 시간들이긴 했지만 네 번의 만남까지 있었던 한 주였습니다. 오늘은 휴일입니다. 기다린 날이죠. 사실 오늘도 신청한 수업이 있는데 안 가려고요. 시시한 수업인데다 농도 심한 미세먼지가 제 결정을 지지하네요. 


아침에 나가면 밤이 되어서야 돌아오는 일정도 두 번이었습니다. 갑자기 만남을 많이 잡은 건 아닙니다. 3월부터 청강하는 수업이 무려 일주일에 5개였죠. 여기에 약속 몇 개를 잡으면 강연 일정까지 더해져 벅찬 일정이 되더군요. 결국 종일 일정이 있던 이틀은 약속 하나씩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배려해 준 이들에게 고맙고 미안했지만 덕분에 잠시 휴식하여 저녁 일정을 잘 소화했죠. 집필은 한 달째 지지부진했고(원고가 아닌 조각글만 몇 편 썼네요) 살도 빠졌습니다. 자그마치 3kg이나.



벅찬 일정! 이는 3월의 두드러진 두 모습 중 하나입니다. 다른 하나는 '무분별한 책 구매'고요. 지난 한 달 동안 정말이지 많은 책을 샀습니다. 한 달 책값이 지난 한 해 동안 구입한 금액을 뛰어넘을지도 모르겠네요. 작년엔 많이 절제했거든요. 다가 올 카드 결제일이 걱정입니다. 구입할 책을 찬찬히 살피는 과정 자체가 공부지만 너무 많은 돈과 시간을 썼던 게 사실입니다. 공부거리가 쌓여 든든하고 흐뭇하지만 동시에 조금 더 참아내지 못한 게  부끄럽기도 합니다. 이렇듯 책을 사고 수업을 들으며 3월을 보냈습니다.


책을 왜 그렇게나 샀냐고요? 인터넷 서점에서 주문 한 건을 하고 나면 1시간이 훌쩍 지나갑니다. 때로는 두어 시간이 지나기도 하죠. 책을 선별하고 주문하는 과정엔 몰입이 절로 이뤄집니다. 잠시 힘겨움을 잊는 겁니다. 지난 주, 친구와 이런 대화를 나눴네요.

"나 요즘 만사가 힘들어." 친구의 말에 저도 화답했습니다.

"너도 힘들고 나도 힘든 요즘이네. 나 역시 괴로워서 공부에 매진하고 있잖우. 나랑 같이 고대 그리스 문명 수업 듣자!" 
"힘들면 쉬어야지, 공부에 매진하다니 너 답다. 낼 고전 수업 가면 난 듣다가 졸 각. ㅋㅋ"
"내일이 힘들면 금요일엔 조르바 수업을 같이 가든지. ^^"
"아주 그냥! ㅋㅋㅋㅋ"
"난 자꾸 공부하러 같이 가재. 하하."
"넌 왜 날 자꾸 바람직한 방향으로 끌고 가려 하냐? 나 힘든데. ㅋㅋㅋㅋ"


"수업을 듣자"는 제안과 "아니 나 힘들다는데 무슨 수업이냐"는 의견 사이의 유쾌하고 장난스런 팽팽한 논쟁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결국 한 번 같이 들어보는 걸로 귀결됐죠. 이튿날, 친구는 갑자기 집안 일이 생겨 결국엔 함께 가진 못했습니다. 수업은 만족스러웠습니다. 그리스 고전기의 전사(前史)가 얼마나 중요한지 재확인한 시간이었죠. 감성적이면서도 이지적인 작가 한수희는 "남자보다 책이 더 나을 때가 있다"고 했다. 이 말을 뒤집고 확장하면 내 얘기가 된다. 적어도 3월의 나는 이 문장으로 설명되리라. 

사람보다 혼자 하는 공부가 더 나을 때가 있다.

그것이 책 읽기든 청강이든, 정말 그렇다.

어쩌면 공부는 '더 나은' 정도가 아니라 

'공부만이 구원'인 때가 있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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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숙취 기운을 떨쳐내기 위해 벌꿀 두 스푼을 듬뿍 떠서 입에 넣었다. 500ml 생수도 삼분지 이를 마셨다. 짧은 후회가 스쳐갔다. '어제 많이 마셨어.'


오전 10시 3분 전. <경의선 책거리 북도슨트> 교육장에 앉았다. 독서문화에 대한 '관심'에 얼마간의 '지식'과 '활동'을 부어주고 싶어 신청한 교육이다. '북도슨트 연지원'이라고 쓰인 명패를 보며 쓸데없는 생각을 했다. '북도슨트 교육생 연지원이라고 써야 정확한 내 신분(?)인데...' 제작 측 입장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오후 1시 3분 전. 샌드위치를 해치웠다. 정말이지 이건 내 식사 스타일이 아니지만 시간을 벌어야 했다. 가방에 『인간성 수업』이 있었으니까! 책을 꺼내려던 찰나 그녀가 도착했다. 33분이나 일찍 도착한 게다. 혼자만의 시간이 줄어든 아쉬움은 반가운 이를 만난 기쁨으로 상쇄됐다. 지적인 대화 그리고 감동적인 교감!


저녁 7시 정각. 경향신문사에 도착했다. 그리스 문명 수업을 청강했다. (20분의 휴식이 없었더라면 피곤해서 수업을 듣지 못했을 것이다. 다행히 그 정도의 여유는 주어졌고 독서는 또 미뤄졌다.) 혹시 늦을까 걸음 총총, 행여 놓칠까 주의 집중! 강연 주제가 나의 제일 관심사인 데다 연사는 초특급이니 만족과 기쁨이 클 수밖에.


‘밤 수업이 끝나야 저녁을 먹겠구나.’ 예상한 대로였다. 수업 후에야 늦은 식사를 했다. 혼자 들어서기에 그나마 덜 머쓱한 식당에서 밥을 먹고 카페로 이동했다. 커피 한 잔을 시켰다. 하루를 돌아보면서 마음을 가다듬었다. 가방에서『인간성 수업』을 꺼내 책을 감싸고 있던 비닐을 벗겼다. 서문을 읽었다. 그윽한 기쁨, 감탄 그리고 평온한 성취감.


‘책을 읽으니 이제야 하루가 완성되는 느낌이네.'


Posted by 보보

우리는 세상의 모든 미덕을

자기 수준에서 이해하고 체험합니다.

 

'얄팍한 관계'만 맛본 이들도 우정을 알고 체험했다고 말하지만 '지상 최고의 친밀함'을 맛본 이들 역시 우정을 알고 체험했다고 말합니다. 표현은 같아도 실상은 다릅니다. 얄팍함이든 절친함이든 우정이라는 단어로 표현되었지만 둘은 서로 다른 관계라 할 만큼 상호 교감이나 신뢰의 정도에서 차이가 크니까요. 교양인과 초등학생이 같은 모국어를 사용하더라도 서로 다른 언어생활을 영위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우정, 정직, 용기, 감사… 이러한 미덕들을 처음 듣는 사람은 없죠. 자주 들었고 얼마간은 실현하면서 살았을 겁니다. 그래서 이 미덕들을 '안다'고 생각합니다. 얼마나 아는지, 어떤 수준으로 경험했는지는 캐묻지 않은 채로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하기도 하죠. 하나의 미덕을 모른다는 사실은 큰 문제는 아닙니다. 자신이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이중의 무지) 상태야말로 문제입니다. 이것이 세상이 미덕이 드문 이유입니다. 알지 못하는 것을 실현하기란 어려우니까요.

 

우리는 ‘깊은 미덕’을 만났는데도 자신이 체험한 ‘얕은 수준’의 잣대에서 바라봅니다. 때로는 서둘러 판단하고 맙니다. “이건 나도 잘 알아.” 또는 “이건 새로운 건 아닌데!” 라고 말합니다. 아쉬운 반응입니다. 지금껏 알지 못한 경지를 체험할 기회를 놓친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지성을 닦거나 지혜에 다가서는 길은 새로운 단어를 발견하려는 정열이 아니라 이미 알고 있는 미덕들을 새로운 차원에서 인식하고 진득하게 체험하는 여정일 겁니다. 오늘 나는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무엇을 아는가, 무엇을 알고 싶은가?’ 라고.

어떤 것보다 먼저 사랑과 우정을 새롭게 알기를,

그리고 감사를 더욱 잘 알기를 기도하면서.

Posted by 보보

"나는 세상의 모든 팻 걸(Fat Girl)들이 이 글을 읽었으면 좋겠다."


내가 한 말이 아니다. 지적이고 유쾌발랄한 페미니즘 책을 쓴 린디 웨스트의 말이다. 그녀는 강하다. "끔찍하게 뚱뚱하다"(한 영국 신문의 표현)는 말에도 그녀가 취한 반응은 '셀프 하이파이브'가 전부였다.(p.65) 이보다 훨씬 악랄한 댓글로 단련된 그녀에겐 이 정도는 분노나 절망할 사안이 아니다. 그녀는 '린디 웨스트'다. 거짓되고 저열한 문화와 투쟁하며 살아온 명랑한 전사! 


평생 팻 걸(Fat Gril)로 살아온 그녀는 자신의 결혼식이 중요한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린디 웨스트는 용감하고 아름다운 결정을 했다. 있는 그대로의 자기 모습으로 결혼식을 올린 것이다(그녀는 어릴 때부터 수치에도 없는 머리 크리를 가졌고 팻 걸이었다). 결혼식의 당연한 의례처럼 여겨지는 다이어트 대신 예비 배우자와 마음껏 먹고 마시는 여행을 강행했다.  


결혼식 사진을 보고 싶다면 아래 링크를 클릭하면 된다. '세상의 모든 팻 걸'들이 봐 주기를 바란다는 바로 그 포스팅이다. 혹시 그녀의 황홀한 글쓰기를 보고 싶다면 『나는 당당한 페미니스트로 살기로 했다』를 읽으면 될 테고. 이 책을 읽다 보면 ‘우리의 뚱뚱한 복수천사’(NPR)라는 표현에 깊이 공감하게 된다. 그녀는 '우리의' 친구처럼 살갑다. '뚱뚱한'은 단 한 장의 사진으로도 알 수 있고 그녀의 삶을 들여다보면 '복수천사'라는 모순된 표현에도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강한 여자는 싫다고? 그럴 수 있음을 충분히 인정하지만 린디 웨스트는 강할 뿐만 아니라 지혜롭고 따뜻하다. 게다가 웃음마저 안긴다. 페미니즘은 어렵고 복잡한 이론으로도 설명될 수 있고 유쾌 발랄한 삶의 투쟁기로도 전해질 수 있다. 『나는 당당한 페미니스트로 살기로 했다』은 후자의 노선을 선택한 책이다. (편견이 어디에나 존재하긴 하지만, 이 책이 ‘강한 여자’에 대한 편견마저 불식해 주기를! 아울러 강한 남자, 섬세한 남자에 대한 편견들도 없애주는 책이 등장하기를.)


결혼식 사진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진리가 우리를 자유케 한다! 그녀의 웃음에서 진리에 이른 이의 자유로움이 느껴졌던 것이다. 그녀가 이른 진리는 다음과 같다. 몸은 ‘내 것’이 아니다. ‘몸이 곧 나’다. 페미니즘을 유쾌하게 설명한 이 책을 통해서든, 켄 윌버의 『무경계』를 통해서는 마음뿐만 아니라 몸이 곧 나라는 진리를 이해하고 체화하는 것은 행복한 인생을 위한 첩경이다.


덧. 포스팅의 제목을 '세상의 모든 팻 걸들에게'라고 달았다. 그녀의 바람을 담은 제목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걱정을 하면서 택한 제목이다. '팻 걸'이라는 단어 자체가 모욕을 안기는 표현이라는 비방 또는 이 제목 자체가 그녀의 의도와는 달리 '팻 걸'들의 외면을 부를 것 같아서다. 여러 가지 염려를 하다보니 이런 생각도 들었다. '그녀를 가장 외롭게 만드는 일은 독설을 퍼붓는 남성들이 아니라 여성들의 무관심이 아닐까?'  


* 그녀의 결혼식 https://apracticalwedding.com/lindy-west-wedding/

* 린디 웨스트, 정혜윤 역, 『나는 당당한 페미니스트로 살기로 했다』, 세종서적




나도 이르고 싶은 자유의 경지


Posted by 보보

1.

오랫동안 내 삶의 중심이었던 와우 수업을 일단락했다. 2003년 3월에 시작하여(2월이던가?) 2018년 3월 17일에 11기 마지막 수업을 했으니 꼭 15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렇게 두 문장을 써 두고서 말문을 잃어 한참을 멍하게 앉아 있었다.) 당분간은 지난날들을 되돌아 보고 묻고 성찰하는 시간을 가지고 싶다고 생각했다. 와우에 대해, 깊이 교감했던 인연들에 관해 그리고 우리가 배운 것들에 대해.



2.

마지막 수업은 하루 온종일 진행됐다. 꼬박 24시간이 넘는 시간이었다. 근사한 공간에서 자유롭게 둘러 앉아 수업을 진행했다. 1년 동안 배우고 느낀 것들과 변화된 삶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서로를 향한 마음도 내어 놓았다. 편안하고 따뜻했다. "수업은 마지막이지만 우리는 계속 만날 테니까요." 자주 나온 이 말은 와우의 역사에 비추어보면 사실이었다. 수업은 끝나도 우리의 인연은 이어지니까! 와우는 공동체다. 



3. 

올해는 분기별 와우특강과 가을 와우MT를 알차게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다. 내년도 와우 신년회도 근사하게 준비하고 싶다. 봄과 가을에는 와우투어도 떠나고! 어젯밤 11기들과의 대화에서 나는 이런 말을 했다. "와우들과 일년 동안 공부하고 나면 지적인 대화의 토대를 닦은 기분이 듭니다. 더 깊은 대화를 나눌 준비를 다졌달까요. 이따금씩 '아! 나는 친구를 만나기 위해 와우를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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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마음과 엉덩이로 바라고 바랐던

아직은 되지 못해 여전히 동경하는

그래서 오늘의 나를 추동하는 오랜 꿈

여기저기 자처하나 알고 보면 아닌

 

<사람>

때로는 숨소리 들릴 듯이 가까이

가끔은 마음이 그리워하도록 멀리

손으로든 마음으로든 연결되어야 벗

동물이지만 동물같은 삶은 아니어야

 

<하늘>

행복한 자들은 미소로 마주하고

지친 이들은 물끄러미 올려다보는

만인의 거울이자 나만의 창문

그리운 이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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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수업의 연속입니다. 이 달의 평일 저녁 일정은 일찌감치 꽉 채워졌죠. 한 달 중 쉬는 날은 3월 7일 하루뿐이네요. 월요일과 화요일엔 제가 진행하는 인문정신 수업이 있습니다. 다른 요일은 청강하러 갑니다. 3월 한 달 동안 그리스 문명, 프란츠 카프카, 소설의 캐릭터에 대해 배웁니다. 이런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 저녁마다 바쁜 요즘입니다.

 

하나의 수업은 산만하고 두 개의 수업은 재밌습니다. 하나가 아쉽다 보니 배움의 자리를 신중하게 선택해야 함을 느꼈네요. 재밌는 수업이야 두말할 필요가 없는 삶의 활력입니다. 이걸 공부해야겠구나, 얼른 저걸 읽어야지 이러는 동안 의욕이 생겨나는 거죠. 제가 다름 아닌 지.성.을 찾아갔음을 감안하면 활력은 보너스요 뜻밖의 습득물입니다.

 

"아테네의 황금기를 이해하려면 그리스 문명의 전사(前史)를 알아두어야 한다, 트로이 전쟁은 ‘전쟁’ 수준이 아닌 ‘전투’ 정도의 규모였을 확률이 높다, 저명한 카프카 해석자인 게르하르트 노이만은 ‘단편산문’을 카프카의 대표 장르로 꼽았다" 등이 이번 주에 얻은 인식입니다. 새로운 인식을 안고 돌아오는 귀갓길은 얼마간 적적하지만 기쁨도 큽니다.

 

어젯밤의 일입니다. 경향신문사를 나오는 길에 나도 모르게 노래를 흥얼거렸습니다. 예민의 <어느 산골 소년의 사랑이야기>라는 곡이었죠. 전혀 뜻밖의 노래였기에 의아했습니다. ‘어?! 신기하다. 왜 이 노래지? 자주 부르지도 떠올리지도 않는 노랜데!’ 의외의 노래였지만 기분이 좋았습니다. 노랫말과 선율이 예쁜 곡이었거든요. 노랠 불렀습니다.

 

“풀잎새 따다가 엮었어요. 예쁜 꽃송이도 넣었구요.” 학창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중학생 때 출시된 곡이거든요.) 그 시절의 장면 몇 가지가 그려졌고 얼굴엔 미소가 피었죠. 하늘나라에 있는 친구도 그 땐 제 곁에 있었네요. ‘지금 녀석이랑 통화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밤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네온사인 사이로 밤빛 하늘과 눈이 마주쳤네요.

 

조금은 쓸쓸했지만 충만한 마음이 그보단 좀 더 컸습니다. 내면에선 그윽한 평온이 너울거렸습니다. 그리움도 넘실댔죠. ‘이런 공부를 연인과 함께하면 참 좋겠다.’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오겠지 하는 생각, 그때까진 혼자만의 삶을 향유하자는 생각, 내가 공부를 참 좋아하는구나 하는 생각들을 매만지면서 서대문역을 향해 걸었습니다. 노래를 부르며.

 

“흐르는 냇물 위에 노을이 구름빛 물들이고

어느새 구름 사이로 저녁달이 빛나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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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