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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03.07 바꿀 수 없는 즐거움

10년 전에 읽었던 다산 산문집을 펼쳐 들었다. 밑줄이 쳐진 장들만 골라 다시 읽었다. 조만간에 여유당 답사를 갈 계획이라 마음의 준비를 해 둔 셈이다. 족히 열 번은 넘게 방문했을 여유당이지만 갈 때마다 감상(感想)이 조금씩 깊어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가장 먼저 읽은 글은 유명한 <동림사 독서기>였다. 둘째 형님 약전과 함께 ‘만연사’라는 절에서 서책을 읽었던 일화를 기록한 짧은 글이다. 전라도 화순의 그 만연사(萬淵寺)이고 동림사는 절의 동쪽에 위치한 “중이 수도하는 집”이었다. 다산은 동림사에서의 일상부터 전한다.

 

“둘째 형님은 『상서』를 읽었고 나는 『맹자』를 읽었다. 이곳에 올 때는 첫 눈이 가루처럼 뿌리고 산골 물은 얼어붙을 하였다. 산의 나무와 대나무의 빛도 모두 새파랗게 추워서 움츠린 것 같았다. 아침저녁으로 거닐면 정신이 맑아졌다. 자고 일어나면 곧 시냇가로 달려가서 양치질하고 얼굴을 씻는다. 식사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면 여러 중들과 둘러앉아 밥을 먹는다. 날이 저물어 별이 보이면 언덕에 올라 휘파람 불며 시를 읊조리고 밤이면 중이 게송을 읊고 불경을 외는 소리를 듣다가 다시 책을 읽는다. 이렇게 40일 동안 하고는 내가 형님에게 이르기를,”

 

단아한 일상이다. 시를 외는 즐거움과 자연을 관조하는 기쁨도 엿보인다. 실제로 <동림사 독서기> 바로 앞에는 <서석산에서 노닐었던 글>이 실렸다(서석산은 지금의 무등산이다). 형제는 풍류도 즐겼지만 무엇보다 독서에 매진했다. 40일 동안 책을 읽고서 다산은 형님께 무어라 했을까.

 

“중이 중 노릇을 하는 이유를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습니다. 부모, 형제, 처자의 즐거움이 없고 술 마시고 고기 먹고 음탕한 소리와 아름다운 여색의 즐거움이 없는데, 저들은 어찌하여 고통스럽게도 중 노릇을 합니까. 진실로 그와 바꿀 수 있는 즐거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형제가 학문을 한 지 이미 여러 해가 되었는데, 일찍이 동림사에서 맛본 것 같은 즐거움이 또 있었습니까?” “그렇지. 그것이 중 노릇하는 까닭일 게다.”

 

십년 전의 나는 무엇에 감동하여 이 대목에 요란한 밑줄을 그었을까. 기록된 메모가 없으니 당시 소회는 알 길이 없다. 지금의 감상은 ‘공감’과 ‘결심’이란 단어로 표현하면 되겠다. 다산과 학문을 견줄 일은 다음 생에도 없겠지만, 글 읽는 즐거움만큼은 동류의식을 느낀다. 나도 읽을 때마다 기쁘다. 때때론 희열이다. 세상을 떠난 두 친구가 그리워질 때가 있다. 독서는 그때의 쓸쓸함도 달랜다. 부인 없이 책과 함께 사는 에드워드 기번과 몽테뉴가 떠올라 나를 달래기도 한다. 혹자는 이런 모습을 처량하게 생각한다. 일부분 그렇지만 ‘읽는 기쁨’을 깊이 몰라서 하는 말이기도 하리라.

 

다산의 말처럼 지적인 희열은 “바꿀 수 없는 즐거움”이다. 노닐고 먹고 마시는 여타의 기쁨을 더하고 싶은 것이지 바꾸고 싶진 않다. <동림사 독서기>를 읽다가 자연스레 이런 다짐까지 하게 되는 연유다. ‘깊이 읽어야지. 나도 다산 선생님을 따라 『맹자』를 읽고 싶은 마음이 들지만 지금의 내게 필요한 책들을 파고들어야지! (자신만의 소원과 의무가 있듯이 자신만의 필독서가 존재할 테니까.) 3월까지 조르바를 탈고하고선 희랍 고전을 읽어야지. 차분하고 그윽하게, 한 권씩 한 권씩 깊이.’ 생각이나 마음의 흐름이 너무나 자연스럽고 다짐의 내용이 그야말로 나다운 모습이라 ‘다짐’이란 표현이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달리 표현하고 싶다. 이미 실현된 미래라고.

 

* 정약용, 민족문화추진회 편, 『다산문선』, 솔출판사, 2007





Posted by 보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