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이 되어 잠을 깊이 자지 못하는 날이 늘어났다. 왜 그런지 잘 몰랐다. 잠든 것도 아니고 깨어 있는 것도 아닌 흐릿한 밤이 며칠 계속되면 한 곳에 정신을 집중하기가 쉽지 않다. 몸은 피곤에 전다. 긴 잠 속으로 죽은 듯 빠져들기를 바라지만 그렇게 쉽던 일이 더 이상 쉽지 않게 되었다.” - 구본형


분명치 않은 이유라고는 했지만 구 선생님은 ‘모호함’과 ‘불안’이라는 단어로 마흔의 불면을 회상했다. 불면은 피할 수가 없었다. 그는 현실을 받아들였고 어느 정도는 불면을 즐겼다. 한밤중에 일어나 음악을 들었고 고독을 즐겼다(그때 바흐의 무반주 첼로곡을 좋아하게 되었다). 때때로 미래를 구상했다(마음 속 가장 먼저 떠오른 모습이 저술가였다).


불면이라는 불청객을 창조의 시간으로 전환시키는 선생님의 모습은 부러움과 위로를 동시에 안긴다. 불면증이 안긴 극도의 피곤한 일상을 지내셨으리라 생각하니 일종의 동질감이 먼저 느껴졌다. 글로 표현된 선생님의 불면은 막연한 ‘불쾌감’이나 ‘불안감’이었지 극심한 고통이나 외로움은 아니었다. 같은 불면증 환자로서 그가 처한 불면의 등급(?)이 내심 부러웠다.


불면증에 등급이 있다면 수면의 양과 질뿐만 아니라 마음의 상태도 감안해야 하리라. (내면의 힘겨움으로만 따지면) 고민으로 잠이 오지 않는 경우는 3등급, 불안으로 잠이 오지 않음은 2등급이 되겠다. 고통 때문에 잠이 달아났다면 1등급이다. 고민, 불안, 고통의 구분선이 명료하게 존재하진 않겠지만 내게는 선연하게 차이가 느껴지는 세 단어다.


심장이 뛰고 마음이 고통스러워서 밤을 꼬박 새거나 새벽에서야 잠깐 눈을 붙이는 일은 고역이다. 뜬 눈으로 푸르스름한 새벽을 맞이하는 날엔 하루 종일 몽롱하게 지내게 된다.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하다가 정신을 놓친다. 내려야 할 지하철역을 지나치기 일쑤다. 거리를 걷는데도 줄음이 쏟아진다. 요즘의 내 일상이다. 불면의 밤들을 벌써 3개월째 보내고 있다.


잠을 달아나게 만든 고통과 날마다 동행해야 한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고통스럽다. 불면의 원인은 두 가지다. 상실의 슬픔 그리고 원통함이다. 상실의 괴로움이야 여러 번 체험하며 알아(?) 왔지만 억울함을 안고 사는 일이 이리 고통스러운지 미처 몰랐다. 고통에서 헤어나려고 수없이 다짐하지만 매일같이 쓰러지고 패배한다. 하루하루가 링이고 나는 날마다 패하는 권투 선수다.


대개 두세 시에 깬다. 잠이 깨면 좀처럼 다시 잠들지 못한다. 뒤척이다가 결국엔 일어날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다. 그때부터 미명이 밝아오기 전까지의 서너 시간이 힘들다. 불면으로 맞는 새벽은 괴롭기 짝이 없다. 몹시 피곤하여 몸을 누이지만 눈을 감으면 잠이 달아난다. 온 몸을 몽둥이로 맞은 것도 같고 온 몸이 경직되어 한없이 뒤틀리기도 한다.


아침이 밝아 의식이 깨어나면 몸의 통증도 얼마간 사라진다. 눈이 시리고 몸이 찌뿌듯하지만 새벽의 몸 상태에 비하면 한결 낫다. 다행하게도 일주일에 하루 이틀은 네 시간 이상을 잔다. 여러 날을 연속으로 4시간 이상씩 잤던 적도 3개월 중 두 번쯤 있었다. 이것이 전부다. 나머지 날들은 괴로운 불면의 밤들이었다. 그제도 어제도 그런 날이었다.


잠들지 못하는 시간을 생산적으로 보낸다면 얼마나 좋을까? 쉽지 않은 일이다. 의식이 완전히 깨기 전에는 피곤에 전 몸이 따라주지 않고 의식이 깨어나면 마음이 도와주지 않는다. 몸은 불면으로 파김치처럼 시들어 있고 마음은 상실감과 원통함으로 쑥대밭이니까. 시간을 생산적으로 보내기란 아직 요원하다. 오늘 하루의 생존이 우선이다.


계획도 성찰도 무의미하다.

절실한 바람만 있을 뿐.


3개월 후 : 일상을 회복한다.

2개월 후 : 내 삶과 화해한다.

1개월 후 : 상실을 받아들인다.

오늘 : 살아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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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게 ‘사는’ 일은 만만치 않지만 행복을 ‘맛보는’ 일은 어렵지 않다.


내면에 가득한 슬픔에 침잠하는 대신 작지만 확실한 기쁨을 창조하면 된다. 상실과 고통이 무슨 의미인지 묻는 대신 서랍 하나를 열어 깨끗이 정리하고, 대충 온 몸에 물을 끼얹는 대신 뽀득뽀득 비누칠 샤워를 정성스레 하는 일은 내게 행복이다. 행복이 깃들면 그 기쁨의 감정을 잡아채어 잠시 음미한다. 맛난 디저트나 그윽한 차를 맛보듯이 온 몸의 감각을 열어 향유하는 것이다.


‘아! 좋다.’


내 안에 슬픔과 외로움이 가득한데도 하루에 한 번은 이렇게 기쁨을 만끽한다. 행복한 삶이라고 해서 눈물이 없지 않듯 힘들고 불행한 삶이라 해서 웃음이 없지 않다.


오늘 선택한 행복은 조식이다. 할 일이 많은 날이라 간편하게 아침을 먹을 법도 했지만 느긋하게 조식을 즐기기로 마음먹었다. 조바심을 내려놓고 한 시간을 뚝 떼어냈다. 여유롭게 아침 식사를 향유했다. 갖가지 야채와 계란 요리를 먹었다. 커피 세 잔을 마시며 하루키의 소품 세 편도 읽었다(단편집 『반딧불이』에 실린 <세 가지의 독일 환상>). 마지막 커피를 마시며 하루를 계획하고 나니 딱 한 시간이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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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진정으로 꽃피는 시기는 마시고 싶은 만큼 마음대로 실컷 술을 마실 수 있는 기간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말이다. 그의 진지한 인생론은 아니다. 젊은 날 회상을 기록한 짧은 글에서 지나가듯이 던진 문장이니까. '젊은 날의 정열과 체력'을 향한 그리움이랄까 애틋함이 느껴진 글이었다. (그는 다른 글에서 자신의 첫 번째 좌우명은 “건강”이라고 썼다.)


진지한 발언이 아닌 줄 알면서도 짚어 두고 싶다. “어느 연령대를 살든 인생이 꽃필 수 있다!”고. 내가 이 말을 실제로 믿는지 아닌지는 아직 모르겠다. 이제 막 반평생을 살았을 뿐이니 정말 모르겠기도 하고, 한편으로 하루키의 말에 깊이 공감하는 바도 있어서다. 오십 대에도, 칠십 대에도 인생이 꽃필 수는 있겠지만 노년의 활기와 정열은 젊은 날의 그것과는 미세하게(또는 눈에 띄게) 다르니까. 


하루키는 나이 듦을 받아들이며 살았다(그렇게 보인다). 받아들이지 못했더라면 소설은커녕 별다른 삶의 결실 없이 상실감과 외로움에 온 몸이 산화되었으리라. 이런 추측은 그가 젊은 날에 쓴 산문집을 읽으며 형성된 것이다. 그는 이별에 몹시 아파했고 죽음을 인식하고 살았으며 상실에 자주 고통스러워했다. 본인의 경험 얘긴 없었지만 자살에 대한 언급도 잦았다. 쓸쓸한 내용이 많았지만 그 글들을 읽으면서 하루키에 대한 신뢰가 깊어졌다.

 

하루키가 나이 듦을 인정해 가면서도 젊음을 그리워하는 모습에 마음이 움직였다. 서른 살 청춘이 “내가 너무 나이 든 것 같아”라는 말하더라도 하루키는 “나는 마흔이야”라고 핀잔을 주며 상대방의 감성에 찬물을 끼얹진 않을 것 같다. 하루키는 스물한 살에도 자신의 나이 듦을 애석해했다. “스물한 살의 나이는 충분히 젊지만 이전만큼 젊지는 않다. 스무 살이 젊음의 기점이기 때문이다.” 


하루키는 젊음의 상실을 무서워했다. “우리는 해마다 날마다 나이를 먹어간다. 때때로 나는 한 시간마다 나이를 먹어가는 기분조차 든다. 걱정스럽게도 그것은 진실이다. 무섭다.” 나이 먹는 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지인이 떠오른다. 그에 따르면 하루키 같은 사람은 ‘지나치게’ 예민하다. 그렇기도 하겠지만 ‘지나침’은 종종 ‘깊이’의 재료가 된다. 이것은 지나침에 대한 ‘옹호’가 아니다. 타고 난 성향을 어찌할 수 없음에 대한 ‘이해’다.

 

대답이 뻔한 질문 하나. ‘나이 듦을 무서우리만치 생생하게 인식하는 감성 덕분에 영혼을 울리는 문장이 탄생하는 게 아닐까?’ 그리고 하루키를 향한 동경과 주관적인 감탄 하나. ‘그토록 무서워하면서도 살아내었구나, 그는 결국 살아남았구나!’ 나이 듦에 심드렁한 사람보다는 예민한 사람의 생존이 어렵고 드물다. 그래서 반갑다. 그들에게 귀를 기울이게 된다. 인생길을 걷다 쓰러진 자리에서 교훈과 통찰을 주워 일어났을 테니까. 아프면서 깊어졌을 테니까.


사족도 하나. 오랫동안 ‘무라카미 하루키’를 (하루키가 아닌) ‘무라카미’라 불렀다. 언급하는 자리에 따라 ‘무라카미 씨’라고 말하기도 했다. 웬만큼 친하지 않고서는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는 일본 문화를 들은 이후로 그의 책을 읽지도 않으면서 '하루키’라 부르기가 민망하고 어색했던 것이다. 오늘 부로 내 마음 속에서 ‘무라카미 씨’는 그냥 ‘하루키’가 되었다. 때때로 이런 일이 벌어진다. 한 사람은 쓰고 다른 한 사람은 읽음으로써 교감이 일어난다. 한 번의 만남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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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음을 참으며 3월을 지냈다. 4월 2일 어머니 기일이 되면 엄마 묘 앞에서 한 번 실컷 웃자고 생각하면서 나를 달랬다. 4월의 절반이 지나가고 있지만 나는 아직 그 '한 번의 실컷'을 감행하지 못했다. 내 인생에 벌어진 일들을 직면하지 못하고 있다.

 

내게 필요하다 싶어 집어든 책들은 한결같이 이렇게 말했다. "삶의 고통에 직면하라!" 조언을 좇고 싶은데도 견뎌낼 여력이 없다. 가슴이 미어져 책을 내려놓고 만다. 얼른 다시 읽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그렇다고 마냥 세월을 보낼 수도 없다. 


나에게는 헤어진 연인과의 추억을 정리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아픈 마음을 보다듬고 그녀를 축복하고 내 시선을 앞으로의 날들로 돌리는 리추얼의 시간이 절실하다. 매주 시도하지만 번번이 포기한다. 아직은 너무 아프다. 매주 기대를 품는다. '이번 주말엔 가능하지 않을까' 


조심스러움과 담대함을 양손에 하나씩 움켜잡고 내 마음의 방을 두드려 봐야겠다. '상실의 방'이라 부르는 그 공간에는 슬픔, 아픔, 회한, 고통 그리고 한 움큼의 희망이 들어차 있다. 용기를 내어 본다. '똑똑. 나는 준비됐어. 마음아, 너는 어떠니?' (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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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을 ‘살아낸’ 자코메티>
- 자코메티 전시회를 다녀와서 (1/3)


1.
전시장에 들어서면 브레송이 찍은 사진 한 장과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작가 연보를 만난다. 비 오는 날 자코메티가 코트를 머리까지 올려 쓴 채로 걷는 모습을 담은 사진이었다. (브레송답게 그야말로 '결정적 순간'을 찍은 사진이었다.) 내리는 비에 아랑곳하지 않고 보행을 시작한 자코메티! 다른 행인은 없었다. 약간의 쓸쓸함, 왠지 모를 처연함, 왜 우산이 없을까 하는 궁금함... 그리고 걸어가는 자코메티! 



2.
작가 연보에서부터 감동했다. 1926년 자코메티는 자신의 작업실에 정착했다. 연보는 이후 20년을 소개하지 않았다. 곧바로 1946년으로 갔다. 길고 날씬한 독자적인 스타일을 창조했다는 1946년으로! 20년 동안 이어졌을 작업실에서의 수련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갔다. (자코메티의 모델이자 자코메티 평전을 저술한 ‘제임스 로드’의 글을 여럿 읽은 덕분이다.)


나에게 예술가란, 외부의 명성이 아닌 자신만의 기준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그 기준을 향한 끝없는 수련을 자기 삶으로 받아들인 사람이다. 기꺼이 받아들이는지, 필연으로 자기를 설득하는지는 상관없다. 중요한 건 예술을 향한 끝없는 정진이니까. 과정이 있을 뿐 완성은 없다. 자코메티는 제임스 로드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림이란 그리면 그릴수록 점점 더 끝내는 것이 불가능해지는 겁니다."


3.
표현 양식을 다듬고 벼리어서 자신만의 스타일을 창조하는 것이 목표라면 목표겠다. 천착하고 수련해야 하리라! 흉내로는 스타일에 이를 수가 없으니까. "스타일은 흉내와 더불어 죽는다. 반면 양식은 흉내내기의 네트워크를 통해 공고해진다." 철학자 김영민 선생의 말이다. '단독자적 체취'가 묻어나야 스타일이다. 스타일이 곧 그의 실력이자 존재다.


20년을 건너 뛴 연보를 보면서 음미한 생각이다.


4.
자코메티는 내성적이었다고 한다. 나무, 바위, 동굴 등 무생물에 특별한 감정을 느끼며 친구 삼았다는 전시회 벽면에 새겨진 텍스트를 읽으며 반가웠다. ‘아, 이 동질감!’ 묘한 공감을 느끼면서도 그가 나보다 더 내성적인 인물일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내성적’이라는 말에서 편안함과 동질감을 느끼면서도 이 단어가 적잖이 싫다.


5.
아버지 ‘지오반니 자코메티’는 저명한 화가였다. 아들을 경제적으로 든든히 후원했을 뿐만 아니라 예술적 가르침도 풍요로웠다. "화가란 제대로 볼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리고 미술을 공부하는 건 곧 잘 보는 법을 배우는 것이란다." 아버지의 말이 내게도 따뜻하게 들렸다.


자코메티 여섯 가족이 찍은 사진을 보았다. 다른 가족의 시선이 카메라를 향하는 것과 달리 어린 알베르토와 어머니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어머니는 평생 자코메티의 든든한 정신적 후원자였다고 한다. 자코메티는 ‘부모 제비뽑기’에서 운이 상당히 좋았던 셈이다.


6.
"우리는 모델을 우리가 아는 대로가 아닌 우리가 보는 그대로 그려야 한다. 단순히 보이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상대에 대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걸 모두 잊어버려야 한다." - 자코메티


감각한 대로 표현하기란 얼마나 어렵던가! 선입견과 소문에 의해 왜곡된 인상을 지워 버리고 지금 눈앞의 모습 그대로 바라보는 일 그리고 내가 보았던 그대로 표현하는 일! ‘감각한다는 것’ 그리고 ‘표현 양식’이야말로 예술의 본질임을 자코메티의 생각을 통해 다시금 확인한다.


7.
이사벨! 자코메티의 여러 뮤즈 중 캐롤린과 함께 가장 치명적인 여인이다. 자코메티는 이사벨에 대해 “남자를 삼켜버리는 여자”라는 후일담을 남겼다. 매혹적이지만 인격적이지는 않은, 그래서 만나면 안 되는, 엮이고 싶지 않은, 그래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여인들이 세상에는 분명 존재한다. 예술가의 뮤즈는 두 종류인 걸까. 선한 쪽과 악한 쪽! 이런 생각도 해 본다. 어쩌면 가장 강력한 뮤즈는 선악과는 별개로 강렬한 성적 욕망을 안기는 뮤즈가 아닐까, 하고.


8.
"나에게 숭고함은 예술 작품 속이 아닌 정확히 '살아 있는 사람들의 얼굴' 속에 있습니다." - 자코메티


이번 전시에서 가장 울림이 컸던 말이다. 마음속의 생각과 공명한 것이다. 읽자마자 내 안에도 예술 세포란 게 있다면 그것들이 모두 깨어나는 기분이었다. 당장 달려가 내 작품에 매진하고 싶을 정도였다. ‘작품’이라고 표현할 정도까진 아닌 글이지만, 이럴 땐 ‘누구나 예술가’라는 의심쩍은 슬로건으로 나를 둘러싸고 싶어진다.


아래에 자코메티와 공명한 생각을 적어 둔다.


‘예술가들은 세상 도처에서 숭고함을 발견한다. 세상에 깃든 숭고미를 자신만의 스타일로 표현하기 위해 정진한다. 표현 기술이 부족하다 싶을 때마다 끊임없이 기술을 수련한다. 발견이 먼저고 표현은 나중이다. 위대한 예술가일수록 깊이 감각하고 창의적 양식으로 표현하리라. 역설적이게도 감각이 깊을수록 표현은 힘겨워진다. 표현하기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치열함 역시 (근대의 관념이긴 하지만) 예술가의 모습이리라. 가까스로 표현하고 나면 사람들은 그걸 예술 작품이라 부른다. 정작 예술가에겐 여전히 미완성인, 그래서 과정에 불과한 오브제인데 말이다.’


외고 있던 자코메티의 말 몇 마디 중 하나가 떠올랐다.

“이거 정말 제대로 안 되네요. 그렇지만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끝날 수 있는 일도 아닌데요.”


9.
"내가 보기에 자코메티의 예술은 모든 존재와 사물의 비밀스런 상처만을 찾아내어 그 상처가 그들을 비추어준다." - 장주네


한쪽 벽면에 쓰인 글을 그대로 적었다. 우선 비문이다. 발언자 표기도 띄어쓰기가 잘못 됐다. 장 주네(Jean Genet)는 저명한 소설가 답게 걸출한 자코메티론을 남긴 인물이다. 인용문 만으로는 의미 전달이 쉽지 않을 것 같아 전후 문장을 옮겨 둔다. (이미지 참조)


10.
“형태가 아닌 기운을 그리는 예술가”


흔히 ‘예술=작품’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예술이 반드시 작품인 것은 아니다. 작품이 빚어낼 분위기까지 창조하려고 애쓰거나(자코메티, 이우환) 작품과 공간의 관계마저 고려하는 예술가들이 존재한다(루이스 칸의 솔크연구소). 어원적 의미로도, 예술은 작품보다 행위에 가깝다.


그렇다면 예술이란 무엇인가? 자신이 ‘감각’한 것들을 ‘표현’하기 위해 끊임없이 고뇌하는 창의적 ‘행위’가 예술이다. 그것이 물체든, 영감이든, 기운이든, 관념이든 어떻게든 감각한 대로 표현하려고 정진하는 이들! 이번 전시가 감동적이었던 이유는 자코메티의 삶 자체가 하나의 위대한 예술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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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은 벚꽃이 피고지던 무렵 떠나셨습니다. 5년 전 오늘입니다. 존경하던 분이라 여전히 마음 한켠엔 그리움과 아린 슬픔이 있네요. 오늘은 지난 기일들과는 달리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채로 하루가 훌쩍 지났습니다. 오늘을 잊은 건 아닙니다. 하루 종일 인식하고 있었지만 그저 바쁘게 보냈습니다. 수원으로 강연을 다녀왔고 저녁엔 사람들을 만났죠. 반쯤은 의도한 일정이었네요. 아직은 '상실'이라는 아픔을 직면하기가 두려워던 겁니다. 


밤늦게 집으로 돌아오면서 선생님의 책 한 장을 읽지 않고 사진 한 번 바라보지 않고 보낸 하루를 후회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에는 선뜻 대답하지 못하겠네요. '오늘 하루를 아침부터 다시 산다면 선생님이 잠드신 곳으로 찾아뵐 수 있을까?' 다시 생각해도 모르겠습니다. 내 선택을 후회하면서도 달리 선택할 힘은 없는 겁니다. 달갑지 않은 현실이지만 현실의 내 모습을 인정하자고 생각하는 요즘입니다. 


내면 속 상실의 방을 지혜롭게 정리하고 명랑한 공간으로 가꾸고 싶은데··· 아직은 때가 아닌 건지 아니면 내 영혼이 연약한 건지 궁금합니다. 고통에 직면하자니 여전히 아픕니다. 일상이 멈출 만큼 힘겹습니다. 마냥 외면할 수도 없는 노릇이죠. 굳이 현자들의 목소리를 운운하지 않더라도 외면, 기만, 엄살, 등은 모두 고통을 대하는 지혜로운 태도가 아니니까요. 우선은 두 자아로 살아보렵니다. 상실을 아파하는 자아 그리고 일상을 살아가는 자아로 내 마음을 모두 살피는 겁니다.


머잖아 고통을 직면해야죠. 상실에서 깨우친 배움을 삶의 에너지로 전환시킬 날을 기대하면서 두 자아를 통합해야겠지요. 제가 기대하는 통합이란, (수잔 제퍼스의 말처럼) 상실의 경험을 오늘로 불러와 죽음과 이별을 삶의 재앙으로 여기지 않고 함께했던 시간들을 행복하게 추억하는 겁니다. 그리하여 내 삶에 벌어진 슬픔과 화해하여 전보다 조금 그윽한 사람이 된다면 더없이 좋겠네요. 조급하진 않아야겠죠. 서두름은 영혼의 일을 다루는 도구로선 적절치 않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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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박효신의 <야생화>를 오늘 하루 종일 들었다. (2014년 3월에 발매된 동명 앨범에 수록된 곡이고 유명한 노래인데 진자하게 감상한 건 오늘이 처음이다.) 스무 번은 들은 것 같다. 가히 이 노래만큼은 완벽한 경지에 올라 부르는 느낌이 들었다. 지독할 정도로 연습하고 노력한다는 박효신! 그에게서 이상은의 노래와는 다른 미덕을 만났다. 완벽주의를 극복하는 또 하나의 길을 조우한 느낌도 든다. 다름 아닌, 일을 작게 쪼개어(노래 한 곡) 치열하게 노력할 것! (일기에 적은 글도 이곳에 옮겨 둔다.) 


<전율과 감탄을 안긴 뮤직비디오다. 흠집이라고는 없는 보석을 만나면 이런 느낌일까! 넋을 잃은 채로 그의 표정과 동작을 쫓아갔다. 목소리로 예술을 빚는 한 장인의 모습에 감격하느라 가사도 시간도 잊었다. 눈앞의 사위는 사라졌고 노랫말도 들리지 않았다. 아... 박효신!>

2. 
무려 20일 만에 조르바
집필을 재개했다. 프롤로그를 고쳐 썼다. 독자와의 첫 만남이라는 점에서 이전 글보다 나아졌다. 저자 중심에서 독자 지향으로 바꾸려고 노력한 결과인데 내일 아침에 일어나 읽을 때에도 여전히 좋은 느낌이 들었으면 좋겠다. 쓴 직후엔 마음에 들었던 글도 이튿날 읽을 때에는 허접하게 보이는 경우가 허다해서 하는 말이다.


3.

2018년도에 읽었고 앞으로 읽고 싶은 책들을 정리했다. 훌륭한 책들은 정말이지 많다. 최근에 읽은 책들 중에도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아테네의 변명』,『인간성 수업』,『지식의 착각』은 전율 그 자체다. 문제는 시시한 책들이 더욱 많다는 사실이다. 다행스러운 일은 이류 도서를 읽는 유익도 있다는 점인데, 이에 대해 글을 한 편 써 두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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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강남 수업을 마치고  (0) 2018.03.28
Posted by 보보

두통으로 이틀을 앓았습니다. 목소리가 완전히 나가버린 기간마저 합치면 나흘 동안 정상적인 컨디션이 아니었네요. 오늘도 하루 종일 몸져 누워 지내다가 저녁에야 몸을 일으킬 수 있었습니다. 내친 김에 저녁 수업도 청강하고 왔지요. 행여 결석할까 걱정했던 수업인데 다녀오니 기분이 좋네요. 청강하러 가는 길에도 혹시 아플까 염려했지만 수업 듣고 온 지금 저는 멀쩡합니다. 아직 목소리는 제대로 나오지 않지만 두통은 많이 가셨습니다. 머리가 안 아프니 살 맛 납니다.

올해 들어 벌써 두 번째 두통인데 모두 아프지 않았으면 좋았을 날이었네요. 하루는 제 생일이었고(이 날 하루 종일 문 밖으로 나가지도 못했습니다) 다른 하루는 엄마 기일이었거든요(바로 어제였죠). 생일은 아픈 채로 보내어도 아쉬움이 없었지만 어머니 기일 날에 하려던 일을 못한 건 속상합니다. 엄마 앞에서만 울려고 한 달 내내 참고 살았는데 정작 기일이 되기 이틀 전부터 몸을 사려야 했습니다. 컨디션이 급격이 떨어졌거든요. 사실 울 준비가 되어 있지도 않았고요.

'한 달 내내 몸을 혹사한 대가려나?' 글을 쓰기 전까지는 들지 않았던 생각이 불현듯 머리를 스쳐가네요. 두통의 직접적인 원인은 양평 아카이브의 차가운 바닥에서 잠시 졸았던 탓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떨어진 체력이 진짜 원인인지도 모르죠. 마침 올리버 색스의 <안식일>이라는 글마저 떠오르는 걸 보니 4월에는 다른 날과 구별된 하루를 떼어내어 쉼과 휴식을 누려야겠습니다. 그 날만큼은 부디 깨끗한 공기를 마실 수 있기를! (올해 미세먼지는 정말 최악이네요.)

통증이 제 몸을 떠나니 내일이 몹시 기다려집니다.
며칠 동안 손을 놓았던 일들은 저를 기다릴 테고요.
기다렸던 사이의 만남이어서일까? 은근히 설레네요.
자고 일어나면 책부터 마음껏 읽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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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2018년 3월이 지나갔습니다. 꽤나 바빴 조금은 고단했던 한 달이었습니다. 3월을 돌아보는 첫 마디가 '수고했다'라는 혼잣말이었네요. 자위를 건넨 이유는 간단합니다. 열심히 살았거든요. (열심이라니! 스스로를 늘 못마땅해 하는 내가 열.심.히. 살았다고 말하다니! 참 낯설고만.) 한 달 남짓 동안 3kg이 빠졌고, 자주 피곤했음에도 불구하고 부지런히 공부했습니다. 정성을 다하여 수업을 진행했고요. 한 달을 수놓았던 단어들을 나열해 봅니다.


인문정신 수업(달빛강남), 다섯 개의 수업 청강, 새로운 공부 인연들, 『인간성 수업』, 와우수업 종강, 북도슨트 자원봉사, 미세먼지, 플로라이팅 수업 종강, 카프카 커넥션 등등. 


1.

달빛 강남학파! 결국엔 이 분들과도 수업을 이어가게 됐습니다. '결국'이라고 표현한 것은 개인적인 갈등이 있었기 때문이죠. 한 달만 수업하자 VS 함께 공부를 이어가자, 이 사이에서 고민했던 겁니다. 수업을 운영하는 데에는 적잖은 시간이 소요됩니다. 이는 제가 수업만 진행하는 게 아니라 커뮤니티처럼 운영하기 때문입니다. (와우리더의 성향이 조금 묻어나는 거죠.) 수업료를 올릴까, 4월에는 수업을 하지 말까, 이런 고민들을 하다가 결국엔 지금까지 진행해 온 모습 그대로 함께 공부를 이어가자고 마음 먹었습니다. 그만큼 저도 즐거웠습니다. 유쾌한 분들, 공부하는 분들, 경청하는 분들이 섞여서 제게 보람과 힘을 안겨 주었네요. 저의 책임감 또는 사명의식(거창한 단어를 쓰고 싶진 않지만 제 마음과 가장 가까운 표현이긴 하네요)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인문학을 공부하시겠다는데 내가 읽고 배우고 익혀서 할 수 있는 데까지는 가 보자' 하고 생각한 거죠.  개인적 소감을 덧붙이자면 총 4회 수업 중 한 번은 수업을 마치고서 괴로웠고 한 번은 수업 이튿날까지 만족스러웠습니다. 과도하게 청중을 지향했더니 괴로웠고 나다운 스타일로 진행했더니 행복했다는 느낌입니다. 


2.
많은 수업을 청강했던 3월입니다. 매주 네 다섯 개의 수업에 참석했지요. 셋째 주부터는 북도슨트 자원봉사 교육(주 2회)마저 더해져 연일 피로감을 달고 살았습니다. 주 7회 수업은 정말이지 무리였다고 생각합니다. (4~5개의 수업을 들었던 경험이 있긴 합니다. 3년전 라틴어를 배우고 아도르노 강좌를 듣던 때에도 문학 수업 등 여러 개의 수업을 들었죠. 돌이켜보니, 삶이 힘겨울 때마다 저는 독서와 공부에 집중하면서 세월은 기다렸네요.) 몹시 고단했던 날도 있었지만 결석은 하지 않았습니다. 수업이 시시해서 수강료를 날린 셈이라 여겼던 강좌 하나를 제외하면(이 수업은 전체 6주 중에서 한 번만 참석했네요) 모든 수업에 출석했고요. 가장 유익했던 수업은 '카프카 커넥션'입니다. 카프카와 지적 영향을 주고받은 거장들을 살폈는데(도스토예프스키, 발저, 카뮈, 데리다) 카프카로 가는 길을 다양하게 알게 된 느낌이네요. '그리스 문명' 수업을 오가는 길에서는 지적 희열이 피곤함을 무찌르는 경험을 하기도 했습니다. 수업을 들으며 가는 발걸음이 무거운데도 마음이 설레는 제 자신을 보면서 저의 '인문정신' 수업을 들으러 오는 분들도 '이리 설레었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도 했네요.


3. 

마사 누스바움의 『인간성 수업』이 번역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던 날이 생생히 기억납니다(한 달이 더 지나면 희미해질 테죠). 조르바 원고를 탈고하지 못한 게 아쉬울 정도로 이 책이 반가웠죠. 실은 많이 흥분했습니다. 집필하던 원고를 얼른 마무리하고 싶었습니다. 리버럴 아츠 집필에 뛰어들고 싶었거든요. 리버럴 아츠 원고는 초고를 마무리했고 퇴고만 하면 되는데 그러기 전에 몇 권의 리버럴 아츠 영어 원서를 읽을 계획이었습니다. 그 계획에 있던 책 중의 한 권이 『인간성 수업』이었으니 반가울 수밖에요! 나는 유혹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조르바 원고를 뒷전으로 하고서 틈틈히 『인간성 수업』을 읽은 겁니다. 제게 많은 위로를 안겨 준 책입니다. 통찰과 인식을 얻을 거라 생각했는데 위로라니요! 이는 완전히 예상 외의 결실입니다. 새로운 인식을 배웠다기보다는 지금까지의 공부를 정리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믿음직한 선생으로부터 '앞으로도 그리 공부하고 살아온 대로 살아가세요'라는 격려를 받은 기분이었죠. 특히 와우 수업을 진행한 방식이나 공부 목표가 저자의 철학과 맞닿아 있었습니다(수준 차이가 엄청 났을 뿐). 마사 누스바움이 『시적 정의』에서 했던 다음의 말을 보면 와우들도 동의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나의 중심 주제는 타인의 삶을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상상할 수 있는 능력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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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난 월요일에 4주간의 인문정신 수업이 또 하나 끝났다. (강남역 인근에서 모여 강남학파라 불리는 모임이었다.) 인문 소양을 함양하는 실제적인 길을 보여주려고 노력했고 그 제안이 인문학의 본질과 동떨어지지 않기를 열망했다. 나의 목표를 달성하려면 수업 준비는 지극히 인문적이어야 했고 실제 진행에선 인문학의 효용에 초점을 맞춰야 했다. 인문학만이 주는 효용을 누리려면 역설적으로 인문학의 본질에 바짝 다가서야 하는 것이다. 어느 정도는 실현한 것 같아 기뻤다.


무엇이 흡족했나.


1) '인문학의 안팎을 살핀다'는 수업의 설계가 마음에 들었다. 종로 수업에서부터 시작된 이 설계 덕분에 기업이나 대학에서의 인문학 특강도 좀 더 명료하게 진행할 수 있게 됐다. 2) 수업에서는 현장의 분위기를 반영하고 유인물은 최초의 설계대로 준비한 것도 마음에 들었다. (청중 분들은 이러한 방식을 낯설게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3) 공부 인연들끼리 친밀해졌다는 사실도 나를 기쁘게 한다. 언젠가 함께 답사를 떠날 정도의 유대감을 쌓아가고 싶다. 4) 특히 4주차 수업이 나를 행복하게 했다. 나다운 내용이었고, 나다운 진행 방식이었다. 인문학 공부는 인간성을 드높이고 연대의식을 함양하는 공부가 되어야 한다는 믿음을 담아낸 수업이었다. 5) 개인적으로는 8주 동안 두 번의 인문정신을 진행하며 <인문정신을 권함> 원고를 어떻게 쉽게 풀어쓸 것인가에 대한 힌트를 얻었다. 뜻밖의 반가운 수확이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다.


1) 인문학이 일상과 동떨어진 학문이 아니라는 점은 설득했는지 모르지만 인문학 공부가 즐겁다는 사실은 보여주지 못한 것 같다. 이어지는 수업에서는 '인문학 공부의 즐거움'을 안겨 드리고 싶다. 고민할 대목이다. 2) 종로와는 달리 강남에서는 인문학 '밖'에 관한 담론을 많이 다루지 못했다. 리버럴 아츠와 후마니타스의 역사 대신 '인간성 수업'에 관해 이야기하기를 선택한 것이다. 이건 아쉬움이기보다는 앞으로의 수업을 위해 기억해 둘 점이겠다. 3) 도서 추천을 더 명쾌하고 간단하게 했어야 했나? 수업을 진행한 이로서는 '더 공부할 책'을 분명하게 추려내어 자세하게 설명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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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