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시. 아늑한 실내. 창문 밖 서쪽 하늘의 석양. 흩날리는 진눈깨비. 이어폰으로 흘러나오는 재즈. 그리고 한 권의 책! 이 정도면 짜릿한 독서가 이뤄져야 했으리라. 독서의 즐거움에 풍덩 뛰어들어 ‘아, 내 사랑 책이여’ 라고 흥겨워했어야 했다.

 

예상은 종종 빗나가기 마련이고 완벽한 상황에서의 결과도 때론 시원찮은 법! 나는 십오 분 만에 손에서 책을 내려놓았다. 눈동자와 주의력이 동행하지 않았던 것이다. 눈은 문자를 읽는데 머리가 따로 놀았다. 억지 독서는 억지로 먹는 음식만큼이나 맛없다.

 

부실한 독서의 원인은 둘 중 하나일 터! 책이 시시하거나 독자가 산만했거나. 이번엔 완벽하게 독자 탓이다. 지구상에 시시한 책은 무지막지하게 많지만 내 손에 든 책은 독보적인 명저다. (저자가 몽테뉴 급이라고만 밝힌다.) 게다가 이 책의 앞선 내용에서 나는 끊임없이 전율했다.

 

책을 내려놓고 마음을 가라앉혔다. 눈을 감고 심호흡을 했다. 의자 등받이에 엉덩이를 바짝 붙였다. 음악도 잠시 껐다. 마음속으로 읊조렸다. ‘나는 이제 책을 읽는다.’ 여러 번 되뇌었다. 기분이 차분해졌고 주의력이 충전됐다. 다시 책을 펼쳤고 한 시간 동안 책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몽테뉴의 『수상록』에는 ‘세 가지 교제에 대하여’ 라는 장이 있다. 그가 말하는 세 종류의 친교는 우선 사랑과 우정이다. 몽테뉴는 “아름답고 정직한 여성”과의 교제 그리고 “드물지만 귀중한 우정”을 언급하고 나서 이렇게 덧붙였다.

 

“세 번째는 책과의 친교인데 이것이 가장 확실하고 우리와 가깝다. 앞의 두 가지가 가진 장점을 따라갈 수는 없겠지만, 책과의 교제는 꾸준히 그리고 손쉽게 누린다는 장점이 있다.”

 

이 말에 동의하는 나로서는 종종 불만을 터트리는 책의 모습을 상상한다. 연인처럼, 지금 내 말에 집중하고 있는 거야? 또는 친구처럼, 너 오늘 너무 대충 입고 나온 거 아냐? 독서는 일종의 친교다. 책읽기가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을 땐 나는 자세와 마음을 가다듬는다. (과장하여 표현하자면) 친구나 연인을 만나는 것처럼.

 

그러면 독서력이 회복된다.

때론 형식이 내용을 이끌고

시스템이 마인드를 창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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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See you again>을 여러 번 감상했다.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영화배우 폴 워커를 추모하는 곡이다. 이미 수없이 들었던 노래다. 친구가 그리울 때면 하염없이 듣곤 했다. 가사가 마음을 어루만지면 나는 시공간을 떠난다. 추억에 잠기고, 때론 상상에 빠진다. ‘한 번만이라도 다시 만날 수 있다면…’ 하는 유의 이뤄질 수 없는 상상. 오늘이 그런 날이다.

 

어떤 날엔 뮤직비디오를 시청한다. 마지막 장면이 감동과 위로 그리고 슬픔과 아픔을 안긴다. (때론 마음도 손에 박힌 가시처럼 아프다.) 자신의 승용차에 앉은 두 친구! 따스한 눈빛을 교환하고 주행을 시작한다. 도로는 갈라지고 두 대의 승용차도 다른 길로 들어선다. 카메라는 이제 하나의 승용차만을 쫓아가면서 서서히 줌 아웃된다.

 

가슴이 먹먹해져서 창가에 섰다. 창밖을 바라보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하늘이 나를 이끈 느낌이랄까. 눈가에 물방울이 맺혔다. 눈물인가 보다. 무심하게 표현한 이유는 내 몸에서 나온 액체라 하기엔 왠지 이질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눈물을 흘리면서 나는 다짐하고 있었다. ‘상욱아, 구정 때 탈고한 원고를 들고 찾아갈게.’ 웬일일까. 신년의 기운 덕분인가.

 

작년 기일에 녀석의 사진을 보면서, 당분간 안 올 거라고 말했었다. 새로 출간한 책을 들고 오겠다는 다짐이었다. 녀석과의 사별로 삼년을 힘들어했다. 그런 모습은 친구도 바라지 않을 터, 나는 앞으로 다가올 날들을 잘 살고 싶었다. 친구에게 기쁜 소식도 전하면서 살기를 바랐다. “나, 책 출간했어.” 그나저나, 구정에 간다면 약속을 어기는 걸까?


찾아갈 때가 다가오는가 보다.

구정이든지, 어느 봄날이든지.


덧. 친구야, 너가 떠나고 3년 반이 흘렀다. 잘 지내냐?
(20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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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앞에 섰다. 방금 떠오른 2018년 첫 번째 태양을 바라본다. 설렌다. 오늘을 기다린 건 아닌데 반갑기도 하다. 태양이 세상의 동쪽을 비춘다. 건물은 해바라기가 된 마냥 햇빛을 받아 밝아졌다. 나는 환한 마음으로 노트에 새해 소망을 적는다. 하나씩 이뤄갈 때마다 명랑해질 내 인생을 생각하며. ‘2018년은 정말 환상적인 해로 살아보자!’

 

출간. <나는 조르바 학교에 입학했다>

탈고. <리버럴 아츠를 공부하라> 외 한 권

번역. <수잔 손택 평전>

독서. 수잔 손택 全作,『수상록』『포커스』

공부. 인지과학, 예술이론(미진사)

 

여행. 포틀랜드, 펠로폰네소스(그리스), 제주

와우. 와인시음회, STORY 매뉴얼, 유니컨 디너

공간. 아카이브 인테리어 작업, 중고물품 판매

행동. 인터뷰, 팟캐스트, 특강

관계. 가족여행, 블로그 독자의 밤, 와우수업

 

하루를 잘 살았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한 해를 계획했다. 가족이랑 통화하고 여느 때보다 좀 더 치열하게 운동했다. 오후엔 서쪽 하늘로 저무는 해를 지그시 내다보았다. 태양은 예술가였다. 온 하늘을 주홍빛으로 채색했다. 여의도 너머 서해 바다로 향하는 태양을 바라보며 나도 일상의 예술가가 되고 싶어졌다. 삶을 아름답게 만들어가는 예술가! (1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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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두 손 안에 붙잡아 두었는데

속절없이 빠져나간 한 줌의 모래

 

새해 계획, 다시 수립할 필요 없이

뚝딱 복사(Ctrl+V)하는 언짢은 놀이

 

모임

만나면 정교해지는 기하학적 필연이거나

만나도 허전한 우연을 쫓는 기이함이거나

 

은인

막차가 떠났나, 새벽녘 을지로의 물음을

하나 둘 챙겨 올리는 진짜 막차의 휴머니즘

 

나이

한 주 한 주 꾸준하더니 시나브로 550회

<무한도전>을 보던 이의 탄식, 언제 이렇게…

 

꿈, 빈둥거리고 기웃거리다 꺼뜨렸던

12월이면 밝아지는 마음속 불빛

 

희망

우리의 열망이 곧 우리의 가능성이라는 어느

시인의 말에 주억거리는, 회의를 머금은 전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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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독

 

"나의 벗이여, 너의 고독 속으로 달아나라! 너는 요란한 위인들의 아우성에 귀가 멀고 소인배들의 가시에 마구 찔려 상처투성이가 되어 있지 않은가. 

숲과 바위는 너와 더불어 기품 있게 침묵할 줄을 안다. 다시 한 번 네가 사랑하는, 저 넓게 가지 뻗은 나무처럼 되어라. 나무는 조용히, 그리고 귀를 기울이며 바다로 뻗어 있다. 

고독이 멈추는 곳, 그곳에서 시장이 열린다. 시장이 열리는 곳에서 배우들의 소란이 시작되며, 독파리들이 윙윙대기 시작한다." - 니체/정동호 역,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고독은 생산적이다. 고독이 꺼려지는 이유는 외로움과 착각하기 때문이고 자신과 놀 줄 모르는 까닭이다. 외로움은 고독만큼 창의적이거나 생산적이지 않다. 쓸쓸하고 적적할 뿐이다. 외로움은 인간의 실존이다. 나만 외로운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유대관계를 회복하고 자신의 외로움을 고독으로 전환하는 법을 익혀가면 된다.

 

고독과 외로움이 물과 기름처럼 구분되진 않으리라. 현재 누리고 있는 삶에 질에 따라서 눈 앞의 시간이 고독이 되기도 하고 외로움이 되기도 한다. 관계성, 의식, 삶의 만족도 그리고 기분에 따라 달라지는 법이다. 지금 외롭더라도 내일을 희망하면 되고, 희망을 실현키 위해 지혜로운 선택을 하면 된다. 

 

본론으로 돌아가자. 고독은 무엇을 생산하는가. 감사, 명상, 창의적 아이디어 등이 있겠지만 나에게 고독이란 무엇보다 성찰과 관조의 기쁨에 이르는 통로다. 연말에 고독의 시간이 필요한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곳곳에서 니체가 말한 시장이 열리기 때문이다. 

 

2. 모임

 

SNS엔 수많은 모임들 사진이 올라온다. 뜻깊은 모임이 어디 연말에만 가능하겠냐마는, 인간이란 함께하는 사람 뿐만 아니라 환경과 시기 그리고 공간의 영향을 받는 존재다. 시기와 타이밍은 중요하다. 모임 사진들을 보면서 느낀 단상 중 하나는 '연말은 근사하고 의미있는 모임을 가질 최적의 시기'라는 점이다. 

 

(페북 세계가 종종 그래왔듯이) 사진에는 허와 실도 있으리라. 사진은 진실의 일부다. 제외되고 편집되고 꾸며진다. 세상에는 즐겁지 않은 모임도 많다. 최근 와우팀원 한 명이 모임에 간다길래 이리 말했다. "지루하고 의미 없거나 또는 의외의 재미나 소득이 있거나 둘 중 하나겠네요." 후자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었고, 이왕 가는 김에 모임에 흠뻑 집중하길 바랐다. 절친한 이들의 모임이 아니라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모임이었기에 얼마간의 염려도 있었다. 

 

이튿날 그녀가 들려준 말은 이렇다. "정말 재미 없었어요. 지루해서 혼났죠. 그냥 친한 사람들끼리 어울려서 뻘쭘하기만 했네요." 기우에 그치기를 바랐던 걱정이었는데 현실이 됐다. 친한 이들끼리의 모임이 아니라면 준비한 손길이 세심하고 정성스러워야 하는데 듣자 하니 그것도 아니었던 모양이다. ('정성스러운 손길'을 생각하니 강민지가 떠오르네. 나는 그의 모임이라면 처음 만나든 아니든 기꺼이 추천한다.)

 

(온갖 가치있는 것들이 그렇듯) 정겹고 뜻깊은 모임은 그냥 주어지지 않는다. 감사한 분들이나 자신에게 소중한 사람들을 초대한 연말 모임을 정성스럽게 준비하면 어떨까. 혼자 지내기를 즐기는 한 와우가 친밀함에 대한 책을 읽고서 송년 모임을 기획하고 준비했다. "누굴 초대할까 생각하고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만들고 하나씩 준비하는데 정말 행복하더라고요." 그녀가 활짝 웃으며 한 말이다. 영화 <위대한 쇼맨>에서 채러티 바넘은 이렇게 말했다. "모두에게 사랑 받을 필욘 없죠. 곁에 좋은 사람만 몇 명 있으면 된 거예요." 편안하고 즐거운 대화를 나누는 모임은 우리를 얼마나 고양시키고 행복하게 하는가. 

 

최근 SNS에서 조에스더 대표의 '더애인' 송년 파티 사진을 인상 깊게 보았다. 열 명을 초대한 "조에스더의 애정인 모임"이란다. 공간도 마음에 들었다. (망원동의 작은 레스토랑 '공작'이었다.) 준비한 손길도 정성스러워 보였다. 참석하진 못했으니 이리 예상할 수밖에 없다. 그나저나 묘하다. 사진 가득한 포스팅 하나를 보았을 뿐인데 이리 글로 쓰고 나니, 쇼윈도 밖에서 상점 안의 초콜릿을 바라보는 아이가 된 기분이네. ^^

 

3. 영성

 

성탄절이 코 앞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한 날이다. 크리스마스 예배나 미사를 드림으로 신을 섬기는 시간만큼 성스러운 시간이 또 있을까. 우리는 때때로 파이프오르간이 빚어내는 경건한 음악보다 거룩한 존재가 된다. 위기에 처한 이들을 구하는 의인들,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하는 극소수의 정치가들만큼이나 진실로 예배하는 자들은 아름답고 거룩하다. 일상에서 추하게 살았던 이들의 예배라고 해도 가식이 아니다. 아름답게 살고자 하는 열망이다! 

 

종교인이 아니더라도 영성을 추구할 순 있다. 신을 구하는 마음으로(무신론자라면 신이라는 말을 섭리나 지혜 또는 사랑으로 바꿔도 좋겠다) 한 해를 돌아보고 새해를 소망하는 마음을 갖는 시간은 아름답다. 자신만의 시간을 갖더라도 성스러운 느낌이 드는 공간을 찾아보기를 권하고 싶다. 학제 간 연구인 '신경건축학'은 공간이 우리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사실을 다양한 연구 결과로 보여 준다. (콜린 엘러드의 『공간이 사람을 움직인다』) 극단적 예이긴 하나 카페보다 성당에서 기도 드리기가 쉽다는 말이다.  

 

종교인에겐 미안하지만 영성을 아주 개인적 차원으로 치환할 수도 있다. 존 나이스비트와 함께 『메가트랜드』를 저술했던 패트리셔 애버딘은 21세기를 주도할 메가트렌드로 '영성'을 첫째로 꼽았다. 그녀가 말하는 영성을 일상 용어로 풀면 정체성과 방향성에 대한 감각이다. 비전과 사명의 발견, 다시 말해 영적 성장이야말로 삶의 가장 큰 변화를 불러온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우리는 종종 자신의 방향을 점검할 필요가 있는 존재다. 돌아보고 내다보는 일은 연중 언제라도 시도해야겠지만, 한 해가 저물어가는 지금 실행하는 게 가장 유익하지 않을까.

 

4. 기쁨

 

여기 두 남자가 있다. 한 남자는 성탄절마다 기쁨에 차 올라 춤을 추고 탬버린을 친다. 이와는 다른 남자도 있다. 그는 연말이면 아쉬워하고 괴로워했다. 저물어가는 한 해를 보며 심장에서 이파리 한 장이 떨어져 나가는 기분을 느꼈고 암흑의 지옥으로 한발짝 다가섰다고 생각했다. 고심하고 주저하느라 행동이 빈약했다는 사실에 비참함에 잠기기도 했다. 전자는 그리스인 조르바고, 후자는 그의 두목 화자다. 

 

아이들과 함께 흥겹게 탬버린을 두들기다가 잠시 짬을 낸 조르바가 말했다. "두목, 무슨 생각을 해요? 얼굴이 똥색이오. 오늘 같은 날 나는 꼬마로 되돌아갑니다. 그리스도처럼 다시 태어납니다. 예수님은 해마다 새로 태어나지 않소? 나도 그렇지!" 화자는 서른 다섯이고 조르바는 예순 다섯이다. 그가 송년에도 기쁨에 빠져드는 비결이 뭘까? 조르바는 현재를 살았기 때문이다. 그는 오늘을 사는 사람이었다.

 

조르바는 눈앞의 현재를 붙잡았다. “나는 어제 일어난 일은 생각 안 합니다. 내일 일어날 일을 자문하지도 않아요. 내게 중요한 것은 오늘, 이 순간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나는 자신에게 묻지요. ‘조르바, 지금 이 순간에 자네 뭐 하는가?’ ‘잠자고 있네.’ ‘그럼 잘 자게.’” 한 해가 저물고 새해가 오는 즈음의 조르바라면 이렇게 말하리라.

 

“조르바, 지금은 어떤 시기인가? 성탄절이지. 그럼 예수님처럼 다시 태어났다고 상상하며 현재를 즐기시게. 조르바 지금은 언제인가? 연말이야. 그럼 올해가 완전히 다 가기 전에 가장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보내게. 지금은 또 언제인가? 새해가 밝았지. 그럼 얼른 새해 소원을 빌게. 한 살 더 먹었으니 더 멋진 꿈을 꾸시게나.” 그렇게 조르바는 예순 다섯 살에 만난 새해를 소원을 빌면서 시작했다. 지나간 일을 아쉬워하지 않았다. 다가올 일을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그래야 현재를 붙잡을 수 있다. 기쁨은 이러한 깨어있음에 깃든다.

 

과거와 미래의 좁은 틈 다시 말해 현재에 존재하는 이들에게, 신이 기쁨을 선사하리라.

Posted by 보보


“오늘날 첨단 디지털 기기들이 전 세계 사람들의 주의를 흩트려놓고 있다. (…) 디지털 기기가 요구하는 순간적인 관심이 아니라 스스로의 필요에 따라 선택하고 원하는 대상에 집중할 수 있는 능력, 즉 우리의 집중력은 심각한 위기에 처했다.”


저명한 대니얼 심리학자 대니얼 골먼이 자신의 저서 『포커스』 한국어판 서문에서 한 말이다. 우리의 집중력이 어떠한 현실인지 파악하기 위해 굳이 세계적 심리학자의 말에 기댈 필요도 없다. 카카오톡과 페이스북의 다양한 유혹과 교류가 집중력을 빼앗고 있음은 약간의 진솔한 성찰만으로 가능하니까.


골먼은 이런 연구 결과를 전한다. “책을 읽을 때 우리의 마음은 20~40퍼센트의 시간 동안 다른 곳들을 돌아다닌다. 더 많이 돌아다닐수록 당연히 이해도가 떨어진다.” 산만한 주의가 집중을 떨어뜨린다. 비단 독서 뿐이겠는가. 집중력은 우리가 실현하고자 하는 성과, 행복, 인간관계, 내적 안정 등 거의 모든 삶의 질에 영향을 미친다.


집중력은 수단과 방법을 가려 연마할 가치가 충분한 능력이다. 계속 희소해지는 능력이고, 좋은 삶에 필수적인 능력이니까. 그러니 제안이 난무하는 세상이지만 집중력에 관한 제안 하나를 건네는 걸 이해해 주시리라. 나는 다음의 3단계 노력을 날마다 실천하고 있다. 나 역시 집중력 빈곤자기에.


첫째, 자신의 업무를 창조적 업무와 반응적 업무로 구분하라. 자신의 역할을 살펴 핵심 과업과 덜 중요한 과업으로 구분해도 되겠다. 보고서 작성은 창조적 업무고 이메일이나 SNS 회신은 반응적 업무다.


둘째, 프라임 타임을 결정하라. 하루 중 에너지가 가장 충만한 때로 두어 시간 선정하면 된다. 아침 2시간도 좋고, 오전 한 시간 오후 한 시간으로 정해도 좋다.


셋째, 집중하라. 일이든 독서든 대화든 주의를 기울여 집중하라. 주의가 산만해져도 괜찮다. 최대한 주의를 기울여가는 노력이 중요하다. 주의가 산만해지는 자신을 주의하면 된다. 주의에 관한 주의, 그것이 집중이다.


시작은 작고 수월해야 한다. ‘30분 집중하기’부터 시작해도 좋다. 집중력은 점점 더 희소한 자원이 되어가고 있다. 집중력은 점점 강력한 경쟁우위가 되어간다는 말이기도 하다. 굳이 경쟁력 운운할 필요도 없겠다. 집중력이 커질수록 삶의 질이 달라지니까.


덧. 집중력을 다룬 책 한 권을 추천하고 싶다. 본문에선 언급한 『포커스』는 집중과 주의에 관한 과학적 연구 결과를 보여준다. 신뢰 있는 주장을 체계적으로 담은 게 책의 미덕이다. 보다 실천적인 제안을 읽고 싶다면 『집중의 힘』(조슬린 글라이 편/ 모멘텀)이 나을 것이다. 오류를 무릎쓰고 단순화하면, 집중의 정체를 연구하는 이는 『포커스』를, 직장이나 삶의 현장에서 당장 집중을 실천하려는 이는 『집중의 힘』을 잡으면 될 것이다. 소개는 두 권이지만, 추천은 한 권인 셈이다. 


Posted by 보보

두 달이 지나면 블로그를 시작한 지 11년이 됩니다(2007년 1월 개설). 십 년 넘는 세월 동안 끊임없이 포스팅을 올렸죠. 긴 공백은 없었습니다. 여행을 떠나 몇 주 간 뜸했을 뿐입니다. 올해는 정말 블로그 운영이 부실했습니다. 이 글이 5개월 만에 올리는 포스팅이네요.

 

이런 일은 처음이라 낯선 기분이 듭니다. 오랫동안 집을 떠났다가 돌아와 현관문을 열면 집 안이 생경하게 느껴지듯이 블로그 주인장인 제가 지금 조금 얼떨떨한 마음으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곧 익숙해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약간의 긴장이 느껴집니다.

 

저, 살아 있습니다. 종종 블로그 인연들이 무슨 일이라도 있는지 안부를 물어옵니다. 바로 어제도 그랬습니다. 너무 오래 소식이 없어 걱정 된다는 말과 함께 기척이라도 남겨 달라는 애정 어린 문자를 보고서 ‘근황 토크’ 삼아 포스팅해야겠다고 생각했네요. 문자 주셔서 고맙습니다.

 

두루뭉술하게 제 근황을 적어 봅니다. (아직은 자세히 들여다보지 못하겠네요.) 작년 연말에 상실의 고통을 크게 겪었고 올해 봄이 되면서 점점 회복했었죠. 여름이 오기도 전에 또 한 명의 절친한 친구를 잃고 말았습니다. 그 영원한 이별로 힘겨웠습니다. 

 

매일 나누던 프로야구 얘기도, 함께 보냈던 애정의 순간들도 다시 누릴 수가 없다는 생각을 하면 참 쓸쓸해집니다. 그 쓸쓸함과 허전함을 진하게 느끼며 반년을 살아왔네요. 2014년에도 친구 하나가 떠났으니 가장 소중한 교감의 대상을 둘이나 잃은 셈입니다. 

 

인생 앞에 서면 한없이 겸허해집니다. 떠난 친구들을 가끔 원망하면서도 그들을 향한 고마움도 커졌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친구로 지내어 고맙다’는 마음이 드는 겁니다. 일상에서도 자주 감탄합니다. 작은 것에도 ‘와! 정말 예쁘구나’ 하고 날마다 감동하죠.

 

순간마다의 삶이 귀하고 세상의 많은 것들이 아름답습니다. 제 안에 슬픔과 고통이 빚어낸 시선 하나가 새겨졌기 때문일 겁니다. 종종 친구와 함께 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만 이내 스스로를 달래어 줍니다. ‘이젠 그럴 수 없어. 머잖아 다른 친구를 또 만날 거야.’

 

앞으로의 계획도 적어두고 싶네요. 오랫동안 수업도 열지 않고 지냈습니다. 고백 프로젝트도 한동안 멈췄고 여타의 인문학 수업도 마찬가지였죠. 다시 그 조촐하고 깊었던 수업들을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세상 어디에나 수많은 강연이 있지만, 특히 연지원의 수업을 좋아하는 분들도 계시니까요.

 

내년 봄에는 서울을 장기간 떠나게 됩니다. 그 전까지 다양한 수업을 진행할 생각입니다. 강독회 형식의 수업(수잔 손택, 그리스인 조르바)이나 인문학과 리버럴 아츠 수업 뿐만 아니라 글쓰기, 강의력, 시간관리, 리더십 등과 같은 실용적인 주제도 한 번씩 오픈하려고요.

 

12월부터 매주 목요일(예정) 저녁마다 진행할 텐데 오랜만에 블로그 인연 분들을 만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오랫동안 블로그 독자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기도 하고요. 고마움의 작은 표시로 수업료를 절반으로 낮춰 진행할 겁니다.

 

너무 오랫동안 쉬었고 긴 공백 후의 포스팅이라 몇 분이나 확인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몇 분과의 즐거운 수업과 따뜻한 뒤풀이를 염두에 두며 포스팅합니다. 조만간 더 나은 글로 찾아뵙겠다는 약속도 전하고요. 그간 다른 건 몰라도 공부는 계속 이어왔거든요.

 

찾아주신 분들의 행복과 건강을 기원 드립니다.

 

[덧] 11월에도 공개 강연이 있긴 합니다. 11월 15일(수)은 여의도 CGV에서 독서법을, 14일(화) 19시 30분에는 토즈 종로점에서 <그리스인 조르바> 특강을 진행하죠. 조르바 특강은 댓글로 신청하시고 오시면 되고요(강의료 1만원 추후 입금). CGV 특강은 아래에 링크를 전합니다.

http://www.micimpactschool.com/s/item.php?it_id=1508383425&ca_id=2050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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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1.

'다르게 살아보자! 완전히 새롭게 시작하는 삶이 힘들다면 살짝 다른 삶을 시도해 보는 거야.' 온 몸으로 샤워 온수를 받아내며 거듭 다짐했다. 조금은 결연했다. 들뜨기도 했다. 세신(洗身)하고 세심(洗心)하는 영혼이 되어, 결심이 단단하게 영글때까지, 나는 샤워를 멈추지 못했다. 몸을 닦고 나오니 40분이 지났다. 이번 다짐은 얼마나 오래 지속될까? 모를 일이다. 관심 갖지 않으련다. 또 하나의 결심으로 새로운 주간을 맞이하는 나에게만 집중하고 싶다. 


얼마간의 들뜸 덕분에 비장하진 않았다. 다행이다. 비장함을 도구로 삼고 싶진 않으니까. 전쟁이 벌어지거나 슬픔에 휩싸이지 않는 이상, 삶을 영위하는 도구는 '무기'가 아닌 '장난감'이리라. 인생살이는 전시가 되기도 하지만 놀이가 되기도 하는 법이니! 주말에 흠뻑 쉬고 나니 에너지가 듬뿍 채워진 느낌이다. 조식도 든든하고 맛나게 먹었다. 노트북이라는 일급의 장난감에서부터 연필이라는 작은 장난감에 이르는 도구들을 챙겨 집을 나섰다. 일상을 빛내고 순간에 몰입하며 자주 웃는 하루를 살아야지!


2.

삶은 거대한 놀이터라고 생각해 본다. 이럴 때마다 오래 전에 접한 시인의 생각이 떠오른다. 인생은 세 가지의 놀이라고, 시인이 노래했다. 의식주 놀이, 만남 놀이, 문제해결 놀이! 나는 여기에 두 가지를 덧붙이고 싶다. 자기실현 놀이와 진짜 놀이! 앞선 세 가지가 일상적인 놀이라면 덧붙인 두 가지는 일탈의 놀이다. 범죄는 짓지 말아야 하나, 일탈은 종종 시도되어야 한다. 일탈의 정의 하나는 "정하여진 영역 또는 본디의 목적이나 길이나 조직 따위로부터 벗어남"이다.


누구에게나 잠시 벗어남이 필요하다. 본래의 길을 걷는 삶과 잠시 벗어날 줄 아는 삶의 조화를 위해서 말이다. 나는 인생이라는 놀이를 즐기기 위한 두 가지 기본 규칙을 정했다. 느슨하면서도 타이트한 규칙이다. 규칙은 일종의 울타리다. 너무 좁으면 갑갑하여 지키기가 어렵고, 너무 넓으면 느슨하여 의미가 없다. 주중에는 일상의 놀이에, 주말에는 일탈의 놀이에 몰입할 것! 나인 투 식스는 일상의 놀이에, 그 외의 시간은 일탈의 놀이에 빠져들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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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1.

필슨(Filson)을 만난 순간이 떠오른다. 젊고 세련된 감각이 느껴지는 도시 포틀랜드(미국 오리건 주)에서였다. 나는 중고 서점 ‘파웰 북스’ 인근에 위치한 에이스 호텔에 묵었다. 호텔 맞은편에는 Union Way라는 작은 쇼핑몰이 있다. 예닐곱 개의 상점이 들어선 30m 즈음 되는 거리로 기억한다. 초입에 <Steven Alan>이라는 편집샵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거기서 한 눈에 반해 들고 나온 품목이 ‘필슨 토트백’이다. 2014년의 일이다. 그 이후로 가장 자주 들고 다니는 가방이 되었다.


 

2.

필슨(Filson)은 꽤나 전통 있는 브랜드다. 19세기 말 미국에는 골드러시 열풍이 불었고, 창업자는 황금을 찾아 모험을 떠난 이들에게 필요한 의류를 제작했다. 아웃도어 의류 브랜드 필슨의 탄생이었다(Since 1897). 필슨코리아 홈페이지에 따르면, 1914년 자사 브랜드와 디자인으로 특허를 받은 ‘크루저 자켓’이 베스트셀링 품목이다. 골드러시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필슨은 품질 좋은 아웃도어 의류를 계속 만들어왔다. 기능성 의류와 튼튼한 가방들을!

  

3.

“제조업으로 생산할 수 있는 아웃도어 제품 가운데 최고의 제품만을 생산하는 것이 필슨의 이상이자 정책입니다.” 창업자인 Clinton C. Filson이 1926년 필슨 카탈로그에 적었다는 문구다. 홈페이지에는 이와 함께 자부심 넘치는 문장도 있다. “필슨은 그 누구도 무거운 울과 튼튼한 면과 천연 가죽을 필슨처럼 공들여 만들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필슨의 철학이 마음에 들었다. 내 경험을 봐도 200달러가 채 안 되는 천 가방이 가죽처럼 매우 튼튼했다.

  


4.

더욱 마음에 드는 문장은 따로 있다. “고객 한 사람이 요구하는 제품이 없을 경우에는 개별적으로 그 사람만을 위한 제품을 만들기도 했다.” 읽는 순간에 짜릿함을 느꼈다. 고객을 향한 애정과 열의가 느껴져서다. 나 역시 종종 ‘한 사람을 위한 강연’을 연다. 한 사람의 요구에 화답하는 콘텐츠가 가장 보편적인 메시지가 된다는 믿음과 그 한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넘친다는 애정이 결합된 행위, 그것이 한 사람을 위한 강연이다.


  


5.

오늘도 검은색 필슨 토트백 가방을 들고 나왔다. 문득 가방에 든 품목을 모두 꺼내보고 싶어졌다. 얼른 테이블 위에 하나 둘 꺼내 놓았다. 한적한 카페여서 누리는 잠깐의 여유로움이요, 즐거운 관찰이다. 노트북, 수업, 일기장, 선글라스, 헤드폰, 필통, 책 한 권! 가방 속 물건의 전부다. 여기에 약간의 돈만 있으면 살아가는 데에 별다른 지장이 없을 만큼 내게는 중요한 품목들이다.



‘아! 이것이 나의 본질이구나!’ 나도 모르게 툭 내뱉은 말, 나를 더욱 나답게 만드는 물건들! 담고 싶은 모든 물건을 넣을 수 있는 가방은 없다. 때문에 가방은 본질을 담게 된다. 그 날의 본질, 한 사람의 본질, 어느 인생의 본질을 담는다. 작은 깨달음에 흥분했나 보다. 과장 섞인 언사마저 내뱉고 싶어진다. “당신 가방 안의 물건들을 보여주세요.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 볼게요.”

*

색깔별로 마련한 필슨 토트백 말고도 브리프케이스도 하나 구입했다. 두 번 들고 나갔다가 집에 잠들게 됐다. 위 토트백처럼 통 내부를 사용하던 내게는 내부 포켓이 많은 게 오히려 불편했다. 필요하면 파우치를 활용하는 편이 내 스타일인가 보다. 그래서 필슨 브리브케이스 컴퓨터 백(브라운)을 중고로 팔기로 했다. 홈페이지 판매가로는 402,000원이지만, 국내 공식판매처(삼지통상)가 아닌 다양한 루트로 판매되는 제품이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손잡이 부분이 공식판매처 제품과 살짝 다르다. 필슨코리아 홈페이지 제품은 아래 사진 참조. (판매완료)


중고 판매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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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비가 온다. 좋다. 대지와 감성이 촉촉해진다. 기분 좋은 차분함이다. 그윽함이기도 하다. 고요한 새벽, 세밀한 빗소리 그리고 해갈의 산뜻함.

 

회색빛 하늘이 아름답다. 햇살을 머금은 푸른 빛깔의 하늘이 때때로 처연하듯이 회색빛 하늘도 황홀할 수 있다. 그것이 자연이고 삶이다.

 

밤이면 좋겠다. 이 순간이 하루 일과가 끝난 밤이라면 하염없이 감상에 젖어들 것이다. 와인과 음악이 나의 벗으로 함께하리라. 그리움마저 행복이 될 시간!

 

지금은 아침이다.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몇 곡의 노래를 들었다. 이제 9시다. 어젠 푹 쉬었다. 오늘은 일을 즐겨야지. 마음은 이미 도구들을 챙겨 집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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