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을 ‘살아낸’ 자코메티>
- 자코메티 전시회를 다녀와서 (1/3)


1.
전시장에 들어서면 브레송이 찍은 사진 한 장과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작가 연보를 만난다. 비 오는 날 자코메티가 코트를 머리까지 올려 쓴 채로 걷는 모습을 담은 사진이었다. (브레송답게 그야말로 '결정적 순간'을 찍은 사진이었다.) 내리는 비에 아랑곳하지 않고 보행을 시작한 자코메티! 다른 행인은 없었다. 약간의 쓸쓸함, 왠지 모를 처연함, 왜 우산이 없을까 하는 궁금함... 그리고 걸어가는 자코메티! 



2.
작가 연보에서부터 감동했다. 1926년 자코메티는 자신의 작업실에 정착했다. 연보는 이후 20년을 소개하지 않았다. 곧바로 1946년으로 갔다. 길고 날씬한 독자적인 스타일을 창조했다는 1946년으로! 20년 동안 이어졌을 작업실에서의 수련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갔다. (자코메티의 모델이자 자코메티 평전을 저술한 ‘제임스 로드’의 글을 여럿 읽은 덕분이다.)


나에게 예술가란, 외부의 명성이 아닌 자신만의 기준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그 기준을 향한 끝없는 수련을 자기 삶으로 받아들인 사람이다. 기꺼이 받아들이는지, 필연으로 자기를 설득하는지는 상관없다. 중요한 건 예술을 향한 끝없는 정진이니까. 과정이 있을 뿐 완성은 없다. 자코메티는 제임스 로드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림이란 그리면 그릴수록 점점 더 끝내는 것이 불가능해지는 겁니다."


3.
표현 양식을 다듬고 벼리어서 자신만의 스타일을 창조하는 것이 목표라면 목표겠다. 천착하고 수련해야 하리라! 흉내로는 스타일에 이를 수가 없으니까. "스타일은 흉내와 더불어 죽는다. 반면 양식은 흉내내기의 네트워크를 통해 공고해진다." 철학자 김영민 선생의 말이다. '단독자적 체취'가 묻어나야 스타일이다. 스타일이 곧 그의 실력이자 존재다.


20년을 건너 뛴 연보를 보면서 음미한 생각이다.


4.
자코메티는 내성적이었다고 한다. 나무, 바위, 동굴 등 무생물에 특별한 감정을 느끼며 친구 삼았다는 전시회 벽면에 새겨진 텍스트를 읽으며 반가웠다. ‘아, 이 동질감!’ 묘한 공감을 느끼면서도 그가 나보다 더 내성적인 인물일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내성적’이라는 말에서 편안함과 동질감을 느끼면서도 이 단어가 적잖이 싫다.


5.
아버지 ‘지오반니 자코메티’는 저명한 화가였다. 아들을 경제적으로 든든히 후원했을 뿐만 아니라 예술적 가르침도 풍요로웠다. "화가란 제대로 볼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리고 미술을 공부하는 건 곧 잘 보는 법을 배우는 것이란다." 아버지의 말이 내게도 따뜻하게 들렸다.


자코메티 여섯 가족이 찍은 사진을 보았다. 다른 가족의 시선이 카메라를 향하는 것과 달리 어린 알베르토와 어머니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어머니는 평생 자코메티의 든든한 정신적 후원자였다고 한다. 자코메티는 ‘부모 제비뽑기’에서 운이 상당히 좋았던 셈이다.


6.
"우리는 모델을 우리가 아는 대로가 아닌 우리가 보는 그대로 그려야 한다. 단순히 보이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상대에 대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걸 모두 잊어버려야 한다." - 자코메티


감각한 대로 표현하기란 얼마나 어렵던가! 선입견과 소문에 의해 왜곡된 인상을 지워 버리고 지금 눈앞의 모습 그대로 바라보는 일 그리고 내가 보았던 그대로 표현하는 일! ‘감각한다는 것’ 그리고 ‘표현 양식’이야말로 예술의 본질임을 자코메티의 생각을 통해 다시금 확인한다.


7.
이사벨! 자코메티의 여러 뮤즈 중 캐롤린과 함께 가장 치명적인 여인이다. 자코메티는 이사벨에 대해 “남자를 삼켜버리는 여자”라는 후일담을 남겼다. 매혹적이지만 인격적이지는 않은, 그래서 만나면 안 되는, 엮이고 싶지 않은, 그래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여인들이 세상에는 분명 존재한다. 예술가의 뮤즈는 두 종류인 걸까. 선한 쪽과 악한 쪽! 이런 생각도 해 본다. 어쩌면 가장 강력한 뮤즈는 선악과는 별개로 강렬한 성적 욕망을 안기는 뮤즈가 아닐까, 하고.


8.
"나에게 숭고함은 예술 작품 속이 아닌 정확히 '살아 있는 사람들의 얼굴' 속에 있습니다." - 자코메티


이번 전시에서 가장 울림이 컸던 말이다. 마음속의 생각과 공명한 것이다. 읽자마자 내 안에도 예술 세포란 게 있다면 그것들이 모두 깨어나는 기분이었다. 당장 달려가 내 작품에 매진하고 싶을 정도였다. ‘작품’이라고 표현할 정도까진 아닌 글이지만, 이럴 땐 ‘누구나 예술가’라는 의심쩍은 슬로건으로 나를 둘러싸고 싶어진다.


아래에 자코메티와 공명한 생각을 적어 둔다.


‘예술가들은 세상 도처에서 숭고함을 발견한다. 세상에 깃든 숭고미를 자신만의 스타일로 표현하기 위해 정진한다. 표현 기술이 부족하다 싶을 때마다 끊임없이 기술을 수련한다. 발견이 먼저고 표현은 나중이다. 위대한 예술가일수록 깊이 감각하고 창의적 양식으로 표현하리라. 역설적이게도 감각이 깊을수록 표현은 힘겨워진다. 표현하기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치열함 역시 (근대의 관념이긴 하지만) 예술가의 모습이리라. 가까스로 표현하고 나면 사람들은 그걸 예술 작품이라 부른다. 정작 예술가에겐 여전히 미완성인, 그래서 과정에 불과한 오브제인데 말이다.’


외고 있던 자코메티의 말 몇 마디 중 하나가 떠올랐다.

“이거 정말 제대로 안 되네요. 그렇지만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끝날 수 있는 일도 아닌데요.”


9.
"내가 보기에 자코메티의 예술은 모든 존재와 사물의 비밀스런 상처만을 찾아내어 그 상처가 그들을 비추어준다." - 장주네


한쪽 벽면에 쓰인 글을 그대로 적었다. 우선 비문이다. 발언자 표기도 띄어쓰기가 잘못 됐다. 장 주네(Jean Genet)는 저명한 소설가 답게 걸출한 자코메티론을 남긴 인물이다. 인용문 만으로는 의미 전달이 쉽지 않을 것 같아 전후 문장을 옮겨 둔다. (이미지 참조)


10.
“형태가 아닌 기운을 그리는 예술가”


흔히 ‘예술=작품’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예술이 반드시 작품인 것은 아니다. 작품이 빚어낼 분위기까지 창조하려고 애쓰거나(자코메티, 이우환) 작품과 공간의 관계마저 고려하는 예술가들이 존재한다(루이스 칸의 솔크연구소). 어원적 의미로도, 예술은 작품보다 행위에 가깝다.


그렇다면 예술이란 무엇인가? 자신이 ‘감각’한 것들을 ‘표현’하기 위해 끊임없이 고뇌하는 창의적 ‘행위’가 예술이다. 그것이 물체든, 영감이든, 기운이든, 관념이든 어떻게든 감각한 대로 표현하려고 정진하는 이들! 이번 전시가 감동적이었던 이유는 자코메티의 삶 자체가 하나의 위대한 예술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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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1.

박효신의 <야생화>를 오늘 하루 종일 들었다. (2014년 3월에 발매된 동명 앨범에 수록된 곡이고 유명한 노래인데 진자하게 감상한 건 오늘이 처음이다.) 스무 번은 들은 것 같다. 가히 이 노래만큼은 완벽한 경지에 올라 부르는 느낌이 들었다. 지독할 정도로 연습하고 노력한다는 박효신! 그에게서 이상은의 노래와는 다른 미덕을 만났다. 완벽주의를 극복하는 또 하나의 길을 조우한 느낌도 든다. 다름 아닌, 일을 작게 쪼개어(노래 한 곡) 치열하게 노력할 것! (일기에 적은 글도 이곳에 옮겨 둔다.) 


<전율과 감탄을 안긴 뮤직비디오다. 흠집이라고는 없는 보석을 만나면 이런 느낌일까! 넋을 잃은 채로 그의 표정과 동작을 쫓아갔다. 목소리로 예술을 빚는 한 장인의 모습에 감격하느라 가사도 시간도 잊었다. 눈앞의 사위는 사라졌고 노랫말도 들리지 않았다. 아... 박효신!>

2. 
무려 20일 만에 조르바
집필을 재개했다. 프롤로그를 고쳐 썼다. 독자와의 첫 만남이라는 점에서 이전 글보다 나아졌다. 저자 중심에서 독자 지향으로 바꾸려고 노력한 결과인데 내일 아침에 일어나 읽을 때에도 여전히 좋은 느낌이 들었으면 좋겠다. 쓴 직후엔 마음에 들었던 글도 이튿날 읽을 때에는 허접하게 보이는 경우가 허다해서 하는 말이다.


3.

2018년도에 읽었고 앞으로 읽고 싶은 책들을 정리했다. 훌륭한 책들은 정말이지 많다. 최근에 읽은 책들 중에도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아테네의 변명』,『인간성 수업』,『지식의 착각』은 전율 그 자체다. 문제는 시시한 책들이 더욱 많다는 사실이다. 다행스러운 일은 이류 도서를 읽는 유익도 있다는 점인데, 이에 대해 글을 한 편 써 두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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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두통으로 이틀을 앓았습니다. 목소리가 완전히 나가버린 기간마저 합치면 나흘 동안 정상적인 컨디션이 아니었네요. 오늘도 하루 종일 몸져 누워 지내다가 저녁에야 몸을 일으킬 수 있었습니다. 내친 김에 저녁 수업도 청강하고 왔지요. 행여 결석할까 걱정했던 수업인데 다녀오니 기분이 좋네요. 청강하러 가는 길에도 혹시 아플까 염려했지만 수업 듣고 온 지금 저는 멀쩡합니다. 아직 목소리는 제대로 나오지 않지만 두통은 많이 가셨습니다. 머리가 안 아프니 살 맛 납니다.

올해 들어 벌써 두 번째 두통인데 모두 아프지 않았으면 좋았을 날이었네요. 하루는 제 생일이었고(이 날 하루 종일 문 밖으로 나가지도 못했습니다) 다른 하루는 엄마 기일이었거든요(바로 어제였죠). 생일은 아픈 채로 보내어도 아쉬움이 없었지만 어머니 기일 날에 하려던 일을 못한 건 속상합니다. 엄마 앞에서만 울려고 한 달 내내 참고 살았는데 정작 기일이 되기 이틀 전부터 몸을 사려야 했습니다. 컨디션이 급격이 떨어졌거든요. 사실 울 준비가 되어 있지도 않았고요.

'한 달 내내 몸을 혹사한 대가려나?' 글을 쓰기 전까지는 들지 않았던 생각이 불현듯 머리를 스쳐가네요. 두통의 직접적인 원인은 양평 아카이브의 차가운 바닥에서 잠시 졸았던 탓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떨어진 체력이 진짜 원인인지도 모르죠. 마침 올리버 색스의 <안식일>이라는 글마저 떠오르는 걸 보니 4월에는 다른 날과 구별된 하루를 떼어내어 쉼과 휴식을 누려야겠습니다. 그 날만큼은 부디 깨끗한 공기를 마실 수 있기를! (올해 미세먼지는 정말 최악이네요.)

통증이 제 몸을 떠나니 내일이 몹시 기다려집니다.
며칠 동안 손을 놓았던 일들은 저를 기다릴 테고요.
기다렸던 사이의 만남이어서일까? 은근히 설레네요.
자고 일어나면 책부터 마음껏 읽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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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2018년 3월이 지나갔습니다. 꽤나 바빴 조금은 고단했던 한 달이었습니다. 3월을 돌아보는 첫 마디가 '수고했다'라는 혼잣말이었네요. 자위를 건넨 이유는 간단합니다. 열심히 살았거든요. (열심이라니! 스스로를 늘 못마땅해 하는 내가 열.심.히. 살았다고 말하다니! 참 낯설고만.) 한 달 남짓 동안 3kg이 빠졌고, 자주 피곤했음에도 불구하고 부지런히 공부했습니다. 정성을 다하여 수업을 진행했고요. 한 달을 수놓았던 단어들을 나열해 봅니다.


인문정신 수업(달빛강남), 다섯 개의 수업 청강, 새로운 공부 인연들, 『인간성 수업』, 와우수업 종강, 북도슨트 자원봉사, 미세먼지, 플로라이팅 수업 종강, 카프카 커넥션 등등. 


1.

달빛 강남학파! 결국엔 이 분들과도 수업을 이어가게 됐습니다. '결국'이라고 표현한 것은 개인적인 갈등이 있었기 때문이죠. 한 달만 수업하자 VS 함께 공부를 이어가자, 이 사이에서 고민했던 겁니다. 수업을 운영하는 데에는 적잖은 시간이 소요됩니다. 이는 제가 수업만 진행하는 게 아니라 커뮤니티처럼 운영하기 때문입니다. (와우리더의 성향이 조금 묻어나는 거죠.) 수업료를 올릴까, 4월에는 수업을 하지 말까, 이런 고민들을 하다가 결국엔 지금까지 진행해 온 모습 그대로 함께 공부를 이어가자고 마음 먹었습니다. 그만큼 저도 즐거웠습니다. 유쾌한 분들, 공부하는 분들, 경청하는 분들이 섞여서 제게 보람과 힘을 안겨 주었네요. 저의 책임감 또는 사명의식(거창한 단어를 쓰고 싶진 않지만 제 마음과 가장 가까운 표현이긴 하네요)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인문학을 공부하시겠다는데 내가 읽고 배우고 익혀서 할 수 있는 데까지는 가 보자' 하고 생각한 거죠.  개인적 소감을 덧붙이자면 총 4회 수업 중 한 번은 수업을 마치고서 괴로웠고 한 번은 수업 이튿날까지 만족스러웠습니다. 과도하게 청중을 지향했더니 괴로웠고 나다운 스타일로 진행했더니 행복했다는 느낌입니다. 


2.
많은 수업을 청강했던 3월입니다. 매주 네 다섯 개의 수업에 참석했지요. 셋째 주부터는 북도슨트 자원봉사 교육(주 2회)마저 더해져 연일 피로감을 달고 살았습니다. 주 7회 수업은 정말이지 무리였다고 생각합니다. (4~5개의 수업을 들었던 경험이 있긴 합니다. 3년전 라틴어를 배우고 아도르노 강좌를 듣던 때에도 문학 수업 등 여러 개의 수업을 들었죠. 돌이켜보니, 삶이 힘겨울 때마다 저는 독서와 공부에 집중하면서 세월은 기다렸네요.) 몹시 고단했던 날도 있었지만 결석은 하지 않았습니다. 수업이 시시해서 수강료를 날린 셈이라 여겼던 강좌 하나를 제외하면(이 수업은 전체 6주 중에서 한 번만 참석했네요) 모든 수업에 출석했고요. 가장 유익했던 수업은 '카프카 커넥션'입니다. 카프카와 지적 영향을 주고받은 거장들을 살폈는데(도스토예프스키, 발저, 카뮈, 데리다) 카프카로 가는 길을 다양하게 알게 된 느낌이네요. '그리스 문명' 수업을 오가는 길에서는 지적 희열이 피곤함을 무찌르는 경험을 하기도 했습니다. 수업을 들으며 가는 발걸음이 무거운데도 마음이 설레는 제 자신을 보면서 저의 '인문정신' 수업을 들으러 오는 분들도 '이리 설레었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도 했네요.


3. 

마사 누스바움의 『인간성 수업』이 번역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던 날이 생생히 기억납니다(한 달이 더 지나면 희미해질 테죠). 조르바 원고를 탈고하지 못한 게 아쉬울 정도로 이 책이 반가웠죠. 실은 많이 흥분했습니다. 집필하던 원고를 얼른 마무리하고 싶었습니다. 리버럴 아츠 집필에 뛰어들고 싶었거든요. 리버럴 아츠 원고는 초고를 마무리했고 퇴고만 하면 되는데 그러기 전에 몇 권의 리버럴 아츠 영어 원서를 읽을 계획이었습니다. 그 계획에 있던 책 중의 한 권이 『인간성 수업』이었으니 반가울 수밖에요! 나는 유혹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조르바 원고를 뒷전으로 하고서 틈틈히 『인간성 수업』을 읽은 겁니다. 제게 많은 위로를 안겨 준 책입니다. 통찰과 인식을 얻을 거라 생각했는데 위로라니요! 이는 완전히 예상 외의 결실입니다. 새로운 인식을 배웠다기보다는 지금까지의 공부를 정리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믿음직한 선생으로부터 '앞으로도 그리 공부하고 살아온 대로 살아가세요'라는 격려를 받은 기분이었죠. 특히 와우 수업을 진행한 방식이나 공부 목표가 저자의 철학과 맞닿아 있었습니다(수준 차이가 엄청 났을 뿐). 마사 누스바움이 『시적 정의』에서 했던 다음의 말을 보면 와우들도 동의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나의 중심 주제는 타인의 삶을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상상할 수 있는 능력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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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난 월요일에 4주간의 인문정신 수업이 또 하나 끝났다. (강남역 인근에서 모여 강남학파라 불리는 모임이었다.) 인문 소양을 함양하는 실제적인 길을 보여주려고 노력했고 그 제안이 인문학의 본질과 동떨어지지 않기를 열망했다. 나의 목표를 달성하려면 수업 준비는 지극히 인문적이어야 했고 실제 진행에선 인문학의 효용에 초점을 맞춰야 했다. 인문학만이 주는 효용을 누리려면 역설적으로 인문학의 본질에 바짝 다가서야 하는 것이다. 어느 정도는 실현한 것 같아 기뻤다.


무엇이 흡족했나.


1) '인문학의 안팎을 살핀다'는 수업의 설계가 마음에 들었다. 종로 수업에서부터 시작된 이 설계 덕분에 기업이나 대학에서의 인문학 특강도 좀 더 명료하게 진행할 수 있게 됐다. 2) 수업에서는 현장의 분위기를 반영하고 유인물은 최초의 설계대로 준비한 것도 마음에 들었다. (청중 분들은 이러한 방식을 낯설게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3) 공부 인연들끼리 친밀해졌다는 사실도 나를 기쁘게 한다. 언젠가 함께 답사를 떠날 정도의 유대감을 쌓아가고 싶다. 4) 특히 4주차 수업이 나를 행복하게 했다. 나다운 내용이었고, 나다운 진행 방식이었다. 인문학 공부는 인간성을 드높이고 연대의식을 함양하는 공부가 되어야 한다는 믿음을 담아낸 수업이었다. 5) 개인적으로는 8주 동안 두 번의 인문정신을 진행하며 <인문정신을 권함> 원고를 어떻게 쉽게 풀어쓸 것인가에 대한 힌트를 얻었다. 뜻밖의 반가운 수확이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다.


1) 인문학이 일상과 동떨어진 학문이 아니라는 점은 설득했는지 모르지만 인문학 공부가 즐겁다는 사실은 보여주지 못한 것 같다. 이어지는 수업에서는 '인문학 공부의 즐거움'을 안겨 드리고 싶다. 고민할 대목이다. 2) 종로와는 달리 강남에서는 인문학 '밖'에 관한 담론을 많이 다루지 못했다. 리버럴 아츠와 후마니타스의 역사 대신 '인간성 수업'에 관해 이야기하기를 선택한 것이다. 이건 아쉬움이기보다는 앞으로의 수업을 위해 기억해 둘 점이겠다. 3) 도서 추천을 더 명쾌하고 간단하게 했어야 했나? 수업을 진행한 이로서는 '더 공부할 책'을 분명하게 추려내어 자세하게 설명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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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휴우. 지난 한 주를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한 숨이 나왔네요. 바빴습니다. 세 번의 수업을 진행했고 다섯 번의 강연을 청강했죠. 뒤풀이로 자정을 넘겨 귀가한 적도 두 번입니다. 한 번은 택시를 타야 할 상황인데 기어코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귀가하느라 피곤함을 더했네요. 편안한 시간들이긴 했지만 네 번의 만남까지 있었던 한 주였습니다. 오늘은 휴일입니다. 기다린 날이죠. 사실 오늘도 신청한 수업이 있는데 안 가려고요. 시시한 수업인데다 농도 심한 미세먼지가 제 결정을 지지하네요. 


아침에 나가면 밤이 되어서야 돌아오는 일정도 두 번이었습니다. 갑자기 만남을 많이 잡은 건 아닙니다. 3월부터 청강하는 수업이 무려 일주일에 5개였죠. 여기에 약속 몇 개를 잡으면 강연 일정까지 더해져 벅찬 일정이 되더군요. 결국 종일 일정이 있던 이틀은 약속 하나씩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배려해 준 이들에게 고맙고 미안했지만 덕분에 잠시 휴식하여 저녁 일정을 잘 소화했죠. 집필은 한 달째 지지부진했고(원고가 아닌 조각글만 몇 편 썼네요) 살도 빠졌습니다. 자그마치 3kg이나.



벅찬 일정! 이는 3월의 두드러진 두 모습 중 하나입니다. 다른 하나는 '무분별한 책 구매'고요. 지난 한 달 동안 정말이지 많은 책을 샀습니다. 한 달 책값이 지난 한 해 동안 구입한 금액을 뛰어넘을지도 모르겠네요. 작년엔 많이 절제했거든요. 다가 올 카드 결제일이 걱정입니다. 구입할 책을 찬찬히 살피는 과정 자체가 공부지만 너무 많은 돈과 시간을 썼던 게 사실입니다. 공부거리가 쌓여 든든하고 흐뭇하지만 동시에 조금 더 참아내지 못한 게  부끄럽기도 합니다. 이렇듯 책을 사고 수업을 들으며 3월을 보냈습니다.


책을 왜 그렇게나 샀냐고요? 인터넷 서점에서 주문 한 건을 하고 나면 1시간이 훌쩍 지나갑니다. 때로는 두어 시간이 지나기도 하죠. 책을 선별하고 주문하는 과정엔 몰입이 절로 이뤄집니다. 잠시 힘겨움을 잊는 겁니다. 지난 주, 친구와 이런 대화를 나눴네요.

"나 요즘 만사가 힘들어." 친구의 말에 저도 화답했습니다.

"너도 힘들고 나도 힘든 요즘이네. 나 역시 괴로워서 공부에 매진하고 있잖우. 나랑 같이 고대 그리스 문명 수업 듣자!" 
"힘들면 쉬어야지, 공부에 매진하다니 너 답다. 낼 고전 수업 가면 난 듣다가 졸 각. ㅋㅋ"
"내일이 힘들면 금요일엔 조르바 수업을 같이 가든지. ^^"
"아주 그냥! ㅋㅋㅋㅋ"
"난 자꾸 공부하러 같이 가재. 하하."
"넌 왜 날 자꾸 바람직한 방향으로 끌고 가려 하냐? 나 힘든데. ㅋㅋㅋㅋ"


"수업을 듣자"는 제안과 "아니 나 힘들다는데 무슨 수업이냐"는 의견 사이의 유쾌하고 장난스런 팽팽한 논쟁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결국 한 번 같이 들어보는 걸로 귀결됐죠. 이튿날, 친구는 갑자기 집안 일이 생겨 결국엔 함께 가진 못했습니다. 수업은 만족스러웠습니다. 그리스 고전기의 전사(前史)가 얼마나 중요한지 재확인한 시간이었죠. 감성적이면서도 이지적인 작가 한수희는 "남자보다 책이 더 나을 때가 있다"고 했다. 이 말을 뒤집고 확장하면 내 얘기가 된다. 적어도 3월의 나는 이 문장으로 설명되리라. 

사람보다 혼자 하는 공부가 더 나을 때가 있다.

그것이 책 읽기든 청강이든, 정말 그렇다.

어쩌면 공부는 '더 나은' 정도가 아니라 

'공부만이 구원'인 때가 있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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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취 기운을 떨쳐내기 위해 벌꿀 두 스푼을 듬뿍 떠서 입에 넣었다. 500ml 생수도 삼분지 이를 마셨다. 짧은 후회가 스쳐갔다. '어제 많이 마셨어.'


오전 10시 3분 전. <경의선 책거리 북도슨트> 교육장에 앉았다. 독서문화에 대한 '관심'에 얼마간의 '지식'과 '활동'을 부어주고 싶어 신청한 교육이다. '북도슨트 연지원'이라고 쓰인 명패를 보며 쓸데없는 생각을 했다. '북도슨트 교육생 연지원이라고 써야 정확한 내 신분(?)인데...' 제작 측 입장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오후 1시 3분 전. 샌드위치를 해치웠다. 정말이지 이건 내 식사 스타일이 아니지만 시간을 벌어야 했다. 가방에 『인간성 수업』이 있었으니까! 책을 꺼내려던 찰나 그녀가 도착했다. 33분이나 일찍 도착한 게다. 혼자만의 시간이 줄어든 아쉬움은 반가운 이를 만난 기쁨으로 상쇄됐다. 지적인 대화 그리고 감동적인 교감!


저녁 7시 정각. 경향신문사에 도착했다. 그리스 문명 수업을 청강했다. (20분의 휴식이 없었더라면 피곤해서 수업을 듣지 못했을 것이다. 다행히 그 정도의 여유는 주어졌고 독서는 또 미뤄졌다.) 혹시 늦을까 걸음 총총, 행여 놓칠까 주의 집중! 강연 주제가 나의 제일 관심사인 데다 연사는 초특급이니 만족과 기쁨이 클 수밖에.


‘밤 수업이 끝나야 저녁을 먹겠구나.’ 예상한 대로였다. 수업 후에야 늦은 식사를 했다. 혼자 들어서기에 그나마 덜 머쓱한 식당에서 밥을 먹고 카페로 이동했다. 커피 한 잔을 시켰다. 하루를 돌아보면서 마음을 가다듬었다. 가방에서『인간성 수업』을 꺼내 책을 감싸고 있던 비닐을 벗겼다. 서문을 읽었다. 그윽한 기쁨, 감탄 그리고 평온한 성취감.


‘책을 읽으니 이제야 하루가 완성되는 느낌이네.'


Posted by 보보

우리는 세상의 모든 미덕을

자기 수준에서 이해하고 체험합니다.

 

'얄팍한 관계'만 맛본 이들도 우정을 알고 체험했다고 말하지만 '지상 최고의 친밀함'을 맛본 이들 역시 우정을 알고 체험했다고 말합니다. 표현은 같아도 실상은 다릅니다. 얄팍함이든 절친함이든 우정이라는 단어로 표현되었지만 둘은 서로 다른 관계라 할 만큼 상호 교감이나 신뢰의 정도에서 차이가 크니까요. 교양인과 초등학생이 같은 모국어를 사용하더라도 서로 다른 언어생활을 영위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우정, 정직, 용기, 감사… 이러한 미덕들을 처음 듣는 사람은 없죠. 자주 들었고 얼마간은 실현하면서 살았을 겁니다. 그래서 이 미덕들을 '안다'고 생각합니다. 얼마나 아는지, 어떤 수준으로 경험했는지는 캐묻지 않은 채로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하기도 하죠. 하나의 미덕을 모른다는 사실은 큰 문제는 아닙니다. 자신이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이중의 무지) 상태야말로 문제입니다. 이것이 세상이 미덕이 드문 이유입니다. 알지 못하는 것을 실현하기란 어려우니까요.

 

우리는 ‘깊은 미덕’을 만났는데도 자신이 체험한 ‘얕은 수준’의 잣대에서 바라봅니다. 때로는 서둘러 판단하고 맙니다. “이건 나도 잘 알아.” 또는 “이건 새로운 건 아닌데!” 라고 말합니다. 아쉬운 반응입니다. 지금껏 알지 못한 경지를 체험할 기회를 놓친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지성을 닦거나 지혜에 다가서는 길은 새로운 단어를 발견하려는 정열이 아니라 이미 알고 있는 미덕들을 새로운 차원에서 인식하고 진득하게 체험하는 여정일 겁니다. 오늘 나는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무엇을 아는가, 무엇을 알고 싶은가?’ 라고.

어떤 것보다 먼저 사랑과 우정을 새롭게 알기를,

그리고 감사를 더욱 잘 알기를 기도하면서.

Posted by 보보


<전문가>

마음과 엉덩이로 바라고 바랐던

아직은 되지 못해 여전히 동경하는

그래서 오늘의 나를 추동하는 오랜 꿈

여기저기 자처하나 알고 보면 아닌

 

<사람>

때로는 숨소리 들릴 듯이 가까이

가끔은 마음이 그리워하도록 멀리

손으로든 마음으로든 연결되어야 벗

동물이지만 동물같은 삶은 아니어야

 

<하늘>

행복한 자들은 미소로 마주하고

지친 이들은 물끄러미 올려다보는

만인의 거울이자 나만의 창문

그리운 이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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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연일 수업의 연속입니다. 이 달의 평일 저녁 일정은 일찌감치 꽉 채워졌죠. 한 달 중 쉬는 날은 3월 7일 하루뿐이네요. 월요일과 화요일엔 제가 진행하는 인문정신 수업이 있습니다. 다른 요일은 청강하러 갑니다. 3월 한 달 동안 그리스 문명, 프란츠 카프카, 소설의 캐릭터에 대해 배웁니다. 이런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 저녁마다 바쁜 요즘입니다.

 

하나의 수업은 산만하고 두 개의 수업은 재밌습니다. 하나가 아쉽다 보니 배움의 자리를 신중하게 선택해야 함을 느꼈네요. 재밌는 수업이야 두말할 필요가 없는 삶의 활력입니다. 이걸 공부해야겠구나, 얼른 저걸 읽어야지 이러는 동안 의욕이 생겨나는 거죠. 제가 다름 아닌 지.성.을 찾아갔음을 감안하면 활력은 보너스요 뜻밖의 습득물입니다.

 

"아테네의 황금기를 이해하려면 그리스 문명의 전사(前史)를 알아두어야 한다, 트로이 전쟁은 ‘전쟁’ 수준이 아닌 ‘전투’ 정도의 규모였을 확률이 높다, 저명한 카프카 해석자인 게르하르트 노이만은 ‘단편산문’을 카프카의 대표 장르로 꼽았다" 등이 이번 주에 얻은 인식입니다. 새로운 인식을 안고 돌아오는 귀갓길은 얼마간 적적하지만 기쁨도 큽니다.

 

어젯밤의 일입니다. 경향신문사를 나오는 길에 나도 모르게 노래를 흥얼거렸습니다. 예민의 <어느 산골 소년의 사랑이야기>라는 곡이었죠. 전혀 뜻밖의 노래였기에 의아했습니다. ‘어?! 신기하다. 왜 이 노래지? 자주 부르지도 떠올리지도 않는 노랜데!’ 의외의 노래였지만 기분이 좋았습니다. 노랫말과 선율이 예쁜 곡이었거든요. 노랠 불렀습니다.

 

“풀잎새 따다가 엮었어요. 예쁜 꽃송이도 넣었구요.” 학창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중학생 때 출시된 곡이거든요.) 그 시절의 장면 몇 가지가 그려졌고 얼굴엔 미소가 피었죠. 하늘나라에 있는 친구도 그 땐 제 곁에 있었네요. ‘지금 녀석이랑 통화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밤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네온사인 사이로 밤빛 하늘과 눈이 마주쳤네요.

 

조금은 쓸쓸했지만 충만한 마음이 그보단 좀 더 컸습니다. 내면에선 그윽한 평온이 너울거렸습니다. 그리움도 넘실댔죠. ‘이런 공부를 연인과 함께하면 참 좋겠다.’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오겠지 하는 생각, 그때까진 혼자만의 삶을 향유하자는 생각, 내가 공부를 참 좋아하는구나 하는 생각들을 매만지면서 서대문역을 향해 걸었습니다. 노래를 부르며.

 

“흐르는 냇물 위에 노을이 구름빛 물들이고

어느새 구름 사이로 저녁달이 빛나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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