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선현 정리컨설턴트의 '정리'에 관한 강연을 들었다. 올해 처음으로 내의를 입는 바람에 실내가 더워, 혼자 들락날락하느라 강연을 제대로 듣지 못했지만, 타이밍 좋게 주워 들은 세 가지가 인상에 남았다.



1) 강사는 요즘 유행하는 미니멀리스트의 삶은 실현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미니멀리즘에 관한 나의 문제인식과 맞닿은 얘기라 솔깃했다. 인터넷에서 '미니멀리즘'이라고 검색하면 환상적인 사진, 하지만 따라하기에는 만만찮은 이미지를 만난다. 실제 구글에서 검색해 보니, 위 사진이 상단에 올랐다. 저러한 공간에 머물고 싶긴 해도, 좁은 집에서 실현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단순한 삶이 주는 에너지를 경험하고, 미니멀리즘이 선사하는 미적 즐거움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미니멀리즘에 무관심하기도 싫다. 강사는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발생하는 이 딜레마를 간단한 팁으로 해결했다. 삶의 한 영역에서 미니멀리즘을 구현하기를 제안한 것이다. 나는 강의실을 잠시 탈출하면서 생각했다. '그래. 하나의 공간, 하나의 품목에서만 실천하면 되겠구나!' 강사의 현실적인 접근이 고마웠다.



2) 강사는 네 가지 유형의 물건들을 버리라고 했다. "필요 없는 물건, 보관할 공간이 없는 물건, 나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물건, 쳐다보면 기분 나쁜 물건." 물건 버리기는 요즘 나의 나의 관심사다. 두 달 동안 '날마다 5개의 물건 버리기'를 실천해 오던 터였다. 처음 2주 동안에는 5개씩 버리기가 어렵지 않았다. 작은 물건(안경통, 유통기한 지난 화장품 등)도 대상이었으니까. 한 달 즈음 지나니 갯수를 세 개, 다시 한 두 개로 줄여야 했다.

더욱 잘 버리려면 실천의 강화가 아니라 관점의 전환이 필요했다. 새로운 인식을 얻거나 관점이 바뀌면 행동이 달라지기 마련이니까! '무엇이 필요한지를 아는 지식'이 버리기를 도왔다. '단순한 삶'이 지닌 가치를 깨달으면 좀 더 잘버리게 된다. 결국, 내가 원하는 인생을 생각하면 버리기가 쉬워진다. 여기까진 잘 실천하던 중에 강사가 하나의 목표를 안겨 주었다. '보관할 공간이 없는 물건'을 버리기! 바로 실천하기는 어렵지만, 버리기의 지향점으로 삼아야겠다.



3) 강사의 강연의 마지막 부분에서 '삶의 의미'를 언급했다고 한다. (강연을 함께 들은 분께 나중에야 들었다.) 좋은 말이라 생각했는데도 구체적으로 어떤 말이었는지는 잊었다. 의미 없어진 것들을 버려라는 메시지인지, 의미 발견이 정리정돈의 비결이라는 말인지 모르겠다. 강사 의도와는 다르더라도, 나름의 생각을 이어갈 수밖에.  

여기서의 '의미'란 사물의 가치를 뜻한다. 누군가에겐 국어가 재미고 누군가에겐 수학이 재미다. 재미가 그렇듯이, 사람들은 서로 다른 것에 '의미'를 둔다. 의미라는 개념은 사람들의 취향, 가치, 소원에 따라 달라진다. 그런 점에서, 윤선현 컨설턴트의 정리론은 내게는 맞지 않는 구석이 많다. (하나만 언급하자면, 그는 한 번 읽은 책을 버리라고 하나 내게 가장 의미 있는 독서는 '거듭하여 읽기'다.) 자기 의미를 찾고, 비(非)의미를 버리기! 이것이 정리다.


가치관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오늘 강연은 나에게 두 가지 실천지침을 안겨주어 유익했다. 정리정돈의 전문가답게 사례가 풍성했던 강연이었지만, 들락거리는 바람에 대부분을 놓쳤다. 사례는 생각을 다듬거나 실천을 추동한다. 뜬금없는 내의 착용이 아쉬웠던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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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도 고통도 끝이 아니다. 죽음만이 끝이다. 살아 있다면 끝이 아닌 것이다. 냇물 앞에 섰으면 뛰어 건너라. 옷이 젖을까 염려하거나 머뭇거리지 마라. 오늘의 바람과 내일의 햇빛이 옷을 말린다. 산이 가로막으면 오르고 올라 봉우리에 서라. 산마루에 서서 이마의 땀을 씻어내며 다음 봉우리의 손짓을 바라보라. 어제가 갔으니 오늘이 왔다. 살아 있으니 시작이다. 언제나 새로운 시작이다. 어제의 문은 닫혔지만, 오늘의 문이 열리리라. 지금도 새로운 문이 열린다. 그곳이 어디든지 또 하나의 출발점이다.

 

비가 오는 날에도, 태풍이 몰아닥친 후에도 삶은 또 다시 시작된다.

내가 이곳에 있다. 지금 여기에 살아 있다. 새로운 시작을 맞으며.


"아무도 과거로 돌아가 새롭게 시작할 수는 없지만, 지금부터 시작하여 새로운 결말을 맺을 순 있다." - 칼 바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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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는 그날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사소한 약속이었다. 길거리에서 나를 세워 둔 것도 아니고, 지키지 못한 약속으로 인해 내 일에 차질을 받은 것도 아니다. 내게 보내기로 한 자료를 보내지 않았을 뿐이다. 단언컨대, 실망은 없었다. (그는 평소에도 시간 약속을 거의 지키지 못한다. 이것은 불만의 토로가 아니다. 오히려 변호다. 대부분의 실망은, 실망한 이의 비합리적인 기대에서 비롯되는 법.) 아쉬움과 서운함도 없다.


'실천이 뒤따르지 않은 허언'의 한 사례를 명징하게 인식했을 뿐이다. 친구에게서 나의 부족함을 발견했을 뿐이다. 게으름과 타협하는 바람에 오늘 하기로 생각한 일을 내일로 미루었던 일이 얼마나 많았던가! 작은 약속이라고 하여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적은 또 얼마나 잦았나! 특히 나 자신과의 약속을 제대로 지키면서 살지 못했다. 친구의 삶이 나를 준엄하게 깨우쳤다. 친구에게 서운한 게 아니라(그의 애정을 안다), 스스로에게 부끄러운 날이다.


이 수오지심을 잊지 말아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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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랜만에 블로그 유입 키워드를 살펴보았다. 블로그측 안내에 따르면, ‘최근 일주일간 추출된 키워드’란다. 유입수가 1인 키워드는 무의미하게 보였다(이를 테면, 빵다방, 상쇄피드백, 서른여덟 등). 포스팅의 어떤 단어 하나가 한 네티즌에게 ‘얻어 걸린’ 것이다. 상위 5위까지는 의미 있게 다가왔다. 행복한 거북이의 인생여행(5회), 비전 목표(3회), 렉티오 리딩(3회), 멜버른 맛집(3회), www.yesmydream.net (3회) (횟수는 유입수).

 

몇몇 분들이 '행복한 거북이의 인생여행'이라고 정확하게 검색해서 들어온다는 사실이 반가웠다. 누군가는 나의 강연에 관심 가져 준다는 사실도 참 고맙다. ‘그러고 보니 렉티오 리딩(독서의 기술) 강연을 오랫동안 하지 않았구나.’ 내년 초에는 렉티오 리딩 강연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10위 안에는 수잔 손택 강독회(2회)도 보였다. 손택 강독회는 나도 재밌고 청중들의 변화와 지적 자극이 컸기에(나의 예상을 웃돌았다) 내년에도 하려던 참이었다. 손택으로만 3차 강독회가 되는 셈이다.

 

2.

블로그 유입 키워드나 방문 통계를 잘 살피면 의미 있는 결과를 도출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겐 관심 없는 일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재미있는 일이겠구나 싶었다. 새로운 영역에 발을 들이려고 노력하는(그리하여 놓치며 살았던 영역에 눈 뜨면서 성장하고 싶은) 요즘이라 조금 더 살펴볼까 하다가 관두었다. 시간 투자의 우선순위는 첫째는 나의 재능, 둘째가 소중한 관계, 셋째가 새로운 도전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했다.


‘나다움도 중요하고, 새로운 도전도 중요하다. 중요한 것들끼리는 취사선택이 아닌 우선순위가 중요하다. 오랫동안 나다움을 추구하며 살았다. 당분간은 새로운 도전에 얼마간 치우쳐 사는 것이 인생 전반의 균형을 찾는 길인지도 모르겠다. 블로그 활성화가 필요할 때, 예전의 나라면 ‘양질의 콘텐츠를 생산하면 된다’는 생각에 집중했었다. 이제는 ‘블로그 홍보도 중요하다’는 생각까지 껴안고 두 마리 토끼를 기를 것이다. 지금의 중단은 무관심이 아닌 전략적 시간 배분이다.’


3.

블로그 방문자 통계도 확인했다. 11월에는 3천명 남짓이었다. 연초의 1/5 수준이다. 지난 10월, 블로그 연결이 약 20일간 되지 않았다(호스팅 기술적인 문제였다). 그래서인지 10월부터 한 달 방문수가 급감했다. 블로그를 운영해 온 10년의 기록을 살펴보니, 월별 통계를 쉽게 확인할 수 있엇다. 월 방문자 수는 2007년 8월부터 3천명 대가 되었다. 10년 동안 지난 10월 방문자 수(2,351)보다 적은 달은 딱 두 번 뿐이었다. (그 중 하나는 2009년 11월인데, 긴 배낭여행을 떠났던 시기라 그런가?)

 

그리 중요한 일도 아니고, 쭉 관심 가질 것도 아닌데, 이런저런 현황을 파악하는 일은 재밌다. 어젯밤에는 나의 신용등급을 확인하며 1시간 30분 동안 신용구매력, 대출거래지수 등을 꼼꼼히 읽어보기도 했다. 1등급이었지만, 신용평점은 작년 대비 44점(1천점 만점)이 떨어졌다. 상위 30% 정도가 1등급이었으니, 1등급의 범위가 너무 넓게 느껴졌다. 등급보다는 신용평점을 목표로 삼고, ‘1등급 중에서도 상위 10%에 포함되어보자’는 욕심이 생겼다.

 

4.

변화를 원하고 성장하고 싶은 이들에게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조언한다. 마인드를 바꾸고, 현실을 파악하라! 공부도 마찬가지다. <지적 생활의 발견>의 첫 장에서 저자는 자신의 실력을 속이지 말 것을 당부한다. 재테크도 당연하다. 리처드 템플러는 <부의 잠언>에서 부자 마인드를 강조하고 난 후 실천편의 첫 번째 지침으로 “먼저 현실을 파악하라”고 썼다. 나는 현실 파악의 중요성을 대학에서 배웠다. 측정하지 못하는 것을 경영하기는 힘들다는 지혜를 말이다(교과서는 측정 없이는 경영도 없다는 식으로 좀 더 강하게 가르쳤다).

 

어젯밤과 오늘 아침, 별 관심도 없는 영역이지만 나의 현 상태를 진단하고 나니 이렇게 쓰고 싶다. 측정하면 관리하고 싶어진다! 어쩌면 새로운 목표가 생길지도 모른다. "블로그 방문수를 2016년 9월 이전의 수준, 아니 올해 초의 수준으로 높여보자"는 목표는 그렇게 해서 생겨났다(올해 초 하루 평균 방문수는 500에 달했다).  신용평점 목표도 세웠다. 나는 얼른 작년도 평점(950점)을 넘어서고 싶어졌다. (올해 단돈 10만원 때문에 단기대출은 받은 게 신용도에 여실히 반영됐고, 후회스럽다.)


 

5.

많은 이들에게 측정은 곤혹스럽고 짜증나고 귀찮은 일이다(그들은 아마 이 글의 숫자와 디테일을 건너 뛰었으리라). 나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제 오늘(사실 최근 수 주 동안) 측정에 시간을 쏟은 이유는 나의 비전 때문이다. 나는 경영의 달인이 되고 싶다. 대상이 시간이든, 건강이든, 지식이든 말이다. 전문가들은 측정이 경영의 기본기라고 말한다. 나도 동의한다. 이 말과 나의 비전을 생각하면, 측정을 간과하거나 무시하고 싶지 않아진다. 평균적인 측정 능력이라도 갖추고픈 욕망이 생긴다. 이것이 비전의 위대함이다. 장애물을 뛰어넘게 만드는 힘 말이다.  


당분간은 삶의 거의 모든 영역을 측정하며 지내련다. 

나에게는 경영의 달인이라는 꿈이 있으니까!  

지금 당장, 옷을 다 벗고, 몸무게를 재야겠다. 

(중요하니 지금 해야 하고, 벗어야 정확해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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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오후에 집을 나섰다. 핸드폰은 책상 위에 놓아둔 채였다. 주말이니 전화 올 일도 없었다(기실 들고다닌다고 해도 놓치기 일쑤인데 뭘). 저녁 약속이 하나 있었으니, 확인차 사전 연락을 주고받을 가능성만이 존재했다. 이것도 걱정할 바가 아니다. 아직 시간이 넉넉한 때였다. 부재중 메시지가 있으니, 다녀와서 연락해도 될 터였다. 사소한 의사소통의 실수가 서운함이나 오해로 번질 염려도 없는 친한 관계이기도 했다.


카페에서 한 시간 동안 책을 읽고 왔다. 간간이 창밖을 바라보거나 눈을 지그시 감았던 걸 제외하면, 책의 내용에 집중했다. 무엇보다 내용이 가슴과 영혼을 울렸던 탓이지만, 이제와 생각하니 핸드폰이 없었다는 사실도 꽤나 도움이 된 것 같다. 돌아와서 핸드폰을 확인했더니, 한 시간 사이에 나를 찾은 메시지, 카카오톡, 메일은 없었다. 반가운(평일이었더라면 카톡 하나쯤은 왔을 테고, 그러면 들지 않았을) 의문이 들었다.


'핸드폰을 가져갔더라면, 한 시간 동안 몇 번이나 주의를 빼앗겼을까?'


책의 저자인 '오쇼'가 나를 장악하긴 했음에도 불구하고 한 두 번은 확인했을지도 모르겠다. (연락 온 데가 없으니) '그 확인은 헛걸음일 텐데' 하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연락이 왔더라도 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면 책을 읽다 말고, 잠시 메일을 읽거나 카카오톡에 회신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나마 나는 주변 사람들에 비해 핸드폰에 그나마 덜 중독된 편이라 생각했지만, 안주하거나 안심할 상황은 아니었다.


청소년들의 스마트폰 중독은 이미 심각한 수준이지만, 사실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뿐만이 아니다. 대니얼 골먼을 『포커스』에서 미국인들의 중독 현상을 전한다. "문자가 오면 그 순간을 놓치게 됩니다.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에는 휴대전화를 확인하는 게 예의가 아닌 줄 알면서도 이미 중독이 되어버렸어요." "책을 한 번에 두 쪽 이상을 읽지 못하겠어요. 새로운 메일이 왔는지 확인하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기가 힘들어요."


전언은 청소년들의 얘기가 아니다. 한 출판사의 임원과 대학 교수의 말이다. "정보의 풍요는 주의의 결핍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1978년(책은 1977년이라도 잘못 전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허버트 사이먼의 예견은 정확히 맞아 떨어졌다. 골먼은 "집중력의 우리가 성취하고자 하는 것의 모든 것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여러 가지 믿을 만한 증거로 밝힌다. 이러한 증거를 읽지 않더라도 경험적으로 알 수 있는 사실이고.


집중력은 이제, 점점 더 찾아보기 힘든 희소한 능력이 되어가고 있다. 전문가들이 이미 오래 전부터 경고해 준 덕분에 나는 집중력을 연마하기 위한 노력을 간헐적으로 해 왔었다. 요즘엔 조금 더 많은 노력을 쏟아붓고 있다. 해야 할 일이 많아졌고, 하고 싶은 일도 생겨났기 때문이다. 우정과 사랑을 누리고 싶기 때문이다(사람들은 집중력을 업무와만 연계하지만, 사실 집중력 없이는 교감, 공감, 친밀함도 없다).


다시 한 번 집중력의 중요성을 의식할 수 있어서, 나는 지금 깊은 감.사.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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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메일을 확인하던 중 '심리상담사/ 바리스타 자격증 무료 교육'이란 제목의 메일이 눈에 띄었다. 발신인은 '평생교육원'이다. 수년 전이면(30대 중반까지는) 필요한 정보면 쌓아뒀는데, 요즘에는 지금 읽거나 아니면 바로 삭제한다. 자격증 안내 메일의 경우는 바로 삭제에 해당된다. 나에게 자격증이란, (소수의 자격증을 제외하면) 어떤 역할을 해내는데 필요한 아주 최소한의 실력을 검증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오늘은 이상했다. 나는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자는 마음과 이른 아침의 메일들을 미루지 말고 하나씩 처리하자는 마음에 따라 자격증 무료 교육을 홍보하는 메일을 클릭했다. 오늘이 새로운 달의 첫날이었던 탓이 컸지만, 지난 크레타 여행에서 결심한 목록에 '커피추출법 배우기'가 있기도 했다. 결심을 조금 더 확장하여 커피 전반에 대해 배우는 것도 괜찮고, 어렵지 않고 무료라면 바리스타 자격증 취득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메일 내용을 보니, 듣고 싶은 강좌가 많았다. 시간만 허락한다면 1급 심리상담사, 논술지도사 1급, 음악심리상담사, 미술심리상담사, 에니어그램심리상담사, 1급 바리스타, 1급 심리분석사 과정을 청강하고 싶었다. 이 업체(케이잡평생교육원)의 메일은 유혹적이었다. 자격증 따기까지의 과정을 도표로 보여주었고, 관심자들이 궁금해할 교육 비용도 '전액 무료'라는 점을 선명하게 밝혔다. 거기에다 친절한 Q&A까지!



"생각을 멈추고 지금 당장 실행하라!" 이 절체절명의 슬로건이 나를 구원하리라고 생각하는 요즘인지라, 나중에 오판이었다고 생각되더라도 하나의 강좌를 듣자고 생각했다. 그런데 또 리서치를 하고야 말았다. 내겐 두 가지 의문이 있었다. 이 업체(케이잡평생교육원)가 주관하는 자격증이 유망한가, 수업을 진행하는 교수의 실력은 어떠한가였다. 나는 포털사이트에서 이 업체의 신뢰도를 검색해 보았다. 다음은 나의 결론이다.


- (당연한 소리지만) 민간자격증보다는 국가자격증의 신뢰도가 높다. (이 업체는 민간자격증)

- (민간자격증이라면 최소한) 한국직업능력개발원에 등록된 업체를 선택하는 게 낫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은 우수한 민간자격증 활성화를 위해 정부가 세운 기관이란다.

- 교육 콘텐츠의 질은 국가평생교육진흥원에 등록된 강좌들이 우수하다.



리서치는 실행의 저항이 될 수 있지만, 나는 정말 최소한의 리서치를 하자는 생각으로 한 시간을 투자한 결과다. 어떤 리서치는 나의 지적 호기심을 쫓느라 실행의 기회를 놓치게 만드는데, 이번 리서치는 생산적이었다. 효과적인 선택을 위한 정보를 습득한 것이다. 나는 이 업체의 강좌를 포기했다. 나중에 시간 여유가 생기면 자격증 취득과는 별개로 '바리스타' 과정만 들을 것이다. 결정 과정이 내게도 인상 깊었다.


- 12월의 목표가 분명했다. 달려갈 푯대가 분명하니 마음이 끌리는 샛길의 유혹을 피할 수 있었다. 나는 지금 절체절명(이 표현을 거듭 쓴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의 순간에 놓였음을 잊지 않았다.

- 모든 과정이 온라인으로 진행된다는 점, 취득이 쉽다는 점이 나에게 매력을 주지 못했다. 특히 Q&A 첫번째 질문(자격증 취득이 어려운 것은 아닌가요?)에서 매력이 떨어졌다. 도전의식이 저하되었던 것인데, 내게는 "취득이 쉽지는 않습니다"는 류의 문구가 자극을 준다.



나는 K-MOOC에서 수강함으로 공부하기로 결정했다. 아직은 참여한 대학교가 많지 않고(향후 늘어날 것이다) 강좌가 다양하지는 않지만, 소개된 교수님들을 보니 개설된 강좌의 질이 막강하다고 판단했다. 포스팅을 위해 찾아낸 위 동영상을 진작에 보았더라면, 서치 시간을 절약했을 텐데. 듣고 싶은 수업은 개강된지 3개월이나 지났다. 나는 곧장 해당 수업 운영자의 메일로 문의 메일을 보냈다. (아래는 그 중 일부다)



'나중에 물어봐야지' 하다가 실행을 놓친 게 여러번인데, 오늘은 그마나 낫다. 메일 회신이 오면 나는 바로 실행할 것이다. 사실 무크를 알게 된 것은 3년 전이다. (2012년 뉴욕타임즈는 무크의 등장을 교육계의 가장 혁명적 사건"이라며 "15년 안에 절반의 대학이 사라질" 거라는 대담한 전망도 했다.) 이후 코세라에 가입하여 공부하기를 잠시 계획했다가 실행하지는 못했다. 교육계의 신기원이라 생각하면서도, 세월만 흘렀다.



나는 이렇게 골치아프게 산다. 뭘 결정하더라도 조사하고 따지는 게 많다. 의자 하나, 시계 하나를 살 때에도 책부터 읽다 보니, 늦은 실행은 제2의 천성처럼 되어 버렸다. 요즘은 바꾸려고 노력 중이다. 리서치와 실행의 황금 비율을 찾아내기로 결심한 것이다. 오늘은 가치 있는 시간이었다. 메일 하나로 시작된 3시간의 탐색이 준 결과는 여럿이지만, 나와 비슷한 메일을 받고 고민하신 분들에게 유의미할 법한 개인적 생각은 아래와 같다.


- 자격증을 쉽고 간단하게 취득하려면 케이잡평생교육원, 이에듀케이션 등 민간자격증 업체가 유리하다. 사회에서 얼마나 공인되느냐의 문제를 차치하면 말이다. 자격 조건도 고졸이면 누구나 가능하다.

- 자격증보다는 양질의 공부에 집중한다면 온라인 K-MOOC 를 따져보고, 사회적 인정을 원한다면 학점은행제도 검토해 보기를 권한다.


[참고] 무크가 일각의 주장처럼 과연 교육의 혁명인지 아니면 잠깐의 열풍에 불과한지를 다룬 아래 동영상도 흥미 진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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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감을 배우고 싶거나 공감 때문에 괴로움을 느꼈던 분들에게 공감에 대한 최고의 현자를 소개합니다.



스티븐 코비는 20대 초반의 제게 '공감'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알려 주었습니다. 그 가르침을 최대한 간결하고 정확하게 여러분께 소개하고 싶습니다. 아래 글과 영상으로 '공감'에 대한 코비의 지혜에 접속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영상에서는 코비 박사가 공감이 잘 이뤄진 베스트 사례를 시연하는데, 공감에 대한 개념과 워스트 사례부터 접하고 난 뒤에 보시면 시청 효과가 더욱 크실 겁니다. 


1.

코비는 기막힌 비유로 '공감'의 의미와 중요성을 보여줍니다. 한 고객이 안경을 깨뜨려 안경점을 찾았습니다. 주인은 고객의 이야기를 간단히 듣고 시력 검진을 하지 않은 채 자신이 쓰던 안경을 건넸습니다. "자, 이걸 껴 보세요. 10년 동안 썼는데 정말 잘 보입니다." 고객에게 맞을 리가 없죠. "제겐 도수가 너무 높아요." 주인과 고객의 대화는 다음과 같이 진행되었습니다.  


주인 : 이상하네, 제겐 잘 맞았는데... 다시 한 번 써 봐요.

고객 : 흐릿할 뿐예요.

주인 : 마음을 열고 보다 적극적으로 사고해 보세요.

고객 : 그래도 사물이 잘 안 보여요.

주인 : 참 답답하네요. 나는 당신을 도와주는 중인데...


2.

안경 비유가 말하는 바는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는 상대방의 고민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하고 그를 이해하려는 시간은 갖지 않은 채 자신의 관점에서만 문제점을 지적하고 해결책을 제시한다." (p.337)


먼저 공감해야 진정한 해결책을 찾을 수 있습니다. 코비는 말합니다. "훌륭한 판단을 위한 열쇠는 먼저 이해하는 것이다. 판단부터 하는 사람은 결코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고대 그리스인들도 이미 공감의 중요성을 알았습니다. 에우리피데스의 비극 <메데이아>의 주인공도 이렇게 당부합니다. “남의 마음을 속속들이 알기도 전에, 자신이 겪어보지도 않고 겉만 보고 남을 미워하는 자는 보아도 올바르게 판단할 수 없는 법이지요.”


상대에게 진실로 필요한 말을 가졌더라도 우리는 먼저 그를 공감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 이유를 들어보시죠. "당신이 하는 말이 좋고 훌륭할지라도 그것이 나에게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다. 설사 나의 내면에서 당신의 조언을 필요로 한다고 해도 그 조언을 받아들이기에는 나의 마음이 너무 감정적이고 방어적이며, 어쩌면 죄의식과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지 모른다."(p.339)



3.

공감은 어떤 것에 동의하거나 반대하는 게 아니죠. 문제 해결이나 개선도 아닙니다. 상대방의 관점과 감정을 이해하는 것이 공감입니다. 코비는 우리가 대화를 들을 때 네 가지 유형(판단, 탐색, 충고, 해석)으로 반응한다고 말합니다. 공감을 방해하는 4가지 태도입니다.


"판단은 동의하거나 동의하지 않는 것이다. 탐색은 자신이 가진 관점과 호기심을 따라 질문하는 것이다. 충고는 자기 경험에 의거해 조언하는 것이다. 해석은 자신의 동기와 행동에 근거하여 상대의 동기와 행동을 유추하고 설명하는 것이다."  


코비는 네 가지 유형이 실제 생활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도 실례로 보여줍니다.


"아빠 난 지쳤어요. 학교는 지루하고 따분해요."

"무슨 일이 있니?" (탐색)

"학교는 도대체 실용적이지 않다고요. 난 거기서 얻는 것이 하나도 없어요."

"글쎄, 넌 아직 학교의 좋은 점을 몰라서 그런 거야. 나도 너만할 때는 그렇게 생각했단다. 몇몇 과목들을 쓸데 없다고 생각했단다. 하지만 나중에는 그 과목들이 내게 큰 도움을 주었음을 알게 됐지. 꾹 참고 조금만 더 기다려 보렴." (충고)

"저는 제 인생의 10년을 학교에 바쳤어요. 학교 공부가 앞으로 자동차 정비공이 되려는 제게 무슨 도움이 되나요?"

"자동차 정비사라고? 농담이지?" (판단)

"아뇨. 농담이 아녜요. 조를 보세요. 그 애는 학교를 그만 두고 자동차를 수리하고 있어요. 돈도 많이 벌고 있다고요. 그게 실용적인 거죠."

"지금은 그렇게 보일지도 모른단다. 하지만 조는 공부를 계속 했었으면 하고 나중에 후회하게 될 거야. 너는 자동차 정비공이 되고 싶지 않을 테고. 그것보다 더 나은 직업을 준비하기 위해 교육이 필요해." (충고)

"난 모르겠어요. 조는 아주 잘 살고 있어요."

"얘야, 너 정말로 공부에 집중해 보았니?" (탐색, 판단)


아래에 소개할 스티븐 코비가 시연한 공감의 베스트 사례와 함께, 이 대화는 제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일상 속에서 숱하게 만나는 모습이니까요. 스티븐 코비로부터 공감적 경청을 배웠던 것은 20대의 가장 큰 자산이었고, 기쁨이었습니다. 공감적 경청을 하려면, 상대의 말을 주의깊게 듣고서 그 말의 '내용을 재구성하고 감정을 반영하면(rephrase content and reflect feeling)' 됩니다. 코비의 예를 들어볼게요.


"아빠, 난 지쳤어요. 학교는 지루하고 따분해요."

"너 정말 학교에 대해 좌절감을 느끼고 있구나."

(여기서 학교가 내용이고, 좌절감이 감정입니다.)


이제 영상을 보시죠. 판단, 해석, 탐색, 충고가 없는 감동적인 대화가 나옵니다. 공감적 경청의 정수인 셈입니다. 제 삶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 콘텐츠인데, 여러분께도 영감, 깨달음, 자극을 만나는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스티븐 코비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중 습관 5번(공감적 경청)의 핵심을 담은 영상입니다.



공감! 이 매혹적인 단어는 제 인생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내 인생의 고통은 크게 두 가지 영역에서 발생하더군요. 하나는 자기경영에서의 실패입니다. 나 자신을 원하는 대로 이끌지 못하는 겁니다. 그 결과는 불만족과 자괴감입니다. 다른 하나는 대인관계에서의 실패입니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오해, 다툼, 갈등, 불신을 만나는 일은 자기경영의 실패보다 훨씬 큰 고통을 겪게 됩니다. 공감을 깨닫고 실천할수록 사람들과의 관계가 깊고 부드러워집니다. 저는 평생 공감을 연구하고 배워갈 겁니다. (연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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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가 필요해 우린 대화가 부족해
서로 사랑하면서도 사소한 오해
맘에 없는 말들로 서로 힘들게 해 (너를 너무 사랑해)
대화가 필요해." - 자두 <대화가 필요해> 中 

1.
나는 어제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과 식사를 하면서 여섯 시간 가까이 대화를 나눴다. 각자의 삶을 이야기하고, 그 이야기에 대한 서로의 느낌을 공유했다. 다소 민감한 주제(이를 테면 섹스와 같은 주제나 서로에 대한 아쉬운 점 등)에 관해서도 진솔한 대화를 나눴다. 나 역시 의견이 다르면 "제 생각은 조금 달라요" 하면서 편안하게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내가 최근에 쓴 글을 읽은 후 그에 대한 느낌을 공유할 때에는 서로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대화 도중 간간이 진심 어린 조언이 오갔다. 우리는 손을 붙잡고 헤어짐을 아쉬워했다.

2.
이처럼 대화는 사람을 마주 대하여 이야기를 주고 받는 교감 활동이다. 나는 SNS 활동은 대화만큼의 인간적인 교감에는 이르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대니얼 골먼은 『포커스』에서 디지털 세대가 대화에 서툴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디지털 세상의 새로운 세대는 키보드를 두드리는 일에는 대단히 익숙하지만, 현실 속의 사람들과  얼굴을 마주하면서 행동을 읽어내는 데에는 서툴다. 그들은 대화 도중에 갑자기 문자를 확인하고, 상대방의 얼굴에 비친 실망감을 감지하지 못한다."

3.
대화는 언제나,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다툰 연인들은 대화를 통해 오해를 푼다. 사이 좋은 연인들은 대화를 통해 더욱 깊은 사랑에 이른다. 남자들의 우정은 같은 활동을 하면서 시작되곤 하지만, 대화를 통한 교감이 우정을 더욱 깊게 만든다. 살을 맞대고 사는 부부에게도 대화가 필요하다. 대화가 없으면 가장 가까워야 할 부부 사이도 건조해지고 만다. 친구든 연인이든 부부든 대화가 통하면 마음이 충만해지고, 대화가 안 되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대화가 갈등의 벽을 녹이고 친밀함을 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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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 살은 온다."


최승자 시인의 시 <삼 십 세>의 도입부다. 나는 '서른 살' 대신 '마흔 살'을 넣으며 읽어야 하는 나이가 됐다. 서른이든, 마흔이든, 쉰이든 최승자 선생의 시 두 행에 공감하는 이가 있을 것이다. 누구나 서른 살을 맞지만, 아무나 서른 살이라는 평범한 소재로 울림을 주는 시를 짓지는 못한다. 시인의 존재 이유다. 그렇다면, 나는? 그리고 우리는? 우리에게도 존재 이유가 있다. 시인이 아니니까 시는 짓지 않아도 된다. 원했던 삶이 아니라면, 시작(詩作)을 하는 대신 스스로를 물음 앞에 정직하게 세울 필요는 있으리라. 어떻게 살 것인가?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고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 헤르만 헤세


<데미안>의 첫 구절이다. 평생 자기실현을 탐구하고 도전했던 대문호도 어려워했던 '자기다움'이다. 나 답게 살지 못한 날들을 자책하지 말자는 말이다. 자기다움이나 인생의 비전은 포획이 아닌 추구의 대상이다. 이룰 때까지 구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마흔을 444일 앞둔 오늘, 나는 다시 꿈을 꾸었고, 실현 계획을 세웠다. 지난날의 이루지 못한 꿈을 그대로 옮겨 적으면서 자괴감이 들었지만(이같은 일에 Ctrl+V 키는 사용할 필요가 없어야 하는데), 뻔뻔해지기로 했다. 나는 마치 목표를 처음 세우는 것처럼 문서 파일을 만들었다. 이름하여, "꿈꾸는 마흔"이다.


"마흔 살이란 하나의 큰 전환점이어서,

무언가를 선택하고 무엇인가를 뒤에 남겨두고 가는 때가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 무라카미 하루키

 

사실 마흔을 생각하면 아쉬움부터 몰려온다. '쓴다'는 행위를 나의 근원적인 존재 이유라고 느끼면서도, 그 존재 이유를 충분히 실현하지 못했다. 삼십 대의 출발은 황홀했다. 서른 살에 첫 책을 출간했다. 이후 몇 년간 출판사에서의 러브콜이 잦았지만, 더 이상의 출간은 없었다(두 권의 공저가 있고, 원고 유실 후에도 세 편의 원고를 완성했지만, 결국 출간은 아니었다). 결과는 절반의 성공이었다. 나는 줄곧 썼지만, 출간은 뜸했다. 작가의 이력으로서는, 30대 전체가 ‘상실의 시대’였다. 달랑 한 권 출간이라니! 원고를 잃었던 일과 출간 기회를 스스로 박차버린 결과다.


"나이를 먹는 것은 그다지 두렵지 않았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어느 한 시기에 달성해야 할 무엇인가를 달성하지 않은 채로

세월을 헛되이 보내는 게 두려웠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여행 에세이 <먼 북소리>의 프롤로그(본문은 시간 때우기용으로는 괜찮지만, 유익을 얻자면 프롤로그만 읽을 만한 책)에서 한 말이다. 나 또한 인생의 특정 시기에 하면 좋을 법한 일들을 해내지 못한 채로 그 시기를 보내긴 싫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할 때도 많지만, 많은 경우 나이는 숫자 이상이기도 하다. 중년의 사랑은 대학생들의 사랑과는 다르다. 좋아하는 순수한 감정만으로 사랑하기엔 아무래도 10~20대가 유리하다. 우리네 인생에는 분명 꿈과 이상 그리고 희망이 필요하지만, 넘쳐나는 '현실'도 직시해야 한다.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 속에는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 - 체 게바라


20대에는 "나는 꿈꾸는 청년입니다" 류의 패기 넘치고 엉덩이가 들썩거리는 글을 썼다. 지금은 노력해도 20대의 나처럼 글을 쓰기는 힘들다. 그 시절로 돌아가지 못해도 대안은 있다. 다음과 같이 쓸 수는 있으니까. "나는 다시 꿈을 꿉니다. 패기가 시들해 보인다고요? 그러게요,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걱정 마세요. 저도 패기가 싫은 건 아닙니다. '현실'과 맞닿아 살다보니 잠시 움츠러들었을 뿐입니다. 여전히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가깝게는 황홀한 기쁨으로 마흔을 맞겠다는 꿈, 멀게는 '작가 연지원'이 되겠다는 꿈이." 


지난주에는 두 개의 도전을 감행했다. 탈고 직전의 원고를 투고했다. 다음의 메시지와 함께. "관심 있는 출판사와 마무리 작업을 함께 하고 싶어서 저자 기준에서 90% 완성된 원고를 보냅니다." 이러한 방식의 투고는 완벽주의가 심한 내게는 변화였고 용기였다. 존경하는 작가의 소설을 읽고 쓴 비평 에세이를 그 작가에게 보내기도 했다. 응답이 없고 실패를 겪더라도 계속 도전할 것이다. 오늘 종이에 적고 가슴에 품은 꿈을 모두 이룰 때까지! 스물 아홉의 나는, 서른이 불청객처럼 느껴졌었다. 서른 여덟의 나는 마흔을 꽤나 반갑게 맞이하고 싶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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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소금밭인데 오랜만에 도서관에 갔다." 문학비평가 이명원 선생의 책 제목이다. 마음이 엄청 짜다는 말인가, 무슨 의미지? 도서관과는 어떤 관계고? 의문은 <내 안의 소금밭>이라는 글을 읽으며 풀렸다. 두 페이지짜리 짧은 글(책에 실린 상당수의 글이 두 페이지 정도의 분량이다)은 이렇게 시작된다. "마음이 소금밭인데 오랜만에 도서관에 갔다. 서가에 꽂힌 오래된 책을 보면 안심이 되기 때문이다."


'안심'이라는 단어와 글의 말미에 "마음이 소금밭"인데 글을 써야 하는 상황을 "고통으로 속이 꽉 찬 개그맨이 사람을 웃겨야 된다는 아이러니"에 빗댄 걸 보면, 고통스러운 내면을 뜻하는 것 같다. 그리고서 이렇게 글을 맺었다. "내 안의 소금밭을 부지런히 갈기 위해서라도, 그 짜디짠 인생에 정직하기 위해서라도, 당분간 나는 글을 쓰지 않기로 했다. 허균의 말을 약간 비틀어 말하자면, 붓두껍을 닫는다고 문인이 죽는 것은 아니다."


아마도 글을 쓸 당시에 이 걸출할 비평가의 개인사는 고통이 짙게 드리웠나 보다고 생각했다.그는 광대놀음 같은 글쓰기를 잠시 쉬고 싶었나 보다. 고통에 집중하고, 자기 인생에 정직하기 위해서라고 밝히면서. 그런데도 책은 계속 읽었을 거라고 짐작하게 된다. 가지 않던 도서관에 오랜만에 들른 까닭도 기분이 내키거나, 책을 읽고 싶어서라기보다는 '마음이 소금밭'이었기 때문이리라. 그렇다면 독서는 그에게 일종의 안정제였던 것!


염전에 대해 아는 바가 없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음의 소금밭 비유는 제대로 와 닿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나는 이 말이 참 좋다. "마음이 소금밭인데, 오랜만에 도서관에 갔다." 만약 '마음이 소금밭이어서(또는 이기 때문에)'라고 표현했다면 보다 직접적이고 의미 전달도 명확해진다. 반면 덜 문학적이 된다. "마음이 소금밭인데"는 다양한 해석을 부른다. '소금밭'이라는 현실과 도서관에 간 사건의 연관성을 다양하게 모색하게 된다. 소금밭임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는다, 라는 의지의 발현으로까지 해석하면 과장일까.


말이 조금 엇나갔지만,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책을 읽는 행위가 독자에게 안심, 치유, 위로를 줄 수 있다는 점이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누군가가 독서할 때, 그의 내면을 단정짓기가 어려워진다. 어떤 이는 한가로운 시간을 맞이하여 여가 생활이나 무위도식한 취미로 책을 읽겠지만, 누군가는 절절한 자기 극복의 의지로 책을 집어들었거나 또는 처절한 자기 위로의 일환으로 책을 읽기도 할 테니까.


여성학 연구자 정희진 선생의 말을 보자. 그는 자신의 경험을 드러내는가 하면, 독서가 가진 위로의 힘을 주장한다. "누군가 나에게 왜 책을 읽느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할 것 같다. 아파서요. 책을 읽으면 좀 덜 아프거든요. 이는 나만의 이유가 아니다. 누구나 몸이 아프거나 기분이 상할 때 혹은 고통으로 인한 죽음 직전에도 책을 읽으면 위로 받는다. 기분이 전환되고 타인의 처지를 이해하고 나를 돌아보게 된다. 아픈 상황에서 딴 곳으로 이동할 수 있고 덜 아프게 된다."


정말 누구나 독서를 통해 위로를 얻는지는 모르겠다. 책을 전혀 읽지 않던 이들도 그러한지 궁금하다는 말이다. 나는 늘 생애 처음으로 독서하는 이들이 첫 독서 경험을 통해 영감, 위로, 에너지를 얻으려면 적합한 책을 만나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비독서인들이 삶의 괴로움을 만났을 때 자신에게 도움 될 책을 만날 확률이 늘 책을 읽어온 독서가들에 비해 현저히 낮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론 그 적합한 한 권을 만나기야 한다면, 독서의 위로 능력을 의심치 않는다.  


사람은 저마다 다양하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살고, 서로 다른 것에서 위로를 얻는다. 누군가는 옷을 사면서 고통을 경감시키고, 누군가는 여행으로 자신을 달랜다. 어떤 학생은 음악을 끄고 공부하고, 어떤 학생은 공부할 때마다 음악을 켠다. 이러한 인간의 다양성을 고려하더라도, 나는 삶이 힘들 때에는 서점이나 도서관에 어슬렁거려보기를 권하고 싶다. '그럴 마음이 아니다, 나는 지금 힘들다'고 말한다면, 나도 이렇게 말할 것만 가다. 저도 삶이 잘 굴러가서가 아니라, 힘들고 아파서 책을 읽습니다, 라고.


몸이 아프면 약을 먹기 위해서라도 밥 한 술을 입에 넣어야 할 때가 있다. 나는 그와 같은 마음으로 삶이 힘들 때, 아픔을 견디고 나를 성장시키기 위해 책을 읽는다. 그러면서 힘을 얻는다. 책 한 권으로 문제를 극복하지는 못하더라도, 우리가 문제를 가진 채로 성장한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는 있다. 책이 상처가 없던 원래의 삶으로 되돌려주지는 못하지만, 상처를 싸매는 법과 상처를 안고 앞으로 걸어갈 힘을 얻을 수는 있다. 문학비평계의 황제들을 비판한 도서 『타는 혀』로 의미 깊은 논쟁을 촉발시켰던 걸출한 비평가도, 삶의 방식에 관한 주관이 또렷한 여성학 연구자도, 안심을 얻거나 아파서 책을 읽는다는 사실만으로도 내게는 위로다.


덧#1. 독서를 해 왔다면, 자신을 위로할 만한 책을 찾아낼 촉이 있으리라. 그러니 책을 읽지 않던 분들을 위한 글을 덧붙인다. 첫 책에서 기대할 만한 위로를 얻지 못하더라도 "첫 술에 배부르랴"는 속담을 기억하면서 두번째, 세번째 책까지는 읽어 가시면 좋겠다. 그리고 자신의 상황에 맞는 책을 주변의 독서가나 전문가로부터 추천 받으면 그나마 선택의 범위를 좁힐 수 있다.  


덧#2. 이명원 선생은 소금밭이어서 당분간 글쓰기를 쉬었다. 글쓰기가 위로를 주지 못해서가 아닐 것이다. 고통스러울 때, 매문이나 기고를 위한 글쓰기를 하기는 힘들다. 치유나 성찰을 위한 일기쓰기처럼 자신을 위한 글쓰기는 독서만큼이나 안심과 위로를 준다. 어떠한 고통이냐에 따라 글쓰기를 잠시 그만 두고 싶을 때도 있으리라. (개인적인 경우겠지만, 나는 하드디스크의 자료를 유실했을 때 한 달 이상 동안 노트북을 켜지 않고 살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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