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또 이리 되고 말았다. 올해는 정말이지 수업 홍보를 열심히 하자고 생각했는데 예전의 모습 그대로를 따르고 있는 나를 보았다. 아쉽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다. ‘그래 수업은 밥벌이보다는 공부와 공헌 위주로 가자.’ 물론 돈은 참 좋은 것이지만 그건 다른 방식으로 벌면 되니깐! 나도 모르게 혼잣말 같은 소리만 늘어놓았다. 독백의 배경은 이렇다.

 

수년 동안 별도 공지를 하지 않고 기존 멤버들과 수업을 해 왔다. 그리스 고전이나 세계사를 거칠게 훑었는가 하면 여러 나라의 문학 작품을 얄팍하게 읽어대기도 했다. 욕심을 내어 철학사 공부에도 도전했다(고대, 중세, 근대는 그럭저럭 괜찮았지만 현대철학은 좀 무리였다). 소수의 공부 인연들이 늘 함께 해 주어 가능했던 지적 여정이었다.

 

2014년 겨울부터 기회 닿을 때마다 수업에 참여하신 분이 계신데, 한번은 그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어떤 공부를, 어떻게 하는지 궁금했습니다. 자기들끼리(그분 표현대로라면 ‘즈그끼리’)만 하지 말고 밖으로도 좀 알려주지 하고 생각했었죠.’ 투정과 애정이 섞인 말투였다. 왠지 모르게 고마웠지만 수업을 하는 방식이 바뀌지는 않았다.

 

지난달에는 새로운 공부 인연들을 몇 분 만났다. 4주간의 인문정신 수업을 함께 했던 것이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나는 즐겁고 유익했다. 열정으로 경청해 준 덕분이 컸다. “선생님 공부를 계속 이어가면 좋겠어요.” 이런 목소리들이 많아 애초에 없던 수업이 생겼다. 3월에 진행될 ‘인문적 독서와 서평 쓰기’ 특강이 그것이다.

 

블로그나 페북에는 공지하지 않았다. 나를 아껴주는 이들은 답답한 투로 말한다. 수업을 듣고 싶은 이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적극적 홍보는 아니더라도 최소한의 공지는 해야 한다고! 옳은 말씀이다. 나도 그러고 싶다. 많이들 오시면 나의 자유가 늘어나니까. (나는 종종 ‘돈’을 ‘자유’라 표현하게 된다.) 그걸 알면서도 이리 되고 만다.

 

소중한 내 벗들의 얼굴이 눈앞에 떠오른다. “조금만 답답해하시고 두 가지의 해(解), 양해와 이해를 해 주시길 바래요(이리 썰렁한 표현을 쓰는 건 부끄럽고 미안하다는 의미예요). 가끔 너무 답답하면 채근해 주시고.” 이런 마음을 전하고 싶다. 그러면서 올해는 돈도 꽤 벌자고 다짐한다. (돈을 향한 욕심부터 키워야 하리라!) 전하고 싶은 한 마디가 더 떠오른다.

 

“알고 계시잖아요. 제가 세상의 인정보다는 내면의 만족을, 많은 사람들의 주목보다는 식견 있는 이들의 존중을 그리고 명성보다는 진짜 실력을 추구하고 있음을. 그리고 말이죠. 올해는 함께 공부하는 분들이 조금 많아졌어요. 헤헤.”

 

- 지난달 공부 인연들에게, 새로운 수업을 공지하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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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유병 환자처럼 새벽에 깨어나 인터넷 서점을 돌아다녔다. 이런저런 책들을 구경했다. 괴테와 카프카가 이리 오라 손짓했고 나는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다. 니얼 퍼거슨의 이야기에 한참동안 귀를 기울이기도 했다. 훌쩍 세 시간이 지났다. 그새 십오만 원이 사라졌다. 지갑을 홀라당 다 털리기 전에 별안간 뛰쳐나오면서 생각했다. 누가 범인이지? 서점일까, 시간일까 아니면 지름신일까? 더 이상 캐묻지 않고(소크라테스 선생의 양해도 구하며) 다짐과 설렘을 즐기련다. ‘3월엔 열심히 읽어야지!’

 

이것이 '나'라는 사람의 삶인가 보다. 환자처럼 책을 구입하고 멀쩡한 듯 합리화하고 다짐을 난무하는 비이성적인 일상! 그나저나 왜 이렇게 기분이 좋지. 사태 파악을 못한 채로(아니면 제대로 파악해서인지) 나는 지금 배시시 웃고 있다. 아무래도 중한 병이다.




Posted by 보보

일단의 외국인들이 웅성거리며 방향을 찾고 있었다. 일행 중 절반 이상은 ‘IOC’라는 영문이 새겨진 가방을 메고 있었다. ‘선수단 일행들인가? 선수들도 있는 걸까?’ 한 명의 눈이 나와 마주쳤다. 그녀는 손에 서울 지도를 들고 있었다. 그녀와 나 사이에 두어 마디가 오갔다. 그들은 지하철 서울역을 찾고 있었다. 시청역으로 가려고 했다.


마침 지하철로 향하던 길이라 내가 앞장 서 걸으며 안내했다. 그녀가 내 곁에 섰다. 뭔가를 묻고 싶은 눈치였거나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었나 보다. (내가 잘 생겨서는 아닐 테고.) 나는 이들의 여정이 궁금했다. “최종 목적지가 어디세요?” 나의 물음에 그녀는 지도에 표시된 지점을 손으로 가리켰다. 경희궁이었다. 시청역에서 걸어갈 거란다.

 

시청역에서 경희궁까지 걷기엔 어중간한 거리였다. 그렇다고 서울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경희궁에서 가까운 역까지 이동하기에는 동선이 복잡했다. 환승역(복잡한 종로 3가역)에서 헤맬 수도 있으니까. 그들의 계획대로 시청역에서 정동길을 따라 걷는 것도 괜찮으리라. 마침 따뜻한 날씨였다. 1호선 서울역을 향해 걸으며 갈등이 일었다. ‘경희궁까지만 안내해 드릴까?’


일반 관광객이 아니라 한국 동계올림픽에 참가한 우리나라의 손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괜찮으시면 제가 경희궁까지만 안내해 드릴까요? 한 시간 정도 시간을 낼 수 있거든요.” 그녀는 반색했고 자신의 일행들에게 나의 의사를 전했다. 그들의 밝은 웃음을 본 것만으로도 기뻤는데 한 분이 가방을 열어 평창 올림픽 기념배지를 내게 선물했다. 나는 별 일 아니라는 뜻으로 두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Just One hour."

 

딱 한 시간만 할애할 생각이었는데 나는 그들과 5시간 동안 함께 여행했다. 얘기를 듣다보니 도와드릴 수 있는 여지가 많았던 것이다. 그들은 이튿날 새벽 6시까지 공항에 가야 하는 일정이었다. 오후 한나절 동안 서울의 핵심 명소와 쇼핑을 하려는 계획이었는데 동선이나 정보가 그리 효율적이지 못했다. 다른 궁궐에 비해 볼거리가 부족한 경희궁에 가겠다는 것만으로도 느낄 수 있었다.

 

결국 경희궁 입구에서 헤어지려던 계획은 점심식사(코리안 스타일의 음식을 원했다)로 이어졌다. 일행의 대장과 함께 식사를 하면서 그의 인격적인 태도를 느꼈다. 음식을 다 먹고서 매우 훌륭한 음식 선택이었다고 나를 추켜세웠는가 하면(비빔밥과 돼지고기 쌈을 먹었다) 한국의 음식 문화에 대해 이런저런 질문을 했다. 마윈은 “타국의 문화 존중이 친분을 쌓는 지름길”이라 말한 바 있는데 새삼 그 말을 절감했다.

 

일정은 광화문 광장과 경복궁 투어로 이어졌다. 경북궁 앞에서 헤어지려고 대장에게 의사를 전했다. 대장이 헤어질 분위기를 잡으려는 찰나 다른 팀원들이 이런저런 질문을 던져 무산됐다. 대장과 나는 눈빛을 주고받았고 나는 살짝 경북궁까지 함께 하겠다고 말했다.

 

다섯 시간을 함께하는 동안 두 명은 나의 가용 시간을 한 차례씩 물어왔다. “언제까지 함께 할 수 있는지”를 묻는 어조와 태도에서 고마움과 배려가 느껴졌다. 오늘 해야 할 일이 있긴 하지만 몇 시간 정도는 할애할 수 있다고 말하면서 본의 아니게 나의 직업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그들이 하는 일도 들었다. 대화와 상호 배려로 우리는 조금씩 친해졌다. 동양인들(한국인, 중국인, 일본인)끼리의 구분과 서양인들끼리의 구분법에 대한 얘길 나누며 크게 웃기도 했다.

 

오후 5시가 되었다. 그들은 이제 쇼핑을 위해 강남으로 가려 했다. 그들의 숙소는 서울역이었고 강남의 구체적인 장소를 정해 두지도 않았다. 계획을 바꾸는 게 낫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나는 강남으로 오가는 동선과 종로 지역의 쇼핑 지역에 관한 정보를 제공했다. 그들끼리 잠시 얘길 나누더니 이내 결정했다. 인사동과 명동에서 쇼핑하는 것으로.

 

얼른 헤어져야 한다는 마음과 마지막까지 정성을 다하고 싶은 마음이 부딪칠 때마다 후자의 승리로 이어졌다. 3시에 한 번, 4시에 한 번, 이제는 정말 가야한다고 생각했는데 그때마다 ‘한 시간만 더’라는 생각으로 생각이 바뀌어졌다. ‘이 분들에겐 다시 못 올 수 있는 한국인데…’

 

사실 해야 할 일이 많은 날이었다. 오후 4시에는 동탄에 도착해야 했다. 이튿날 아침 강연을 위해 인근 호텔을 예약해 둔 것이었다. 호텔 투숙으로 컨디션을 조절하겠다는 계획이었다. 게다가 그들을 만났던 때 나는 안과를 향하던 길이었다. 치료 후에는 헤어컷도 하려던 외출이었다. 안과 치료를 미루면서, 호텔에서의 시간을 포기했는데도 피해의식이 없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왔을 때, 한 사람이 나의 호의에 고마움을 표현하며 물었다.

 

“왜 우리를 이리 친절히 도와줘요?”

“글쎄요. 제 천성인 것도 같지만 무엇보다 여러분들은 우리나라의 손님이잖아요. 한국에 대한 좋은 추억만 안고 갔으면 좋겠습니다. 그것뿐이에요.”

 

‘정말 그것뿐일까? 동남아인이라도 마찬가지로 행동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꺼내어진 답변이었다. 모두가 따뜻하게 웃는 표정으로 내 말을 들어주었다(한 명은 조금 떨어져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내 의사를 어설픈 영어로 표현해서인지 아니면 자의식 발동이 내 주특기여서인지 모르겠지만, 대답하는 동안 머릿속에는 호기심이 맴돌았다. ‘이런 마음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이것도 애국심일까?’ 그때 김영하의 단편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을까>도 떠올랐다.

 

사실 그 날의 결정과 행동 그리고 일거수일투족이 바로 나였다. 경희궁 입구에서 일행에게 물었다. “경희궁에서는 얼마동안 머물 계획인가요?” (시간 계획이 나와야 동선이나 관람 속도가 정해지니까.) 식당에서는 내 앞에 앉은 일행의 리더(사진 속 남자)에게 물었다. “왜 맨 끝에 앉은 저이는 식사를 안 해요?” (그녀는 배가 전혀 고프지 않으니 마음 쓰지 않다도 된다는 답변을 들었다.) 경복궁 내 경회루 앞에서는 이렇게 물었다. “멤버들에게 컨디션을 물어봐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여기서 경복궁 전체를 모두 둘러볼지 아니면, 중간 길을 돌아 나올지 선택하려고요.”

 

내가 컨디션을 물을 때마다 그들은 “우리는 평창에 다녀온 온 사람들”이라며 자신들의 신체적 건강함을 온 몸으로 표현해 주었다. 우리는 경복궁 주차장에서 헤어지기로 했다. 다음 일정으로 인사동을 결정한 직후였다. 걸어서 10분도 안 걸리는 거리였다. 인사동까지 다시 걸어야 하는데 괜찮냐고 했더니 얼마나 걸리는지 묻지도 않고 “Of course”란다. 우리는 안국동네거리까지 함께 이동했고 인사동 쌈지길 입구에서 헤어졌다. 호텔 프런트에 초콜릿을 선물로 남기고 싶은데 찾아갈 수 있느냐고 물었다. 이번에는 나의 “오브 코스”였다.

 

혼자가 되고 나니 그제야 마음이 분주해졌다. 월요일 오후 해야 할 일들을 모두 미뤄 둔 대가는 컸다. 안과 치료는 받았지만 약국 문이 닫혀서 처방약을 구하지 못했고(이로 인해 꽤 고생했다) 이튿날 강연을 위해 완료했어야 할 ‘출입승인’ 절차를 뒤늦게 처리하느라 2시간 가까이 애를 썼다. 호텔에서 보내려던 편안한 오후 시간은 통째로 날아갔고 오후 10시가 넘어서야 체크인을 했다. 그런데도 불만이 없었다. ‘왜 하필 오늘 같은 날에 만났을까. 한가한 날도 많은데!’ 하는 짧은 아쉬움이 있었을 뿐.

 

나는 지금 낯선 감정에 놀라워하는 중이다.

‘다시는 못 볼 분들인데(연락처조차 모른다)

5시간의 우정으로도 그리워할 수 있구나!’

 

이튿날 그들이 호텔 프런트에 남겨 준 초콜릿을 받아왔다. 커다란 스위스산 초콜릿 두 개였다. 아껴 먹는 즐거움, 줄어드는 아쉬움을 안기는 묘한 초콜릿이다. ‘세상의 맛 중에는 달콤하면서도 따뜻한 맛도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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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잘이 침묵을 깨고 말을 받았다. “글쎄요, 뭔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카페에 앉아서 아무것도 안 하겠다고요? 뭐라도 쓰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연구 말입니다.”

발터가 그 화두를 곱씹더니 미소를 지었다. “자네 말이 맞을지도. 난 아무것도 못할 거야. 사람한테는 생각거리가 필요한 법이지. 여기도 똑같다. 내가 어떤 결심을 했는지 아나? 담배를 끊을 거야. 살아남으려면 어려운 과제에 집중해야 해.”>

- 브루노 아르파이아, 정병선 역, 『역사의 천사』, p.187

 

*

 

책을 뒤적였다. 지난해 말, 엄청난 위로와 공감을 안긴 책이었다. 원하는 구절을 찾는 데에는 1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내 기억력이 좋아서가 아니었다. 지금 필요로 하는, 그래서 찾으려고 하는 덕목들이 이 책의 곳곳에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 인내, 몰입, 아모르 파티 같은 덕목들! '원래 찾고자 하던 구절은 151쪽에 있지만, 오늘은 저 구절도 좋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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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시. 아늑한 실내. 창문 밖 서쪽 하늘의 석양. 흩날리는 진눈깨비. 이어폰으로 흘러나오는 재즈. 그리고 한 권의 책! 이 정도면 짜릿한 독서가 이뤄져야 했으리라. 독서의 즐거움에 풍덩 뛰어들어 ‘아, 내 사랑 책이여’ 라고 흥겨워했어야 했다.

 

예상은 종종 빗나가기 마련이고 완벽한 상황에서의 결과도 때론 시원찮은 법! 나는 십오 분 만에 손에서 책을 내려놓았다. 눈동자와 주의력이 동행하지 않았던 것이다. 눈은 문자를 읽는데 머리가 따로 놀았다. 억지 독서는 억지로 먹는 음식만큼이나 맛없다.

 

부실한 독서의 원인은 둘 중 하나일 터! 책이 시시하거나 독자가 산만했거나. 이번엔 완벽하게 독자 탓이다. 지구상에 시시한 책은 무지막지하게 많지만 내 손에 든 책은 독보적인 명저다. (저자가 몽테뉴 급이라고만 밝힌다.) 게다가 이 책의 앞선 내용에서 나는 끊임없이 전율했다.

 

책을 내려놓고 마음을 가라앉혔다. 눈을 감고 심호흡을 했다. 의자 등받이에 엉덩이를 바짝 붙였다. 음악도 잠시 껐다. 마음속으로 읊조렸다. ‘나는 이제 책을 읽는다.’ 여러 번 되뇌었다. 기분이 차분해졌고 주의력이 충전됐다. 다시 책을 펼쳤고 한 시간 동안 책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몽테뉴의 『수상록』에는 ‘세 가지 교제에 대하여’ 라는 장이 있다. 그가 말하는 세 종류의 친교는 우선 사랑과 우정이다. 몽테뉴는 “아름답고 정직한 여성”과의 교제 그리고 “드물지만 귀중한 우정”을 언급하고 나서 이렇게 덧붙였다.

 

“세 번째는 책과의 친교인데 이것이 가장 확실하고 우리와 가깝다. 앞의 두 가지가 가진 장점을 따라갈 수는 없겠지만, 책과의 교제는 꾸준히 그리고 손쉽게 누린다는 장점이 있다.”

 

이 말에 동의하는 나로서는 종종 불만을 터트리는 책의 모습을 상상한다. 연인처럼, 지금 내 말에 집중하고 있는 거야? 또는 친구처럼, 너 오늘 너무 대충 입고 나온 거 아냐? 독서는 일종의 친교다. 책읽기가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을 땐 나는 자세와 마음을 가다듬는다. (과장하여 표현하자면) 친구나 연인을 만나는 것처럼.

 

그러면 독서력이 회복된다.

때론 형식이 내용을 이끌고

시스템이 마인드를 창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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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아침에 <See you again>을 여러 번 감상했다.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영화배우 폴 워커를 추모하는 곡이다. 이미 수없이 들었던 노래다. 친구가 그리울 때면 하염없이 듣곤 했다. 가사가 마음을 어루만지면 나는 시공간을 떠난다. 추억에 잠기고, 때론 상상에 빠진다. ‘한 번만이라도 다시 만날 수 있다면…’ 하는 유의 이뤄질 수 없는 상상. 오늘이 그런 날이다.

 

어떤 날엔 뮤직비디오를 시청한다. 마지막 장면이 감동과 위로 그리고 슬픔과 아픔을 안긴다. (때론 마음도 손에 박힌 가시처럼 아프다.) 자신의 승용차에 앉은 두 친구! 따스한 눈빛을 교환하고 주행을 시작한다. 도로는 갈라지고 두 대의 승용차도 다른 길로 들어선다. 카메라는 이제 하나의 승용차만을 쫓아가면서 서서히 줌 아웃된다.

 

가슴이 먹먹해져서 창가에 섰다. 창밖을 바라보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하늘이 나를 이끈 느낌이랄까. 눈가에 물방울이 맺혔다. 눈물인가 보다. 무심하게 표현한 이유는 내 몸에서 나온 액체라 하기엔 왠지 이질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눈물을 흘리면서 나는 다짐하고 있었다. ‘상욱아, 구정 때 탈고한 원고를 들고 찾아갈게.’ 웬일일까. 신년의 기운 덕분인가.

 

작년 기일에 녀석의 사진을 보면서, 당분간 안 올 거라고 말했었다. 새로 출간한 책을 들고 오겠다는 다짐이었다. 녀석과의 사별로 삼년을 힘들어했다. 그런 모습은 친구도 바라지 않을 터, 나는 앞으로 다가올 날들을 잘 살고 싶었다. 친구에게 기쁜 소식도 전하면서 살기를 바랐다. “나, 책 출간했어.” 그나저나, 구정에 간다면 약속을 어기는 걸까?


찾아갈 때가 다가오는가 보다.

구정이든지, 어느 봄날이든지.


덧. 친구야, 너가 떠나고 3년 반이 흘렀다. 잘 지내냐?
(20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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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이 지나면 블로그를 시작한 지 11년이 됩니다(2007년 1월 개설). 십 년 넘는 세월 동안 끊임없이 포스팅을 올렸죠. 긴 공백은 없었습니다. 여행을 떠나 몇 주 간 뜸했을 뿐입니다. 올해는 정말 블로그 운영이 부실했습니다. 이 글이 5개월 만에 올리는 포스팅이네요.

 

이런 일은 처음이라 낯선 기분이 듭니다. 오랫동안 집을 떠났다가 돌아와 현관문을 열면 집 안이 생경하게 느껴지듯이 블로그 주인장인 제가 지금 조금 얼떨떨한 마음으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곧 익숙해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약간의 긴장이 느껴집니다.

 

저, 살아 있습니다. 종종 블로그 인연들이 무슨 일이라도 있는지 안부를 물어옵니다. 바로 어제도 그랬습니다. 너무 오래 소식이 없어 걱정 된다는 말과 함께 기척이라도 남겨 달라는 애정 어린 문자를 보고서 ‘근황 토크’ 삼아 포스팅해야겠다고 생각했네요. 문자 주셔서 고맙습니다.

 

두루뭉술하게 제 근황을 적어 봅니다. (아직은 자세히 들여다보지 못하겠네요.) 작년 연말에 상실의 고통을 크게 겪었고 올해 봄이 되면서 점점 회복했었죠. 여름이 오기도 전에 또 한 명의 절친한 친구를 잃고 말았습니다. 그 영원한 이별로 힘겨웠습니다. 

 

매일 나누던 프로야구 얘기도, 함께 보냈던 애정의 순간들도 다시 누릴 수가 없다는 생각을 하면 참 쓸쓸해집니다. 그 쓸쓸함과 허전함을 진하게 느끼며 반년을 살아왔네요. 2014년에도 친구 하나가 떠났으니 가장 소중한 교감의 대상을 둘이나 잃은 셈입니다. 

 

인생 앞에 서면 한없이 겸허해집니다. 떠난 친구들을 가끔 원망하면서도 그들을 향한 고마움도 커졌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친구로 지내어 고맙다’는 마음이 드는 겁니다. 일상에서도 자주 감탄합니다. 작은 것에도 ‘와! 정말 예쁘구나’ 하고 날마다 감동하죠.

 

순간마다의 삶이 귀하고 세상의 많은 것들이 아름답습니다. 제 안에 슬픔과 고통이 빚어낸 시선 하나가 새겨졌기 때문일 겁니다. 종종 친구와 함께 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만 이내 스스로를 달래어 줍니다. ‘이젠 그럴 수 없어. 머잖아 다른 친구를 또 만날 거야.’

 

앞으로의 계획도 적어두고 싶네요. 오랫동안 수업도 열지 않고 지냈습니다. 고백 프로젝트도 한동안 멈췄고 여타의 인문학 수업도 마찬가지였죠. 다시 그 조촐하고 깊었던 수업들을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세상 어디에나 수많은 강연이 있지만, 특히 연지원의 수업을 좋아하는 분들도 계시니까요.

 

내년 봄에는 서울을 장기간 떠나게 됩니다. 그 전까지 다양한 수업을 진행할 생각입니다. 강독회 형식의 수업(수잔 손택, 그리스인 조르바)이나 인문학과 리버럴 아츠 수업 뿐만 아니라 글쓰기, 강의력, 시간관리, 리더십 등과 같은 실용적인 주제도 한 번씩 오픈하려고요.

 

12월부터 매주 목요일(예정) 저녁마다 진행할 텐데 오랜만에 블로그 인연 분들을 만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오랫동안 블로그 독자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기도 하고요. 고마움의 작은 표시로 수업료를 절반으로 낮춰 진행할 겁니다.

 

너무 오랫동안 쉬었고 긴 공백 후의 포스팅이라 몇 분이나 확인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몇 분과의 즐거운 수업과 따뜻한 뒤풀이를 염두에 두며 포스팅합니다. 조만간 더 나은 글로 찾아뵙겠다는 약속도 전하고요. 그간 다른 건 몰라도 공부는 계속 이어왔거든요.

 

찾아주신 분들의 행복과 건강을 기원 드립니다.

 

[덧] 11월에도 공개 강연이 있긴 합니다. 11월 15일(수)은 여의도 CGV에서 독서법을, 14일(화) 19시 30분에는 토즈 종로점에서 <그리스인 조르바> 특강을 진행하죠. 조르바 특강은 댓글로 신청하시고 오시면 되고요(강의료 1만원 추후 입금). CGV 특강은 아래에 링크를 전합니다.

http://www.micimpactschool.com/s/item.php?it_id=1508383425&ca_id=2050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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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1.

'다르게 살아보자! 완전히 새롭게 시작하는 삶이 힘들다면 살짝 다른 삶을 시도해 보는 거야.' 온 몸으로 샤워 온수를 받아내며 거듭 다짐했다. 조금은 결연했다. 들뜨기도 했다. 세신(洗身)하고 세심(洗心)하는 영혼이 되어, 결심이 단단하게 영글때까지, 나는 샤워를 멈추지 못했다. 몸을 닦고 나오니 40분이 지났다. 이번 다짐은 얼마나 오래 지속될까? 모를 일이다. 관심 갖지 않으련다. 또 하나의 결심으로 새로운 주간을 맞이하는 나에게만 집중하고 싶다. 


얼마간의 들뜸 덕분에 비장하진 않았다. 다행이다. 비장함을 도구로 삼고 싶진 않으니까. 전쟁이 벌어지거나 슬픔에 휩싸이지 않는 이상, 삶을 영위하는 도구는 '무기'가 아닌 '장난감'이리라. 인생살이는 전시가 되기도 하지만 놀이가 되기도 하는 법이니! 주말에 흠뻑 쉬고 나니 에너지가 듬뿍 채워진 느낌이다. 조식도 든든하고 맛나게 먹었다. 노트북이라는 일급의 장난감에서부터 연필이라는 작은 장난감에 이르는 도구들을 챙겨 집을 나섰다. 일상을 빛내고 순간에 몰입하며 자주 웃는 하루를 살아야지!


2.

삶은 거대한 놀이터라고 생각해 본다. 이럴 때마다 오래 전에 접한 시인의 생각이 떠오른다. 인생은 세 가지의 놀이라고, 시인이 노래했다. 의식주 놀이, 만남 놀이, 문제해결 놀이! 나는 여기에 두 가지를 덧붙이고 싶다. 자기실현 놀이와 진짜 놀이! 앞선 세 가지가 일상적인 놀이라면 덧붙인 두 가지는 일탈의 놀이다. 범죄는 짓지 말아야 하나, 일탈은 종종 시도되어야 한다. 일탈의 정의 하나는 "정하여진 영역 또는 본디의 목적이나 길이나 조직 따위로부터 벗어남"이다.


누구에게나 잠시 벗어남이 필요하다. 본래의 길을 걷는 삶과 잠시 벗어날 줄 아는 삶의 조화를 위해서 말이다. 나는 인생이라는 놀이를 즐기기 위한 두 가지 기본 규칙을 정했다. 느슨하면서도 타이트한 규칙이다. 규칙은 일종의 울타리다. 너무 좁으면 갑갑하여 지키기가 어렵고, 너무 넓으면 느슨하여 의미가 없다. 주중에는 일상의 놀이에, 주말에는 일탈의 놀이에 몰입할 것! 나인 투 식스는 일상의 놀이에, 그 외의 시간은 일탈의 놀이에 빠져들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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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1.

필슨(Filson)을 만난 순간이 떠오른다. 젊고 세련된 감각이 느껴지는 도시 포틀랜드(미국 오리건 주)에서였다. 나는 중고 서점 ‘파웰 북스’ 인근에 위치한 에이스 호텔에 묵었다. 호텔 맞은편에는 Union Way라는 작은 쇼핑몰이 있다. 예닐곱 개의 상점이 들어선 30m 즈음 되는 거리로 기억한다. 초입에 <Steven Alan>이라는 편집샵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거기서 한 눈에 반해 들고 나온 품목이 ‘필슨 토트백’이다. 2014년의 일이다. 그 이후로 가장 자주 들고 다니는 가방이 되었다.


 

2.

필슨(Filson)은 꽤나 전통 있는 브랜드다. 19세기 말 미국에는 골드러시 열풍이 불었고, 창업자는 황금을 찾아 모험을 떠난 이들에게 필요한 의류를 제작했다. 아웃도어 의류 브랜드 필슨의 탄생이었다(Since 1897). 필슨코리아 홈페이지에 따르면, 1914년 자사 브랜드와 디자인으로 특허를 받은 ‘크루저 자켓’이 베스트셀링 품목이다. 골드러시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필슨은 품질 좋은 아웃도어 의류를 계속 만들어왔다. 기능성 의류와 튼튼한 가방들을!

  

3.

“제조업으로 생산할 수 있는 아웃도어 제품 가운데 최고의 제품만을 생산하는 것이 필슨의 이상이자 정책입니다.” 창업자인 Clinton C. Filson이 1926년 필슨 카탈로그에 적었다는 문구다. 홈페이지에는 이와 함께 자부심 넘치는 문장도 있다. “필슨은 그 누구도 무거운 울과 튼튼한 면과 천연 가죽을 필슨처럼 공들여 만들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필슨의 철학이 마음에 들었다. 내 경험을 봐도 200달러가 채 안 되는 천 가방이 가죽처럼 매우 튼튼했다.

  


4.

더욱 마음에 드는 문장은 따로 있다. “고객 한 사람이 요구하는 제품이 없을 경우에는 개별적으로 그 사람만을 위한 제품을 만들기도 했다.” 읽는 순간에 짜릿함을 느꼈다. 고객을 향한 애정과 열의가 느껴져서다. 나 역시 종종 ‘한 사람을 위한 강연’을 연다. 한 사람의 요구에 화답하는 콘텐츠가 가장 보편적인 메시지가 된다는 믿음과 그 한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넘친다는 애정이 결합된 행위, 그것이 한 사람을 위한 강연이다.


  


5.

오늘도 검은색 필슨 토트백 가방을 들고 나왔다. 문득 가방에 든 품목을 모두 꺼내보고 싶어졌다. 얼른 테이블 위에 하나 둘 꺼내 놓았다. 한적한 카페여서 누리는 잠깐의 여유로움이요, 즐거운 관찰이다. 노트북, 수업, 일기장, 선글라스, 헤드폰, 필통, 책 한 권! 가방 속 물건의 전부다. 여기에 약간의 돈만 있으면 살아가는 데에 별다른 지장이 없을 만큼 내게는 중요한 품목들이다.



‘아! 이것이 나의 본질이구나!’ 나도 모르게 툭 내뱉은 말, 나를 더욱 나답게 만드는 물건들! 담고 싶은 모든 물건을 넣을 수 있는 가방은 없다. 때문에 가방은 본질을 담게 된다. 그 날의 본질, 한 사람의 본질, 어느 인생의 본질을 담는다. 작은 깨달음에 흥분했나 보다. 과장 섞인 언사마저 내뱉고 싶어진다. “당신 가방 안의 물건들을 보여주세요.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 볼게요.”

*

색깔별로 마련한 필슨 토트백 말고도 브리프케이스도 하나 구입했다. 두 번 들고 나갔다가 집에 잠들게 됐다. 위 토트백처럼 통 내부를 사용하던 내게는 내부 포켓이 많은 게 오히려 불편했다. 필요하면 파우치를 활용하는 편이 내 스타일인가 보다. 그래서 필슨 브리브케이스 컴퓨터 백(브라운)을 중고로 팔기로 했다. 홈페이지 판매가로는 402,000원이지만, 국내 공식판매처(삼지통상)가 아닌 다양한 루트로 판매되는 제품이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손잡이 부분이 공식판매처 제품과 살짝 다르다. 필슨코리아 홈페이지 제품은 아래 사진 참조. (판매완료)


중고 판매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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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비가 온다. 좋다. 대지와 감성이 촉촉해진다. 기분 좋은 차분함이다. 그윽함이기도 하다. 고요한 새벽, 세밀한 빗소리 그리고 해갈의 산뜻함.

 

회색빛 하늘이 아름답다. 햇살을 머금은 푸른 빛깔의 하늘이 때때로 처연하듯이 회색빛 하늘도 황홀할 수 있다. 그것이 자연이고 삶이다.

 

밤이면 좋겠다. 이 순간이 하루 일과가 끝난 밤이라면 하염없이 감상에 젖어들 것이다. 와인과 음악이 나의 벗으로 함께하리라. 그리움마저 행복이 될 시간!

 

지금은 아침이다.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몇 곡의 노래를 들었다. 이제 9시다. 어젠 푹 쉬었다. 오늘은 일을 즐겨야지. 마음은 이미 도구들을 챙겨 집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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