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Jazz Radio>를 켰는데, Cool Jazz 채널에서 폴 데스먼드가 보이는거야. 바로 클릭했지. 아, 미치겠다. 역시, 데스먼드야. 이 베이스소리 어쩔! 색소폰 연주자로는 스탄 겟츠랑 폴 데스먼드가 최고인 듯. 부드럽고 달콤하거든. 존 콜트레인은 종종 날카로워. 사실 부드러움과 강인함을 모두 품고 있음이 콜트레인의 힘이겠지. 아, 데이브 브루벡으로 넘어가 버렸네! 휴우, 아쉽다. 사실 데이브 브루벡도 좋지. 그 유명한 브루벡의 <take five>를 폴 데스먼드가 작곡했어. 맞나? 헷갈리네.” - 카친과의 대화



카톡 대화가 끝나자 트럼페터들이 아우성쳤다. 리 모건, 쳇 베이커, 클리포드 브라운이 협연으로 나를 부른다. "어이, 친구! 자네 인터넷 카페 닉네임이 한 동안 '리모건'일 정도로 나를 좋아했지 않나. 잊었는가?" 그럴 리가요. 이미 당신이 연주한 <You go to my head>도 감상했는 걸요. 베이커 씨도 끼어든다. "재즈 발라드로는 내가 최고라며?" 맞아요. 지금도 변함이 없어요. 스탄 겟츠와 당신은 제게 최고의 재즈 발라더예요. 최고는 늘 복수(plural)로 존재하잖아요. "헤이, 나더러 정말 달콤하다며?" 클리포드 브라운의 질문에는 결국 말을 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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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산을 오르는 중이다. 성장이라는 산을! 이번 산의 이름은 ‘자제력’이다. ‘변증법적 열망’이라는 산맥의 한 봉우리다. 히말라야 산맥의 K2 봉 정도가 되겠다. 오르기가 만만치 않다. 아주 험준하다. 진보는 더디지만, 결국에는 조금씩 나아갔다. 가끔씩 미끄러져 퇴보도 했지만, 포기는 없었다.


지난달에는 한 100m 즈음 올랐다. 수개월째 올라 대지가 보이지 않을 지점에 이르렀다. 어제는 대지의 사람들과 연락을 주고받았다. 이번 산행의 목적은 뭐야, 라고 물어보는 이들은 극소수였다. 그들은 성장의 가치보다는 성장에 따르는 불편함과 고통에 안쓰러워한다. “뭘 그리 힘들게 살아?”


그들은 모르는 걸까? 삶을 농밀하게 사는 영혼은 성장하지 않으면 더 고통스럽게 산다는 것을. 나는 지금 조금이라도 덜 고통스럽게 살려고 노력하는 중임을. 나 또한 지독히도 고통을 피하려는 낭만주의적 영혼임을. 다만 꿈이 원대하여 ‘지금의 나’에 안주하고 싶지 않을 뿐임을. 때로는 적극적 소통이, 때로는 묵직한 삶이 오해를 풀리라. 지금은 산행에 매진한다.


산행의 목표는 정상이 아니다. 대지가 목적지다. 새로운 대지도 아니다. 원래의 대지다. 바라는 것은 ‘더 건강해진 나’다. 인생이라는 여정을 나의 척추와 두발로 걷고 싶다. 나의 길을 멋지게 걷기 위해 지금은 산행 훈련을 하는 중이다. 기실 얼른 대지로 내려가고 싶다. 숨이 가쁘고 힘들고 때로는 춥기도 하니까. 나는 산행보다 도보가 좋다.

나의 꿈은 산악인이 아니라, 건강한 보행자다. 좀 더 강한 심장과 튼튼한 다리를 갖는 것! 가끔씩 산행을 결행하는 이유다. 나는 고행을 쌓는 사람이 아니다. 길을 걷다가 만나는 웅덩이를 훌쩍 뛰어넘을 정도만큼만 성장하고 싶을 뿐이다. 정말이지 물처럼 살고 싶다. 만나는 웅덩이마다 채우고 다시 흐르는 시내처럼, 끊임없이 더 큰 바다로 흐르는 강물처럼.

졸졸졸, 경쾌한 시냇물 소리. 내 삶에서 소리가 난다면 바로 이 시냇물 소리이고 싶다. 어제 갔던 카페 주인은 개를 키웠다. 손님들이 만지려고 했더니 자주 그르렁댔다. 물은 사나운 개처럼 그르렁대지 않는다. 계곡을 흐르는 물들의 합창을 상상해 보라! 계곡을 춤을 추며 흐른다.

산행을 마치고 다시 대지에 서면, 비장함을 벗어야지, 그르렁대지도 말아야지. 시냇물처럼 경쾌하게 흘러야지, 강물처럼 유유히 살아야지. 나만의 방향으로 나만의 속도대로! 저 넓은 한강을 보라. 폭우가 쏟아져 범람해도 일시적이다. 사나흘이면 자신의 수량을 되찾으니까.

대극의 가치를 충돌시켜 가장 좋은 것만을 벼리어 내는 이상적인 노력이 ‘변증법적 열망’이다. 깊은 물은 유유해지고, 얕은 물은 경쾌해진다. 두 가지 모두 물이다. 나도 ‘깊은 명랑’을 꿈꾼다. 비장함에서 빚어낸 깊이, 경쾌함에서 퍼 올린 명랑! 이 둘의 합작품, 깊은 명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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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을 찾아야겠다. 전문가도 스승이다. 지식, 기술, 지혜를 효과적으로 설명하는 전문가! 멘토도 스승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영감을 주고 애정 어린 조언을 건네는 멘토들! 구루도 스승이다. 밤하늘의 별처럼 바다의 등대처럼 어두운 인생길에 빛을 비추는 구루들! ‘어떻게 살 것인가?’ 구루는 이 질문에 대해 설명이 아닌 자신의 ‘존재’로 답한다.


살면서 전문가도 만났고, 구루도 만났다. 축복이었다. 지난 해 언제부터인가 더 큰 축복을 누리고 싶어졌다. 서두름 없이 안주함 없이, 신중하지만 적극적으로, 스승을 찾아야겠다. 책으로 사숙하고, 만남으로 사사를 받아야겠다. 최근 넉 달 가까이 겪어 온 고통의 원인은 나의 부덕함이다. 피할 수 없는 이다. 구제책은 하나다. 성장할 것! 스승이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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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즘 '장기 30대'를 사는 중이다. 이 말을 설명하는 글을 쓰고 싶었다. 며칠 동안 이어온 생각을, 글쓰면서 다듬기 위해서. 글은 
독자뿐만 아니라 필자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이리 말할 수도 있으리라. 필자를 구원한 글이 독자에게도 유용하다. 글을 시작할 때의 필자와 마무리할 때의 필자가 다른 존재가 된다면, 그것이 필자를 구원한 글이다. 글을 쓰면서 자기 문제를 해결하고, 도약하고, 변화하는 필자 말이다. (여기서의 글이란 한 편이 아니라 복수로서의 글이다. 어찌 한 사람의 삶이 글 한 편 쓴다고 달라지겠는가.) 뒤집어 말하면, 어떠한 글이 필자가 경험한 '삶의 변화' 또는 '생각의 도약'에서 탄생한다면, 훌륭한 글이 될 확률이 높다.


실례를 들어야겠다. (관념적 설명은 자주 오해를 부르니까. 실체, 실례, 실증이 필요한 이유다.) '글쓴이를 구원한 글'은 어디에 있는가? 서점에 달려가면 만날 수 있고, 블로그 세계에서도 발견된다. 기실 어디에나 있다. 저명한 인사부터 꼽자면, 푸코, 몽테뉴, 레비-스트로스, 프로이트, 맑스, 니체가 그러한 글을 썼다. 가장 쉽게 접근할 만한 텍스트는 몽테뉴의 『수상록』이다. 레비-스트로스의 학문적 자서전이라 할 『슬픈 열대』도 위대한 자의식으로 쓰인 책이다.


글쓴이를 구원하는 글이 가져야 할 첫째 조건은 '진솔함'이다. 성장이라는 나무는 자기 직시의 땅에서 자라는 법이다. 『수상록』의 서문을 보라. "세상 사람들의 호평을 사려고 했다면, 나 자신을 좀 더 장식하고 조심스레 연구해서 내보였을 것이다. 모두 여기 생긴 그대로의 자연스럽고 평범하고 꾸밈없는 나를 보아 주기 바란다. 내가 묘사한 것은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내 결점들이 있는 그대로 나온다. (중략) 나는 기꺼이 자신을 통째로 적나라하게 그렸다고 장담한다. 나 자신이 바로 내 책의 재료다."  (『수상록』 서문 中)


10대라면 이처럼 진솔한 글을 쓰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들은 세상이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신경쓰느라 거울을 들여다보며 산다. 거울은 외적인 모습만 비출 뿐이다. 거울은 자신의 삶과 내면을 들여다볼 여유와 능력이 발달시키지 못한다. (질책이 아니다. 그 나이의 특징일 뿐.) 성숙한 이들은 20대, 30대에 자기 성찰의 능력을 키워내어 다른 이들의 시선이 아닌 자기 내면의 희열을 쫓으며 산다. 나도 그런 대열에 합류하고 싶었는데, 얼마나 성공적이었는지는 찬찬히 판단해보아야겠다. 40대가 되기 전에 이런 고민을 일단락하고(영원한 종결이 아닌 지금 가능한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싶다.


2.

'장기 30대'는 지금의 복잡다단한 내 삶을 아울러 설명하는 요긴한 키워드다. 후회와 아쉬움, 현재의 상황, 포부와 욕망이 모두 담긴 개념이다. 수년 전부터 나를 지배해 온 감정과 현재의 내가 삶을 바라보는 태도와 시선, 앞으로는 어찌 살고 싶은지에 대한 열망을 모두 설명하는 말이다. '장기 30대'라는 말을 자주 생각하다 보니, 내게는 아늑한 침실 같은 단어가 되었다. 생각하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나를 감싸고 위로하기 때문이다. 차분하고 고요한 분위기는 아니다. 비유컨대, 홀로 편안히 잠드는 침실이기보다는 연인과 뒤엉킨 욕망의 침실이다. '장기 30대'라는 말에는 차분한 성찰과 함께 새 삶을 향한 나의 의지와 열망도 담겼기 때문이다.


3.

우리는 '세기'라는 말로 역사를 구분하곤 한다. 19세기, 20세기에 이어 지금은 21세기다. 이 세기라는 구분, 유용할 때가 많다. 인문학 수업을 할 때의 일이다. 딱 집어 연도를 말하고 싶은데, '데카르트가 몇년에 사망했더라?' 하고 가물거리는 경우, 해결은 간단하다. '17세기 중반'이라고 말하면 되니까. 유용한 개념이지만, 역사 이해를 방해하기도 한다. 세기의 변경되면 한 시대가 종언된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사실이 아니다. 세기의 변경과 한 시대의 종언은 무관하다. 한 해의 변경이 우리 삶의 의미있는 변화와 일치하지 않는 것처럼.


에릭 홉스봄의 '장기 19세기' 개념은 이런 문제의식에서 탄생했다. 에릭 홉스봄은 19세기의 본질을 따졌다. 편의적 구분에서 19세기는 1800년에서 1899년이지만, 19세기의 본질을 따져본 관점에서는 다른 구분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에 따르면, 19세기는 프랑스 혁명(1789)과 함께 시작했고, 1차 세계대전(1914)로 종결된다. 한 세기가 100년이 아니라 126년이 되었다. 그래서 '장기' 19세기가 된 것이다. 이 위대한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는 장기 19세기를 크게 세 시기 '혁명의 시대, 자본의 시대, 제국의 시대'로 구분했다. (세 시기는 모두 한 권씩의 단행본으로 출간되어 역사학의 고전이 되었다.)


홉스봄의 착상은 천재적이면서도 당연한 접근이다. 2017년 계획을 1월 1일에 세우지 않고 지난해 12월 초에 세웠다고 하자. 또는 11월에 충격적인 일을 당했을 수도 있다. 어찌되었든 나의 태도와 생각이 달라져서 삶의 도약을 이루었고 그것이 올해로까지 이어져 한 해를 보낸다면, 그의 2017년은 이미 지난해의 어느 날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여길 수 있다. 지난 한 해 동안 읽었던 책을 정리하고 싶은데 사정상 연기되어 1월 20일에야 완료했다면 그의 독서결산 시점은 1월 20일이 분기점이 되는 셈이다. 이처럼 우리에게는 달력의 날짜와는 무관한 '다분히 개인적인 의미'를 기준으로 한 구분이 필요하다.


4.

다시 말한다. 지금 나는 장기 30대를 살고 있다. 처음보다는 이 말이 의미 있게 들렸으면 좋겠다. 내게는 정말 의미 있는 말이기 때문이다. 진솔하긴 하나 조금 과장되이 느껴질 말로 표현하면, 앞으로 내가 스스로를 기쁘게 만드는 황홀한 삶을 사느냐 마느냐가 달린 문제다. 나는 30대에 하려고 했던 일들을 고스란히 해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다면 '장기 30대'라는 역사점 개념을 굳이 차용할 필요도 없으리라. 나는 그러지 못했다. 자칫하면 30대 꿈의 목록을 고스란히 떠 안고 40대로 넘어가게 생겼다. (이미 넘어간 게 아니냐고 묻지 마시라. 나는 지금 장기 30대를 사는 중이니까.)


5.

나는 미처 해내지 못한 과업을 완료하기 전에는 세월과 타협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이것은 나이듦과의 결투가 아니다. 나는 탈모, 주름살, 노안과 평화롭게 지낼 마음의 준비는 해 두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면 닥치면 일시적인 감동의 동요는 있을 테지만.) 결투와 같은 경쟁적인 단어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나태하고 끈기 없는 내게는 종종 필요한 단어이기도 하다. 장기 30대의 실체를 이런 단어로 표현하자면, 나는 신체적 노화가 아니라, 평생을 따라다닌 나의 성격적 약점들과 한바탕 겨뤄보고 싶은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3無와의 결투다. 끈기없음, 용기없음, 숫기없음! 자신감은 있지만 이 녀석들이 너무 빈약하여 삶도 시들어지고 말았다. 이것이 나의 30대에 대한 자가진단이다. 지난 10년에 대한 후회와 아쉬움이 생겨난 것도 따지고 들면 세 가지와 무관하지 않다. 지금도 저 3無를 달고 산다. 앞으로의 삶에서도 저들과 동행할 것이 눈에 훤히 보인다. 정복하겠다는 마음은 없다. 지혜롭고 행복한 '동행'을 위해 한번 진하게 겨뤄볼 생각이다. 다투고 난 후에 우정이 깊어지듯, 겨뤄본 이후의 단단해질 내 인생을 기대한다. 그리고 노래한다. 나의 슬로건을! (연지원)


약점을 버리려 말라. 동행하라.

약점이 나를 위해 일하게 하라.

그러기 위해 약점과 뒹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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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즐겁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해도 행복할 수 있지요. 회사에서 안 좋은 일이 있던 날의 저녁에도 친구와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고, 인생의 목적을 몰라도 책이나 영화를 보면서 행복감에 빠질 수도 있죠.


행복은 복합적인 감정입니다. 행복감의 본질은 삶에 대한 '만족감'입니다. 우리는 뜻밖의 장소나 상황에서 만족을 느낍니다. 잔잔한 호숫가나 잠자리에서의 평온도 행복감이고, 힘차게 달려간 후의 성취감도 행복감이니까요. 서로 다른 것에서 만족하니, 행복은 다분히 주관적인 감정입니다.


다양한 만족감을 '행복'이라는 하나의 단어로 묶어 버리면, 일상 속의 여러 가지 만족을 섬세하게 누리지 못할 겁니다. 단어가 사유를 돕고, 정서를 풍요롭게 하니까요. 긍정적 정서를 10가지로 구분한, 긍정심리학자 바버라 프레드릭슨의 연구는 그래서 반갑습니다. (즐거움, 감사, 평온, 관심, 희망, 자부심, 재미, 영감, 경외심, 사랑)


즐거움이나 의미가 주는 긍정적인 영향을 모르거나 중요하지 않다고 말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심리학자들도 행복으로 가는 두 개의 길을 즐거움(쾌락주의적 관점)과 의미(자기실현적 관점)라는 키워드로 설명하고요. 저는 지금 즐거움이나 의미에서만 행복감을 느끼는 게 아님을 말하는 중입니다.


행복은 어디에서나 발견할 수 있습니다. 실연의 아픔 속에서도 잠시 행복감을 누릴 수 있죠. 오늘은 10가지의 긍정적 정서 중 하나인 '영감(insprition)'을 나누고 싶습니다. 프레드릭슨에 따르면, 영감은 인간의 위대함이 주는 감동과 정서적인 환호입니다. 예술 작품, 스포츠, 장인 정신 등에서 받는 감정이죠.


최근 열번도 넘게 보았던 영상 하나를 소개합니다. 아메리칸 갓 탤런트에 등장한 로라 브레튼이라는 열 세살 소녀가 전하는 행복을 만끽했던 영상입니다. 3:00부터 8:00까지 보시면 됩니다. 5분입니다. '영감'이라는 행복을 맛보시는 데에는 그 정도의 시간이면 충분합니다. 너무 길다고 느껴시진 않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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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시장을 방문하는 사진을 찍을 때 다른 정치인들은 사진 찍히는 순간만 포즈를 취하고 가버리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상인들과 소주잔을 부딪치고 그 술을 계속 같이 마셨습니다. 그분의 경우 모든 사진이 '연출'이 아닌 '실제'였습니다." - 노무현 대통령 전속 사진사 장철영


대권 주자들의 정치 쇼(Show)를 볼 때마다 느끼는 아쉬움과 갈증을 잠시나마 날려버리는 말이다. 순도 높은 청량감이다. 장 씨는 노 대통령의 사진을 '가식 없는 삶과 그것이 그대로 반영된 사진'이라고 특징지었다. 한 번은 대통령이 당부도 했단다. “연출 사진은 피곤하다. 있는 그대로를 찍었으면 좋겠다.”


장씨는 말한다. “대통령은 저를 사진사로 존중해 주셨습니다.” 추억과 감상에 젖은 ‘미화’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장 씨의 신간 『대통령님, 촬영하겠습니다』에 소개된 일화 때문이다.


“(대통령) 님은 저를 보시며 한 마디 하셨습니다. 그렇게 많이 찍었는데 아직도 계속 찍고 싶나? 저는 웃으며 ‘네’ 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럼 한번 니 마음껏 찍어봐라… 어디에서 포즈를 취하면 좋겠나? 님은 제가 가리키는 곳에 털썩 앉으셨습니다. 처음 있는 일이라 저는 신이 나서 마구 셔터를 눌러댔습니다.” (p.132)



대통령은 자신의 업을 사랑하는 한 직업인(사진사)의 모습을 예쁘게 보신 것이리라. ‘처음 있는’ 연출이었지만, 국민에게 보여주기 위한 사진이 아니었다. 당신께서 보시기 위함도 아니었음을 장 씨가 <News1> 권영미 기자와 가진 인터뷰 기사를 읽으며 알게 되었다.


장 씨가 찍은 노 대통령의 사진은 50만 장에 이르지만, 노 대통령이 생전에 본 사진은 4장의 연속 사진뿐이란다. ‘손녀의 입에 과자를 넣어줄듯 하다가 자신의 입에 넣는 장면’이다. 장 씨도 마음에 들어서 출력해서 직접 보여 드린 것. 대통령은 “너무 좋다” 하시며 액자로 만들었다.


말을 잃었다, 단 4장이라니!
연출은 ‘보여’ 주고, 삶은 ‘울림’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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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겨운 연말을 보냈다. 눈물 없이 지낸 날이 없었다. '관계의 상실'로 아프도록 슬펐고, 앞으로 들이닥칠 '상실의 예감'으로 고통스러웠다. 며칠 밤은 불면으로 지새워야 했다. 시공간마저 내 편이 아니었다. 집에 머물면 답답해서 밖으로 나가야 했고, 밖을 나돌면 불안해서 집으로 들어와야 했다. 과거와 미래도 나를 옥죄어왔다. 이별한 연인과 사별한 인연들 그리고 앞으로 마주하게 될 또 다른 상실들! 세상 어디에도, 인생을 더 살아도 '탈출구가 없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나는 공포감을 느꼈다. 우울증인가 싶어 관련 책을 뒤적였다.


“인간의 모든 지적 생산물은 ‘생각’의 결과이며, 우울증 환자는 순수하기 짝이 없는 ‘생각하는 인간’이다. 그들은 우리가 평소 소홀히 넘겨 버리는 사소한 것들까지도 예민하게 짚어 내고 생각한다. 그들은 ‘우울증에 걸리지 않는 사람’보다 인생과 운명에 대해 훨씬 많이 생각하며 관계와 감정을 중요하게 여긴다. 그들은 어떤 화제든 깊이 탐구하고 생각을 거듭하며 자신의 관념과 사상을 돌이켜본다. 반면 바쁘게 살아가느라 ‘병에 걸리지 않는 사람들’은 생각하는 것을 귀찮아하며 미뤄둔다.” (구거,『우울증 남자의 30시간』, 유노북스)


헤르만 헤세와 같은 대문호들이 우울증과 신경 쇠약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았던 이유에 대해, 나는 구거처럼 생각해 왔다. 사람과의 대화에서든 책이나 영화에서든, 자신의 생각을 만나면 반가운 법이다. 구거의 말은 그래서 반가웠고, 자가 진단에도 확신을 더해 주었다. 나는 다른 이들보다 자주 ‘죽음’을 사유했고 ‘사별’을 좀 더 힘겨워했다. 선생님이 돌아가신 후에도 친구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오랫동안 아파했다. 구거의 견해는 나의 일면을 보여주었지만, 책에 등장한 우울증 환자와 나는 차이점이 많았다. 다른 책을 읽어야 했다.


“앞일을 예감한다는 것은 가령 생일, 기념일 휴가 같은 일들에 대해 기대를 더 높여주지만, 불행히도 상실과 관련된 예감의 경우엔 그 가능성과 현실성 또한 더 크게 느끼도록 만든다. 인간은 자신이 필연적으로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자각하는 유일한 종이다. 우리는 어느 날인가는 죽으리라는 것을 깨닫는다. 자신뿐만 아니라 주위의 모든 이들도 때가 되면 죽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것이 ‘상실의 예감’이다. 알 수 없는 일에 대한 두려움과 언젠가는 경험해야 할 고통이 미리 문을 두드리는 것이다.”(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상실수업』)


자신을 이해하면 위로를 얻는 걸까. 나는 『상실수업』에서 등장한 ‘상실의 예감’이라는 개념은 나를 깊이 위무했다. 내가 겪는 고통의 가장 중요한 원인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두 분 부모님과의 사별, 두 선생님과의 사별, 절친한 친구와의 사별을 겪으며 나는 상실을 ‘예감’하게 된 게 아닐까? 아주 섬세하고 세밀한 예감을! ‘상실의 예감’을 설명하는 문장 하나하나가 나를 어루만져, 지금까지 몰랐던 또 하나의 자아를 만난 느낌이었다. 반면 독서는 힘겹게 진행됐다. 매 쪽마다 울었고, 어떤 구절에선 절망했다. 다음은 특히 인상 깊은 구절들!


“상실의 예감에서 오는 슬픔은 앞으로 일어날 상실에 우리를 사로잡히게 만든다.” / “예감이 가져다주는 슬픔은 실제로 일어날 사건만큼이나 강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 “모든 사람이 상실을 예감하는 것은 아니며, 예감한다고 해도 똑같은 방식은 아니다.” / “상실의 예감에서 오는 슬픔은 죽음 이후에 느끼는 슬픔과는 별개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상실의 예감은 앞으로 마주해야 할 고통스런 과정의 전주곡이며, 치유되어야 할 이중의 슬픔이다.” 전주곡이라는 말이 무서웠다. ‘전주곡이 이렇게 힘든데….’


누군가의 말이 고통을 더하기도 했다. ‘뭘 그런 일로?’, ‘아직도 힘들어 해?’ 라는 식의 말들은 쓸쓸함을 안겼다. 외로움은 혼자 있을 때가 아니라 이해받지 못함에서 오는 법이니까. 선의의 조언도 많이 들었지만, 다음의 구절이 나를 더욱 위로했다. “상실을 예감하면서 느끼는 슬픔은 상실 후의 아픔보다 더 조용하다. 말이 없어진다. 슬픔을 자신 안에 간직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적극적인 개입도 원하지 않는다. 말할 필요도 느끼지 못한다. 그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다. 단지 누군가가 손을 한 번 잡아주거나, 말없이 옆에 앉아 있어줌으로써 위안 받을 수 있는 그런 감정이다.”


돌이켜보면, 세월은 무심했고 자애로웠다. 나의 고통과는 무관하게 도도하게 지나가 버리는가 하면, 나를 서서히 치유하기도 했다. 상실의 예감으로 인한 이번 고통은 아직 진행 중이다. 세월의 무심함만 느끼고 있다는 말이다. 고통을 가까스로 견디며 사는데, 별안간에 해가 바뀌었다. 원치 않은 공간으로 떠밀리듯이 2017년을 맞았다. 새해는 이방인에게도 변화의 기운을 건네는 걸까? 1월 3일에는 두 달 만에 처음으로 눈물 없는 하루를 보냈다. 이튿날도 비교적 밝게 보냈지만, 5일부터는 다시 힘겨움이 찾아왔다. 8일에는 책상에 엎드려 몇 분 동안 울어야 했다. 고통은 떠난 게 아니라 잠시 외출했을 뿐이었다.


울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행복한 시기도 인생이고, 불행을 느끼는 날들도 인생이다. 나는 내 삶의 모든 날들을 사랑하고 싶었다. 정신의 에너지가 바닥나고 눈물에 겨운 시기에도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고 싶었다. 이상과 현실은 달랐다. 고통의 날들을 사랑으로 끌어안기란 쉽지 않았다. ‘상실의 예감’을 정성스레 매만지고 싶었지만, 정작 그 ‘예감’이란 놈은 나를 어두운 구석으로 몰아넣었다. 윽박지르지는 않았지만, 인생의 어둡고 무서운 면을 조용히 속삭였다. 이런 녀석을 사랑하진 못할지라도, 언젠가는 받아들여야 함을 깨달아가는 중이다.


지난 70여 일을 돌아보니, 인생이 나를 집어 올려 낯선 세계에 내던진 느낌이다. 인간은 새로운 땅에서도 언제나 문명과 발전을 이룩해 왔다. 개척이 힘겨울수록 개척자는 강인해졌다. 성장하고 도전하는 이들이나 진짜 인생을 살려는 이들에게 ‘처음’은 숙명이다. 누구나 단 한 번의 인생을 산다. 처음 겪는 일을 만날 수밖에 없다. 자기 인생을 살면서도 이방인이 되는 때다. ‘처음’은 떨리고 설레며 두렵다. 어떤 처음은 두려움만을 안기기도 한다. 두려움은 ‘이겨내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 때 증폭되고, ‘결국엔 견뎌낼 거라고 믿을 때’ 작아진다. 머지않은 미래에, 지금의 시기를 평온하게 돌아볼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며칠 전에 쓴 메모로 글을 맺으련다.


"내 인생은 새로운 세계로 던져졌다. 나는 온 몸으로 굴러 우아하게 착지했다. 이내 눈에 보이는 길을 묵묵히 걸었다. 내 길인지 아닌지는 알지 못했다. 걷는 것 자체가 중요했다. 해가 바뀌어도 내면의 슬픔은 가시지 않았고, 고통도 여전했다. 온전하게 회복되어 새해를 맞으리라고 기대하진 않았으니 충격은 없었다. 힘겨움 속에서도 지금 이 순간의 삶을 놓치고 싶진 않았다. 나는 문제를 가진 채로 성장하면서 있는 그대로의 현재를 살려고 애썼다. 아픔과 상처를 둘러메고 계속 걸어갔다. 걷다 보니 ‘바로 여기야, 이제는 쉬어도 돼’ 하는 마음의 소리가 들려왔다. 낯설지만 새로운 기운이 가득한 땅에서 휴식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눈물과 고통이 가득한 시기였지만, 삶과 죽음을 맑게 사유한 날들이었구나!’ 라고." (연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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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이었던가. 친구와 함께 유니텔 아이디를 만들던 때가 기억난다. PC통신 채팅을 통해 여자 친구를 만날 수도 있다는 말에 둘의 마음이 통했던 것. 접속 화면에 들어서니 아이디를 만들란다. 친구의 아이디는 ‘옥계추억’으로 정해졌다. 고등학교 1학년 때 함께 여행을 다녀왔던 장소다. 우리 모임의 이름 ‘인스펙션’이 정해지기도 했던 곳.


내가 문제였다. 수많은 단어를 넣어도 이미 존재하는 아이디란다. 20~30분이 흐른 뒤 우리는 지쳤다. 배가 고팠다. 무심결에 “배고프다”라고 쓰고서, 나도 모르게 덜컥 엔터키를 눌렀다. ‘아차’ 싶었을 때는 이미 늦었다. “등록되었습니다”라는 메시지가 뜸과 동시에 나의 유니텔 아이디는 ‘배고프다’가 되었다. 친구와 나는 배를 잡고 웃었다. (20대의 풋풋함과 웃음 그리고 꿈이 있었던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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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친구가 내 글 몇 편을 보더니, 내 인생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했다. 말하기를 더 좋아하는 그녀였기에 나는 조금 놀랐다. 다음 주 만남을 기약했다가 나는 급히 제안했다. "오늘도 가능하면 일 끝나고 오늘 볼래?" 나에게도 조금 놀랐다. 생각하고서 얼른 실행으로 옮겼던 것! (당장 실행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분이 괜찮았다.)  


자리를 잡고 앉았다. 술을 못하는 그녀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2시간이 채 못 되었다. 세 아이의 엄마인 친구는 아이들과 잠깐 영상통화를 했다. 초반에는 그녀가 이런저런 말을 하다가 "아, 오늘은 니 얘길 들으러 왔는데..." "괜찮아, 서로 주고 받는 거지 뭐" 라는 대화가 두어 번 오고 갔다. 20분 즈음 지났으려나? 나는 혼자 와인잔을 비우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잘 들어준 덕분에 스무 살 이후의 삶을 거칠게 스케치했다. 엄마와의 사별이 준 영향, 대학 생활과 그때 만난 형 이야기, 상경 직후의 날들과 군대 생활, 회사를 그만 두었던 이유, 출간 이야기... 그리고 시간이 없어 프리랜서로서의 삶은 간략하게 얼버무렸다. 친구와의 사별 이야기는 최근 일이라 길게 했다. 이야기를 모두 듣고서 그녀가 물었다.


"엄마가 너를 보시면 뭐라고 하실 것 같아?"


"엄마? 뭐, 별로 안 좋아하시겠지? 나를 전부 다 아실 거 아냐? 내가 나쁜 짓 하는 거 말야. 내 마음도 다 아실 테고." 가끔씩 생각하는 질문이라 답변이 쉽게 나왔다. 내 머릿속에는 혼자 있을 때의 못난 모습들과 연인에게 행복을 안기지 못했던 날들이 떠오르곤 했다. 늘 엄마에게 부끄러웠던 감정을 느끼던 찰나, 친구가 다시 물었다.


"아니, 그냥 엄마가 옆에 계시면 말야."


"아, 하늘에서 나를 다 보시는 게 아니라, 진짜로 계시면? 전지적 시점이 아닌 거네?" 친구의 얼굴이 밝아졌다. 나는 잠시 생각했다. 이내 목구멍이 뜨거워졌다. "그럼 고맙다고 하시겠지. 열심히 살아서 대견하다고 말이야." 친구는 나의 관점을 바꿔 주었다. 하늘에서 실망스러워하시는 엄마를 떠올리며 '죄송스러운 마음'이 아닌 '포근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왜 엄마를 전지전능하게 생각했을까?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친구가 말한 '옆에 계신 엄마'라는 관점은 나를 얼마간 자유롭게 했다. 엄마가 정말 옆에 계시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해지기도 했다. 그러면 "엄마, 저 25년 동안 이렇게 살았어요" 라고 말씀드리고도 싶어졌다. 내가 속내를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옛 연인과 외할머니는 서운하셨다. 이와는 달리, 나는 엄마 앞에서는 쫑알쫑알대는 아들이 될까?


나는 실험해 보기로 했다. <엄마에게 이야기하다>라는 글을 연재함으로!  사용자 삽입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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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 아버지, 우리 집은 대화가 너무 없는 것 같습니다. 

아버지 : (아들을 째려보다가) 밥 묵자.

잠시 후,


아버지 : 니 얘기 잘 했다. (아내를 보며) 말 나온 김에, 당신 동민이 교육 우째 시키고 있노? 내 며칠 동안 쭉 지켜봤는데, 오늘만 해도 그래. 해뜨기 전에 뽀로로 기어나가가 하루종일 싸돌아 댕기다가 지 배고프면 기 들어와가 밥만 처 묵고! 야 이거 하루 종일 밖에 나가가 뭐하노?

어머니 : 지도 모르겠습니더. 지도 야 땜에 미치겠습니더.


아버지 : 동민! 니 솔직히 얘기 해. 니 하루종일 밖에 나가가 뭐 했노?

아들 : 학교 갔다 왔는데여.


<대화가 필요해>는 2000년대 후반 개그콘서트의 간판 프로그램 중 하나였다. 저녁 식사라는 지극히 일상적인 코드로 공감적 유머를 자아냈다. 소통과 공감이 부족한 가족의 시청자들에겐 웃음 뿐만 아니라 깊은 울림도 주었을 것이다. 10년이 지나 '공감'이라는 키워드로 다시 보니, (출연진들이 품위 있는 언어를 사용하지 않지만) 가벼운 유머가 아니라 소중한 메시지를 담은 해학에 가까웠다. 


이후, 아버지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니 아직) 졸업 안 했나?" 크게 웃고 나니, 이 역시 울림을 주었다. 관심을 갖고 소통하지 못한 관계에서, 나 또한 비슷한 실수를 저지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친구와 모든 지인들의 개인사를 챙길 순 없다. 일일이 기억하진 못해도 진심 어린 애정이면 충분하다. 하지만 가족과 연인 사이에는 최소한의 관심이 필요하다. 중요한 일마저(이를 테면 아들이 졸업을 했는지 안 했는지) 잊고 산다면 서운함을 안길 것이다. 그러니 대화가 필요하다. 서로의 속 얘기를 소통하고 공감하는 대화 말이다.


가족치료사 최광현 선생은 '행복한 가정을 위한 조언'에서 공감과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아파하는 가족들을 보면, 밑바닥 속에 서로에 대한 애정과 사랑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방법을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행복한 가정이 되는 비결은 소통입니다. 마음을 열고 서로를 이해하고 진실되게 감정을 공감하는 법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극히 옳은 말이지만, 나는 공감을 생각할 때마다 커다란 장애물 앞에 서는 느낌이 든다. 공감이 우리의 본성과는 거리가 먼 단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100% 이해 받기를 원하면 그 결과는 타인에 대한 실망과 아무도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외로움에 빠지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나를 20~30% 밖에 이해못한다. 그 중에 누군가가 나를 50~60% 이해한다면, 감사하고 고마워할 일이다. 그리고 가족이 그 주인공이 된다면 우리는 좀 더 행복해질 것이다. 매일 만나는 얼굴이 아닌가.


사랑과 마찬가지로 공감도 배워야 할 주제다. 그것도 매우 중요한 주제다! 공감을 배우는 여정의 핵심은, 나의 생각이 아니라 '상대의 관점으로 사건과 세상을 바라보려는 노력'이다. 이해가 안 된다고 마음을 닫아 버리면 상대에 대한 경멸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우리는 상대가 나의 말을 왜곡되게 해석하면, '아... 이 사람과는 이제 대화하지 말아야겠구나' 라고 생각하고 만다. 답답함은 대화 단절의 신호가 아니라 소통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표지다. 상대가 가족이나 연인 또는 절친한 친구라면 말이다.



아버지 : 그래도 야(얘)는 장남이라고 밥은 꼬박꼬박 먹는데, 둘째는 지금 뭐 하노, 코빼기도 안 보이고.

어머니 : (우리) 아이는 야 하나입니더.


나는 정말 무지 웃었다. 평범한 일상이 아닌 극화된 내용이지만, 대부분의 내용이 그럴 법한 소재를 다뤘다. 한참 웃고 나면, 생각으로 이끈다. 문득 의문이 들었다. 왜 세상에는 갈등과 오해가 난무하고, 가족이나 연인끼리 상처를 주고 받는 걸까? 공감과 소통의 부재 탓이 아닐까? 그리고 해결의 출발점이 대화가 아닐까? 이 코너는 자두의 노래로 시작된다. "대화가 필요해. 우린 대화가 부족해." 코너의 시작과 함께 아들이 한 말이 묵직하게 다가온다. "아버지, 우리 집은 대화가 너무 없는 것 같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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