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아름다운 명랑인생'에 해당되는 글 278건

  1. 2016.06.11 억울한 볼 판정을 대하는 법
  2. 2016.06.04 진정성 있는 강사라고요? (8)
  3. 2016.04.26 지금은 늦봄이니까 (2)
  4. 2016.04.04 우선순위를 사는 기쁨
  5. 2016.03.18 어느 봄날의 반성과 결심 (7)
  6. 2016.03.15 내 호흡이 멈춘 그 날엔 (6)
  7. 2015.12.29 걱정 말고 꿈을 꿉시다 (2)
  8. 2015.12.24 연말연시 & X-mas 이브 (2)
  9. 2015.12.16 고통이 나를 일깨우니 (4)
  10. 2015.12.12 새벽 기차 (4)

찬스였다. 5회초 2사 1, 3루, 김현수가 타점을 올릴 기회를 안고 타석에 들어섰다. 직전 경기까지 김현수는 득점권 타석에서 14타수 4안타의 성적을 보였다. 1, 3루 상황에서는 2타수 무안타였다. "오늘 그 기록을 깨주었으면 좋겠네요." 해설자의 희망 어린 말이다. 상대팀 에스트라다는 4회까지 무실점 투구로 호투 중이다. 3구까지 1 스트라이크, 2 볼을 던졌다. 4구는 배팅 찬스였다. 6월 11일 볼티모어 대 토론토, 중반 승부처다.

에스트라다의 네번째 공이 들어왔지만 김현수는 배트를 휘두르지 않았다. 볼이라 판단했으리라. 피칭 그래프에도 볼로 찍혔다. 해설자도 볼로 보았지만, 심판은 달랐다. 스트라이크 판정이 되었다. 공 한 개 정도가 빗나간 것으로 보였으니 무리한 판단은 아니었지만 살짝 억울하긴 했다. 5구째는 홈플레이트에서 떨어지는 바깥쪽 유인구였다. 김현수는 아쉽게 어정쩡하게 헛스윙하고 말았다. 찬스는 이렇게 무산됐다.

김현수를 십분 이해했다. 직전 볼로 보였던 공이 스트라이크 판정이 되었으니, 선구안을 심판에 맞게 순간적으로 교정해야 했다. 5구는 4구와 비슷한 궤적으로 오다가 떨어졌다. 4구자 볼로 판정되었더라면 김현수가 속지 않았을 확률이 높다. 심판 스트라이크 판정이 속절없이 아쉬워지는 순간이다. 하지만 이것이 야구다. (아직까지는) 스트라이크 볼 판정에 대한 얼마간의 억울함까지도 야구의 일부라는 말이다.

외국인에 대한 차별로 몰아갈 필요는 없다. 심판의 편파 판정을 욕하는 댓글 아래에는 합리적인 팩트 체크의 댓글도 달렸다. "오승환이 잡아낸 탈삼진 중에는 심판이 볼을 스트라이크로 잡아 준 덕분에 얻어낸 것도 많습니다." 소수의 불합리한 차별도 존재하겠지만, 차별보다는 '인간(사)'이라는 키워드로 읽어내는 쪽이 합리적이다. 최소한 두 가지를 생각해야 한다. 첫째, 심판도 인간이다. 판단 실수를 더러 한다는 말이다.

"오심도 경기의 일부다." 2014년까지 야구계에 통용되던 신념이었다. 심판이 확연하게 오심을 내렸을 때에, 경기 중계진들이 시청자들을 달래는 최적의 한 마디이기도 했다. 최소한 나는 그 말로 억울함을 삭였다. 이 말은 인간의 한계를 한껏 인정하되 공정성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그나마 합리적인 처사였다. 하지만 승부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오심을 접하면, 패배 팀을 향한 억울함과 더 나은 방법에 대한 아쉬움이 강해졌다.  

이제는 세이프와 아웃에 대한 오심은 사라졌다. 억울함과 아쉬움도 덩달아 없어졌다. 비디오판독을 통한 '심판 합의판정' 제도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오심이라도 판단될 경우, 팀은 합의판정을 요청할 수 있다. 그러면 심판들이 모여 비디오를 판독하는 팀의 결과를 전달받아 오심을 조정한다. 우리나라에도 2014년 후반기부터 TV 중계화면을 통한 '심판 합의판정' 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많은 팬들의 억울함을 풀어준 고마운 제도다.

다만 스트라이크와 볼 판정은 여전히 심판의 고유권이다. 향후 이것마저 기계가 하게 될지도 모르지만, 현재까지는 인간적인 요소가 가미된 채로 심판만이 스트라이크 판정을 내린다. 심판이 실수를 할 수 있다는 말이고, 그 실수는 얼마간의 억울함을 생산한다는 뜻이다. 여기에 두번째 생각거리가 존재한다. 야구 선수는 이 억울함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 (이 질문을 잘 다룬다면, 얼마간은 인생살이에도 도움이 되리라.)

최근 시애틀 소속의 이대호는 심판 판정에 강하게 불만을 표시한 적이 있다. 삼진 아웃 이후 덕아웃으로 들어서는 이대호를 감독이 "누가 봐도 볼이었다"라고 달래어 줄 만큼 억울한 상황이었다. 나 역시 응원하는 선수의 한 타석, 한 타석을 소중히 여기는 팬으로서 억울했다. 하지만 경기 직후 인터뷰에서 심판을 향한 강한 아쉬움(과 약한 불만)이 느껴져 다소 걱정이 되기도 했다. <관련영상 클릭> 추신수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메이저리그에서도 손꼽히는 출루율을 보여주는 추신수의 선구안은 말할 나위 없이 훌륭하다. 2014년 한동안 추신수 타석에서의 볼 판정에 대한 아쉬운 장면이 많았다. "확인할 수는 없지만, 심판의 아쉬운 판정이 더욱 지속된 데에는 추신수가 인터뷰에서 강하게 어필한 게 영향을 주었는지도 모른다." MBC스포츠플러스 김형준 해설위원의 말이다. 추는 심판 판정에 불만이 거의 없었던 인물이다. 해설위원도 이를 알리라.

과거엔 없었더라도 지금 불만이 많다면 과거지사를 들먹일 필요는 없다. 나는 추신수를 존경하고 응원한다. 그렇기에 그의 억울함을 십분 이해하고, 타석 하나마다 미세하게 변동하는 기록을 주시한다. 심판의 불공정한 판정에 짜증나는 이유다. 팬들은 부진만큼이나 불공정한 판정에 속이 상한다. 존경하고 응원하는 동시에 그에게 메이저리그 최고 수준의 멘탈도 기대한다. 최고에겐 (때때로 불합리한) 견제가 들어오는 법이니까.

추신수가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는 탁월한 실력 뿐만 아니라 억울한 판정을 견뎌내는 훌륭한 인내도 한몫 했으리라. 그랬던 그가 오죽했으면 항의했을까. 이런 마음이 있는가 하면, 그가 최고의 자리를 고수하고 더 높은 기록을 쌓아가기 위해 모두가 억울해하는 상황에서도 본인만큼은 예전처럼 묵묵히 견뎌주기를 바란다. 심판의 오심까지 품어가며 평정심을 유지해야 메이저리그 최고의 출루기록을 경신, 또 경신 할 테니까.

낭만주의 시인 존 키츠는 동생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사람은 불확실성, 불가사의, 의혹 속에서도 존재하는 능력"을 가졌다고 썼다. 그러한 능력을 "Negative Capability"이라고 표현했다. 불리하고 부정적인 여건을 헤쳐나가는 이 능력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인생은 때때로 우리에게 우호적이지 않다. 시련, 고통, 실패, 억울함을 안긴다. 바로 그때 필요한 것이 Negative Capability다. (나는 부정성 수용력으로 번역하련다.)

Negative Capability를 야구판으로 가져오면 '오심 수용력'이라는 용어를 만들 수 있으리라. 이 능력이 야구 선수에게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슬럼프를 예방하고 온전한 실력 발휘를 위한 필수품이라는 생각은 든다. 오심 수용력이 부족하여 빚어지는 아쉬운 상황은 많다. 일례로 2015년 가을, 한화의 에스밀 로저스가 눈부신 경기를 이어나가다가 한 이닝 3실점을 하면서 기록에 금이 간 것도 오심 수용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김형준 위원은 심판 판정에 대한 강정호의 태도를 높이 평가했다. 강정호가 볼 판정에 공개적인 불만을 표시한 적이 없다는 말이다. 강정호는 메이저리그 2년차다. 2014년 당시 추신수는 10년차다. 아직까지는 강정호가 추신수보다 오심 수용력이 뛰어난지 판단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메이저리그 1년차인 이대호가 보인 이번 인터뷰는 아쉽다. 부디 이대호의 말이 영어로 번역되어 미국 심판진의 귀에 들어가지 않기를 바란다.

시간을 잡아먹는 줄 알면서도 매일 코리안 메이저리거들의 소식을 챙겨 본다. 그들을 응원한다. 이대호의 억울한 한 마디, 한 마디에 나도 공감한다. 100타석에 들어섰다고 했을 때, 안타 1개 차이로 3할과 2할 9푼이 갈리니까 그들의 한 타석, 한 타석을 소중하다. 하지만 인생에 억울한 일들이 존재하듯, 아직까지는 오심이 존재한다. 최고의 선수는 필연적일 수 밖에 없는 억울함을 받아들이고, 지혜롭게 표현해야 한다. 오늘 경기 이후, 김현수가 심판 판정에 불만을 표시하지 않기를!

코리안 메이저리거들의 오심 수용력을 위하여!
(그리고 최근 들어 부쩍 낮아진 나의 부정성 수용력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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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 교육과 학습조직화로 나아가는 길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개인사의 아픔까지 오픈하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것을 느꼈고 진정성을 볼 수 있었습니다." 2박 3일의 학습조직화 연수가 끝난 날에 한 참가자가 보내 주신 문자 메시지다. 샤워를 하는데, '진정성'이라는 단어와 '개인사의 아픔을 털어놓은 모습'에 대한 생각들이 물줄기와 함께 내 온 몸을 감쌌다. 나는 무엇을 오픈했던가? 진정성은 어디로부터 나오는 걸까?



기업의 HR 담당자들이 참석한 워크숍에서, 나는 사진 한 장을 보여 주면서 짧은 설명을 덧붙였다. "우리 가족 사진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할머니와 동생 이렇게 다섯 식구가 경북 영주 소수서원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설명은 사실이 아니다. 사진의 주인공은 아버지가 아닌 외삼촌, 어머니가 아닌 외숙모다. 어린 나이에 부모님을 여의었던 나는 중학생 때부터 외삼촌과 외숙모의 보살핌을 받으며 자랐다.


사실대로 말하지 않았던 이유는 가정사가 부끄러워서가 아니다. 설명하기 복잡해서였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다른 해에 돌아가셨고, 외갓집으로 온 연유도 간단하지가 않다. 첫 만남이니만큼 청중의 관심사에 집중하고 싶지, 나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로 분위기를 가라앉게 만들고 싶지는 않다. 2박 3일 워크숍 도중에 적절한 기회가 오면, 사실을 전하리라는 속셈도 있다. 그런 기회는 온다. 오지 않으면 만들기도 한다.


나에게 불리한 사실을 일부러 숨기는 게 아니냐고 묻는 이가 있을지 모르겠다. 자신의 경력, 경험, 실력을 부풀리려고 애쓰는 강사들도 있기에 이해되는 접근이나, 내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나는 과소평가 당하고 싶지도 않고, 실제의 나보다 잘 보이고 싶은 마음도 없다. (이상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정확하게 이해받고 싶다.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은 것이 (선을 보는 자리라면 몰라도) 강연자에게 불리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식인은 자신의 거품을 스스로 걷어낼 수 있어야 한다." 종종 후배 강사들에게 지식인적 자의식을 강조하며 건네는 말이다. 이런 설명을 덧붙이기도 한다. "모르면 모른다고 말하고, 성공적인 강연은 청중과 강사의 합작품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라." 언젠가 내 글을 아껴 읽으시는 분께서 내게 전화를 하셨다. "자신의 약점을 밝히는 일은 강사로서의 권위를 떨어뜨릴 수 있습니다. 너무 진솔하면 잃는 것이 더 많을 겁니다."


그 분의 말씀이 옳은 경우도 있다고 믿는다. 세상에는 진솔함 외에도 미덕이 많으니까. 한 개인이 모든 미덕을 추구할 수 없다면, 나는 진솔함을 추구하련다. 개인의 모든 내면을 드러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그럴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다만, 청중과 강사 사이에서 지켜야 할 태도라 할, 지적 정직함과 자신에 대한 진실을 지켜가고 싶다. 이를 테면 : 제대로 아는 것만 전달하고 나의 경력이나 실력을 부풀리지 않기!


나의 프로필 학력 난에는 "경북대학교 생물자원기계공학부 수료"라는 말이 쓰여 있다. 굳이 "수료"라는 말을 붙여둔 까닭은 '졸업'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수료'라고 써 두지 않으면, 대다수가 '졸업'이라고 오인할 가능성이 있으리라. "졸업이라고 쓰진 않더라도 수료라는 말은 빼자." 내게 여러 강연을 연결해 준 컨설턴트 친구의 말에, 나는 끝내 고개를 저었다. 이번 학습조직화 연수에서도 나는 은근히 나의 학력을 내비쳤다. 


"경영학과를 복수 전공하고 사회학 부전공 학점도 모두 이수했지만, 제 본래의 전공 이수 학점을 채우지 못해 결국 졸업을 못했습니다." 이 말을 했던 시기가 3일차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참가자 분들이 나의 강연에 만족하시던 터였기에, 고백(?)할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석박사 학위자가 수두룩한 업계에서 가방끈이 짧다는 사실을 밝히는 일이 쉬운 건 아니다. 말을 하면서도 '또 이러고 있네' 하는 생각이 든다.


찰스 핸디는 "학위란 계속해서 배우라는 일종의 증서, 즉 배움의 시작이지 끝이 아니다"고 말했다. 많은 이들이 학위를 이렇게 생각한다면, 대한민국 사회에 학력위조가 지금처럼 만연하지는 않을 것이다. 핸디는 이런 말도 했다. "나는 강연을 하면서 귀중한 교훈을 깨달았다. 어떤 주제를 진정으로 알고 싶다면 다른 사람에게 가르쳐보라는 것이다." 전달력을 타고난 강사들을 제외한 대다수 사람들에게 고스란히 적용되는 말이다.


내게는 석박사 학위는 고사하고 학사 학위도 없다. 이것은 자랑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부끄러움도 아니다. 학위 대신 실력으로 나를 드러내야 할 때가 때때로 번거롭고 불편하지만 절대 부끄러운 일은 아니라고 믿는다. 진정 부끄러운 일은 학위 취득과 함께 배우는 태도를 잊어버리는 것이나 자신의 학위를 위조하여 세상을 속이는 일이리라. 누구나 몇몇 사람을 속이며 살겠지만, 세상을 속이며 사는 일은 범죄에 이르고 만다.


사람들은 종종 진정성과 도덕성을 착각한다. 도덕성은 진정성보다 크고 넓은 개념이다. 사전은 도덕성을 "도덕적 품성, 곧 선악의 견지에서 본 인격, 판단, 행위 따위에 대한 가치를 이른다"고 정의한다. 진정성은 거짓이 없이 참된 마음만으로 이를 수 있는 가치지만, 도덕성은 훨씬 높은 인격적 수양과 실천을 요한다. 이 글을 오롯이 나의 (도덕성이 아닌) 진정성으로 해석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 사족 같은 설명을 덧붙여 보았다.


5월에 진행되었던 또 다른 교육에서도 '진정성'을 언급하며 메지시를 보내주신 참가자 분이 계셨다. "연지원 강사님은 진정성 있는 강사라고 느꼈습니다. 교육 주제보다는 인간적인 배움이 컸다는 느낌입니다." 나의 어떤 면에서 그리 느끼셨는지는 모른다.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무능한 사람은 자신의 무능함을 모른다"고 한다. 그럼 유능한 사람은? 그들 역시 자신의 유능함을 모른다. 그렇다면 이렇게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


미덕을 가진 이들은 자신의 미덕을 모른다. (자기 이해를 위해 노력하는 소수의 사람들만 자신의 미덕과 악덕을 알리라.)


Posted by 보보

지금은 늦봄이니까


벚꽃 피고 지고

찬바람 물러간 후 
신록이 미소 짓는
5월의 봄이 좋다.


연분홍보다는 초록빛 
만춘(晩春)이 좋다
벚꽃이 묻는다
초록빛을 좋아하세요?


초록을 사랑해서도
벚꽃을 미워해서도
아니에요,
지금은 늦봄이니까요.



시를 쓰고서 내 인생을 들여다본다. 스무 살의 '생기'는 갔다. 서른 살의 '패기'도 옅어졌다. 나는 지나간 날들을 아쉬워하는 성정을 타고났기에 종종 스무 살, 서른 살을 그리워한다. 나를 구원하는 것은 언제나 현자들의 지혜다. “Seize the Day!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 귓가에 맴도는 소리, 내 영혼에 새기고 싶은 금언!

 

스무 살 육체적 생기로 돌아갈 순 없지만, 마음과 영혼에 생기를 불어넣을 수는 있으리라. 쉰이 되어도, 예순을 넘겨도 패기만큼은 잃고 싶지 않다. 서른아홉 지금의 내 삶이 인생의 만춘이지 싶다. 봄날은 짧다. 늦봄의 신록을 만끽해야겠다. 그리고 40대는 뜨거운 열정으로 살아야겠다. 여름날의 태양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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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KTX 열차가 마산역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4월 1일 금요일 오후 4시 50분, 열차가 멈추고서야 하던 일이 끝났다. 아니, 목적지에 도착했으니 일을 멈추었다는 표현이 맞겠다. 잠시 내려놓을 뿐, 일은 끝이 없다. 내가 할 일이 없어 심심했던 때가 있었던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있더라도 오래 전의 일이겠다.)

 

열차를 타고 오는 3시간 동안 하려던 일은 세 가지였다. 그 중 두 가지를 완료했다. 나머지 하나는 7시에 있을 인문학 특강 준비였다. 곧 시작될 강연 준비는 꽤나 중요하고 긴급한 일이지만, 더 중요한 일들도 존재하기 마련이다. 소중한 사람들과의 만남이나 중요한 약속은 내겐 강연 준비만큼 귀한 일이다.

 

5분 후, 마산역 앞에서 검은색 소나타에 올라탔다. 와우팀원 분께서 마중 나오셨다. 지난 주에는 와우수업으로 서울에서, 이번 주에는 글쓰기 수업으로 창원에서 만났지만 여전히 반갑다. "바쁘신 일은 좀 끝나셨어요?" 이번 주간 나의 상황을 아시는 안부 인사다. "아니요. 아직 안 끝났죠. 4월 3일이 워크숍 교재 마감일이니 일요일이 피크(peak)입니다."

 

"내일 (글쓰기 수업을) 좀 일찍 끝내야겠네요." 창원에서의 글쓰기 수업은 하루종일 진행된다. 실제 수업은 2시에 끝나지만, 오후 7~8시까지 대화가 이어진다. 대화는 수업의 연장이다. 알차고 의미 있는 시간이고, 웃음꽃이 피어나는 순간이 많다. 나는 개인적인 일로 수업 날에 지장을 주고 싶진 않았다. "아닙니다. 여기 내려왔으니 일은 잠시 접어둬야죠." 

 

창원에 있는 동안에는 일을 잊었다. 내 영혼은 창원에 머물렀다. 일감 바구니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저녁 식사를 할 때면, 명태비빔국수와 들깨순두부가 내 인생의 전부였다. 숙소로 돌아올 때에는 나를 태워주신 형님과의 대화가 세상에서 가장 귀한 가치였다. 차 안에서 나눈 대화는 강연을 진행한 순간만큼 행복했다.

 

강연 진행에 불만을 느꼈거나 청중들의 반응이 시시했던 게 아니다. 휴식 시간도 없이 두 시간 동안 진행된 강연 시간 동안 한 분도 강연장을 빠져 나가지 않으시고 젊은 강사의 말을 귀기울여 들으셨다. 강연이 끝난 후 일부 청중은 나를 찾아와 질문도 했고, 서명을 받아가신 분도 계셨다. 2시간 10분 동안 강연은 내 인생의 전부였다.

 

열의와 시간을 가진 청중 열 분과 1시간 동안 카페에서 강연 후 대화를 가졌다. 호텔에 돌아오니 밤 11시 정각이었다.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침대에 누워 있다가 잠들었다. 이튿날 아침에 눈을 뜨니, 6시 40분이었다. 글쓰기 수업을 들으시는 두 분과 조찬을 들기로 한 시각까지는 50분이 남았다. 샤워하고 내려오니 이미 로비에 와 계셨다. 우리는 편안하게 조식을 먹었다.

 

이번 수업은 군항제가 열리는 진해에서 갖기로 했다. 글쓰기 수업이 끝나고 근사한 뷔페 식당에서 2시간 느긋하게 점심을 먹었다. 오후에는 벚꽃 장소로 유명한 내수면생태공원과 경화역을 구경했다. 안민고개의 벚꽃터널도 환상이라는데, 주말에는 차량이 통제되어 가지 못했다. 우리는 마산역 앞에서 저녁 식사까지 함께 즐긴 후 7시 30분에 헤어졌다.

 

열차를 타고 서울로 오는 3시간 동안 줄곧 잠을 잤다. 토요일 밤 11시 55분에 도착했다. 이튿날 오전까지 피곤했다. 오후에는 워크숍 교재 작업에 모든 시간을 썼다. 작업실과 카페를 오가며 새벽 1시까지 일을 했다. 일이 진척되는 기쁨이 컸다. 그럼에도 내게 글쓰기와 강연을 포함한 모든 일은 내게 2순위다. 인생이 1순위다.

 

최근 어느 글에서 "가장 중요한 일(소중한 사람과의 만남)에의 몰입은 제2의 천성이 되었다"고 썼었다. 가까운 와우팀원 한 명이 "제2의 천성, 정말 그런 것 같아요"라고 카톡을 보내왔다. 기분이 좋았다. 인정을 받아서인지, 집중력이 시시했던 내가 스스로를 뛰어넘어서인지 모르겠지만, 더욱 몰입하며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나의 천재성을 내 인생에 쏟아 부었다. 내 작품에는 고작 재주만을 부렸을 뿐이다.” 오스카 와일드의 말이다. 내게는 천재성이 없지만, 그의 말에 깊이 공감했다. 먼 훗날 내가 자서전이라는 글을 쓴다면, 그 글을 관통하는 말은 다음과 같으리라. "나는 열정을 내 인생에 쏟아 부었다. 글쓰기에는 잠깐씩의 노력을 깃들였을 뿐이다."  

 

나는 아쉽게도 내가 원하는 만큼 글을 많이 쓰지도 못하고, 바라는 수준만큼 글을 다듬지도 못한다. 사람들과의 만남이 집필보다 더 높은 우선순위이기 때문이다. 아쉬움이 지나치게 커지면 삶에 대한 불만도 커지겠지만, 글쓰기를 놓치며 살지도 않으니 아직은 내 삶에 만족한다. 무엇보다 내 곁에는 소중한 사람들이 많다. 나는 이 사실이 감사하고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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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따뜻했다. 창문을 통해 들어온 햇살이 실내 공기를 데워놓았다. 오후 세 시였다. 창문을 열었다. ‘와, 시원하다. 봄이 왔구나.’ 창밖 거리에는 봄의 기운이 완연했다. 사람들의 옷이 밝아졌고 얇아졌다. 여인들은 봄 치마를 입기 시작했다. 이제 곧 벚꽃이 피어날 것이다. 봄의 가객, 버스커버스커의 노래들이 들려올 테고. (그대여, 그대여, 그대여, 그대여 라는 멜로디가 귓가에 맴돈다.)


가을과 함께 봄은 놀기에 좋다. 나들이를 떠나 자연을 만끽하기에 좋은 계절이다. 공부하거나 일하기는 싫은 계절이다. 봄 햇살을 맞으며 창밖을 보고 있노라니 후회가 밀려들었다. ‘나는 왜 이리 강연들을 많이 받았을까? 봄이 오는지 몰랐단 말인가.’ 물론 모르지 않았다. 봄과 가을이면 강연을 줄이고 여행과 놀이에 비중을 두는 삶의 패턴은 이미 수년 째 이어오고 있다. 


봄을 즐기지 못할 만큼 바빠지는 게 아닐까, 하는 불안감은 여러 겹의 실수가 축적된 결과는 아니다. 세 가지 결정이 큰 역할을 했다. 팔로워십 특강 수락, 2박 3일짜리 교육 신청, 학습조직화 워크숍 진행이 그것이다. 워크숍 진행 결정이 결정적이었다. 교육과정의 일부를 새롭게 개발해야 하고 관련 미팅을 서너 차례 가져야 한다. 무엇보다 2박 3일짜리 숙박 과정을 두어 차례 진행해야 한다. 


팔로워십 특강과 학습조직화 워크숍은 사전 준비와 얼마간의 공부를 요한다는 점에서 스트레스다. 물론 강연을 수락한 이유는 있다. 꽤 분명한 이유들이다. 팔로워십 특강은 친한 지인의 부탁이었다. 이미 두 차례 강연을 한 회사라 더 잘하고 싶다는 욕심이 부담을 준다. “저는 아무래도 구체적인 실천거리보다는 원칙에 집중하고 인문적 느낌이 날 텐데요...” 준비하는 부담을 덜기 위해 내가 하지 못할 영역을 알렸다. 


학습조직화 워크숍은 오랜만에 과정 개발도 하고 싶었고 더 늦기 전에 워크숍을 진행하고 싶기도 했다. 세월은 강사로서의 일상도 바꿨다. 십년 전에는 숙박 과정의 워크숍도 많이 진행했지만, 지금은 특강이 좋다. 특강은 집을 떠나지 않아도 되고, 긴 시간 동안 체력 소모도 없다. 강연의 형식 뿐만 선호하는 내용도 달라졌다. 요즘엔 주로 인문학 수업을 많이 하는 편이다. 강사가 아닌 선생이 되는 느낌이다. 


강사로서의 정체성을 잊어가는 것 같아 오랜만에 기업교육의 최전선에 서고 싶었다. 나는 글쟁이로 살고 싶지만 강사라는 업의 매력도 놓치고 싶지 않다. 다른 예술에 비유하자면, 글쓰기는 영화를 찍는 기분이 든다. 전하는 내용들을 밀실에 앉아 수정하고, 첨가하고 편집한다. 강의는 연극을 하는 느낌이다. 관객과 실시간으로 호흡하며 생방송의 극적인 긴장감을 느끼며 진행한다. 서로 다른 기쁨을 안긴다. 


이번에 결정한 강연 일정들은 나의 바람에 맞닿아 있을 뿐만 아니라 나를 살아있게 만드는 도전들이기도 하다. 내 불만의 요지는 간단하다. ‘하필이면 왜 이 아름다운 ’봄‘에 이런저런 일정들을 잡았는가’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해 본다. ‘전화해서 이 모든 교육일정을 ’여름‘으로 조정하자고 말할까?’ 물론 우스갯소리다. 웃기지 않다는 사실로 나는 지금 웃고 있다. 원했던 일이 별로 좋아하지 않은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사실에는 울상을 짓는 중이다. 


다시 창밖을 본다. 봄이 들린다. 움츠렸던 몸이 펴지고 두터웠던 옷이 가벼워진 만큼 젊은이들의 웃음소리가 경쾌하게 느껴졌다. 내게 다가온 일들을 즐길 방도를 고민한다. 햇살 따뜻한 봄날, 어느 멋진 카페에서 신들린 듯이 일해야겠다. 이왕이면 교외로 나가서 오가는 길에 잠시나마 봄꽃과 새싹을 만끽해야겠다. 실내에서는 몰입도를 높여 업무를 뚝딱뚝딱 끝내어 야외로 나갈 시간을 최대한 확보해야겠다. 기분이 한결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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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스 리히터의 <사계> '봄'을 들었다. 내가 듣자마자 빠져든 클래식이 몇 곡이나 될까. 리히터의 곡은 단박에 나를 사로잡았다. 듣고 또 들었다. 내리 한 시간을 들었고, 조금 피곤하던 터라 눈을 감고 들었다. 외출 시각이 다가와 컴퓨터 전원을 끌 때까지 두 시간 남짓 동안 한 곡만 들었다. 무엇이 그리도 좋았을까? 

 

이 곡을 처음 들었을 때에는 감격했고, 네다섯 번 들었을 때에는 전율했다. 그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팔을 천천히 들어올려 활짝 뻗었다. 슬로우 모션으로 만세를 부르는 모습이었다. 그 자세로 깊게 호흡했다. 세상의 밝고 긍정적인 모든 기운을 빨아들이고 싶다는 바람이 들었다.

 

다시 앉아 음악을 듣고 있으려니 '이대로 잠이 들면 좋겠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20분 알람을 맞추고서 잠을 청했다. 무의식에 이 곡을 심어두고 싶은 마음이었다. 청각은 잠들기 전 가장 마지막까지 활동하는 감각이다. 잠에 빠져들지 못할 정도까지는 크지 않게, 영혼에 스며들지 못할 정도로 작지 않게 볼륨을 맞췄다.

 

웅장하게 울려퍼지는 선율과 경쾌하게 산들거리는 멜로디가 하모니를 이루어 영혼을 어루만졌다. 귀는 황홀한데 영혼은 고요하다. 누워 있는데 이런저런 생각이 떠올랐다. '예술이 정신을 살찌우는구나. 고대 그리스의 서사시인들은 영웅을 노래함으로, 모차르트는 영혼을 담아냄으로 불멸을 얻는다. 위대한 예술은 영원하다.'

 

단상 중 또렷한 인상을 남긴 생각은 내 코 끝에서 호흡이 멈춘 후의 모습들이다. '나는 화장을 원한다. 뽀얀 가루로 변한 나의 육신은 안동 병산서원 앞 낙동강에 뿌려 주었으면 좋겠다. (이에 대해 글을 써 두기도 했다.) 그때까지 내 선택이 변하지 않았다면, 그 날엔 리히터의 '봄'을 들려 주었으면 좋겠다.'

 

눈을 감은 지 15분이 지났다. 잠을 청하던 나는 평온한 마음을 느낀 탓인지, 의식이 점점 또렷해져서인지 결국 몸을 일으켰다. 지금도 비발디의 재해석된 클래식이 연주되고 있다. 오늘 이런저런 의미 있는 일들을 했고, 즐거운 대화의 시간도 가졌었다. 이 모든 시간이 무(無)가 되더라도 오늘은 가치 있는 날이다. 

 

막스 리히터가 작곡한 '비발디의 사계-봄'을 들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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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이 이틀 남았습니다. 소중한 인연들께 문안을 여쭙고 안부를 전하는 요즘입니다. 날마다 한분 두분 소식을 전하다 보면, 마음이 따뜻해지고 그윽해집니다. 연말만이 아닌 연중 내내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 만큼. (내년도를 잘 살아갈 비법처럼 느껴지기도 하고요.) 오늘은 와우카페에 세 편의 짧은 '송년서신'을 썼습니다. 그 중 하나를 블로그 인연들에게도 전합니다. ^^   

 

 

여러분, 건강하고 안녕하신가요? 2015년의 끝자락을 잡고 안부 전합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이 요즘 화제인가 봅니다. 음악 APP ‘멜론’을 애용하는데 첫 화면에 드라마 OST가 자주 등장하더군요. ('MILK'도 마찬가지고요.) 그 중 <걱정 말아요 그대>는 지난 해 곽진언을 통해 알게 된 노래입니다. 이적이 부른 버전도 좋네요. 가사가 마음을 만집니다. 송년 즈음에도 어울리는 곡이네요. 가사를 음미해 보시죠. 여러분과 함께 듣고 싶어 맨 아래에 링크를 걸어 두었습니다.  

 

걱정 말아요 그대

 

그대여 아무 걱정 하지 말아요
우리 함께 노래 합시다
그대 아픈 기억들 모두 그대여
그대 가슴에 깊이 묻어 버리고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떠난 이에게 노래 하세요
후회없이 사랑했노라 말해요

 

그대는 너무 힘든 일이 많았죠
새로움을 잃어 버렸죠
그대 슬픈 얘기들 모두 그대여
그대 탓으로 훌훌 털어 버리고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우리 다 함께 노래 합시다
후회없이 꿈을 꾸었다 말해요

새로운 꿈을 꾸겠다 말해요

 

https://youtu.be/SxbK7kLtdTA

 

한 해 동안, 존재하고 누군가를 만나고 돈을 버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노랫말처럼, 지나간 날들은 훌훌 털어버리고 새해를 위한 꿈을 꿉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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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연시

 

바람이던가

휙휙 지나가는데

눈에 보이지도 않고

에 잡히지도 않네

 

일정과 약속 품은

다이어리는

영혼의 기록과 의미는

담지 못했네

 

마음은 푸근하니

벗들과 함께한 시간

시간을 채웠던 대화

대화로 영근 그윽함

 

또 바람이던가

年末이 훠이 흘러가니

年始가 찡긋 살랑이며

살갑게 다가오네

 

365일 새 날들을

잔나비라고 부르던가

힘써 재주를 부려야겠네

떨어져봐야 하늘을 날지

 

*

휙휙 지나가는 연말의 날짜들을 보니 매일 일기를 쓰면 좋았으려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월화수 3일이 쏜살같이 흘러갔다. 월요일 12시간, 화요일 11시간을 사람들과 어울리느면서 보냈다. 수요일에는 용인에서 3시간짜리 강연을 진행했고 저녁에 다시 술자리를 가졌다. (술자리라고 해 봐야, 나는 막걸리 한 병 또는 와인 반 병이지만.)

 

그리고 오늘, 크리스마스 이브를 하루종일 애일당에서 보냈다. 두어시간은 책을 읽었다. 한 시간 동안 정리정돈도 했다. 리버럴 아츠에 관한 정보를 검색하며 이에 관한 개념을 정립하는데 시간을 많이 썼다. 새해 글쓰기 계획도 다듬었다. 어느 새, 밤이 되었다. 시간은 아직 저녁이고 세상은 크리스마스로 흥겹게 들떴지만, 이곳은 조용하다.

 

김광석을 들을까 하다가 봄여름가을겨울의 <어떤이의 꿈>을 선택했다. 좋아하는 노래지만, 지금은 조금 시끄럽게 들린다. <언젠가는>을 들었더니 좀 더 낫다. 언제나 가슴을 치는 가사다. 후속곡 리스트로 김광석, 가을방학이 좋겠다. 처음부터 김광석을 시작했어도 좋았을 텐데... 순간 이것이 '공개'되는 포스팅임을 '의식'했다. 나 답지 않게.

 

2016년 병신년에는 세상이 내게 부여하는 '너다움'을 사양하고

스스로 발견해 온 '나다움'을 향해 달려야겠다.

원숭이처럼 재주도 부려 봐야지. 나무에서 떨어지면 뭐 어떤가.

"가치 있는 모든 것들은 드물고도 힘들다." - 『에티카』에서, 스피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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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를 삐긋했다.
숨이 턱턱 막혀
억, 억 하는 신음이
연신 흘러 나왔다.

 

희망이 나를 다독인다.
하루 가고 이틀 후면
나을 거라는 소망이
통증 틈에서 숨 쉰다.

 

친구가 아른거린다.
췌장 속에 팔개월 동안
악성 종양을 품고 살며
절망까지 감내했던 그.

 

삶의 희망이 사라지면
절망 아닌 공포가 된다.
"어젯밤엔 좀 다르게 아팠어.
이번 주일까봐 겁이 나."

 

요통으로 몸부림치며
어찌할 수 없었던
도망갈 수도 없었던
친구의 공포를 체감한다.

 

그는 떠났고 해가 바뀌었다.
매일 밥을 먹고 잠을 자는
나의 곁에서 그가 종종 속삭인다.
"내 친구가 되어 주어 고맙다."

 

고통이 나를 일깨운다!
사람을 향한 따뜻한 유대감과
살아있음에 펄떡일 이유를.
살아있으니 겁 먹을 필요 없음을.

 

고통이 다듬은 감수성으로
푸른 하늘을 쳐다보고 싶다.
요통이 나를 떠나가고
끙 하는 소리 잦아진 후에도.

 

*

이틀 동안 허리가 아팠다. 누구나 한번쯤 허리 삐긋해지는 경험을 할 텐데, 이번엔 내 차례였다. '왔구나' 하는 마음으로 편안히 받아들였다. 인내는 강인한 정신이지만, 개선할 수 있는 일을 참는 것은 미련함이다. 나는 편안함을 느끼면서도 적극적인 대처도 할 줄 아는 사람이다. 지금까지는 늘 인내를 택하는 쪽이었지만, 이제는 적극성을 제2의 천성으로 만들고 싶다. (잘 되려나, 하는 생각이 고개를 내밀길래 다시 처박아 넣었다.)


그리움은 이런 의지적 태도와는 별개였다. 아픈 내내 친구가 떠올랐다. 그리움은 아름다운 감성이지만, 더 아름다워야 할 '현재'를 그리움에게 모조리 내어주기는 싫었다. 그래서 시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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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컥 철컥

두근 두근 

새벽 기차가 달린다

 

나를 품

약속 향해

어둠 속을 질주한다

 

해가 솟아

하늘이 밝았고

빵을 먹으니 정신이 깬다

 

구름인지

물안개인지 분간 못한

차창 밖 신비로움

 

끼이 끼익

멈춰선 기차가

고르는 어느 시골역

 

승객을 기다리다

지체없이 떠난다

기다림과 지체의 다름이여,

 

"우리 기차는 잠시 후

창원역에 도착하겠습니다"

정시에 목적지라니!

 

방향을 알고

달릴 속도를 알아

그리도 편안히 달렸구나

 

*

 

기다림은 때가 오기를 바람이다. 목적과 기대를 품은 충만함이거나 간절함이 기다림이다. 지체는 때를 늦추거나 목적도 없이 용기도 없이 질질 끎이다. 기차는 기다림과 지체의 차이를 안다. 승객을 기다리다 이내 지체 없이 달리는 새벽 기차의 행진을 본다. 기차가 뿜어낸 질주하는 에너지는 기다림과 지체를 구분함에서 오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그리고 외친다. 세상 모든 인생들아, 달려나갈 푯대와 자신만의 속도을 알아 꼬옥 꿈을 이루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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