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의 금능으뜸원해변이다. 날씨가 잔뜩 흐린데도 바다가 에머랄드 빛을 띄어서 단숨에 반한 곳이다. 비가 부슬부슬 내릴 때에는 차에 머물다가 잠시 비가 그치면 나가서 잠시 바다를 관조했다. 바다 너머 보이는 비양도는 정말 <어린 왕자>에 나오는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 같다. 이 해변을 5박 6일을 머무는 동안 세 번을 찾았다.


두 번째 방문은 밤이었다. 나는 어둔 해변 속을 거닐며 인생을 생각했다. '앞으로의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나는 한 시간짜리 소요(逍遙)학파 철학자였다. 생각의 결과를 간단히 요약하면 이리 되겠다. 단순한 삶! 단순함이 간단한 건 아니다. 단순함이 쉬운 것도 아니다. (단순한 명제의 모습을 띠는 지혜를 실천하기란 얼마나 힘든가!)



2016년 11월 초에 오픈한 한림읍네의 콩나물국밥 집에서 아침식사를 먹었다. 전날 밤, 숙소를 향하는 길에 콩나물국밥이 3,900원이라는 현수막이 눈에 띄어 찜해 두었던 식당이다. 혼밥족이 늘었다고는 하나, 나는 여전히 혼자 밥먹기가 쉽지 않다. 쑥스럽거나 어색해서가 아니다. 이유는 오직 하나다. 테이블 하나와 반찬 셋트를 나 혼자 차지하기가 식당 측에 미안해서다.


그래서 혼자 먹을 때엔 반찬이 적은 식당, 이를 테면 삼계탕, 설렁탕, 해장국 집을 찾아 입구 쪽이나 작은 테이블에 앉는다. 되도록이면 비싼 메뉴를 시킨다. 이렇게 매번 '쓸데 없는 오지랖'과 '매너 있는 소비' 사이를 방황한다. 이 콩나물국밥집은 대놓고 3,900원을 명시해 두었고, 기사식당처럼 손님 회전이 빠른 분위기가 부담없이 혼자 들어가서 따뜻한 콩나물국밥을 먹고, 3,900원을 내고 왔다.




한림읍에는 '최마담네 빵다방'이라는 빵과 커피를 파는 작은 카페가 있다. 이름이 재밌다. '빵'을 내세우기엔 빵의 종류나 맛이 월등하지 않고, '카페'로 보더라도 브랜드가 될 만한 요소가 부족했지만 인터넷 검색을 했더니 가 볼만한 곳으로 추천하는 이들이 더러 있었다. 핸드 드립의 커피맛에서 전문성을 보였지만, 제주엔 워낙 쟁쟁한 카페들이 많다. 그런 일급의 카페에 들기엔 뚜렷한 차별화가 없다는 말이다. 세면대의 손타월이 인상 깊었다. 나는 손을 두 번 닦았는데, 두 번째엔 수건 쓰기가 아까워 무의식적으로 공중에 손을 털었다.





<카페 그곳>에서 두 시간을 보냈다. 나를 죽여주는 음악, 조용한 분위기, 건강한 사이드 메뉴가 나를 매혹시켰다. 조용함은 학구적이기도 했고, 낭만적이기도 했다. 책과 잡지도 놓여 있었고 책을 읽는 이들이 많았지만, 제주에 맞는 여행기나 사진집 또는 감성 충만한 에세이들이었으니 고시원 느낌과는 하늘과 땅만큼 멀다.


둥근 테이블에 쌓인 책 중에서 하나를 집어와 펼치니 젊은 저자의 메모가 적혀 있었다. 그녀에게 제주는 "정성껏 살고 싶게 만드는 곳"인가 보다. 내게는 낭만적이고 여유롭게 살고 싶게 만드는 곳인데. 그녀의 글 몇 편을 읽으며 자연스레 내 필력과 비교하는 나를 발견했다. 자뻑도 하고, 그녀에게 공감도 했던 시간이었다.


제주이니만큼 텍스트를 읽기보다는 사진도 보자 싶어 잡지 <rove>를 펼쳤다. 사진이 이 잡지의 9할인데, 나는 편집자의 말과 잡지의 끝 부분에 실린 두 어개의 텍스트 기사를 더 열심히 읽었던 것 같다. 이럴 땐 여지없이 활자 중독자다. 증상은 경미하다. 세상에 어마무시한 독서가들이 많음을 보면 그렇게 느낀다.




하루가 지났다. '앤트러사이트, 최마당네 빵다방, 카페 그곳'을 찾았더니 날이 어두워졌다. 카페 그곳을 나와 숙소를 향하는 골목길이 쓸쓸하면서도 정겨워서 찍은 사진이다. 밤을 찍은 건지, 골목길을 찍은 건지 알 수 없는 이유는 있다. 나는 분위기와 나의 정서를 담았던 게다. 아니, 담고 싶었던 게다. 카메라는 술취했나 보다. 실체는 또렷한데, 느슨하고 흐릿하게 찍었더라. 묘하게도 어떨 땐 위 사진이, 다른 땐 아래 사진이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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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바다의 따뜻한 첫 인상이다. 공천포 앞바다가 나를 반겼는데, 깊은 인상으로 남았다. 얼마 전 이런 얘길 들었다. "사람이 죽으면 먼저 가 있던 반려동물이 마중 나온다." 진실 여부야 알 수가 없지만, 우리 가족도 반려견을 키운 적이 있기에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로 가슴이 먹먹했던 말이다. 이번 제주 여행에서 공천포 앞바다는 3년 전 세상을 떠난, 우리 집에서 16년을 살았던 푸들이 꼬리를 흔들며 나를 반기듯이 햇빛을 머금고 나를 안아 주었다.



남원큰엉해안경승지는 황홀한 해안산책로다. 신영영화박물관과 금호리조트 뒷쪽 산책로가 특히 아름답다. 절벽을 따라 걷다보면 절경에 감탄하고 마음까지 후련해진다. 한반도 모양을 빚어내는 산책로도 유명하다. 이번에는 혼자 해가 질 무렵에 들렀다. 카페에서 나만의 시간을 가진 후였더라면 한 두 시간 산책을 했을 텐데, 와우들이랑 시간을 보내고 카페를 향하는 길이라 마음의 여유도 정신적 에너지도 없었다. 충전을 해야 했다. 나는 얼른 카페로 가서 책을 읽고 무언가를 끼적이고 싶었다. 15분~20분 만에 산책을 마치고 카페 <와랑와랑>으로 향했다.



<와랑와랑>은 작은 카페다. 아담하지만 고유의 분위기를 빚어낸다.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앙증맞고, '당근 한 컵' '찰떡구이' 등 차별화된 메뉴를 선보인다. 유기농영귤차 300g 등 건강차도 팔았다. 한쪽 벽면에는 혼자 방문한 이들을 위한 테이블이 놓였다. 카페는 네이게이션 없이는 찾기 힘든 위치다. 해안도로에서 골목길을 따라 차를 몰아가야 했다. 감귤 과수원이 카페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다. 나만의 아지트를 찾아가는 기분이 들었다. 비수기여서인지, 문 닫을 시각이 다가와서인지 좌석의 1/3이 남았는데, 여름 철에는 많이들 찾을 것 같다. 이곳에서 나는 비전에 관한 글을 한 편 썼다. 해질녘 6시가 클로징 타임이라 5시 50분에 아쉬움을 안고 일어섰다.



새별오름을 오르는 길에 찍은 사진이다. 억새와 한라산을 담고 싶었다. (오른쪽 동그랗게 부풀어오른 구릉이 한라산이다.) 해발 519m의 새별오름을 오르는 데에는 20분이면 족하다. 억새 구경, 들판 구경을 하면서 느긋하게 오르고 내리는 1시간 짜리 산책 코스로 추천할 만하다. 주차장에서 오른쪽으로 오르길 권하고 싶다. 오를 때에 조금 가파르긴 하나, 천천히 오른다면 숨이 조금 찬 정도에 불과하다. (안전상으로도 가파른 길은 내려오기보다는 오르는 쪽이 낫다.) 구름이 하늘을 떠다녔고, 바람이 억새를 애무하는 날이었다. 와우들을 따라 간 곳인데, 예상보다 훨씬 흡족한 오름이었다.



둘째날 애월의 해안에서 만난 낙조다. 구름이 석양의 운치를 더하는 하늘이다. 나는 일몰을 좋아한다. 옛 연인이 생각났다. "오빤 왜 일몰을 좋아해요?" "떠오르는 태양이 주는 희망과 활력을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일몰이 주는 그윽함이 더 좋아. 언젠가 인생의 황혼을 맞게 될 텐데, 그때 저 석양처럼 아름답기를 바라는 소망을 갖게 되어서 좋기도 해. 하늘이 온통 사랑빛으로 물들면, 이제 낭만의 시간이 시작된다는 느낌도 들고."



협제해수욕장에 위치한 레스토랑 <에너벨 리>에서 전복 오므라이스를 먹었다. 1만 5천원이라는 부담스러운 가격이지만, 식사 시간 대에 혼자라는 점을 감안해서 주문한 메뉴다. 다른 메뉴(해물찌개)도 1만 2천원이긴 했다. 순전히 '애너벨 리'라는 이름 탓에 들어간 식당이었다. 문학도나 문학 청년이라면 끌렸을 법한 '애너벨 리'! 에드거 앨런 포(1808~1849)의 마지막 시로 알려진 '에너벨 리'는 사랑의 상실을 노래한 시로 아내의 죽음을 애도한다. 포의 아내는 젊은 나이에 병을 얻어 5년 간 투병 생활을 하다가 사망한다.


극도의 슬픔에 빠진 포의 건강과 삶은 피폐해졌고, 2년 후 아내를 뒤따르고 만다. 포의 나이 마흔이었다. 실연의 아픔 류의 생각을 하면서 밥을 먹은 건 아니다. 실연의 기분을 느낄 분위기가 따로 있진 않겠지만, 그럴 법한 인테리어는 아니었다. 낭만적인 이름과는 달리 식당 실내는 어수선했다. 중년의 도민들이 시끌벅적하게 술을 마셨고, 식당 곳곳에 상자와 포대가 쌓여 있었다. 맞은 테이블에 앉아 나와 같은 메뉴를 먹던 20대 아가씨는 음식을 남긴 채로 자리를 떴다. 나는 꿋꿋히 그릇을 비웠다. 실제로는 언제 읽게 될지 모르겠지만, '아...! 오에 겐자부로의 소설을 읽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협제해수욕장의 밤은 고요했다. 해안을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 좋은 카페에도 손님이 거의 없었다.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싶었지만 비수기의 밤 영업이 언제 끝날지 몰라 바닷가로 나갔다. 두어 가족과 커플이 떠나자 나 홀로 남았다. 바다 건너 비양도의 불빛이 보였다. 사진은 협제해수욕장 해안도로를 따라 줄지어 선 가게와 주택들이다. 조금 쌀쌀하기도 했고, 약간 쓸쓸하기도 해서 15분 즈음 있다가 차로 돌아갔다. 별 다른 감흥 없이, 아무 생각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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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첫날, 와우들과 헤어진 후, 숙소부터 잡아야 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자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묵으면 다른 여행자들과 잠시 어울릴 가능성이 있잖아.' 머릿속에는 얼마전 제주를 다녀온 지인의 스토리가 떠올랐다. 그녀는 게스트하우스에 묵는 사람들과 어울려 밥을 먹고 술을 마셨다. 이튿날에는 차를 얻어 타고 한라산에 갔다. 나는 바로 그 이유, 다시 말해 사람들과 엮일(^^) 수도 있다는 작은 가능성 때문에 '게스트하우스'라는 옵션을 지웠다. 이번 제주 여행도 날마다 호텔에서 잤다.


깔끔하고 조용해서 마음에 들었던 비스타케이 호텔 로비(첫째날)


나는 사람들과의 만남을 귀찮게 여기는 폐쇄족일까? 아니다. 귀찮게 느끼는 쪽은 전혀 아니라고 생각한다. 여행 중에는 혼자만의 시간만을 고집하는 고독파도 아니다. 좋은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를 삶의 행복이요, 축복이라고 여긴다. 이번 제주 여행에서도 토, 일 주말을 두 분과 함께 다녔기에 더욱 즐거웠다. 하지면 여기에서, '모든' 사람들이 아니라 '좋은' 사람들이라고 한정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좋은' 이라는 말이 모호하다. 누가 좋은 사람이란 말인가? 하하하. 웃긴 표현이다.


다분히 자의적으로 이 '좋은' 이란 말을 풀이하자면, 낯선 사람들이 제외된다. 내 안에는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을 저어하는 마음이 있다. 주말을 함께 보냈던 분들도 친한 분들이다. 이 분들과 보낸 시간은 편안하고 행복했다. 반면 이 분들을 통해 새롭게 만난 분들과의 만남은 살짝 불편했다. 내가 새로운 만남을 피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불편함을 넘어서려고 노력했다. 한 분이 나를 강하게 끌어들이지 않았더라면("제주대로 와라. 소개시켜 주고 싶은 분이 계셔서 그래"), 나는 두 분의 일정이 모두 끝난 다음에 두 분만 만났을 것이다.


나는 사교성이 없는 사람인가? 이 질문에는 쉽게 답변하기가 힘들다. 나를 잘 아는 사람들도 둘로 나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낯가림을 하는 편은 아니다. 남들 앞에 서는 일이 두렵지도 않다. 상대를 배려할 줄도 아는 편이다. 어쩌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대화도 곧잘 나눈다. 이런 모습을 본 이들은 "네가 무슨 사교성이 없어?" 라고 말한다. 나의 일상을 좀 더 들여다보면, 혼자 보내는 시간이 압도적으로 많다. 새로운 만남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좀처럼 새로운 모임에 참여하진 않는다. 인연을 이어가기 위해 별다른 노력도 하지 않는다.


게스트하우스는 사람들과 오가면서 얼굴을 마주할 경우가 호텔보다는 잦다. 비성수기에 제주의 호텔에서 5일을 묵었지만 다른 숙박객과 만난 적은 한 번도 없다. 복도에서조차 만나지 않았다. 내가 밀월여행을 떠났거나, 대중에 노출되면 안 되는 인사도 아닌데, 게다가 결국 이런 글을 쓸 텐데, 도대체 왜 그럴까? 몹시 궁금하지만, 자기이해에 함몰되어 있다가는 일상이 멈춰버리기에 일단은 덮어둔다. 밖으로 던져 버린다는 말이 아니다. 인생이 차차 알려 주리라 믿으며, 건강한 의문을 품은 채로, 오늘 하루를 살아간다는 의미다. 


저렴하고 객실이 깨끗해서 마음에 들었던 스카이리조트(둘째, 셋째날)


게스트하우스보다는 호텔 쪽 숙박비가 비싸지만, 호텔 앱을 잘 활용하면 생각보다는 저렴하다. 55,000 - 42,000(앱 4천원 할인) - 45,000(현금 결재 1천원 할인) - 50,000(조식 포함) - 49,000으로 5박을 묵었다. 마지막 날에 묵었던 숙소를 제외하면 깔끔하고 조용해서 마음에 들었다. 두 군데는 다시 묵어도 좋다고 생각하는 숙소였다. (마지막날 숙소는 이불이 하얀색이 아니었다. 이건 청결함에서 치명타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숙소는 애월읍에 있는 '스카이리조트'였다. 아담한 두 동 건물은 3층짜리 신축 빌라에 입주한 느낌을 주었다.


호텔이 보여줄 수 있는 최악의 행태(마지막날)


밤마다 혼자 시간을 보냈다. 숙박 비용을 조금 더 치르고 얻으려는 건 결국 '혼자만의 시간'인 셈이다. 여행지에서 낯선 사람을 만나 저녁 식사를 즐기거나 술잔을 기울이는 순간을 바라기도 하나, 국내 여행을 하면서 단 한 번도 낯선 사람과 시간을 보낸 적이 없다. 술잔은 커녕 커피 한 잔도 없다. 기억으로는 5분 이상 대화를 나눈 적도 없는 것 같다. 수십 번의 여행을 다녔으면서도 그런 적이 없다는 사실을 지금 인식하면서, 스스로도 놀라고 있다. (다행하게도(?) 해외 여행을 하면서는 대화를 나눈 경험이 더러 있다.)


특급 호텔에 묵는다면 공간이 주는 힘에 이끌려 호텔에 들어가는 순간 나는 우아한 여행자가 된다. 객실의 편의성(이를 테면 작업하기 쾌적한 테이블)을 향유하고, 수영을 즐기며 신분이 상승되는 느낌마저 든다. 그래서 긴 해외여행을 할 때면 하루이틀을 특급 호텔에 투자하곤 한다. 유익이 크지만, 혼자 여행하면서 특급 호텔에서 묵기는 쉽지 않다. 결국 깨끗한 3성급 호텔을 찾게 된다. 이렇게라도 호텔에서 묵으려는 이유는 하루 일정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가는 느낌 때문이다.


로비가 크고 우아하면 좋지만, 개의치 않는다. 깔끔하면 그만이다. (지역 특산품을 아무렇게나 전시했거나 짐들이 한쪽에 적재되어 있으면 김이 샌다는 말이다.) 건물이나 엘리베이터 등 시설이 낡아도 괜찮다. 관리와 청소에 신경쓰고 있으면 된다. 가장 중요한 공간은 객실이다. 객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기분을 좋아한다. 나만의 요새로 들어가는 그 기분을 말이다. 침구류가 깨끗하고, 인테리어가 살아있고, 어메니티에 신경을 썼다면 객실의 크기는 상관없다. 아무리 작아도 혼자 하룻밤 지내기에 좁은 객실은 없었다. 결국 나에게 호텔 숙박비는 '하루짜리 나의 요새'에 대한 렌트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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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여행의 첫 목적지는 공천포 식당이었다. 그곳에서 두 명의 와우팀원을 만나 점심식사를 하기로 했다. 메뉴가 무엇인지는 모른다. 그저 반가운 마음으로 차를 몰아갔다. 공천포는 지도에서 서귀포 시 우측에 있는 남원읍에 위치한 작은 마을이다. (서귀포시청 제1청사와 남원읍내의 가운데에 위치한다.) 식당을 300~400 미터 앞둔 때였다. 경사가 완만한 내리막길을 서행하는데 물비늘로 출렁이는 바다가 나를 반겼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바다에게 인사부터 했다. "안녕! 바다야. 이번에는 자주 만나자."



공천포 식당에선 세 사람 (아이까지 하면 네 사람) 모두 모듬물회를 먹었다. 벌써 십여년 전 일이지만, 제주를 대표하는 음식 중 하나라는 '자리물회'를 먹느라 고생한 적이 있었다. 치아가 고른 편이 아니라 가시가 잇몸을 찔렀던 추억이다. 그렇다고 '물회'에 대한 편견이 생긴 건 아니라 기꺼이 주문했다. 문제는 '물회'가 아니라 '자리'였으니까. 오늘은 모듬물회다. 나는 "혹시 자리도 들어가나요?" 라고 물어보는 사람은 아니다. 주면 주는 대로 먹는 편이다. 설사 자리가 들어가더라도 십년 전과 달리 잘 씹을 수 있을 지도 모르고.


모듬물회는 소라와 전복이 들어간단다. 나는 모든 음식을 잘 먹지만 어떤 음식이라도 맵고 시고 짜면 곤란해진다. '성인 남자치고'가 아니라 왠만한 아이들보다 짜고 매운 건 제대로 먹지 못한다. 신 맛은 그나마 나은데, 레몬즙을 그대로 짜 먹는 이들을 보면 경이로울 뿐이다. 모듬물회가 시큼한 맛이었는데, 끝맛이 산뜻했다. 소라와 전복을 씹는 식감이야 별 다른 걸 느끼지 못하는 육지인이지만, 나는 모듬물회를 맛나게 먹었다. 언젠가 공천포에 오면, 한 끼는 이 모듬물회로 먹을 것 같다.



"이제 카페로 가요."

"카페는 어디야? 차 타고 가야 해?"

웃으며 대답한다. "아뇨. 요기 바로 옆이에요."

정말 공천포 식당 바로 옆이었다. 우리는 식당과 이웃한 카페 <숑>으로 갔다. 마을 주차장으로 차를 옮겨 대고 카페로 들어서니, 이미 두 사람의 주문은 끝났다. "저희는 주문했어요. 팀장님 것만 추가하시면서 계산하시면 돼요." 식사값을 그네들이 지불해서 커피는 내가 사기로 한 터였다.



<숑 Syong>은 다섯 개의 테이블이 놓은 작은 카페였다. 바다 쪽으로 통유리 창을 내어 작지만 바다를 품은 카페였다. 공천포 앞 바다가 카페의 한쪽 벽면을 차지했으니 다른 인테리어는 필요 없을 성 싶었다. 커피맛과 음악만 좋으면 금상첨화일 텐데, 음악이 무척 좋았다. 그윽하고 낭만적인 노래들이었다. 에피톤 프로젝트나 가을방학, 스웨덴세탁소, 짙은과 같은 분위기의 인디 노래들이 나왔던 것 같다. 내가 <숑>에 머문 그 시각에는 심규선의 "꽃처럼 한철만 사랑해 줄 건가요"가 어울리는 분위기였다. 나른한 오후, 따뜻한 햇살 그리고 심규선의 이 노래!



"아메리카노 한 잔 주세요." "혹시 우유 들어가는 커피도 좋아하세요?" 잘 생기고 사람 좋은 인상의 카페 주인의 목소리에 친절이 묻어 있었다. 뒤에서 거든다. "여기 라떼를 잘 해요." 아메리카노와 에스프레소를 즐겨 마시기에 잠시 머뭇거렸지만, 이내 대답했다. "네, 여기 시그니처 메뉴라면 먹어 봐야죠." 그렇게 아주 부드럽고 향이 좋은 라떼를 마셨다. 커피맛은 설명하기가 힘들다. 수년 만에 마신 라떼라 비교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어떤 라테는 우유 맛이 강해 실망스러운데, 분명 그렇지는 않았다. 



우리는 말없이 바다를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대화를 나누었고 다시 바다를 보곤 했다. 나는 음악과 바다에 취했다. 한 시간이 흘렀는지, 두 시간이 흘렀는지 모를 즈음에 카페를 나섰다. 아마도 한 시간 30분 즈음이었으리라. 카페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도록 앙증맞은 작은 걸상(이건 의자가 아니라 걸상이라 불러야 할 크기와 모양과 연배였다)이 놓여 있었다. 세 여인이 앉아 포즈를 취하고 나는 사진을 촬영했다. "팀장님도 하나 찍으세요." 나는 사양했다. "아니, 괜찮아." Y는 강권했다. "아니, 서 보세요."  Y의 배려에 나는 다른 두 여인과 함께 포즈를 취했다.



그때, 짠 하고 <숑> 사장님이 등장했다. "여자 분들만 찍으시는 줄 알고 보고만 있었는데, 남자 분도 찍으시니까 제가 모두 한 번 찍어드릴게요." 나는 이 말에 깊이 감동했다. "우유 들어가는 커피도 좋아하세요?"에서 느낀 모호함이 정체를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이 말과 "저희 카페는 라떼가 맛있어요."는 같은 말이지만 다른 표현이다. 숑 사장님은 공감 깊은 친절을 베풀 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카메라를 찍는 이들 중 피사체가 되는 걸 싫어하거나 귀찮아하는 이들도 많다. 사장님의 등장은 이러한 사정까지 고려한 타이밍이라는 생각이 나만의 공상인지 궁금해진다.



사장님이 찍어준 사진을 그날 밤에야 확인했는데, 내가 나중에 찍은 사진과 구도가 똑같았다. 왠지 기분이 좋았다. 어렸을 적, 내가 좋아하는 아이가 나와 똑같은 학용품을 들고 다니는 걸 목격했을 때의 느낌이었다. 사실 누가 찍어도 비슷한 구도가 나올 수밖에 없을 텐데, 라고 생각하면서 혼자서 기분 좋게 웃었다. 어쨌든 공천포 앞바다를 면한 공천포 식당과 카페 숑은 제주 남쪽을 여행할 때면 다시 들르고 싶은 곳이 됐다. 시간이 없어 둘 중 하나에만 들른다면, 카페 <숑>이다.


실제로 다시 간다면, 그 날은 아마도 사장님의 친절과 낭만적 음악에 취하고 싶은 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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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타행 에게항공(Aegean Airlines)은 본의 아니게 비즈니스 좌석으로 예매했다. 이코노미 석이 없었고, 비즈니스와 이코노미의 가격이 비슷했다(3만 5천원 차이). 비즈니스 탑승권을 살펴보았다. 이름부터 달랐다. ‘탑승권(Boarding Pass)’이 아니라 ‘탑승/ 라운지 이용권(Boarding / Lounge Pass)’이었다. 이런 문구도 보였다. “We are pleased to invite you to our lounge prior to the departure of flight." 나를 라운지로 부르는 것 같았다.

 

그런데, 라운지가 어디에 있지? 단 한 번도 비즈니스 석을 구입한 적은 없다. 누군가가 나를 비즈니스 석이나 일등석의 세계로 초대한 적도 없다. 이왕이면 라운지에서 탑승 시간을 기다리고 싶었다. 나는 라운지를 찾아 나섰다. 탑승권을 보여주고 면세점 거리로 들어섰다(우리나라는 수하물 검사를 하고 나야 면세점인데, 아테네 공항은 면세점을 지나고 나서 수하물 검사대가 있었다). 카페가 보였다.

 

한 시간 남짓한 시각을 커피와 빵을 먹으면서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4유로를 지불하고 Greek Coffee와 머핀을 샀다. 저녁을 먹지 못해 간단하게 요기도 하고, 한 시간을 카페에서 알차게 보낼 심산이었다. 그새 라운지는 잊어버렸다. 나도 모르게, 이코노미 석 승객으로 바뀌어 있었다. 커피를 받아들고 자리에 앉자마자 라운지 생각이 났다. ‘아! 라운지! 나는 라운지에 가려던 참이었지!’ 이것은 탄식이었다. 라운지엔 무료 커피나 간단한 스낵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얼른 커피를 마시고(그릭 커피는 그다지 뜨겁지 않다), 빵을 챙겨 일어섰다. 카페 30초 거리에 수하물 검사를 위한 짧은 줄이 보였다. 별 일 없이 검사대를 통과했다. 게이트를 안내하는 표지판이 나를 맞았다. 신문과 스낵을 파는 가게가 보였고 게이트들이 줄줄이 이어졌다. 5분을 걸어 B19 게이트에 도착했다. 라운지가 어디에 있나, 두리번거리며! 라운지는 없었다. 포기하고 게이트 앞 좌석에 앉았다. ‘아니지! 한번 가 보기나 하자. 경험삼아.’ 다시 일어섰다. 지나쳤을 지도 모르니까. 나는 수하물 검사대까지 돌아다녔지만 라운지를 찾지 못했다.

 

발길을 돌려 게이트로 향하는데 유리창 건너편에 독일의 루프트한자 항공사 라운지가 보였다. 수하물 검사를 하기 전에 만났던 면세점 거리였다. 근처에 에게항공 라운지도 있으려나? 저가항공사라 라운지가 대수롭지 않으려나? 되돌아나갈 수 있는지 물어볼까? 갈등은 짧았다. 이미 시간이 많이 흘렀고, 수하물 검사대를 다시 통과하긴 싫었다. 결국 라운지엔 가지 못했다. 한번쯤 비즈니스, 일등석 문화를 경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도 비즈니스 석을 이용하는 승객들의 안내를 받는다면 더욱 좋겠다.

 

라운지를 잊은 채로 커피를 주문하고 나서, 내가 이코노미 문화에 익숙해져 있음을 느꼈다. 나도 모르게 비즈니스 석을 구입한 혜택을 잊고 말았다. 어쩌면 삶이 나에게 선사한 혜택도 잊고 산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이라는 시간, 내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 지금 내가 가진 소유물들! ‘나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자신의 자산(이나 특권)을 누리지 못하며 살겠구나.’ 내면속에 잠자고 있는 재능에서부터 열심히 일하여 번 돈을 들여서 구입한 물건까지(K 씨는 구입하고 나서 포장도 뜯지 않고 보관하는 물건도 있다고 했다).

 

라운지에는 가지 못했지만, 비즈니스 석과 이코노미 석의 차이를 경험하긴 했다. 저가 항공사의 40분짜리 짧은 노선임에도 비즈니스 석은 달랐다. 확실히 대접 받는 기분이 들었다. 사탕 하나가 제공되는 이코노미 석과 달리, 조금 식긴 했지만 맛난 치킨과 치즈가 들어간 미니 브로슈어 빵과 미니 크로와상이 제공되었다. 커피는 물론이다. 좌석도 다닥다닥 붙어 있지 않았다. 3명 좌석에 두 명이 앉았고, 가운데 자리에는 테이블이 셋팅되어 있었다. 1번 열에 D번 좌석이 나의 공간이었다. 조종실 문이 열렸을 때에는 기장이 슬쩍 보였다.

 

나는 비행기에서 가장 먼저 내렸다. 셔틀버스에도 가장 먼저 올라탔다. 40~50명은 족히 탈 수 있는 버스는 비즈니스석 8명만 태우고서 출발했다. 이코노미석 승객들이 내리는 모습을 보면서 묘한 이질감과 동질감(올 때는 나도 저 무리에 섞이겠구나)을 동시에 느꼈다. 이코노미석 승객이 아직 도착하기도 전에 수하물을 찾았다. 먼저 올라온 수하물에는 모두 “PRIORITY"라고 쓰인 빨간색 태그가 붙어 있었다. 내 가방이 두 번째로 나왔다. 공항을 나오자마자 택시 승강장으로 가서 줄을 서지 않고 택시를 탔다. 10~15분은 절약한 느낌이다.

 

택시 안에서 생각했다. ‘눈을 크게 떠서(그런다고 찾아 질런지는 모르겠지만) 내게 주어진 재능과 소임을 발견하고, 성실하게 재능을 활용하면 지금까지 몰랐던 삶이 펼쳐질 수도 있겠구나. 지금까지 살아왔던 방식 중에서 나를 제한하는 태도, 성격, 생각들을 개선해 나간다면 말야! 비즈니스 석은 돈이 있어야 누릴 수 있지만, 새로운 인생은 돈 문제가 아니다.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생각하고(좋은 생각만을 남기고 어설픈 생각은 모조리 내던지기), 새로운 행동을 시도함으로 가능하다.’ 3만 5천 원짜리 교훈치고는 값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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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여행 0일차, 10월 15일(토).


1.

열흘 동안 함께 그리스를 여행했던 일행과 헤어졌다. 그들은 서울로 갔다. 나는 아테나 공항에 남았다. 지금 시각은 저녁 7시 30분. 일행과 헤어진 시간이 정오니까 일곱 시간 반이 지났다. 렌트카를 예약하고 다시 취소하고, 여행지를 펠로폰네소스 반도에서 크레타 섬으로 바꾸는 등 네댓 시간 동안 혼자서 소동을 치렀다. 신용카드를 챙겨 오지 못한 결과들이다.

 

신용카드를 지참하지 못한 사연은 길다(기회가 온다면 그 사연을 풀어내고 싶지만, 지금은 ‘허락된 지면이 짧다’라는 말로 간단히 넘어가련다). 신용카드만 있었더라면 차 렌트가 순조롭게 진행되었을 테고, 나는 폭스바겐 골프를 몰고서 코린토스의 어느 호텔에서 쉬고 있으리라. 지금쯤이면 에게해의 밤하늘을 보면서 식사를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신용카드 사태는 실수가 아니다. (미루기를 즐기는 나의 타성이 한 몫 거들었지만) 본질적으로는 경제 사정을 감안한 나의 선택이었다. 결과는 끔찍했다, 라고 말할 순 없지만 여러 가지로 불편했고, 허비하지 않아도 될 시간을 낭비했다. 이 모든 상황은 ‘신뢰 없는 사람’이 어떤 인생을 살아야 하는가를 보여준 표지인지도 모르겠다. 신뢰는 일을 수월하게 만든다. 지인에게 10만원을 빌리는 일과 행인에게 10만원을 빌리는 일의 차이가 신뢰가 주는 실용적인 힘이다.

 

휴대폰 앱으로 크레타행 항공권을 발권하고 탑승 게이트 앞에 앉고 나니, 비로소 새로운 여행이 시작되는 느낌이 든다. (19:30)

 

2.

크레타는 그리스의 6천개 섬 중 가장 큰 섬이다. 제주도의 4배란다. 크레타에는 그리스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 이라클리온이 있고, 고대의 중요한 유적지 크노소스 궁전이 있다. 크레타는 동양과 서양 사이에 위치한 까닭에 역사에 자주 등장했다. 이러한 사실들이 나를 크레타로 유혹한 것은 아니다. 한 사람이 나를 이끌었다. 내게는 더없이 위대한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

 

6년 전, 나는 그의 무덤 앞에 섰다. 읽지도 못하는 그의 묘비명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그러다가 묘지 한쪽에 앉아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었다. 아랍계 유럽인으로 보이는 참배객이 왔다가 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 해, 『그리스인 조르바』를 처음 읽었다. 6년 사이, 이 책을 한 번 더 읽었다. 커다란 감동을 얻었기에 앞으로도 여러 차례 더 읽을 생각이다.

 

크레타에 머무는 동안 할 일도 하나다. 자주 이 책을 읽고,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관해 두 주인공과 함께 의논할 생각이다. 가 볼만한 곳도, 가야 할 명소도 내게는 중요치 않다. 오직 마음이 끌리는 대로 시간을 보낼 텐데, 바로 그 일이 니코스 카잔차키스와 시간을 보내는 여행이다. 그리스에 조금 더 머물게 된다면 조르바에 관한 26개의 글을 쓰고 싶지만(이 책의 챕터가 26개다), 내게 주어진 시간은 6일 뿐이다.

 

6일 동안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고 생각하고 글을 쓸 것! 나는 니코스와 조르바를 한국에서보다 조금 더 진하게 느끼기 위해 크레타로 간다.

 

3.

크레타의 숙소에 도착하니 적막감과 쓸쓸함이 몰려왔다. 어제까지 함께 시간을 보냈던 이들의 미소가 떠올랐다. 함께 묵었던 근사한 객실과 호텔 라운지가 생각났다. 지금은 3성급 (어제와 비교하면) 허름한 호텔에 묵고 있다. 지내기엔 괜찮지만, 지금까지의 여행과 대비되어 약간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화장실이 어설퍼 서글픔을 더했고, 촌스러운 붉은색 침대시트가 울적함을 추가했다.

 

방안 가득히 음악을 채우고 싶었지만 쓸쓸함을 쓸어내 버릴 것 같아 참았다. 나는 지금의 기분에 집중하고 싶었다. 쓸쓸함과 적막감을 음미하면서, 이러한 감정에도 유익을 있음을 경험하고 싶었다. (모든 세상사는 양면적이니까.) 유익을 발견하려면 실체부터 알아야 했다. 작은 숙소 안에는 나 혼자다. 지금의 기분을 나눌 사람이 없다. 창밖은 낯설다. 의지할 데가 없다.

 

외로움, 쓸쓸함, 의지할 데 없음이 적막감이다. 기분이 적적하거나 으스스해진다. 무서움이 아니다. 낯설음이나 음산함이다. 화장실 싸구려 타일에서 느껴지는 기분이랄까. 천장에 매달린 선풍기가 떨어지진 않을까 싶은 의심이랄까. 이런 감정이 적막감이다. 적막감에도 유익이 있다. 창밖에서 은은히 빛나는 보름달을 바라보게 만든다(달빛이 나를 비춰주고 있구나). 차분하게 책에 몰입하도록 돕는다(이 날밤『그리스인 조르바』 3장을 읽었다).

 

다시 양면성이다. 일행들과 함께 했을 때에는 느끼지 못한 감정을 경험하면서, 그들과 함께라면 갖지 못했을 체험(차분한 단상과 조용한 독서의 시간)을 누렸다. 정말, 새로운 여행이 시작되었다.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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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코노스 타운으로 들어서자마자 시작되는 순백의 미로 탐험, 2) 바닷가 위에 세워진 리틀 베니스의 이국적인 건물들, 3) 골목길 여기저기에서 여행자를 유혹하는 카페와 갤러리 등의 상점 구경이 내가 미코노스에 빠져든 이유들이다. 누군가가 이 모든 것들과 미코노스의 아름다운 비치에서 수영과 선탠마저 즐긴다면, 그는 미코노스를 사랑하게 될 것이다. 미코노스는 바이마르, 포틀랜드, 비엔나, 팔라우, 아테네와 함께 내겐 꼭 다시 가고 싶은 여행지다. 이 중에서도 1순위가 미코노스다.




제우스는 바람둥이였다. 아내 헤라를 질투의 여신으로 만들기에 충분한 바람기였다. 외도가 취미였고, 자녀들이 수십 명이었다. 한번은 아내 몰래 미케네 왕의 딸 알크메네를 범했다. 죄는 결과를 낳는 법, 반신반인의 아들이 태어났다. 제우스는 ‘헤라의 영광’이라는 뜻으로 아들의 이름을 지었지만, 아이는 헤라의 미움을 받으며 자랐다. 그리스 신화의 영웅, 헤라클레스 얘기다.


티탄족 신들과 올림포스 신들이 대결할 때, 헤라클레스는 제우스를 우두머리로 하는 올림포스 신들을 도왔다. 2011년 개봉한 영화 <타이탄>과 이듬해의 <타이탄의 분노>는 두 신족들의 대결을 소재로 만든 영화다. 헤라클레스는 티탄족 신들을 물리치기 위해 큰 바위 하나를 던진다. 그 바위가 그리스의 휴양지, 미코노스 섬이다. 미코노스를 즐기는 데에는 신화 지식은 필요없다. 그 자체로 매혹의 여행지니까.



2010년에 지중해 크루즈 여행을 하면서 미코노스에 다녀왔다. 산토리니도 아름다웠지만, 내겐 미코노스가 발하는 매력이 더욱 강렬했다. 리틀 베니스에서 바라보는 석양은 황홀한 빛깔을 연출했고, 순백색으로 칠해진 그리스 전통 가옥들을 미로 탐험하듯 거니는 미코노스 타운의 골목길은 동화 속 신비로운 탐험을 다니는 기분을 선사했다. 골목길 탐험을 즐기는 비결은 간단하다. 길을 잃고 자유롭게 헤매면 된다!



리틀 베니스와 카토 밀리는 미코노스의 전형적 풍광이다. ‘아래쪽 풍차’라는 뜻의 ‘카토 밀리’라는 옛 풍차는 언덕 위에서 바라봐도 좋고, 석양이 지는 무렵 리틀 베니스 쪽에서 지그시 올려다보아도 좋다. 리틀 베니스는 낮의 풍광과 일몰 무렵의 풍광이 다르다. 나는 보지 못했지만, 밤이 되면 또 다를 것이다. 언젠가는 리틀 베니스의 카페에 앉아 석양을 바라보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날을 갖고 싶다고 생각했다. 소중한 사람과 함께.



리틀 베니스의 카페들


미코노스에는 유명한 해변이 많다. 가장 많이 알려진 ‘파라다이스 비치’의 성수기 밤에는 연일 음악과 춤이 펼쳐진다고 한다. 파라다이스 비치 바로 옆에는 그리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 중 하나라는 ‘슈퍼 파라다이스 비치’가 있다. 크루즈 여행 때에는 미코노스의 비치를 맛보지 못했다. 매력을 전부 맛보지 못해도 미코노스가 그립다. 미코노스 타운 골목길과 리틀 베니스 만으로도 이 섬의 매력을 잊지 못하기 때문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초기 대표작 『상실의 시대』를 쓴 곳이 미코노스다. 아내와 함께 수개월을 머물며 마라톤과 리틀 베니스의 카페들과 집필을 즐겼다. 언젠가 나도 여유로운 일정으로 미코노스에 머무는 날, 어느 카페에서 글을 쓸 것이다. 엄청나게 많이 팔리는 글은 아니더라도, 쓰는 동안만큼은 하루키처럼 자유롭게 여유롭게 나의 시간을 즐길 것이다. 미코노스를 생각하면 일을 하고 싶어진다. 일이 휴식의 달콤함과 수입을 늘려줄 테니까.


리틀 베니스 너머로 지는 석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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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리단길 투어의 핵심 키워드는 크래프트 비어와 장진우 거리 그리고 글로벌한 이국적 맛집이다. 하나를 덧붙이자면 근사한 카페 <그레트 힐란>이나 <Everything But the Hero>(일명 조인성 카페)에서 즐기는 작은 호사다. 시래기 맛집 <시래옥>이나 스테이크 전문점 <스테끼>에서의 호젓한 식사를 끼워넣고 싶은 분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경리단길은 핫한 지역이다. 연예인 부동산 고수 길용우 씨가 건물을 사들였다는 뉴스가 하나의 반증이 되겠다. 나에게 경리단길은 무엇보다 대한민국 로컬 문화의 중심지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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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틀랜드 4일차] 2014년 12월 18일(목)

 

1.

밤새 여러 번 꿈을 꾸었다. 꿈에서의 날짜는 상욱이가 죽는 날이었다. 상욱이가 분명 살아있었는데, 나는 그 날 상욱이가 세상을 떠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꿈은 이렇듯 비현실적이다. 어쨌든 꿈 속에서 나는 상욱이가 원하는 물건들을 챙겨서 병원으로 갔다. 나는 긴급했고 다급했다. 그가 원하는 것이 뭐였더라. 꿈 속 장면이 머릿속을 맴돌지만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그 물건도 가물가물하고, 그것이 실제 상욱이가 원했던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하나의 장면은 카페에 가서 상욱이가 마실 커피를 내가 주문하는 모습이다. 이런 꿈을 여러 번 꾸었고, 내가 구해야 하는 물건은 계속 바뀌었다.

 

 

2.

오전 두 시간을 Grendel's Cafe에서 보냈다. (아마도) 미국식으로 아침 식사를 하고, 잡지를 읽었다. 미국식이라지만 한국에서도 자주 그리 즐겼던 사실을 감안하면 과연 글로벌한 시대다. 실제로 미국 문화는 전 세계의 많은 지역을 지배한다.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빼면, 미국에는 마치 한국처럼 편안하게 느껴지는 곳이 많다. 가까운 일본이나 중국보다 친숙한 문화이기 때문이리라.

 

 

미국 문화의 글로벌한 진출 또는 장악은 순수한 문화의 전파보다는 정치적 헤게모니의 술수인 영역도 많을 것이다. 20대에 노암 촘스키의 저서 몇 권을 읽은 덕분에 미국의 다른 일면을 알게 되었지만, 이후로는 까맣게 잊고 살아왔다. 포틀랜드 거주를 꿈꾸는 배경 중 하나는 영어 학습의 이유도 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를 아는 것만큼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미국을 아는 것이 더욱 유용한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공부는 비실용적일 때, 다시 말해 별다른 실용성이 없음에도 파고들 때 깊어지고 새로운 유용함을 발견하는 법이니 실용과 비실용의 공부를 병행해야 한다.

 

 

카페에서 이와 같은 생각을 잠시 했는가 하면, 카페를 드나드는 사람들에게 시선을 주기도 했다. 벽면에 걸린 그림들을 어설프게 감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을 가장 많이 들인 일은 카페에 비치된 잡지와 책을 읽은 것이다. “이번 겨울에 꼭 해야 할 50가지 일들이라고 홍보하는 잡지의 유혹에 걸려들어 그 목록을 살폈고, 뒤적이다가 파텍 필립의 유명한 문구를 한참 들여다보기도 했다. “You never actually own a Patek Philippe. You merely take care of it for the next generation." 시계 홍보에만 쓰이기 아까운 참 멋진 문구다. 파텍 필립이라면 어울리기도 하지만, 미국은 파텍 필립 대신에 환경을 넣을 줄 알아야 하는 나라다.

 

 

카페에는 나를 매혹시킬 만한 제목의 책이 있었다. the Writer's Handbook60명의 위대한 작가들이 쓴 60개의 에세이를 담은 책이다. 서문에는 프랭크 맥코트라는 작가의 말이 인용되어 있었다. “Being a writer is a splendid way to spend one's life."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문장이었다. 누구나 작가가 될 필요는 없지만(소명의 차원), 누구나 글쟁이가 되는 것은 유익하다(삶의 기술의 차원), 정도로 결론 내린 생각이었다. 앉아서 한 챕터를 읽었고, 시간이 많이 지체되어 세 개의 챕터를 페이지를 넘겨가며 핸드폰 카메라에 담았다. 읽어보고 유익하면 한국에 가서 구입해야지, 하는 생각으로.

 

 

3.

점심식사를 <SIZZLE PIE>에서 피자와 콜라를 먹었다. 한국에서도 거의 먹지 않은 메뉴지만, 버거와 피자를 한 번씩은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던 터였다. 피자의 크기가 정말 엄청났다. 한 조각을 시켜서 배불리 먹었던 나는 두 조각씩 먹는 미국인들이 놀라워보였다. 테이블로 가져온 조각 피자의 '크기'를 실감나게 카메라에 담느라 3~4분이 지나서야 먹을 수 있었다. 미국도 웰빙 바람 탓인지 채식주의자를 위한 메뉴도 더러 보였다. 무가지 하나를 집어들어 뒤적이다가 영화 <Wild> 광고를 보았고, 이 영화를 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4.

6만원 대 착한 가격으로 예약한 숙소 Travelodge는 다운타운 남쪽으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했다. 오늘은 이곳에서 묵는다. 식사 후 Travelodge하니 가랑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우산을 챙겨들고 여행을 시작했다. 20분 남짓 걸었으려나. 마지막 날 저녁식사를 하기로 생각한 레스토랑 Higgins가 눈에 보인다. 조금더 북쪽을 향해 걸으니 PORTLAND라고 쓰인 커다란 네온싸인이 눈에 띈다. Heathman Hotel 이다.

 

 

히스먼 호텔에 가는 이유는 어젯밤 파웰북스에서 포틀랜드 관련 책을 뒤적이다가 발견한 책 Peaceful Place Portland에서 히스먼 호텔 라이브러리를 추천했기 때문이다. 호텔 측은 1992년에 작은 도서관을 마련했다. 히스먼 호텔은 전통적이고 품격 있는 호텔로 이곳에 묵었던 작가(존 업다이크 등)의 친필 사인본이 있기도 하다. 책은 친절하게 소개한다. “책장에서 책을 뽑아 읽거나 와인 테이스팅에 참가하려면 호텔에서 묵어야 하지만, 잠시 들러 구경하는 것이라면 호텔의 투숙객이 아니어도 가능하다.”

 

 

 

5.

라이브러리에서 잠시 앉아 쉬다가 나왔다. 히스먼 호텔 1층 코너 초콜릿 카페에서 마시는 초콜릿을 한 잔 마시고 선물용 초콜릿을 샀다. 매니저가 너무 멋져 보여 말을 걸어 20분 동안 포틀랜드의 매력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히스먼 호텔은 위치가 좋다. 시청과 스퀘어, 노드스트롬 등 중심가가 도보 5분 이내 거리에 있다. 노드스트롬 백화점에 들러 잠시 구경하다가 중심가를 배회했다. 날이 어두워진지 오래되었고 마지막 일정으로 스타벅스에 들어갔다. 하루를 마무리하는 커피 한 잔으로 에너지를 보충했다.

 

 

숙소로 걸어가는 밤거리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제법 굵은 비를 작은 우산은 제대로 막아내지 못했다. 문화예술회관으로 보이는 건물에서 나오는 부모와 자녀를 보면서, 참 좋은 부모를 가졌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부모가 아이에게 우산을 씌워주어서가 아니다. 좋은 가정 교육은 다음 세대를 위한 가장 중요한 선물이니까. 나는 아이가 부러웠다. For the next generation 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인문주의를 권함』을 쓰면서, 다음 세대를 생각할 줄 아는 의식 도는 감성은 자녀를 둔 부모들에게 더욱 생생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예술회관 옆에는  좋아보이는 아파트단지가 있었다. 일부러 그 단지를 통과하여 걸었다. 비는 계속 내렸다. 호텔에 도착하여 가장 먼저 흠뻑 젖은 양말부터 벗었다. 좋다, 얼마간의 고독과 적막감, 마음 편한 숙소 그리고 자유로운 여행자의 일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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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틀랜드 3일차 저녁] 2014년 12월 17일(수)

 

1.

Canteen 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포틀랜드에 사는 한 사내와 이야기를 나누느라 예상보다 90분은 더 머물렀다. Corey 라는 이름의 그와 나는 일단 음식 취향이 비슷해서인지 여러 가지 공감하고 나눌 수 있는 이야기가 많았다. 나중에는 그의 인생 이야기도 듣고, 나의 최근 힘겨움에 대해서도 얘기를 나눴다. 우정에 대한 나의 개똥철학까지 그는 아주 사려 깊은 눈빛으로 들어주었다. 사위가 어둑해졌다. 그도 돌아가야 했고, 나도 여행을 이어가야 했다. 여행자에게는 자유가 있다. "근처에 어디 추천할 만한 곳 없어요?" 결국 나는 그의 차를 얻어타고 호손 스트리트 파웰 북스(Powell's Books) 앞에 내렸다. 질문에 대한 친절하고 따뜻한 답변이었다.

 

 

2.

나는 호손 거리(Hawthorne Boulevard)에 내려 파웰북스로 들어갔다. 다운타운의 본사와는 규모나 시설 면에서 비교되기 힘들었다. 파웰북스 호손점(?)은 아담했고 소박했다. 서점의 규모나 시설 그리고 책을 소장한 권수는 달라도 낱권의 책은 같았다. 이런저런 책을 구경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내는 데에는 문제 없었다는 말이다. 결국 또 몇 권의 책을 구입하고 말았다.

 

 

3.  

호손은 파웰북스를 제외하면 내 취향은 아니었다. 파웰북스에서 구입한 『This is Portland』에 따르면 호손은 가장 히피적인 곳이다. 저자(Alexander Barrett)는 호손 지역(Hawthorne Distirct)라 불리는 이곳 10블록의 거리는 게으른 풋내기 20대들, 미친 홈리스들, 더러운 히피들, 시끄럽게 탄원하는 사람들, 거리의 악사들이 3m마다 늘어서 있다고 말한다. Barrett는 위트 넘치는 저자다. "나는 대체로 점잖음 사람이나, 호손은 나를 격렬한 신보수주의자로 만든다. 직업을 가져! 라고 속으로 소리치게 된다."

 

Barrett에 따르면 호손은 포틀랜드에 연관된 안 좋은 고정관념이 몰려있는 곳이다. 호손과 대비되는 지역은 벨몬트(Belmont street)다. 벨몬트는 호손과 멀지 않은 곳이다. 포틀랜드에 관한 온갖 좋은 고정관념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It's green, it has great restaurants, it has cool young parents with reasonably sized strollers, and it's peaceful." Battette은 '호손 VS 벨몬트'라는 짧은 글의 마지막을 역시 재치있게 마무리한다. "벨몬트의 가장 멋진 곳이 호손에서 불과 6블럭 떨어져있다. 그러니 친구가 호손에서 오후 시간을 보내자고 제안한다면, 당신은 친구의 제안을 중단하고 더 멋있는 곳으로 이동할 수도 있다."

 

나는 이러한 사실을 숙소로 돌아오고서야 알았다. 나는 벨몬트로 갔어야 했다. 여행책자는 호손을 최근에 탈바꿈한 명소로 소개했지만, 모든 추천은 '누가 추천했는가'를 물어야 한다. 와우들과 제주도 여행을 갔을 때, 원두커피로 유명한 카페를 찾아갔다. 우리 일행 중 "어떤 커피가 맛있어요?"라고 물었다. 주인장 왈, "취향에 따라 다르지요. 취향을 말씀해 주시면 추천해 드리겠습니다." 신맛을 좋아하는 이들은 예가체프를 맛나다고 하지만, 쓰고 부드러운 맛을 좋아하는 나는 수프리모 쪽이다. 세상에는 사람들 숫자 만큼의 취향이 있고, 모든 지역, 모든 음식, 모든 자동차는 제각각의 추종자를 거느린다. 모든 지역을 좋아하고, 모든 음식을 맛나게 먹고 모든 자동차가 멋있다고 생각한다면, 취향 따위는 신경쓰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물어야 한다. 추천하는 이는 어떤 취향을 가진 사람인가, 라고.

 

호손 거리

 

4.

과연 호손은 지저분하고, 어두웠다. 이미 7시가 넘은 시각이라 다른 지역으로 갈 상황은 아니었고, 호손 거리를 둘러보기로 했다. 동시에 식사 장소를 향해 걷고 있었다. 많은 가게들이 문을 열어 두고 있었지만 마음이 끌릴 만한 곳은 거의 없었다. 조금 신기하다 싶으면 사진을 찍어두긴 했지만, 샵 안으로 들어가서 구경을 하지는 않았다. 작은 극장이 보여 가까이 가 보았더니 <버드맨>을 상영하고 있었다. 화요일에는 4불이란다. 어제가 화요일인데, 하루 전날 왔더라면 영화를 보았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5.

Roost에서 저녁식사를 먹었다. 오늘은 아침과 점심을 가볍게, 저녁을 분위기 있게 먹는 날이라 선택한 식당이다. 나는 레드와인 한 잔과 치킨 요리를 시켰다. 처음에는 자리가 없어서 바에 앉았는데(아래 사진 참조), 요리가 나오기 전에 테이블이 여럿 비어서 자리를 옮겼다. 좀 더 편안한 자리에서 식사와 파웰북스에서 구입한 책을 즐겼다. 음식이 맛났다.

 

 

 

미국인들이 생각하는 일반적인 팁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점잖게 직원에게 물었는데(팁 문화가 궁금하여 여러 식당에서 묻군 했다), 그녀는 웃으며 "저마다 다르고, 그건 손님께 달린 일"이라고 했다. 맞는 말이구나 싶으면서, 문화의 불문율에 관해 묻기에는 대상을 잘못 선택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15%의 팁을 놓고 나왔다. (나는 15% 또는 20%를 내는데, 얼마나 기분좋은 서비스를 받았냐에 따라 나름의 차등을 둔다.)

 

 

6.

집으로 가는 길에 물을 사려고 편의점에 들렀다. 페레로 로쉐 초콜릿이 아주 저렴해서 3개들이 3봉지를 샀다. 스니커즈도 우리나라에 비해 반값도 못 되었다. 식당에서 호텔까지는 30분 정도는 걸어야 해서 목이 마르던 터에 물을 마셨더니 시원함이 온 몸 속으로 전해졌다.  

 

 

7.

밤문화로 따지면 지구상에 대한민국만한 곳이 또 있나 궁금하다. 유럽은 해가 지기 시작할 무렵에 끼니를 해결하지 않으면 갈 곳이 사라진다. 9시가 넘으면 대부분의 식당과 상점이 문을 닫았던 것 같다. 호주 여행을 할 때에도 상점이 6시에 문을 닫았다. 목요일인가, 일주일에 한 번 9시 또는 10시까지 영업을 했다. 다운타운 제외하면 외국의 밤거리는 한국의 새벽 3~4시 분위기가 된다. 10시 조금 넘은 시각인데 거리는 정말 깜깜해졌다. 눈 앞에 비닐로 만든 듯한 간이 텐트가 보였다. (아래 사진) 텐트 옆 간이 의자에 노숙자가 가만히 앉아 있었다.

 

 

어디에서 들었는지 몰라도, 노숙자들이 위험하지 않다는 말이 떠올라 그를 지나쳤다가 다시 되돌아가 몇 마디의 말을 주고 받았다. "여기서 주무세요?"(정황상 뻔한 말인데도 그는 대답해 주었다) "얼마동안 여기서 지냈어요?" "지낼만 하세요?" (이런 질문에도 노숙자는 느릿한 말투로 답변했다. 나는 방금 구입한 초콜릿 드시겠냐고 물었더니, 지금까지와는 달리 빠른 동작을 발휘하여 받아갔다. 나는 사진을 찍어도 되겠냐고 말했고, 그는 경계하는지 아닌지도 모를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몇 장의 사진을 찍었지만 정작 제대로 나온 것은 그나마 그를 뒤에서 찍은 위 사진 한 장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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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