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틀랜드 4일차] 2014년 12월 18일(목)

 

1.

밤새 여러 번 꿈을 꾸었다. 꿈에서의 날짜는 상욱이가 죽는 날이었다. 상욱이가 분명 살아있었는데, 나는 그 날 상욱이가 세상을 떠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꿈은 이렇듯 비현실적이다. 어쨌든 꿈 속에서 나는 상욱이가 원하는 물건들을 챙겨서 병원으로 갔다. 나는 긴급했고 다급했다. 그가 원하는 것이 뭐였더라. 꿈 속 장면이 머릿속을 맴돌지만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그 물건도 가물가물하고, 그것이 실제 상욱이가 원했던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하나의 장면은 카페에 가서 상욱이가 마실 커피를 내가 주문하는 모습이다. 이런 꿈을 여러 번 꾸었고, 내가 구해야 하는 물건은 계속 바뀌었다.

 

 

2.

오전 두 시간을 Grendel's Cafe에서 보냈다. (아마도) 미국식으로 아침 식사를 하고, 잡지를 읽었다. 미국식이라지만 한국에서도 자주 그리 즐겼던 사실을 감안하면 과연 글로벌한 시대다. 실제로 미국 문화는 전 세계의 많은 지역을 지배한다.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빼면, 미국에는 마치 한국처럼 편안하게 느껴지는 곳이 많다. 가까운 일본이나 중국보다 친숙한 문화이기 때문이리라.

 

 

미국 문화의 글로벌한 진출 또는 장악은 순수한 문화의 전파보다는 정치적 헤게모니의 술수인 영역도 많을 것이다. 20대에 노암 촘스키의 저서 몇 권을 읽은 덕분에 미국의 다른 일면을 알게 되었지만, 이후로는 까맣게 잊고 살아왔다. 포틀랜드 거주를 꿈꾸는 배경 중 하나는 영어 학습의 이유도 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를 아는 것만큼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미국을 아는 것이 더욱 유용한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공부는 비실용적일 때, 다시 말해 별다른 실용성이 없음에도 파고들 때 깊어지고 새로운 유용함을 발견하는 법이니 실용과 비실용의 공부를 병행해야 한다.

 

 

카페에서 이와 같은 생각을 잠시 했는가 하면, 카페를 드나드는 사람들에게 시선을 주기도 했다. 벽면에 걸린 그림들을 어설프게 감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을 가장 많이 들인 일은 카페에 비치된 잡지와 책을 읽은 것이다. “이번 겨울에 꼭 해야 할 50가지 일들이라고 홍보하는 잡지의 유혹에 걸려들어 그 목록을 살폈고, 뒤적이다가 파텍 필립의 유명한 문구를 한참 들여다보기도 했다. “You never actually own a Patek Philippe. You merely take care of it for the next generation." 시계 홍보에만 쓰이기 아까운 참 멋진 문구다. 파텍 필립이라면 어울리기도 하지만, 미국은 파텍 필립 대신에 환경을 넣을 줄 알아야 하는 나라다.

 

 

카페에는 나를 매혹시킬 만한 제목의 책이 있었다. the Writer's Handbook60명의 위대한 작가들이 쓴 60개의 에세이를 담은 책이다. 서문에는 프랭크 맥코트라는 작가의 말이 인용되어 있었다. “Being a writer is a splendid way to spend one's life."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문장이었다. 누구나 작가가 될 필요는 없지만(소명의 차원), 누구나 글쟁이가 되는 것은 유익하다(삶의 기술의 차원), 정도로 결론 내린 생각이었다. 앉아서 한 챕터를 읽었고, 시간이 많이 지체되어 세 개의 챕터를 페이지를 넘겨가며 핸드폰 카메라에 담았다. 읽어보고 유익하면 한국에 가서 구입해야지, 하는 생각으로.

 

 

3.

점심식사를 <SIZZLE PIE>에서 피자와 콜라를 먹었다. 한국에서도 거의 먹지 않은 메뉴지만, 버거와 피자를 한 번씩은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던 터였다. 피자의 크기가 정말 엄청났다. 한 조각을 시켜서 배불리 먹었던 나는 두 조각씩 먹는 미국인들이 놀라워보였다. 테이블로 가져온 조각 피자의 '크기'를 실감나게 카메라에 담느라 3~4분이 지나서야 먹을 수 있었다. 미국도 웰빙 바람 탓인지 채식주의자를 위한 메뉴도 더러 보였다. 무가지 하나를 집어들어 뒤적이다가 영화 <Wild> 광고를 보았고, 이 영화를 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4.

6만원 대 착한 가격으로 예약한 숙소 Travelodge는 다운타운 남쪽으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했다. 오늘은 이곳에서 묵는다. 식사 후 Travelodge하니 가랑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우산을 챙겨들고 여행을 시작했다. 20분 남짓 걸었으려나. 마지막 날 저녁식사를 하기로 생각한 레스토랑 Higgins가 눈에 보인다. 조금더 북쪽을 향해 걸으니 PORTLAND라고 쓰인 커다란 네온싸인이 눈에 띈다. Heathman Hotel 이다.

 

 

히스먼 호텔에 가는 이유는 어젯밤 파웰북스에서 포틀랜드 관련 책을 뒤적이다가 발견한 책 Peaceful Place Portland에서 히스먼 호텔 라이브러리를 추천했기 때문이다. 호텔 측은 1992년에 작은 도서관을 마련했다. 히스먼 호텔은 전통적이고 품격 있는 호텔로 이곳에 묵었던 작가(존 업다이크 등)의 친필 사인본이 있기도 하다. 책은 친절하게 소개한다. “책장에서 책을 뽑아 읽거나 와인 테이스팅에 참가하려면 호텔에서 묵어야 하지만, 잠시 들러 구경하는 것이라면 호텔의 투숙객이 아니어도 가능하다.”

 

 

 

5.

라이브러리에서 잠시 앉아 쉬다가 나왔다. 히스먼 호텔 1층 코너 초콜릿 카페에서 마시는 초콜릿을 한 잔 마시고 선물용 초콜릿을 샀다. 매니저가 너무 멋져 보여 말을 걸어 20분 동안 포틀랜드의 매력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히스먼 호텔은 위치가 좋다. 시청과 스퀘어, 노드스트롬 등 중심가가 도보 5분 이내 거리에 있다. 노드스트롬 백화점에 들러 잠시 구경하다가 중심가를 배회했다. 날이 어두워진지 오래되었고 마지막 일정으로 스타벅스에 들어갔다. 하루를 마무리하는 커피 한 잔으로 에너지를 보충했다.

 

 

숙소로 걸어가는 밤거리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제법 굵은 비를 작은 우산은 제대로 막아내지 못했다. 문화예술회관으로 보이는 건물에서 나오는 부모와 자녀를 보면서, 참 좋은 부모를 가졌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부모가 아이에게 우산을 씌워주어서가 아니다. 좋은 가정 교육은 다음 세대를 위한 가장 중요한 선물이니까. 나는 아이가 부러웠다. For the next generation 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인문주의를 권함』을 쓰면서, 다음 세대를 생각할 줄 아는 의식 도는 감성은 자녀를 둔 부모들에게 더욱 생생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예술회관 옆에는  좋아보이는 아파트단지가 있었다. 일부러 그 단지를 통과하여 걸었다. 비는 계속 내렸다. 호텔에 도착하여 가장 먼저 흠뻑 젖은 양말부터 벗었다. 좋다, 얼마간의 고독과 적막감, 마음 편한 숙소 그리고 자유로운 여행자의 일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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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틀랜드 3일차 저녁] 2014년 12월 17일(수)

 

1.

Canteen 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포틀랜드에 사는 한 사내와 이야기를 나누느라 예상보다 90분은 더 머물렀다. Corey 라는 이름의 그와 나는 일단 음식 취향이 비슷해서인지 여러 가지 공감하고 나눌 수 있는 이야기가 많았다. 나중에는 그의 인생 이야기도 듣고, 나의 최근 힘겨움에 대해서도 얘기를 나눴다. 우정에 대한 나의 개똥철학까지 그는 아주 사려 깊은 눈빛으로 들어주었다. 사위가 어둑해졌다. 그도 돌아가야 했고, 나도 여행을 이어가야 했다. 여행자에게는 자유가 있다. "근처에 어디 추천할 만한 곳 없어요?" 결국 나는 그의 차를 얻어타고 호손 스트리트 파웰 북스(Powell's Books) 앞에 내렸다. 질문에 대한 친절하고 따뜻한 답변이었다.

 

 

2.

나는 호손 거리(Hawthorne Boulevard)에 내려 파웰북스로 들어갔다. 다운타운의 본사와는 규모나 시설 면에서 비교되기 힘들었다. 파웰북스 호손점(?)은 아담했고 소박했다. 서점의 규모나 시설 그리고 책을 소장한 권수는 달라도 낱권의 책은 같았다. 이런저런 책을 구경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내는 데에는 문제 없었다는 말이다. 결국 또 몇 권의 책을 구입하고 말았다.

 

 

3.  

호손은 파웰북스를 제외하면 내 취향은 아니었다. 파웰북스에서 구입한 『This is Portland』에 따르면 호손은 가장 히피적인 곳이다. 저자(Alexander Barrett)는 호손 지역(Hawthorne Distirct)라 불리는 이곳 10블록의 거리는 게으른 풋내기 20대들, 미친 홈리스들, 더러운 히피들, 시끄럽게 탄원하는 사람들, 거리의 악사들이 3m마다 늘어서 있다고 말한다. Barrett는 위트 넘치는 저자다. "나는 대체로 점잖음 사람이나, 호손은 나를 격렬한 신보수주의자로 만든다. 직업을 가져! 라고 속으로 소리치게 된다."

 

Barrett에 따르면 호손은 포틀랜드에 연관된 안 좋은 고정관념이 몰려있는 곳이다. 호손과 대비되는 지역은 벨몬트(Belmont street)다. 벨몬트는 호손과 멀지 않은 곳이다. 포틀랜드에 관한 온갖 좋은 고정관념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It's green, it has great restaurants, it has cool young parents with reasonably sized strollers, and it's peaceful." Battette은 '호손 VS 벨몬트'라는 짧은 글의 마지막을 역시 재치있게 마무리한다. "벨몬트의 가장 멋진 곳이 호손에서 불과 6블럭 떨어져있다. 그러니 친구가 호손에서 오후 시간을 보내자고 제안한다면, 당신은 친구의 제안을 중단하고 더 멋있는 곳으로 이동할 수도 있다."

 

나는 이러한 사실을 숙소로 돌아오고서야 알았다. 나는 벨몬트로 갔어야 했다. 여행책자는 호손을 최근에 탈바꿈한 명소로 소개했지만, 모든 추천은 '누가 추천했는가'를 물어야 한다. 와우들과 제주도 여행을 갔을 때, 원두커피로 유명한 카페를 찾아갔다. 우리 일행 중 "어떤 커피가 맛있어요?"라고 물었다. 주인장 왈, "취향에 따라 다르지요. 취향을 말씀해 주시면 추천해 드리겠습니다." 신맛을 좋아하는 이들은 예가체프를 맛나다고 하지만, 쓰고 부드러운 맛을 좋아하는 나는 수프리모 쪽이다. 세상에는 사람들 숫자 만큼의 취향이 있고, 모든 지역, 모든 음식, 모든 자동차는 제각각의 추종자를 거느린다. 모든 지역을 좋아하고, 모든 음식을 맛나게 먹고 모든 자동차가 멋있다고 생각한다면, 취향 따위는 신경쓰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물어야 한다. 추천하는 이는 어떤 취향을 가진 사람인가, 라고.

 

호손 거리

 

4.

과연 호손은 지저분하고, 어두웠다. 이미 7시가 넘은 시각이라 다른 지역으로 갈 상황은 아니었고, 호손 거리를 둘러보기로 했다. 동시에 식사 장소를 향해 걷고 있었다. 많은 가게들이 문을 열어 두고 있었지만 마음이 끌릴 만한 곳은 거의 없었다. 조금 신기하다 싶으면 사진을 찍어두긴 했지만, 샵 안으로 들어가서 구경을 하지는 않았다. 작은 극장이 보여 가까이 가 보았더니 <버드맨>을 상영하고 있었다. 화요일에는 4불이란다. 어제가 화요일인데, 하루 전날 왔더라면 영화를 보았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5.

Roost에서 저녁식사를 먹었다. 오늘은 아침과 점심을 가볍게, 저녁을 분위기 있게 먹는 날이라 선택한 식당이다. 나는 레드와인 한 잔과 치킨 요리를 시켰다. 처음에는 자리가 없어서 바에 앉았는데(아래 사진 참조), 요리가 나오기 전에 테이블이 여럿 비어서 자리를 옮겼다. 좀 더 편안한 자리에서 식사와 파웰북스에서 구입한 책을 즐겼다. 음식이 맛났다.

 

 

 

미국인들이 생각하는 일반적인 팁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점잖게 직원에게 물었는데(팁 문화가 궁금하여 여러 식당에서 묻군 했다), 그녀는 웃으며 "저마다 다르고, 그건 손님께 달린 일"이라고 했다. 맞는 말이구나 싶으면서, 문화의 불문율에 관해 묻기에는 대상을 잘못 선택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15%의 팁을 놓고 나왔다. (나는 15% 또는 20%를 내는데, 얼마나 기분좋은 서비스를 받았냐에 따라 나름의 차등을 둔다.)

 

 

6.

집으로 가는 길에 물을 사려고 편의점에 들렀다. 페레로 로쉐 초콜릿이 아주 저렴해서 3개들이 3봉지를 샀다. 스니커즈도 우리나라에 비해 반값도 못 되었다. 식당에서 호텔까지는 30분 정도는 걸어야 해서 목이 마르던 터에 물을 마셨더니 시원함이 온 몸 속으로 전해졌다.  

 

 

7.

밤문화로 따지면 지구상에 대한민국만한 곳이 또 있나 궁금하다. 유럽은 해가 지기 시작할 무렵에 끼니를 해결하지 않으면 갈 곳이 사라진다. 9시가 넘으면 대부분의 식당과 상점이 문을 닫았던 것 같다. 호주 여행을 할 때에도 상점이 6시에 문을 닫았다. 목요일인가, 일주일에 한 번 9시 또는 10시까지 영업을 했다. 다운타운 제외하면 외국의 밤거리는 한국의 새벽 3~4시 분위기가 된다. 10시 조금 넘은 시각인데 거리는 정말 깜깜해졌다. 눈 앞에 비닐로 만든 듯한 간이 텐트가 보였다. (아래 사진) 텐트 옆 간이 의자에 노숙자가 가만히 앉아 있었다.

 

 

어디에서 들었는지 몰라도, 노숙자들이 위험하지 않다는 말이 떠올라 그를 지나쳤다가 다시 되돌아가 몇 마디의 말을 주고 받았다. "여기서 주무세요?"(정황상 뻔한 말인데도 그는 대답해 주었다) "얼마동안 여기서 지냈어요?" "지낼만 하세요?" (이런 질문에도 노숙자는 느릿한 말투로 답변했다. 나는 방금 구입한 초콜릿 드시겠냐고 물었더니, 지금까지와는 달리 빠른 동작을 발휘하여 받아갔다. 나는 사진을 찍어도 되겠냐고 말했고, 그는 경계하는지 아닌지도 모를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몇 장의 사진을 찍었지만 정작 제대로 나온 것은 그나마 그를 뒤에서 찍은 위 사진 한 장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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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틀랜드 3일차 오전, 오후] 2014년 12월 17일(수)

 

 

1.

포틀랜드에 살고 싶다.’ 어젯밤 호텔로 돌아오며 문득 든 생각이다. 여행을 하다보면, 몇 달 만이라도 살아보고 싶은 도시가 생기곤 하는데, 포틀랜드가 추가됨으로써 목록은 이제 바이마르, 상파울로, 몽펠리에, 시드니에 이어 포틀랜드까지 다섯 개 도시가 되었다. (팔라우와 항저우도 끌리지만 강력한 유혹까지는 아니었다.) 포틀랜드의 무엇이 내게 끌림을 안겼을까?

 

끌림은 생각하기 어려운 주제다. 머리가 작동하기 전에 몸이 반응하고 감흥이 일어나 끌림을 창조해내고 마니 당연지사다. 그래서 더욱 중요하다. 우리가 좋아하는 일을 찾으려 할 때, 이성은 얼마나 무력한가. 중요한 점을 고려하지 못해 잘못 판단하기 일쑤고 종종 무의식에 완패하고 만다. 반면 몸과 감정은 얼마나 우리의 끌림과 취향을 잘 식별하는가. 포틀랜드가 왜 좋을까? 이에 대한 답변은 포틀랜드에 관한 지식인 동시에 나에 관한 지혜이리라.

 

이틀 전 포틀랜드행 열차에서 Creativity, Craft, Classic 이라는 키워드를 꼽았는데, 이를 생각할 때마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포틀랜드 아니 미국에 대한 지식이 빈약한 상태에서도 여행을 알차게 해 보자고 시도한 것이지만, 아무래도 부끄럽긴 했다. 아무래도 3개의 단어를 꼽아 본 진짜 유익은 무모한 발언에 대한 부끄러움인 것 같다. 미국을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친미, 반미보다 지미(知美)가 중요하다는 어느 미국 전문가의 말도 떠오른다.

 

 

2. 

오늘 묵을 호텔로 이동하는 길에 스타벅스에 들렀다. 참 마음에 드는 주스를 마시며 ‘미국적인 것’을 키워드로 인터넷 검색을 했더니 스티브 잡스와 글로벌하게 진출한 패스트푸드점이 떴다. 잡스나 패스트푸드는 과연 미국적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두 번의 검색으로 알게 된 것은 그저 앎일 뿐 지식도 아니고 이해도 아니다. 지식은 체계적이거나 객관적이어야 하고, 이해는 시간 그리고 경험과 함께 오는 것이다. 그것이 간단한 단어라도 해도 마찬가지다. 하물며 한 나라라면 오죽할까. 귀국해서 몇 권의 책을 읽어봐야겠다.

 

 

스타벅스 매장 곳곳을 둘러보았다. 벽면 한쪽에 게시판이 이색적이었다. 셀프바에 꽂힌 안내 전단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적혀 있었다. Order ahead and Get more time to : sleep, read, walk around, do thing, mosey, look at stuff, sing, dance. 아! 참 잘 지었구나 싶었다. 모두 얼마나 필요한 행위들인가. 잠이야 말할 것도 없고, 느릿느릿 걸어보는 일(mosey)이나 물건을 바라보는 일, 노래 부르는 일 모두 우리의 영혼을 충만케 할 테니까. 우리네 실제 삶은 각박해져가고 철학적이기보다는 경제적이로 변해가지만, 슬로건이나 선전 문구 만큼은 점점 세련되어 가는지도 모르겠다. 실제와 구호의 이러한 괴리감이라니! 이런 생각들을 했다. 옆 테이블에 앉은 미국인들을 슬쩍슬쩍 훔쳐보면서.

 

 

3.

스타벅스에서 글을 썼다.

카페, 글쓰기 그리고 향 좋은 커피.

내겐 이것이 행복이다.

 

누군가가 읽어주어 감하고 동하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쁜 일이지만

쓴다는 사실 자체로도 충만감이 든다.

 

그래도 책상 속에 원고들을

순차적으로 세상에 내놓아야지.

잘 먹고 잘 쉬고 잘 살아가기 위해서.

 

충만감과 실존은 별개의 문제고

두 가지 모두 무척이나 중요하니까.

나는 두 마리 토끼를 쫓는 꿈꾸는 추격자다. 

 

 

 

4.

오늘 숙소는 주피터 호텔이다. 로비 곳곳에 젊은 예술가의 흔적이 묻어났다. 작은 갤러리에 온 마냥 마음이 차분해지고 내 안의 감수성이 세상 밖으로 머리를 들이민다. 이럴 때에는 나도 조금은 우아해지는 느낌이 든다. 깔끔하고 아담한 호텔, 마음에 든다. 리셉션 위에 놓인 사과마저 예술적으로 보이는 곳, 주피터 호텔.

 

 

 

 

호텔 로비에 잠시 앉았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그 곳에서 좀 더 시간을 보냈어야 했는데하는 생각과 아니야, 다음 가야 할 곳도 있고 오래 있기엔 조명이 어두웠고 편안한 분위기는 아니었어하는 생각이 교차한다. 낭만적 자아와 생산적 자아의 아옹다옹한 대립이다. 두 자아를 아우른 이상주의적 탐험가가 승리했다. ‘나를 더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곳을 찾아 그곳에서 여유와 낭만을 누리자!’

 

5.

2816 A SE Stark St, 포틀랜드, OR.

‘Canteen’이라는 작은 식당의 주소다. 이곳을 향해 호텔을 나섰다. 이 식당 주변에는 유명한 관광지가 없다. 그나마 호손 스트리트가 가까운데, 호손 스트리트는 상점 곳곳에 들어갈 시간적 여유나 바에서 술 한잔을 즐길 동행이 없이는 여행의 매력이 떨어지는 곳이다. 그러니 유기농 채식을 좋아하는 이가 아니라면 ‘Canteen’을 권하고 싶지 않다.

 

 

 

 

물론 나는 다녀왔다. 유기농도 좋아하고 채식도 즐겁게 먹으니까. 채식을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기꺼이 먹는 편도 아니다. 건강을 위해서 식욕을 절제하거나 음식을 가려먹는 쪽이라고 해야겠다. (이럴 때에는 내게서 자제력이 보여서 스스로 놀란다. 늘 나를 좀 더 컨트롤할 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겠지.) ‘Canteen’은 내가 날마다 먹고 싶은 메뉴를 선보이는 곳이라 생각했고, 실제도 먹어보니 과연 그랬다‘Canteen’은 내게 의미 있는 곳이 되었다. 이곳에서 미국인 친구를 만나 한 시간 삼십 분 동안 마음을 나누며 즐겁게 이야기를 나눴기 때문이다. 다음 포스팅의 주인공은 그가 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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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틀랜드 2일차 오후]

노스웨스트 번화가 중 하나인 펄 디스트릭트(Pearl District)를 돌아다니다.

 

Quility INN (Portland)

 

1.

숙소(Quality Inn) 체크인을 마치고 객실에서 커피를 마시며 잠시 쉬었다. 퀸 사이즈 베드가 두 개나 있는 객실인데, 이럴 때에는 여행 친구의 존재에 대해 생각한다. 양가감정이다. 여행은 곧 삶의 일부이기에 함께 하기에 좋은 것들과 혼자 하기에 좋은 것들이 공존한다. 호텔 비용을 지불하거나 영화를 보거나 식사 때에는 친구가 있으면 좋지만, 시장이나 미술관을 둘러볼 때에는 혼자가 낫다. 나는 지금 침대가 두 개 놓인 객실을 보고 있다. 친구가 떠오른다. 홀로 조용히 차 마시는 이 시간이 좋다. 친구 생각을 지운다. 혼자 치러야 하는 객실료는 ‘혼자만의 시간’에 대한 어쩔 수 없는 대가임을 알기에.

 

2.

포틀랜드의 지금 하늘은 잿빛이다. 오전 잠시 맑기도 했는데 하루에도 몇번씩 바뀌는 날씨다. 시애틀에 일주일을 머물러서인지, 비만 내리지 않으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커피 잔이 비워지기도 전에 가는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창밖을 가만히 내다보지 않으면 비가 내리는 줄 모를 정도다. 거리의 바닥을 보고서야 비를 인식한다. 고인 빗물이 비가 떨어지면서 수많은 동심원을 그린다. 하지만 우산을 쓰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시애틀이나 포틀랜드에서는, 가랑비를 햇살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맞는다. 친구의 말이 떠오른다. “이거 좀 맞아도 돼요. 한국과는 달라요. 시애틀 비는 깨끗해요.” 포틀랜드는 왠지 더 깨끗할 것 같은 느낌이지만, 나는 우산을 쓰고 다녔다. 일단 비 맞는 것은 탈모에 영향을 줄 것 같아서다. 다시 비가 그쳤다. 우산을 가방에 챙겨 넣고 숙소를 나섰다.

 

3.

목적지는 펄 지구(Pearl District)다. 안내 책자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 곳이다. “다운타운의 창고 거리가 모습을 바꾸어 새로 태어났다. 뉴욕의 소호나 밴쿠버의 예일 타운처럼 창고 거리는 공간을 이용한 갤러리와 인테리어 숍이 눈에 띈다. 레스토랑도 많이 생겨났고 매월 첫째 목요일(First Thursday)에는 영업시간을 연장해 운영한다.” 젊은이들에게 인기 있는 지역이라니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숙소를 나서자마자 SUBWAY가 눈에 띄었다. 배가 고파 들어갈까 하다가 이왕이면 펄 디스트릭트에 가서 먹자고 생각하며 참았다.

 

어둡지만, 자전거 4대가 자전거 도로를 달리는 모습

 

컨벤션 센터 근처에 위치한 숙소에서 펄 디스트릭트까지는 걸어서 30분 거리다. 숙소 주변을 구경도 할 겸 걷기로 했다. 걷는 동안 어두워졌다. 겨울의 시애틀과 포틀랜드는 5시면 한국의 밤 8~9시처럼 캄캄해진다. 퇴근 시간인가 보다. 차량 통행이 많아졌다.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이 눈에 띄게 많았다. 베트남에서 보는 오토바이 행렬에는 비할 바가 안 되지만, 내가 브로드웨이 다리를 건너는 동안 자전거를 탄 사람들이 끊임없이 지나갔다. 미국에서 가장 자전거 친화적인 도시라는 게 실감났다.

 

4.

펄 디스트릭트에 들어서자마자 공교롭게도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가게는 SUBWAY였다. 자꾸 식당이 눈에 띄는 걸 보니 아무래도 얼른 밥을 먹어야겠다. 하지만 SUBWAY는 안 된다. 여기에 갈 거라면 진작 갔지. 나는 좀 더 걸었다. 하지만 많은 가게들이 이미 문을 닫았다. 이제 고작 6시가 넘었을 뿐인데, 거리는 한국의 밤 10시 분위기다. 길을 걷다가 눈에 들어온 문구가 있었다. “HEAT & EAT! Ready-To-Go Dinners”

 

 

집에 가서 익혀서 먹기만 하세요, 정도의 의미일 텐데 이 가게가 마음에 든 것은 한 아주머니가 집밥을 하듯 요리를 하나를 만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카운터에는 한 남자가 요리가 완성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가게 밖에 게시된 메뉴판을 보았다. 대부분 Take Out을 위한 요리가 많았지만 가게에서 먹을 수 있는 메뉴도 있었다. 가게 안에 테이블 하나가 보였다. 들어가서 터키식 크랜베리 샌드위치를 주문했다.

 

 

테이블 옆에 잡지 몇 권이 놓여 있었다. 하나를 집어 들고 읽으면서 저녁 식사를 먹었다. <TRAVEL+LEISURE>라는 잡지인데 여행자에게는 매력적인 제목이었다. 게다가 <2014 WORLD's BEST AWARDS>라는 흥미로운 기사를 커버스토리로 실은 잡지였다. 수상한 호텔, 섬, 레스토랑 등을 확인하고, 필요한 내용은 사진을 찍었다. 혹시 이걸 팔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카운터에 선 남자에게 물었다. “이게 파는 건 아닐 테지만, 제가 값을 주고 살 수는 없을까요?”

 

 

남자는 약간 당황한 표정을 짓더니, 요리를 하던 여자에게 물었다. 여자도 비슷한 느낌의 웃음을 지었는데, 이내 허락했다. 남자는 내게 잡지 가격이 얼마냐고 물었고, 나는 “찾아봤는데 가격 표시가 잘 안 보이더라”고 했다. 남자는 그냥 3달러를 달란다. 지폐 3장을 지불하면서 감사함을 전했다. 별건 아닌 일화를 기록해 두는 건, 자료를 찾고 확인하고 구입하는 것이 내가 여행하는 모습의 중요한 일면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책이든, 잡지든, 팜플렛이든 말이다.

 

 

5.

펄 디스트릭트의 명소 중 하나인 자미슨 광장(Jamison Square)에 갔지만 역시나 조용했다. 광장 주변의 근사한 레스토랑도 문을 닫았다. 7시가 30분도 안 된 시각인데, 지나다니는 사람도 많지 않았다. 펄 디스트릭트에서 저녁 시간을 보내려던 내게는 난감했다. 몇 블록을 걸었다. 마음에 드는 카페 <daily cafe d>를 발견했다. 거기에 들어가면 1~2시간은 머물 테니, 찜해 두고서 세 블록을 더 걸었다. 카페에 들어갔다 나오면 정말 문을 다 닫아버릴 것 같아서다. 하지만 이미 대부분의 가게의 ‘OPEN' 간판 불은 꺼져 있었다.

 

 

<cafe d>에 들어섰다. 다행히 8시에 문을 닫는다. 시간을 확인하니 7시 05분! 한 시간이면 커피를 즐기고 심신을 정비하고 다음 동선을 생각하기에 적당한 시간이다. 우선 카페 곳곳을 살펴보았다. 포틀랜드와 로컬 안내 자료를 한곳에 비치해 두었고, 카페 벽면에는 그림도 전시되어 있었다. 구입하고 싶으면 아무 점원에게나 물어보라는 안내와 그림마다 가격이 적혀 있었다. 모두 800달러였다. 카페는 음식도 팔았다. 지역 주민으로 보이는 이들이 즐겁게 또는 홀로 저녁 식사를 먹고 있었다. 나는 왜 이리 연하냐고 투덜대면서(?) 아메리카노 한 잔을 즐겼다(!). 자기가 에스프레소가 아닌 아메리카노를 주문했으면서.

 

 

6.

나는 아래 그림이 매우 좋다. 남자는 이쪽으로 가지만 저쪽에 대해 열려 있다. 편협으로 빠져들지 않으려는 듯, 한 눈을 팔면서도 자기 길을 간다. 자기 길을 가는 모습은 발끝에 집중하는 고개 숙인 모습이 아닐 것이다. 더 나은 길에 대한 융통성 있는 눈으로 주변을 관찰하면서도 지금 걷는 길에 정성을 다한 발걸음을 선사하는 것이 자기 길을 걷는 모습이이라.

 

 

여자의 몸은 그쪽을 향하지만 자신의 길에 회의한다. 하지만 책상에 앉아 있는 정적인 회의가 아니다.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회의다. 걸으면서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생산적인 사유다. 10분이라는 시간 안에 생각과 행동을 모두 집어넣을 순 없지만, 일주일 또는 한 달이라는 시간에는 생각과 사유를 모두 담아낼 수 있다.

 

남녀 모두 길을 걸어가되 그 길만이 진리라고 확신하지 않는다. 어쩌면 다음 장면에서는 남녀가 향하는 방향이 서로 바뀔지도 모른다. 놀랍게도 남녀는 다른 곳을 향하면서도 서로를 바라본다. 서로의 방향이 바뀌는 다음 장면에서도, 서로 다른 길을 저만치 걸어가고 나서도, 세월이 흘러 서로의 삶이 모습이 많이 달라졌어도, 여전히 서로를 바라보는 게 사랑일 것이다.

 

(나는 화가가 이 모든 걸 고려하여 그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예술의 세계에서 작가는 작품을 만들고, 독자는 해석을 만든다. 세계의 일부를 제대로 구현한 작품이 위대하고, 그것은 여러 독자에 의해 다양하게 해석된다. 독자는 종종 작품에 해석을 더하지만, 때로는 메시지도 캐치하지 못한다.)

 

이 그림을 사오지 못한 게, 이제야 아쉽다. 아! 이 뒤늦은 후회를 어찌할꼬. 하지만 가격을 생각하면 조금 진정이 되고 아쉬움이 달래진다. 800달러짜리 그림을 어찌 살 것이며, 샀다면 또 어떻게 들고 다녔을까. 다행이다. 아쉬움과 다행스러움이 교차하는 감정이라니, 난 왜 이리 복잡하단 말인가.

 

펄 디스트릭트를 걷다가 체육관이 보여 잠시 구경했다.

 

7.

안내 책자를 펼쳐 펄 디스트릭트 부분을 다시 읽었다. “스트리트가 궤고 옆인 노스웨스트 19번가와 에버릿 스트리트가 교차하는 일대는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인다. 펄 북부의 자미슨 광장 일대는 몇 년 사이에 몰라볼 정도로 아름답게 변했다. 고급 콘도미니엄이 들어섰고 포석을 깔아놓은 길가에는 화려한 부티크가 늘어서 있다.” 방금 둘러본 곳에 대한 설명이었다. 거리가 고급스럽긴 했다. 내가 있는 곳은 펄 디스트릭트의 북쪽 일부임도 알게 되었다.

 

 

 

 

카페에서 차 한 잔을 하는 동안 가야 할 곳이 정해졌다. 사람들로 북적인다는 그 곳. (여긴 너무 한산해서 펄 디스트릭트의 매력을 모르겠으니.) 나는 카페에서 나와 13번가를 북쪽에서 남쪽으로 걸었다. 과연 거리 양쪽으로 멋진 레스토랑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13번가와 에버릿 스트리트와의 교차로 근처로 갈수록 고급 레스토랑이 많아졌다. 에버릿 스트리트 13번가에서 이제 19번가 쪽으로 가면, 사람들이 북적인다는 그곳이다. 하지만 19번가 쪽 반대방향이 더 밝은 불빛이다. 결국 19번가에 갔더니, 황량한 주택가다.

 

 

안내책자의 오자다. 10번가를 19번가로 오기한 것! 안내책자를 탓할 마음은 없다. 20분 정도를 잡아먹긴 했지만, 덕분에 남쪽으로 걸으며 펄 디스트릭트의 면모를 맛보았으니까. TILT라는 곳은 친구들과 함께 가고 싶은 레스토랑이다. 10번가 & 에버릿 스트리트에 위치한 컵케이크 존스에서 컵케이크를 맛보지 못한 건 아쉽지만. 나는 펄 디스트릭트 이곳저곳을 다녔다. 펄 디스트릭트 남쪽으로는 포틀랜드의 다운타운으로 연결된다. 좋은 타이밍이라 생각했다. 저녁 8시 30분밖에 되지 않았으니, 남은 하루는 파웰북스에서 보내면 될 테니까. 파웰북스는 밤 11시까지 영업한다. 천국 같은 곳이다. 내가 보기엔, 포틀랜드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은 곳 중 하나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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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틀랜드 여행 둘째날 오후, 예상보다 UNION WAY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Steven Alan과 WILL, 단 두 곳을 둘러보았을 뿐인데, 90분이 흘렀다. ‘이런 식으로 여행하다간 하루를 UNION WAY에서 끝나겠군. 하하하!’ 이런 생각을 하며 체크인을 위해 호텔로 향했는데, 하루를 보내고 난 지금은 '그렇게 하루를 보내면 어때?' 하는 생각이 든다.

 

어설픈 여행자는 모든 것을 ‘훑고’ 지나간다.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고 한두 번 바라보다가 다음 장소로 이동한다. 이해되는 일이다. 어딘가에 오래 머무르거나 무언가를 가만히 응시하기에는, 가야 할 곳은 많고 여행할 시간은 적다. 그래서 잠시 여행을 멈추고 바라보거나 생각하기보다, 기억하기 위해 사진을 찍는다. 혹자는 훗날 자랑하기 위해 찍기도 하고.

 

대다수 여행자가 이렇게 여행한다. 그러고선 일상으로 돌아간다. 친구들이 ‘여행 어땠어?’라고 물으면, ‘이번 여행이 나를 조금 바꾸었어’라고 답변하는 이들은 드물다. 그런 존재론적 답변보다는, ‘정말 짱이었어’라고 말하며 화려한 도시나 멋진 자연 풍광이 담긴 사진을 보여준다. 여기가 어디냐는 물음에는 “시애틀 다운타운이야” 정도로만 대답한다.

 

지역의 역사, 새로운 문화, 지금까지의 변화, 우리와의 차이점 등에 대해서는 말하지 못한다. 자세히 보기보다는 ‘훑고’ 다녔고, 생각하며 다니기보다는 사진만 ‘찍어’ 왔으니까. 나는 이러한 세계 여행이 어떤 유익을 주는지 회의한다. 낯선 문화 속에서 건져 올리는 생각의 전환은 있을 테지만, 투자한 돈과 시간에 비하면 미미하다.

 

하루가 저물어가는 즈음, 호텔 샤워 꼭지에서 나오는 따뜻한 물을 맞으며, 나는 이렇게 세계 여행의 공과를 물었다. 에코 식으로 비틀어 표현하면, “새로운 문화를 접한다는 것과 조금 있어 보인다는 것 말고는, 세계 여행이 국내 여행보다 나은 게 뭐야?" 여행 에세이를 쓴다면, 우리나라 여행기부터 쓰겠다고 생각한 까닭이기도 하다. 

 

1/3 즈음 썼던 여행책 원고(가제『낭만여행자』)가 사라진 게 떠올라, 심히 아쉬워도 했지만, 얼른 아쉬움을 달랬다. (달래는 비법은 없다. 그저 시간의 흐름을 기다리는 것 밖에.) 나는 따뜻한 물이 내 몸에 닿는 것에 집중했다. 몸이 풀어지고 기분이 나아졌다. 기분좋음을 만끽하며, 오늘의 생각을 여행 노하우로 정리하기 위해 머릿속으로 단어들을 굴렸다.

 

[Travel Tip] 가끔씩 여행일정을 치워두고 하나에 함몰되라.

Hold one thing. Make a dive for it without itinerary. 

 

그 하나가 무엇이어도 좋다. 장소, 물건, 사람 그 어떤 것도 괜찮다. ‘스타벅스’는 어떤가? 시애틀이라면, 스타벅스에 대한 모든 것을 알아보는 여행을 시도하기에 제격이다. 남들 다 가는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와 스페이스 니들에 가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그것은 다른 사람들과 특별히 다를 게 없는 여행이 되기 쉽다. 

 

스타벅스 1호점

 

대신 하루나 이틀을 떼어내어 스타벅스에 관한 모든 것을 여행하는 건 어떨까? 스타벅스 1호점을 방문하고(아쉽게도 커피 마실 공간은 없다), 근사한 스타벅스에서 여러 종류의 마실거리를 음미하며(커피만 있는 게 아니니까), 인터넷에서 스타벅스나 하워드 슐츠에 관한 자료를 읽는 것. 색다른 시간이 될 것이다. 내겐 이런 여행도 괜찮아 보이다. 참! 시애틀 퍼블릭 라이브러리도 도보 15분 거리에 있다. 그곳에는 커피나 하워드에 대한 책이 있을 테고.

 

 

스타벅스 매장을 관찰하는 일은 스펙타클할 지경이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계산대 앞에 줄을 선다. 주문을 마친 이들 중 한가해 보이는 사람에게 말을 걸어도 좋을 것이다. 매장에는 뉴욕타임즈, 월스트리트 저널 등 읽을거리도 가득하다. 프로모션을 위한 안내 팻말과 기념품도 볼거리다. 커피에 관한 책 한 권 읽는 것도 괜찮은 교양 쌓기다. 이미 우리나라, 특히 서울은 카페가 널려있고 커피 소비량도 많다.

 

 

한 곳에 오래 머무르고, 하나를 자세히 관찰하는 여행.

그리하여 하나라도 제대로 알고 돌아오는 여행.

 

이것도 여행의 기술이다. ‘여행은 즐겁고 유익하다’는 관념은 거짓이다. 세계 여행은 자주 고달프다. 비행기 안에서의 시간은 힘들고(5년 전까지는 안 그랬는데), 낯선 도시가 요상한 음식을 내놓기도 한다. 때로는 숙박료, 택시비, 음식 값이 터무니없이 비싸다. 소중한 시간을 떼어 여행을 떠났는데, 기다리는 시간은 또 얼마나 많은가. 비행기를 기다리고, (배낭여행이라면) 버스를 기다리고, (패키지상품이라면) 사람들을 기다린다. 게다가 우리는 조만간 여행을 끝내고 돌아가야 한다. 인생도 그렇지만, 여행 시간은 제한적이다. 인생보다 더욱.

 

여행자에게는 여행의 기술이 필요하다.

자신에게 적합하면서도 스스로를 발전시키는 기술이.

그것을 찾기 위해 모색하자. 기끼어 하나에 함몰되는 연습부터. 

 

실험과 모색은, 하나씩 진득하게! 이길과 저길 모두! <작품명 : this way that 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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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에이스 호텔은 포틀랜드에만 있는 건 아니다. 뉴욕, 시애틀, 로스앤젤레스, 런던, 파나마에도 에이스 호텔이 있다. 홈페이지의 ‘About' 메뉴에는 포틀랜드 호텔의 로비 사진이 제공된다. 호텔 측의 소개에 따르면, 에이스 호텔은 Classic Building을 재창조하여 Bohemia, Affinity(친밀감), Handmade culture를 추구한다.

 

어느 책자에서는 에이스 호텔을 두고 포틀랜드의 상징이라 표현했지만, 성급한 판단이다. 에이스 호텔과는 다른 가치들(그 역시 멋진 가치들)을 추구하는 호텔이 서운할 테니까. 에이스 호텔은 20~30대 젊은 영혼에게 어울리는 호텔이다. 반면, 히스먼 호텔(Heathman Hotel)은 에이스 호텔과는 다른 점잖은 분위기로 신사들을 만족시킬 것이다. 히스맨 호텔의 작은 라이브러리는 책을 사랑하는 이들(Booklovers)에게 매혹의 공간이고.

 

샤워는 공용이고 객실이 작은데도 불구하고, 에이스 호텔 하루 숙박료로 154달러(세금 포함)를 지불해서 이런 말을 하는 건, 결코 아니다. 포틀랜드가 다양한 모습의 도시라면, 에이스호텔이 히스먼호텔이 단 하나의 상징이 되기는 어렵다.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나는 ACE를 꼽겠다. 품격은 어느 도시에나 있지만, 에이스 호텔과 같은 분위기는 흔치 않다.

 

 

에이스 호텔은 공간마다 독특함이 가득했고, 감각적인 인테리어가 인상 깊었다. 계단을 밟을 때마다 삐걱거리는 소리는 유럽의 전통적 분위기를 떠올렸다. 파웰북스까지 도보 1분이고, 파이어니어 코트하우스 스퀘어도 5분이면 된다. 훌륭한 위치와 포틀랜드의 일면을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 추천하는 숙소다. 우리나라로 치면, 감각적인 디자인과 세련된 컨셉으로 뜨고 있는 ‘호텔 더 디자이너스’ 같다고 할까.

 

 

2.

포틀랜드 여행 컨셉 중 하나는 ‘날마다 다른 호텔에서 숙박하기’다. ‘일점호화주의 여행자’자로서 나의 ‘One Point’가 호텔 숙박료다. 나는 호텔에 돈을 엄청 쓴다. 포틀랜드 여행 가방이 그리 무겁지 않은 보스톤 백으로 결정되는 순간,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이 ‘매일 다른 호텔에 묵어야지’였다. 어젯밤 새벽 한 시까지 화, 수, 목, 금을 어느 호텔에서 묵을지 고민하고 예약했다. 나는 매일 체크아웃, 체크인을 하는 여행자가 됐다.

 

에이스 호텔에 이어, 오늘 묵을 호텔은 LLOYD District에 있는 Quality Inn이다. (고등학교 때, Inn을 여인숙이라고 외웠다. 지금도 네이버 사전에는 ‘(주로 시골 지역에 있는) 주막, 여관’이라고 Inn을 소개했다. ‘술집, 호텔, 식당 이름에 쓰임’이라는 설명도 있지만, 외울 때에는 주막, 여관에 집중하게 된다. Inn의 실상은 주막이나 여관과는 달랐다. 작은 로비가 있고, 자체 레스토랑도 갖췄다. 아래는 이번 미국 여행에서 묵었던 Inn의 로비 사진이다.)

 

Best Western INN Lobby

 

Quality INN Standard Room

 

Park Lane INN Lobby

 

3.

에이스 호텔을 떠나기 전, 자전거를 빌려 탔다. 투숙객에겐 시간 상관없이 무료로 빌려준다. 『트루 포틀랜드』 곳곳에서 미국에서 자전거 타기에 가장 좋은 도시가 포틀랜드임을 알리기도 했고, 다운타운 일대와 윌러밋 강변을 따라 자전거를 달리면 낯선 도시에 좀 더 빨리 익숙해지리라는 생각이었다. 자전거를 타자마자, 자전거 친화적인 도시가 어떠한 것인지를 단박에 알았다. 어디에나 자전거 도로가 있었고, 이정표는 어디가 자전거 도로인지를 알려주었다.

 

 

포틀랜드에서 자전거를 타기 위해서 알아야 할 가장 중요한 사실은 자전거가 자동차와 같은 신호 체계를 따른다는 사실이다. 자전거는 우리나라에서 보행자에 가까운 이동수단이다. 교차로에서 자동차와 함께 직진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낯선 풍광이다. 포틀랜드에는 차로에 자전거 전용 도로가 제대로 표시되어 있다. 교차로에서는 자동차와 나란히 신호를 기다린다. 내겐 재밌는 모습이었다. 자전거 투어는 80분 동안 이어졌고, 포틀랜드의 여러 풍광을 보여 주었다.

 

 

 

 

4.

열두 시 오분 전에 체크아웃했다. 대부분의 미국 호텔은 11시가 체크아웃 시간이지만, 젊은 감각이어서인지 에이스 호텔은 열두 시 체크아웃이었다. 나는 오전 시간을 자전거 투어로 십분 활용한 셈이다. 체크아웃을 하고 나서도 에이스 호텔에 머물렀다. 로비와 연결된 스텀프타운 카페에서 주문한 카푸치노와 빵을 먹으면서 한 시간 동안 여유를 즐겼다. 에스프레소나 아메리카노가 아닌 ‘카푸치노’를 주문한 것은 마이클 앤더슨이라는 어느 포틀랜더의 말 때문이었다.

 

 

“나는 낯선 도시에 가기 전 확실히 배전해서 정중히 커피를 내오는 카페를 사전에 조사한다. 스텀프타운 커피는 배전과 내오는 방법 모두 성공한 가게 중 하나다. 포틀랜드에 왔다면 이곳에 꼭 가야 한다. 카푸치노를 부탁하면 왜 이렇게까지 스텀프타운 커피가 주목 받는지 알 수 있다.” 나는 커피를 잘 모른다. 그저 익숙해졌을 뿐이다. 진한 아메리카노와 에스프레소를 즐겨 먹는다. 아침에는 커피가 그립지만, 스텀프타운의 카푸치노에는 별다른 감흥을 못 느꼈다. 스텀프타운이어서가 아니라, 커피여서 좋았다.

 

 

실은 에이스 호텔의 분위기에 한껏 취하기 위해 호텔 조식을 먹으려 했지만, 좁은 식당과 어두침침한 조명을 보고서 얼른 나왔다. 상쾌하고 명랑한 기분으로 아침식사를 먹고 싶었던 내게, 체크아웃 이후 로비에서 보낸 시간은 참 즐거웠다. 사진도 찍고, 포틀랜드 대표 커피도 맛보고, 여행 동선도 생각했다. 같은 공간(로비)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포틀랜더들을 슬쩍 구경하는 재미도 있었다. “에이스 호텔에서 묵어 보는 것도 좋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로비에서 스텀프타운 커피를 마시며 분위기를 즐겨 보라”는 책의 권유는 적절했다.

 

 

5.

에이스 호텔 맞은편에는 Union Way이라는 작은 쇼핑몰이 있다. 나이트클럽 건물을 리모델링하여 2013년에 오픈했다. 10개 남짓의 가게가 있는데, 나는 그 중 Steven Alan과 Will에 오래 머물렀다. 정확한 시간은 기억나지 않지만 1시간 30분 정도 있었던 것 같다. Alan에서는 검은색 토트백 하나를 샀다. 비 오는 날에는 가죽 가방을 들고 다닐 수가 없어서 진작에 사려고 했는데, 마음에 드는 게 없던 터라 반가웠다. 사실 더 비싼 보스턴 백(아래 사진)이 탐났지만, 지금의 내게는 토트백 정도의 사이즈가 필요했다.

 

 

 

 

 

Alan에는 의류, 소이캔들, 시계 등 다양한 물건들이 있었다. 시놀라(shinola) 시계 중에 예쁘다 싶은 게 있어 손목에 둘러보았지만, 800달러의 거금이라 내려 놓았다. 가죽 가방과 액세서리를 파는 Will은 브랜드의 철학과 가치, 직원들의 서비스 마인드와 제품이 모두 마음에 들었다. 마음에 드는 가방이 있었지만 대개 250달러 이상의 고가라 작은 기념품을 하나 사는 것으로 만족했다. 뉴욕과 LA에도 지점이 있다고 하니, 다시 들르게 되면 Will 가방을 하나 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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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포틀랜드 현지 시각. 12월 15일(월) 밤 11시 33분.


1.

포틀랜드를 여행하는 동안, 내 여행 짐은 보스턴 백 하나뿐이다. 가방에는 노트북과 카메라,바지와 니트, 세면도구, 여행책자 그리고 충전을 위한 케이블, 휴대용 스피커가 전부였다. 전자기기는 요물이다. 충전기와 케이블까지 챙기면 부피와 무게가 늘어난다. 언젠가는 이들로부터 자유로운 여행을 떠나야겠다고 생각했다. (Unplug Life에 대한 책도 있더라.) 가방은 무겁지만, 10~20분은 들고 다닐 만하다. 시애틀 친구 집에 캐리어를 맡겨두길 잘했다.


포틀랜드 유니온 역에서 에이스 호텔까지는 도보 15분 거리였다. 가는 도중 비가 내려, 서둘러 걸었다. 미국에서 길 찾기는 쉽다. 내 길눈이 밝은 편지만, 그것 때문이 아니다. 구글 지도 APP 덕분이다. 스마트폰만 열면, 출발지와 도착지 그리고 도중 어디에 있는지를 알려준다. 놀랄 만큼 편리한 세상이지만, 여행자들은 구글 지도의 유용함 뿐만 아니라 길을 잃는다는 것의 유익에 대해서도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길을 잃으면, 관찰자가 되고 역설적으로 길을 잘 알게 된다. 물론 약간의 불안감을 견뎌야 하지만.)

 

 

에이스 호텔 앞 Stark Street

 

2.

포틀랜드 히피 문화의 상징이라는 에이스 호텔과의 첫 만남은, 환상적이거나 흡족과는 거리가 멀었다. 내가 지불한 가격에 비해 객실은 작고 불편했다. 그래서 얼른 거리로 나왔다. 저녁 7시의 다운타운인데, 한국으로 치면 밤 12시 변두리의 불 꺼진 번화가 정도로 느껴졌다. 조금 둘러보니 ‘변두리’라고 하기엔 거리와 건물들이 깨끗했다. 한 블록간 거리가 매우 짧았다. 50~60m 정도였다. 높은 건물은 없었다. 에이스 호텔 지척에 포틀랜드의 대표 명소 ‘파웰북스’가 있는데, 하얀 불빛이 밝게 빛나서 눈에 띄었다.

 

 


 

3.

배가 고파왔다. 열차 안에서 터키 데리야키를 맛나게 먹었지만 양이 적었다. 시애틀에서 포틀랜드로 이동하느라 에너지를 많이 썼다. 이제 막 도착한 도시에서의 첫 식사는 가볍게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고급 레스토랑 음식도 낯설음 때문에 제대로 즐기지 못하기 때문이고, 사실 어디로 가야할지도 잘 모를 때니까. 지금 나의 문제가 바로 그것이다. "I don't know Where to go." 절망스러운 무지이나 한심스러운 나태가 아니다.

 

(Supreme Team의 노래 <Where to go>는 한심하게 보내는 (아마도) 사내의 일상을 그렸지만) 나의 'Where to go'는 떨림과 기대다. 여러 개의 선물을 받아, 무엇부터 열어야 할지 잠시 'I don't know'일 뿐일 상태라고 할 수 있겠다. 낯선 도시가 손에 든 선물처럼 '여기에 좋은 게 들어 있을거야'라는 실감을 느끼게 하는 건 아니다. 낯섬이 주는 얼마간의 두려움이 있지만, 그것이 주는 두근거리는 기대도 있다.

 

4.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때, 내가 아는 최고의 방법은 '끌리는 곳으로 걷기'다.

호기심을 품고 걷는 건 여행자에게 많은 선물을 주지만,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길을 잃어버리는 일에 대해 염려하지 않는 것이다. (앞 문장을 다시 읽으시길!) 길을 잃지 않도록 조심하라가 아니다. 길을 잃어버릴까 하는 염려를 내려놓으라는 말이다. 길을 잃어야 탐색이 시작되고, 길을 탐색한 후에는 다음 날의 여행이 쉬워진다. 나는 길을 걸을 때 지도와 여행 책자를 보는 대신 건물과 사람들과 거리의 모습을 본다. 심지어 쓰레기통에 쓰인 문구도 본다. 걷다 보면, 낯섬은 사라지고 익숙함이 싹트기 시작한다.

 

길 잃을 염려하지 말기는 항상 주의해야 할 점이다. 이건 알고 있던 바지만, 오늘 새롭게 깨달은 주의사항이 있다. 이것은 하루에 세 번만 주의하면 된다. 끼니 때에는 탐색을 위한 '걷기'가 잘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발걸음이 식당 앞에 머물러 창 안으로 식사하는 사람들을 들여다보기 십상이다. 오늘 나의 '걷기'가 그랬다. 결국 나도 모르게 먹을거리가 잔뜩 쌓인 대형마트 안으로 들어갔다. 건강한 야채들이 내게 말을 걸었다. "나, 당신과 함께 갈 준비 됐어요."  

 

 

 

 

 

레스토랑에서 저녁 식사를 먹으려던 계획을 변경했다. 마트를 구경하다가 맛있게 보이는 음식을 보았기 때문이다. 마트에서 데워진 음식도 팔았다. 수프를 비롯한 국물이 있는 음식을 (우리나라에선 만두포장에 곧잘 쓰이는) 일회용 용기에 담는 모습이 이색적이었다. 계산을 어찌 하는지 몰라, 한 청년을 따라하려던 중 나를 매혹시킨 음식이 나타났다. 가격 라벨이 붙은 걸 보니 계산도 간단했지만, 무엇보다 가격이 저렴했다. 아래는 16달러짜리 나의 저녁 식사다. 이걸 얼만큼이나 먹을 수 있을까?

 

 

메인요리는 BBQ Roast Chicken이다. 치킨 통구이쯤 되려나. 나는 이놈을 두고 3분 정도 고민했다. ‘혼자 다 먹을 수 있을까’는 처음부터 배제시킨 질문이었다. 저걸 어찌 다 먹는단 말인가. ‘내일 아침에도 먹을 수 있을까’ 를 두고 내일의 예상 식단과 견주느라 시간이 걸렸다. 먹고 싶으면 생각 없이 없으면 간단하고 편할 텐데, 매번 이런 식이다. 나는 늘 다음을 생각하고 다른 것들을 고려한다. 하지만, 이것저것 고려하다가 현재를 즐기는 일은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도 염두에 두며 산다.


샐러드 양도 꽤 많았다. 오늘 구입한 브랜드의 유기농 주스는 맛이 별로였다. 치킨 통구이도 기대 이하였다. 영양을 생각하며 먹어야 할 정도였다. ‘영양 만점 단백질이니 퍽퍽해도 먹어야 해’, ‘다양한 야채가 들어 있으니 이런 맛일 수도 있지 뭐’. 결국 샐러드와 치킨 모두 1/3 정도 밖에 먹지 못했다. 그런데도 배가 부르다. 남은 건 어떡하지? 마트에서 보았던 전자레인지가 떠올랐다. ‘그래, 용기 내어 마트에서 먹자.’ 이런 경우로 용기를 발휘해야 하다니, 쩝. ‘ 지금까지 전자레인지가 있던 호텔도 많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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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애틀에서 출발하여 포틀랜드로 향하는 기차 여행은 네 시간의 ‘긴’ 여정이었다. 2004년 KTX가 개통된 이후, 우리나라에서 4시간 열차 여행을 하는 경우는 드물다. 나는 기차 안에서 졸거나 먹거나 생각했다. 의자가 편안하여 잘 졸았고, 열차에서 파는 도시락(터키 데리야키 라이스)을 맛있게 잘 먹었다. 생각만이 지지부진했다.

 

포틀랜드적인 것은 무엇이 있을까? 포틀랜드를 여행하는 5박 6일 동안, 나는 포틀랜드적인 것들에 대해 알아가기를 바랐다. 미국인들이 가장 살고 싶어 하는 도시로 포틀랜드를 꼽았다는데, 그 이유를 알고 싶다. 아니 ‘아는’ 정도가 아니라, 체험하고 느끼고 이해하고 싶다. 이것이 어느 날 문득, 포틀랜드 여행을 떠나기로 한 이유다.

 

나는 포틀랜드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오리건 주, 킨포크, 에이스 호텔 정도가 고작이었다. 시애틀 행 비행기에서, 나는 입국서류 방문지 칸에 ‘시애틀, 오리건 주’ 라고 썼다. 입국 심사대에서 남자 직원이 친절하게 알려 주었다. “시애틀은 워싱턴 주에 있지요. 포틀랜드가 오리건 주랍니다.” 포틀랜드에 관한 나의 지식은 정말 일천했다.

 

2.

포틀랜드 여행이 끝날 때에도 이 지경면, 안 될 일이다. 포틀랜드는 어떤 도시일까? 내게 질문하고, 생각해 보았다. 한국에서 읽은 몇 줄의 텍스트들, 시애틀에서 주워들은 풍문들로부터 떠오른 첫 단어는 ‘Creativity’였다. 히피 문화, <킨포크> 잡지, 젊은 도시 등으로부터 나온 개념이었다. 아마도 포틀랜드는 창의적인 도시일 것이다.

 

두 번째 단어로는 ‘Craft’가 떠올랐다. 이미 시애틀에서 미국의 DIY 문화를 절감했지만, 포틀랜드는 훨씬 많은 Craft (수공예) 가게와 문화가 퍼져 있지 않을까. 오죽하면 Craft Museum까지 있겠는가. 아마도 포틀랜드는 프렌차이즈 패스트푸드점보다 개인의 철학과 영혼이 담긴 가게와 파머스 마켓이 많은 도시일 것이다.

 

더 이상 떠오르지 않아, 생각을 멈추고 책을 읽었다. 여행 책자를 읽다가 세 번째 단어가 떠올랐다. ‘Classic'이었다. 다음 문장들 때문이다. “장인(크래프트맨)들의 전통 기술이 사라지고 있는 추세지만, 이곳 포틀랜드에서는 그 기술을 물려받아 후세에 전하려는 ‘장인의 혼’이 느껴진다.” 포틀랜드 곳곳에 골동품 상점이 많은 것도 우연이 아닐 것 같다.

 

이것은 모두 가설이다. 가설을 세우면 생각하는 토대와 바라보는 관점이 생긴다. 자세히 관찰하게 되고, 생각하며 여행하게 된다. ‘가설적 사유’에서 중요한 것은 가설에 함몰되지 않는 것이다. 가설을 입증하는 것들을 수집하되, 가설을 뒤집는 것들을 무시하지 않아야 한다. 판단을 서두르지 말고 유보할 줄 알아야 초행자의 편견에 빠지지 않는다.

 

3.

정말 포틀랜드가 전통을 중시하고 가치 있는 유산을 이어가는 문화를 가졌을까? 그렇다면 그것은 미국적인 것들과는 다른 문화다. 굳이 따지자면, 유럽이 ‘전통’이고 미국은 ‘개척’이다. 의사이자 시인이었던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는 유럽의 전통과는 다른 미국적인 것들을 노래했다고 알려진 작품을 남겼다.

 

20세기 중반 이후, 미국은 더 이상 유럽에 대한 열등감을 가질 필요가 없는 강대국이 되었다. (그전에는 열등감을 가졌는지 여부를, 지금의 나는 알지 못한다.) 미국은 미국적인 것들로 성장과 가치를 일구어냈다. 미덕도 다른 가치들이 지나치게 결여되면 부작용을 부른다는 점을 감안하면, 미국적인 것만으로는 지속가능성에 빨간불이 켜질지도 모른다.

 

역사를 가진 이상, 전통은 언제 어디에나 존재한다. 개척은 미국 어디에나 존재한다. (포틀랜드의 다운타운 중심은 Pioneer(개척) Courthouse Square다.) 창의성은 전통과 개척이 교차하는 곳에서 극대화된다. 포틀랜드는 그 교집합에 존재하는 도시일까? 미국적 가치와 반미국적인 가치를 조화시킨 도시의 순위를 매긴다면 포틀랜드가 1등일까? 

 

내 ‘나름대로’ 생각해 보았다. 나름대로의 이해는 위험과 기회를 동시에 가진다. 위험은 나름대로의 이해가 오해로 귀결되기 쉽다는 점이다. 기회는, 학습하고 교정하는 첫 단계가 되어준다는 점이다. 10분 후면 포틀랜드 여행이 시작될 것이다. 나름의 생각이 오해로 치우치지 않도록 생각을 정리하여 Creativity, Craft, Classic를 메모했다. 

 

그때, 하나의 단어가 더 떠올랐다. Courage! 여행자인 내게 필요한 미덕이다. 영어를 못하고 새로운 체험을 두려워하는 내 약점을 보완해 줄 가치를 마음 속에 새겼다. 시애틀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에는 여러 가치와 미덕의 단어가 새겨진 조약돌을 파는 가게가 있다. Love, confidence 등의 단어들 중, 그때도 나는 Courage를 꼽았었다.

 

Creativity, Craft, Classic & Courage...

나는 포틀랜드에서 무엇을 만날까?

 

포틀랜드 기차역, Union St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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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 내가 일몰을 좋아하는 이유

 

주말을 외국의 한적한 섬에서 보냈습니다. 지금은 시애틀 여행 중인데, 근교에 사는 친구 부부와 함께 시애틀에서 100마일 떨어진 산후안 섬(San Juan Island)으로 주말여행을 떠났거든요. 이야기 속에 또 하나의 이야기 끼어들어 있는 소설을 액자소설이라 부르더군요. 산후안 여행은 시애틀 여행 속에 또 하나의 여행이 끼어든 액자여행인 셈입니다.

 

여객선을 타고 바다를 가로지르며 섬으로 향하는 동안, 태양은 수평선을 향한 전진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갑판에 서서, 태양이 빚어낸 ‘일몰’이라는 예술을 만끽했지요. 솜사탕을 길게 늘어뜨린 모양의 구름이 살구빛 태양빛과 아름다운 조화를 이뤘습니다. 이국의 바다 위에서 바라보는 햇살 좋은 날의 일몰이, 나는 무척 감사하게 여겨졌습니다.

 

시애틀에서 닷새를 보내는 동안, 무려 나흘은 비 내리는 잿빛 하늘이었거든요. 맑은 날씨가 드문 곳에 머물다 보니, 햇빛이 구름에 차단되지 않고 대지에 도달한다는 것이 경이롭게 느껴지더군요. 감사함의 주된 원인은 풍광이 여행자 세 명의 기분을 들뜨게 만들었다는 점입니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오늘’을 보다 아름답게 만들어 주었으니까요.

 

항구에 도착하여, 섬을 주행하는 자동차 안에서 친구 부부에게 물었습니다. “일출이 좋아요? 일몰이 좋아요?” 두 사람 모두 일몰이 좋다고 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고요. 이유는 저마다 달랐지요. “살면서 일출을 보았던 적이 별로 없거든요”라는 답변에는 모두가 웃었습니다. 부부가 일몰을 좋아했던 이유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제 이유는 이렇습니다.

 

1. 제 주요 정서인 회상과 그리움에는 일몰이 어울립니다. 자주 그리워하고, 종종 후회하거든요. 2. 일몰은 스스로도 빛나지만, 자신의 빛으로 사위를 아름답게 물들입니다. 일몰처럼 아름다운 노년을 맞고 싶군요. 3. 일출은 역동적이지만 일몰은 우아합니다. 나는 평생 박력의 삶을 추구할 테지만, 우아한 삶을 창조하는 게 그나마 쉬울 것 같네요.

 

주말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배에서도 우리는 일몰을 만났습니다. 나는 여객선 객실 창가에 머리를 기대어 한참동안 일몰을 바라보았습니다. 아름답다 싶을 때면, 갑판에 나가 사진을 찍고 왔습니다. 두 번을 나갔다 오고, 창밖으로 일몰을 바라보고, 그러다가 창가에 머리를 기댄 채로 잠이 들었습니다. 그윽한 햇살이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일출보다 일몰이 아름답다거나 일몰을 더 좋아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말은 아닙니다. 사람은 저마다 다릅니다. 모습이 다르고, 재능이 다르고, 취향이 다르니, 자신의 취향을 자유롭고 용기 있게 쫓으면 될 겁니다. 자연이 늘 그렇듯이, 일몰뿐만 아니라 일출 역시 우리에게 교훈을 주니까요. 지난해에 썼던 시 하나를 공유하며 물러갑니다.

 

태양을 푯대 삼아

 

태동의 순간에 필요한 에너지와

하루를 열어젖히는 흥분이

일출에 깃든다.

 

시작은 빛나야 하리

태양을 뱉어 올린 파도의 반짝임처럼

 

퇴장의 순간에 젖어드는 아련함과

하루와 작별하는 보람과 아쉬움이

일몰에 깃든다.

 

마지막은 아름다워야 하리

석양을 떠나보낸 하늘의 노을빛처럼

 

Posted by 보보

 

시애틀 여행 4일차, 12월 11일. 오전에는 호텔 근처의 카페에서 글을 썼다. 책을 들고 나갔지만, 글을 쓰고 나니 예정한 시간이 지났다. 서둘러 다운타운 1번가 파이크 스트리트로 이동했다. 친구를 만나 점심식사로 새우와 연어 요리를 먹었다.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의 명소들, 이를테면 스타벅스 1호점(실제로는 4호점), 생선시장, 워터프론트 등을 둘러보면서 길거리 간식을 사 먹었다. 아침부터 줄곧 내리던 비가 오후에 잠시 그쳐, 푸른 하늘을 볼 수 있었다. 오늘의 가장 인상 깊었던 풍광 또는 명소는 아래의 세 가지!

 

뜻밖의 시간에 조우한 시애틀의 푸르른 하늘! (햇빛이 이렇게 반가울 수가!)

시애틀 센터와 함께 시애틀의 대표 관광지, 파이크 플레이스! (이색 상점들)

시애틀 최고(the highest) 높이의 전망대, 콜롬비아 센터! (시애틀의 야경)

 

4일차 시애틀 여행을 사진으로 남긴다.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손목 굵기 만한 킹크랩의 다리, 구름 뒤로 가려졌던 햇빛을 만난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 공식적인 스타벅스 1호점 그리고 콜롬비아 센터에서 내려다본 시애틀의 야경 등이다. 앞선 3일 동안 100장의 사진도 안 찍었는데, 오늘만 300장을 찍었다. 시애틀 여행을 이제야 시작한 기분이다.  

 

 

 

 

 

파이크 플레이스의 거리 상점들

 

 

 

 

시애틀 다운타운에 등장한 무지개, 1번가에서.

 

 

파이크 플레이스에 있는 스타벅스 1호점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의 이색 상점에서.

 

 

 

콜럼비아 센터에서 바라본 시애틀 야경 (오른쪽 상단이 스페이스니들)

 

 

 

Best Western 호텔 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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