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타행 에게항공(Aegean Airlines)은 본의 아니게 비즈니스 좌석으로 예매했다. 이코노미 석이 없었고, 비즈니스와 이코노미의 가격이 비슷했다(3만 5천원 차이). 비즈니스 탑승권을 살펴보았다. 이름부터 달랐다. ‘탑승권(Boarding Pass)’이 아니라 ‘탑승/ 라운지 이용권(Boarding / Lounge Pass)’이었다. 이런 문구도 보였다. “We are pleased to invite you to our lounge prior to the departure of flight." 나를 라운지로 부르는 것 같았다.

 

그런데, 라운지가 어디에 있지? 단 한 번도 비즈니스 석을 구입한 적은 없다. 누군가가 나를 비즈니스 석이나 일등석의 세계로 초대한 적도 없다. 이왕이면 라운지에서 탑승 시간을 기다리고 싶었다. 나는 라운지를 찾아 나섰다. 탑승권을 보여주고 면세점 거리로 들어섰다(우리나라는 수하물 검사를 하고 나야 면세점인데, 아테네 공항은 면세점을 지나고 나서 수하물 검사대가 있었다). 카페가 보였다.

 

한 시간 남짓한 시각을 커피와 빵을 먹으면서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4유로를 지불하고 Greek Coffee와 머핀을 샀다. 저녁을 먹지 못해 간단하게 요기도 하고, 한 시간을 카페에서 알차게 보낼 심산이었다. 그새 라운지는 잊어버렸다. 나도 모르게, 이코노미 석 승객으로 바뀌어 있었다. 커피를 받아들고 자리에 앉자마자 라운지 생각이 났다. ‘아! 라운지! 나는 라운지에 가려던 참이었지!’ 이것은 탄식이었다. 라운지엔 무료 커피나 간단한 스낵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얼른 커피를 마시고(그릭 커피는 그다지 뜨겁지 않다), 빵을 챙겨 일어섰다. 카페 30초 거리에 수하물 검사를 위한 짧은 줄이 보였다. 별 일 없이 검사대를 통과했다. 게이트를 안내하는 표지판이 나를 맞았다. 신문과 스낵을 파는 가게가 보였고 게이트들이 줄줄이 이어졌다. 5분을 걸어 B19 게이트에 도착했다. 라운지가 어디에 있나, 두리번거리며! 라운지는 없었다. 포기하고 게이트 앞 좌석에 앉았다. ‘아니지! 한번 가 보기나 하자. 경험삼아.’ 다시 일어섰다. 지나쳤을 지도 모르니까. 나는 수하물 검사대까지 돌아다녔지만 라운지를 찾지 못했다.

 

발길을 돌려 게이트로 향하는데 유리창 건너편에 독일의 루프트한자 항공사 라운지가 보였다. 수하물 검사를 하기 전에 만났던 면세점 거리였다. 근처에 에게항공 라운지도 있으려나? 저가항공사라 라운지가 대수롭지 않으려나? 되돌아나갈 수 있는지 물어볼까? 갈등은 짧았다. 이미 시간이 많이 흘렀고, 수하물 검사대를 다시 통과하긴 싫었다. 결국 라운지엔 가지 못했다. 한번쯤 비즈니스, 일등석 문화를 경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도 비즈니스 석을 이용하는 승객들의 안내를 받는다면 더욱 좋겠다.

 

라운지를 잊은 채로 커피를 주문하고 나서, 내가 이코노미 문화에 익숙해져 있음을 느꼈다. 나도 모르게 비즈니스 석을 구입한 혜택을 잊고 말았다. 어쩌면 삶이 나에게 선사한 혜택도 잊고 산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이라는 시간, 내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 지금 내가 가진 소유물들! ‘나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자신의 자산(이나 특권)을 누리지 못하며 살겠구나.’ 내면속에 잠자고 있는 재능에서부터 열심히 일하여 번 돈을 들여서 구입한 물건까지(K 씨는 구입하고 나서 포장도 뜯지 않고 보관하는 물건도 있다고 했다).

 

라운지에는 가지 못했지만, 비즈니스 석과 이코노미 석의 차이를 경험하긴 했다. 저가 항공사의 40분짜리 짧은 노선임에도 비즈니스 석은 달랐다. 확실히 대접 받는 기분이 들었다. 사탕 하나가 제공되는 이코노미 석과 달리, 조금 식긴 했지만 맛난 치킨과 치즈가 들어간 미니 브로슈어 빵과 미니 크로와상이 제공되었다. 커피는 물론이다. 좌석도 다닥다닥 붙어 있지 않았다. 3명 좌석에 두 명이 앉았고, 가운데 자리에는 테이블이 셋팅되어 있었다. 1번 열에 D번 좌석이 나의 공간이었다. 조종실 문이 열렸을 때에는 기장이 슬쩍 보였다.

 

나는 비행기에서 가장 먼저 내렸다. 셔틀버스에도 가장 먼저 올라탔다. 40~50명은 족히 탈 수 있는 버스는 비즈니스석 8명만 태우고서 출발했다. 이코노미석 승객들이 내리는 모습을 보면서 묘한 이질감과 동질감(올 때는 나도 저 무리에 섞이겠구나)을 동시에 느꼈다. 이코노미석 승객이 아직 도착하기도 전에 수하물을 찾았다. 먼저 올라온 수하물에는 모두 “PRIORITY"라고 쓰인 빨간색 태그가 붙어 있었다. 내 가방이 두 번째로 나왔다. 공항을 나오자마자 택시 승강장으로 가서 줄을 서지 않고 택시를 탔다. 10~15분은 절약한 느낌이다.

 

택시 안에서 생각했다. ‘눈을 크게 떠서(그런다고 찾아 질런지는 모르겠지만) 내게 주어진 재능과 소임을 발견하고, 성실하게 재능을 활용하면 지금까지 몰랐던 삶이 펼쳐질 수도 있겠구나. 지금까지 살아왔던 방식 중에서 나를 제한하는 태도, 성격, 생각들을 개선해 나간다면 말야! 비즈니스 석은 돈이 있어야 누릴 수 있지만, 새로운 인생은 돈 문제가 아니다.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생각하고(좋은 생각만을 남기고 어설픈 생각은 모조리 내던지기), 새로운 행동을 시도함으로 가능하다.’ 3만 5천 원짜리 교훈치고는 값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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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여행 0일차, 10월 15일(토).


1.

열흘 동안 함께 그리스를 여행했던 일행과 헤어졌다. 그들은 서울로 갔다. 나는 아테나 공항에 남았다. 지금 시각은 저녁 7시 30분. 일행과 헤어진 시간이 정오니까 일곱 시간 반이 지났다. 렌트카를 예약하고 다시 취소하고, 여행지를 펠로폰네소스 반도에서 크레타 섬으로 바꾸는 등 네댓 시간 동안 혼자서 소동을 치렀다. 신용카드를 챙겨 오지 못한 결과들이다.

 

신용카드를 지참하지 못한 사연은 길다(기회가 온다면 그 사연을 풀어내고 싶지만, 지금은 ‘허락된 지면이 짧다’라는 말로 간단히 넘어가련다). 신용카드만 있었더라면 차 렌트가 순조롭게 진행되었을 테고, 나는 폭스바겐 골프를 몰고서 코린토스의 어느 호텔에서 쉬고 있으리라. 지금쯤이면 에게해의 밤하늘을 보면서 식사를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신용카드 사태는 실수가 아니다. (미루기를 즐기는 나의 타성이 한 몫 거들었지만) 본질적으로는 경제 사정을 감안한 나의 선택이었다. 결과는 끔찍했다, 라고 말할 순 없지만 여러 가지로 불편했고, 허비하지 않아도 될 시간을 낭비했다. 이 모든 상황은 ‘신뢰 없는 사람’이 어떤 인생을 살아야 하는가를 보여준 표지인지도 모르겠다. 신뢰는 일을 수월하게 만든다. 지인에게 10만원을 빌리는 일과 행인에게 10만원을 빌리는 일의 차이가 신뢰가 주는 실용적인 힘이다.

 

휴대폰 앱으로 크레타행 항공권을 발권하고 탑승 게이트 앞에 앉고 나니, 비로소 새로운 여행이 시작되는 느낌이 든다. (19:30)

 

2.

크레타는 그리스의 6천개 섬 중 가장 큰 섬이다. 제주도의 4배란다. 크레타에는 그리스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 이라클리온이 있고, 고대의 중요한 유적지 크노소스 궁전이 있다. 크레타는 동양과 서양 사이에 위치한 까닭에 역사에 자주 등장했다. 이러한 사실들이 나를 크레타로 유혹한 것은 아니다. 한 사람이 나를 이끌었다. 내게는 더없이 위대한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

 

6년 전, 나는 그의 무덤 앞에 섰다. 읽지도 못하는 그의 묘비명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그러다가 묘지 한쪽에 앉아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었다. 아랍계 유럽인으로 보이는 참배객이 왔다가 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 해, 『그리스인 조르바』를 처음 읽었다. 6년 사이, 이 책을 한 번 더 읽었다. 커다란 감동을 얻었기에 앞으로도 여러 차례 더 읽을 생각이다.

 

크레타에 머무는 동안 할 일도 하나다. 자주 이 책을 읽고,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관해 두 주인공과 함께 의논할 생각이다. 가 볼만한 곳도, 가야 할 명소도 내게는 중요치 않다. 오직 마음이 끌리는 대로 시간을 보낼 텐데, 바로 그 일이 니코스 카잔차키스와 시간을 보내는 여행이다. 그리스에 조금 더 머물게 된다면 조르바에 관한 26개의 글을 쓰고 싶지만(이 책의 챕터가 26개다), 내게 주어진 시간은 6일 뿐이다.

 

6일 동안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고 생각하고 글을 쓸 것! 나는 니코스와 조르바를 한국에서보다 조금 더 진하게 느끼기 위해 크레타로 간다.

 

3.

크레타의 숙소에 도착하니 적막감과 쓸쓸함이 몰려왔다. 어제까지 함께 시간을 보냈던 이들의 미소가 떠올랐다. 함께 묵었던 근사한 객실과 호텔 라운지가 생각났다. 지금은 3성급 (어제와 비교하면) 허름한 호텔에 묵고 있다. 지내기엔 괜찮지만, 지금까지의 여행과 대비되어 약간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화장실이 어설퍼 서글픔을 더했고, 촌스러운 붉은색 침대시트가 울적함을 추가했다.

 

방안 가득히 음악을 채우고 싶었지만 쓸쓸함을 쓸어내 버릴 것 같아 참았다. 나는 지금의 기분에 집중하고 싶었다. 쓸쓸함과 적막감을 음미하면서, 이러한 감정에도 유익을 있음을 경험하고 싶었다. (모든 세상사는 양면적이니까.) 유익을 발견하려면 실체부터 알아야 했다. 작은 숙소 안에는 나 혼자다. 지금의 기분을 나눌 사람이 없다. 창밖은 낯설다. 의지할 데가 없다.

 

외로움, 쓸쓸함, 의지할 데 없음이 적막감이다. 기분이 적적하거나 으스스해진다. 무서움이 아니다. 낯설음이나 음산함이다. 화장실 싸구려 타일에서 느껴지는 기분이랄까. 천장에 매달린 선풍기가 떨어지진 않을까 싶은 의심이랄까. 이런 감정이 적막감이다. 적막감에도 유익이 있다. 창밖에서 은은히 빛나는 보름달을 바라보게 만든다(달빛이 나를 비춰주고 있구나). 차분하게 책에 몰입하도록 돕는다(이 날밤『그리스인 조르바』 3장을 읽었다).

 

다시 양면성이다. 일행들과 함께 했을 때에는 느끼지 못한 감정을 경험하면서, 그들과 함께라면 갖지 못했을 체험(차분한 단상과 조용한 독서의 시간)을 누렸다. 정말, 새로운 여행이 시작되었다.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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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코노스 타운으로 들어서자마자 시작되는 순백의 미로 탐험, 2) 바닷가 위에 세워진 리틀 베니스의 이국적인 건물들, 3) 골목길 여기저기에서 여행자를 유혹하는 카페와 갤러리 등의 상점 구경이 내가 미코노스에 빠져든 이유들이다. 누군가가 이 모든 것들과 미코노스의 아름다운 비치에서 수영과 선탠마저 즐긴다면, 그는 미코노스를 사랑하게 될 것이다. 미코노스는 바이마르, 포틀랜드, 비엔나, 팔라우, 아테네와 함께 내겐 꼭 다시 가고 싶은 여행지다. 이 중에서도 1순위가 미코노스다.




제우스는 바람둥이였다. 아내 헤라를 질투의 여신으로 만들기에 충분한 바람기였다. 외도가 취미였고, 자녀들이 수십 명이었다. 한번은 아내 몰래 미케네 왕의 딸 알크메네를 범했다. 죄는 결과를 낳는 법, 반신반인의 아들이 태어났다. 제우스는 ‘헤라의 영광’이라는 뜻으로 아들의 이름을 지었지만, 아이는 헤라의 미움을 받으며 자랐다. 그리스 신화의 영웅, 헤라클레스 얘기다.


티탄족 신들과 올림포스 신들이 대결할 때, 헤라클레스는 제우스를 우두머리로 하는 올림포스 신들을 도왔다. 2011년 개봉한 영화 <타이탄>과 이듬해의 <타이탄의 분노>는 두 신족들의 대결을 소재로 만든 영화다. 헤라클레스는 티탄족 신들을 물리치기 위해 큰 바위 하나를 던진다. 그 바위가 그리스의 휴양지, 미코노스 섬이다. 미코노스를 즐기는 데에는 신화 지식은 필요없다. 그 자체로 매혹의 여행지니까.



2010년에 지중해 크루즈 여행을 하면서 미코노스에 다녀왔다. 산토리니도 아름다웠지만, 내겐 미코노스가 발하는 매력이 더욱 강렬했다. 리틀 베니스에서 바라보는 석양은 황홀한 빛깔을 연출했고, 순백색으로 칠해진 그리스 전통 가옥들을 미로 탐험하듯 거니는 미코노스 타운의 골목길은 동화 속 신비로운 탐험을 다니는 기분을 선사했다. 골목길 탐험을 즐기는 비결은 간단하다. 길을 잃고 자유롭게 헤매면 된다!



리틀 베니스와 카토 밀리는 미코노스의 전형적 풍광이다. ‘아래쪽 풍차’라는 뜻의 ‘카토 밀리’라는 옛 풍차는 언덕 위에서 바라봐도 좋고, 석양이 지는 무렵 리틀 베니스 쪽에서 지그시 올려다보아도 좋다. 리틀 베니스는 낮의 풍광과 일몰 무렵의 풍광이 다르다. 나는 보지 못했지만, 밤이 되면 또 다를 것이다. 언젠가는 리틀 베니스의 카페에 앉아 석양을 바라보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날을 갖고 싶다고 생각했다. 소중한 사람과 함께.



리틀 베니스의 카페들


미코노스에는 유명한 해변이 많다. 가장 많이 알려진 ‘파라다이스 비치’의 성수기 밤에는 연일 음악과 춤이 펼쳐진다고 한다. 파라다이스 비치 바로 옆에는 그리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 중 하나라는 ‘슈퍼 파라다이스 비치’가 있다. 크루즈 여행 때에는 미코노스의 비치를 맛보지 못했다. 매력을 전부 맛보지 못해도 미코노스가 그립다. 미코노스 타운 골목길과 리틀 베니스 만으로도 이 섬의 매력을 잊지 못하기 때문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초기 대표작 『상실의 시대』를 쓴 곳이 미코노스다. 아내와 함께 수개월을 머물며 마라톤과 리틀 베니스의 카페들과 집필을 즐겼다. 언젠가 나도 여유로운 일정으로 미코노스에 머무는 날, 어느 카페에서 글을 쓸 것이다. 엄청나게 많이 팔리는 글은 아니더라도, 쓰는 동안만큼은 하루키처럼 자유롭게 여유롭게 나의 시간을 즐길 것이다. 미코노스를 생각하면 일을 하고 싶어진다. 일이 휴식의 달콤함과 수입을 늘려줄 테니까.


리틀 베니스 너머로 지는 석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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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보는 2009년 2월 4일부터 3월 3일까지 한 달 동안 여행을 다녀왔답니다.
일정 중 2/3는 브라질(상파울로, 리오데자네이루, 이과수 폭포)에서 5기 와우팀원들과,
1/3은 캐나다 벤쿠버에서 홀로 여유롭게 보내었지요.

브라질 여행은 저에게는 잊을 수 없는 개인사가 되었고,
팀원들과의 소중한 이야기를 공유하게 된 아름다운 추억이었고,
여행의 순간 순간마다 삶의 지혜를 얻은 인생수업이었습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와우팀원들과 함께 진행된 3차례의 수업과 강연이었습니다.

수업을 진행하며 저는 팀원들의 삶에 감동하며 마음으로 울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삶의 이야기를 듣고, 기쁨과 슬픔을 공유하며 서로에게 배웠습니다.
보보의 해피레터 11편은 브라질 여행 중에 느꼈던 몇 가지 단상입니다.
팀원들에게서 배우고, 여행을 통해 배웠던 것에 대한 소박한 나눔입니다.

#1. 지금 만나고, 지금 말하고, 지금 행동하라
눈물 흘리며 들었던 이야기 하나.
브라질로 이민을 온 엘라는 타국에 계신 어머니께 때마다 용돈을 보내 드렸다.
자주 찾아 뵙지 못하니 마음이라도 정성스레 전한 것이다.

세월이 흘러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엘라는 어머니의 옷장을 정리하다 엉엉 울음을 터트린다.
어머니의 서랍에서 나온 양말 뭉치 때문에.

양말 하나 하나에는 그녀가 보내 드린 달러 뭉치가 들어 있었던 게다.
하나도 쓰지 않고 고이 모아 두셨나 보다. 꽤 많은 돈이었다.
그 때가 생생히 기억나는 듯, 엘라는 눈물을 머금은 채로 말했다.
"돈이 필요한 게 아니라, 엄마에겐 함께 해 주는 딸이 필요했던 거였어요."

“삶의 마지막 순간에 바다와 하늘과 별 또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볼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하지 마십시오.
지금 그들을 보러 가십시오.”
- 『인생수업』 中에서



#2. 존재하는 법 VS 일하는 법
브라질로 떠나기 며칠 전에 접했던 다소 울적한 기사 하나.
한국이 OECD 국가 중에서 연간 노동시간이 최고로 많다는 기사였다.
2위를 현격한 차이로 따돌린 압도적인 1위였다.

브라질 여행을 하며 느낀 점 하나.브라질 사람들은 시간을 느긋하게 보낸다는 사실이다.
이들에게서는 매 시간마다 어떤 가치를 창출해야 한다는 강박 관념이 없었다.

그들의 마음은 여유로웠고, 미래를 향한 생각은 낙관적이었다.
근거 없이 미래를 낙관하며 태평스럽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 어리석다고 한다면,
목적 없이 분주히 살며 오늘의 미소와 행복을 잃어버린 것 역시 어리석다고 응수하겠다.

나는 균형을 말하고 싶은 게다.
생산성 있는 삶과 의미 있는 삶의 균형,
일하는 법과 존재하는 법의 균형.

"너무 많은 사람들이 항상 생산적이고 성공적이어야 하며,
끊임없이 무언가를 이루어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 시달립니다.
지금 세대의 사람들은 일하는 법은 알지만, 존재하는 법은 잘 모릅니다."
- 『인생수업』 中에서



#3. 좀 더 행복한 결혼 생활을 위한 단상들
나는 결혼 생활을 다음과 같은 과정으로 생각한다.
- 점점 독립적인 사람이 되어 가는 과정
- 서로의 상처를 깨닫고 이해하며 치유해 나가는 과정
- 나와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를 수용해 나가는 과정
(과정이라는 단어를 선택한 것은 완성의 단계가 없음을 나타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나에게 위로와 지속적인 용기를 주기를.)

독립적이지 못하면 상대에게 감정적으로 의존하게 되고,
의존함이 지속되면 상대를 구속하게 된다.
자유와 존엄성에 압박을 주게 된다.
홀로 잘 살아가는 동시에 서로에게 의존하는 상호의존성을 발휘해야 한다.
두 개인이 모두 독립성을 가져야만 상호의존성에 이를 수 있다.

좋아함은 기쁨이지만 사랑에는 고통이 뒤따른다.
상대를 구속하려는 태도, 배우자에게 배우기보다는 상대를 교정하려는 시도,
나와 다름을 틀림으로 바라보는 시각, 이 모든 것이 서로에게 상처를 준다.

배우자를 보며 ‘당신과 나는 참 다른 존재군요’라고 느껴지는 순간은
가슴이 답답해서 미칠 것 같은 상황으로 치달을 수도 있고,
다양성과 조화를 배우는 축복의 상황으로 전개될 수도 있다.

다름이 틀림이 아님을 알고 다름이 아름다운 조화의 핵심임을 배워 간다면,
틀어졌던 관계가 개선되기 시작한다.
머지 않아, 내가 받은 상처만큼이나 나도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었음을 깨닫는다.
결국 서로가 상처를 주고 받았음을 깨닫게 되면 이해가 시작되고 치유가 진행된다.

결혼한 상대를 배우자라고 부른다.
서로 서로 배우자는 의미로 이렇게 부르는지도 모른다.
이것은 결혼 생활이야말로 인생 수업의 장(場)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이다.
서로에게서 배울 수 있다면 아껴줄 수 있고,
아껴줄 수 있다면 사랑이 더욱 아름다워진다.

"사랑하는 사람과 다툴 때면
당신은 상대방이 잘못했기 때문에 자신이 화가 났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실 당신은 스스로 마음을 닫고
사랑을 거두었기 때문에 당황한 것입니다.
상대방이 당신의 마음에 들 때까지
자신의 사랑을 움켜쥐고 있는 것이 해결책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 『인생수업』 中에서



#4. 자신의 자랑스러운 개인사를 칭찬하기
45년 전의 어느 날, 한국 최초의 브라질 이민자들이 배를 탔다.
새로운 땅에서의 삶을 꿈꾸며 한 달이 넘는 뱃길을 달려 브라질에 이르렀다.
긴 시간 배를 타면서, ‘한국으로 되돌아가기는 어렵겠구나’라는 절박함을 느꼈으리라.

절박함으로 도착하였지만, 그들이 가진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한국어로 된 포르투갈어 사전도 없던 시절,
날마다 온 몸으로 부딪쳐가며 언어를 익혔다.
낯선 땅에서 맨손으로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그야말로 무(無)에서 시작한 것이다.

45년 동안, 한국인들은 브라질 의류 시장에서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일궈 냈다.
의류 소매업계의 40%를 한국인이 장악했고,
경제적인 성공을 일궈 낸 이들도 많다.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성공은
지난 시절 그들의 치열한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그들 삶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주 감동에 젖었다. 아니, 전율했다.

가장의 사업 실패로 인한 가족 전체의 이민 결정을 따라
브라질로 온 소녀는 이제 중년이 됐다.
경제적 성공을 위해 이민을 떠난 어느 부부의 아들, 딸들은 이제 서른 살 어른이 됐다.
세월은 그렇게 흘렀고, 세월의 흐름에 따라 한국의 브라질 이민사도 튼튼해졌다.

젊은 날들을 오롯이 이민 생활의 정착과 성공을 위해 바친 그들의 삶은 감동이었다.
자신의 열정과 꿈보다는 가족을 위해,
그리고 홀로서기에 바쳐진 젊은 날들의 희생은 고귀했다.
중년 즈음에 느껴지는 자기 상실감을 느끼기에는
지난 날 그들의 삶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나는 그들이 자기 삶의 훌륭한 대목을 진정 스스로 흐뭇하게 바라보기를 원했다.
아름다운 자기 생의 모습을 바라 보며 스스로 칭찬하고 사랑해 주기를 바랬다.
그리하여 얻은 힘으로 앞으로의 날들을 더욱 찬란하게 빚어가기를 바랬다.
그들 모두는 자기 삶의 선한 싸움에서 승리한 챔피언이었다.


“상담을 하다 보면 자신의 좋은 점을 깎아 내리거나 부인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헌신적이고, 베풀고, 사랑하는 사람들조차
때로는 자신이 세상에 미치는 영향을 자각하지 못합니다.
자선 단체 대표에서 성직자들까지,
다른 이들을 돕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들까지,
자신의 좋은 점에 대해서는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볼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 『인생수업』 中에서


[PS] 들은 바에 의하면, 브라질로 이민을 간 한국인들의 아름다운 성공 뒤에는
사람을 피부 색깔로 차별하지 않는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브라질 국민들이 있었다.
또한, 101년 전에 먼저 브라질 땅을 밟아 동양인의 인식을 가꾸어 준 일본인들이 있었다.
먼저는 브라질 국민들에게, 다음으로는 일본인들에게 고마움이 든다.
역시, 우리는 서로 얽혀 있고, 서로 도움을 주고 받으며 사는가 보다.


#5. 삶의 배움을 얻다
덩치가 큰 그는 비행기 좌석을 두 개에 걸쳐 앉았다.
몸이 아주 불편하여 거동하기도 쉽지 않았다.
화장실에 가기 위해 몸을 일으키는 데에만 10초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다.

비행기가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는 선반에서 짐을 끄집어 냈다. 작지 않은 가방이었다.
나는 그의 뒷좌석에 앉아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말을 건넸다. "도와 드릴까요?"
그는 단호함과 다정함을 섞어 대답했다. "괜찮습니다. (나를 쳐다보며) 고마워요."

그는 어느 친절한 청년의 호의를 거절했다.
자신이 들어야 할 삶의 무게는 스스로 짊어져야 한다고 믿는 것처럼.
그 무게를 포기하면 자신이 점점 연약해진다고 믿는 것처럼.

그는 자기 가방을 자신의 어깨에 둘러매고,
한 손으로는 지팡이를 짚으며 비행기에서 내려 끝까지 스스로의 힘으로 걸었다.
그의 곁에는 아내가 있었지만, 아내도 그도 각자 자신의 짐을 들고 있었다.
나는 호의를 베푸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진정으로 그를 돕는 데에는 실패했다.

“배움을 얻는다는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 자신의 인생을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갑자기 더 행복해지거나 부자가 되거나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더 깊이 이해하고 자기 자신과 더 평화롭게 지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삶의 배움을 얻는다는 것은 삶을 완벽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줄 알게 되는 것입니다.”
- 『인생수업』 中에서



#6. 넓은 가슴으로 다른 이들을 이해하기
욕조에 몸을 담그거나 샤워를 하고 난 후,
전신타월로 몸을 감싸는 기분은.. 참으로 좋다.
전신타월은 몸에 묻은 물기를 순식간에 닦아 내어 한기를 느끼지 않게 한다.
뽀송뽀송한 큰 타월이 내 온 몸을 감쌀 때의 포근함이 좋다.
몸을 감싸고 나와 침대 위에 벌렁 드러누울 때의 기분은 상쾌함 그 자체다.

좀 유치한 표현이긴 하지만, 나도 누군가에게 전신타월과 같은 사람이고 싶다.
친구와 아내의 눈물을 닦아 주고,
편하게 나에게 기댈 수 있는 넓은 가슴의 사람이 되고 싶다.
항상 뽀송뽀송한 기운을 전해 주어 그에게 살아갈 힘을 전하는 사람이고 싶다.
살아가다 다툴 때에라도 나에게 호의적이지 못한 태도를 따지기보다는
그저 넓은 사랑으로 그의 눈물을 이해하고 싶다.

“우리가 마음을 닫고 편협해지는 것은
다른 사람이 어떤 상황에 있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들이 왜 전화를 걸지 않는지,
왜 그렇게 큰 목소리로 말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들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반면 자신이 받은 상처와 고통,
그리고 자신이 어떻게 오해를 받았는지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습니다.”

- 『인생수업』 中에서



#7. 삶의 목적을 기억하기
브라질에서 보낸 일정은 마치 짧은 인생과도 같았다.
처음에는, 보름이 넘는 일정이니 꽤 시간이 많다고 생각했다.
여행의 목적보다는 날마다 일어나는 일들에 온통 관심을 빼앗겼다.

여행을 하다 보니 이런 저런 일들이 많았다. 나름대로 의미 있는 일들이었다.
구경할 것도 많았고, 새롭게 듣게 되는 흥미로운 이야기들도 많았다.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 내게는 열흘도 더 남아 있었다. 안심할 만했다.

그 짧은 브라질 일정에서도 친해진 사람들이 생겨났다.
내가 해야 할 책임도 새롭게 생겨났다.
두 번의 강연 계획이었는데 하나가 추가된 것이다.
즐겁고 영광스런 일이었지만 이번 여행의 목적과 직접적인 연관성은 없었다.
이렇게 새로 떠 맡은 일을 하는 사이,
사람들과 친분을 나누는 사이에시나브로 여행의 일정이 2~3일만 남게 되었다.

인생은 왕의 명령을 받고 외국으로 파견된 사신의 역할과 같다.
모든 것을 둘러보더라도 왕의 명령을 받들지 못했다면,
고국으로 돌아가서 왕에게 전해 올릴 이야기를 갖지 못한 것이다.

구경도 하지 말고, 사람들과 관계도 맺지 말자는 게 아니다.
왕의 명령을 완수해야 하는 것처럼, 자기 인생의 목적을 완수해야 한다는 말이다.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리 삶은 목적을 어지럽히는, 그럴듯한 일상으로 가득 차 있기에.

이번 여행의 목적은 와우팀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수업을 진행하는 것이었다.
또한, 브라질 와우팀 탄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A님과
커피 한 잔 마시며 대화를 나누는 것이었다.
굳이 따지자면, 강연은 부차적인 것이었다.
‘먼 길 오신 김에 강연을 해 주면 어떠한지요?’라는 제안에 화답하여 진행된 것이니.
새롭게 맺은 관계는 뜻밖의 아름다운 선물이었지만 이번 여행의 목적은 아니었다.

일정이 마무리되어 갈 무렵에야 A님과 차 한 잔의 여유를 갖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가장 중요한 목적 하나를 놓친 채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너무 늦지 않은 즈음에 깨달아서 다행이다. 우리는 즐거운 대화 시간을 가졌다. ^^

나는 이 글을 벤쿠버의 한 호텔에서 신나게 작성하고 있다.
욕조에 몸을 담그고 있다가 떠오른 단상들이 술술 쏟아져 나와 반가움으로 글을 썼다.
3월 2일 새벽 4:49분을 지나고 있다. 새벽 미명이 밝아오기 전이다.
내 인생에 오랫동안, 어쩌면 영원히 기억될 여행이.. 이렇게 저물고 있다.

부디 나의 하루 하루가 이렇게 아름다운 추억이 되길.
날마다 일어나는 평범한 일들까지도 특별하게 처리하여 빛나는 순간들로 창조해 나가길.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이 오늘 하루를 잡아 빛나는 일상으로 빚어 내길.

여행의 마지막 순간이 되니, 나를 돌아보게 된다.
얼마나 열심히 여행했는지, 얼마나 웃었으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웃게 하였는지,
그리고 얼마나 용기를 내어 나 자신으로 시간을 보내었는지.
여행은 꼭 삶을 닮았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랬다. 여행은 인생 수업이었다.

"삶의 마지막 순간이 가까워 오면 사람들은 더 진실해지고,
정직해지고 더 진정한 자신이 됩니다."
- 『인생수업』 中에서

                                                                             - 2009년 3월

사용자 삽입 이미지 글: 리더십/ 자기경영전문가 이희석 유니크컨설팅 대표컨설트 ceo@younicon.co.kr

Posted by 보보


그리스와 터키로, 또 하나의 여행을 다녀왔다.
지금까지의 해외여행 경험을 헤아려 보니 약 220여일 동안 18개국을 다녀왔다.
다녀온 나라는 정확히 기억하나,  
해외 여행을 하며 보고 듣고 배운 것들을 제대로 정리해 두지 못한 것이 아쉽다.
다행히도 여행 때마다 최소한의 기록을 남겨 두었으니
그간의 기록을 살피며 해외여행 체험들을 정리해야겠다.
그저 '다녀왔다'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기에.

이번 여행은 그간 체험하지 못한 경험들이 많았다.
32명이 함께 할 수 있었기에 가능한 것도 있었고,
여행 막바지에 며칠을 홀로 지냈기에 가능한 것도 있었다.
서로 다른 방식과 모순된 가치를 조화시키는 것이 자기경영의 묘미다.
정신과 물질의 조화, 준비와 즉흥의 조화, 고독과 어울림의 조화.

사용자 삽입 이미지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파르테논 신전이 선명히 보인다)


1) 이번 여행의 백미는 고대 그리스의 유적을 방문한 것이다.  
델포이 신전과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을
두 눈으로 보았던 그 순간을, 나는 오랫동안 잊지 못하리라.
여행은 앞으로 그리스 신화와 문화를 공부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까마득히 먼 나라, 나의 인식 저 너머에 있던 델포이와 파르테논을
이제는 눈 앞에 선명히 그려낼 수 있으니까 말이다.

2) 크루즈 여행을 생각하면 미소가 지어진다.
4박 5일간의 꿈같은 크루즈 여행은 말로만 듣던 꿈의 여행을 경험하는 순간이었다. 
크루즈 여행은 지상에서 가장 행복하게 여행하는 방식 중의 하나임이 분명하다.
또한 가장 여유롭고 기분 좋게 시간을 보내는 방식이기도 했다.
아쉬운 점은 크루즈에서 머물던 순간들을 더욱 즐기지 못했던 점이다.
다양한 프로그램 중 하나 정도는 참여해 볼 수도 있었고,
더 좋은 크루즈를 보며 부러워하는 대신에 나의 현재에 흠뻑 젖었어야 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이스탄불 아야소피아 박물관의 야경


 3) 이스탄불에서 보낸 시간은
이슬람을 이해하는 초석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었다.
13년 전, 우즈베키스탄에서 무슬림들을 처음 만났을 때보다 내 마음은 훨씬 열려 있었다.
무함마드의 훌륭한 인격과 삶에 대한 글을 읽고 나서는 그에 대한 동경이 생겨나기도 했다.
이슬람 국가들이 몰린 중동 지역은 석유 생산지이기에 많은 국가의 이권과 관심이 몰린 곳이다.
이곳에 얽힌 권력 구조를 모르고서 국제관계를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나에게는 이런 국제적 정세에 대한 중요성보다 '이스탄불' 자체가 매력적이었다.
이스탄불은 로마 - 동로마 제국 - 오스만 제국에 이르기까지
세계사를 가로지르는 대제국의 중심지였다. 그곳에는 역사의 흔적이 새겨져 있었다.
역사 이해를 도와주는 장소에 가면, 나는 즐거워진다.

4) 더위 때문에 고생한 여행이기도 하다.
매우 무더웠던 여행이었다. 40도를 넘어가는 날이 여러 번이었다.
여행에서 날씨가 무척이나 중요함을 다시 한 번 느꼈다.
계절별로 여행하기 좋은 나라들이 있다. 지금까지는 그것을 생각지 않았다.
그래서 때로는 최악의 날씨를 경험하며 여행했던 적도 있었다.
지난 해 4월 태국 여행이 그랬다. 태국을 여행하기에 가장 안 좋은 달이 4월이란다.
앞으로는 더욱 환상적인 여행을 위해 날씨와 여행지의 문화까지 파악하여 떠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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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미(이슬람 사원) 이야기를 쓰려는데,
문득 '낭만 유럽여행'이란 폴더와 자미가 어울리지 않음을 느낀다.
유럽에는 자미가 없다. 성당이 있을 뿐이다.
지난 해 두 달 가까이 유럽을 돌아다니며
도시마다, 마을마다 줄곧 방문한 곳이 성당이었다.

여행 중 만난 길동무 중 몇몇은
"이제 성당은 지겹다"고 할 만큼 유럽엔 성당이 많다.
이 말에 동의하지만, 유럽을 이해하고 유럽여행을 제대로 즐기려면
성당을 지겨워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성당마다 역사가 깃들어 있고, 기독교 없이 유럽을 이해할 수 없으니까.

터키에 오니, 성당 자리를 자미가 대신하고 있다.
터키에는 성당과 자미가 결합된 형태도 있었고, (이즈니크의 아야소피아 성당처럼)
지척의 거리에서 서로를 바라보는 성당과 자미도 있었다. (이스탄불의 블루모스크와 아야소피아)
한 공간에서 서로 다른 역사가 함께 존재하는 것을 보는 재미가 터키 여행의 즐거움 중 하나다.
즐거움이긴 하나, 블로깅 하려니 폴더 분류가 애매한 것이다.

이것은 터키의 지정학적 위치가 만든 고민이다.
터키는 유럽과 아시아에 걸쳐 위치하는 나라다. (아시아에 속하는 영토가 훨씬 많긴 하다.)
만약 이스탄불을 여행하지 않았더라면 당연히 터키는 아시아 여행에 넣었으리라.
허나, 나의 터키 여행은 이스탄불에서 시작되었고,
이스탄불은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두 대륙에 걸쳐 위치한 도시다.
보스포루스 해협을 기준으로 서쪽은 유럽이고, 동쪽은 아시아다. (아래 그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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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상, 이번 터키 여행은 유럽 여행에 편입하기로 했다.
특히, 터키에서 20km 떨어진 도시 이즈니크는 아시아에 속하지만,
그리스와 이스탄불 여행 말미에 붙은 짧은 여행임을 감안하여 유럽 여행에 포함하였다.

이즈니크에는 아야소피아 성당과 예쉴 자미, 그리고 이즈니크 호수가 볼 만하다.
성당과 호수에 대해서는 앞선 블로그에서 소개했고, 오늘은 예쉴 자미 차례다.
이즈니크는 시내를 둘러싸고 있는 성벽안에 볼만한 것들이 몰려 있고,
서쭉 성벽에서 동쪽 성벽까지 1.2km 이니 20분이면 동서를 가로지를 수 있는 마을이다.

예쉴 자미는 시내의 중심은 아야소피아 교회에서 동쪽으로 난 도로를 따라
걸어서 1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에 있다.
예쉴 자미는 1378년에 착공하여 1392년 오스만 제국의 3대 술탄인
무라드 1세 때 완공되었다. 조선이 개국된 것이 1392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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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쉴'은 녹색이라는 뜻이다. 예쉴 자미는 미나레의 색깔 때문에 지어진 이름이다.
'자미'는 이슬람 사원을 지칭하는 터키어다. '꿇어 엎드려 경배하는 곳'이라는 뜻이다.
미나레는 첨탑을 의미하는데, 예쉴 자미의 미나레는 그림과 같이 녹색을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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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미의 미나레는 두 가지 기능을 한다.
하나는 외부인에게 자미의 위치를 쉽게 알려 주는 기능이다.
이즈니크에서 실제로 이 미나레 덕분에 자미를 찾기가 쉬웠다.
또 하나는 예배 시간을 알려 주는 기능이다.
높은 곳에서 소리치면 더욱 잘 퍼져 나가기 때문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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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쉴 자미는 이즈니크의 대표 자미답게 주변을 작은 공원처럼 꾸며 놓았고,
발을 씻는 수도꼭지도 많았다. 터키의 모든 자미에는 이 수도꼭지가 있다.
나도 발을 씻고 있는 터키인 옆에 자리를 잡았다.
씻기 전에 눈여겨 보아 어찌해야 하는지를 익혀 둔 터였다.
나는 발을 씻고, 수돗가 한쪽에 비치된 높은 굽의 나막신을 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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굽이 높고 바닥이 딱딱한 신발인데, 가죽끈만 있어 빨리 걸을 수가 없다.
신발은 놓치지 않기 위해 천천히 걸어가야 하는데,
덕분에 자미로 향하는 20~30m 의 짧은 거리를 경건하게 지나갈 수 있었다.
신발을 벗고 자미 내부로 들어섰다. 내부에는 여자와 아이들만 있었고,
신발장 양 옆으로 카펫이 깔려 있는 곳에 남자 5명이서 함께 코란을 외고 있었다.
거기에 합류하려는데 진행자인 듯한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들어가도 되나요?
나는 눈짓과 몸짓으로 물었고, 그는 편안한 시선을 던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 뒤에 자리를 잡았다. 네 명이 나란히 앉았고 앞쪽에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나를 마주보고 앉은 그 남자의 눈에 띄지 않게 사진을 찍고 나도 무릎을 꿇고 앉았다.
5명의 이슬람 교도와 1명의 개신교 신자가 하나의 공간에서 함께 예배를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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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이들은 금방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도 함께 일어나야 했다.
혼자 남아 있기도 매우 어색한 상황이었다.
뒤따라 나오면서 슬쩍 자미 내부를 다시 들여다 보았다.
경건한 분위기라 내부를 찍을 순 없었다.
입구에 노인네들이 앉아 있었기에 방해가 될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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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의 '술탄 아흐메트 1세 자미'는 수많은 관광객으로 인해
관광 명소에 와 있다는 느낌이었지만, 예쉴 자미는 달랐다.
경내 벤치에 앉아 남자들이 예배를 드리고 나오는 장면과
젊은 여인들이 코란을 들고 자미로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터키가 이슬람 국가임을 온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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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301년, 알렉산더 대왕의 부하 중에 '리시마코스'라는 장수가 있었다.
그는 이스탄불에서 남동쪽으로 약 200km 떨어져 있는 호반의 도시를 점령했다.
도시의 이름을 자신의 아내인 니카에아 (Nikaea)의 이름을 따서 니케아로 명했다.

니케아는 기독교가 공인된 313년 이후 비잔틴 제국의 기독교 중심 도시가 되었다.
325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아리우스파를 정죄하는 종교회의가 니케아에서 열렸던 게다.
이것이 역사상 첫번째 종교회의로 불리는 니케아 공의회였다. 

<아리우스파>

초기 기독교 역사에서는 수많은 이단이 있었고, 그 중에서 가장 큰 세력이 아리우스파다.
아리우스파는 예수의 신성을 부정하여 기독교의 이단이 되었지만,
그 세력이 날로 더해가 7세기에 이슬람교가 되어 또 하나의 종교를 이루었다.


오늘 나는 니케아로 왔다. 니케아의 오늘날 이름은 '이즈니크'다.
오스만 제국의 2대 술탄인 오르한이 니케아를 점령하여 이름을 이즈니크로 바꾸었다.
1331년의 일이었다. 이때부터, 질 좋은 점토가 생산되어 타일 도시라는 닉네임이 붙은 이즈니크.

이스탄불의 예니 카프 페리 선착장에서 얄로바까지는 페리를 타고,
얄로바에서 이즈니크까지는 '돌무쉬'라 불리는 벤을 타고 이동했다.
'돌무쉬'는 승객이 차면 떠나는 승합차인데, 장거리 마을버스인 셈이다.

이즈니크의 3대 볼거리는 니케아 종교회의가 열렸던 아야소피아 교회,
그린 모스크라 불리는 예쉴 자미, 그리고 이즈니크 호수다.
아야소피아 교회는 787년 니케아 종교회의가 열렸던 그 건물이다.

이즈니크의 아야소피아 교회


아야소피아는 원래는 교회였지만, 오스만 제국의 점령 이후 '자미'로 바뀌었다.
건물은 3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가운데 부분이 높이 솟아 오른 부분이 원래의 교회 부분이고
양쪽의 영역은 자미로 개조하면서 증축한 것이라 한다. (아래 이스탄불의 역사 참조)

<이스탄불의 간략 역사>

왕조가 바뀌면서 도시의 이름도 바뀌어져 온 도시, 이스탄불!
이스탄불은 로마, 동로마 제국, 오스만 제국으로 이어지면서 122명의 통치자가 지배했던 도시다. B.C. 7세기 비자스라는 그리스인이 톱카프 궁전 자리에 도시를 건설하여 비잔티움이라 명했다.

이후 여러 차례 주인이 바뀐 비잔티움은 196년에 로마의 영토로 편입되었고,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수도를 비잔티움으로 옮기고 이름을 콘스탄티노플로 바꾸었다. 395년 로마는 둘로 나뉜다. 5세기에 서로마는 멸망하지만, 동로마 제국은 천년간 번성한다. 

1453년 오스만 왕조의 술탄아흐메트 2세가 콘스탄티노플을 장악하고 도시 이름을 이슬람교가 번성하라는 뜻의 '이스탄불'로 개명하였다. 이후 성당은 자미(이슬람 사원)로 바뀌었고, 코란 경전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이스탄불 개명의 역사를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비잔티움 (로마 이전) → 콘스탄티노플 (동로마 제국)  → 이스탄불 (오스만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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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즈니크에는 큰 호수가 있다. 터키에서 다섯 번째로 큰 호수다.
호수를 처음 봤을 때에는 '이게 호수야? 바다지' 였다.
끝이 보이지 않는 호수였다. 중국 항저우의 서호가 떠올랐다.

서호의 둘레는 15km다. 얼핏 보면, 바다 같지만 둘레가 가늠된다.
서호10경이라 불리는 명소가 있고, 관광 호텔과 사람들이 많은 서호에 비해
이즈니크 호수는 조용하고 여유로웠다. 내가 이 곳에 온 까닭은 갖춘 셈이다.

숙소를 시내가 아닌 호숫가에 정한 것은 잘한 일이다.
노란색의 호텔은 호수와 가까웠다. 찻길 하나만 건너면 바로 이즈니크 호수다.
투숙객이 적어 호숫가로 낸 발코니가 있는 방에 묵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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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묵었던 호텔 (CEM 글자 바로 아래에 있는 방)


저녁 7시가 넘어갈 무렵, 태양을 집어삼키려는 호수의 모습이 호텔 창밖으로 보였다.
나는 카메라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호숫가 벤치에 앉아 태양을 바라보았다.
태양이 하루 일을 마치고 휴식하러 가는 이 즈음, 태양도 나도 관대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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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즈니크 호수로 떨어지는 석양


이 무렵의 붉은 태양은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는 이에게서 눈부심을 걷어간다.
덕분에 나는 선글라스 없이도 한참 동안 태양을 쳐다 볼 수 있다.
머나먼 낯선 도시에서 여유롭게 하루를 마무리하는 기쁨.

소박하지만 깊은 기쁨이었다. 나는 삶을 생각했고, 꿈을 상기했다.
태양 한 번, 하늘 한 번 쳐다보지 못한 채 지내온 서울에서의 날들을 돌아보았다.
내가 앉았던 저 벤치와 같은 여유로운 순간들을 날마다 만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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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즈니크 호숫가의 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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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시 30분이 채 되지 않은 시간에 숙소에 돌아왔다.
여행 일정을 일찍 마무리한 것은 저녁 식사를 느긋하게 즐기고
내일 '이즈니크'로의 1박 2일 여행을 준비하기 위해서다.

이스탄불의 한국 식당에 가방을 맡겨 둘 참이다.
일행들과의 마지막 식사를 했던 곳, <서울정>이다.
사실, 부탁을 드리지 못하는 성정이라 맡기기로 결정하기까지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즈니크로 들고 갈 소지품과 맡겨 둘 짐을 정리하고,
한국에서 걸려 온 전화 통화를 하고 나니 6시가 되었다.
유럽의 6시는 식사하기에 이른 시각이다. 밖은 환하고, 레스토랑은 한산하다.

어슬렁거리다가 마음에 드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식당 입구에 비치된 메뉴판을 보니 가격이 만만치 않다.
참 분위기 좋았던 세븐힐레스토랑에 비하여 그리 저렴하지도 않다.

하지만!
한 번 쯤은 술탄아흐메트 거리에서 식사를 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어느 새, 나는 테이블에 앉아 메뉴를 들여다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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믹스케밥


카리쉬크 이즈가라(믹스 케밥)라는 터키 전통식을 주문했다.
14 유로짜리, 터키의 레스토랑에서는 비싼 축에 속하는 메인 메뉴다.
양꼬치, 그릴드 치킨, 미트볼 등이 약간의 샐러드와 함께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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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의 대표 맥주, EFES와 함께.


식사를 하며, 술탄아흐메트의 거리를 쳐다 본다.
내가 자리한 식당 바로 건너편에는 베스트웨스턴 호텔이 있다.
베스트웨스턴 호텔과 연관된 추억들이 줄줄이 떠올랐다.

지난 해, 비스바덴에서 <베스트웨스턴> 호텔에 묵었고, 
2010년 월드컵 그리스 전은 <베스트웨스턴 강남>에서 을 보았다. 
같은 호텔은 아니지만, 스무 살 무렵 <웨스턴조선비치>에서 비싼 햄버거를 사 먹었던 기억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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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웨스턴 호텔


여유롭게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나니 7시가 넘은 시각이다.
노트북을 꺼내어 메일 회신을 하고, 와우카페를 둘러 보니 8시가 넘었다.
8시가 되니 술탄아흐메트 거리의 레스토랑에 활기가 돌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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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8시 10분 경의 술탄아흐메트


왠지 밤이 되면 기분이 날아갈 것 같은 날이 있다.
그 날이 오늘일지는, 해가 떨어지기 시작할 무렵이면 느낄 수 있다.
오늘이 그런 날은 아니다. 오늘은 기분이 들뜨지는 않지만 차분하게 좋은 날이다.

식사값을 계산하니 19유로였다.
맛난 식사와 2시간 30분 동안의 여유 시간을 생각하면 비싸지 않다.
한국에서도 한 달에 두 번은 홀로 이렇게 식사할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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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은 떠나고 나는 남았다.
그들이 향한 곳은 대한민국 서울이고,
내가 남은 곳은 터키의 심장 이스탄불이다.

우리는 열흘을 함께 여행했다.
크루즈를 타고 에게해의 아름다운 풍광을 즐겼다.
산토리니는 쪽빛 바다, 푸른 하늘, 새하얀 집들이 참 예뻤다. 명성 그대로였다.

산토리니의 피라 마을


크레타 섬에서는 『그리스인 조르바』의 저자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무덤에 들렀다.
그의 영혼 앞에서, 그가 쓴 책을 읽었다. 나도 자유로웠다.

로도스 섬에서는 함께 바닷물에 뛰어들었다.
햇살은 매우 강렬하여 맨발로 백사장을 밟기 힘들 정도였지만,
우리들의 즐거움도 아주 진하여 바닷물에서 나와야 하는 시간이 야속할 정도였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에서는
사부님(구본형 선생님)과 파르테논 신전을 함께 돌며 사진을 찍었다.
짧은 15분의 자유시간이 사부님으로 인해 의미가 되었고, 추억이 되었다.

메테오라의 수도원도 잊을 수 없다.
절벽 위에 지어진 수도원의 모습은 그야말로 절경이었다.
7월에 이어, 8월에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다녀 왔구나! (7월엔 하회마을)

이런 일정을 함께 했던 일행들이 어젯밤 떠났다.
홀로 하룻밤을 잤고, 홀로 아침을 맞았다.
이야기하며 먹느라 30~50분은 걸렸던 아침 시간이 15분으로 단축되었다.

일행 중의 한 분이 말했다. 함께하다가 홀로 남은 여행은 '고약한 방식'이라고.
일전에 남편과 함께 여행하다가, 남편은 일 때문에 먼저 귀국하고 홀로 남았던 적이 있다고 했다.
그 때, 눈물이 나더란다. 그리고 결심했단다. 다시는 이런 여행을 하지 않으리라고.

나도 예전에 일행과 함께 다니다가 홀로 남아 여행한 적이 있다. (2002년, 2009년)
지난 해, 소중한 분들(바로 어제 떠난 그 분들)과 함께 크로아티아에 갔었다.
열흘을 함께 한 뒤, 홀로 남아 44일을 여행했다. 그리고 결심했다. 내년에도 이렇게 여행하자고.

일년이 지났고, 오늘은 지난 해의 생각이 실현된 첫 날이다.
좋아하는 음식, 선호하는 음악이 서로 다르듯이 여행하는 방식도 서로 다르다.
나는 나만의 여행 스타일을 찾고자 여러 번 여행을 다니며 스스로의 즐거움을 비교해 보았다.

나는 홀로 여행하는 것만을 고집하지 않는다.
추억과 즐거움은 함께 여행할 때 더욱 많이 가지게 되는 나다.
하지만 홀로 여행하는 것도 매우 즐겁고 의미가 있다.

내가 이스탄불에 남은 이유는 '홀로 여행하기' 위함이다.
홀로 여행할 때, 나는 머무르고 싶은 곳에 마음껏 머물 수 있다.
하명없이 걸을 수도 있고, 카페에서 두어 시간 글을 쓸 수도 있다.

홀로 떠나는 여행은 내게 사색, 자유, 학습의 다른 이름이다.

<생각꺼리>
여행하는 방식이 다르듯, 살아가는 방식도 서로 다르기 마련이다.
자신만의 삶을 산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과는 조금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것은 두렵고 부담스럽고 조금은 위험한 일이다. 그래서 자신만의 삶을 포기한다.
그 대가는 우울, 권태, 무기력, 재미없음, (꿈을 향한) 절절함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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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