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기 전에 주머니 속의 돈을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돈을 벌지 말자는 뜻도 아니고, 돈의 중요성을 폄하하려는 생각은 추호도 없다. 돈을 버는 활동만큼이나 주어진 것에 대한 감사한 마음과 살뜰한 관리도 중요하다는 의미다. 시간도 마찬가지다. 시간이 부족하다고 섣불리 말하기 전에 주어진 시간을 살뜰히 경영하고 있는지 살펴야 한다.

 

그렇지만 인지상정은 어쩔 수 없다. ‘읽을 책은 많은데… 시간이 부족하다’는 생각 말이다. 24시간을 들여다보면 낭비하는 시간들이 있기 마련이지만, 그 낭비의 틈을 다 메꾼다고 해도 읽고 싶은 책을 다 읽을 수는 없다. 인생의 필멸성과 시간의 유한함이 삶의 본질이니까. 결국 아쉬움을 줄여주는 것은 ‘욕망의 우선순위’와 ‘살뜰한 시간 관리’에 대한 지혜로운 실천이다.

 

이 같은 사유에 다다르면, 강렬한 감정을 느낀다. 시간을 허투루 쓰고 싶지 않아진다. 소중한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어진다. 가장 중요한 일에서부터 하나씩 집중하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독서 생활도 점검할 수밖에 없다. 아무 책이나 읽을 수가 없다. 지금 손에 들고 있는 책은 나의 장서에서 가장 훌륭한 책인가를 자문하게 된다. 어려워서 이해가 안 되는 책이라면, 내가 이해하는 책 중에서 가장 훌륭한 책이기를 바란다.

 

나는 한 지성인과 깊이 교감한다. “이왕 신문을 구독할 바엔 왜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신문들을 받아보지 않는가? 유아용 죽 같은 읽을거리를 뜯어먹는 일은 제발 그만 두자. 모든 학회의 보고서가 우리에게 도착하도록 하자. 그래서 그들이 알고 있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살펴보자. 왜 우리가 읽을 책의 선정을 유명 출판사나 서점에 맡겨야 하는가?”(소로우, 『월든』)

 

이 말은 시간의 유한함에서 빚어낸 결론이 아니었다. 가벼운 읽을거리만을 읽는 세태를 향한 충언이었다. 소로우는 앞에서 “(가벼운 독서 취향은) 시력의 감퇴, 혈액순환의 장애 그리고 지적 능력의 전반적인 위축 내지는 퇴보만을 가져 온다”고 썼다. 그런데도 이러한 시시한 빵은 “어느 집의 부엌에서나 매일 구워지고 있으면 시장성도 확실하다”고 개탄했다. 유한한 시간 탓이든 시시한 책들이 난무해서든, ‘왜 가장 위대한 책을 읽지 않는가’ 라는 질문이 가슴에 남는다.

 

지적 생활자로서의 다짐이 또렷해진다. 훌륭한 책만을 읽어야겠다! 세 가지의 분명한 이유가 있다. 첫째, 훌륭한 책은 많지만 읽을 시간이 유한하다(시간의 유한함). 둘째, 세상에는 시시한 책들이 넘쳐나니 자칫하면 훌륭한 책들과 멀어질 수 있다(시시한 책의 무한함). 세번째 이유는 현재적인 가치가 넘쳐난다. 시시한 책들을 읽으며 열불 내거나 아쉬움을 느끼기보다는, 위대한 책들을 읽으며 감탄하고 깨우치는 일이 정신 건강에 유익하다.


오늘 나는 책장의 한 칸을 비웠다. 그 칸에다 ‘나에게 필요한 책들’이라고 이름 붙였다.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내가 가진 장서 중에서 가장 훌륭한 책은 무엇인가?(위대한 책들) 어떤 책이 지금의 고민과 나의 심리적 병통을 해결하는데 도움이 될까?(현재적인 책들) 앞으로의 내게 필요한 지혜, 지식, 기술을 채워줄 책은 무엇인가?(생산적인 책들) 나의 일상을 아름답고 창의적이고 풍요롭게 만들 책은 무엇인가?(낭만적인 책들)


물음에 답하는 스물다섯 권의 책으로 빈 칸을 채웠다.

날마다 시간을 아끼고, 시간을 내어, 계속 읽어가겠다.

나의 내면과 일상을 더욱 잘 가꾸기 위하여. (연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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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휴일 오후, 느긋한 시간이었다. 양평 서재의 책들을 만지작거리며 이리 옮기고 저리 옮기다가 밀란 쿤데라의 『향수』를 발견했다. '쿤데라의 책이 여기에 있었구나.' 이 책을 찾았던 것도 아닌데, 반가웠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와 같은 제목이지만, 서로 다른 의미의 단어라는 사실을, 책 뒤표지를 보고야 알았다. 쥐스킨트 책은 화장품의 하나인 향수(Perfume)였고, 쿤데라 책은 그리워하는 마음의 향수(Nostalgia)였다. ‘쥐스킨트의 『향수』는 읽었으니, 언젠가 밀란 쿤데라의 『향수』도 읽어야지’ 하는 치기 어린 생각을 하면서 뒤표지의 글을 읽었다.


"그리스어로 귀환은 '노스토스'이다. 괴로움은 '알고스'이다. 노스토스와 알고스의 합성어인 '노스탤지어' 즉 향수란 돌아가고자 하는 욕망으로 인해 생긴 괴로움이다. 향수는 무지(ignorance)의 상태에서 비롯된 고통으로 나타난다. 너는 멀리 떨어져 있고, 나는 네가 무엇이 되었는가를 알지 못하는 데서 생겨난 고통. 잃어버린 유년기 또는 첫사랑에 대한 욕망."


예전에는 이해하지 못했을 법한 문장인데, 이제는 제법 이해하겠다. ‘무지에서 비롯된 고통’이라는 말이 가슴을 친다. 사랑하는 연인과 헤어지고 나면, 그이의 일상이 궁금해도 물어볼 수가 없다. SNS의 흔적으로 확인하더라도 마주앉아 두 눈을 바라보면서 나누는 대화나 다정한 문자 메시지와는 비교할 수가 없다. 그녀의 삶에 대한 궁금증을 갖는 일이 어리석은 줄 알면서도 안부를 찾게 되고, 다른 연인을 만났는지도 궁금하다. 알고 싶은데 알 수가 없다. 이때의 감정을 궁금함으로 표현할 수가 없다. 차라리 고통에 가깝다.


꼬리를 무는 생각을 하면서, 책을 여기저기 넘겨보다가 깜짝 놀랐다. 책의 곳곳에 밑줄이 그어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책을 읽은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내가 그 책을 읽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순 없었다. 군데군데 쓰인 메모는 내 필체가 분명했으니까.


어떤 책을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 헷갈리는 일은 종종 벌어지기에 새삼스러운 건 없지만, 막상 당사자로서 순간적으로 드는 감정은 경악이었다. 뒤표지의 문구는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도 향수가 화장품인지, 그리움인지조차 새까맣게 잊어버리다니! 시간이 지나 다시 생각해 보니, 읽었는데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책이 있다는 사실은 ‘상쾌한’ 충격이다. 나는 읽은 책을 잘 기억하는 편인데도 불구하고 '이럴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삶에 관한 또 하나의 진실 한 조각을 주운 느낌에 미소를 짓기도 했다. 누구나 자신의 과거를 모두 기억할 수 없다는, 그리고 메모까지 해 놓아도 새까맣게 잊기도 하는 게 우리의 두뇌라는 사실 말이다.


얼마 전, 비전과 목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강사의 강연을 들었다. 긴 강연이 끝나고 자신의 이야기로 강연을 마무리했다. 강사의 사례도 30분 가까이 진행되었다. 강사는 열정적이었고, 명석했다. 자신감과 열의도 있었다. 많은 도전을 감행했고, 하나의 도전이 성공에 이르지 못하면 새로운 목표를 세워 다시 도전했다. 그의 이야기를 모두 듣고 난 후, 나는 이런 결론을 내렸다.


'지금의 그를 만든 힘은 비전과 목표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재능이 무엇인지를 아는 자기이해 그리고 새로운 분야에도 거침없이 도전하는 하는 자신감과 도전정신이다.' 게다가 그는 비전과 목표를 신중하게 세웠다. 그가 20대 중반에 작성한, 무려 6페이지에 달하는 인생 로드맵은 감동적이었다. 그는 여러 차례에 걸쳐 비전과 목표를 수립한 것이 자신을 성공으로 이끌었다고 말했다. 감동과 분석은 별개다. 나는 동의하기 힘들었다.


비전과 목표가 포함된 인생 로드맵은 그의 성공을 설명하는 한 가지 요인임에는 틀림없지만, 그것만으로 그의 성공을 모두 설명할 수가 없었다. 자신의 경험 너머를 사유하지 못하고, 타인의 입장을 공감하지 못하는 경험주의자들은 인식의 편향성에 곧잘 빠진다. 굳이 경험주의자가 아니더라도 인식의 편향성은 어디에서나 자주 발견된다. 젊었을 때부터 비전에 관심이 많았던 어떤 사람이 비전에 관한 책을 읽었다고 사정해 보자. 그는 자기 삶을 들여다보며 생각할 것이다. '내 삶에도 비전이 큰 역할을 해 주었군.'


만약 그가 실행력에 관한 책을 읽는다면, ‘실행력이 매우 중요하군’ 이라고 생각하면서 실행력이야말로 주요한 성공요인이라고 판단할 확률이 높다. 우리는 어떤 주제를 인식하고서야 비로소 그 주제의 유용성을 깨닫는 동시에 그 주제만큼만 인식의 편향에서 벗어난다. 그날의 강의는 강사 자신의 성공을 다양한 프리즘으로 들여다보지는 못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가 무엇 덕분에 성공하고 성장했는지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자신도 기억하지 못하는 어떤 책, 어떤 만남, 어떤 사건이 우리를 크게 도왔을 수도 있다. 심지어는 결정적인 도움이었음에도 우리가 그것을 잊었을 수도 있다. 『향수』를 읽었다는 사실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 나처럼 말이다. 우리가 책만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만난 사람도 잊어버리지 않은가. 심지어는 고마움을 느꼈던 은인도 잊어버린다. 헤세의 소설을 보라. 데미안은 싱클레어를 어둠의 세계로부터 구원해 주었다.


싱클레어는 “그 구원이 어린 시절의 삶에서 가장 큰 체험”이라고 느끼면서도 데미안을 잊고 살았다. “고마움의 감정이란 도무지 신뢰할 만한 미덕이 아니다. 그런 걸 어린아이한테 요구하는 것은 잘못된 일 같다. 그런 만큼 내가 데미안에게 보여준 철저한 배은망덕은 아주 이상할 것도 없다.” 이렇게 은혜를 입은 사람도 잊는 게 우리들인데, 고작 읽은 책이야 아무렴 어떠한가. 그러니 어떤 책을 읽었는지 아닌지 도무지 헷갈리더라도 자괴감에 빠져들 필요는 없다. 읽은 책을 몽땅 잊어버려도 괜찮다. 더러 위대한 지성인들(이를테면 몽테뉴)도 꼼꼼하게 읽은 책을 잊기도 하니까.


덧#1. 배은망덕을 옹호할 생각은 없다. 우리는 싱클레어가 어린이였음을 기억해야 한다. 어린이들은 이해하지만, 배은망덕을 일삼는 성인이라면 정신적, 인격적 성숙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덧#2. 책을 기억하지 못하는 원인 중의 하나는 부주의하게 읽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러한 부주의함을 옹호하지도 않는다. 정성을 기울여 책을 읽고 사람을 만나도, 세월은 우리의 기억을 앗아가기도 한다는 사실을 넉넉하게 받아들이고 싶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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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들의 책만큼은 읽으며 살아야지’ 하고 생각하지만, 매년 독서 목록이 쌓여간다. 그럴 수밖에 없다. (모든 수상자의 작품을 다 읽을 수도, 읽을 필요도 없지만) 수상자들이 100명을 넘어선 데다 다작하는 작가도 많다. 반면 나는 1인 독서가이고, 읽는 속도도 느려 터졌다. 이것은 자기비하나 체념이 아니다. 정확한 현실 인식이다.

 

독서 목록이 쌓여가는 원인은 또 있다. 나의 문학 사랑이 스스로 기대하는 만큼 깊지 않을 가능성! 나의 일상을 돌아보면 문학보다 사랑하는 것들이 많음이 분명하다. 문학보다 더 많은 시간을 주고 있는 것들이 존재한다는 말이다. 문학을 제외하고서도 명저들의 목록은 끝이 없다. 문학만을 사랑하기에는 독서 욕심이 너무 많다.

 

나의 문학 사랑의 깊이 역시 현실 인식이다. 현실 인식은 종종 자괴감을 동반하지만, 열정을 부르기도 한다. (열정(Passion)의 어원에는 고통이라는 의미도 담겼다. The passion of Christ의 뜻이 그리스도의 ‘열정’이 아닌 ‘수난’이듯이.) 읽고 싶어 안달이 난 길고 긴 독서 목록을 지닌 나로서는 절망도 희망도 없이 말한다. “문학 작품 읽기의 최대 적은 독서다.”

 

노벨문학상 수상작 발표일에 반짝 문학에 관심을 갖는 정도는 아니지만, 문학에 헌신하는 삶을 사는 것은 분명 아니다. (비교조차 민망하지만, 신형철을 보라. 그가 “읽고 쓰는 것이 내 삶의 대부분”이라고 했던가.) 원인 하나 더! 밥벌이라는 실존도 무시할 수 없다. 나는 미래에 이룰 ‘소원’뿐만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의 ‘실존’에서도 잘 살아내고 싶다.

 

어제 문학을 좋아하는 분들과의 식사자리에서 모옌과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잠시 언급되었다. 그때 '동양권 노벨문학상 작품만이라도 틈날 때마다 읽어둬야겠다'고 생각했다. ‘동양’이라는 문화적 동질감은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보다 모옌과 야스나리의 소설의 가독성을 높인다. 두 작가와 더불어 내가 좋아하는 오에 겐자부로까지 읽어야지, 하는 마음이 들었다.

 

이것은 독서 의무론이 아니다. 노벨문학상이 아니라 부처문학상, 하나님문학상이라 할지라도 독서가 의무가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이렇게 덧붙이고 싶다. “독서 목록은 부담과 의무가 되기 직전까지만 유효함을 잊지 말 것. 그렇지 않을 조짐이 보이면, 목록을 던져버린 후 삶을 생각하고 여유를 회복하고 인생의 목적을 상기할 것.”

 

지혜롭고 자유로운 선택이 삶을 빛낸다. 책읽기에서도 마찬가지다. 즐거운 독서 생활을 영위하려면 무엇보다 독서 의무론에서 벗어나 자유를 만끽해야 한다. 독서 쾌락론이라 부를 법한 그 비결이란 다음과 같다.

 

첫째, 각종 추천 목록을 쓰레기통에 집어던지기. 고전이든, 노벨문학상 수상작이든 예외 없다. 둘째, 마음이 동할 때 끌리는 책 읽기. 독서보다 더 잘 즐길 수 있는 여가가 있다면 굳이 책과 놀지 않아도 된다. 셋째, 책을 손에 들었다면 책 속으로 몰입하기. 몰입해야 한다는 규범 명제가 아니다. 몰입할 수밖에 없는 책을 읽자는 실존 명제다. 그럴 수 없다면 둘째 원칙으로 돌아가자. 넷째, 느끼고 깨달은 것을 음미 또는 실천하기. 독서 쾌락을 누렸다면 음미와 실천이 없어도 좋다. 음미와 실천 역시 의무론이 아니라 자신의 소중한 시간에 대한 일종의 매너일 뿐.

 

헤르만 헤세는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많이 읽고 많이 아는 게 아니라, 명작들을 자유롭게 선정하여 일과 후 그것에 몰입함으로써 인간이 생각하고 추구한 것들의 너비와 깊이를 깨닫고 인류의 삶과 심장의 소리에까지 이르는 것”이라 말했다. 인류와 자기 심장의 두근거림을 듣는 독서! 이것이 내가 추구하는 책읽기요, 노벨문학상 수상작보다 중요한 목표다. (2015.10.08)  사용자 삽입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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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 세계를 조금은 안다. 머릿속에는 수세기에 걸친 고대 그리스의 역사와 황금빛 아테네의 지적 유산들을 꿰어 찬 지식 꾸러미가 있다. 최근 수년 동안 호메로스와 비극 작가(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를 읽었다. 플라톤의 대화편과 헤로도토스의 『역사』도 어설프게나마 공부했다. 고대 그리스는 내 독서 인생의 중요한 경유지다. (어쩌면 최종 목적지나 지적 고향이 될는지도….)


아테네 여행을 하다 보니, 첫 문장을 다시 써야겠다. “고대 그리스를 조금은 안다고 착각했다!" 너무 많은 것들을 모른 채로 그리스에 왔음을 여행 둘째 날부터 절감했다. 헬라어는 알파벳조차 몰랐고, 굿모닝에 해당하는 아침 인사 ‘칼리메라’조차 이곳에 와서야 외웠다. 지역어를 모르고 여행지에 관한 지식이 없어도 여행은 아름답고 우리를 깨우칠 힘을 지녔지만, 아름다움을 체험하고 성장하는 일은 언어와 지식의 수준에 영향을 받는다.


파르테논 신전에 관해서는 얼마간 알았다. 46개의 도리아 양식 기둥을 가진 파르테논 신전은 아테나 여신에게 봉헌한 건축물이고, 건축가 페이디아스의 감독 하에 기원전 5세기 중엽에 지어졌다. 페리클레스 통치 시대의 일이다. 하지만 아크로폴리스에 파르테논 신전만 있는 건 아니었다. 신전 입구인 프로필라이온과 에레크테이온 신전, 아테네 니케 신전도 있다. 이들에 관한 나의 지식은 세밀하지 못했다. 설명의 재미를 더해 줄 이야기도 빈약했다. 

 
입술을 통해 해방되지 못한 그리스 신화 이야기 몇 조각이 머릿속을 떠다닐 뿐이었다. 보는 것마다 공부거리들을 함께 목격했고, 발길이 닿는 곳마다 나의 무지도 밟고 싶었다. 적잖은 텍스트를 읽고 왔지만, 아테네를 여행하니 나의 지식은 알량했다. 동행들의 물음에는 “모르겠네”를 연발해야 했다. 더 놀라운 점도 있다. 여행이 진행되는 ‘현장’에서 무지를 절감했음에도, 글을 쓰는 ‘관념의 공간’에서는 내가 무엇에 무지했는가를 잊어버린다는 사실이다.


현장은 무지와 호기심 투성이었는데, 관념의 공간에서는 망각과 자기기만이 가득했다. ‘그래도 조금은 아는데…’ 하는 생각마저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현장에서 무엇을 모르고 무엇이 궁금했는지조차 세세하게 떠올리지 못했다. 몰랐던 점을 구체적으로 기억하지 못하니 지식을 채우기가 어렵다. 채우더라도 내게 익숙한 것으로만 덧칠할 뿐 기질적으로 간과하기 쉬운 영역은 여전히 채색되지 못할 것이다. 총천연색 세상을 몇 가지 색으로만 표현하는 꼴이다.


현장의 공간과 관념의 공간에서 느끼는 지적 감수성이 다르다는 사실이 새삼 경악스럽게 다가왔다. 모른다는 사실조차 망각함은 지적 성장의 장애물일 뿐만 아니라, 자기 이해의 방해꾼처럼 느껴져서다. 그래서일까. 자기 이해를 지닌 이들은 몹시 드물고, 자기를 안다고 착각하는 이들은 부지기수다. 자신이 모르고 있음을 깨닫지 못하는 상태에서는 성장이 더뎌진다. 모르고 있음에도 안다고 착각하면, 다른 이들과 대화를 나눌 때 상대에게 답답함을 안긴다.


오늘은 소크라테스의 감옥(역사학자들에 따르면, 이곳은 실제 소크라테스의 감옥은 아니다)과 필로파포스 언덕을 오르는 날이다. 6년 전에도 방문했던 곳이다. 당시의 나는 별반 감흥을 느끼지는 못했다. 6년이라는 세월은 전혀 무지했던 주제에 눈을 뜨기에는 넉넉한 시간이다. ‘그때보다 깊은 단상에 잠길 수 있을까?’ 나도 궁금하다. 이번에는 적어도 2천 5백년 전에 살았던 위대한 철학자의 음성이 마음 속으로 들려올 것 같다. “너 자신을 알라!(γνῶθι σεαυτόν 그노티 세아우톤)”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을 지금의 내게 적용하면 다음과 같지 않을까? ‘아크로폴리스에서 드러난 너의 무지를 기억하라!’ 소크라테스는 이런 말도 했다. “당신이 가질 수 있는 보물 중 좋은 평판을 최고의 보물로 생각하라. 명성은 불과 같아서 일단 불을 붙이면 그 불꽃을 유지하기가 비교적 쉽지만, 꺼뜨리고 나면 다시 그 불꽃을 살리기가 지난하기 때문이다. 좋은 평판을 쌓는 방법은 당신이 보여주고 싶은 미덕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나는 지성을 갖추고 싶다. 내게 지성인이란, 박식함보다는 합리적 사유와 삶의 지혜를 갖춘 인물이다. 그리고 자기기만이 아닌 자기이해를 추구한다. 자기 명성에 거품이 있다면 스스로 걷어내는 사람이 내가 꿈꾸는 지성인이다. 잠시 후, 필로파포스 언덕에 서면 아크로폴리스가 한 눈에 들어올 것이다. 아크로폴리스에서 발견한 나의 무지와 내 지식의 속살도 함께!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고대 건축물을 바라보며 내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헤아려야겠다. 그리스의 지적 유산을 깊이 이해하기 위하여. (연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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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 접붙임을 위한 독서


나에게 독서란, 이해되지 못했는데도 머리를 굴리기 싫어서 계속 책장을 넘기거나 또는 주의가 산만해져 의식하지 못한 채로 몇 줄을 눈으로만 읽었는데도, 무언가 노력하고 있다고 자위하는 기만적 행위가 아니다. 독서를 진지하게 대한다고 해서, 반드시 마지막 장까지 끝내야 하는 의무도 아니다. 독서가 누군가에게 자랑하기 위한 성취는 더더욱 아니다.


삶은 때때로 고되고 힘겹다. 그러니 자신만의 유희를 창조하면 좋다. 내게 독서는 즐거운 유희다. 또한 독서는 지적 생활이다. 행복한 인생을 위해서는 지혜가 필요하다. 지혜는 책 속에 거주한다. 나는 지혜를 찾고 싶을 때마다 책을 펼쳐 시간을 투자한다. 독서는 실용적인 유익도 제공한다. 자녀를 낳았지만 교육이 걱정인 이들에게, 리더가 되었지만 리더십이 없는 이들에게, 사회에 첫 발을 딛었지만 처세의 감각이 없는 이들에게 책은 벗이었고, 교사였다.


나 역시 '더 나은 삶의 창조'를 꿈꾸며 책을 읽는다. 독서를 통해 더 나은 삶을 창조하려면, 지금 손에 든 책의 세계로 걸어 들어가야 하고, 저자와 정신의 대결을 펼쳐야 하고, 책의 세계에서 빠져나와 자신의 일상으로 책의 내용을 불러들여야 한다.


나는 접붙임을 하는 원예사처럼 책을 읽어왔다. 책을 읽을 때마다 나의 시시한 삶을 원대한 책의 세계에 접목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것은 아래 세 가지를 실천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한 권의 책을 읽었다면, 당신이 이해한 저자의 생각을 정리하고, 일상을 바꿀 실천을 시작하고, 책이 유혹하는 공간으로 여행을 떠나자!


1) 저자의 관점에 공감하기! 동의하지 않더라도 이해해야 한다. 이해가 곧 동의는 아니기에 반대하는 주장에 전염될 염려는 없다. 오히려 명확한 이해만이 자기 인식을 확장시키는 동시에 자기 인식의 경계를 명확하게 그어 준다. 최고의 학습자만이 ‘타자화’에 이른다. 타자화란, 그 사람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그 사람의 실천대로 삶을 살아보는 사유이자 행위다. 이해만이 타자화를 돕는다. 타자화에 성공할수록 관점이 넓어지고 지성이 깊어진다. 새로운 세계를 이해할수록 우리의 도약이 높아지고, 변화가 가속화된다. 
 
2) 자신의 일상을 변혁하기! 삶을 바꾸는 첫걸음은 오늘을 다르게 사는 것이다. 일상을 재편해야 삶이 달라진다. 실천이 존재를 바꾼다. 실천의 편식을 지양해야 한다. 어떤 사람은 좋아하는 것, 자신이 이해한 것만을 실천한다. 이미 충분한 성공과 지혜를 누리고 있다면 문제가 없지만, 지금까지 얻었던 것들이 시시했다면 실천의 폭과 질이 달라져야 한다.


때로는 이해하지 못했더라도 실천해야 한다. 실천이 이해를 돕기 때문이고, 우리의 이해 너머에 있는 지혜도 많기 때문이다. “모든 여행은 여행자가 인식하지 못하는 비밀 목적지를 가지고 있다.” 마르틴 부버의 말이다. 현명한 여행자는 삶이라는 오딧세이를 겸손하게 항해한다.


3) 새로운 세계로 여행하기! 공간은 생각의 산파다. 새로운 공간에 당도하면, 정신도 새로운 사유에 이른다. 나는 한 권의 책을 읽을 때마다 책이 이끄는 공간으로 여행을 떠나기 위해 노력한다. 저 먼 나라도 좋고, 집 앞 공원도 좋다. 새로운 정신과의 조우가 있는 떠남이라면 훌륭한 여행이다. 독서가 추동하는 여행을 감행하고 즐기다 보면, 어느 새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을 누리고 있는 나를 만난다.


『데미안』을 읽었다면 헤세의 고향 ‘칼프’로 가야 할까? 그러면 좋겠지만 대안은 많다. 자신만의 ‘데미안(나를 찾아가는 여행의 안내인)’이 있었다면, 그와 함께 만나 시간을 보내는 건 어떨까? 도서관에 가서 헤세의 관한 자료와 책을 더 찾아보는 건 어떤가? 자신을 성찰하게 되는 ‘나만의 성소’를 찾아가거나 파주 출판도시의 북카페 <헤세>로 가서 『데미안』을 읽은 소감을 정리해도 좋겠다. 우리나라 작가의 책이라면 선택의 폭이 늘어날 것이다. 상상력과 용기를 발휘한다면!  사용자 삽입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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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3가지 원칙으로 책을 산다(클릭)"에 이어지는 포스팅입니다.>


1.

'오예~! 기쁨이 몰려온다. 나는 자유다. 의무를 완수했을 때의 이 기쁨! 규율이 빚어내는 자유의 이 달콤함!' 나는 책 구입의 자유를 얻었다. 거저 주어진 자유가 아니기에 기쁨이 진했다. 9월 2일 오전, 카뮈의 『이방인』 서평을 쓰고 난 후,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켜낸 황홀경을 누렸다. 최선의 성실함으로 보낸 날들 후에 만끽하는 휴가처럼, 혹독한 훈련 뒤에 맛보는 휴식 시간처럼, 짜릿한 성취감과 달콤한 자유를 맛보았다.




2.

한 달 동안 여섯 편의 서평을 썼다. 지난 달에 구입했던 책값 6만원에 값하는 독서적립금을 모두 쌓았다. 이로써 새로운 책을 구입할 자격을 얻었다. 기쁨이다. 잠시 읽은 책들을 돌아본다. 문학을 읽는 즐거움이 컸다. 전영애 교수님을 (비록 책을 통해서지만) 만난 울림도 컸다. 카뮈는 여전히 나를 위로하고 나아갈 비전을 제시한다. (부조리 인간이 되자! 반항하는 인간을 향해 성장하자!)  




3.

유혹은 도처에 널려 있다. 헤세는 『데미안』의 첫 챕터 '두 세계'에서 밝은 세계와 어두운 세계가 뒤섞여 있음을 기가 막히게 제대로 보여주었다. 그리고서 이렇게 썼다. "가장 이상한 일은 두 세계가 나란히 붙어 있다는 것이었다. 두 세계는 얼마나 가까이 붙어 있었던가!"(안인희 역) 적립금을 지키고자 하는 나의 열망을 무너뜨리려는 유혹은 어디에나 있다. 매혹적인 신간은 매주 쏟아지고, 서점에는 읽고 싶은 텍스트(책과 잡지)들이 넘쳐난다. 오늘은 인터넷 서점에서 '열린책들 창립 30주년 기념 세트' 소식을 전해왔다.




강력한 유혹이다. 지난 주에는 <씨네21>을 사 들고 계산대 앞에까지 갔다가 단돈 4천원일지라도, 잡지일지라도 규율을 어길 수 없다며 나를 다독이며 돌아섰다. 열린책들 30주년 기념세트는 족히 10분은 갈등하게 만들었다. 12권 모두 12만원에 불과하고(다른 판본의 정가 대비 52% 할인된 금액), 30주년인 만큼 기념 표지와 특별한 제본으로 만들었다. 


'이걸 구입하면 앞으로 12편의 서평을 더 써야 한다'라는 생각과 '아! 책장에 꽂아두고 싶은 책들이구나' 하는 열망 사이에서 갈망했다. 어제 도착한 6만원어치의 책들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결국 구입하더라도 6편의 서평을 쓰고 난 후의 일로 결정했다. 그 전에 1만권이 모두 팔리면 어쩔 도리가 없다. 이번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고, 독서적립금의 규율을 잘 지켜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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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떤 책은 우리를 새로운 세계로 이끈다. 많은 식자들이 인문 고전으로부터 통찰, 지혜, 영감을 얻는다. 인문 고전은 탐나는 영역이지만, 오르기가 만만치 않은 산이다. 유익이 큰 만큼, 지적 임계점이 높다. ‘고전의 책장을 넘기다 보면 뭔가 달라지겠지’ 하는 기대감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들이는 시간과 노력이 커야 한다. 진득한 노력을 싫어하는 이들은 어디에나 있다. 일부 독자들은 인문 고전마저 가볍게 읽으려는 마음으로 쉬운 길을 찾는다. 결국 서너 권 만에 고전을 포기하고 본래의 독서로 되돌아간다.

 

2. 때로는 예술이 길을 안내한다. 영화 <히말라야>는 고전 읽기의 여정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보여준다. 히말라야에 오르려는 초보 산악인들은 우선, 무거운 짐을 지고 북한산을 오르는 훈련을 통과해야 했다. 숱한 훈련을 감행했고, 여러 개의 작은 히말라야들을 올랐다. 그렇게 등반가의 태도와 체력을 키우고 동료들과 함께 히말라야에 도전했다. 인문 고전도 마찬가지다. 공부하는 마음을 다잡고, 기본 지력을 키우고, 좋은 동료와 함께 하면 좋다. 처음부터 히말라야에 오르기가 힘겹다면 북한산이라도 올라야 한다. 북한산마저 힘들다면 동네 뒷산이라도!

 

3. 인문 고전은 지적 히말라야다. 히말라야가 초보 산악인에게 자신의 정상을 내어주는 일은 드물다. 동네 야산을 오르는 샌들 차림으로 히말라야를 오를 순 없다. 인문 고전도 마찬가지다. 포기하자는 말이 아니다. 최근 몇 해 동안 인문 고전을 읽으라는 동기부여가들이 많았다. 인문 고전 읽기는 그들의 말처럼 수월하지는 않다.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고 효과적으로 준비해야 히말라야에 오를 수 있다. 쉽지 않음을 인식하고 출발하자. 샌들이 아닌 등산화를 신자. 기꺼이 지적인 노력을 기울이겠다는 태도로 지성과 감수성을 겸비할수록 즐겁게 읽어낼 고전이 늘어날 것이다.

 

4. 지적 히말라야에 오르기 위한 핵심 훈련은 지성사에 대한 이해다. 요컨대 ‘역사화’가 고전 읽기의 키워드다. 당대의 역사적 상황 속에서 한 권의 책을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인류의 지성이 성장해 온 흐름과 역사를 알수록 고전이 살갑게 다가온다. 문학이든, 철학이든 그 작품을 지성사의 맥락에서 해석하면, 고전 독해의 질이 달라진다. 지성사를 다룬 책들(문예사조사, 문명사 등)은 대개 엄청난 분량을 자랑하는데, 찰스 반 도렌의 『지식의 역사』는 그나마 도전해 볼 만하다. 고전 한 권을 읽기 위해 지성사까지 공부해야 한다고?’ 라고 의아해하지 않는 것이 고전 독서의 첫 걸음이다.

 

5. 목표에 이르려면 동력이 필요하다. 동력의 근원은 두 가지다. 스스로의 내면에서 동력을 끄집어낼 수도 있고, 고전 읽기 모임에 참여함으로 구속력을 부여할 수도 있다. 자력과 조력이 서로 어우러지면 최상이다. 독서 모임 참석이 주는 상황의 구속력은 분명 얼마간의 동력이 되지만, 임계점 돌파에 필요한 지적 노력이 동반되지 않는다면 동력의 고갈은 시간문제다. 혼자 읽든, 함께 읽은 작은 ‘결실’이라도 맛보는 것도 중요하다. 고전 읽기의 즐거움이나 의미, 유익을 경험하면 독서가 지속되기 때문이다. 투자되는 자원(시간, 돈, 노력)에 비해 고전 읽기의 결실이 지나치게 미미할 때에는 개인이든 모임이든 힘을 잃고 만다. 맹목적인 고전 읽기의 쓸쓸한 결말이다.

 

6. 멀리 내다보려면 때때로 거장의 어깨에 올라서야 한다. 고대 그리스의 고전을 여러 권 읽고 나서도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면, 앙드레 보나르의 『그리스인 이야기』, 키토의 『고대 그리스, 그리스인』를 읽는 것은 어떤가. 도대체 왜 그리스 비극이 고전이 되었는지 이해되지 않는다면 김상봉의 『그리스 비극을 위한 편지』를 권하고 싶다. 정상에 올라 선 이들의 감격과 깨달음이 가득한 책들이다. 아직 베이스캠프에 머문 이들에게는 이들의 함성과 조언이 필요하다. 인문 고전 입문자에게는 이런 노력조차 힘들게 여겨지겠지만, 결실이 크고 달콤하다고 말로 유혹하고 싶다.

 

7. 어떤 주제든지 탁월한 셰르파(안내자)가 존재한다. 르네상스 문학의 작품들을 읽는다면, 우선 <1417년, 근대의 탄생>을 읽는 게 좋다. 르네상스가 무엇인지를 설명하지 않고 보여주는 책이다. ‘포조’라는 한 인문주의자가 루크레티우스의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를 발견하고, 번역하고, 필사하는 이야기를 통해 ‘르네상스’라는 단어가 영화처럼 생생하게 다가올 것이다. 그런 후 『햄릿』과 『수상록』을 읽으면 깊은 독서가 된다. 르네상스의 본질인 인문주의와 개인주의를 이해하지 못한 채로 읽는 『햄릿』은 우물쭈물한 주인공이 어색한 대화를 남발하는 삶의 고뇌 이야기로만 읽힐 수도 있다. 고전이 지난하게만 읽힌다면, 시대마다 존재하는 셰르파를 찾자.


<사족>

* 7가지 조언이라는 제목과는 달리, 한 가지 조언의 확장입니다. 제목이라도 근사하게 달아보고 싶었네요. ^^

* 고전 읽기가 예상보다 어렵더라도 포기하지 말자는 글입니다. 노력이 클수록 결실이 달콤할 겁니다. 힘을 냅시다~

* 모두가 히말라야에 올라야 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나를 성장시킬 한 단계 높은 지적 목표를 열망하자는 권유일 뿐.

* 2010년을 전후하여 시작된 인문고전 읽기 열풍이 가볍게 끝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러려면 동기부여를 넘어 인문고전 독서를 위한 디테일한 안내를 제공할 셰르파가 필요하겠지요.

* 결국 훌륭한 고전 입문서의 필요성을 강조한 글입니다. 지적 히말라야마다 훌륭한 셰르파가 존재합니다. 고전이 어려우면, 그런 책들을 찾아 읽으세요. 

* '하반기에는 고전 읽기의 기본기를 다질 지성사 수업을 할까' 하는 생각도 이 글을 쓰면서 했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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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화 <해운대>의 한 장면! 부산이 바다에 잠겼다. 점봇대의 전류가 물 속으로 흘러들어 사람들이 감전을 당했다. 모두가 똑같은 모습으로 사지를 고통스럽게 뒤흔든다. 만화에서처럼 머리에서 연기가 피어오르지는 않았지만, 몸이 떨리고 있음만은 선명히 보였다.


전기만이 전율을 선사하는 것은 아니다. 몸이 떨릴 정도의 감격을 안기는 책들이 있다. 전율을 선사하는 작가나 사상가들의 책이 그렇다. 몇 줄을 읽다 보면, 감탄하여 더 이상 책을 읽지 못하게 만드는 이들! 나에게 니체와 푸코는, 영원히 전율의 작가로 남을 것 같다.


(20대에는 파커 파머, 피터 드러커, 스티븐 코비가 전율을 안겼다. 구본형, 강준만, 고종석, 김영하도 내겐 전율의 작가였다. 달라스 윌라드와 필립 얀시의 글도 경이로웠다. 30대에는 에리히 프롬, 수잔 손택, 카프카, 호메로스, 벤야민에게서 전율을 느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커다란 전율을 선사한 이가 니체와 푸코다.)



2.

"2016년은 일년 내내 고대 그리스의 고전을 읽었다." 언젠가 '나의 2016년 지적 생활'을 돌아보며 이렇게 말하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물론 글쟁이라는 직업 특성상 그리고 주의력 부족으로 다른 분야의 책도 읽게 되지만, 올해의 우직한 바구니에 가장 많이 들어 있는 책은 그리스의 고전들이다.


플라톤의 대화편을 대여섯 권 읽었고, 소포클레스의 비극도 여러 편 읽었다. 헤로도토스의 『역사』,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뒷세이아』의 상당 분량을 읽었다. 남은 4개월 동안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투퀴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읽을 계획이다.


3.

가을이나 초겨울, <리버럴 아츠를 공부하라>나 <범람하는 인문학>(모두 가제)이 출간되면 <고전 100권 읽기> 모임을 시작하고 싶다. 오래 전부터 가져온 생각이지만, '내가 무슨 고전 모임을...' 이라는 자격지심으로 실행을 미뤄왔었다. 책 출간이 나름의 생각으로는 '자격 획득'이라도 되는가 보다. 출간을 생각하면 용기가 생긴다.


Season One은 그리스 고전이다. 첫 책은 『오뒷세이아』로 정해 두었다. 『그리스 비극 걸작선』, 『소크라테스의 변명』, 『고르기아스』, 『국가』, 『헤로도토스의 역사』, 『니코마코스 윤리학』,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등으로 이어가면 어떨까 한다. 이 고전들이 좋은 분들과의 지적 교류를 마련해 주었으면 좋겠다. 물론, 용기를 내어 시작하는 몫은 내게 있을 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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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삶을 돕는 사유와 영성이 깃든 그리스 기행 에세이! 내가 이 책을 한 마디로 소개한다면 그렇다. 그리스에 관심을 갖게 만드는 대중적인 교양 에세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림 한 장으로도, 탐스러운 먹거리로도, 묵고 싶은 호텔만으로도 여행은 시작될 수 있다. 저자의 경우는 어떨까? 왜 그리스일까?


"나는 세상이 나를 휘젓지 못하도록 현실적 욕구를 실현하고 싶었다. 경쟁 속에서 구질구질해지는 현실을 벗어나려는 욕구 또한 그 못지않았다. 사람 속에서 섞여 떠들기를 좋아하면서도, 어느 날은 배낭을 메고 깊은 산속 동굴로 들어가 홀로 머물었다. 양극단을 오가느라 분주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종교적 진리를 철학적 의문에 답해야 하고, 말뿐인 깨달음은 자비의 실천으로 나타나야 하며, 영성을 합리적 지성과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은 더욱 간절해졌다. 그리스로 발길이 향한 것은 그래서였다. 피안을 향한 구도의 여정에선 묻지 못한 좀 더 구체적인 물음을 통해 우리가 겪는 현실적 모순을 풀어내고 조화를 이루고 싶었다."(p.9)


2.

저자 조현은 '영성'을 취재하는 기사다. 영성 자체를 취재할 수는 없다. 영성가, 종교인과 인터뷰를 하거나, 영성이 깃든 성지를 다녀와 글을 쓴다는 말이다. 책날개의 소개에 따르면, 그는 세계일보사를 거쳐 1996년부터 한겨레신문사에서 일했다. 사회부, 정치부 근무를 하다가 종교분야를 자원했단다. 마음, 영성, 치유, 봉사, 공동체에 관한 기사를 쓴다고.


나는 그의 여러 전작 중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을 읽었었다. 스테디셀러라 기대하며 손에 잡았지만, 내게는 내용이 두루뭉술하고, 관념적이었다. 본론이 시작되려는 찰나 글이 끝나버리는 느낌이었다. 나의 영성이 둔감해서인지, 실제로 책이 그러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시 읽으면 알게 되겠지만, 모든 호기심을 해갈할 필요는 없다. 지금 내게 중요한 것은 『그리스 인생 학교』와 나와의 만남이 어떠했는지 살피는 일이다.


3.

책은 16개의 장에서 14개의 지역을 다뤘다. (아토스 산과 아테네가 2장씩 할애됐다.) 아테네, 델포이, 메테오라, 크레타, 산토리니, 트로이(는 그리스는 아니지만), 스파르타 등을 다뤘다. 눈부신 여행지보다는 영성과 삶을 사유하기에 좋은 지역 위주다. 미코노스와 나프폴리오가 빠졌고, 여행지로서는 매력이 덜한 스파르타와 아토스 산이 포함됐다. 특히 아토스 산은 여행지가 아니라 성지다. "아토스 산은 세계에서 유일한 수도원 공화국이다. 짐슴도 암컷은 들어갈 수 없는 유일한 금녀 국이다."(p.19)


책의 첫 장을 여는 지역이 바로 아토스 산이다. 1장은 가장 영성적인 장이다. 초반부터 "내 책은 이런 성격이오"라고 넌지시 알려주는 느낌이다. 예약을 하지 않아 수도원에 가까스로 들어가는 모험담(?)도 재밌지만, 여러 영성가의 일화를 들먹이며 애욕에 관해 서술한 내용도 인상 깊었다. 가벼운 에세이라 깊이 있게 다루기보다는 독자들에게 가벼운 사색거리를 던지는 식이다.


"돈과 여자가 없으면 오직 그것만 생각하게 된다." <탈무드>에 나오는 말이란다. 저자가 설명을 덧붙였다.

"인간이란 돈이 없으면 돈이, 짝이 없으면 짝이, 집이 없으면 집이, 직업이 없으면 직업이 곧 모든 고민을 일소시켜 주고 행복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맹신하며 집착하는 청맹과"(p.37)라며, 1장의 말미에서 플라톤의 말을 소개했다. "남이 아닌 자신을 정복한 자가 고결한 최상의 승리자다."


4.

이처럼 『그리스 인생 학교』는 삶에 관한 '영성적 사유', 고대 그리스라는 '지적인 문화'로 이끄는 책이다. 그리스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은 두 단어, 낭만과 지성을 버무려낸 나라다. 쪽빛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선 상큼발랄한 여대생 그리고 내셔널 지오그래픽 잡지에 나올 법한 옷차림으로 델피의 신전에 머무는 학자들은 사뭇 다르다. 모두가 그리스다. 이 책은 후자의 느낌이다. 고고학이나 역사학보다는 종교학에 가깝지만.


5.

그리스 여행을 위한 준비하는 이들에게 이 책은 무엇일까? 여행을 떠나려면 두 가지가 필요하다. 끌림과 정보! 끌림이 있어야 여기를 과감히 떠난다. 정보가 있어야 거기에 제대로 도착한다. 끌림이 감성적이고 정신적인 준비물이라면, 정보는 이지적이고 실제적인 준비물이다. 여행자에게 『그리스 인생 학교』는 그리스에 관한 끌림을 안기는 책이다. 그리스의 맛집이나 동선, 지명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는 여행 가이드에서 찾고 이 책에서는 그저 끌림을 만나면 되리라.


그리스를 통해 인간은 정신 세계를 거닐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책이다. 영성이나 성찰이라는 단어를 좋아하든 그렇지 않든, 이 책은 재밌게 읽힐 것이다. 누구나 삶을 사는 중이고, 이 책은 삶에 대한 사유를 던지기 때문이다. 그리스 문명에 관한 사전지식이 없어도 괜찮다. 저자가 쉽게 설명하기 때문이다. 그리스 관련서를 처음 읽는 독자에게도 쉬이 읽힐 거라 예상한다.


현대 그리스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다는 점(책은 고대 그리스의 지적 유산에 초점을 맞췄다), 자주 인용된 그리스 고전 문헌들의 출전이 제대로 표기되지 않은 점(그래서 관심 있는 구절의 원전을 찾아 읽기가 힘들었다)은 아쉬웠다. 이 책의 결함이 아니라 나의 욕심에서 기인한 아쉬움이다. 이 책의 장점은 그리스어에 대한 이해나 그리스 여행에 관한 실제적인 정보가 아니다. 함께 이 책을 읽는 이들은 이렇게 말했다.


"언젠가 여행기를 쓴다면 이 책처럼 성찰이 깃든 책을 쓰고 싶어요. 저는 빌 브라이슨보다 이 책이 재밌었어요." "와우의 연장선 같은 느낌이었어요. 나를 끄집어내는 책이었어요." ('와우'는 자기이해를 돕는 교육 프로그램이다.) 자기 성찰로의 초대! 이것이 이 책의 두드러진 미덕임을 느끼게 하는 말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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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저자는 오카자키 다케시, 1957년생이다. 삼촌 나이라 생각하니 친근감이 생긴다. 주름살이 어느 정도일지, (사람마다 천양지차일) 흰머리의 비율도 상상해 본다. 일본 저자의 책을 읽기는 오랜만인데, 오랜만에 만난 낯설음이 ‘삼촌 상상’으로 친근함으로 바뀐다. 저자와 삼촌의 결정적인 차이는 그는 독서와 더불어 살고, 삼촌은 책과는 거리가 먼 분이라는 점이다. 저자는 젊은 날엔 국어교사로, 30대 중반 이후로는 집필에 매진하며 서평가로 활동해 왔다.


2.
추천의 글부터 읽었다. 누군가가 내게 ‘독서가 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누구입니까’ 라고 물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은 장정일이다. (이어서 이현우, 한기호, 고명섭이다.) 『장정일의 독서일기』는 무려 7권까지 나왔고, 책 이야기를 담은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도 3권까지 출간됐다. 장정일의 광팬이라 자처하는 출판 편집자 김영훈 씨는 『장정일의 독서일기』의 문장을 뽑아 『이스트를 넣은 빵』이라는 책으로 냈다. 추천의 글은, 그 지독한 독서가 장정일 씨가 썼다.


추천의 글이 인상적이지는 않았다. 이 책이 장정일 선생에게 영감을 안긴 독서는 아니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무난하고 덤덤하게 책을 소개한 느낌이다. 한 대목이 기억에 남는다. 전자책의 시대가 오면, 장서가와 독서가가 구분되리라는 말이었다. 내가 어떤 독서가인지 돌아보게 한 그의 설명을 보자.


“책이 물질인 한, 책 한 권을 읽고 나서 거기에 어떤 가치나 감정을 부여하거나 읽고 난 책을 곁에 쌓아두기만 해도 자연히 장서가가 되는 구조가 성립한다. (중략) 책이 물질성을 읽고 난 전자서적 천지에서는 독서가와 장서가가 분명히 나뉠 것이다. 전자책을 읽은 독자가 그 단계에서 정보를 얻거나 이용하는 것에 만족한다면 독서가가 되고, 거기에 만족하지 못하고 ‘책’이라는 물질을 추구하면, 그때에야 비로소 장서가가 탄생하는 이원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나는 장서가다. “장서가가 장서가인 이유는 장서가가 책을 읽는 독서가와 사뭇 다르게 존재하기 때문”(장정일)이다. 독서가도 물론 책의 내용을 중요시한다. 책에 고명한 정신이 담겼기를 바란다. 장서가는 거기에 한걸음 더 나아간다. 같은 내용, 같은 번역일지라도 표지나 장정이 바뀌거나, 편집과 디자인이 달라지면 그 책을 다시 구매하고 싶어한다.(나는 실제 구매하는 경우도 있고, 절제하는 경우도 있다.)


3.
책은 14장으로 구성되었다. 전반부는 집이 책의 무게를 견뎌내지 못하고 무너질 위기에 처한 사례가 등장한다. 목조를 기본재로 하는 일본 주택의 특성이라 다행이라 생각하게 읽었다. 책장에 대한 이야기, 장서가의 서재 편력 이야기 등이 흥미로웠다. 저자의 개인적인 이야기 뿐만 아니라, 다양한 독서가와 장서가들의 사례가 소개된 점이 이 책의 미덕이었다. 남의 집은 흘낏 구경만 해도 힌트를 얻기 마련이니까.


4.
장서가 1~2백 l권 정도이거나 책을 소장하지 않은 독서가에게 이 책은 타문화를 읽는 교양서이리라. 장서가 1만원을 넘는 내게 이 책은 실제적인 실용서로 읽혔다. 14개의 장이 끝날 때마다 저자가 제안한 교훈 중 몇 가지는 일본의 문화에서만 적용되는 지침도 있지만, 2번, 4번, 10번, 14번은 정말 유용했다. 책의 전반적인 내용을 보여주기도 하는 14가지의 교훈은 아래와 같다.


1) 책은 생각보다 무겁다. 2층에 너무 많이 쌓아두면 바닥을 뚫고 나가는 수가 있으니 주의하시길.
2) 그 순간 자신에게 신선도가 떨어지는 책은 일단 손에서 놓을 것.
3) 헌책방에 출장 매입을 부탁할 때에는 어떤 책이 얼마나 있는지 명확히 전달해야 한다.
4) 책장은 타락시킨다. 필요한 책은 곧바로 손에 닿는 곳에 있는 게 이상적.
5) 책은 상자 속에 넣어두면 죽는다. 책등은 늘 눈에 보이도록.
6) 책장은 지진에 약하다. 지진이 나면 책이 흉기가 될 수 있다.
7) 장서는 불에 잘 탄다. 자나 깨나 불조심!
8) 책은 집에 부담을 준다. 집을 지을 때는 장서의 무게를 계산해 두자.
9) 트렁크 룸을 빌렸다고 안심해선 안 된다. 조만간 꽉 차버린다는 것을 유념하자.
10) 진정한 독서가는 서너 번 다시 읽는 책을 한 권이라도 더 가진 사람이다.
11) 생활력과 수집력을 갖추려면 규칙적으로 생활해야 한다. 그래야 가족도 이해해준다.
12) 종이책을 사랑하는 사람은 전자책이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장서의 괴로움을 해결하기 어렵다.
13) 수수한 순문학 작품을 팔아버리더라도 도서관에 가면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폐가 서고를 확인할 것.
14) 장서를 한꺼번에 처분하고 싶다면 ‘1인 자택 헌책시장’을 추천! 잘 팔기 위한 핵심은 책값 매기기에 있다.



오른쪽에서 세번째 인물이 오카자키 씨 (출처는 오마이뉴스 윤성근 님 기사 "헌책방의 여자 누드사진")



5.
장서의 괴로움은 꽤나 크다. 보관하는 어려움도 크지만, 장서를 팔 때의 심정은 찢어진다(고 저자는 표현했다). 책과의 이별이 고통스러운데도 장서 관리를 위한 책을 내다파는 일은 중요한데, 저자는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2장 장서는 건전하고 현명하게’에 나오는 구절이다.


"그래도 역시 책은 팔아야 한다. 공간이나 돈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 내게 무엇이 필요한지, 꼭 필요한 책인지 아닌지를 판가름해 원활한 신진대사를 꾀해야 한다. 그것이 나를 지혜롭게 만든다. 건전하고 현명한 장서술이 필요한 이유다. 초판본이나 미술서처럼 수집할 가치가 있는 책들만 모아 장서를 단순화하는 방법도 있지만, 대부분 책이 너무 많이 쌓이면 그만큼 지적 생산의 유통이 정체된다. 사람 몸으로 치면 혈액순환이 나빠진다. 피가 막힘없이 흐르도록 하려면 현재 자신에게 있어 신선도가 떨어지는 책은 일단 손에서 놓는 편이 낫다."(p.31)


6.
4장에는 평론가 구사모리 신이치 선생의 사례가 나온다. 결국 어리석은 장서가로 묘사되는 셈인데, 저자는 이 장을 다음과 같은 말로 마무리했다. 책 전체에서 가장 뜨끔했던 대목이다.


“책을 필요 이상으로 끊임없이 쌓아두는 사람은, 개인차가 있긴 하겠으나 멀쩡한 인생을 내팽개친 사람이 아닌가 싶다. 생활공간 대부분을 거의 책이 점령하는 주거란, 일반 상식에서 보면 아무리 잘 봐주려 해도 멀쩡한 정신은 아니다.  그저 한도 끝도 없이 갖고 싶은 책이 눈앞에 아른거려 책을 계속 살 수밖에 없는 비틀어진 욕망뿐이다. 게다가 그에 대한 반성마저 별반 없다.” (p.65)
 
이것이 『책장의 정석』을 쓴 나루케 마코토 씨의 조언이라면, 나는 그다지 신경쓰지 않을 것이다. 그는 장서가가 아니다. 그래서 장서가를 공감하지 못한다. 『책장의 정석』 역시 장서가의 책장 정리에는 큰 도움이 못 된다. 『책장의 정석』도 300~500권의 장서가를 향한 조언으로 쓰인 책이다. 하지만 오카자카 다케시 씨는 사정이 다르다. 마코토 씨가 저편이라면 다케시 씨는 우리 편이다. 『장서의 괴로움』에서 공감되는 문장이 많이 만난 것도 그와 내가 책에 관해서는 비슷한 유의 사람이기 때문이리라. 그러니 저 구절은 본인께 던지는 충언이기도 할 것이다. 나도 반성하면서 동의한다. “쌓고 무너뜨리기를 반복하는 일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말만 제외하고. (나는 책을 쌓고 무너뜨리는 현장에서 무언가를 많이 줍는다. 지난날들의 추억, 새로운 집필에 대한 착상, 읽을 책들의 목록 등을.)


7.
이 책을 읽은 순서는 이렇다. 먼저 추천의 글(장정일 씀)을 읽었다. 그리고 차례를 읽었다. 다음으로 펼친 곳은 10장이다. 이어서 14장을 읽었다. 차례에서 가장 관심이 갔던 두 개의 장을 먼저 읽은 것이다. 두 개의 장은 내게 아주 유익했다. (직관의 놀라운 힘을 종종 이렇게 경험한다.)


‘10장. 적당한 장서량은 5백 권’의 내용은 제목 그대로다. 5백 권이 장서의 적정한 수준이라는 말인데, 과학적 제안일 수는 없다. 저자의 말마따나, 장서의 규모는 “사람에 따라, 주거환경에 따라 다르다.” 이번 장에서도 공감가는 대목은 부지기수다. 이를 테면 다음과 같은 구절들! “책이 너무 많이 늘어나 따로 방을 구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경우 집세나 임대료가 추가로 들기 마련이다. 책이 별로 없는 사람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지출이다.”(p.146)


5백 권이라는 구체적인 숫자를 제시한 배경은 일본의 걸출한 영문학자 ‘요시다 겐이치’다. “평론, 소설, 수필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가”이를 이룬 요시다 선생에 대해, 문학연구가 시노다 씨는 자신의 책에 이렇게 썼다. “요시다 씨는 ‘책장에 책이 5백 권쯤 있으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시노다 씨의 부연 설명이 가슴을 친다. 지성인에게 ‘5백 권 장서의 실현’이 지니는 가치를 보여주는 말이다.


“책 5백 권이란 칠칠치 못하다거나 공부가 부족하다는 것과는 다르다. 어지간한 금욕과 단념이 없으면 실현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를 실행하려면 보통 정신력으로는 안 된다. 세상 사람들은 하루에 세 권쯤 읽으면 독서가라고 말하지만, 실은 세 번, 네 번 반복해 읽을 수 있는 책을 한 권이라도 더 가진 사람이야말로 올바른 독서가다.” (p.150)


8.
‘14장. 장서를 처분하는 최후 수단’은 ‘1인 헌책시장’을 열어 단번에 책을 처분하라는 내용을 담았다. 간단한 제안으로 끝내면 짧은 분량이겠지만, 여기에는 저자의 헌책 시장 이야기와 저자가 영감을 얻은 또 다른 이의 헌책 시장 이야기로 채워져 꽤나 많은 분량이다. 1인 헌책 시장은 나도 생각해 오던 바라 반갑고 재밌게 읽었다. 1천 권 정도 솎아내어 시장을 연다면, 장서로 인한 복잡한 공간과 나의 마음이 조금은 정돈될 것 같다.


9.
너무 멀지 않은 날에 두 가지를 실천하고 싶다. 1인 헌책 시장과 장서 정리정돈(줄이기)! 쓰고 나니 결국 하나의 목적을 향한 일이다. 장서 500권을 실현할 자신은 없다. 저자도 이렇게 썼다. “어떤 사정이 생겨 2만 권을 5백 권으로 줄여야 하는 날이 온다면, 나는 과연 소장할 책을 선별할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할 수 없다.”(p.151) "한다면 일단 제로 상태로 돌아가서 갖고 싶은 책 5백 권을 새로 수집하는 수밖에 없다. 분명히 말해 책을 생계수단으로 삼고 있는 나의 작업환경에서 5백 권은 매우 곤란한 수치다."(p.152)


곤란하기는 나도 마찬가지다. 책은 학력이 낮고, 혈연과 지연도 미약한 나의 인생을 도약시켜 준 사다리였다. 고층 사다리는 아니었지만, ‘언젠가 거기’에서 ‘지금 여기’로의 전환을 이뤄주었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영원한 사다리도 없고, 영원한 구렁텅이도 없으리라. 어떤 점에서 장서는 내 인생의 구렁텅이가 될 때가 있다. 이사할 때가 그렇고, 책들이 차지하는 공간 비용이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백 권은 도무지 자신이 없다. 1천권 정도는 시도해 보고 싶다. 3천 권 정도는 그나마 현실적이면서도 매우 도전적인 목표인 것 같다.


10.
3천 권 장서가! 나도 모르게 한 숨을 내뱉었는데 동시에 마음속으로는 결의를 다졌다. 오묘한 목표다. 장서 관리에 관한 책을 읽으니, 장서 관리의 의욕이 생겨난다. 장서의 규모를 줄이고 싶은데, 다시 책의 힘을 빌어야 하다니! 아이러니다. 그래도 장서술에 관한 책들을 사지는 말아야지! 아닌가, 새로운 목표를 이루기 위해 얼마간의 투자를 해야 하는 걸까?


새로운 투자를 하든, 현재의 자산을 활용하든, 나는 지금보다 더 나은 장서가가 되기를 꿈꾼다. 숫자보다는 책의 질이 중요함과 숫자도 현실적인 문제임을 고려하면서, 나는 성장하고 싶다. 


Posted by 보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