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인문학 공부는 교양과 지식 쌓기가 아니라, 인간을 이해하고 삶의 지혜를 터득하는 것이다. 인간 이해와 삶의 지혜를 '인문정신'이라 한다면, 인문정신의 함양이 인문학 공부의 목적이다. 어떤 학문이 인간 이해를 돕는가? 이 질문에 제대로 답하는 순서대로 학문을 배열한다면, 문학 역사 철학이 수위를 차지하고 심리학, 종교학 등이 뒤따를 것이다. 문사철은 인문정신을 고양하기 때문에 중요한 것이지, 문사철 지식 자체가 인문 소양은 아니다. 인문학 공부의 최종 실현은 인간다움의 회복이니까.


2.

출판계에 교양과 지식 쌓기 책이 유행인 까닭은, 인문정신을 갖추지는 못했지만 가르치는 일에는 능한 저자들이 인문서를 써내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말하면, 인문주의의 부재가 원인이다. 스스로 인문주의자가 되어야 한다. 인문주의를 이해하지 못한 인문서들이 많이 출간되는 요즘이니까. 인문학자가 되려면 학위가 필요하지만, 인문주의자가 되는 데에는 인문소양으로 충분하다. 나는 인문주의자로서 1) 박학이 아닌 인문정신을 추구하고, 2) 파편적 지식이 아니라 인문정신을 고양시키는 문사철 지식을 탐구하고, 3) 지금 여기를 총체적으로 사유하려고 노력한다. 


3.

인문 소양은 인문학 공부의 개인적 실현으로,

문사철 식견과 인문정신의 조화로 함양된다.


4.

무엇이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가? 인문정신은 이에 대한 답변의 집합이다. 무엇이 나를 나답게 만드는가? 이에 대한 답변들이 개인적 인문정신이다. 그러니 인문 소양을 갖추려면 물음으로 시작해야 한다. 지금 내 삶에 필요한 가치는 무엇인가? 용기가 필요하다면, 용기를 다룬 문사철 텍스트를 읽으며 용기 있는 삶을 사유하자. 플라폰의 대화편 <라케스>를 읽을 수 있겠다. 사람들에게 진솔하지 못하거나 크고 작은 자기기만을 일삼는다면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를 탐구해도 좋을 것이다. 이처럼 문사철 텍스트를 통해 인문정신을 사유하는 것이 인문학 공부다.

 

5.

문사철 텍스트 뿐만 아니라, 예술 작품도 인문정신을 함양한다. 근대 이래, 인류는 이성을 추구하며 계몽주의를 꽃피우고 과학의 세기를 열어젖혔다. 그러는 동안 감수성을 간과했다. 감정은 인간 인격의 본질적 요소다. 고대 그리스인은 예술적 감성의 힘을 알았으리라.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을 관람한 아테네 시민들의 편안해진 얼굴을 두고 '정화(카타르시스)'라고 표현했다. 예술의 힘이다. 예술 작품은 사람들에게 위로, 영감, 사유를 안긴다. 뮤지컬, 연극, 영화, 미술 전시회를 관람하면서도 삶과 사람에 대한 이해, 즉 인문정신이 고양된다.

 

6.

예술 작품을 보면서 나와 우리에게 필요한 인문정신을

사유하는 것도 인문 소양을 함양하는 인문학 공부다.

 

7.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가장 훌륭한 형태의 용기는 희망과는 무관하며 대립적이라고까지 한다." 『미덕이란 무엇인가』라는 책 중, 용기를 다룬 장에 나오는 글이다. 희망이 없다고 용기를 저버리는 것은 용기에 어울리지 않는 행위다. 이로써 우리는 찰나동안 용기에 대해 사유한 셈인데, 인문학 공부의 초간단 사례다. 인문학 공부는 훌륭한 인문서와 사유하는 독자의 만남으로 이뤄진다. 『미덕이란 무엇인가』는 예의, 성실, 용기, 정의, 겸손, 관용, 유머, 정직, 사랑 등 18가지 미덕을 담은 책이다. 추구할 인문정신을 사유하며 읽는다면 인문주의자로서의 행보를 시작하게 될 것이다. 

- 2015. 03. 02

Posted by 보보


갖고 싶은 물건이 있다. 소유하고 싶은 물건의 등장은 인생살이의 평범한 일면인데, 이번엔 좀 특별하다. 몇 해 전부터 이것만큼은 꼭 가지고 싶었다. 답변은 새삼스럽다. '책'이니까. 하지만 보통의 책은 아니다. 거듭 읽고, 깊이 읽어 "이 책을 열심히 읽었다"고 말하기에 부끄럽지 않은 책 몇 권을 갖고 싶다. 이것이 소유인지, 경험인지 모르겠지만(아마 소유와 경험의 합작품이리라), '열 번 이상 읽은 책' 한 권 정도는 소유하고 싶다.


평생을 사는 동안, 홀딱 반해서 빠져들게 된 책 한 권을 갖는 일! 이것이야말로 고상한 삶의 모습 중 하나가 아닌가 생각한다. 동시에 진정한 독서가로 거듭나는 일이라고도 생각한다. "사람들은 하루에 세 권쯤 책을 읽으면 독서가라고 말하나, 실은 세 번, 네 번 반복해 읽는 책을 한 권이라도 더 가진 사람이야말로 올바른 독서가다." 일본의 문학연구가 시노다 하지메의 이 말이, 나는 옳다고 생각한다.


『문학의 역사』의 저자 존 서덜랜드는 "무인도에 살아야 한다면, 가장 가져가고 싶은 책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새커리의 <허영의 시장>을 고르겠다. 나는 이 책을 최소한 100번은 읽었을 것이다." 와! 무려 100번이다! 많이 읽되, 많은 책을 읽지 말라는 격언을 실천하는 대표주자로 삼을 만한 횟수다. 나는 네 번 이상 읽은 책들이 없지만, 반복적인 독서에 대한 존의 찬양(?)에 십분 동의한다.


"다시 읽기는 문학이 제공하는 커다란 즐거움 중 하나다. 위대한 작품의 감동은 고갈되지 않으며, 사실 문학작품은 그런 불멸의 요소들로 인해 위대해진다. 아무리 여러 번, 자주 읽는다 해도, 항상 무언가 새로운 것을 찾아낼 수 있는 법이다." - 존 서덜랜드


나는 거듭하여 읽은 책이 많지 않다. 가장 많이 반복해서 읽은 책은 『포트폴리오 인생』과 『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 정도에 불과하다(두 권 모두 세 번씩 읽었다. 앞의 책은 끝까지 읽지는 못했지만.) 두 번씩 읽은 책들은 여러 권이나 세 번 읽은 책들은 두 권이 전부다. 콤플렉스는 어디에나 존재한다. 외모 뿐만 아니라 학습 태도에서도! 한 가지 주제에 깊이 천착하지 못하는 모습은 나의 공부 콤플렉스다.


문학비평가 모린 코리건은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를 50회 이상 읽고서 책을 한 권 썼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 읽는다』라는 책인데, 서문에서 이런 말을 썼다. "나는 피츠제럴드를 사랑했고, 이 책을 쓰면서 더욱 사랑하게 됐다. 이 책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소설로 떠나는 개인적인 여행이다." 코리건만큼 흠뻑 젖어들어본 책을 갖지 못한 나로서는, 동경하게 되는 말이다.


거듭하여 읽는 책이 꼭 문학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자신의 가슴을 치고 들어온 책이라면 무엇이든 좋다. 나 역시 『포트폴리오 인생』과 『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를 두 권의 책을 한 두 번씩 더 읽고 싶다. 동시에 내 안에 있는 문학을 향한 관심에도 애정을 주련다. "생각이 깊은 사람들은 살아가는 동안 문학과 아주 깊은 관계를 맺기 마련"이라는 서덜랜드의 생각에 동의한다. 폼 잡으며 살고 싶은 나지만, 문학 사랑은 폼을 위해서만은 아니다.


"문학은 우리를 둘러싼 세상을 표현하고 해석하는 능력이 절정에 다다른 인간의 정신"(서덜랜드)이다. 문학은 우리에게 삶의 단면을 보여준다. 된장찌개 속에 파, 두부, 된장이 송송 담겨 있듯이 문학 속엔 일상, 인간의 실존, 삶의 단면이 숨쉬고 있다. 게다가 문학은 삶을 단순화하거나 파편화하지 않는다. 단정 짓지도 않는다. 문학은 지성과 감수성을 장착한 채로 독자들이 삶의 복합성과 불가해성에 다가서도록 돕는다.


결국, 열 번 이상 읽은 문학 작품을 갖고 싶다는 말은 내게 가장 자주 벌어지는 삶의 모습을 넓고, 깊게, 이해하고 싶다는 말이다. 현상을 걷어 본질을, 외양을 벗겨 속살을, 무지를 넘어 지성을 맛보고 싶다는 포부다. 오늘 나는 반복하여 읽게 될 후보작 몇 권을 책상 앞에 올려 두었다. 발췌하여 읽은 『몽테뉴 수상록』을 제외하면 한 번씩 읽은 책들이다. 이들 중 내 인생의 책을 만날까? 설레는 질문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Posted by 보보

#. B씨는 여러 분야의 다양한 책들을 읽는다. 독서모임에서 읽는 책, 선물 받은 책, 강연에서 추천 받은 책 그리고 업무에 필요한 책과 북카페에서 우연히 눈에 들어온 책들이 그의 손에 번갈아 오르내린다. 그의 관심사는 폭넓다. 주변의 상황에 '기민하게' 대처한다. 세상과 더불어 산다는 점에서 이것은 커다란 강점이다. 한 가지를 오랫동안 붙잡고 있으면 싫증나는 기질적 특성대로 많은 것들을 조금씩 알려고 한다는 점은 아쉽다. 대화 역시 여러 주제로 활발하게 의견을 개진하나, 깊이 있게 다루는 주제는 거의 없다.



#. C씨는 한 분야의 책을 심도 있게 읽는다. 분야를 정하면 다른 것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 편이다. 그도 책 선물을 받고 독서모임에 참여하고 북 카페에 가지만, 독서모임에서 다루는 책들은 그의 관심 분야 책을 다루고 북 카페에 가도 서가에서 책을 빼오지 않고 자신의 가방에서 읽던 책을 꺼낸다. 선물받은 책이 자신의 독서 목표와 연결되지 않으면 훗날을 기약하며 책꽂이에 꽂아둔다. 그는 자신의 관심사를 향해 '우직하게' 나아간다. 자신의 관심사로 진행되는 대화에는 깊이 있게 참여하지만, 다른 주제에서는 말수가 적어진다.



누가 올바르게 책을 읽는가? 이에 답변하기가 힘들어야 한다. 질문이 틀렸으니까. 두 사람은 자신에게 어울리는 방식으로 책을 읽어가는 중이다. B에게 한 분야의 책을 수년 동안 읽도록 강요한다면 그의 강점과 생기는 시들고 만다. C에게 다양한 분야의 책을 가볍게 읽기만을 강요한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그는 주제가 너무 자주 바뀌면 정신없고 혼란스러워할 것이다. B는 '기민하게' 읽어야 하는 사람이다. 주변상황에 재빨리 적응하고 대처하면서 말이다. C는 어리석게 비쳐질 정도로 상황에는 관심 끄고 '우직하게' 읽어야 하는 사람이다.


B와 C에게 생기는 필연적인 한계는 어떡해야 할까? 다시 말해, 더욱 발전적인 독서를 할 수는 없을까?


B는 전문성을 쌓기가 쉽지 않다. 피상성이 그의 약점이다. C는 폐쇄적이고 외부 세계에 무관심하다. 자기 세계로 함몰되기 쉽고 사고의 유연성이 떨어질 수 있다. 관심이 여기에까지 이른다면, 태어난 대로 살아가는 것만이 능사가 아님을 깨닫고, 좀 더 노력하고 싶은 사람이리라. 만약 B가 우직하게 읽는다면, 이를테면 폭넓은 관심사 중 한 두 분야의 전문성을 쌓아 올린다면, 자신의 유전자가 주지 못하는 결실까지 맺을 수 있다. C가 자신의 전문성에 다양한 지식을 더한다면, 타인들과 효과적으로 소통하고 전문 지식을 심화시킬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얻는다. 


결론은 간단하다. 지금보다 균형 잡힌 독서를 위해서는 독서 카테고리를 두 개로 삼으면 된다. 우직하게 읽을 책과 기민하게 읽을 책! 독서의 효과를 드높이기 위해서는 두 개의 바구니가 필요한 셈이다.



우직한 바구니에는 전문성을 위한 책들을 담자. 이 바구니의 책들은 몇 권을 읽느냐가 중요치 않다. 오랫동안 얼마의 시간을 투자하느냐가 더욱 중요하다. "한 달에 몇 권의 책을 읽어요?" 얼마 전에 받은 이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다음과 같다. "제겐 권수는 중요치 않아요. 방향과 독서량이 중요할 뿐예요." 요즘에는 틈나는 대로 그리스 고전들을 읽고 있다. 올해는 줄곧 그럴 작정이다. "평생 여러 가지 책을 읽는 것도, 여러 사상가를 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깊이 생각할 수 있는 자기만의 문제를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하이데거의 말이다.


기민한 바구니에는 시대의 화두나 생애주기에 따른 양서를 담자. 전문성만으로는 좋은 삶을 창조하기는 쉽지 않다. 인생은 우리에게 복합적 능력을 요구하니까. 무엇을 읽어야 할지 모르겠다면 문화교양지나 시사주간지와 같은 잡지를 추천한다. <인물과 사상>, <시사IN>, <녹색평론>은 교양인들에게 유용한 정기간행물이다. 직장 초년생이라면 직장 생활에 대한 책을, 아이와의 대화가 힘들다면 커뮤니케이션 책을 읽는 것은 어떤가. 다른 분야의 '전문가'가 추천하는 책들(클릭)도 참고하자. 소중한 이가 선물한 책을 읽는 것도 좋다. 그와의 친밀함을 높여가는 데에 도움 될 테니까. (연지원)  사용자 삽입 이미지


Posted by 보보

1.

제목부터가 신선한 『북유럽 공부법』(북유럽 스타일이 아니라, 북유럽 공부법이라니!), 1만 시간의 법칙을 발견한 심리학자 안데르스 에릭슨의 『1만 시간의 재발견』(에릭슨은 말콤 글래드웰이 『아웃라이어』에서 자신의 실험 결과를 오해하도록 설명했다고 주장했다), 『쓸모없는 짓의 행복』(책 소개를 보니, 자신에게 어울리는 삶의 방식을 찾도록 독자를 자극하고 고무시키는 책이라는 기대감이 모락모락),


『강유석의 착한 중고차』(중고차를 구입할까 하던 차에 만난 반가운 신간), 『강상중과 함께 읽는 나쓰메 소세키』(나는 『고민하는 힘』을 읽은 이후로 강상중 교수 에세이의 팬이 되었다), 『고통에 반대하며』(아우슈비츠 생존작가 프리모 레비의 성찰과 통찰이 깃든 에세이집),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제목에서부터 끌림이 강했다, 이 책의 저자가 누구인지 알자마자 읽기로 결심했다).


알라딘 도서안내 메일



2.

구입 리스트가 만들어지는 경로는 여럿이다. 1) 알라딘에서 보내는 책 소개 메일을 살피다가 좋은 책을 만나는 경우다. 출판사가 제공한 책 소개와 저자 소개를 읽으면서 나에게 필요한지 살핀다. 2) 오프라인 서점을 거닐다가 책을 만나는 경우도 있다. 관심 분야의 주목할 신간들은 주로 이 두 경로를 통해 접하게 된다. 종종 책을 화두로 삼아 대화를 해야 하는데, 이 두 방식은 중요한 신간 지식을 얻는 데에 유용하다.


3) 또 하나의 주요한 경로는 '책'이다. 책을 읽다가 나의 빈약한 지식을 발견하거나, 신뢰하는 저자가 더 읽어야할 책을 소개하는 경우다. 앞선 두 방식이 수동적이고 외적인 경로라면, 이것은 적극적이고 내적인 경로다. 내게 필요한 책을 만날 확률이 높은 방식이다. 4) 다른 사람들의 선물이나 추천도 하나의 경로다. 이때는 대개 전문성보다는 관심사의 확장을 돕는 경우가 많다. 지식인 집단에서의 심도 깊은 대화를 통해 만나는 책을 제외하면.


3.

소개 받은 모든 책을 읽을 수는 없으며, 책들 중 대다수는 기회 비용을 낭비하게 만든다. 세상엔 시시한 책들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커피를 즐기다가 커피의 풍미에 눈을 뜨면 카페를 가리게 된다. 마찬가지다. 독서에 빠져 살다보면 책을 가려서 읽게 된다. 책 고르기가 어려워진다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쉬워진다. 양서들만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게다가 세상에는 평생 책만 읽어도 못다 읽을 만큼의 충분한 양서들이 존재하니까.


하지만 시시한 책들이 더욱 많기에, 외부의 소개나 추천에는 선별 기준을 높여야 한다. 어제 서점에서 발송한 메일에서 『사소한 말 한 마디의 힘』을 소개했다. 사이토 다카시의 책이다. 그는 전달력은 뛰어나지만 통찰력은 아쉬운 작가다. (내게는 그렇다.) 이런 식으로 선택지에서 제외된다. 인터넷 서점 메일 중 가장 양질의 책을 소개하는 쪽은 알라딘이다. (알라딘의 프로모션에 유혹되지만 않는다면, 알라딘 메일링 서비스를 권하고 싶다.)


4.

인터넷 서점의 메일링 서비스를 통해 알게 된 책은 책 소개와 리뷰 등을 검색하면서 읽을 만한지를 살핀다. 인터넷 정보 검색만으로 결정을 못하는 책들도 많다. 『내가 미래를 앞서가는 이유』라는 책은 그런 경우다. 미래학 또는 미래예측서로 분류될 법한 책인데, 책의 저자가 무려 1986년 생이다. 무척 젊다. 한 언론사는 저자를 '일본을 구할 기업가 베스트 10'에 꼽기도 했다. 이 리스트보다 나의 관심을 끈 점은 따로 있다.


미래를 분별하는 키워드로 '테크놀로지'를 다뤘기 때문이다. 테크놀로지, 특히 IT 기술은 내게 무지한 영역이다. IT 기술자들이 쓴 책은 대개 너무 디테일하고 지엽적이다. 전문성이 깊을수록 그런 경향도 짙어진다. 이 책의 저자는 기업가다. 테크놀로지를 거시적 관점에서 실용적으로 접근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다. (이 책은 괜찮을 것 같지만) 젊은 저자의 책에 실패한 적이 많으니, 서점에 가서 한 챕터를 읽어보고 결정해야겠다.




5.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는 가장 먼저 구입하여 읽고 싶은 책이다. 이 책의 제목을 보자마자 내 작은 눈이 커졌고 힘이 들어갔다. 누구나 가해자의 어머니는 아니라는 점에서 저자의 이력은 특별한 지위를 가질 수밖에 없다. 내용에 진솔한 고민이 담겼으면 훌륭한 책일 테고, 고통을 통한 통찰마저 더해진다면 매우 탁월한 책일 거라는 호기심을 품고 인터넷 서점에 들어가서 책소개를 확인했다.


"1999년 4월 콜럼바인고등학교의 졸업반 학생 두 명이 별 다른 이유 없이 학교에서 총기를 난사해 같은 학교 학생과 교사 13명을 죽이고 24명에게 부상을 입힌 후 자살했다. 피해자가 아이들이고, 가해자가 아이들이었기에 사회적인 파장은 더더욱 컸다. 사건 당시 가해자들의 나이는 17살이었다. 그리고 17년 후 가해자 중 한 명인 딜런 클리볼드의 엄마 수 클리볼드는 이 책을 펴냈다."


나는 이 문장을 읽고서 포스팅을 멈췄다. 세면대로 가서 세수를 했다. 울음을 참기 위함이었지만, 울음이 터졌다. 그 자리에서 꺼이꺼이 울었다. 그리고 다시 서너 시간이 지난 후에 못다한 글을 쓰려고 앉았다. 지금 다시 저 문장을 봐도 목이 메인다. 가슴이 아프다. 저자인 엄마의 고통스러운 삶이... 헤아려져 자꾸만 눈물이 나려 한다. 고통은 이처럼 종종 먼 나라의 사람들끼리도 하나로 연대시킨다. 당사자들도 원치 않은 연대를.


"아들의 변명이나 가족의 명예회복을 위한 것이 아니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의 근원적인 폭력성과 마주한 인간이 그것을 이해하고 설명하고 또 예방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쓴 책"이란다. "나는 누구보다 내 아들을 잘 안다고 생각했다"는 고백만으로도 저자의 혼란이 예상된다. "인간의 폭력성을 적당한 거리를 두고 차갑게 고발하는 여타의 책이나 영화와 달리, 바탕에 부정할 수 없는 ‘사랑’을 깔고 있는 ‘어머니’가 써내려간 글"이 오랫동안 책 구매를 자제했던 나를 무너뜨렸다.  



Posted by 보보

구입하고 싶은 책들이 쌓여가지만 좀처럼 지갑을 열진 않는다. 인터넷이든, 오프라인이든 서점에 가더라도 구매를 자제한다. 그렇게 최근 몇 달 동안 책을 거의 사지 않았다. 책장에는 읽을 책들이 넘쳐나고, 그동안 다소 헤프게 책을 구입했기 때문이다. 4~5년 전까지는 3대 인터넷 서점에서 최상의 구매 등급(플래티넘)을 유지했다. 교보문고, 알라딘, 예스24에서 모두 월평균 구매 금액이 10만원을 훌쩍 넘었다는 말이다.

책 구입을 자제하기는 쉽지 않다. 힘든 일에는 노력이 필요하다. 노력은 들쑥날쑥하지 않고, 하나의 방향을 향해야 결실을 맺는다. 마음은 바뀌거나 흔들리기 일쑤다. 원칙이 노력을 빛낸다. 마음 가는 대로 해라! 이 말은 자기 길을 결정하려는 이들에게는 근사한 푯대가 되지만, 올찬 자기경영을 하려는 이들에게는 유혹의 말이기도 하다. 마음보다는 원칙을 따라야 할 때가 있다. 내겐 책 구매 문제가 그렇다.

1) [독서 적립금의 원칙] 읽은 만큼만 구입할 것! 책 구매의 첫 번째 원칙이다. 끝맺음보다는 시작을 좋아하는 이들은 책을 끝까지 읽기보다는 마음이 끌리는 책을 구입하기 십상이다. 책장에는 이미 읽지 않은 책들이 쌓여 있는데도, 조만간 읽지 못할 책들도 구입하고 만다. 책을 신중하게 구입하지 않았다고 후회하기도 한다. 이는 내 모습이기도 했다. 나는 달라지고 싶었다. 이젠 책을 읽지 않으면 사지도 않는다. 내게 읽기란 곧 읽고 사유하여 지적 생산물을 만듦이다.

"한 권의 책을 읽고 서평을 쓰면 1만원의 적립금이 생긴다. 책은 적립금으로만 구입하리라!"

2) [도서 선택의 원칙] 아무 책이나 읽지 말 것! 앞선 원칙을 남용하지 않기 위한 원칙이다. 나와 수준이 비슷한 책을 읽으면 배움과 감흥이 적다. 독서 적립금을 쌓고자 의도적으로 얇은 책을 고르거나, 필요하지도 않은 책을 읽거나, 금방 읽어낼 수 있는 책을 선택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책이 나에게 미치는 영향과 시간의 유한함을 감안하면, 책 선택은 신중할수록 좋다. 오늘도 서점에서 책을 읽다가 내려놓았다. 예전 같으면 지갑을 열었을 법한 책이다. 훌륭한 책일수록 서평을 쓰고 싶어진다.

"서평을 쓰기 싫은 책은 읽지도 않는다. 적립금만이 아니라 영혼도 쌓일 책을 읽자!"

3) [읽고 쓰기의 원칙] 시시하게 읽거나 대충 쓰지 말 것! 서평을 작성해야 책을 살 수 있지만, 책을 사기 위해 서평을 쓰지는 않는다. 나는 생각하거나 실천하려는 마음이 없으면 아예 책을 읽지 않는다. ‘책 한 권 읽었다’는 결과보다는 ‘내가 성장했다’는 과정을 중요시하기에 독서가 선사할 생각의 기회, 실천거리와의 만남, 변화에 대한 기대감을 안고 책을 읽는다. 읽기는 쓰기로 이어지면 좋다. 깊어지고 단단해진다. 치열하게 읽고, 성실하게 쓰는 서평은 커다란 지적 즐거움이다.

"서평 쓰기는 지적 생활의 중심 활동이다. 깊은 저자에게 한껏 배워라. 읽었다면 일주일 내로 써라!"

원칙은 지키기 힘들 때에도 강경하게 지켜갈 때 더욱 빛난다. 나의 기질은 원칙 고수보다는 융통성 발휘를 더욱 능숙하게 해내는 쪽이다. 그렇기에 다음과 같은 신념을 올곧게 추구한다. "원칙 앞에서 변칙과 자기합리화를 내려놓을 때마다 도약을 경험하리라!" (연지원)  사용자 삽입 이미지


Posted by 보보

1.

6월 26일, 다수의 매체가 베스트셀러 순위를 기사화했다. "교보문고 · 예스24 종합 베스트셀러 차트에서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6주째 1위를 차지했다." 한국 최초의 맨부커상 수상작이니만큼 관심이 뜨겁다. 지금으로서는 일시적인 반응이 될지, 문학 열풍으로 이어질런지 알 수 없지만 우선은 반갑다. 나는 아직 읽지 않았다. 반갑다고 해서 모든 손님을 내 집에 초대할 의무는 없으니까. 2016년 상반기 나의 공부 계획에는 장편소설, 작가 한 강, 채식주의, 문학상 등의 키워드가 없다. 일시적 호기심이 나의 목적을 흐트리지 않도록 주의하기! 이것이 집중이다.


2.

삶을 목표나 계획만으로 살 수는 없다. 최소한 두 가지 이유가 존재한다. 1) 삶은 계획보다 크다. 삶을 이해하지 못한 계획은 때때로 우리를 당황케 한다. 생각보다 기쁘지 않는 목표 달성은 또 얼마나 많은가. 꿋꿋한 인내가 지혜이듯 때로는 융통성이 지혜다. 2) 계획은 기회를 놓친다. 계획의 미덕이 열정과 집중이라면, 계획은 악덕은 주변의 상황과 기회에 어둡다는 점이다. 이러한 주장은 1번의 얘기에 반(反)한다. 진실은 양쪽에 걸쳐 있기 마련이다. 요컨대, 사상 최초의 사건(최초의 부커상 수상)을 만들어낸 작품이라면, 소설에 무관심하더라도 일독의 가치가 있을지 모른다. 때로는 단순한 호기심이 문제 해결의 힌트가 되고, 인생길을 헤쳐나갈 실마리가 된다. 그저 집어든 책이 관점이나 생각을 확연하게 바꾸기도 한다.  


3.

나는 신문 읽기를 진정한 독서가 아니라고 말한 적이 있지만, 신문의 유해함에 대한 주장은 아니었다. 정보를 얻는 읽기를 독서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태도를 지양하자는 의도였다. 신문 읽기는 무계획적이고, 산만하고, 호기심 지향적이다. (신중하게 세운 목록대로 읽어가는 독서와 비교해 보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문 읽기의 유익은 크다. 나도 일주일에 두어번 신문을 읽는다. 몇몇 기사는 정독한다. 뜻밖의 정보와 관점을 제공하거나 가끔씩은 새로운 지적 세계를, 신문이 열어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매일 한 개나 여러 개의 신문을 읽을 수 있고, 그러면서 집중하고 즐겁게 활동할 수 있다. 심지어 새로운 소식을 선택하고 조합하여 매우 건전하고 가치 있는 연습을 할 수 있다." 헤르만 헤세의 말이다. '가치 있는 연습'이란 사고력을 지칭한 게 아닌가 싶다.  


4.

『채식주의자』를 읽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포스팅이 아니다. 읽지 말라고 제안하는 포스팅도 아니다. 지적 세계에서는 유명한 책을 읽었는가, 읽지 않았는가보다 '스스로 생각하는 삶'이 더욱 중요하리라. 일상에서 생각하는 힘을 키우는 한 가지 팁은 '이유 찾기'다. 자신의 행동이나 감정을 하나 붙잡아 그 이유를 찾아보는 것이다. 가령, 『채식주의자』를 읽었다면 왜 이 책을 선택했는지, 읽고 난 후에 소감이 좋았다면(또는 별로였다면) 왜 그러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한 권의 책이 아무리 중요해도 우리 삶보다 중요할 순 없다. 읽어야 할 이유를 가진 것만큼이나 읽지 않을 이유를 갖는 것도 지성의 일면이다.


Posted by 보보

- 편해영의 단편 「첫 번째 기념일」을 읽고


"집에 있는 휴일이면 늘 십여 통의 이력서를 썼다. 검정색 펜으로 천천히 글씨를 써서 이력서 칸을 메웠다. 고등학교로 끝나는 최종 학력과 여기저기에서의 단기간 경력을 적는 동안, 그는 어쩌자고 이렇게 볼품없이 살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 생각은 낚싯줄처럼 그의 가슴 깊숙한 곳으로 던져져 연민을 잡아 끌어냈다. 뒷면을 뗀 증명사진은 고체형 풀을 발라 사진란에 붙였다. 사진은 가급적 우스꽝스럽게 나오도록 찍었다. 불쌍해 보이는 것보다는 우스워 보이는 게 나았다. 다 쓴 이력서는 전부 큰 도시에 있는 사업체로 보냈다. 이력 때문인지 사진 때문인지 대부분은 아무런 연락이 오지 않았다."


이력서를 작성하는 사내는 도시의 변두리 지역 담당의 택배 기사다. 이 작품은 2007년 제31회 이상문학상 작품집에 우수상으로 실렸다. 선정위원들은 "일상으로부터 탈출을 꿈꾸는 젊은이들의 삶"을 그려낸 소설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그 탈출은 서글프다. 실패해서이기도 하지만, 탈출의 과정이 어설퍼서 그렇다. 이력서에 쓰인 구절들은 하나같이 그의 허술하고 답답한 시도를 보여줄 뿐이다. "요즘 같은 시대에 자필 이력서를 보내는 것부터가 무리일지도 몰랐다." "어떤 날의 이력서에는 그 주에 배송한 품목을 죽 나열했다." 주산이나 타자 같은 "지금은 쓸모없어진 자격증을 적은 날도 있었다." 그는 부단히 시도하지만, 그 시도는 습관처럼 반복될 뿐이었다. 개선되거나 발전하지는 못했다.


"그는 자신의 이력만으로 도시에 있는 직장에 취업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지금보다 더 많은 이력서를 써 보내도 마찬가지일 거였다. 그는 여전히 변두리 구직자로 남을 것이다. 그나마 신도시가 완공되면 그가 사는 곳도 도시의 일부처럼 보일지도 모른다는 게 위안이 될 때가 있었다. 한편으로는 여전히 반지하방을 전전하는 생활이 나아질 리 없다는 생각에 치욕스럽기도 했다. 그게 뭐든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치욕이나 위안이 인생을 바꾸지는 못했다."


그는 철거가 시작된 아파트에 마지막까지 사는 젊은 여자에게 물건들을 배달한다. 남자와 여자는 소설에 등장하는 유일한 인물이다. 둘은 모두 변두리에 산다. 도시의 중심에 들지 못했고, 시대의 주역이 되지 못했다는 점에서 두 사람은 닮았다. 작가는 둘의 유사성을 일찌감치 암시했다. "여자에게는 일주일이 멀다 하고 물건이 배송되었다. 어떤 날은 김치였고 간장 게장이었고 고추장이었다. 샌들과 웨스턴 스타일의 가죽 부츠, 키높이 운동화도 그가 배송해 주었다. 통기성이 좋은 속옷 세트와 물방울무늬 원피스, 자루가 긴 스팀 청소기 따위의 물건도 목록에 포함되어 있었다. (중략) 여자는 그가 배송해 준 브래지어와 팬티를 입고 간장 게장으로 밥을 먹은 후 물방울무늬 원피스를 입고 외출할 거였다. 그는 여자를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느 날부터 남자는 여자의 물건을 배달하지 못했다. 여자는 부재 중이었다. 일 년을 배달하는 동안 여자가 부재 중이었던 적은 처음이었다고, 작가는 썼다. 재택근무를 하는 일이 아니라면 여자의 직업은 무엇이었을까. 작가는 여자의 직업에 대해서는 쓰지 않았다. 소설의 후반부에 이제 곧 개업할 유원지에서 잠시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으로 보아 번듯한 직업을 가졌을 것 같지는 않다. 여자도 남자처럼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갖지 못했다. 아니, 수입도 그다지 좋지는 않았으리라. 온갖 종류의 택배 물건들은 대부분 음식이나 생필품들이었다. 물건들의 품목 속에서 빠듯한 형편이 보이는 것 같았다.


여자에게 물건들을 배달하지 못하는 날들이 이어지자 남자는 무심결에 여자의 집 현관문 손잡이를 돌려보았다. 문은 열렸고 주인은 없었다. 창문 밖에서 밝은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강 건너 유원지의 회전 관람차가 뿜어내는 불빛이었다. 철거가 시작된 아파트를 비추는 유원지의 불빛이라니! 불빛은 '빈부격차'라는 자본주의 사회의 어두운 그늘을 밝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작가는 여기서 문득 남자의 어린 시절을 그려낸다. "그는 관람차를 타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살아 계실 때 부모님은 줄곧 돈을 버느라 고단해했다. 돈과 시간에 여유가 있었더라도 그들이 사는 변두리에는 관람차를 탈 만한 곳이 없었다. 그들 가족은 휴일을 먼 곳의 유원지에서 보낼 만큼 단란하지 못했다." 가난, 고단함, 단란하지 못함은 부모에게서 그에게로 대물림됐다.


여자의 부재가 이어지자, 남자는 택배상자를 집으로 가져와 마음대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남자에게는 악의가 없었지만, 생각도 없었다. 그 단순하면서도 나이브한 생각으로 발화된 타인의 물건 사용은 곧 대가를 지불해야 했다. 여자에게서 연락이 온 것이다. 둘은 유원지에서 만났다. 여자는 유원지의 정비 관리를 하는 임시직을 맡고 있었다. 앉을 곳도 없고, 한 바퀴 회전하는 시간도 잴 겸 둘은 회전 관람차를 타서 그간 남자가 사용했던 물건 값을 계산했다. 남자는 "여자 친구가 있는 녀석들이 그 안에서 키스와 포옹을, 가끔은 더한 짓까지 한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아직 좁은 곤돌라에 함께 올라탈 만큼 친밀한 사람을 알지 못했다." 남자와 여자는 친밀하지 않는 데도 물건 값을 치러야 하는 애매한 관계로 함께 회전차를 탔다. "그는 괜히 마른 입술을 만지작"거렸지만, 아무 일도 없었다. 여자와 헤어져 유원지를 빠져나왔다. 


이제 소설의 결말부다. "그는 차에 올라탔다. 시동을 걸면서 관람차를 돌아보았다. 관람차는 불을 밝힌 채, 어느 누구도 태우지 않고 마치 자신이 돌지 않으면 세상이 멈춘다는 듯이 느릿느릿 어두운 밤의 도시를 비추며 회전하고 있었다. (중략) 차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짐칸에 가득 찬 상자들이 조금 덜컹거렸다. 그는 그 물건들을 배송하기 위해 밤의 도시로 들어갔다." 소설의 마지막 구절은 쓸쓸했다. 관람차는 밝았지만, 탑승자는 아무도 없었다. 자본주의는 발전하지만, 발전의 혜택을 누리는 이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처럼. 그런데 발전은 멈추지 않는다. 밤인데도, 남자의 일감은 가득 차 있다. 남자가 어두운 밤의 도시로 들어가면서 소설은 끝난다. 밤인데도 일이 끝나지 않았다. 소설이 출간되고 6~7년이 지난 후 민주당 손학규 대통령 경선후보는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슬로건을 들고 나왔다. 그러고 또 4년이 지났다. 이 시대의 청춘들 삶에는 저녁이 있을까?


Posted by 보보

1.

플라톤의 대화편 『소크라테스의 변명』(황문수 역)을 읽었다. 이해하고 해석하는 정도야 독자마다 다르겠지만, 누구나 얼마간의 감동과 교훈을 얻을 수 있는 책이다. (높은 가독성은 플라톤 초기 대화편의 공통점이다.) 나는 2년 전 종로의 투썸플레이스에서 이 책을 처음 완독했었다. 두번째 독서를 하면서 두 가지를 느꼈다. 1) 그때의 결심을 아직도 실행하지 못하고 있구나. 답답한지고! 2) 그때보다 더욱 풍성한 독서의 결실을 맛보고 있구나. 놀라운지고! 읽을 때마다 놀라움(메시지의 풍성함, 해석의 새로움, 영원한 현재성)을 안기는 점이야말로 고전의 특징이겠다.

 

 

2.

소크라테스는 대화하고 검토하는 삶을 살았다. 소크라테스는 말한다. "검토(성찰)하지 않는 삶은 인간에게 살 가치가 없다."(강철웅 역) 우리말로는 검토 보다는 성찰의 뉘앙스가 덜 어색하다. 성찰이란, 자기의 마음을 반성하고 살핌이다. 사전적 의미는 ‘자신이 한 일을 깊이 되돌아보는 일’이고 듀이는 ‘반성적 사고’를 성찰의 핵심으로 보았다. 잘못이나 부족한 점이 없는지 돌이켜 보는 사유 활동이 성찰이다. 성찰에 관심이 많은 나에게 소크라테스는 첫번째 탐구 대상이다. 언젠가 성찰에 관한 긴 호흡의 글을 쓰고 싶다.

 

소크라테스는 다소 강한 어조로 성찰을 강조했다. 살 가치조차 없다는 그의 말 반대하는 이들도 로버트 노직의 권고에는 대부분 동의하시리라. “나는 소크라테스처럼 성찰되지 않은 삶은 살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지나치게 가혹하다. 그러나 깊이 있는 사고를 앞세워 삶을 이끌 때, 우리는 남의 삶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살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성찰되지 않는 삶은 충분하지가 않다.” - 로버트 노직, 『무엇이 가치 있는 삶인가』 중에서

 

 

3.

“나는 그와 헤어져 돌아오면서 생각했습니다. 그 사람도 나도 아름다움이나 선함을 모르고 있지만, 그래도 나는 그보다는 현명하다고. 왜냐하면 그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모르면 모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점에서 나는 그보다 약간 우월한 것 같았습니다. 나는 이 사람보다 현명하다고 알려져 있는 다른 사람을 찾아갔지만 결론은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나는 그와 그 밖의 많은 사람을 적으로 만들었습니다.”(황문수 역, 『소크라테스의 변명』, p.16)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모른다. 이러한 이중의 무지를 소크라테스는 비판했다. 소크라테스를 아는 이들도 여전히 이중의 무지에 빠져있다. 현대인들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는 다음의 세 가지를 모른다. 첫째 어떠한 ‘대상’을 모른다. 둘째 ‘인식의 한계’(자신이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영역이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셋째, 사건이나 결과의 ‘인과관계’를 모른다. 그리고 사람들 대다수는 이 세 가지를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모른다. 자신이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영역이 있음에도 자기 인식만이 최고인 줄 알고 인과관계의 부분만을 알고 있으면서도 전체를 통찰하고 있다고 착각한다. 아! 소크라테스를 깊이 이해한 이를 만나고 싶다.

 

4. 

나는 십년 넘게 사람들의 고유성과 인간 이해를 공부하는 중이다. 8~10명의 사람들과 매월 함께 수업을 하며 서로의 기질과 강점을 토론하고 어떻게 하면 자기이해에 이를 수 있는지를 모색했다. 자기이해와 인간이해 공부는 나의 직업이요, 천직이다. 사람들을 개별적으로 알아가는 과정이 나는 무척이나 즐겁다. 즐기다보니 약간의 인간이해가 생겼다. (나는 섣불리 판단하는 사람이 아니다. A의 행동과 말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여 잠정적인 유추를 할 뿐, 그가 어떠한 성향을 지녔는지 쉽게 결론내지 않는다. 한마디로 나는 인식형이다.)

 

종종 이런 사람들을 만난다. 자신이 어떠한 사람인지 모르면서 안다고 착각하는 사람들! 여러 요소에서 외향형의 성향을 보이면서도 스스로는 내향형이라 말한다. "저도 혼자 잘 지내요. 제가 원래는 내향형인데, 그러면 사회 생활 하기에 힘들 것 같아 노력한 거예요." 그들의 레퍼토리는 너무나 일반적이어서 그들을 지칭하는 심리학 용어(성격 방어)가 있을 정도다. 그들의 말이 옳을 수도 있지만 그러기에는 그의 삶에 내향형의 장점이 너무나 빈약하고 외향형의 흔적이 지나치게 많다.

 

5.

명백한 감정형의 여인이 사고형이라 우기다가 1~2년이 지난 뒤에야 감정형임을 깨달은 경우도 있다. 자신이 스스로의 기질을 모른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들을 한 달에 두어 명은 만난다. 올해 초, 글쓰기 수업을 진행하면서도 강한 외향형의 중년이 자신이 내성적이라고 말씀하시다가 MBTI에 대한 책을 진지하게 읽고서야 자신을 잘 몰랐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그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자신을 모르며 산다. 소크라테스의 이중의 무지가 2,500년 전에 살았던 고대인들만의 이야기가 아님은 명백해 보인다. 나는 칼 야스퍼스의 말을 진지하게 믿고 깊이 있게 이해한다. (과연 그럴까, 하는 회의가 들긴 하지만.)

 

“소크라테스를 눈앞에 가진다는 것은 철학함에서 반드시 필요한 전제조건이다. 이렇게 말해도 좋을 것이다. 오늘날 소크라테스 없이는 철학할 수 없다. 비록 그가 먼 과거의 희미한 불빛으로만 느껴질지라도 말이다! 한 사람이 소크라테스를 어떻게 경험하느냐는 그 사람 사유의 근본틀을 좌우한다.” - 카를 야스퍼스『위대한 사상가들』

Posted by 보보

관심을 부르는 기사를 읽었다. 교보문고가 집계한 최근 10년간 누적 판매량 Best 10 작가를 다룬 <우리가 사랑한 소설가들>이었다. 기사에 따르면, 가장 많은 판매량을 기록한 작가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였다. 무라카미 하루키, 히가시노 게이고, 기욤 뮈소가 뒤를 이었다. 5위부터 7위는 한국 작가였다. 신경숙, 김진명, 공지영! 내 눈엔 김진명과 기욤 뮈소가 의외다. 21세기 히트 소설에 별 관심이 없었던 탓이리라.

 

 

미국과 독일 작가가 한 명도 없다는 점이 이채롭고 한국 작가의 선전이 눈에 띈다. 내가 읽은 책이 거의 없다는 점도 또렷한 인상이다. 문학과 소설을 좋아하긴 해도 고전 소설을 읽기에도 시간이 모자라 현대 작품까지 읽을 여력은 없었다. 전체 장르 중 소설의 판매량이 압도적이라는 점과 소설가 중에서도 인기 작가라는 점을 감안하면 위 목록은 초특급 베스트셀러인 셈인데, 내가 읽은 책들은 거의 없다.

 

『상실의 시대』,『엄마를 부탁해』,『봉순이 언니』가 고작이다. 그것도 20년 전으로 소급하여 뽑아낸 책들이다. 『상실의 시대』와 『봉순이 언니』는 90년대 말에 읽었던 것 같다. 종종 나는 생각한다. '90년대 말, 그러니까 20대 초반부터 무라카미 하루키를 쭈욱 읽어왔더라면, 나는 재즈를 좀 더 좋아했을 테고 조금은 도시적이고 세련된 남자가 되었거나 적어도 오랫동안 좋아하는 외국 작가 한 명을 가졌을 텐데...' 뒤늦은 바람과는 별개로 하루키의 책도 에세이 몇 권을 읽었을 뿐이다.

 

히가시노 게이고, 기욤 뮈소, 김진명, 조정래, 조앤 K. 롤링의 소설은 한 권도 읽지 못했다. 10명의 작가를 보고 있노라니, 읽고 싶었지만 시간을 내지 못해 하염없이 독서를 미루던 책들이 떠오른다. 하루키의 『여자 없는 남자들』, 히가시노 게이고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조정래의『정글만리』!  올해 안에 읽게 될지는 모르겠다. 읽어보고 싶다는 바람을 품고 읽을 목록에 포함시켜 둔다.  

 

 

기실 목록은 독서가에게 수많은 푯대 중 하나의 참고사항 뿐 바로미터가 되기는 힘들다. 내가 책을 잘 읽고 있는가 하는 측정 기준으로 삼을 필요도 그럴 수도 없다는 말이다. 목록이 베스트셀러든 스테디셀러든 필독 고전이든 마찬가지다. '마트에서 가장 많이 팔린 품목 베스트 10' 품목을 두고 '나는 왜 저걸 사지 않았을까?' 하고 자기를 보채지는 않을 것이다.

 

스테디셀러나 고전 목록들이 안기는 자괴감(내가 정말 책을 안 읽고 살았구나 하는 감정)이, 나는 시시한 생각의 결실로 보인다. 책은 무지 무지하게 많다. 누구도 여러 목록의 모든 책을 읽으며 살 수는 없다. 평생 줄기차게 공부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자기 분야의 중요한 책만을 일부 읽을 뿐이다. 우리는 시간이 날 때마다 자신에게 필요한 책들을 즐기면서 읽어나가면 그만이다. 꾸준하게, 오랫동안.  

 

Posted by 보보

나는 향유하는 독서가다

- 올해를 잘 살고 싶은 이유

 

나는 언제나 머무는 여행자였다. "거기 다녀왔다"는 결말보다는 "거기서 무엇을 보고 느꼈는가" 하는 과정을 중요하게 여겼다. 그곳에서의 경험을 통한 변화와 성장을 추구했다. 유럽 배낭여행을 할 때, 내 영혼을 붙잡는 도시에서는 예정보다 많은 날들을 보냈다. 오스트리아 빈, 체코 프라하, 독일 바이마르에서 7일씩 머물렀던 까닭이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소재한 괴테 하우스에서는 여섯 시간을 머물렀다.

 

3층 괴테의 방에서 네 시간을 보냈다. 수많은 관광객이 오가는 동안, 방을 이리저리 서성이며 『괴테와의 대화』를 읽었고, 가구들을 살폈고, 창밖을 내다보았다. 관광객이 아무도 없을 때에는 나무 의자에 슬쩍 앉아 쉬기도 했다. 괴테가 공부하는 장면을 그려보기도 하고, 창밖을 내다보는 어린 시절의 괴테를 상상하기도 했다. 떠오르는 단상들을 『괴테와의 대화』 여백에다 끄적이기도 했다. 애틋하고 그리운 추억이다.

 

나는 벤야민이 그랬듯이 체험과 경험을 구분했다. 단순한 결말이 아니라 의미 있는 결실을 얻으려면, 몸만 다녀가는 '체험'보다는 영혼이 깃든 '경험'을 해야 한다고 믿었다. 경험이 빈약해지면 여행도 소비로 전락한다. 이왕이면 여행은 향유가 되어야 한다. 소비는 돈이나 물자 따위를 써서 없애는 것이고, 향유는 누리어 갖는 것이다. 나는 향유하는 여행자가 되고 싶다. 향유가 여행의 완성이고, 경험이 향유의 비결이다.

 

여행의 기술은 오롯이 독서의 기술로 전환된다. 향유가 독서의 완성이다. 다시 말해, 독서를 잘 한다는 의미는 책의 내용을 이해, 음미, 누리어서 자기 것으로 갖는 단계를 말한다. 나는 향유하는 독서가다. 눈으로만 읽어내는 체험적 독서가 아니라 책의 내용을 온 몸으로 누리어 갖는 경험적 독서를 한다. 인문서는 머리로 사유하며 읽고, 예술은 가슴으로 느끼며 읽고, 실용서는 손과 발로 실천하며 읽는다.

 

누가 나더러 "너는 무엇을 잘 하느냐"고 묻는다면, 가장 부끄럼 없이 대답할 수 있는 답변은 '책 읽기'가 아닌가 싶다. (둘째는 일대일로 만나 공감하며 듣는 일이요, 셋째는 수업 진행이나 글쓰기를 꼽으련다. 나보다 뛰어난 이가 많겠지만, 내 능력 안에서 순위를 매기자면 그렇다.) 나는 책읽기를 더욱 잘 하고 싶다. 나의 강점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 책읽기가 나를 성장시킬 뿐만 아니라 독서 자체가 즐겁기 때문이다.

 

문득 의문이 든다. 독서력을 무엇으로 측정할 수 있을까. 독서력이 단순히 많이 아는 것 이상의 지적 능력, 가령 사유와 공감, 게다가 실천까지 의미한다면 나는 정말 이 능력이 탐난다. 생각하고 이해하고 실천하는 독서, 그리하여 나를 조금씩 발전시켜 가는 책읽기를 생각하니 얼른 글을 맺고 싶어진다. 얼른 책을 집어들어야겠다. 책상 위에 놓인 책들이 나를 부른다. 나는 언제나 책들의 유혹에는 쓰러지고 만다.

 

건강하게 밥을 먹고, 소중한 이들을 만나고, 중요한 의무를 마치고 난 이후의 모든 시간을 전부 책에만 쏟는 것! 내가 꿈꾸는 인생이다. 꿈의 실현은 만만찮다. 건강한 식사, 사람들과의 친밀함, 크고 작은 의무 완수는 하나같이 수고와 지혜를 요구한다. 얼른 독서로 도망가고 싶지만 독서의 중요도는 4순위다. 제1의 능력이 4순위의 중요도라는 사실은 인생의 딜레마나 역설이 아니다. 그것이 인생이고, 문제해결 놀이의 하나일 뿐이다.

 

올해는 잘 살아야겠다. 독서 시간을 늘리기 위해서라도 일상을 효과적으로 경영하고 싶다. 의무가 버겁다는 이유로 하고 싶은 일들로 내빼지도 않고, 해야 하는 일이 많다고 소원을 사치라고 여기지도 않는 자기경영자가 되고 싶다. 나는 소원(책읽기)에도 시간을 듬뿍 주면서 살고 싶다. 능력 향상을 위해 2016년에는 오랜만에 독서력과 지적 생활에 대한 책도 읽어야겠다. 그리고 문학의 고전들을 네댓 권만이라도 향유해야겠다.

 

책상 위에 놓인 『일리아스』가 속삭인다. "무얼 하시는가? 어서 영웅들의 세계로 빠져들지 않고." 책장에서는 『괴테 문학 강의』, 『예일대 지성사 강의』가 수업에 참여하기를 권고한다. "자네, 지적인 수업 한 번 들어보시게." 나는 속삭임에 녹아든다. 권고는 기꺼이 받아들인다. 유혹의 속삭임, 유익한 권고가 나를 황홀경으로 이끈다. (연지원)

 

Posted by 보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