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는 매혹적인 이름입니다. 여행객들은 산토리니, 크레타섬 등 매혹적인 관광지로서 현대의 그리스를 동경하고, 지성인들은 고대 그리스의 정신과 지적 유산을 예찬합니다.

 

고대 그리스의 유산은 교양교육과 인문학 공부에서 필수적인 영역입니다. 화이트헤드는 “플라톤 이후의 모든 철학은 그에 대한 주석에 불과하다”고 말했고, 빅토리아 시대에 활동했던 지성인 매튜 아놀드는 “세계의 문화는 헬레니즘과 히브리즘, 두 축 사이를 오락가락하고 있다”고 썼습니다. 그리스 정신과 기독교 정신의 두축이 세계 문화를 이끌었다는 겁니다.

 

영국의 고전학자 키토의 말도 인용해 보죠. “소설을 제외한 모든 학문 형식은 그리스인에 의해 창조되고 완성되었다.” 소설은 르네상스 이후에 등장했지만, 서사시, 서정시, 비극과 희극 등의 모든 문학과 전분야의 철학, 수많은 자연과학이 그리스인과 더불어 시작되었습니다.『철학 이야기』와 『문명 이야기』로 유명한 미국의 철학자 윌 듀란트는 결정타를 날립니다. 

 

“오늘날의 문명 국가들은 모든 지적 활동 분야에서 그리스의 식민지다.” 탈레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의 유산과 그리스 신화, 호메로스의 서사시가 세계 문화에 끼친 영향을 생각하면, 이러한 말들이 과장이나 실언이 아님을 느낍니다.

 

 

<황금빛 아테네>는 그리스 비극, 호메로스의 서사시, 소크라테스 등 고대 그리스의 고전을 읽고 이해하고 싶었지만, 엄두가 나지 않았던 분들을 위한 수업입니다. 

 

제목 : 황금빛 아테네 (8주 과정)

주제 : 고대 그리스 공부(인문학의 근원 공부)를 위한 첫길 내기

일시 : 2016년 3월 3~4월 28일, 매주 목요일 19:30

장소 : 토즈 홍대점 (홍대입구역 2번 출구, 도보 1분)

신청 : 댓글로 성함, 핸드폰, 이메일 주소 기재 (정보보호 위해 비공개 권장)

진행 : 유인물 제공, 약간의 책읽기 과제 있음.

수업료 : 20만원

 

 

(원격수업은 오프라인 참석이 힘든 분들을 위한 과정으로 수업 녹음파일, 유인물, 참고자료를 보내 드리고 단체 카톡창을 통한 지적 교류를 함께 나눕니다. 참고로 매년 인문교양의 맥을 잡는 수업을 진행하는데, 올해는 고대 그리스입니다.)

 

마냥 쉬운 수업은 아닐 테지만, 고대 그리스에 관한 책을 전혀 읽지 않으신 분들도 환영합니다. 공부를 위한 자료, 지도, 연표 등을 제공합니다. 8주 동안 수업을 즐기고, 유인물을 공부하고, 최소한의 지식을 익히기 위해 노력하시면 고대 그리스에 관한 텍스트들이 두렵지만은 않을 겁니다. 인문학 공부의 첫길 내기에도 깊이 더하기에도 고대 그리스는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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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대학교 총장이었던 로버트 허친스와 같은 학교의 교수였던 모티머 애들러는 각각 편집장과 부편집장을 맡아 많은 학자들과 8년간 협업하여 54권의 『서양의 위대한 책들 Great books of the western world』(1952년, 이하『Great books』)을 출간했습니다. 호메로스부터 프로이트까지 2,800년을 가로지르는 저자 74명의 443 편의 저작 목록입니다. 20세기 후반에는 6권이 늘어나 60권이 되었으니 수록된 저작 목록은 좀 더 많아졌습니다.

 

 

1권과 2권은 60권의 주요 개념을 소개하는 색인(신토피콘)이고 3권부터 서양의 고전이 실렸습니다. 3권에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가 3권에는 아이스퀼로스와 소포클레스의 비극 전편(각 7편)이 수록되었으니 각 권마다 분량이 방대합니다. 55권부터는 20세기의 자연과학, 사회과학 그리고 문학과 철학의 고전들을 담았고요. 요한 하위징아의 『중세의 가을』, 카프카의 『변신』, 버트런드 러셀의 『철학의 문제들』 등입니다.  

 

저는 지성인이기를 꿈꿉니다. 꿈에 걸맞은 실천가이고 싶습니다. 일생동안 꾸준히 『Great books』의 목록들을 읽어가렵니다. 3권부터 빠짐없이 순서대로 읽지는 않겠지만, 주요한 책들 또는 제게 편안한 책들부터 꾸준히 이어갈 생각입니다. 특히 올해는 고대 그리스의 고전들을 집중적으로 읽어 보려고요. 이러한 열망을 가진 터에 명절 동안 읽은 『교양이란 무엇인가』는 나의 고전 읽기를 재촉하는 것 같았습니다.

 

『교양이란 무엇인가』는 도쿄대학교 교양학부의 부설기관인 '교양교육개발실'에서 교재 개발의 일환으로 기획된 독서론 강의를 엮은 책입니다. 워낙 많은 교양 관련서를 읽어온 터라 교양론에 대한 탁견이나 새로운 지식을 얻지는 못했지만, 독서 목록이 주는 울림이 컸습니다. 사실 뻔한 목록입니다. 다만 저의 갈급함과 결합되어 "이번에는 기필코"라는 다짐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갈급함은, 교양에 대한 저의 목마름을 말하고요.

 

 

도쿄대학교의 두 교수(다카다 야스나리, 나카지마 다카히로)가 <벽 저편의 교양서>라는 챕터에서 소개한 책들입니다. 두 교수는 동서양의 문명에 관해 폭넓은 식견을 가진 다섯 명의 학자들에게 도서 추천을 부탁했습니다. 사진 속 목록은 두 명 이상의 학자들에게 추천 받은 책들이고요. 『신곡』,『일리아스』는 다섯 명 모두에게 추천 받은 책입니다. 문학, 역사, 철학을 막론하고 그리스 고전들이 고루 이름을 올렸네요.

 

독서와는 별개로 살았던 십대 시절이 아쉽긴 합니다만, 교양을 쌓기에 늦은 나이란 없겠지요. 지금부터라도 시간 날 때마다 때로는 시간을 내어 독서에 열심을 내 보렵니다. 2016년에는 『일리아스』,『오뒷세이아』,『그리스 비극 걸작선』,『향연』,『니코마코스 윤리학』,『펠로폰네소스 전쟁사』,『적과 흑』,『악의 꽃』을 제대로 읽고 싶네요. 한 해 동안 이 책들만 완독해도 독서 결실이 풍성할 것 같습니다.

 

동서양의 위대한 책들을 읽겠다는 열망은 오래 전부터 가져온 열망입니다. 7~8년 전, 데이비드 덴비의 『위대한 책들과의 만남』을 읽으면서도, 로버트 허친스와 모티머 애들러가 주도하여 이뤄낸 the Great Books Program(국내에선 시카고 플랜이라 잘못 알려진 '허친스 플랜'의 고전 읽기 프로그램)을 접했을 때에도 열정이 뜨거웠지만 진득하게 실행하지는 못했네요. 이번에는 정말 다르고 싶습니다. 그럴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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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통계물리학자 김범준 교수가 쓴『세상 물정의 물리학』(동아시아, 2015)을 읽는 중입니다. 이 책을 집어든 이유은 세 가지입니다. 1) 한국일보사가 주최하는 제56회 한국출판문화상 교양저술 분야 수상작이라는 점과 2) 물리학을 교양 수준으로나마 알고 싶은 지적인 열망 때문입니다. 3) 좀 엉뚱한 이유인데,『세상 물정의 사회학』(사계절, 2013)과 출판사가 다른데 어찌 자매편과 같은 제목을 달게 되었는지도 궁금했습니다.

 

독서목표를 달성하고 있는지 중간 평가를 하자면, 1) 수상할 정도까지의 좋은 책인지 감을 잡지 못하겠습니다. 물리학은 접하기에도 세상 물정을 알기에도 가벼운 내용 일색입니다. 교양서로 자리매김하려면 이 정도의 난이도로 맞춰야 하는 건가 하고 생각하는 중이네요. 2) 통계물리학이 무엇인지, 일상과 어떻게 접목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알겠습니다. 3) 좀 더 읽어봐야겠네요. 제목의 사연과 추천하신 분들의 감탄에 공감하려면.

 

"리트윗의 진원지는 어디일까"라는 제목의 글에 나오는 '연결망 효과'는 개인적인 화두라 관심 있게 보았습니다. ('척도 없는 연결망 Scale-free network' 이라는 개념에 대해 궁금하여 별도로 찾아보기도 했고요. 종 모양의 그래프를 나타내는 정규확률분포와는 달리 척도 없는 분포는 무작위의 모습입니다. 각설하고) '연결망 효과'에 관한 저자의 설명을 보시죠.

 

정보가 마당발인 친구, 그 친구의 친구들과 같은 식으로 몇 단계 만에 수많은 사람에게 파급되는 '연결망 효과'의 힘은 정말 크다. 특정 뉴스가 실시간 뉴스 검색 상위로 오르면, 뉴스 내용에 우선해 상위에 올랐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더 많은 사람이 그 뉴스를 보게 되고, 베스트셀러 차트에 오른 책은 바로 그 이유로 더 많이 팔리는 효과를 노린 것이다. (p.72)

 

저는 '연결망 효과'의 역할과 기만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마당발은 '인간관계가 넓어서 폭넓게 활동하는 사람'을 뜻합니다.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정보를 순화시키는 이들입니다. 종종 부정확한 지식을 전파하는 일에 앞장서기도 하고요. 인터넷은 자료의 천국입니다.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자료만이 정보가 된다는 애들러의 구분에 따르면, 인터넷은 정보의 천국은 아닌 셈입니다. 이런 양면성에 대한 사유가 저의 주요 관심사입니다.

 

2.

라파엘 오몽의 『부엌의 화학자』도 읽고 있습니다. 두 권의 교양과학서를 겹쳐 읽는 셈인데, '교양과학서'는 올해 독서 목표의 세 번째로 중요한 키워드입니다. (최우선 순위는 '고대 그리스의 고전'이고요.) 『부엌의 화학자』는 파리 제11대학교의 화학 교수 '라파엘 오몽'입니다. 단지 과학자가 쓴 대중적인 교양서 이상의 책입니다. 프랑스 최고의 인기 셰프인 '티에리 막스'와 협업하여 <프랑스 요리혁신센터>를 이끄는 라파엘 오몽은 "과학과 예술은 함께 해야 한다"는 자신의 신념을 삶으로 보여 줍니다.

 

과학의 대중화를 위한 예술과 결합해야 한다는 주장이 새로운 것은 아닙니다. 독일의 저명한 과학저술가 에른스트 페터 피셔도 『과학한다는 것』에서 (에곤 피델의 견해를 소개하며) "만약 대중들이 과학적 작업에 대하여 상상할 수 있게 하거나 연구에 대해 실감을 느끼기를 바란다면 예술적 요소를 가미해야 한다"고 썼습니다. 나아가 책의 한 챕터를 할애하여 '예술로서의 과학'이라는 제목 하에 과학문화를 이해하는 교양층을 만들어내기 위한 제안을 담았습니다. 『부엌의 화학자』는 '예술로서의 과학'을 보여주는 하나의 케이스입니다.

 

3.

케빈 랠런드와 길리언 브라운의 공저 『센스 앤 넌센스』는 교양서라고 하기엔 두껍고 전문적입니다. 책 표지의 문구는 "20세기를 뒤흔든 진화론의 핵심을 망라한 세계적 권위의 교과서"라고 소개합니다. 이 책을 여섯 글자로 소개하면 '진화론 교과서'가 제격일 겁니다. 이 책을 읽는 재미가 큽니다. 제가 개념 정리와 지적 얼개 구축을 즐거워하기 때문입니다.

 

두 가지 내용은 정말 흥미진진합니다. 1) 진화론적 접근방법을 이용하여 인간행동을 연구하는 학자들을 접근 방법에 따라 다섯 분과로 구분한 내용 2) 인간의 행동과 진화를 다룬 대중서적들의 위상을 파악해 주는 내용. 위상 파악은 제게 정말 재밌는 작업인데, 다음과 같은 작업입니다. (저자들의 탐구 방식이 제가 『범람하는 인문학』이나 『시간 예술가』를 집필한 방식과 똑같아서 놀라기도 했네요.)

 

인간의 행동과 진화를 다룬 대중서적들은 이미 많이 출판되어 있다. 예컨대 『이기적 유전자』,『제3의 침팬지』,『다윈의 위험한 생각』,『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밈』 등이 그것이다. 이 책들은 하나같이 인간성에 대한 독특하고 자극적인 견해를 제시한다. 하지만 이들은 인간의 진화에 대해 단일한 관점을 취하는 것이 보통이며, 진화심리학 또는 미메틱스와 같은 특정 학파와 견해를 같이하는 경우가 많다.(p.8)

 

리처드 도킨스, 제레드 다이아몬드, 스티븐 핑거 등 쟁쟁한 이들의 책에 대한 비판입니다. 인용문은 널리 알려진 책들이라고 해도 비판적 독서를 해야 함을 보여 줍니다. 어떻게 비판해야 하는지는 책을 전부 읽어야 알게 될 테고요. 한 가지는 언급해 두고 싶네요. 위상 파악은 지성을 쌓는 필연적인 과정이지만, 자칫 독단으로 흐를 수도 있습니다. 개별 텍스트에 대한 개인적인 독해 없이 전문가의 견해만을 추종하면, 관점은 갖되 텍스트에 대한 구체적 지식은 빈약하게 됩니다. 구체 없는 관점은 치우친 이상주의 또는 과도한 독단이 됩니다. 훌륭한 관점은 개별 지식 -> 넓은 안목 -> 하나의 관점의 순서로 탄생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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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읽었던 내용인데 기억이 안 나요." 책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에서 종종 듣게 되는 하소연이다. 독서와 기억의 관계는 복잡하고 모호하다. "책을 꼼꼼히 읽어야 합니다"라고 처방한다면 독서 선생으로서의 직무 유기거나 독서라는 행위를 신중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표지다.

 

독서 후의 허접한 기억을 설렁설렁 읽은 탓으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 주의를 기울여 세심하게 읽은 경우에도 책의 내용을 새하얗게 잊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다행하게도(?) 우리의 기억력만 시시한 건 아니다. 르네상스 인문주의자의 대표 주자인 몽테뉴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수년 전에 꼼꼼히 읽고 주까지 이리저리 달아놓은 책들을 마치 한 번도 접한 적이 없는 최신 저작인양 다시 손에 든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에, 나는 내 기억력의 그러한 배반과 극심한 결함을 어느 정도 보완하기 위해서, 얼마 전부터 의례적으로 모든 책의 말미에 그 책을 다 읽은 때와 그 책에 대한 개략적인 판단을 덧붙이곤 한다. 그렇게 하면 적어도 책을 읽으면서 품게 된 저자에 대한 전체적인 관념과 그 분위기만이라도 남을 것 같기 때문이다." (몽테뉴 『수상록』/ 김병욱 역)

 

몽테뉴의 고백은 책의 내용을 기억하지 못함을 넘어서서 읽었다는 행위 자체를 잊어버린 심각한, 하지만 우리에게도 종종 발생하는 상황이다. 피에르 바야르는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에서 다음과 같이 묻는다. "독서가 행해졌다는 사실 자체를 기억하지 못할 때도 여전히 독서가 독서일 수 있는가?"(p.81) 

 

철수와 영희가 3년 전에 같은 책 A를 집어 들었다고 하자. 철수는 A를 끝까지 읽었다. 영희는 책의 1/3을 읽었다. 그런데 지금 철수는 A의 내용을 몽땅 잊었다. (읽은 사실조차 잊었다고 해도 좋겠다.) 영희는 읽은 내용의 일부를 기억했다. 누가 A를 읽은 것인가? 독서와 비독서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순간이다.

 

 

피에르 바야르의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은 읽는다는 행위의 여러 층위를 깊이 고찰한다. 그에 따르면, “주의 깊게 읽은 책과 얘기조차 들어본 적이 없는 책 사이에는 여러 수준의 독서가 있다.” 책을 읽었다, 안 읽었다라는 말로는 우리의 독서 양태를 제대로 표현할 수 없다는 문제의식이 통렬하다. 곱씹을 대목이 많지만, 이 글에서는 독서와 기억의 관계에 관한 저자의 주장에 집중하자. 독서 후의 기억에 대해 바야르 교수는 말한다.

 

“독서는 단순히 어떤 텍스트를 인식하는 것, 혹은 어떤 지식을 습득하는 것만은 아니다. 읽기가 시작되는 순간부터 어쩔 수 없는 망각의 흐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또한 독서다.”(p.77)

 

"기억하는 것이 많건 적건, 우리는 언제나 책의 일부분을 읽었을 뿐이다. 그 역시 일정 시간이 지나면 사라진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과 책에 대해 대화를 한다기보다는 당면 상황에 따라 다시 손질된 불명확한 기억들에 대해 대화하는 것이다."(p.78)


'소득으로서의 독서'가 아닌 '상실로서의 독서'에 대한 바야르의 주장과 몽테뉴의 진솔하고 구체적인 고백은 심리적 위로를 준다. 저자는 위로 제공에 그치는 않는다.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은 일반적인 직관과는 달리 책의 내용을 기억하지 못하는 이유는 독자가 세심하게 읽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책의 내용을 기억하고 싶다면, 세심하게 읽는 독서의 부작용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저자는 책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① 한 권의 책이 전체 책들에서 어떠한 위상을 차지하는지를 파악하고 ② 책 한 권을 읽을 때 우선 얼개를 파악하기 위해 대충 훑어보는 것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세심은 "작은 일에도 꼼꼼하게 주의를 기울여 빈틈이 없다"는 뜻이다. 저자의 진의는 '세심한 독서'의 전면 부정이 아니라, 책의 개요를 파악할 때에는 세심함이 아닌 전체적 시각이 중요하다는 뜻이리라.  

 

저자의 진의를 염두에 두고서 그의 주장을 좀 더 살펴보자. 위상을 파악해내는 총체적 시각을 가지려면 한 권의 책에 파고들면 안 된다.(p.27) “진정한 교양은 전체성(totality)을 지향해야 하며 국소적인 지식의 축적으로 환원될 수 없”(p.29)기 때문이다. 저자는 대충읽기의 대가라 할 폴 발레리를 소환하여 책을 대충 읽는 것의 위력을 설명하기도 한다. 발레리를 통해 저자는 책의 개요 파악을 위한 대충 읽기를 강조한다.  

 

바야르 교수에 따르면, 잘 교육받았다는 것은 “이런저런 책을 읽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 전체 속에서 길을 잃지 않는다는 것, 즉 그것들이 하나의 앙상블을 이룬다는 사실을 알고, 각각의 요소를 다른 요소들과의 관계속에 놓을 수 있다는 것”(p.31)이다. 이 말이 직관적으로 이해되는 분들이라면,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읽기는 몹시 재밌는 독서 경험을 제공할 것이다.

 

저자의 생각에 반발감이 드는 분들도 이 책이 필요할지 모른다.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처세술이 아니라, 절대로 모든 책을 다 읽을 수 없는 우리의 현실에도 불구하고 독서가 필요한 이유와 어떻게 책을 읽어야 하는가에 관한 지혜를 담은 책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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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주짜리 리버럴 아츠 수업을 진행하면서 두 권의 필독서를 정했습니다. 『평생공부 가이드』와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입니다. 교양교육을 지켜야 하는 이유나 리버럴 아츠에 대한 개념 정의보다는 리버럴 아츠의 '개인적 실현'에 중점을 둔 선정입니다. 교육 정책 입안자나 담당자가 아닌, 학습을 통해 지혜와 지성을 쌓기를 열망하는 분들이 수업에 오시니까요.

 

모티머 애들러의 『평생공부 가이드』는 교양교육(Liberal Education)을 이해하고 있으면 더욱 깊이 있게 읽게 되는 텍스트입니다. '지식의 골자'를 이해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도 공감하게 될 테고요. 학문 분과에 연연해하지 않는 '종합적 학식'을 쌓고 싶은 분들은 두 번을 읽어도 좋겠습니다. 책의 개요를 정리해 보았습니다. 이 책의 독서에 조금이라도 도움 되길 바랍니다.  

 

1부에서 애들러는 현대인들의 지적 나태를 지적한다. 비판 대상은 백과사전, 대학, 도서관이다. “이들 사이에는 뚜렷한 유사점이 있다. 셋 모두 일정한 규모를 갖추고 나면 당대에 알려진 영역 전체, 인간 학식의 범위 전체를 포괄한다고 주장한다.”(p.59) 하지만 백과사전과 대학은 알파벳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 애들러의 문제의식이다. ‘알파벳주의’란 “알파벳순 배열 이상의 좋은 배열법을 궁리해 낼 수 있는데 이를 거부하는 지적 결함”을 가리키는 애들러식 표현이다.

 

그는 ‘연대순 배열’을 알파벳주의와 함께 지적 나태라고 지적했다. (저자조사를 할 때 저술목록을 연대순으로 배열하면 책들을 가치 판단하는 부담감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지만, 이것은 지적 게으름이다.) 도서관은 고유한 분류법을 사용하지만, 항목들간의 중요도나 관계를 보여주지는 못한다는 점에서 알파벳주의와 같은 한계를 가진다.

 

2부는 20세기 이전의 지식을 개관한다. 많은 사상가들이 나름으로 지식의 갈래를 주장해 왔다. 지식이 다뤄진 역사를 살피면, 오늘날의 학문 분과의 발생 이유, 존재 이유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사상가들의 지식 갈래는 각각의 장점과 단점이 있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뭘까? 지금 우리가 활용하는 지식의 갈래(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등)에 대한 절대적 확신은 위험함이 아닐까.

 

3부의 제목은 ‘백과사전의 결함을 치유하기 위한 현대의 노력’이다. 프로피디아, 서양의 위대한 책들, 신토피콘이 키워드다. 프로피디아는 지식의 골자(지적 얼개)를, 신토피콘은 ‘위대한 관념’(주제의 집합, 주제어 색인)을 뜻한다. 헬라어를 가져와 괜히 어렵게 보이지만, 프로피디아, 서양의 위대한 책들, 신토피콘을 간단히 표현하면, 지적 얼개, 고전, 근본개념이 된다. 애들러는 10개 카테고리의 프로피디아, 저자 74명의 443편의 책을 담은 것이 『서양의 위대한 책들』, 102개의 위대한 관념을 제안했다. 『서양의 위대한 책들』은 1952년에 54권이 출간되었고, 1990년에 2판으로 60권이 출간되었다.

 

4부는 결론을 위한 ‘철학적 성찰’이다. 결론에서 다룰 내용 중 근대 지식의 개관과 알파벳주의라는 문제의식으로 설명하지 못한 대목에 관해 논리적 근거를 대는 부분이다. 정신의 자산이라는 개념과 파이데이아와 에피스테메가 핵심이다. 4부에서는 결론에서 다룰 핵심 내용들에 관해 관념적 정의를 내린다.

 

결론은 실제적 제안이다. 공부의 첫걸음으로 “읽고 토론하라”는 주장이 인상 깊었다. 애들러는 철학과 시를 동등하게 보지만, (그가 철학자임을 감안하더라도) 역사학의 힘을 간과한 건 아쉽다. “프로피디아(지식의 골자)에서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하나도 없는 사람들이 교양인”(210쪽)이라는 언급에서는, 현대의 전문화된 학식 체계를 감안할 때 이상적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애들러의 기준에 부합하는 교양인으로 누구를 꼽을 수 있을까 하는 문제의식이 생겼는데, 찾아볼 가치가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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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OO은 인간 지식의 전 영역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그 영역에 익숙하고, 근본적인 개념과 쟁점, 가치를 이해할 뿐 아니라 모두가 바라는 약간의 지혜까지 갖추고 있다.” 모티머 애들러의 『평생공부 가이드』 서문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정말이지 마음에 드는 문장입니다. 지식의 전 영역에서 편안함을 느낀다면 나와 전혀 다른 분야의 직업을 가진 이들과도 자연스럽게 대화할 가능성이 높아질 겁니다. 지적 배경이 다른 이들과 나누는 대화는 창의성을 자극할 테고요.

 

2.
『평생공부 가이드』의 원제는 ‘지혜를 추구하기 위한 평생학습 가이드북(A Guidebook to Learning for a Lifelong Pursuit of Wisdom)’입니다. 매력적인 주제의 책입니다만 사람들에게 쉬이 권할 수는 없겠더군요. 최소한 세 가지의 이유 때문입니다. 인간 지식의 전 영역’을 공부하고 싶거나 지혜를 열망하는 이들이 아니라면, 1) 친절하게 사례를 들지 않기에 지루한 대목이 많고, 2) 학문의 분류에 대한 저자의 설명이 불필요하게 느껴질 수 있으며, 3) 철학적 설명이나 추상적인 개념 설명이 복잡하게 보일 테니까요. 그래서 저는 지적 욕심이 가득한 이들에게만 권합니다. 특히 인문 소양을 탐하는 이들에겐 공부하듯이 읽으실 만한 책이라고 추천 드립니다.

 

3.
모티머 애들러는 우리나라에서 『독서의 기술』이라는 책이 번역되면서 독서법의 대가로 알려졌습니다만, 미국에선 교양교육(Liberal Education)의 전도사로 유명합니다. 그는 시카고 대학에서 교양교육의 이념을 추구하는 고전 읽기 프로그램을 만들고, 『서양의 위대한 책들 The Great Books of Western World』라는 54권짜리 거대한 고전 선집을 엮었습니다. (훗날 60권 버전으로 업데이트되었고요.)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편집장도 지냈던 인물입니다.

 

4.
『평생공부 가이드』는 교양교육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있으면 수월하게 읽힙니다. OOO에 해당되는 말도 교양교육을 받은 사람을 지칭하는 ‘교양인’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교양인이라는 말이 어떤 뉘앙스를 지니는지 궁금하네요. '교양 있는 사람'이라고 하면 매너 좋은 사람이라는 어감도 있고, '교양'은 지식이나 문화적 소양을 뽐낸다는 어감도 있지 않나 싶습니다. 미국에서는 1986년에 출간된 『평생공부 가이드』가 2014년에야 우리말로 번역된 것도 이런 오해 때문이거나 ‘교양교육’에 대한 독서 수요가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예상합니다.

 

5.
모티머 애들러가 말하는 교양인이란, 파이데이아를 공부하며 지혜로워져 가는 사람입니다. ‘파이데이아(paideia)’는 그리스어인데, ‘종합적 학식’을 뜻합니다. 한 분야의 전문적인 지식을 지칭하는 ‘에피스테메’와 대조되는 말이고요. 애들러는 파이데이아를 다음과 같이 쉬운 말로 설명합니다. “청년기에 학교 교육을 끝마친 이후 성년기에 스스로 공부해서 교양을 두루 함양한 인간이 되기를 열망하는 이들의 종합적 공부를 위한 길잡이.”(p.201)

 

 6.
『평생공부 가이드』 읽기는 결국 세 가지를 이해하는 과정입니다. 1) 파편적이고 병렬적인 지식이 지혜와는 얼마나 무관한가. 애들러는 알파벳주의와 백과사전식 지식의 나열을 비판합니다. 2) 파이데이아를 공부해야 한다는 애들러의 주장. 여러 학문의 갈래를 이해하고 통합하는 '종합적 학식(파이데이아)'만이 고차원적인 정신의 자산인 이해, 지혜, 기예를 획득하게 됩니다. 3) 파이데이아의 구체적인 목록은 무엇인가. 애들러는 ‘파이데이아’의 골자를 부록에 소개합니다만, 아쉽게도 이 책만으로는 파이데이아를 갖출 수는 없습니다. 아래처럼 목차만 나와 있으니까요.

 

제1부 물질과 에너지

제1장 원자 : 원자핵과 원소
111. 원자의 구조와 성질
112. 원자핵과 원소

 

제6부 예술

제1장 예술일반
611. 예술의 이론과 분류
612. 예술품 경험과 비평, 예술의 비심미적 맥락
613. 특정 문화에서 예술의 특성

 

7.
이 책은 어떤 분들에게 도움이 될까요? 학문의 주요 골자를 이해하고 종합적 판단력을 갖추고 싶은 분들, 파편적 지식을 구조화할 수 있는 지적 얼개를 세우고 싶은 분들, 나이가 들수록 지혜로워지는 비결이 공부에 있다고 믿는 분들이라면, 평생학습을 추구하면서 이 책을 읽으면 좋을 것입니다. 공부의 큰 방향성을 세우도록 돕는 첫길내기의 책입니다. 어떤 분들에게는 도움이 안 될까요? 구체적인 독서의 기술을 찾는 분들, 단기간에 학습의 효과를 얻고 싶은 분들 그리고 인간, 사회, 자연을 종합적으로 이해하는 일에 관심 없는 분들께는 애들러의 말들이 사변적이고 관념적으로 보일 겁니다.

 

남녀 간에도, 우정 관계에도, 책과 독자 간에도 궁합이 맞아야 만남이 즐거워집니다. 이 점을 감안하면 나는 7번을 말하려고 이 글을 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평생 함께 책을 읽고, 자유롭게 토론하고, 진지하게 공부할 이들을 찾는 중일 테고요. (연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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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2월은 분주해진다. 실제로 연말 모임이 생기기도 하고, 그렇지 않더라도 마음이 바빠진다. 묵은 일들을 새해로 넘기고 싶지 않고 약속한 일들을 공언으로 남기고 싶지도 않다. 책 읽을 시간이 어디 있을까 싶다. 대다수 사람들에게는 책보다는 소중한 사람들을 만나 회포를 풀고, 술잔을 비우며 덕담을 주고받는 일이 중요하겠다.

 

책을 좋아하는 이들은 배터리처럼 사는지도 모른다. 그들에게는 일상을 잘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고독과 충전의 시간, 독서가 필요하다. 방점은 독서가 아닌, '고독과 충전의 시간'이다. 충전의 방법은 사람마다 다를 테니까. 카프카는 글을 쓰려면 아무리 고독해도 충분치 않다고 했다. 글쟁이가 아니더라도 좋은 삶에는 최소한의 고독이 필요하리라.

 

2.
언론사에서 ‘올해의 책’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발표 시기로는 조선일보가 가장 앞섰다. 지난 5일, 10권의 책을 내어놓았다. “<올해의 책>을 2회에 나눠 연재한다. 이번 주는 '2015 올해의 책 10', 다음 주는 '20년 이상 사랑받은 스테디셀러 10'이다. 일 년에 한 번 단발성으로 그친다는 기존 결산 방식에 '지속성'과 '입체성'을 보강해보자는 취지다.”(12월 5일자, 조선일보) 스테디셀러까지 발표한다니, 몰랐던 책이 있을까 싶으면서도 반가운 기획이다. 1위부터 5위까지는 다음과 같다.

 

“동양고전을 현재의 맥락에서 어떻게 읽을지 고민한 '담론:신영복의 마지막 강의'(돌베개)와 삶의 마지막 몇 년을 의미 있게 보내는 새로운 제안을 설득력 있게 제시한 아툴 가완디의 '어떻게 죽을 것인가'(부키)가 출판 전문가와 독자들의 강력한 지지를 받아 '올해의 책' 공동 1위에 올랐다. 3위는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창비), 4위는 '미움받을 용기'(인플루엔셜), '지적인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한빛비즈), '마션'(RHK) 세 권이 공동으로 차지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5/12/05/2015120500088.html]

 

3.
기시미 이치로의 『미움 받을 용기』, 오종우의 『예술수업』, 지그문트 바우만의 『도덕적 불감증』, 김영하의 『읽다』. 연말에 에세이 한 권 읽으려고 보아 둔 책들이다. 고르다 보니, 요즘의 수업과 맞닿은 책도 있고, 에세이보다는 시대적 메시지를 실은 묵직한 책도 들어왔다. 올해의 책 중 읽은 책이 달랑 한 권이기도 하고, ‘용기’는 언제나 내게 필요한 가치라 기시미 이치로의 책을 읽기로 했다. 

 

『미움 받을 용기』는 이미 알고 있는 지혜와 겹치긴 하겠지만, 42주 연속 1위로 최장기 베스트셀러 기록을 세워 관심이 갔던 책이다. (기존 기록은 혜민 스님의 39주 연속.) 타인의 기대만을 의식하고 충족시키려는 삶은 자신과 타인 모두에게 거짓말을 하게 된다는 메시지 등 몇 구절만 봐도 훌륭한 책임을 느끼게 한다. 

 

『도덕적 불감증』은 더 좋은 세상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인식을 다룬다. 이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무관심한 태도를 ‘아디아포라(adiaphora)’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아디아포라는 사회 정의에 대한 도덕적 감수성이 결여된 상태인 셈이다. “폭력을 매일 보면 그것은 더 이상 경악이나 혐오를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폭력이, 말하자면 우리에게서 자라난다.” 히틀러의 모습이 아니라, 오늘 출근길에서 만난 행인들의 모습 속에 폭력이 있다는 묵직한 메시지를 담았다.

 

4.
나는 연말의 중요한 순간들을 더 멋지게, 더 신나게, 더 의미 있게 보내기 위해, 시간을 쪼개어 책에 바친다. 책이 좋아서가 아니라 내 삶을 사랑해서다. 어떨 땐 지독히 얄미운 내 삶이지만, 결국엔 이놈을 끌어안는다. 다름 아닌 내 삶이니까. 손택의 말이 내 마음을 제대로 읽어낸다.

 

“독서는 내게 여흥이고 휴식이고 위로고 내 작은 자살이에요. 세상이 못 견디겠으면 책을 들고 쪼그려 눕죠. 그건 내가 모든 걸 잊고 떠날 수 있게 해 주는 작은 우주선이에요.” 그녀에게도, 내게도 독서는 도피가 아니다. 충전이요, 위로요, 크고 작은 결심이다. 나는 책을 펼쳐 들고 죽었다가, 책을 덮으며 부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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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선택에 관하여

요즘의 독서생활 단상 (4)

 

1.

올해 들어서부터 부쩍, 중요한 책들만을 읽으려고 노력한다. 이런 노력을 지속하기란 쉽지 않다. 매주 신간이 쏟아지고, 언론은 새로운 책과 엄청난 책들로 나를 유혹한다. 지적 욕망이 열렬한 독서가는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지 않으면, 금세 산만한 독서 행위를 하거나 피상적인 책을 손에 들고 만다. 한방향 정렬이 되지 못한 책 읽기, 어느 하나도 전문성에 이르지 못한 잡다한 지식에 머물고 마는 것이다. 이런 독서가라면, '집중력'이라는 화두에 집중해야 한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중요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 책읽기의 방향을 확인하고, 자주 나를 단속해야 했다. 전문성을 갖고 분야(주제)는 무엇인가, 읽어야 할 필수도서는 무엇인가, 왜 그 책을 읽는가, 방금 읽은 책의 주제와 핵심내용은 무엇인가 등을 자문한다. 그리고 내가 읽는 책이 나의 전문성과 계획에 연결되어 있는지를 따졌다. 책을 읽기만 하는지(읽기만 해도 뭔가 해내고 있다는 기만적 느낌을 조심해야 한다), 이해하고 소화하고 있는지는 살핀다.   

 

2.

1번 내용을 이야기하면, 내가 책읽기를 심각한 과업으로 여긴다는 오해를 산다. 천만의 말씀이다. 나의 천성은 책임감이 없고, 훈련을 유독 싫어한다.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책은 이내 내려놓고 만다. 나는 규칙, 훈련보다는 자율, 낭만을 좋아한다. 나의 또 다른 천성은 성찰이다.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에 대한 감각이 남다르다는 말이다. 지적 호기심 또한 나의 천성이다. 무엇이든 알고 싶어한다. 지적으로 산다는 것은 어떤 노력을 기울이는 게 아니다. 자연스럽게 행해지는 삶의 방식이다.

 

1번 내용은 낭만, 성찰, 호기심이 버무러진 자연스러운 내 모습이다. 읽고 싶은 대로 아무 책이나 잡아들고 읽는 나를 성찰하고 나면, 이런 귀결에 다다른다. '아! 책을 너무 산만하게 읽어왔구나. 이러다간 잡다하게 많은 것들을 얕게 아는 사람이 되겠구나. 나도 하나 정도는 깊이 있게 알고 있다. 나의 지적 호기심에 걸려든 주제만이라도 제대로 알고 싶다.' 내게 독서는 별다른 노력이 드는 일이 아니고, 남독에 이르기 쉽기에 나를 자주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 들여다보는 작업, 성찰 또한 나의 습관이다.

 

3.

20대와 지금의 책 선택 노하우는 조금 달라졌다. 가령, 20대에는 일간지의 토요일자에 실리는 북섹션을 늘 챙겨 읽었다. 가끔씩은 책에 대한 책을 읽어 좋은 책에 대한 정보도 얻었다. 한 분야에 대해 첫발을 들일 때면, 그 분야의 선배나 전문가들에게 좋은 책에 대한 조언을 구했다. 이러한 활동들은 나의 독서생활을 도와 주었다. 요즘에는 가끔씩 북섹션을 본다. 내가 무슨 책을 읽어야 하는지에 대한 방향과 독서의 목적이 분명해서 다른 책들에게 눈을 돌릴 여유가 많지 않아서다.

 

북섹션이 아니더라도 화제 도서는 인터넷 서점 메일링이나 서점의 매대에서 확인하는 경우도 많다. 책에 대한 책을 읽는 일도 드물다. 공부를 많이 하지 않는 저자들의 책에 대한 정보는 그리 도움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느 때부터는 나보다 공부를 적게 하는 저자들도 눈에 들어왔다. 읽어야 하는 책이 줄어들어서 기분 좋았다. 교만은 아니리라. 여전히 읽어야 할 책이 많음을 잘 인식하고 있으니. (이를테면, 책에 대한 책이라기보다는 역사서이긴 하지만 로버트 단턴의 금서 이야기 『책과 혁명』은 책과 독서에 대한 사색을 하게 만드는 책이다. 여전히 출간되기만 한다면 구입해서 읽을 최고의 독서가들도 있다. (이를테면, 마이클 더다.)

 

20대나 지금이나 여전히 책을 선택하는 기준이 되는 원칙도 있다. 자신에게 끌림을 주는 흥미 지향적 독서, 그 책을 선택한 이유를 해결하는 목적 지향적 독서, 자신의 꿈에 다가서는 비전 지향적 독서, 인류의 정신과 문화적 유산이 담긴 고전 지향적 독서를 하라.(『나는 읽는 대로 만들어진다』, p.120) 20대부터 이렇게 책을 선택하여 읽어왔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강한 끌림을 주면 읽고, 독서비전을 이뤄주는 책을 읽는다. 비전과 고전이라는 키워드는 책을 선택하는 중요한 기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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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후 활동에 대하여

- 요즘의 독서생활 단상 (3)

  

1.

한 권의 책을 완독하고 나니, 얼른 다음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을 솟아났다. 나는 욕망을 잠시 눌러두었다. '떠오르는 대로' 읽은 소감을 정리해 두기 위해서다. 책을 읽은 후에 이어지는 활동이 중요하다. (거듭 강조하고 싶은 독서 후 활동의 중요성!) 두 가지가 독서 후 활동의 키워드다. 실천 그리고 사유! 나는 한 구절이라도 책의 내용을 삶의 현장에서 실천하거나 한 대목이라도 붙잡아 자기 머리로 생각하려고 노력한다. 결국 본인이 꽃피우는 독서의 결실도 두 가지다. 실천하여 삶을 바꾸거나 생각하여 깊어지거나.

 

2.

나는 독서 후 무언가를 끼적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는다. 내용이 무엇이든 좋다. 소감, 단상, 감정 등을 적어도 좋고, 책의 구절을 옮겨와도 좋다. 형식이 어떠해도 괜찮다. 그림으로 표현하든, 핵심내용을 번호를 매겨가며 정리하든, 술술 글로 풀어내든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끼적인다는 행위 자체다. 당신도 독서 후 활동의 중요성을 알 것이다. 문제는 시간이 없다는 사실이다. 바로 그것이다. 끼적여야 하는 이유는 우리에게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시간이 많으면, 기억이 안 나더라도 다음에 또 읽으면 된다. 읽기의 즐거움도 있지 않은가. 애석하게도 우리는 책만 읽을 순 없다. 그렇기에 책읽기 + 끼적임을 통해 읽은 것을 익히는 것이 남는 장사다.

 

끼적임은 글쓰기의 영역이 아니다. 오히려 메모에 가까운 행위요, 사유의 도구로 메모를 활용하려는 의도다. 처음 독서생활을 시작했을 때, 나는 노트를 하나 마련하여 독서일지를 써 나갔다. 일지쓰기는 독서에 대한 지속적인 동기부여가 되었다. 독서일기는 곧 생각일기라 불러도 될 정도로 이런저런 생각을 펼쳐 나가도록 도와 주었다. 노트도 좋고, 블로그도 좋고, 책의 간지도 좋다. 실천은 작은 것부터 시작하자. 책을 읽었는가. 그렇다면 가장 인상 깊었던 10개 구절만 옮겨 적어보시라. 이것은 훌륭한 독서 후 활동이다. 옮겨 적다가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면 금상첨화다. 그 단상을 덧붙여 두면 된다.

 

3.

책읽기 VS 글쓰기. 글쟁이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둘의 균형을 이뤄야 한다. 읽기가 부실하면 글이 허약해지고, 쓰기에 불성실하면 지갑이 가벼워진다. 읽기가 극대화되면 쓸 시간이 줄어든다. 쓰기에 집착하면 자칫 쓰기 위한 삶을 산다. 이것은 모두 단순화시킨 논리이기에 고려할 점들이 남아 있지만, 읽기와 쓰기 사이의 대략적 관계는 짐작하시리라.  

 

읽는 것이 쓰는 것을 앞선다. 스무 살부터 시작된 나의 독서 인생을 들여다본 결과다. 20대에는 쓰는 것보다 읽는 것이 확연히 많았다. 서른을 전후로 읽기와 쓰기의 간격이 조금은 좁아졌지만 여전히 읽는 것이 멀찌감치 앞서갔다. 무엇보다 20대인 나의 책읽기는 읽는 대로 실천하는 독서였다. 그때에도 글쓰기에 대한 관심이 있었지만, 더 큰 관심은 내 삶의 변화와 도약이었다.

 

책을 향유하지 못하고 소비만 하고 있다는 인식이 생긴 것은 삼십대 초반이 지나갈 무렵이었다. 나는 실천하는 독서 습관을 버리지 않은 상태에서 읽으면 쓰는 습관을 덧붙이고 싶었다. 읽는 대로 사유하고, 읽는 족족 쓰자고 다짐했다. 쓰지 못하면 밑줄 친 구절에 대해 생각이라도 하자! 요즘엔 독서한 것으로 사유하고 글쓰기가 그런대로 되어가고 있다. 『공항에서 일주일을』도 다 읽은 후, 여러 구절을 곱씹어 보았다.

 

읽었는데도 쓸거리가 떠오르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런 때에도 글쓰기로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 없다. 쓸거리가 없는 순간은 공부에 매진할 기회이기 때문이다. 읽는 족족 쓴다는 말은, 읽으며 쓸거리를 얻은 경우의 말이다. 읽었는데도 영감을 얻지 못한 경우라면... 계속 읽어가라는, 그리고 생각하라는 표지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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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과 지성을 위한 독서

- 요즘의 독서생활 단상 (2)

 

1.

아침에는 자기경영 수행자의 마음가짐으로 책을 읽는다. 하루를 살아갈 영혼의 힘을 얻고 마음을 가다듬기 위한 독서다. 수행으로서의 독서는 짧게 끝난다. 좋은 책을 손에 잡았다면, 10~15분만으로도 하루치 실천할 영감과 에너지를 얻기 때문이다. 힘을 얻었으면 책을 덮는다. 목표는 일상을 잘 사는 것이고 독서는 수단이다. 비독서의 순간을 위해 독서하라! 이것이 삶을 위한 책읽기의 절대 원칙이다. 

 

수행을 위한 독서로는 명상서적(오쇼나 디펙 초프라), 자기경영의 명저들(스티븐 코비와 같은 훌륭한 저자나 긍정심리학에 기반한 실용서들), 리더십 등의 책이 포함된다. 스캇 펙이나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또는 파커 파머와 같은 인생 지혜를 담은 책들도 자기경영의 수행에 많은 도움을 준다. 이런 책들을 매일 읽는 것은 아니다. 자기경영의 리듬이 흐트러졌다 싶으면, 정상 궤도로 회복할 때까지 매일 아침 수행자의 태도를 위의 책들을 읽는다.

 

2.

오전이나 밤에 책 읽을 시간이 나면 지적인 책읽기에 빠져든다. 지적 독서에는 덩어리 시간이 필요하다. 최소한 30분이어야 하고, 3~4시간이면 아주 좋다. 지적 독서의 핵심은 느리게 읽기다. 느리게 읽으려고 작정해서가 아니라, 모르는 개념이 나오면 찾고 생각할 꺼리가 있으면 잠시 책장을 덮고 사유하느라 느려지는 것이다. 가끔 머리를 식히고 싶거나 지하철로 이동할 때에는 주로 교양 도서를 읽는다. 실용서도 아니고, 깊이있는 전문서도 아닌 대부분의 책들을 나는 교양서라 부른다.

 

3.

오랜만에 책을 주문했다. (나는 책 구입에 많은 돈을 썼던 지난 날들을 후회한다. 후회의 결과로 올해 하반기부터 책 구입을 자제해 왔다. 이에 대해서는 긴 포스팅이 필요하겠다. 장서를 늘려왔던 삶에 대해 무엇을 후회하고, 무엇이 결실인지에 대한 글을 머잖아 써야겠다.) 나처럼 실제로 책장을 넘겨가며 읽는 일보다 책을 사들이는 일에 더 큰 관심을 갖는 이들에게 필요한 태도는 두 가지다. 1) 허영심과 소유욕을 버릴 것. 2) 중요한 책들을 꼼꼼히 읽을 것.

 

이번 책 주문은 9월 18일에 유홍준 선생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8권(남한강편)』을 구입한 이후 처음이니, 조금 뿌듯하다. 마음 속으로 올해의 마지막 구매라고 생각하고 있다. 롤랑 바르트의 『라신에 대하여』, 수잔 손택의 『앨리스 깨어나지 않는 영혼』 등이 택배 포장을 마치고 기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얼마전 술자리에서 추천 받았던 『마음의 사회학』도 함께 주문했는데, 기대되는 책이다. 발터 벤야민의 영역본 선집한 권도 함께 도착할 것이다. (사실 이 녀석을 모셔오기 위한 주문이었고, 다른 책들은 지난 달부터 대기하다가 카트에 담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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