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명록

  1. 이경선 2018.07.22 06:42 신고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나는 읽는대로 만들어진다를 읽고 인생이 바뀐 이경선이라고 합니다. 그 책을 읽고 책에 말씀해주신 것들을 하나씩 실천에 옮기기 시작한지 만3년 되었습니다. 책을 좋아하도록 만들어주신 것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제 인생의 터닝포인트는 나는 읽는대로 만들어진다를 읽은 그 날입니다. 그 날 이후로 저는 다른 삶을 삽니다. 책과 함께요 ㅎㅎ 그동안 꼭 한 번 저자님께 감사를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정말 만나뵙고 싶었는데 홈페이지에나마 이제야 용기를 내어봅니다.
    저자님께 더 많이 배우고 싶은 마음 간절합니다. 어떻게 배움을 이어가야하는지 가르침을 받고 싶어요.

  2. 김승창 2018.07.18 10:06 신고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저는 말차를 나와 있는 23살 군인 김승창이라고 합니다. 입대전에 저자신에 대한 깊은 회의감과 불안 절망 등 매일 똑같이 굴러가는 감정의 쳇바퀴에 빠져 그 탈출구로 책을 삼았을 때가 벌써 1년7개월전입니다. 그 과정에서 황희철 대표님의 '독서8년'이라는 책의 제목에 끌려 읽다가 이희석작가님의 '나는 읽는 대로 만들어진다'를 읽게 되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스스로 느꼇던 책에 대한 확신을 한번더 구체적으로 잡을 수 있었고 든든한 인생, 독서 선배의 길 같아서 읽는 내내 마음이 편안했습니다. 와우팀이 없어진 것 같아 매우 아쉽지만 저 나름대로의 독서를 계속 이어나갈 생각입니다. 좋은 책 출판해주셔서 감사하고 항상 건강하시길 바라겠습니다.

  3. 엄정현 2017.10.13 14:51 신고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반성하고 실천하기를 반복하며, 깨우치고 배워가는 '나'를 만들어가고 싶은 독자입니다.
    처음으로 책을 읽고 저자님에게 글을 남길 수 있는 기회의 창을 주셔서 감사의 인사드립니다.
    일주일 전.
    '시간관리'에 관한 분야를 읽어보려 알라딘 서점에 발길이 닿았습니다.
    그렇게 '나는 읽는 대로 만들어진다.'의 책을 손에 쥐었고, 찾던 분야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가슴에 책을 품고 돌아왔습니다.
    그것은 저에게 우연이였고, 운명이였고, 필연이였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저는 Reader가 되었고, 작가님은 저의 Leader가 되어주셨습니다.
    책을 읽는 수 년동안 허공에 만들어지는 성이였다면, 지금에서야 주춧돌을 만들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보기 드문 지식인을 만났을 때는 그가 무슨 책을 읽는가를 물어보라-
    작가님이 적어주신 다양한 분야의 추천 도서들이, 가장 먼저 저의 책장에 쌓여갈 것입니다.
    "독서에 대한 책이 아니라, 독서를 지향하는 삶의 유익이 어우러진 책이 되었으면 하고 바랬다." 하신 작가님의 바람이 저에게 불을 붙여주신 사람이 되어주셨습니다. 그것은 프롤로그 읽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바람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책장을 덮는 지금 스스로 타오르고 있음을 느낍니다.
    2008년에 출간된 '나는 읽는 대로 만들어진다' 책을 9년이 지난 지금 읽기에 꼭 글을 남기고 싶었습니다.
    저는 1시간 전보다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었고, 하루 전 보다 달라진 마음을 갖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일주일 전, 작가님의 글을 읽기 전 보다 더 나은 삶으로 달라질 것입니다.
    감사인사를 드리며 저의 단초로운 글을 줄이도록 하겠습니다.
    짧은 가을을 지나 추위가 찾아오는 겨울을 느끼며, 작가님의 따듯한 겨울과 행복한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하겠습니다.

    • 보보 2017.10.15 23:24 신고  수정/삭제

      안녕하세요. ^^
      댓글을 읽는 제 마음도 뜨거워지네요.
      9년이나 지난 책을 읽어 주시니 고맙고
      삶의 열정이 불타오르시니 반갑고 기쁩니다.

      읽으실 책들을 몇 권 적어 주시면
      제가 코멘트를 드리고 싶기도 하네요.
      물론 저의 생각도 참고일 뿐이겠지만
      목록을 더하고 빼어 엄정현 님의 시간을
      조금이나마 절약한다면 좋을 테니까요.

      따뜻한 댓글, 고맙게 읽었습니다.
      멋진 삶을 응원 드립니다. ^^

  4. 김광훈 2017.07.14 12:34 신고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요즘 책에 미쳐사는 1인입니다 ㅎ
    나는 읽는 대로 만들어진다에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3독하고 너무뵙고싶어 카페도 가입해봤지만 두군데 다 부재중이시더군요....ㅜㅜ
    책으로 새로운 인생을 도전할려고합니다. 인문학은 필수라고 하셨는데 접근하기가 만만치 않네요
    도와주세요ㅎㅎㅎ도움의 손길이 절실합니다.ㅎ 인문학입문 방법과 책추천쫌 해주셨으면 합니다.
    메일 주소는 replaymodel@naver.com 입니다^^

  5. 오종훈 2017.05.10 14:31 신고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저는 1983년도 대구 경복중학교 졸업생입니다. 그때 은사님이시던 전광춘 선생님의 연락처를 알고싶어 인터넷 검색을 하던 중 우연히 보보님의 블로그에서 전광춘 선생님의 존함을 발견하고 이렇게 글을 남깁니다. 전광춘 선생님은 그당시 경복중학교에서 기술 과목을 가르치고 계셨는데 이후 같은 재단인 협성고등학교로 전근을 가신 듯 하네요. 죄송하지만 전광춘 선생님을 뵙고싶어서 그러는데 연락처 좀 알려주실 수 있으실까요? 제 이메일 주소는 cocdas01@naver.com입니다. 불쑥 요청을 드리게 되어 죄송합니다.

  6. 심희정 2017.04.10 09:47 신고  수정/삭제  댓글쓰기

    토요일 저녁 이후로 글쓰기 특강과 손택 강독을 기다리고 있답니다 :)
    수전 손택의 <우울한 열정>과 <해석에 반대한다>를 열심히 읽고 있겠습니다 :)
    그리고 16일이 어땠을지는 17일에 안부인사 드릴게요 :)

    • 보보 2017.04.10 23:56 신고  수정/삭제

      글쓰기 특강은 조만간 공지를 올릴 테고
      손택 강독회는 6월에 진행할 예정입니다.
      그러니 5월 중순에는 공지해야 할 테죠. ^^

  7. 정현진 2017.01.03 13:09 신고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보보님 2017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나는 읽는대로 만들어진다' 읽고 바로 실천에 옮겨보는 한 독자입니다.
    학생 때는 그래도 한 달에 4권이상 읽어왔었는데 직장인이 되고 한 달에 1권조차 읽을까 말까 한
    제 자신을 반성하고 다시 한 번 독서의 동기를 심어주는 계기가 되어준 책이 된 것 같습니다.
    어쩌면 이분야는 관련이 없을 수도 있고 과연 조언을 얻을 수 있을까 생각이 들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기대로 글을 남겨봅니다.
    몇 년전에 사게된 책인지도 가물가물 합니다.'워렌버핏의 주주서한'이란 책을 사게 되었는데
    아무래도 기본 바탕 지식이 없다보니 읽기가 조금 버겁더라구요.
    그래서 중간까지 읽다가 결국 중단된 채 제 책장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 책입니다. 이 책을 완독하기 위해 어떤 관련서적이나 입문서를 읽으면 좋을까? 여기저기 뒤져봤지만 뚜렷한 답안이 보이지 않아 알고계신 책리스트가 있다면 알려주신다면 완독 후 감사와 함께 느낌을 남기고 싶네요.
    위에 홈페이지에 있는게 제 이메일 주소입니다. 부탁드립니다.

  8. 심지연 2016.09.08 20:06 신고  수정/삭제  댓글쓰기

    학습 내용의 타자화!!! 순간 뇌가(?) '띵~' 한데요.

    생각해보지 않은 관점이라..아니, 이렇게 학습하기도 했겠지만(?)
    (아~ 그렇게 믿고싶다..ㅎㅎ)
    인식하게 된 건 지금 이 순간이네요. 얼음!!!

    저에게 있어서 자기화란 '신학화' 라고 볼 수 있는데
    그런 의미에서 여러 철학과 사상들을 이해하고 분별하는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이제 막 지성사 입문 하는 주제에 이런 말을 합니다. ^^;;)

    '이데아를 인식하는 단계에 오른 사람은 당연히 모든 개별자를 쉽게 이해한다'
    (故 남경태 작가님의 『누구나 한번즘 철학을 생각한다』中)

    저에게는 명확한 기준이 있기 때문에 그 기준을 중심으로
    타사상을 공부하는건 혼란이 아닌 오히려 진리의 명백화였고
    솔직하게 말하자면 신학을 벗어나서 철학을 한다는 말이
    궁극적으로는 말이 안된다고 생각했거든요.
    (지금 상태는 신학, 곧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의 근원이라는 데에는
    변함없지만, 방법론에서 타자화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어요.)

    아래 남경태 작가님 책 내용처럼
    '궁극적인 존재는 이데아라 해도 이데아로 가는 관문에는 개별자가 있다.'
    그 개별자들을 공부하는데에 있어서 '타자화'의 방법으로 공부한다는 것
    또한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 같아요.

    아마도 전...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제 마음 한 구석에 신학, 즉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공부하지 않을 때, 지성사에 위대한 족적을 남긴 사상가들의 사상을
    기준이나 제약 없이 공부하다가 엉뚱한데로 빠지면 어쩌지? 하는 약간의 두려움이
    있는 것 같아요.

    보보님이 '공감'이라는 말로 표현해 주셔서 마음은 한결 가볍네요.

    그리스 철학의 끝자락에서 기독교 지성사에 중대한 역할을 했지만
    기독교인은 아니었던 플로티누스...
    "그의 생각 중 몇 마디만 바꾸면 그는 그리스도인이나 다름없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이렇게 표현했을 정도인데.. 신학적으로 납득되고
    공감 할 부분만 보게 되고, 그것만 쏙 빼오는 식의 공부를 하는건
    뭔가 큰 실례를 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드네요.

    점점 감이 잡히네요. 왜 타자화의 방법으로 공부를 해야 하는지...
    그리고 지금 머릿속에 맴도는 말은!
    '나 정말 열심히 해야 하는구나'

    보보님, 감사합니다. ^^

    • 보보 2016.09.10 13:10 신고  수정/삭제

      "탁월한 학습자는 '자기화'에 능하고
      위대한 학습자는 '타자화'에 이른다.
      그 사람으로 생각하고 살아보기,
      이것이야말로 학습의 최고봉이다."
      - 연지원 (2015.3.7)

      와우카페 한줄메모장에 올렸던 글입니다. ^^

  9. 심지연 2016.08.31 21:35 신고  수정/삭제  댓글쓰기

    보보님, 안녕하세요! ^^
    방명록에 글을 올린 후로 매일 들어왔는데
    답글이 안 올라와서 '질문이 어리석은가?'
    혹은 '너무 방대한 영역인가?' 싶어 심무룩..(성이 심씨라..ㅎㅎ)
    할 뻔 하였으나 제 인식의 오류 하나를 찾아 내었더니
    많은 부분이 해결 되었어요.

    결정적으로 '인문주의'와 '인본주의'를 구분 못하고
    거의 동일하게 생각하고 있었더라고요.
    그런데 실제로도 동일하게 쓰는 영역이 있는 것 같아요.
    인문주의 안에 인본주의가 없다고 말 할 수도 없고요.

    그러나 인문주의가 신학함에 있어 좋은 도구로 쓰여지고
    이성과 합리주의 또한 신학의 도구가 되어, 신학을 축소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신학적 토대가 되어진 부분들도 있다고 하기에...

    근데 지금도 헷갈리는게 르네상스 인문주의가 우리가 지금 말하는
    인문학(보통은 문학, 역사, 철학)이라고 하는 것도 포함하는 건지
    아니면 르네상스 인문주의는 인본주의에 가까운 것이고, 그러므로 당시
    신학과 충돌했던 건지, '세속적 인문주의'라고 말하는 것이 '인본주의'를
    얘기하는건지...ㅎㅎ

    신학없이 철학을 한다는 것이 지성사 흐름으로 본다면 중세철학을 신학과
    동일시한 것에서 독자적으로 철학을 인정해주기 시작한 시점으로 부터의
    철학함을 얘기하는 걸까요?

    기독교 사상을 토대로 다른 사상을 공부 한다는 것이 크리스찬의 딜레마라
    느낄 수도 있겠지만 전 기준이 있기 때문에 혼란스럽지 않고,
    더 밝히 보인다고 생각하거든요.
    철학 속에서 끝없이 질문하고 답을 내고, 다시 부인하고, 다른 답을 내고..
    이런 과정이 허무하게 느껴지기도 했어요. 물론 지성사 흐름을 가볍게 여기거나
    인정하지 않는 태도는 아닙니다.

    문득,
    여기 방명록인데 제가 거의 전세 냈네요. (머쓱~;;)
    그럼 도망을!!! ^^;;

    • 보보 2016.09.08 16:53 신고  수정/삭제

      1.
      르네상스 인문주의는
      우리가 생각하는 인문학과는
      공유점도 있고, 차이점도 있습니다.

      르네상스 인문주의는 학문이기보다는
      중세라는 한 시대의 성숙기를 지칭하는 말이요,
      고대의 정신을 추구하는 지적 예술적 운동입니다.
      고대 그리스가 르네상스의 푯대이자 모체고요.

      중세의 정신에 반동하여
      훗날 르네상스 인문주의자라고 불린 일단의 지성인들이
      고대 그리스의 정신을 추구했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정신이 바로 인문주의였지요.
      인간의 존엄함, 고통 속에서도 나락에 빠지지 않는 숭고미를 말이죠.

      그리스 정신과 르네상스 정신의 차이점도 있습니다.
      고대와 중세에는 독립된 개인이 없었지요.
      개인의 등장은 르네상스에 이르러 이뤄집니다.
      르네상스의 정신을 정리하자면,
      고대 그리스의 인문주의와 새롭게 등장한 개인주의입니다.

    • 보보 2016.09.08 16:57 신고  수정/삭제

      2.
      인문주의와 인본주의도
      공유점과 차이점이 있지요.
      인간의 존엄함 추구는 공통점입니다.

      교회에서는 두 용어를 같이 보는지 모르겠지만,
      어감상 다음과 같은 차이는 있습니다.

      인본주의는 인간의 존엄함'만' 추구하고
      인문주의는 인간의 존엄함'을' 추구하는 뉘앙스 말입니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신의 경외를 제외한 인문주의라는 의미로 쓸 때에는
      주로 '인본주의'라는 용어를 쓰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드네요.

    • 심지연 2016.09.08 20:25 신고  수정/삭제

      기독교계에서는 인문주의가 인본주의로
      번역되어 오해가 많았다고 하네요.
      지금도 좀 그런것 같아요.
      또는 인문주의와 세속적 인문주의 라고 구분하기도 하더라고요.
      이런 부분이 명확하지 않으면 중간중간
      넘어가질 못하고 ㅎㅎ;;
      르네상스 인문주의는 고대 그리스-로마
      원전으로 돌아가자는 학풍인데 거기서
      세속적 인문주의도 나오고 신학과 대립
      했다는..
      하.. 제가 더 열심히 공부해야지..
      무지한 저를 가르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10. 심지연 2016.08.27 17:11 신고  수정/삭제  댓글쓰기

    보보님, 안녕하세요.^^
    굉장히 오랜만에 글을 남기네요. 잘 지내셨죠?
    저는 간간이, 꽤 자주? 보보님 블로그에 들렸지만
    글만 스윽~ 읽고 스르륵~ 사라지곤해서.. ㅎㅎ

    요즘 기독교지성사에 관심을 가지고 입문서적 뒤적이면서
    맥을 잡아가려 하는데, 후~ 제대로 공부하려니 워낙 방대해서
    기도가 절로 나오는중입니다.
    그러는 중에 전에 보보님 글에서 읽었던 한 구절이 자꾸 맴돌아
    글남기게 되었어요.
    그동안 안부글 하나 없다가 이러는거 좀 죄송스럽긴 하지만
    봐주시리라...^^;;

    '철학을 신학없이 하는법'을 고민중이시라고 하셨었는데 그게 어떤
    의미인지.. 게다가 궁극적으로 지성사가 신학을 관통하지 않고
    나아가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싶기도 하고, 철학자나 지식인들이
    이성과 인문중심의 학문을 하면서 신학을 벗었났다고 주장 할 수도
    있지만 큰 그림으로 보면 벗어난게 아니지 않나요?
    결론은 벗어날 수 없지 않나요?
    부분적으로 보면 그들의 말이 틀리지 않지만 전체를 볼 땐 불가능한?
    생각인것 같아서요. 그들은 왜 그렇게 신을 떠나서 학문을 하고 싶었을까요?
    중세 기독교에 심한 염증을 느낀 사람들도 많았겠지만.. 주절주절 말이 또
    길어지고 있네요.

    보보님이 신학없이 철학을 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중이셨다면 그 고민의 과정과
    결과는 어떠했는지 간략히라도 말씀해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 보보 2016.09.08 17:01 신고  수정/삭제

      신학 없이 철학을 한다는 말은
      지성사를 관통할 때 신학을 배제한다는 의도는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지성사를 공부할 때에는
      각 시대의 사상을 온전히 이해하려 노력해야겠지요.

      불교도가 지성사를 공부하면서
      중세를 만나면 자신의 종교를 내려놓고
      기독교 이해를 위해 흠뻑 노려해야 하듯이
      기독교인들도 중세를 제외한 지성사를 공부할 때
      신학이 아닌 사상을 깊이 공감해야 한다는 의도였지요.

      그 방법론은 '공감'입니다.
      뛰어난 학습자는 (학습 내용의) 자기화에 능하지만,
      최고의 학습자는 타자화에 능하니까요.
      다른 사람의 관점을 취하여
      그 사람처럼 사유하고, 관찰하는 것을
      최고의 학습이라 여긴다는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