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으로 서른 일곱이 되기 며칠 전의 어머니

 

다시 태어난다면...

 

어머니의 사랑을 오랫동안 듬뿍 받으며 살고 싶다.

사랑만으로 삶이 마냥 행복할 수는 없음은 이번 생을 통해 체험했으니, 내세를 산다면 쪼들르지 않은 정도의 경제 형편이었으면 좋겠다. 어머니가 날마다 오토바이를 타고 음료 배달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의 삶, 주말에 함께 공원에라도 산책할 여유가 있는 삶.

 

다른 어머니가 아니라 사진 속의 저 어머니 뱃 속에서 태어나고 싶다. 

어머니와 함께 해보지 못한 것들이 너무나 많다. 어머니와 둘이서 외식한 적도 없으니(근사한 곳이 아니라 시장 분식집에서 김밥과 떡볶이라도 함께 먹어본 기억이 전혀 없다), 함께 영화관에 가거나 백화점 나들이 같은 것도 상상도 못했다.

 

힘겨울 땐 어머니의 손을 잡아도 보고, 기쁠 땐 가장 먼저 전화도 드려보고 싶다.

어머니의 가장 큰 기쁨에 내 책의 출간이 포함되어 있다면, 매년 출간을 위해 노력해보고도 싶다. 막상 어머니랑 곁에 있는 삶을 살면 지금 마음이 옅어질 수도 있으니, 다시 태어나게 될 때 이 글을 가슴 속에 새겨 두고 싶다.

 

어머니와 함께 오랫동안 인생을 살며 당신을 알아가고도 싶다.

스물 두해 전에 세상을 떠나신 지라, 게다가 당시 내가 열 다섯에 불과했던 지라 어머니를 어머니로서 알았을 뿐, 한 사람으로서는 알지 못했다. 다시 생을 살 수 있다면, 어머니께서 맛나게 드시는 음식과 좋아하는 것들을 알아 자주 그것을 선물해 드리고 싶다.

 

Posted by 보보

 

밤 11시가 넘은 시각, 나는 집을 향해 터덜터덜 걸어가고 있었다. 구본형 선생님의 발인미사와 화장식 그리고 유골안치를 마치었던 날(4월 16일)이었고, 저녁에는 살롱9에서의 강연까지 진행했던 날이라 몸도 마음도 지쳐 있었던 즈음이었다. 3박 4일 동안 진행된 선생님의 조문과 장례식이 끝난 즈음에 강연까지 해야 했으니 지칠 만도 했다.

 

집앞 거리에서 나는 벚꽃터널을 만났다. 인도를 따라 양쪽으로 늘어선 벚꽃이 만든 짧은 터널이었다. 가로등 불빛 덕분인지, 벚꽃의 내음 덕분인지 터널은 은은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선생님이 떠올랐다. 당신은 꽃처럼 아름다웠고, 떠난 후에 당신의 향기를 남기셨다. 봄날에 가신 것 또한 당신다운 떠남이라고 생각했다. 벚꽃인지, 선생님인지 내게 말을 걸었다.

 

"이 녀석, 수고했구나. 이 좋은 삶을 더 함께 하지 못해 아쉽구나. 하지만 꽃처럼 아름답게 살려고 노력해왔기에 아쉬움이 덜하다. 너도 그리 살거라. 꽃처럼 눈부시고 아름답게 말이다.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것은 단명한 것들이다. 꽃이 아름다운 이유다. 한 순간에 모든 것을 다 피워내는 꽃의 몰입과 향기를 남기고 떠날 줄 아는 꽃의 마지막을 본받거라."

 

눈물이 흘렀다. 벚꽃나무 곁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살아계실 때에 좀 더 자주 선생님 곁에 서지 못했던 날들이 떠올라 마음이 아팠지만, 금새 선생님의 아름다운 삶에 대한 찬탄으로 내 마음을 옮겨갈 수 있었다. 눈앞에는 벚꽃이 하늘거렸고, 선생님은 정말로 멋진 삶을 사셨으니까. 젊은 여성 행인이 걸음을 멈추고 벚꽃을 카메라에 담았다.

 

나는 그 순간을 마음에 담았다. 매년 벚꽃이 필 무렵이면, 선생님을 향한 그리움이 더욱 진해질 것 같다. 세월이 오래 지나도 4월만 되면 선생님 생각에 한동안 벚꽃을 쳐다보게 될 테지. 장례식 기간 중에 선생님의 마음을 따라 벚꽃 구경을 가고 싶었는데 시간이 여의치 않아 그러지 못했는데 장례식이 끝난 날 밤, 벚꽃과 함께 어우러지신 선생님을 만나다니!

 

나는 무심한 제자였다. 선생님이 벚꽃을 좋아하신 줄을 어젯밤에 『마흔 세살에 다시 시작하다』를 읽고서야 알았다. 이 책은 2008년도에 끝까지 읽었던 책이기도 한데 선생님이 벚꽃을 아주 좋아한다는 사실은 새까맣게 잊었었다. 선생님은 이렇게 써 두었다.

 

"나는 벚꽃을 아주 좋아한다. 산길을 걷다 숲 속에 심심찮게 묻혀 자란, 꽃이 만발한 벚나무를 만나면 늘 그 허리를 쓸어준다. 그 밑에 서서 꽃들 사이로 하늘을 보려 한다. 바람이 불고 이내 꽃비 오듯 그 작은 꽃잎들이 떨어져 내리면 황홀하기 그지없다."

 

내가 매년 봄에 벚꽃구경을 즐기는 것도 선생님의 영향 때문일까? 잘은 모르겠지만, 올해부터 벚꽃을 더욱 좋아하게 된 것은 분명하다. 지난 주의 벚꽃터널에서의 짧은 감격이 진했기 때문이기도 하나, 선생님과의 삶과 이별이 벚꽃을 닮았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벚꽃의 삶에 대해서는 선생님의 표현을 빌리는 게 낫겠다.

 

"벚꽃잎에는 작고 여리며 앙증맞고 환한 귀여움이 가득하다. 사람들이 다 좋아하는 이유이다. 일주일이면 잎사귀들이 나오고 꽃잎은 분분히 거리에 떨어져 내리고, 이내 바람에 날려 어디론가 사라져버린다. 목련은 아름답지만 지고 난 다음 그 무거운 주검을 주체하기 어려운 것에 비하면, 이 작은 꽃은 살아 있을 때처럼 갈 때도 가볍기 그지없다."

 

선생님의 삶은 자유와 행복 그리고 사람에 대한 애정과 진정성이 가득했다. 사람들이 그를 좋아하는 이유일 것이다. 선생님이 떠나신 후, 제자들은 슬픔과 함께 축복도 함께 느꼈다. 죽음은 삶의 마지막 과정이다. 삶과 죽음이 모두 아름다운 분을 곁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는 것은 축복이었다. 나는 매년 '가볍고 환한 가슴의 상처를 입고 봄날을 보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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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바쁘셨다.
학교 어머니회 일원으로서 학교 행사를 돕거나
교회 집사님으로서 결혼식 피로연 준비 등의 교회 행사에 참여하거나
회사에서 긴급한 일들을 처리하느라 바쁜 것은 아니었다.
아버지를 대신하여 나와 동생의 학비와 생활비를 버느라 바쁘셨다.
무능하고 무책임한 아버지가 생활비를 집으로 가져다 주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늘 고단하셨다.  
하루 벌어 하루를 살아가던 시절이었다.
어머니는 오토바이를 타고 200원 짜리 '스콜'이라는 음료를 배달하셨다.
판자촌의 골목엔 비탈길이 있었고, 우리가 살던 허름한 집의 대문은 작았다.
100cc 짜리 오토바이를 대문 밖으로 내었다가 들이는 일은 힘겨웠을 것이다. 
지아비는 심리적 안정을 주지 못했고, 생활고는 어머니께 육체적 편안함을 주지 못했다. 

나는 가난이 싫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가난 자체가 싫었던 건 아니다.
나는 지금도 가난한 편이다. 주머니는 늘 가볍고 저축액은 전혀 없다. 
자발적 가난이기에 서글프지 않다. 오히려 만족하고 행복하다. 
나는 필요한 만큼 벌고, 번 돈이 조금 있으면 여행을 떠나며 놀거나 일 대신 공부를 한다. 
돈이 떨어지면 다시 일하면 된다. 일을 하면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해하고 있다.

가난이 싫다고 한 것은 가난이 가져오는 상황이 싫다는 의미다. 
어머니에 대한 내 기억이 풍성하지 않은 것은 가난 때문이었다.
우리 집은 가난했기에 생활고에 시달렸다. 
생활고는 어머니를 바쁨으로 몰아갔다. 
아침에 나가셔서 저녁에 돌아오셨다. 
그런 매일의 바쁨이 어머니에게 육체적 고단함을 주었으리라.

일요일이 되면, 어머니는 잠시 누워 있곤 하셨다. 피곤을 그렇게 달래셨을 것이다.
참 아쉽게도 나는 어머니와 충분히 대화할 시간을 가지지는 못했다. 

어머니가 날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가난이 준 상황이었다. 
내가 초등학생이었을 때, 학교에서 돌아 오면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 땐 내가 어떠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당시가 서글프지도 슬프지도 않다. 
그것은 내 생활이었고, 누구나 자기 삶에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다행한 것은, 상황은 인간에게 큰 영향력을 미치지만
인간은 항상 상황보다 더 큰 존재라는 사실이다. 

어머니는 그런 상황에서도 나에게 주어야 할 것들을 주셨다. 
아쉽게도, 석아! 사랑한다, 라는 말을 들은 기억은 없지만
퇴근하실 때, 닭발이나 순대가 담긴 비닐봉지를 들고 오셨다. 
초등학생 1학년 때였나? 내 생일날, 우유와 100원짜리 런치빵을 사 주셨던 기억도 있다.
소박한 생일선물이었지만 그 런치빵 그리고 순대와 닭발은 어머니의 사랑이었다.

퇴근하셔서 
저녁을 짓는 어머니께 내 이야기를 들려 드리는 것은 즐거움이었다.
다행히도 어머니는 "엄마 피곤해" 라는 말로 이야기를 끊지 않으셨다. 
방과 부엌 사이에 난 작은 문을 통해 나는 종알종알거리며
나는 하루 동안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고 어머니는 잘 들어 주셨다. 
이렇게 짧은 시간을 통해서도 어머니와의 우정이 생겨난 것은 사랑의 힘일 것이다. 
어머니의 사랑이 가장 진하게 느껴지는 사건은 내가 '사랑의 꽃다발'이라 부르는 일이다.

중학교 1학년 때였다. 나는 집 근처의 영수 학원에 다녔다.
나는 예쁜 수학 선생님을 좋아했고, 스승의 날에 선물을 해 드리고 싶었다.
어머니께 꽃을 사 달라고 졸랐고, 당신께서는 알겠다고 하셨다.
기억에 의하면, 엄마는 약속을 지키지 않으셨다. 아니 시간 약속을 지키지 못하셨다.
오셔야 할 시각에 오지 못하여 나는 울상을 짓고 학원에 갔다.
엄마는 오토바이를 타고 학원에 오셨다. 꽃다발을 들고서.

기억이 맞다면, 나는 숨어 버렸다. 어머니의 모습이 부끄러웠다.
걸어 오신 것도 아니고, 일하시던 모습으로. 그것도 오토바이를 타시고 오셨던 것이다.
내가 수학 선생님을 그저 치기어린 수줍음으로 좋아했다면,
어머니의 나를 향한 사랑은 '꽃다발' 처럼 아름다웠는지도 모른다.  
어머니 당신께, 꽃다발 주인공은 수학 선생님이 아니라 나였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불운하게도, 어머니와의 우정은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어머니는 내가 중학교 2학년이 되었던 봄날에 교통사고로 내 곁을 떠나셨다. 
오토바이를 타고 학원에 오셨던 것처럼, 오토바이를 타고 하늘로 가셨다.
이것만큼은 애석하고 슬프고 가끔씩은 억울하기도 하다. 
슬플 때 기대어 울 가슴이 없다는 사실이
기쁜 일이 있어도 그 소식을 나눌 분이 계시지 않는다는 사실이.

한 때는 어머니를 어찌할 수 없는 가난 속으로 밀어넣은
아버지의 무책임을 미워하기도 했지만, 원망은 지혜롭지 못한 일임을 깨달았다.
아주 가끔은 어머니가 무척 그리워 보고 싶기도 하지만, 이 땅에서는 실현되지 않을 일이다.
어머니의 부재는 내 인생이다. 이것을 거부할 순 없다. 거부하는 순간, 
어두움 하나를 갖게 되는 것이고,
민감한 대화 주제 하나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빛이 그렇듯이 어두움도 드러나기 마련이다.  

누군가가 나의 어두움과 관련된 주제를 꺼내면
나는 
내 이야기가 아님에도 불편한 감정을 느낄지도 모를 일이다. 
그것은 내가 바라는 인생이 아니었다. 나는 상황을 뛰어넘고 싶었고, 성숙하고 싶었다.
그래서 어두움을 걷어내고,
나의 인생 전부를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 

인생 전부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현재에 충실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미래를 기대하는 동시에 과거를 온전히 수용하고 용서하는 것이다.  

나는 상실의 경험까지 포함하여 있는 그대로의 내 인생을 받아들이기 노력했다.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혹은 받아들인 결과로 몇 가지를 깨달았다. 

- 아무리 슬프고 부정적인 사건도 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 일부였다. 
- 우리는 자신의 성격, 지니고 있는 질병, 잊고 싶은 과거보다 더 큰 존재이다.
- 자신을 받아들이고 나면, 자신이
만들어가야 할 인생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 내가 받은 상처에 대하여 잘 알게 되면, 나도 '상처 받은 치유자'가 될 수 있다.

어머니와의 이별로 인해 나의 인생은 큰 변화를 맞이했고
변화의 크기만큼 나는 인생에서 동년배보다 더 많은 것을 배웠을 것이다. 
그들보다 내가 낫다고 말할 순 없다. 그들은 어머니의 사랑을 받고 자랐으니.
나도 사랑 없이 자란 것은 아니다. 그저 어머니를 둔 이들이 부러울 뿐이다.
어머니가 떠나신 후, 나는 절망과 슬픔에서 적응과 익숙함을 거쳐
지금은 망각과 그리움을 시계추처럼 반복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어머니!
내게는 부담감도 편안함도 느껴지지 않는 참으로 낯선 단어다.
이 말을 들으신 내 어머니는 서운해 하실까? 대견해 하실까? 궁금한 밤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글: 리더십/ 자기경영전문가 이희석 유니크컨설팅 대표컨설트 ceo@younic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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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글은 쓰지 않으려 했다. 넋두리가 될 테니까. 이미 나에게는 일상이 된 이야기이고, 누군가에게는 관심 없는 일이니까 정말 쓰지 않으려 했다. 내가 'N 사건'이라 부르는 그 일! 절대(Never)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일이고, 하지만 일어났으니 다시 일어서서 새롭게(New) 시작하자는 뜻에서 이름붙인 N사건은 2011년 1월 17일에 일어났었다. 20개국을 여행한 사진들, 여러 책의 원고들(나는 몇 권의 책을 동시 집필 중이었다), 와우수업을 진행하며 기록해 둔 내용들, 그리고 강연 PPT들이 모두 지워졌다. 2개월 동안의 복구 작업 결과는 '현재로서는 복구 불가'였다.

N사건은 지금도 여전히 생각난다. 힘들거나 괴롭지는 않다. 이제는 익숙해졌다. 그저 생각이 난다는 것이다. '아, 자료가 있으면 좋을 텐데' 정도다. 하지만 하루 중 딱 한 순간, 아침 샤워할 때에는 진한 아쉬움이 찾아든다. 하루를 시작하는 기운이 샘솟는 샤워 시간은 기분 좋게 하루 다짐을 하는 때다. 그 순간에는 N 사건에 대한 아쉬움이 찾아든다. 어떤 날에는 조금 힘겹기도 하다. '다시 만들어야 하는구나' '아, 책 원고만이라도 건질 수 있으면 좋겠다' '그 사진도 이젠 없구나' 같은 생각이 밀려오는 것이다. 오늘 아침도 그랬다. 뭐 하나 시작하려 할 때마다 떠오르는 N 사건이다.

내가 하지 않으려 했던 이야기는 바로 이런 나만의 넋두리다. 포스팅하게 된 것은 정옥숙 여사 때문이다. 그는 최진실, 진영 남매의 어머니다. 정 여사는 프리랜서 작가의 도움을 받아 책을 냈다. 책을 읽지는 않았다. 그저 몇 문장을 검색으로 읽었을 뿐이다. "유난히 사이좋은 남매였으니 저 먼 곳에서도 서로 의지하며 잘 지내고 있을 거라 믿는다. 하지만 어제도 나는 그 시절 생각이 나서 한숨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아름답게 핀 목련만 보아도 하루에도 수 십 번 마음이 내려앉고 바람에 날리는 벚꽃만 봐도 눈물이 난다."

어떠한 심정인지 헤아릴 수 있었다. 나는 교통사고로 하루 아침에 어머니를 여의기도 했고, 굳이 슬펐던 그 시절로 거슬러 올라 가지 않더라도 올해의 N 사건도 그러했기 때문이다. 여사의 슬픔과 나의 슬픔을 견주어보려는 것은 아니다. 그저 할머니이자 어머니인 그녀의 삶에 깊은 공감이 일었던 것이다. 정 여사는 최진실의 자녀 환희, 준희를 키우고 있단다. 그녀는 말한다. "나는 두 아이의 엄마였고, 지금도 두 아이의 엄마이다.” 나의 외할머니도 큰 딸을 떠나 보낸 뒤, 큰 딸의 아들(나)을 다시 자녀처럼 애틋함으로 대하셨다. 느즈막한 연세에 막내 아들이 하나 생긴 것이다. 

정 여사의 마지막 소원은 두 아이를 잘 돌보는 것이었다. "마지막 가는 날까지 그 순간까지 나는 환희, 준희에게 부끄럽지 않은 할머니로 기억되고 싶다. 그리고 다른 세상에서 진실이와 진영이를 만났을 때 엄마가 정말 해야 할 일을 하고 왔다고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꼭 껴안아 주고 싶다." 나의 외할머니도 엄마에게 이런 말을 하고 싶으실 거라 생각하니 눈물이 하염없이 난다. 지난 달, 어버이날을 맞아 할머니에게 선물과 편지를 보냈더니 답장을 보내 주셨다. 편지지 세장에 큰 글씨로 삐뚤삐뚤하게 쓰인 편지글은 두서가 없고, 같은 말의 반복이었다. 미안하다는 말, 사랑한다는 말 그리고 보고 싶다는 말... 정 여사가 쓴 책 제목과도 같다. 『엄마가,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

나는 정 여사를 실제로 보았는지도 모른다. 최진실 씨의 장례식에 조문을 다녀왔으니 말이다. 최진실이라는 사람이 세상을 떠난 날, 나는 참 슬펐다. 그녀가 <무릎팍도사>에 나와 새벽에 참 외롭다는 말이 귓가에 울리는 듯 했다. 그래서 조문을 갔고 조의금을 냈고 명복을 빌었다. 그 때 정 여사님을 지나가는 시선으로 보았는지도 모른다. 1945년 생이신 그녀, 오래오래 건강하시어 환희, 준희를 잘 키워 가셨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 해 오던 일이 싹뚝 싹이 잘린 느낌이지만, 지치지 말고 힘을 내어 다시 키워 나갔으면 좋겠다. 정 여사의 삶에 깊은 슬픔과 공감을 느끼다가 나의 슬픔과도 만났다. 감상적이고 연약한 나의 모습. 

엄마도 그립고, 할머니도 보고 싶고, N 사건에 대한 아쉬움도 진하게 드는 휴일이다.

Posted by 보보

 

배수경 선생님
중학교를 졸업한지 16년 여가 지났네요. 그간 잘 지내셨는지요? 저를 기억하시겠어요? 저 희석입니다. 선생님께서 저를 현대영수학원에도 보내주시고, 제게 시집도 선물해 주셨던 그 이희석입니다.

선생님을 찾아오는 길이 참 행복했습니다. 내 삶에 나를 아껴주고 살펴 주신 은사님이 계시다는 사실이 저를 참 행복하게 만들어 주더군요. 십 수년의 세월을 넘어서까지 제가 선생님을 기억하고 이렇게 찾아오도록 만들어 주신 선생님의 은혜에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해 드립니다. 참 고우셨던 모습은 여전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제게 보여 주신 참 스승의 모습은 제 마음 속에 잘 간직하고 있습니다. 저의 고등학교 진학을 함께 고민해 주셨던 기억, 현대영수학원에 있는 친구 분을 통해 제가 학원 수업을 무료로 들을 수 있도록 배려해 주셨던 기억, 단아하게 수학 수업을 가르쳐 주셨던 기억...

*

2008년 스승의 날.
나는 대구 오성중학교의 뒤뜰에 앉아 이렇게 편지를 쓰고 있었다.
얼마나 보고 싶었던 배OO 선생님이셨나!
이제, 잠시 후면 선생님을 뵐 수 있다니! 나의 가슴은 감격으로 떨리기까지 했다.

 

삶을 사느라 잊고 지내다가도 문득 문득 선생님이 떠올랐다. 해마다 배OO 선생님의 소식을 찾곤 했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전화번호로 전화를 하기도 했다. 그런데 번번이 연락이 되지 않았다. 올해 스승의 날을 앞두고서는 꼭 뵙고자 하는 마음으로 오성중학교에 전화를 했다. 그런데, 선생님이 현재 오성중학교에 계신다는 말을 들었다.

 

이렇게 반갑고 놀라울수가!
나는 스승의 날에 대구에 가기 위해 일정을 조정했고 오늘 오성중학교에 왔다.

5월 14일, 창원에서의 강연 진행 후, 마산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그리고 스승의 날 오전 9시에 대구에 도착했다. 동대구역에서 오성중학교에 가는 택시 안에서 나는 분명 들떠 있었다. 택시 기사에게 중학교 때 은사님을 만나러 간다며 떠들어 댔다. 택시 기사와 이렇게 떠드는 건 자주 있는 일이 아니다.

오성중학교 입구로 올라기는 길목에서 내렸다. 내 발로 직접 골목을 걸어 들어가고 싶었다.
나는 꽃집에 들러 가장 아름답고 비싼 꽃다발을 샀다. 설레는 마음으로 학교로 향했다. 드디어 학교에 도착! 

 

운동장은 작아졌다. 아니, 내 몸집이 커졌고 세상살이로 인식이 커졌으리라. 운동장의 흙을 밟으며 운동장을 가로지를까, 건물로 돌아가는 인도를 걸을까를 고민했다. 마냥 행복한 고민이었다. 

 

나는 교무실이 아닌 뒤뜰 벤치에 앉았다. 선생님께 드릴 편지를 쓰기 위해서다. 칡나무덩쿨로 그늘이 만들어진 벤치에는 나무 책상도 있어서 쓰기에 편했다. 나는 거기에 앉아서 편지를 썼다. 두근거림과 설렘이 가득한 가슴 한쪽에 약간의 긴장감을 품은 채로.


"단아하게 수학을 가르쳐 주셨던 기억..."까지 썼는데 선생님 한 분이 지나가셨다. 나의 기억이 맞다면 생물을 가르쳤던 최OO 선생님이셨다. 이름까지 정확하게 기억이 났고 우리 반에 들어오셨던 분이셨기에 나는 선생님께 다가가서 인사를 드렸다.

 

"혹시, 최OO 선생님 아니십니까?"
이름을 기억해 주어서 고맙다며 반갑게 맞아주셨다. "근데 너는 누굴 찾아왔노?"
"아, 수학을 가르쳐 주셨던 배수경 선생님을 뵈러 왔습니다."

최OO 선생님의 표정이 갑자기 어두워지며, "지금 안 계신데..." 하신다. 그리고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하셨다. "아, 오늘 학교 안 나오셨나요?"

 

"아니 그게 아니라..."
"대구에 계시면 제가 지금 찾아가면 되지요."

서울에서 여기까지 왔는데 대구에 어디든 못 찾아가랴 싶었다. 아니 뭐 경북에 계신다 해도 찾아뵈면 되지, 라고 생각했다. 그러고 있는데 생물 선생님께서 다급한 어조로 말씀하셨다.


"잠깐만 있어봐래이."
"네, 근데 전근 가셨나요?"
"아니 잠깐만 있어봐래이." 하고 자리를 떠나셨다.


잠시 후에 김OO 선생님을 모시고 나왔다.
김OO 선생님은 수학 선생님이셨고 직접 배우지는 않았지만 성함이 기억났다.

"아 니가 배수경 선생님 찾아왔나?"
"네"
"나한테는 수학 안 배웠나?"
"배우지는 않았지만 선생님 성함은 기억하고 있습니다. 김OO 선생님이시죠?"
"아 그래..."

대화는 끊어졌고,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생물 선생님과 수학 선생님은 서로에게 뭔가를 떠미셨다. "선생님이 말하세요." "아니 선생님이 말하세요." 무슨 사연이 있는 듯 했다. 분위기는 굉장히 중요한 사연이라는 걸 알려주고 있었다. 나는 무척 궁금해졌다.

 

"희석아... 선생님 보고 싶어서 찾아 왔는데 참 안 좋은 소식을 전하게 됐네.
배수경 선생님은 지금 학교에 안 계신다."
"네? 분명히 계신다고 통화하고 왔는데요."
"그래. 그건 그냥 누군가가 그렇게 말했나보다. 배수경 선생님은 얼마 전에 돌아가셨다."

"...."
"...."
"...."

울먹이다가 곧 울음을 터트렸다. 엉엉 울고 싶었지만 그럴 순 없었다. 주르륵 주르륵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수학 선생님도 함께 눈시울이 붉어지셨다. 더 울고 싶었지만 마냥 울고 있을 수 만은 없었다. 두 분께서 마냥 나를 달랠 수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후, 언제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여쭈었다. 돌아가신지 1년 6개월 정도 지났다는 얘기, 돌아가시기 직전에는 서울에 머무르셨다는 얘기, 두 딸이 아빠와 함께 살고 있다는 얘기, 배 선생님은 참 여리고 고우셨다는 얘기 등을 들었다. 그리고 수학 선생님은 나를 위로해 주셨다.


"그래도 오는 길이 행복했을 거잖아. 그렇게 좋은 기억 간직하고 살면 되잖아. 그지?"

그랬다. 나는 정말 선생님을 만나 보러 오는 길이 무척이나 행복했다. 정말 행복했다. 열차 안에서 편지를 쓰며 얼마나 설레였던가! 선생님은 나를 보며 또 얼마나 기뻐하실까, 라는 기대감으로 편지를 썼는데 전해드릴 수가 없다니!


배수경 선생님을 대신하여 수학 선생님께 편지글을 읽어 드릴테니 대신 들어주실 수 있으시냐고 부탁 드렸다.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이셨고, 나는 쓰다 만 편지를 읽었다. 눈물이 났다. 울음 섞인 목소리로 겨우 읽었다.

쓰다만 편지... 결국엔 수취인에게 전해지지도 못한 편지...
수학 선생님도 울고, 나도 울고.

꽃다발은 살아 계실 때 가장 친하게 지내셨다는 친구 선생님께 대신 전해 드렸다. 이제 더 이상 학교에 머무를 수도 없다. 여러 선생님들께 배수경 선생님에 대한 얘기를 더 듣고 싶지만
이렇게 좋은 날 다른 제자들을 만나기에 바쁘실 거란 생각이 들어서 참아야 했다.

 

오랜만에 들렀으니, 나를 가르치셨던 몇몇 선생님들께 인사를 드렸다. 나는 선생님들의 성함까지 정확히 기억했지만, 선생님들은 나를 기억하시지 못하셨다. 눈에 띄지 않은 평범한 학생이라 이해했다. 서운하지는 않았다. 다만 배수경 선생님이 더욱 그리워졌을 뿐.

학교를 나와야 하는데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학교 현관 앞에서 서 있는데 또 눈물이 났다. 교실을 한 번 둘러보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1층 1학년 교실부터 3층 3학년 교실까지 천천히 걸으며 둘러 보았다. 그 때, 친구 상욱에게서 전화가 왔다. 울음을 참고 있었는데, 친구 목소리를 들으니 울컥한다. 또 운다. 

학교를 나왔다. 학교를 오르며 꽃다발을 샀던 꽃집을 지나는데 아주머니가 나를 기억하며 잘 전해드렸냐고 묻는다. "아뇨. 제가 뵈러 왔던 선생님이 돌아가셨대요."라고 쓸쓸히 답을 건넸다. 아주머니는 당황하여 할 말을 찾지 못하셨다. 잘 받으셨다고 말할 걸 그랬나? 배수경 선생님께서는 정말 하늘나라에서 꽃다발을 받으셨을 테니까.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하늘을 쳐다봤다. 선생님께 말을 걸었다.
"선생님, 보고 계시죠? 듣고 계시죠? 희석이가 선생님 보고 싶어서 왔는데...
왜 벌써 가셨어요? 이제부터 선생님과 연락되면, 엄마처럼 누님처럼 참 많이 따르고 싶었는데... 저 참 아껴 주셨잖아요. 아무 것도 잘 하는 것 없는 날 참 예쁘게 봐 주셨잖아요. 공부도 뒷전이던 제가 이렇게 잘 커서 선생님 뵈러 왔는데..."

엉엉 울었다.
하늘을 쳐다 보며 울고.
하늘을 원망하며 울고.
하늘이 그리워서 울고.


 

지금 나는 또 운다. 내가 2년만 일찍 오성중학교에 전화를 했더라면...
그 때엔 미처 모교에 전화를 한다는 생각을 못했다. 이 사실이 어찌 이리 원망스러운지.
아! 그 때에 전화를 했었더라면. 그 때 연락이 닿아서 만났더라면...


서울에서 지내셨을 때 많이 외로워하셨다는데, 내가 자주 찾아뵈어 말동무라도 되어 드렸으면 좋았을 것을! 세상에, 이렇게 마음이 한스러울 수가 있구나!

선생님께 예쁜 모습 보여 드리려고 쇼핑까지 하여 새 셔츠를 입고 새 타이를 맸는데...
책의 원고 중에 배수경 선생님에 관해 쓴 챕터를 출력해서 왔는데...
선생님을 따스하게 안아보고 싶은 마음으로 한걸음에 달려 왔는데...
이 모든 바람과 소원을 이제 가슴 속에 묻어둬야 하다니!

언젠가 녀석들이 허락한다면, 선생님의 따님을 만나보고 싶다고 생각하며 학교를 나왔다.
이제 그 때 못다 쓴 편지를 마무리해야겠다.

*

제게 보여 주신 참 스승의 모습은 제 마음 속에 잘 간직하고 있습니다. 저의 고등학교 진학을 함께 고민해 주셨던 기억, 현대영수학원에 있는 친구 분을 통해 제가 학원 수업을 무료로 들을 수 있도록 배려해 주셨던 기억, 단아하게 수학 수업을 가르쳐 주셨던 기억...

이 모든 기억을 선생님께 말씀드리며 함께 활짝 웃고 싶었는데,
그 소박한 소원을 이루지 못하였네요.
선생님, 자꾸만 눈물이 나요. 보고 싶습니다. 선생님.

많은 분들의 도움과 관심으로 잘 자라왔지만
어렸을 적부터 나를 지지해 주고 아껴 주신 선생님에 대한 기억은 특별했습니다.
정말, 저는 선생님과 앞으로의 삶을 함께 나누고 싶었거든요.
저랑 열살 남짓 밖에 차이나지 않으니 친밀한 사제 지간이 될 거라 생각했거든요.

아!
심호흡을 합니다. 선생님께 작별 인사는 하지 않을 거예요. 항상 저를 지켜봐 주신다고 생각하며 저 역시 선생님처럼 따뜻한 선생이 되기 위해 노력할 거예요. 감사합니다, 라는 말을 꼭 전해 드리고 싶었어요. 선생님을 기억하며 살았다는 말도, 자주 생각났다는 말도 전하고 싶었지요.

가을이 되면 선생님 묘소에 찾아가 뵈려고 해요.
가능하다면 두 따님과 함께 가고 싶네요. 중학생이라고 들었어요.
제가 중학생이었을 때 엄마를 먼저 떠나보냈고, 그 때 선생님을 만났지요.
선생님께서 제게 따뜻한 마음을 전해 주셨던 것처럼 저도 두 따님에게 그러고 싶네요.
그리고, "엄마는 내게 최고의 선생님이었단다."라고 말할 거예요. 제 진심이거든요.

천천히 또박또박 제게 말씀하셨던 기억이 선합니다.
"나.는. 희.석.이.가. 인.문.계. 고.등.학.교.로. 진.학.했.으.면. 좋.겠.다."
선생님의 목소리가 듣고 싶습니다. 선생님의 손을 만져보고 싶습니다.

선생님, 고마웠습니다. 참 고마웠습니다.

제자 이희석 두손모아 하늘로 올려드림

*

나는 2008년 스승의 날을 하루 종일 우울하게 보냈다.
상욱이를 만나 고등학교 은사님을 찾아뵙기도 했지만
배수경 선생님에 대한 슬픔이 떠나가지 않았다.

소중한 친구, 상욱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는 오래 오래 내 곁에 건강하게 있어달라고.
갑자기 구본형 선생님이 보고 싶어 전화를 했는데 아쉽게도 연락이 안 됐다.
잘 됐다. 연결되었더라면 영문도 모르신 채 나의 울음을 받아주셔야 했을 터이니.

지금도 이 글을 쓰며 눈물이 난다. 참으로 슬프다.
하지만! 몇 가지 인생의 조언을 떠올려 본다.

열렬히 사랑하고 헤어지는 것이
한번도 사랑하지 않는 것보다 낫다.

모든 것에는 빛과 어두움이 존재한다.
상실을 경험하고 슬픔의 감정을 느끼는 것은 어두움이다.
상실을 통해 지금 이 순간을 스쳐가는 일상과
내 곁에 머무르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는 것은 빛이다.
어두움은 나쁜 것도 아니고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삶의 과정일 뿐이다.


어두움 후에는 빛이 오기 마련이다. 

그 빛은 지나간 어두움으로 인해 더욱 밝은 빛이 될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자기경영지식인 이희석 유니크컨설팅 대표 ceo@younic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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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친구 녀석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퇴근 길... 하루를 마감하며 우린 종종 통화하곤 한다.
한참 얘기를 나누다가 친구가 불쑥 묻는다.


집에 안 가냐?
방금 집에 도착했다. 오늘은 수원에서 강연이 늦게 끝나서 이제 막 들어왔어.

이번 주에 베트남엔 안 가냐? 장사가 안 된다.
야! 하하하하.


한참을 웃었다. 베트남 여행을 다녀와서 전화를 했더니 내가 베트남에 가 있는 동안에는 장사가 참 잘 되었다며 다시 베트남 떠나라고 말했었다. 그 때도 마구 웃었는데 이 녀석이 오늘 나를 또 웃긴다. 슬쩍 덧붙이는 그 녀석의 멘트에 나.. 쓰러진다.

올 여름 휴가는 베트남으로 갔다 오지.

이 녀석, 오늘 하루 종일 장사는 안 하고 개그 연구만 했나 보다. 웃다가 어찌하다보니 얘기가 배수경 선생님 이야기로 흘렀다. 아직 슬픔이 가시지 않아 글도 못 쓰고 있다. 전해드지리 못한 편지는 여전히 내 책상위에 놓여 있고, 그것을 보는 순간 살짝 울컥해지려는 찰나, 이 놈의 멘트...

이제 그만 잊어라. 안 그러면 너까지 죽을지도 모르잖아.
너 죽으면 안 된다. 그러면 나까지 죽고...
내가 죽으면 OO(자기 와이프)이도 죽고... 그럼 우리 모두 끝이다.


나 또 미치는 줄 알았다. 웃겼다. 무지 웃었다. 정말 나까지 돌아가시는 줄 알았다.
우리의 감정적 교감과 친밀함이 뜬금없는 유머를 무례함에서 건져 주었고
그 녀석은 나의 슬픔을 웃음으로 승화시켜 주었다. 슬펐지만 행복했다.

우리는 서로의 하루가 마무리되어가는 즈음에 전화로 만나 감정을 나누었고 몇 가지 일상의 일들을 얘기했다. 그리워하면서도 행복할 수 있고 슬픈 가운데서도 행복할 수 있음을 또 한 번 느끼게 된다. 슬픔과 행복을 동시에 느끼지는 않지만 하루라는 시간의 그릇 안을 들여다보면 슬픔과 함께 행복이 있을 수 있다. 슬픔의 크기가 크다면 시간의 그릇도 더욱 커져야 할 테지만 말이다.

친구야... 나 이렇게 산다. 너로 인해 슬픔과 그리움도 이겨내면서 말야.
너에게 음악 한 곡 실어 보낸다. 'Only Love'라는 제목이 내 마음이다. 호호.

글 : 한국성과향상센터 이희석 전문위원 (시간/지식경영 컨설턴트) hslee@eklc.co.kr
Posted by 보보

 

나는 분명히 아주 정성스런 마음으로 그녀를 떠나보냈습니다. 류시화 시인의 이별에 대한 조언을 충실히 따르느라 무던히도 애를 썼지요. 맛있는 요리법을 배워 새로운 요리를 시작할 때에도, 참 풍광좋은 곳으로 여행할 때에도, 열심히 하루를 살아 온 얘기를 쫑알대고 싶을 때에도 가장 먼저 그녀를 떠올리곤 하지만... 문자 하나 보내지 않으려고 애썼습니다. 분명, 그녀와의 이별 후, 나는 더욱 간절해졌지만 더한 정성으로 그녀를 배려했습니다.

류시화의 이별법

사랑이 오실때의 그 마음보다 더한 정성으로
한 사람을 떠나보냅니다
비록 우리 사랑이 녹아내려
다시는
만날 수 없는 각자의 길을 떠난다 해도
그래도 한때 행복했던 그 기억만은
평생을 가슴에 품고 살고 싶습니다
내 인생에 다시 없을 이 사랑
그대가 주었던 슬픔은 모두 잊고
추억의 상자에서 꺼내어
아름다웠노라, 지극히도 아름다웠노라
회상할 수 있는 사랑이고 싶습니다
우리 사랑이 이별로 남게 되어
지금은 견디기 힘든 아픔뿐일지라도
사랑이 오실 때의 그 마음보다 더한 정성으로
그대를 떠나보냅니다
헤어지는 지금
처음 만났을 때보다 더 아름다운 미소로....

나는 정말 사랑이 올 때의 마음보다 한껏 더한 정성으로 떠나보냈습니다. 이것만큼은 하늘이 알아주니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집니다. 그녀도 알아주었으면 하는 솔직한 바람까지도 이겨내고 헤어지는 순간만큼은 이타적인 사랑을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래서인지 류시화 시인의 <이별법>을 읽으며 가슴이 절절했지요.


하지만. 하지만. 하지만.

오늘 같이 이렇게 비가 오는 날, 용기 내어 한 번 표현해 봅니다. 참 많이 사랑했다고. 나에게는 사귐의 많은 순간이 감동이었다고. 너와의 만남에서 헤어짐까지의 모든 순간이 사랑을 배우는 학교였다고.


마지막 하고픈 말은 끝내 내뱉지 못합니다.

떠나보내는 정성에 모든 노력을 다하기 위하여...

Posted by 보보

여행길에서

 

우리의 삶은

늘 찾으면서 떠나고

찾으면서 끝나지


진부해서 지루했던

사랑의 표현도

새로이 해보고

달밤에 배꽃 지듯

흩날리며 사라졌던

나의 시간들도

새로이 사랑하며

걸어가는 여행길


어디엘 가면

행복을 만날까


이 세상 어디에도

집은 없는데……

집을 찾는 동안의 행복을

우리는 늘 놓치면서 사는 게 아닐까

*

중국 여행을 떠나며 이해인 시인의 시선집을 가방에 챙겼습니다.
참 아름다운 풍경을 만나면 그 풍경 안에 머무르며 시를 읽었습니다.
'여행길에서'는 나의 마음에 들어왔던 시들 중 하나입니다.

한 구절, 한 구절이 가슴에 울림을 주었습니다.
찾으면서 시작된 삶이 찾으면서 끝난다는 시인의 말.
그 찾음은 자신이 뜻한 것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지요.

뜻한 것이든, 아니든
과정에서 의미와 행복을 발견하는 것이 生임을 안다면
죽음도 새롭게 이해할 수 있을 거예요.

선생님을 찾으며 시작된 2008년 스승의 날.
하늘나라에 계시다는 슬픈 소식을 접하며 슬픈 날이 되었지요.
아직 이 슬픔의 까닭을 찾지 못하여 슬픔이 끝나지 않은가 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주어진 오늘 하루를
어제와는 다른 마음으로 사랑하며
또 하나의 여행길을 떠납니다. 24시간 동안의 여행을.

행복을 찾느라 행복을 잊지 않기를.
내일의 행복을 준비하느라 오늘을 놓치지 않기를.
지금 여기에서의 행복을 힘껏 선택하기를.

글 : 한국성과향상센터 이희석 전문위원 (시간/지식경영 컨설턴트) hslee@eklc.co.kr

Posted by 보보


몇 가지 나의 일상사를 끄적여 본다. 잔잔하지만 소중한 나의 삶이다. 성찰의 시간은 늘 좋다.

#1. 방송국 인터뷰

KBS 방송국에서 전화가 왔다. 모 교양 프로그램의 작가였고, 인터뷰를 하자는 내용이었다. 우리 집에서 진행되어야 한다는 말에 망설였는데, 작가는 정중하면서도 친근하게 부탁을 했다. 결국 약간의 망설임 끝에 집에서 인터뷰를 하기로 했다. 인터뷰 날은 바로 다음 날이었다. 집안 정리를 하고 청소를 했다. 짧은 분량이겠지만 TV 인터뷰라는 것은 약간의 기대감을 갖게 했다. 그런데, 다시 작가에게서 전화가 왔다. 방송 내용이 조금 바뀌게 되어 인터뷰가 취소되었다는 것이다. 속 사정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덕분에 집안 정리를 했다. 기쁜 일이다.
몇 지인들에게 인터뷰 건에 대하여 아쉬운 듯 말하였지만 실제로 아쉬움은 없었다. 그들은 더 나은 프로그램을 위해 고민한 결과였을 터이고, 나로서는 인터뷰를 하면 좋은 일이고 하지 않더라도 여전히 행복한 일상이기 때문이다. 다음에 또 기회가 있을지 모른다는 설레임이 있으니 전화 온 것이 고맙기도 하다. ^^

#2. 재능 십일조 특강

충성교회에서 2시간 30분, 4시간 이렇게 두 번의 재능 십일조 특강을 했다. 반응이 무척 좋아서 기뻤다. 무엇보다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일꾼들을 섬길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된 것이 좋았다. 거의 하루 종일 강연한 것이지만 몸이 무척이나 가벼웠다. 부대 문을 나오는데 시원한 바람이 나의 목덜미를 훑고 지나갔다. 어찌나 그리 상쾌하고 유쾌하던지... 돈보다 귀한 의미를 얻었다는 생각 때문이었으리라. 그렇게 보낸 하루에 내 마음은 들떴고, 머릿 속이 맑아졌다. 참 행복한 날이었다.

#3. 더 나은 리더를 꿈꾸다

3기 와우팀원이랑 커피숍에서 4시간 동안 얘길 나눴다. 그 녀석의 고민과 조바심을 들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얘기를 했고 서로의 속내를 나누었다. 와우팀의 리더로서 내가 어떤 것을 잘하고 못하는지에 대한 얘기도 들었다. 그 놈은 나에게 진솔한 의견을 들려 주었다. 리더로서의 나 자신이 어떤 부분에서 부족한지에 대해 꽤 자세하게 들을 수 있었다. 조금 부끄럽기도 했지만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참 감사한 것은, 내게 그런 얘기를 할 수 있는 서로에 대한 신뢰였다.  
그 녀석은 내가 더 나은 리더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던져 주었다. 그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지.

#4. 책 출간, 그리고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

3월 말이면 출간될 줄 알았던 책이 또 연기되었다. 출판사의 불가피한 사정을 들었지만 이번에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4월 2일 어머니 기일에 꼭 어머니께 가서 당신의 아들의 첫 책을 보시라고 인사드리고 싶었던 것이다. 음... 아쉽다.
사실 나는 늘 그리움과 함께 산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책의 출간을 세상에서 제일 기뻐해 주실 어머니... 살아계셨다면 아마도 어머니의 두 눈가가 붉어질 것이다. 그 어머니의 기뻐하시는 장면을 보지 못한다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다. 말 못할 사연을 안고 사는 것은 슬픔이 아니다. 치유하였다면 상처도 아니다. 그것은 그저 내 삶에 일어난 하나의 사건이고 나를 이루는 실체일 뿐이다. 나는 그리움이라는 감정으로 일상을 그르치지는 않는다. 사건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익힌 듯 하다. 어머니가 먼저 돌아가신 것도 나의 삶이다. 내 삶에 일어난 사건은 받아들이고 그 사건으로 인해 일어나는 감정들은 잘 달래주면 된다. 감정을 최소화시키진 않았다. 오히려 나는 자주 울었고 울음을 통해 회복으로 나아갔다. 현실을 외면하는 것은 절대 긍정이 아니다. 나는 인정하기 싫은 내 삶의 모든 부분을 받아들였다.
슬픔 속에 잠기는 것과 무시하는 것 사이의 건강한 중간지대를 발견했다. 그 중간지대에서는 슬픔과 함께 춤출 수도 있다. 누구나 가슴 속에 아픔 한 조각, 눈망울 속에 눈물 한 방울씩은 있으리라 그것을 부정하지 않고 자신의 실체로 인정할 때 그는 훌쩍 성장할 것이다. 나는 그랬다.

#5. 미친듯이 드라마 <이산>을 보다

16일부터 25일까지 <이산> 5회부터 47회까지 보았다. 한 편을 보고 나면 내 입에서는 "미치겠다"라는 말이 새어 나온다. 딱 한 편만 보려고 했는데, 도저히 다음 회를 보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도록 끝나기 때문이다. 메가 TV는 다음 회를 바로 이어서 보기에 딱 좋다. 그러면서 밤을 꼬박 새워 아침 6시 30분까지 본 적도 이틀이나 된다. 10시 강연을 하러 갔다가 참가자 분이 "요즘 피로하신가 봐요? 눈이 빨깨요"라고 하신다. 강연을 시작하니 몸이 팔팔해져서 다행이었지만 분명 참가자들에게 미안한 일이다.
<이산>은 정말 흥미진진했다. 누군가를 100% 신뢰한다는 것의 의미를 삶으로 보여 준 이산, 효가 뛰어난 것이 인재의 최고 덕목 중 하나라는 사실, 부하를 인격적으로 대하고 신뢰하여 자신의 충신으로 만드는 이산의 리더십, 권세 앞에 눈이 멀게 되는 인간의 본성, 중상과 모략에도 숭고함을 잃지 않는 성송연의 성품 등을 통해 많은 것을 느끼기도 했다.
<이산>을 미친듯이 봤다는 얘길 친구에게 했더니 "넌 자주 미치더라. 난 그게 부러워" 그런다. 그래, 나도 의미 있는 일에 미치고 싶다.

#6. 재정관리에 관심을 갖다

재정관리에 취약했다. 사실 관심이 없었다. 그간 총 6개의 보험에 가입했었고 이는 모두 쳬계적인 계획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주변에서 하나 들라고 부탁하면 '그래... 하나 들자'라는 식으로 가입했다. 이번 달에 두 분의 재무설계사로부터 나의 재정 컨설팅을 받았다. 두 분은 비슷한 진단을 해 주셨고, 나는 그들의 처방에 따랐다. 5개의 보험을 해지해야 하는 쓴 처방이었다. 손실액도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과거의 손실은 잊어야 했다. 내일의 유익을 생각하며 꿋꿋이 실행했다. 2개의 보험으로 갈아탔다. 쉽지 않았지만 정리가 필요한 일을 해치우고 나니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사실 1년 6개월 전에도 비슷한 진단을 받았지만 그 때에는 그냥 지나쳐 버렸다. 그들의 말에 공감했지만 행동으로 옮기지는 못했다. 지금으로서는 톡톡한 수업료를 치르고 나서야 실행에 옮기는 것이 다행이기도 한 반면 그 때 실행하지 못한 것이 아쉽기도 했다. 결국 성과는 실천에서 나오는 것이다.

글 : 한국성과향상센터 이희석 전문위원 (시간/ 지식경영 컨설턴트) hslee@eklc.co.kr

Posted by 보보
<하이파이브> 는 가끔씩 보는 KBS 예능 프로다. 오늘 2월 3일편 하이파이브를 (메가TV로) 보았다. 5명 여걸의 어머니께서 등장하셔서 딸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셨다. <딸아 미안하다>라는 코너에서 딸에 대한 솔직한 과거를 털어놓기도 하셨고, 노래방 코너에서는 어머니들께서 노래를 부르며 흥을 돋우셨다.

그분들 중 채연의 어머니께서 나오셔서 노래를 부르신 후에, 딸의 '둘이서'까지 부르셨다. 딸 채연도 어머니가 노래 부르는 것을 처음 본다는데, 어머니는 후렴까지 빠른 박자의 노래를 놓칠 듯 놓칠 듯 하면서도 끝까지 잘 부르셨다. 깜짝 놀라는 채연의 표정 속에 어머니의 애정에 대한 고마움이 서려 있는 듯 하다.

문득, 하늘에 계신 어머니가 그리워졌다.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어머니께서 살아계신다면 내가 쓰는 모든 글을 누구보다도 더 열심히 읽어 주셨을 것이다. 그리고 자랑스러워하실 것이다. 최고의 글이 아니더라도 당신께는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이니까 말이다. 다음 달이면 출간 될 내 책을 어머니께서 보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세상에서 가장 기뻐하실 어머니의 표정을 보고 "엄마, 고마워요."라고 말씀 드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

보고 싶은 엄마

사진첩을 꺼낸다. 열흘 전에 보았던 어머니의 사진을 다시 본다.
나의 초등학교 졸업식 날, 축하하기 위해 꽃 한 다발을 들고 계신 어머니.
방 두 칸짜리 집으로 이사하여 도배를 마치고 기념으로 사진을 찍으신 어머니.
주일 날에 일주일의 피곤을 달래며 누워서 쉬고 계신 어머니.
동생 정우를 안고 즐거워하시는 어머니.
많지 않은 어머니의 사진을 한 장, 한 장 들여다보며 엉엉 운다. 그리워서. 그리워서. 그리워서.

책이 출간되면 할머니와 함께 엄마에게 가야겠다. 저 멀리 경상북도 청도의 어느 산 자락에 누워계신 곳 말이다. 엄마에게 프롤로그와 내가 가장 마음에 들어하는 한 챕터를 읽어드리고 싶다. 기뻐하실 어머니의 모습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그리고 첫번째 인세는 십일조를 드리고, 동생과 여행을 떠나고 나머지는 모두 삼촌과 숙모에게 드려야겠다. 어머니가 하늘 나라로 가신 이후, 나를 잘 돌봐주셨으니 말이다.

어머니의 사진을 웹에 올려본다. 이것은 이 세상에서 아무도 하지 못하는 일이다.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블로그에 어머니의 사진이 올라간다는 생각을 하니 사뭇 마음이 차분해지고 경건해진다. 어머니 보시기에 자랑스러운 삶을 살아가고 싶다.

[어머니 전상서] 보고 싶은 엄마...

엄마, 잘 계시죠? 오늘은 엄마가 참 보고 싶은 날이예요. 엄마의 사진을 보니, 무척이나 그리워져요. 이런 날에는 엄마의 품에 안기면 딱인데 말이죠. 내일이 설날이예요. 삼촌과 숙모 그리고 할머니를 뵙는 날이죠. 엄마가 하늘 나라로 가신 이후로 나를 잘 키워주신 건 엄마도 잘 아시죠? 그러니, 우리 집을 잘 지켜 주세요. 삼촌과 숙모를 늘 도와주세요. 엄마가 하나님께 부탁해 주세요.

참 슬픈 건 엄마의 따뜻한 손길이, 사랑스러운 목소리가, 애정어린 눈빛이 기억이 안 난다는 거예요. 엄마와 함께 살았던 날들보다 엄마와 헤어져 살아 온 날이 더 많은 제게 익숙한 일이겠지만 제게는 슬픔이기도 하네요. 가수 채연의 엄마를 보며 갑자기 엄마가 참 많이 그리워지네요. 살아계신다면, 아마도 제 글을 모두 읽어보시며 기뻐하셨겠지요?

별일이 없으면 다음 달 말이면 제 책이 출간될 것 같아요. 그러면 그 책 들고 가장 먼저 할머니에게 갔다가 함께 엄마에게 가려고 해요. 엄마에게 제 책을 읽어드릴께요. 아마 저는 또 울겠죠. 남자가 너무 자주 우는 걸까요? 아니죠... 엄마가 보고 싶어서 그런 건데 뭘.. 그죠?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어야하는데, 때로는 엄마 보기에 너무나 부끄러운 일도 많이 했네요. 죄송해요. 엄마... 앞으로는 더욱 착하고 성실한 아들이 될께요. 나 엄마 참 좋아했는데, 너무 빨리 가셨어요. 저는 어머니를 편안히 모실 자신이 있는데... 아마도 엄마가 계셨더라면 제가 조금 더 잘 클 수 있지 않았을까요? 이런 말 하면, 엄마도 슬프죠?

아니예요. 저 더욱 열심히 살께요. 삼촌, 숙모도 있고 할머니도 있으니까요. 정우도 요즘 아주 잘 살고 있거든요. 올해에는 또 한 번의 도약을 위해 노력할 거예요. 지켜봐 주세요.
보고 싶어요. 엄마. 오늘은 엄마가 정말 보고 싶은 날이예요. 이 글을 쓰는 내내 눈물이 나네요. ^^ 하하하. 엄마와 이별하고 난 후, 그랬기에 알게 된 것도 많지만 그 모든 것을 도로 물리어 어머니를 한 번 만이라도 보고 싶네요. 잘 지내요.. 엄마. 사랑해요.

엄마를 사랑하는 아들 드림
Posted by 보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