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셋 그녀와 나는, 친구 같은 사이다. 나이야 내가 조금 더 많지만, 오랜 시간 속마음을 나누고 허울 없이 지내다 보니 만나면 무척이나 편안하다. 그녀는 지금 사귀고 있는 남자와의 관계를 두고 고민 중이다. 처음에는 호감을 갖고 시작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단점을 알게 되고 자신에게 더 나은 남자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에 마음을 뺏기고 있다.

 

그녀와 난 닮은 구석이 있다. 연애에 관해서는 최소한 두 가지 점에서 닮았다. 결혼을 로망으로만 생각하는 환상과 끊임없이 더 나은 파트너를 찾으려는 욕심이 그렇다. 그녀에게 말했다. "나는 아직도 마음속에 서현과 결혼하기를 꿈꾸는 마음이 있다"고. 여전히 마음속의 공주님을 상상하고 있는 마음인데, 그녀는 바로 이해하고 맞장구를 쳤다. "나도 그래요."

 

나처럼 환상과 욕심이 결합되어 나의 현실은 잊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큰 실수를 저지른다. 결혼이란, 인생의 선물처럼 누군가로부터 받는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심하면 사람들과의 인간관계마저 당연하게 주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혼을 포함한 인간관계는 당연한 선물이 아니라, 배려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노력'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다.

 

아름다운 관계는 노력의 산물이다. 이벤트처럼 일회성의 순간적인 노력이 아니라, 습관과 태도로 굳혀질 정도의 평생에 걸친 노력이어야 한다. 고통이나 부담이 생길 때만 노력하다가 문제가 해결되면 노력을 중단하는 식으로는 건강한 관계를 유지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관계'는 평생 노력할 만한 가치다. 좋은 관계는 우리에게 온갖 좋은 것을 선사한다.

 

그녀도 연애 초반엔 노력했다. 지금은 환상과 욕심이 생겨 노력을 일시중지한 상태다. 나는 그녀가 현명한 결정을 하리라 믿는다. 그 결정을 존중하고 응원할 것이다. 다만, 좋은 인간관계가 당연한 것이 아니라, 인간관계를 위한 노력이 당연한 것이라는 생각을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다. 그녀와 난 의무와 책임보다는 보상과 특권에 관심이 가지곤 하니까.

 

다른 사람들의 잘못에 너그럽고, 쉬이 상처받지 않은 건강한 자존감은 그녀의 장점이다. 반면 앞서 말한 환상과 욕심이 그녀의 연약함이다. 이리 살아도 한 평생, 저리 살아도 한 평생이고, 나의 생각이 정답인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그녀에게 욕심을 내려놓으라고 권하는 까닭은 혹시 나처럼 후회할까봐서다. 그녀의 행복을 생각하다 보니 잔소리를 하게 된다.

 

나는 환상과 욕심으로 30대의 4년을 진중한 연애 없이 보냈다. 결혼 대상자와만 교제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는 바람에(이 점에서는 그녀와 나는 다르리라), 연애를 시작조차 못한 것이다. 20대에는 나와 꽤 어울리는 연인과도 결별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운명적 파트너에 대한 나의 환상 때문이었다. 내가 저지른 수많은 실수 중 하나다.

 

지금은 그나마 나아졌다. 30대 중반이 되면서 결혼을 현실과 로망의 조화로 받아들였고, 상대방의 조건을 좋아하는 것과 사랑은 별개라는 사실도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행동이고, 평생 그를 사랑하겠다는 의지이고, 끊임없는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노력이라는 나름의 사랑관도 생겼다. 문득, 이십여 년 전 좋아했던 노래가 가슴을 친다.

 

람들은 가끔 착각하지. 서로의 조건들을 좋아하고선 이게 사랑일 거라고.

때로는 자신을 숨기며 드러내는 모습을, 사랑을 위한 미덕이라 여기지.

자신의 거짓된 욕구를 위한 이별에는, 참된 사랑이란 미화를 하지.

그래 우리에게 진정한 사랑이란,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거야.

 

이승환 3집 앨범에 실린 <사랑에 관한 충고> 라는 노래다. 나에게도, 그녀에게도 필요한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게만 필요한 것인데, 그녀에게도 마찬가지라고 착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닐 것이다. 비슷한 사람끼리는 쉬이 알아보는 법이니까.) 좋은 것 중에는 거저 주어지는 것이 있는가 하면, 노력 없이는 주어지지 않는 것들도 있다.

 

사랑은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행동으로 노력하는 것이다.

사랑은 힘써 노력할 만큼 충분한 가치가 있다.

사랑이 넘치는 인생은 행복을 보장하니까.

나도 그녀도 아름다운 사랑을 하기를, 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자기경영지식인 이희석 유니크컨설팅 대표 ceo@younicon.co.kr
Posted by 보보


이팔 청춘보다는 두 살 많았던 열 여덟 살이었다. 내가 첫사랑에 흠뻑 빠졌던 때 말이다. 대상은 교회에서 만난 여고생 H였다. 학교에 가면, 친구들에게 H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했다. 나의 일상은 점점 그녀로 채워졌다. 친구들 셋이서 3 on 3 길거리 농구대회에 나갈 때의 우리 팀명은 H의 이름에서 따 왔고, 시험 기간이면 독서실에서 그녀를 그리워하는 시를 짓곤 했다. 나만의 짝사랑이었지만 아주 열렬했다. 학교 친구들이 그녀에게 관심을 가질 정도로.

녀석들은 나만의 '천사'를 모두들 보고 싶어했다. 급기야 교회에서 진행되는 찬양경연대회에 친구들이 참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것은 분명 사건이었다. 그들은 교회를 다니지도 않았고, 아니 교회를 안 다닌 정도가 아니라 교회와는 거리가 먼 친구들이었다. 소위 '일진'이라 부르는 친구들, 담배를 태우고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녀석들니까. 그들이 내가 그토록 찬탄해 마지 않는 '천사'를 보려고 무려 8명이나 교회로 몰려왔다. 

지금 생각해도 녀석들이 교회에 왔다는 게 신기한데, 결국 나는 그 녀석들로부터 맞아 죽을 뻔 했다. 천사가 도대체 어디있냐는 것이다. 그랬다. H는 나에게만 천사였지, 친구들에게는 그저 평범한 여학생이었나 보다. 친구들은 두고두고 나를 놀렸다. 교회에서는 인기 많은 여학생이야, 라고 변명하기엔 구차했다. 나는 그 때 알았다. 매력 중에는 신체적 매력만 있는 게 아니라, 리더십에서 나오는 매력이 있는가 하면, 영적 매력이란 것도 있음을.

나는 그녀의 영적 매력에 끌렸던 것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 사건은 내가 한 여학생에게 흠뻑 매혹당하여 객관적인 시선을 잃어버리고, 사랑으로 만개한 상상력이 빚어낸 참극이었다. 그렇다. 사랑은 언제나 우리들의 마음을 빼앗아간다.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우리의 시간과 에너지가 아낌없이 바쳐진다.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우리는 자신이 사랑하는 것에 관하여 생각하고 그것을 붙잡으려 노력하면서 살아간다, 고.

여기서 중요한 질문을 맞는다. 
지금의 나는 무엇을 사랑하고 있는가?


훈련을 사랑한다면 성장과 인격을 얻을 것이다. 훈련 없이는 온전한 성장과 훌륭한 인격이 없기 때문이다. 반면 즉흥적인 만족을 사랑한다면 쾌락을 얻겠지만, 성장과 인격을 포기해야 할 것이다. 쇼핑을 사랑한다면 많은 시간을 별반 차이 없는 액세사리나 화장품을 두고 하나를 선택하느라 시간을 내주어야 할 것이다. 자신을 사랑한다면 자제심을 발휘하려고 노력하며 거짓 문화로부터 자기 영혼을 지켜낼 것이다.

나는 책을 사랑하여 어젯밤 잠이 들기 직전까지 『한국의 교양을 읽는다』를 읽었고, 오늘 아침에는 이택광 교수의 책을 들춰 보았다. 오전에는 인생을 사랑하기도 하여, 내 인생을 빛나게 만들 도전 목록을 작성하기도 했다. 불찰도 많았다. 육체적인 만족을 사랑하는 바람에 내 영혼을 속이거나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다. 일부의 사랑은 끌림이지만, 일부의 사랑은 선택이다. 무엇을 사랑할 것인가?

우리의 인생은 우리가 사랑하기로 선택한 것에 의해 만들어진다.
그래서 앞선 질문은 중요하다. 지금 당신은 무엇을 사랑하고 있는가?
그것을 말해주면 나는 당신의 내일을 가늠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사랑은 삶에 결과를 남긴다. 모든 선택은 인생이라는 시간에 흔적을 남기기 때문이다. 첫사랑에 빠진 덕분에 나에게는 사랑과 이별에 관한 70~80편의 시가 남았다. 친구들과의 기분 좋은 추억도 가지게 되었다. 허접한 고교 성적도 그 때의 사랑이 주었던 삶의 결과물이다. 오늘의 선택이 자기 미래에 영향을 미친다고 하여 두려워하거나 주저할 필요는 없다. 인생은 우리의 선택을 능가하는 실체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선택이 인생을 만들기도 하지만,
운이나 누군가의 도움이 우리의 인생을 만들기도 하고
인생의 불확실성 자체가 우리 인생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그러니 선택의 중요성을 염두에 두되 선택하기를 두려워 말아야 한다. 이 적절한 균형 속에서 원하는 삶을 창조해내는 것을 사랑하자. 책을 쓰기 원한다면 독서와 사색, 그리고 글쓰기를 사랑해야 한다는 말이다. 자기가 어떤 삶을 원하는지 알고 있다면, 그러한 삶을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자. 아직 구체적인 꿈이 없다면 원칙과 삶의 기본 가치, 이를 테면 정직, 성실, 그리고 훈련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자.

자신의 비전을 실현하려면
인생에 무언가를 기대하기 전에 자신이 무엇을 사랑하고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오늘 나는 좀 더 가치 있는 것, 나를 진정으로 만족시키는 것들을 사랑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내 곁의 사람들을 더욱 깊이 사랑하자고 다짐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자기경영지식인 이희석 유니크컨설팅 대표 ceo@younicon.co.kr

Posted by 보보


작년 겨울에는 크리스마스 카드에다 직접 그림을 그려 보았습니다. 2010년 연말의 일입니다. 그림을 그리는 데에는 정성을 다해야 했습니다. 이전에 그림을 그려 본 적이 없으니 믿을 만한 것은 정성 뿐이었습니다. 사실 그림이라 하기엔 좀 민망한, 그저 작은 사물 하나를 그린 것입니다. 그린 것 중의 하나는 선물 상자였고, 옆에 이런 글을 써 두었습니다.

"받기만 하고 주지 않았던 탐욕을 떨쳐 내어
주고 싶어도 줄 수 없을 때가 오기 전에
주는 기쁨을 만끽하며 살아야지."


법정 스님의 글을 읽다가 느낀 바가 있어 쓴 글입니다. 나누는 삶을 실천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쓰고 그린 카드였습니다. 나에게 나눔은 자연스럽지 않기에 어디에선가 자극을 받을 때에야 잠깐 실천하는 정도입니다. 그래서 저런 결심이 필요하지만, 알고는 있습니다. 나눔은 받는 이에게뿐만 아니라, 주는 이에게도 기쁨이라는 것을.

주는 기쁨은 삶의 비밀입니다. 주게 되면 움켜쥐고 있을 때에는 몰랐던 기쁨을 알게 되고, 새로운 비전을 발견하기도 하고, 놀랍게도 주고 나서 더 풍성해지기도 하니까요. 내가 경험한 일 하나가 떠오릅니다. 나는 일년 간의 청년부 회장 활동을 마치고 2002년 1월 1일을 맞았습니다. 청년부의 중심부에서 주변 가장자리로 밀려난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난 1997년부터 2001년까지 5년 내내 청년부에서 회계, 서기, 총무, 회장, 리더장 등의 역할을 맡으며 줄곧 임원이나 리더 활동을 했습니다. 그리고 2002년, 처음으로 일반 멤버가 된 것입니다. 마치 어린 시절에 회장, 부회장, 청소반장, 분단장도 아닌 아이들을 '똥걸레'라고 불리며 놀렸던, 그 똥걸레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사람들의 시선을 받다가 사라진 느낌이 반갑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 때, '아! 사랑받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외로웠던 것인지, 서운했던 것인지 모를 그 감정을 이겨내기 위해 내가 선택한 일은 "사랑 전하기 캠페인"입니다. 사람들도 나처럼 사랑받고 싶어할 것이라 생각하여 내가 먼저 사랑을 전하기로 마음 먹은 겁니다.

동기와 선후배들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수고한다는 말, 하나님의 이름으로 사랑한다는 마음을 담아 건넸습니다. 특별히 고마운 이에게는 식사를 대접하기도 했습니다. 그 때, 나의 마음을 전해 받는 이들이 기쁨과 감동을 느꼈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나는 분명히 감동했습니다. 누구에게나 사랑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주는 기쁨을 누렸기 때문입니다.

그 이후로 저는 종종 사랑이 고플 때에는 사랑을 베풀려고 노력했습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랑이 필요하니까요. 힘이 들 때에는 힘들어하고 있는 누군가를 돕고자 노력했습니다. 나는 나에게만 함몰되지 않기 위해 노력한 것입니다. 지난 해에 그렸던 크리스마스 카드 중에는 램프를 그린 것도 있습니다. 램프 그림 아래에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램프처럼 살기
세상을 밝히는 램프처럼
당신에게 온기를 전하는 램프처럼

 


램프처럼 살려는 노력은 나를 돕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지극히 나의 특수한 문제처럼 보이는 일도 사실은 누구나 겪는 힘겨움인 경우가 많습니다. 나는 그들을 도우며 같은 문제를 겪고 있는 나를 도운 것이지요. 내가 항상 이런 노력을 해 왔던 것은 아닙니다. 내가 힘겨울 때, 제 곁의 사람들의 힘겨움을 헤아리며 램프처럼 살기를 시도하곤 했지요.

요컨대, 주는 기쁨을 만끽하고 싶은 마음과 램프처럼 살려는 노력 모두 세상을 조금씩 따뜻하게 만드는 일인 동시에 나의 삶을 좀 더 잘 경영하는 비결입니다. 공헌과 자기경영을 동시에 이룰 수 있는 일이라는데, 그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직접 실험해 보시기 바랍니다. 오늘부터 당장 여러분의 시간과 물질 그리고 에너지를 소중한 이에게 선물해 보는 겁니다.

저도 하렵니다. 제 사무실에는 월요일마다 1인기업 멘토링이 열립니다. 내일이 월요일이네요. 공부하러 오는 분들을 위해, 오늘은 근처 마트에 가서 과일과 간식을 사야겠습니다. 그리고 꽃 한송이를 사서 테이블 가운데에 두어야겠습니다. 한 분이 메디치에 관한 책을 즐겁게 읽었다는데, 마침 책장에 메디치에 관한 다른 책이 있으니 그에게 선물해야겠습니다.

내일, 나는 주는 기쁨을 만끽할 예정입니다.
여러분도 여러분들의 기쁨을 스스로 예정해 보시기를~! ^^

사용자 삽입 이미지 리더십/ 자기경영전문가 이희석 유니크컨설팅 대표컨설턴트 ceo@younic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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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보보는 2009년 2월 4일부터 3월 3일까지 한 달 동안 여행을 다녀왔답니다.
일정 중 2/3는 브라질(상파울로, 리오데자네이루, 이과수 폭포)에서 5기 와우팀원들과,
1/3은 캐나다 벤쿠버에서 홀로 여유롭게 보내었지요.

브라질 여행은 저에게는 잊을 수 없는 개인사가 되었고,
팀원들과의 소중한 이야기를 공유하게 된 아름다운 추억이었고,
여행의 순간 순간마다 삶의 지혜를 얻은 인생수업이었습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와우팀원들과 함께 진행된 3차례의 수업과 강연이었습니다.

수업을 진행하며 저는 팀원들의 삶에 감동하며 마음으로 울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삶의 이야기를 듣고, 기쁨과 슬픔을 공유하며 서로에게 배웠습니다.
보보의 해피레터 11편은 브라질 여행 중에 느꼈던 몇 가지 단상입니다.
팀원들에게서 배우고, 여행을 통해 배웠던 것에 대한 소박한 나눔입니다.

#1. 지금 만나고, 지금 말하고, 지금 행동하라
눈물 흘리며 들었던 이야기 하나.
브라질로 이민을 온 엘라는 타국에 계신 어머니께 때마다 용돈을 보내 드렸다.
자주 찾아 뵙지 못하니 마음이라도 정성스레 전한 것이다.

세월이 흘러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엘라는 어머니의 옷장을 정리하다 엉엉 울음을 터트린다.
어머니의 서랍에서 나온 양말 뭉치 때문에.

양말 하나 하나에는 그녀가 보내 드린 달러 뭉치가 들어 있었던 게다.
하나도 쓰지 않고 고이 모아 두셨나 보다. 꽤 많은 돈이었다.
그 때가 생생히 기억나는 듯, 엘라는 눈물을 머금은 채로 말했다.
"돈이 필요한 게 아니라, 엄마에겐 함께 해 주는 딸이 필요했던 거였어요."

“삶의 마지막 순간에 바다와 하늘과 별 또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볼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하지 마십시오.
지금 그들을 보러 가십시오.”
- 『인생수업』 中에서



#2. 존재하는 법 VS 일하는 법
브라질로 떠나기 며칠 전에 접했던 다소 울적한 기사 하나.
한국이 OECD 국가 중에서 연간 노동시간이 최고로 많다는 기사였다.
2위를 현격한 차이로 따돌린 압도적인 1위였다.

브라질 여행을 하며 느낀 점 하나.브라질 사람들은 시간을 느긋하게 보낸다는 사실이다.
이들에게서는 매 시간마다 어떤 가치를 창출해야 한다는 강박 관념이 없었다.

그들의 마음은 여유로웠고, 미래를 향한 생각은 낙관적이었다.
근거 없이 미래를 낙관하며 태평스럽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 어리석다고 한다면,
목적 없이 분주히 살며 오늘의 미소와 행복을 잃어버린 것 역시 어리석다고 응수하겠다.

나는 균형을 말하고 싶은 게다.
생산성 있는 삶과 의미 있는 삶의 균형,
일하는 법과 존재하는 법의 균형.

"너무 많은 사람들이 항상 생산적이고 성공적이어야 하며,
끊임없이 무언가를 이루어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 시달립니다.
지금 세대의 사람들은 일하는 법은 알지만, 존재하는 법은 잘 모릅니다."
- 『인생수업』 中에서



#3. 좀 더 행복한 결혼 생활을 위한 단상들
나는 결혼 생활을 다음과 같은 과정으로 생각한다.
- 점점 독립적인 사람이 되어 가는 과정
- 서로의 상처를 깨닫고 이해하며 치유해 나가는 과정
- 나와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를 수용해 나가는 과정
(과정이라는 단어를 선택한 것은 완성의 단계가 없음을 나타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나에게 위로와 지속적인 용기를 주기를.)

독립적이지 못하면 상대에게 감정적으로 의존하게 되고,
의존함이 지속되면 상대를 구속하게 된다.
자유와 존엄성에 압박을 주게 된다.
홀로 잘 살아가는 동시에 서로에게 의존하는 상호의존성을 발휘해야 한다.
두 개인이 모두 독립성을 가져야만 상호의존성에 이를 수 있다.

좋아함은 기쁨이지만 사랑에는 고통이 뒤따른다.
상대를 구속하려는 태도, 배우자에게 배우기보다는 상대를 교정하려는 시도,
나와 다름을 틀림으로 바라보는 시각, 이 모든 것이 서로에게 상처를 준다.

배우자를 보며 ‘당신과 나는 참 다른 존재군요’라고 느껴지는 순간은
가슴이 답답해서 미칠 것 같은 상황으로 치달을 수도 있고,
다양성과 조화를 배우는 축복의 상황으로 전개될 수도 있다.

다름이 틀림이 아님을 알고 다름이 아름다운 조화의 핵심임을 배워 간다면,
틀어졌던 관계가 개선되기 시작한다.
머지 않아, 내가 받은 상처만큼이나 나도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었음을 깨닫는다.
결국 서로가 상처를 주고 받았음을 깨닫게 되면 이해가 시작되고 치유가 진행된다.

결혼한 상대를 배우자라고 부른다.
서로 서로 배우자는 의미로 이렇게 부르는지도 모른다.
이것은 결혼 생활이야말로 인생 수업의 장(場)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이다.
서로에게서 배울 수 있다면 아껴줄 수 있고,
아껴줄 수 있다면 사랑이 더욱 아름다워진다.

"사랑하는 사람과 다툴 때면
당신은 상대방이 잘못했기 때문에 자신이 화가 났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실 당신은 스스로 마음을 닫고
사랑을 거두었기 때문에 당황한 것입니다.
상대방이 당신의 마음에 들 때까지
자신의 사랑을 움켜쥐고 있는 것이 해결책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 『인생수업』 中에서



#4. 자신의 자랑스러운 개인사를 칭찬하기
45년 전의 어느 날, 한국 최초의 브라질 이민자들이 배를 탔다.
새로운 땅에서의 삶을 꿈꾸며 한 달이 넘는 뱃길을 달려 브라질에 이르렀다.
긴 시간 배를 타면서, ‘한국으로 되돌아가기는 어렵겠구나’라는 절박함을 느꼈으리라.

절박함으로 도착하였지만, 그들이 가진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한국어로 된 포르투갈어 사전도 없던 시절,
날마다 온 몸으로 부딪쳐가며 언어를 익혔다.
낯선 땅에서 맨손으로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그야말로 무(無)에서 시작한 것이다.

45년 동안, 한국인들은 브라질 의류 시장에서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일궈 냈다.
의류 소매업계의 40%를 한국인이 장악했고,
경제적인 성공을 일궈 낸 이들도 많다.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성공은
지난 시절 그들의 치열한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그들 삶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주 감동에 젖었다. 아니, 전율했다.

가장의 사업 실패로 인한 가족 전체의 이민 결정을 따라
브라질로 온 소녀는 이제 중년이 됐다.
경제적 성공을 위해 이민을 떠난 어느 부부의 아들, 딸들은 이제 서른 살 어른이 됐다.
세월은 그렇게 흘렀고, 세월의 흐름에 따라 한국의 브라질 이민사도 튼튼해졌다.

젊은 날들을 오롯이 이민 생활의 정착과 성공을 위해 바친 그들의 삶은 감동이었다.
자신의 열정과 꿈보다는 가족을 위해,
그리고 홀로서기에 바쳐진 젊은 날들의 희생은 고귀했다.
중년 즈음에 느껴지는 자기 상실감을 느끼기에는
지난 날 그들의 삶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나는 그들이 자기 삶의 훌륭한 대목을 진정 스스로 흐뭇하게 바라보기를 원했다.
아름다운 자기 생의 모습을 바라 보며 스스로 칭찬하고 사랑해 주기를 바랬다.
그리하여 얻은 힘으로 앞으로의 날들을 더욱 찬란하게 빚어가기를 바랬다.
그들 모두는 자기 삶의 선한 싸움에서 승리한 챔피언이었다.


“상담을 하다 보면 자신의 좋은 점을 깎아 내리거나 부인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헌신적이고, 베풀고, 사랑하는 사람들조차
때로는 자신이 세상에 미치는 영향을 자각하지 못합니다.
자선 단체 대표에서 성직자들까지,
다른 이들을 돕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들까지,
자신의 좋은 점에 대해서는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볼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 『인생수업』 中에서


[PS] 들은 바에 의하면, 브라질로 이민을 간 한국인들의 아름다운 성공 뒤에는
사람을 피부 색깔로 차별하지 않는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브라질 국민들이 있었다.
또한, 101년 전에 먼저 브라질 땅을 밟아 동양인의 인식을 가꾸어 준 일본인들이 있었다.
먼저는 브라질 국민들에게, 다음으로는 일본인들에게 고마움이 든다.
역시, 우리는 서로 얽혀 있고, 서로 도움을 주고 받으며 사는가 보다.


#5. 삶의 배움을 얻다
덩치가 큰 그는 비행기 좌석을 두 개에 걸쳐 앉았다.
몸이 아주 불편하여 거동하기도 쉽지 않았다.
화장실에 가기 위해 몸을 일으키는 데에만 10초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다.

비행기가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는 선반에서 짐을 끄집어 냈다. 작지 않은 가방이었다.
나는 그의 뒷좌석에 앉아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말을 건넸다. "도와 드릴까요?"
그는 단호함과 다정함을 섞어 대답했다. "괜찮습니다. (나를 쳐다보며) 고마워요."

그는 어느 친절한 청년의 호의를 거절했다.
자신이 들어야 할 삶의 무게는 스스로 짊어져야 한다고 믿는 것처럼.
그 무게를 포기하면 자신이 점점 연약해진다고 믿는 것처럼.

그는 자기 가방을 자신의 어깨에 둘러매고,
한 손으로는 지팡이를 짚으며 비행기에서 내려 끝까지 스스로의 힘으로 걸었다.
그의 곁에는 아내가 있었지만, 아내도 그도 각자 자신의 짐을 들고 있었다.
나는 호의를 베푸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진정으로 그를 돕는 데에는 실패했다.

“배움을 얻는다는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 자신의 인생을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갑자기 더 행복해지거나 부자가 되거나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더 깊이 이해하고 자기 자신과 더 평화롭게 지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삶의 배움을 얻는다는 것은 삶을 완벽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줄 알게 되는 것입니다.”
- 『인생수업』 中에서



#6. 넓은 가슴으로 다른 이들을 이해하기
욕조에 몸을 담그거나 샤워를 하고 난 후,
전신타월로 몸을 감싸는 기분은.. 참으로 좋다.
전신타월은 몸에 묻은 물기를 순식간에 닦아 내어 한기를 느끼지 않게 한다.
뽀송뽀송한 큰 타월이 내 온 몸을 감쌀 때의 포근함이 좋다.
몸을 감싸고 나와 침대 위에 벌렁 드러누울 때의 기분은 상쾌함 그 자체다.

좀 유치한 표현이긴 하지만, 나도 누군가에게 전신타월과 같은 사람이고 싶다.
친구와 아내의 눈물을 닦아 주고,
편하게 나에게 기댈 수 있는 넓은 가슴의 사람이 되고 싶다.
항상 뽀송뽀송한 기운을 전해 주어 그에게 살아갈 힘을 전하는 사람이고 싶다.
살아가다 다툴 때에라도 나에게 호의적이지 못한 태도를 따지기보다는
그저 넓은 사랑으로 그의 눈물을 이해하고 싶다.

“우리가 마음을 닫고 편협해지는 것은
다른 사람이 어떤 상황에 있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들이 왜 전화를 걸지 않는지,
왜 그렇게 큰 목소리로 말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들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반면 자신이 받은 상처와 고통,
그리고 자신이 어떻게 오해를 받았는지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습니다.”

- 『인생수업』 中에서



#7. 삶의 목적을 기억하기
브라질에서 보낸 일정은 마치 짧은 인생과도 같았다.
처음에는, 보름이 넘는 일정이니 꽤 시간이 많다고 생각했다.
여행의 목적보다는 날마다 일어나는 일들에 온통 관심을 빼앗겼다.

여행을 하다 보니 이런 저런 일들이 많았다. 나름대로 의미 있는 일들이었다.
구경할 것도 많았고, 새롭게 듣게 되는 흥미로운 이야기들도 많았다.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 내게는 열흘도 더 남아 있었다. 안심할 만했다.

그 짧은 브라질 일정에서도 친해진 사람들이 생겨났다.
내가 해야 할 책임도 새롭게 생겨났다.
두 번의 강연 계획이었는데 하나가 추가된 것이다.
즐겁고 영광스런 일이었지만 이번 여행의 목적과 직접적인 연관성은 없었다.
이렇게 새로 떠 맡은 일을 하는 사이,
사람들과 친분을 나누는 사이에시나브로 여행의 일정이 2~3일만 남게 되었다.

인생은 왕의 명령을 받고 외국으로 파견된 사신의 역할과 같다.
모든 것을 둘러보더라도 왕의 명령을 받들지 못했다면,
고국으로 돌아가서 왕에게 전해 올릴 이야기를 갖지 못한 것이다.

구경도 하지 말고, 사람들과 관계도 맺지 말자는 게 아니다.
왕의 명령을 완수해야 하는 것처럼, 자기 인생의 목적을 완수해야 한다는 말이다.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리 삶은 목적을 어지럽히는, 그럴듯한 일상으로 가득 차 있기에.

이번 여행의 목적은 와우팀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수업을 진행하는 것이었다.
또한, 브라질 와우팀 탄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A님과
커피 한 잔 마시며 대화를 나누는 것이었다.
굳이 따지자면, 강연은 부차적인 것이었다.
‘먼 길 오신 김에 강연을 해 주면 어떠한지요?’라는 제안에 화답하여 진행된 것이니.
새롭게 맺은 관계는 뜻밖의 아름다운 선물이었지만 이번 여행의 목적은 아니었다.

일정이 마무리되어 갈 무렵에야 A님과 차 한 잔의 여유를 갖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가장 중요한 목적 하나를 놓친 채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너무 늦지 않은 즈음에 깨달아서 다행이다. 우리는 즐거운 대화 시간을 가졌다. ^^

나는 이 글을 벤쿠버의 한 호텔에서 신나게 작성하고 있다.
욕조에 몸을 담그고 있다가 떠오른 단상들이 술술 쏟아져 나와 반가움으로 글을 썼다.
3월 2일 새벽 4:49분을 지나고 있다. 새벽 미명이 밝아오기 전이다.
내 인생에 오랫동안, 어쩌면 영원히 기억될 여행이.. 이렇게 저물고 있다.

부디 나의 하루 하루가 이렇게 아름다운 추억이 되길.
날마다 일어나는 평범한 일들까지도 특별하게 처리하여 빛나는 순간들로 창조해 나가길.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이 오늘 하루를 잡아 빛나는 일상으로 빚어 내길.

여행의 마지막 순간이 되니, 나를 돌아보게 된다.
얼마나 열심히 여행했는지, 얼마나 웃었으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웃게 하였는지,
그리고 얼마나 용기를 내어 나 자신으로 시간을 보내었는지.
여행은 꼭 삶을 닮았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랬다. 여행은 인생 수업이었다.

"삶의 마지막 순간이 가까워 오면 사람들은 더 진실해지고,
정직해지고 더 진정한 자신이 됩니다."
- 『인생수업』 中에서

                                                                             - 2009년 3월

사용자 삽입 이미지 글: 리더십/ 자기경영전문가 이희석 유니크컨설팅 대표컨설트 ceo@younicon.co.kr

Posted by 보보

매미와 나

- 매미가 우는 이유, 내가 살아가는 이유

장대비와 함께 
8월의 첫 날이 시작될 줄 알았습니다. 120mm~150mm 가량의 많은 비가 예보된 날이었으니까요. 잔뜩 흐린 하늘이라 언제 내릴지 모르지만, 8월 1일 새벽부터 오전 8시 현재까지는 비가 오지 않았습니다. 후덥지근한 날씨지만, 비온 뒤라 그런지 공기가 맑은 느낌입니다. 이른 아침부터 매미가 웁니다. 신나게 웁니다. 이른 아침부터 울어 제끼는 매미의 근면함과 하루 종일 쉬지 않고 우는 매미의 열정을 본받자고 연인에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가요계에는 여름을 대표하는 가수들이 있습니다. 제가 학창시절이었을 때에는 이정석의 '여름 날의 추억', 이정현의 '한 여름의 크리스마스' 등이 여름 가요계를 강타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서태지와 아이들 이후 그룹이 가요계에 등장하면서 대표적인 여름 그룹이 생겨나기도 했지요. 쿨과 클론이 대표 주자가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DJ DOC의 여름 겨냥 곡들은 흥을 최고로 돋구었습니다. 룰라의 '3 4!'나 듀스의 '여름 안에서'도 여름 명곡이라 생각합니다. 

이처럼 여름 하면 떠오르는 가수들은 여럿입니다. 요즘에도 2PM을 비롯한 여러 아이돌이 가요계의 여름을 뜨겁게 달굽니다. 마치 춘추전국시대처럼 가요계의 여름은 여러 세력(^^)들이 각축을 벌이는 겁니다. 하지만 곤충계로 가면 사정이 달라지는 듯 합니다. 여름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곤충은 매미가 아닐까요? 사실 여름은 모기, 사마귀, 메뚜기, 장수풍뎅이 등 곤충이 가장 활발히 활동하는 시기입니다. 


하지만 저는 매미가 먼저 떠오릅니다. 인간과 가장 살가운(?) 곤충은 모기지만, 이 녀석은 곤충이라는 생각보다는 바퀴벌레 등과 함께 해충이라는 새로운 과에 속하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그래서 곤충이라는 단어에 금방 떠오르지는 않습니다. 사마귀, 메뚜기, 장수풍뎅이 등은 서울에서 쉬이 볼 수 없구요. 반면, 우리는 매미가 근처에 있으면, 금방 그의 존재를 알게 됩니다. 매미는 큰 소리로 울어서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히 드러내니까요. 

녀석은 무어 그리 힘들어 매일 우는 걸까요? 엄살이 심한 것도 같고, 자기를 봐 달라고 떼를 쓰는 것도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매미는 나와는 다른 곤충입니다. 나는 엄살이 없는 편이고, 힘든 일이 있어도 다른 이들에게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 편입니다.  가족에게는 아직 올해 나를 가장 힘들게 만든 N 사건을 이야기하지 않았고, 연인에게도 힘든 일이 있으면 그걸 지나고 나서야 이야기하는 편입니다. 엄살과 과장이 심한 듯한 매미와는 다른 성정인 겁니다. 

하지만 이것은 매미를 인간의 눈으로 본 왜곡된 시각입니다. 매미의 울음은 짧은 한살이에 대한 한탄도 아니고 힘겨워서 엄살을 부리는 것도 아니니까요. 매미는 천적을 격퇴하거나 근접해서 우는 다른 수컷의 울음을 방해하기 해서 혹은 무리를 이루기 위해 웁니다. 하지만 매미가 우는 가장 주된 이유는 암컷을 끌어들이기 위함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는 매미는 모두 수컷입니다. 더 큰 소리로 우는 수컷이 더 많은 암컷과 사랑을 나눈다고 합니다. 

생의 대부분을 유충으로 보내는 매미. 우화한 뒤 날개 달린 성충의 모습으로 사는 기간은 겨우 한 달. 매미에게 사랑할 시간은 너무 짧습니다. 종족을 보존하기 위한 그 울음이 귀가 따가울 정도로 클 수 밖에 없는 까닭입니다. 안도현 시인은 '매미'라는 시에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매미는 아는 것이다. 사랑이란 이렇게 한사코 너의 옆에 붙어서 뜨겁게 우는 것임을/ 울지 않으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매미는 우는 것이다"

수컷 매미는 암컷의 관심과 사랑을 위해 웁니다. 누군가가 쉬이 자기를 발견하기에는 자신의 생이 너무나 짧고 자신의 존재는 너무나 작습니다. 그러니 울지 않으면 보이지 않고, 울지 않으면 세상이 알지 못합니다. 수컷 매미의 울음은 '내가 여기 있음'을 힘차게 알리는 것입니다. 이 즈음에서 나는 '매미와 나는 다릅니다'라는 말을 수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저도 매미처럼 누군가의 사랑과 관심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엄살과 하소연을 하는 이유는 관심과 사랑을 얻기 위함입니다. 저 역시 사랑과 관심 없이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다만, 엄살과 하소연이 아닌 다른 방식을 택한 것 뿐이지요. 이렇게 글쓰기를 하는 것도 두 가지의 큰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내가 가진 재능으로 공헌하기 위함입니다. 다른 하나는 세상에 '내가 살아있음
'을 알리는 나다운 방식입니다. 울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매미, 쓰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나. (실제로 나는 학창 시절 선생님에게는 쉬이 잊혀지는 학생이었고, 지금도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잘 안 드러나는 것 같더군요.)

매미는 서러워서 운 것이 아니라, 파트너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운 것입니다. 또한 매미는 여름을 대표하기 위해 운 것이 아니라, 사랑을 하기 위해 울었던 것입니다. 자기 존재를 알리는 길은 
자신의 꿈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사랑을 하기 위한 최고의 방법은 삶의 모든 순간이 사랑할 수 있는 기회임을 깨닫고 기회 닿을 때마다 사랑을 선택하려고노력하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의 노력은  삶을 살아가는 최고의 지혜입니다. 엄살이나 하소연도 결국엔 자기다워지려는 애씀이거나 혹은 사랑이 필요하다는 표현이 아닐까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글 : 리더십/ 자기경영전문가 이희석 유니크컨설팅 대표컨설턴트 ceo@younic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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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분이랑 함께 밤을 지샜다. 이른바 번개 MT 였다. 시간이 되는 이들끼리 만나 저녁 식사를 하고 밤새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튿 날에는 조조영화를 보고 밥 먹은 후 차를 마시고서야 헤어졌다. MT는 따뜻하고 편안했지만 우리가 나눈 주제는 무거웠다. 삶의 힘겨움, 관계의 어려움, 개인의 아픈 과거 등 자신들의 가장 속 깊은 이야기를 끄집어 냈다. 꺼내기도 쉽지 않고, 해결하기도 결코 쉽지 않은 주제였다.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것은 우리의 친밀함을 잘 보여주는 일이긴 했지만, 우리 모두가 성장통을 겪고 있거나 앞으로 겪어야 한다는 걸 의미했다.

집에 돌아온 날 밤, <MT 후기>라는 제목의 메일이 왔다. 깊은 이야기를 나눈 정감 있는 시간이었다는 말로 시작한 메일은 본론이 펼쳐지자 나를 감동시켰다. 메일을 보낸 그는 지난 밤에 관계의 어려움을 토로했었다. 일년 동안 지켜보았던 그는 '관계'보다는 '개인'을 추구해 왔었다. 지난 밤, 나는 그에게 때로는 완곡하게 때로는 강하게, 앞으로는 신뢰와 사랑을 선택해야 함을 요구했다. 그리고 신뢰와 사랑을 선택하지 않았던 지난 날들과 다르게 행동해야 함을 말했다. 추상적이고 공허한 조언처럼 들리지 않도록,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가며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는 '나는 변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이미 여러 번 들은 말이었다. 그럴 때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그의 말을 더욱 경청하며 적절한 기회에 그가 마음을 돌릴 수 있도록 돕는 것이었다. 관계의 어려움이 생겼을 때, 서로가 '내가 먼저 변해야지' 하는 생각을 하지 않으면 개선도 회복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음이 닫히고 상처를 받고 상대가 이해가 안 될 때, 내가 먼저 변하겠다고 생각하기란 무지 힘들다. 그의 나눔을 듣고 순간적인 무력감을 느낀 까닭은 무지 힘든 일에 도전해야 했기 때문이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난 후 24시간이 지난 후부터 감동과 울림을 주는 영화가 있다. 누군가와의 대화는 이야기를 나눌 때에는 별다른 감흥이 없다가도 집으로 돌아오다가 혹은 일상을 살아가다가 점점 이야기의 내용이 떠올라 나를 흔들어 놓을 때가 있다. 그런 일이 있기를 바라며 나는 그에게 하소연했다. "이제는 더 이상 물러 설 곳이 없는 것 같아요. 지금 변화하지 않으면 더 큰 어려움이 올 것 같아요." 나의 진심이었다. 책임감 있고 능력 넘치는 그가 관계에서도 그런 모습을 보여 주기를 바랬다.

그가 보낸 메일에 담긴 내용은 이랬다. 상대에게 이렇게 말했단다. 내 책임도 있을 터이니 그 부분을 인정하고 나도 노력하겠다, 이런 의지적 선택도 사랑의 방식이라 생각한다, 함께 열심히 노력해 보자 등등. 분명히 변화하고 노력하겠다고 결단한 내용이었다. 상대도 누그러진 마음으로 들어주었다고 한다. 상황을 변환시키는 주도적인 행동을 해 준 점이 무척 고마웠다. 아직 문제는 종료되지 않았다. 오히려 본격적으로 문제 해결이 시작된 것이다. 그가 어두운 터널을 잘 통과해 주기를, 머지않아 터널 끝 밝은 빛을 만나기를 기도한다.

파트너와 함께 인생길을 걷다가 문제가 일어나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얼핏 떠오르는 좋은 방법은 파트너를 바꾸는 것이지만, 이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닌 경우가 많다. 문제의 원인이 서로 간에 맺어진 관계성에서 온 것이 아니라, 두 사람 각자가 지닌 개인성에서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누군가와의 관계에서 문제가 생겼다면, 나로 인해 발생한 문제가 무엇인지 파악해야 한다. 그 영역에서 성장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파트너가 바뀌어도 머지않아 똑같은 문제를 겪게 될 것이다.

파트너와 문제가 생기면 파트너를 바꿀 게 아니라, 나를 바꾸어 새로운 파트너십을 형성해야 한다. 그래야 문제를 넘어설 수 있다. 신혼 부부는 두 가지, 자기 일과 서로에게 충실하면 된다. 그러다가 충실해야 할 새로운 영역이 생겨나게 된다. 언젠가 아기가 태어난다는 말이다. 이 때, 새로운 파트너십이 필요하다. 지금까지는 둘이서 테니스 게임을 즐겼다면 이제는 축구 감독과 코치가 되어 가정이라는 작은 조직을 경영해야 한다. 그리고 때로는 감독과 코치의 역할이 바뀌기도 한다. 밤마다 칭얼대는 아기를 돌보는 일을 번갈아가며 맡아야 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이처럼 새로운 파트너십은 다양한 모양이지만 그 본질은 항상 사랑이다.

사랑은 자아의 붕괴를 동반한다. 모든 것을 다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붕괴는 자발적이다. 사랑이야말로 최고의 선택임을 깨닫게 된 자들은 기꺼이 혹은 가까스로 자아의 붕괴를 선택한다. 이것은 의미 있고 자신의 존재 전체를 성장시키는 일이지만 힘겹고 고통스럽다. 그래서 자아의 붕괴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 결과로 사랑이 붕괴되는 것을 목격한다. 그들은 이혼하거나 사랑 없이 함께 산다. 이것은 자아의 붕괴보다 더욱 불행한 삶이다. 자아의 붕괴, 사랑의 붕괴 둘 다 힘겨운 일이지만, 사랑을 재건을 선택하기 위해 자아의 붕괴를 선택해야 한다. 이것은 괴로운 일처럼 보이지만, 실은 행복으로 가는 길이다.  

물론 둘의 관계가 가해자와 피해자의 위치에 있다면 그것은 구조적인 문제라고 보아야 하고, 이 글과는 또 다른 논의가 있어야 한다. 가해자 - 피해자 정도의 인간관계의 어두운 측면에 대해서는 로빈 스턴의 『가스등 이펙트』를 읽어 보길 권한다. 이 분야에서 내가 알고 있는 책 중에 가장 실제적이면서도 유익한 책이다.  서로를 조종하려 드는 상황이나 진실이 왜곡되고 서로를 비난하는 관계에 빠진 이들에게 도움을 준다.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에게는 『내면 세계의 질서와 영적 성장』을 권했다. 삶을 성찰하고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보아야 하는 그의 지금 상황에 적합한 책이었으면 좋겠다. 적합한 책은 항상 우리를 위로하고 도와주고 변화시켜 주니까.

그에게 메일을 썼다. 이런 저런 이야기와 함께 이 글을 첨부했다. 당신의 메일을 읽고 쓴 글인데 혹 괜찮다면 블로그에 올려도 되겠냐고 물었다. 회신이 왔다. 어제, 오늘을 지혜롭게 보낸 이야기가 담긴 메일이라 읽으면서 기분이 좋았다. "두고두고 저를 성찰할 수 있는 글로 삼겠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블로그에 올려도 좋다는 말도 있었다. '성찰'하겠다는 말은 나를 무척 설레게 했다. 행동이 신속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활동파인 그가 성찰의 힘을 갖게 되면 삶이 훨씬 진보할 것이다. 성찰이 깊어지도록 내가 섬길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이 질문으로 잠들어야겠다. 내 마음이 한결 가볍고 편안해졌다. 기분 좋은 밤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자기실현전문가 이희석 와우스토리연구소 대표 ceo@younicon.co.kr

Posted by 보보

뜨거운 사랑이 공부입니까?
그렇습니다.

진지한 토론도 공부입니다.
순수한 몰입도 공부입니다.
엉뚱한 도전도 공부입니다.
무한한 시도도 공부입니다.
그러다 실패해도 그것 역시, 공부입니다.
공부만 공부가 아니라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다 공부입니다.

- <서강대 홈페이지>에서


제 생각을 그대로 표현해 준 것 같아 반가운 글귀였습니다.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다 공부입니다.

하나 덧붙이자면,
자기를 한껏 발휘하는 것도 모두 공부겠지요.
축구 선수 지망생들은 필드에서 공부하는 것이고,
화가 지망생들은 도화지를 펼쳐 두고 공부하는 것이겠지요.

부모들은 과거의 패러다임에 얽매여 아이를 제한적 의미인 공부에 가두지 말 일이고,
학생들은 자신을 반겨 줄 미래를 가슴에 품고 한바탕 신나게 공부를 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보보는... 음...
뜨거운 사랑을 해야겠네요. 하하하하~!

여러분들은 오늘, 이번 달에, 남은 올해 동안 어떤 공부를 하시렵니까?
                                                                                                       - 2008.11.11
사용자 삽입 이미지   글 : 자기경영지식인/ 와우팀장 이희석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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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이 화창한 날, 아이가 말했습니다.

"엄마, 키워 주셔서 감사해요.
이제 저는 여행을 떠나고 싶어요. 더 나은 모습으로 돌아올께요."
엄마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아들의 여행을 돕고 싶은 마음은 가득했지만,
아무 것도 도와 주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마음으로 말했습니다.

"리노야, 엄마가 항상 너를 지켜 줄께."

돌아가신 아빠 대신 홀로 아이를 키워 오느라
아들에게 쥐어 줄 여행비가 없었던 게지요.
아이는 이해했습니다. 엄마의 가난을. 그리고 엄마의 마음을.
지난 일 년 간 열심히 일해서 벌어 둔 돈을 챙기고
엄마의 마음을 가슴에 담고 집을 나섰습니다.

아이는 이제 여행자입니다.
새로운 도시, 비엔나를 향하는 기차 안에서,
아이는 설렘보다 두려움이 많았습니다.
'내가 잘한 것일까? 이 도시에는 아는 사람도 없고
어디에서 머물러야 할지도 모르는데 말야...'

걱정과 두려움으로 도착한 비엔나의 기차역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했씁니다.
집이 그리워졌습니다.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그 때, 엄마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아들아, 내가 너를 지켜 줄께. 네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렴.'

기차역을 나와 거리를 걸었습니다.
꼬마여행자를 본 비스트로의 점원이 Hello 라고 인사해 주었습니다.
아이도 희미하게 웃었습니다.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아저씨, 혹시 근처에 제가 묵을 만한 저렴한 숙소가 있나요?"
아이는 소개 받은 숙소에서 하룻밤을 편안히 묵었습니다.

"안녕? 난 리노야. 넌?" "난 JJ. 반가워."
비엔나에서의 둘째 날에 아이는 친구 JJ를 만났습니다.
둘은 함께 밥을 먹고, 자유롭게 여행하다가 함께 잤습니다.
대화가 통했고, 즐겁게 식사를 나눌 수 있는 좋은 친구였습니다.
JJ와 오래 함께 있을 순 없었습니다. 가야 할 길이 달랐습니다.

"JJ, 잘 가. 건강하기를 빌께."
아이는 슬프지 않았습니다. 각자 여행을 하다가
프라하에서 다시 만나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아이는 비엔나 시내가 편안하게 느껴지고, 익숙해졌습니다. 
문득, 이 곳에 도착한 첫날이 기억났습니다.

'아, 그 땐 참 두려웠는데 지금은 이렇게 편안하고 따뜻하네.'
햇살이 아이를 환하게 비추고 있었고,
거리의 악사는 아이에게 살짝 윙크해 주었습니다.
아무도 보지 못한, 리노에게만 주는 선물이었습니다.
리노는 황홀감에 취해 예정보다 비엔나에 오래 머물렀습니다.

마냥 그곳에 있을 순 없었습니다.
엄마에게 한 약속은 출가가 아니라, 여행이었으니까요.
여행은 떠남 - 만남 - 돌아옴으로 이루어지니까요.
아이는 지금 새로운 사람과 아름다운 자연을 만나는 중이었습니다.
그것은 엄마에게 더욱 성장한 자신을 보여주기 위해서였습니다.

아이는 다음 여행지로 길을 떠났습니다.  
다시 두려워졌습니다. 두려움은 익숙해져도 역시 두려움이었습니다.
'내가 잘한 것일까? 이 도시에는 아는 사람도 없고
어디에서 머물러야 할지도 모르는데 말야...'
아이는 비엔나 여행에서 배운 교훈을 기억했습니다.

'두려움은 실체가 아니다.'

함부르크는 항구가 있는 큰 도시였습니다.
아이에게 어울리지 않는 유흥가 레퍼반도 있고
지하철도 복잡하게 얽혀 있어 길 찾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아이는 번화한 거리를 가다가 그만 3만원을 잃어 버렸습니다.
놀란 아이는 왔던 길을 되돌아 가면서 살폈지만 찾지 못했습니다.

아이는 울었습니다. 엉엉 많이도 울었습니다.
3만원은 여행을 하기 위해 일년 동안 모은 아이의 전재산입니다.
하룻밤을 묵고, 3번의 맛있는 식사를 하고,
미술관을 구경하고, 저녁에 음악회를 관람하는 데에는 100원이 필요했습니다.
3만원은 그런 식으로 300일을 여행할 수 있는 큰 돈이었습니다.

경찰서에 가서 신고를 했습니다. 긴 서류를 작성했습니다.
아이가 작성한 서류를 받아들며 경찰관이 한 말은 실날 같은 희망을 날려버렸습니다.
"잃은 돈은 찾지 못할 거야. 이 서류를 보험사에 제출하면 약간의 보험금을 받을 수 있단다."
아이는 두 가지를 직감적으로 깨달았습니다.
돈은 찾을 수 없다는 것과 문제의 해결은 깨어진 마음의 회복에 있다는 것.

'리노야, 엄마가 항상 너를 지켜 줄께.'
이번에는 엄마의 말이 믿어지지 않았지만,
아이는 엄마 품이 몹시도 그리워졌습니다. 다시 울었습니다.  
흠뻑 울고 나니, 아빠가 돌아가시고 난 후 엄마가 들려 주신 말이 기억났습니다.
"영원한 것은 없단다. 상실은 아픔이지만, 상실 없이는 성장도 없단다."

지금도 여전히 이해되지 않았지만, 엄마의 말을 믿었습니다.
믿는다고 해서 이해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믿고 나니 다시 여행할 힘이 생겨났습니다.
주머니에 남은 몇 푼으로 숙소를 찾아 몸을 뉘었습니다.
또 눈물이 났습니다. 결심을 하면서 잠이 들었습니다.

'내일부터는 절대로 울지 않을꺼야.
내 영혼의 강인함으로 이겨낼꺼야.'


다음 날, 햇살이 화창한 아침 일찍, 길을 나섰습니다.
아이는 3만원이 생각났지만, 잊기로 노력했습니다.
'이건 어렸을 때, 엄마 지갑에서 동전을 꺼내 썼기 때문에 받을 벌이야.'
라는 죄책감이 들 때마다, 신의 성품이 옹졸하지 않음을 기억했습니다.
신은 보복하시는 분이 아니라, 용서하기를 즐겨하시는 분임을.

분명한 것은 여행을 멈출 수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넘어지는 것은 내 잘못이 아니지만, 일어나지 않은 것은 내 잘못이야.'
힘을 내어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돈이 없으니 갈 곳이 없었습니다.
눈 앞에 공원을 알리는 표지판이 있었습니다. 그곳으로 갔습니다.
걸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벤치에 앉아 무언가를 열심히 쓰고 있었습니다.

호기심이 생긴 아이는 물었습니다. "아저씨 무얼 하세요?"
머리가 들러 붙어 있고, 얼굴인 꾀죄죄한 아저씨였지만 무섭지 않았습니다.
누런 이빨 사이로 흘러 나오는 말은 아이가 이해하지 못하는 말이었습니다.
중동 지역에서 오신 분이라 생각했습니다. 글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간혹 '알라'라는 말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아저씨의 바디 랭귀지를 이해한 바에 따르면, 아저씨는 아침을 먹지 않았습니다.
아이는 가지고 있던 쵸코렛과 빵을 주었습니다.
돈을 잃어버리기 전에 사 두었던, 그래서 지금은 귀한 식량이었습니다.
아저씨가 참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때, 엄마가 손을 흔들며 했던 마지막 당부가 이해되었습니다.

"리노야, 사랑 없이 여행하지 말거라."

그 사랑으로, 아이는 다시 여행을 시작할 힘을 얻었습니다.
여전히 3만원이 간혹 생각나긴 했지만
그것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서서히 아무는 상처라고 생각했습니다.
세상에는 상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도 있고, 우정도 있고
그리고 여행을 통해 하나 둘씩 깨달아가는 배움도 있었습니다.

아이가 여행을 떠난 목적은 엄마를 다시 만나는 것입니다.
이전과 똑같은 모습이 아니라, 떠날 때보다 아름다운 모습으로 만나는 것입니다.
아이는 엄마가 당부한 것들을 많이 지켜내고 싶었습니다.
아이는 두 가지의 꿈을 품었습니다. 여행의 과정에서 많이 배우는 것과
엄마에게 돌아가서 다음과 같은 말을 듣는 것입니다.

"리노야 참 잘했구나. 착하고 성실한 내 아들."

길 위의 꼬마여행자 리노는 다시 길을 떠났습니다.
프라하에서 만날 친구와의 약속도 있고,
언젠가 되돌아 갈 본향이 있었습니다.
아이를 환히 비추는 태양이 아이 뒤를 쫗아 다녔습니다.
아이와 함께 하는 엄마의 마음처럼.
                                                                                                      2010. 5.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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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마이클 더다의 『북 by 북』을 읽었습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독서의 즐거움에 빠졌고, 책장을 덮을 즈음에는 저자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에게 소개하고자 독서 리뷰를 적었습니다. 서평은 무엇보다 즐거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데, 길기만 했지 재미를 담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어떤 독서 여정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조금 알 수 있는 리뷰입니다. 마지막 대목에서는 사상에 대한 이야기가 지루하게 이어질 것 같아 싹둑 잘라 버렸습니다. 언젠가 더 재미있게 말할 수 있을 날을 기약하면서 말이죠. ^^


2001년 가을, 이제 막 점화된 내 독서 불꽃에 뜨거운 화력(火力)을 더해 주었던 한 권의 책이 있었다. 다치바나 다카시의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 1997년부터 책을 읽기 시작한 나는, 이 책을 통해

한 단계 진보한 독서를 하게 되었다. 독학의 방법론에 눈을 떠 독서를 통해 전문가가 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고, 보다 열정적으로 독서에 매진할 수 있었다. 이 책의 내용을 토대로 하고 여러 독서 관련 책을 정리하여 살을 붙여 후배들에게 독서 노하우를 전해 주었던 것을 훗날 내 책을 쓰는 데에 크게 도움이 되었다. 이후에도 여러 독서 노하우를 담은 책을 읽었지만, 이 책만큼 흥분과 열정을 안겨 주지는 못했다. 그들은 다치바나 다카시 만큼의 독서 열정이나 전방위적인 독서 체험을 가지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읽었던 책 중에는 표정훈의『탐서주의자의 책』, 모티머 애들러의『생각을 넓혀 주는 독서법』,  에밀 파게의 『독서론』 정도를 제외하고는 모두 그랬다.


그러다가 2010년에 마이클 더다를 만났다. 사실, 그의 책은 일이 년 전에 『오픈북』을 먼저 읽기 시작했(

지만, 몇 페이지를 넘기지 못하고 관두었)다. 재미 없었던 기억이다. 혹은 끈기 없는 내 성정 때문이거나. (이렇게 읽다가 관둔 책이 완독한 책보다 훨씬 많다.) 『오픈북』은 책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저자의 독서기가 지나치게 상세하게 기술되어 재미 없었다. 청소년들에게나 유익할 듯 한 책이라 생각하며 손을 놓았었다. 그런데 지금의 난 그 행동을 의아해하고 있다. 마이클 더다의 『북 by 북』은 나를 매우 흥분시켰기 때문이다. 나는 2010년 10월 20일부터 23일까지 이 책을 읽었다. 글을 읽는 속도가 느리고, 집중력이 평범한 내게는 단숨에 읽은 책에 속한다. 책은 지적 자극도, 각 주제마다의 깨달음도, 독서에 대한 동기부여도 충분했다. 책장을 덮을 즈음엔, 다치바나 다카시에 이은 나의 두 번째 역할 모델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반갑다. 다치바나 다카시에 흥미를 잃은 지가 오래 되었으니. (다치바나 다카시의 책을 읽으면서, 점점 그의 사상에 동의하지 않는 대목이 많아졌다.)


첫인상과 끝맺음이 좋았다

책은 교수이자 평론가 (공격적인 서평가로 알려지기도 한) 마빈 머드릭의 말로 시작한다.
"운명을 함께 하느니 서로 간섭하지 않고 공존하는 게 낫고, 풀이 죽어 있느니 활기찬 게 낫다. 동정할 바엔 사랑하고, 대체 가능한 것보다는 독보적인 게 낫고, 똑같은 생각보다는 다른 의견이 낫다. 이해관계보다는 원칙이 먼저이고, 원칙보다는 인간이 먼저이다."
나는 이 말이 참 좋았다. 특히 마지막 문장이 마음에 들었다. 마이클 더다는 이 말에 대해 추가 언급을 하지는 않았지만, 책을 읽으며 자신의 사상을 대변하는 말로 선택한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책의 마지막 문장은 다시 인용문이다. 토마스 아 켐피스의 유명한 말, "심판의 날에 우리는 무엇을 읽었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했느냐는 질문을 받게 될 것이다."

믿음의 '실천'을 강조하는 기독교적 윤리가 담긴 말이다. (토마스 아 켐피스는 유명한 기독 고전 『그리스도를 본받아』의 저자다.) 나는 이 말도 좋았다. 책벌레보다는 리더(Leader)가 되기를 꿈꿔온 나의 독서철학에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명심해야 할 말이라 생각한다. 어떤 이들에게는 독서하는 것 자체가 곧 실천일 수 있기에 '대부분'이라고 표현했다. 책을 읽고 평하는 것을 업으로 삼은 이들 말이다. 그들에게는 읽기와 쓰기가 곧 실천인 것이다. 그들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독실한 그리스도인의 실천을 중시하는 저 말을 귀담아 들어야 할 것이다. 삶에는 독서 이상의 것이 있고, 독서 말고도 배울 수 있는 원천이 많다. 얼마 전, 군 입대를 앞둔 친구가 자신의 군생활 목표를 '300권 독서'라고 하길래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군대 목표가 '300권 독서'라면 너무 많은 듯 합니다. 책만 읽기에는 군대라는 장소가 특별한 곳이니까요. 우리는 살면서 늘 비슷한 사람들만 만나기 마련입니다. 계급이나 취향 등이 비슷한 사람들을 말이지요. 그러다가 전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군대가 그런 곳 중에 하나입니다. 전국팔도에서 몰려 든 이들, 나와 다른 말투를 쓰고 들어보지도 못했던 학교를 나온 이들이지요. 군대 밖에서는 전혀 만나지 못할 이들을 통해 우리는 사고의 전환을 하기도 하고, 진짜 세상을 만나기도 합니다. 독서의 목적이 삶과 인생의 지혜를 얻고자 함이라면, 군대에서는 살을 부대껴 가며 그들과 교류하시기 바랍니다. 책을 읽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책 뿐만이 아니라 군대에서 만난 사람들도 읽으라는 게지요. 300권 독서는 그럴 시간이 없을 정도의 목표니까요."

책의 세계에 매료되다

"지난 오십 년 동안 나는 많은 시간을 책과 함께 보냈다. 그냥 많은 시간이 아니라 터무니없이 많은 시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인용문을 제외한 저자가 쓴 첫 문장이다. 그는 어린 시절에는 그저 읽었고, 대학원생이었을 때에는 비교문학 전공자로서 읽었고, 성인이 된 이후에는 전문서평가이자 칼럼니스트로서 책을 읽었다. 누구 못지 않은 성실한 독서가요 비평가라는 사실은 퓰리처상 수상(1993년 비평부문)에서 짐작할 수 있다. 또한 『북 by 북』을 읽으며 직접 느낄 수도 있다. 책은 10개의 주제마다 좋은 문장을 가려 뽑은 사화집(anthology)의 형식에다 주제에 대한 저자가 쓴 몇 개의 글, 그리고 주제별 고전들이 추천되어 있다.

관심 있는 주제를 다룬 챕터에서는 명문들을 꼽씹는 즐거움이 있고, 주제에 대한 마이클 더다의 통찰을 맛볼 수도 있다. 게다가 저자가 가려 뽑은 추천 도서 목록을 얻는 기쁨까지 있다. <4장 사랑의 책>을 통해 예를 들어 본다. 사랑에 관한 잠언들이 이런 식으로 소개된다.
 
사자와 짝지어지는 암사슴은 사랑 때문에 죽게 마련이다. - 윌리엄 셰익스피어

첫사랑의 마법은
언젠가는 끝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모른다는 것이다. - 벤저민 디즈레일리

낭만주의는 둘을 하나로 묶어주는 것이며

사실주의는 그들의 실상을 꿰뚫어보는 것이다. - 존 업다이크


잠언들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는가 하면, 다음과 같이 저자가 여러 문헌들을 통해 익힌 지혜를 들려 주기도 한다. "열정적인 사랑을 나누는 시기는 매우 짧다. 열정은 곧 잔잔한 애정으로 가라앉는다. 아주 이상적인 변화다. 50퍼센트는 열정이 완전한 무관심으로 변해 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잔잔한 애정을 뛰어넘는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운 좋은 부부가 있다. 그런 결혼생활은 본질적으로 둘이서 꾸려가는 문명 세계이며, 그런 세계에서 가장 큰 기쁨은 수십 년 동안 끊이지 않는 대화다. 남편과 부인 간의 섹스가 진정한 기쁨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며, 그런 섹스는 자식과 더불어 가정의 행복을 지탱하는 진정한 토대가 된다."  깊이 공감하여 별표 네 개를 주었던 문장이다.

그리고 사랑을 주제로 한 고전적 문헌부터 20세기의 훌륭한 소설들까지 소개한다. 사랑의 문학 중 걸작으로 꼽히는 사포의 시, 플라톤의 『향연』 중 사랑의 본질에 대해 토론하는 대목, 카툴루스와 호라티우스의 시선집, 아서왕 이야기, 흠모하는 페트라르카의 시, 존 던의 욕망적인 시 '침대에 막 누운 여인에 대하여' 등이다. 20세기의 마지막 사반세기에 출간된 소설도 빠뜨리지 않았다. 제임스 솔터, 존 크롤리, 아룬다티 로이, 필립 로스, A. S. 바이어트. 에드먼드 화이트 등의 소설 10권을 소개했다. 이 책들 중 국내 번역된 책이 극히 소수인 것이 아쉽다. 인터넷 서점 등에서 확인해 보니,  A. S. 바이어트의 『소유』, 아룬다티 로이의 『작은 것들의 신』 정도가 번역되었다. (국내 번역을 확인하는 데도 시간이 많이 걸렸다. 편집자 혹은 옮긴이가 국내 번역 여부와 원제를 알려 주셨더라면.. 하는 아쉬움~!!)
 
저자의 사상(?)에 동의하다

나는 아직 내가 어떤 세계관을 가졌는지, 그것이 얼마나 유용한지 알지 못한다. 내 사고의 근원이 되는 세계관을 5가지 문장으로 정리해 두긴 했지만, 아직은 설익은 철학이다. 언젠가 시간이 되면, 철학사를 공부하며 관심이 가는 사상가들을 깊이 공부하고 싶다는 염원이 있을 뿐, 아직 시간을 내지 못하고 있다. 2010년 초, 와우팀원들을 대상으로 20시간짜리 철학 특강을 한 적이 있는데, 그 때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중용, 칸트에게서 정언명령, 데이비드 흄의 회의론, 존 듀이의 실용주의 등에 대해 정리해 본 것이 무척 도움이 된 정도다. 이런 내용들이 내 안에 깊이 스며들고 잘 어우러지면 나도 일관되고 체계적인 세계관을 갖게 될 것이다. 언급한 내용들은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세계관의 화두들이고, 세계관의 얼개가 되어 줄 사상은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 그리고 마르크스주의가 될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 이것이 지금 나의 지적 수준이다.

신자유주의를 배격하는 노암 촘스키와 자본주의에 관한 해박한 지식을 지닌 장하준 교수의 책들에 열광하는 정도로는 세계관을 정리할 수 없다. 그들이 B급 저자라는 것이 아니라(그들은 특A급 학자들이다), 열광하느라 성찰과 연구를 하지 못했던 나의 태도를 지적한 것이다. 그들을 보다 깊이 있게 읽어내면서 경제학이나 사회학 사상가들의 책을 섭렵해야 한다. 이것이 스스로에게 진단한 지적 처방이다. 내가 갖게 될 자유주의 사상의 경계가 어디까지인지는 하이에크를 읽으며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하이에크의 반대편에 서서 그의 사상을 부분적으로 수용하겠지. 이처럼 '자유론'에 대하여 어떤 입장을 가질 것인지에 대하여 궁금하던 차였는데, 마이클 더다를 통해 실마리를 찾게 되었다. 이사야 벌린이 구세주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이사야 벌린은 시스템 설계자, 일원론적 이론가 등 우리는 어떤 식으로 살아야 한다고 아는 척하는 사람들을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였고, '소극적 자유(negetive liberty)', 즉 개개인이 억압과 제약에서 벗어나 원하는 대로 행동할 수 있는 자유를 주장했다. 그러나 개혁가들과 광신자들은 '적극적 자유(positive liberty)'를 고집하며, 인간은 원하는 것은 선택하는 데 자유로운 것이 아니라 합리적인 것을 선택하는 데 자유로우면 된다는 전형적인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노동자 계급이 '비합리적'으로 행동하면, 현명하고 선견지명이 있다는 보호자들이 나서 무지한 프롤레타리아를 인도하고 재교육시킬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벌린은 인간의 도덕적 주권을 근본적으로 부인하는 이런 관리통제주의를 철저히 배격했다."


마이클 더다가 설명한 이사야 벌린이다. 이어지는 내용(p.198~199)에 구구절절 동의하고 감동했다. 이 즈음하면 이사야 벌린을 읽기 위해 시간을 낼 수 밖에 없다. 아! 나의 하루 24시간을 온전히 내가 가지고 있다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일부는 잠과 식사 등 생리적 욕구에게 주어야 하고, 일부는 사회적 관계를 위해 주어야 한다. 게다가 나는 욕망을 가진 존재다. 동물적 욕망 앞에서도, 나는 무릎을 꿇고 시간을 내어 줄 수 밖에 없다. 다행스럽게도 욕망 가운데에는 호기심을 쫓아가는 지적 욕망도 있으니 결국 나는 인터넷 서점을 찾아가 이사야 벌린이 쓰거나 그에 관련된 책, 『고슴도치와 여우』,『이사야 벌린의 지적 유산』를 카트에 집어 넣고 말았다. 그리고 보르헤스 책 한 권과 마이클 더다의 원서까지 합쳐서 주문해 버렸다. 아! 요즘 자주 강림하신다. 책 지름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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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음악감상실은 이렇게 멋지지는 않지만, 충분히 좋은 곳이다.



나의 음악감상실이 좋은 3가지 이유

밤 10시 남짓한 시각, 귀가하는 길.
지하철 역에서 노래 한 곡을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아마도 내겐 영원한 음악적 진원지가 될 8~90년대 발라드들.
그 중 유난히 입에 착 달라 붙고, 마음을 감성으로 적시는 노래가 있었으니.

"보고 싶었던거야 단지 그 마음뿐이었어
헤어졌던 그 이유와 상처는 모두 잊은 채 위~~
누군가를 다시 만난다는게 생각처럼 쉽진 안았어
니가 있던 그 자리엔 누구도 들어올수가 없었던거야
수없이 부서졌던 내마음 기도가 아마도 너를 울렸는가봐
힘겨웠던 지난날을 딛고 서서 다시 한번 시작해 보라고~ 사랑해!"

열창할 때 목에 핏줄이 붉어지는 모습이 그리도 멋있었던 김정민의 <애인>이다.
'오늘은 집에 가서 기타를 치며 이 노래를 불러야지.'

집에 도착하여 샤워를 끝내자마자 기타부터 잡았다.
노래책을 뒤적였는데 <애인>은 없었다.
유재하의 <사랑하기 때문에>와 김현식의 노래 몇 곡을 불렀다.
하지만, 여전히 <애인>의 가사가 나의 마음을 두드렸고,
나를 과거의 추억 속으로, 후회스러운 장면 속으로 데려다 놓곤 했다.
<애인>의 가사 몇 소절은 그대로 나의 마음이었다. 인터넷을 뒤적여 <애인>을 찾았다.

방 안을 음악 감상 모드로 바꾸었다. 특별한 것은 없다.
불을 끄고 침대 위에 나를 벌렁 던져 놓으면 된다.
마음 준비는 필요 없다. 자연스레 편안해지고, 점점 감상적이 된다.
볼륨을 좀 높여도 괜찮다. 내 집이고, 이 집에는 나 외에는 아무도 없으니. 
지금부터 이 곳은 집이 아니다. 나만의 음악감상실이다.

'아! 좋다.'
이것이 행복인지는 모르겠지만, 무지 좋은 순간임에는 분명하다.

왜 좋으냐고 물으면, 쉬이 대답할 수 있다.
1) 내가 꿈꾸었던 삶의 한 장면이고, 2) 자유를 누리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 더, 3) 나는 음악이 좋기 때문이다.

1) 집에는 언제든지 내가 몸을 누일 수 있는 침대 하나가 있다.
하루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오늘 듣고 싶었던 음악을 방 안 가득히 채워 넣는다.
Jazz 곡이면 좋고, 유난히 듣고 싶은 발라드여도 괜찮다.
곡이 시작되면 나는 얼른 불을 끄고, 발랑 드러눕는다.
음악을 한껏 온 몸으로 받아들이기에는 큰 대(大)자로 누웠다가
몇 분 후에 팔배개를 만들어 일자로 눕는 것이 좋다. 나에게는.
이것이 오랫동안 꿈꾸었던 일상의 한 장면이었다.
듣고 싶은 곡은 때마다 바뀌지만, 이 꿈은 늘 똑같다.
매일 이러지는 않지만, 자주 이런다. 할 때마다 기분이 좋다.

2) 어제 연구원 후배분(이지만 나이로는 형)과 함께 저녁 식사를 들었다.
이번 그리스/ 터키 여행을 함께 다녀온 사이다. (이렇게 말하면 서운해 하실 테지)
여행을 함께 다녀 온 사이 그 이상이다. 의형제를 맺기로 했으니. (허허, 이건 또 뭔지... ^^)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에게 적합한 배우자가 어떤 이냐, 라는 주제가 되었다.
"너는 이번 여행에서도 내가 느낀 거지만, '자유'라는 가치가 참 중요한 것 같애.
그것을 존중하고.."
"이해해 주고"
"그래 이해해 주고,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 주는 여자를 만나는 게 중요할 거야."

그래, 나는 자유가 좋다. 자유의 뽕맛을 알아 그런지, 자유롭게 살지 못해 그런지
아니면 남들이 좋다 하고 수많은 피가 자유를 얻기 위해 희생된 것을 지식으로 배워 그런지
그것은 잘 모르겠다. 그저, 나는 홀로 자유롭게 천천히 사는 것이 좋다.

"행복을 재는 저울이 있다면 자유보다 무거운 것은 없다."


어디서 주워들은 말인지, 출처가 어디인지도 알지만 그냥 가련다.
그걸 찾아볼 시간이 없다. 지금까지는 시간을 만들어서 찾곤 했다.
인용할 책이 집에 있는 경우에는 확인하기 위해 임시저장을 해 두고
귀가하여 찾는다. 이러면서 글 등록이 늦어지고 때로는 수일이 걸리기도 한다.
그래봐야 고작 표현을 바꾸는 것 정도다. 기억력이 좋은가 보다.
열에 아홉은, 표현이 약간 다를 뿐이지 의미를 왜곡하는 일은 없으니.
그럴 줄 알면서도, 열 중 하나의 경우를 대비해서 벌인 일들이다.
이제는 조금 다르게 살아보자는 거다. 조금은 느슨하게, 조금은 덜 까다롭게.
당분간은 나를 위해서만 살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럴 순 없으니
삶의 어떤 한 영역 만으로도 다른 방식의 삶을 시도해 보는 중이다.

나는 스스로 생각했던 것보다 홀로 지내는 것을 잘 즐겼다.
외향적인 사람들은 홀로 지내지 못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들에게도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지하지만 그것은 보완적인 차원에서 필요한 것이고
외향적인 사람들이 에너지를 얻는 근원은 누군가와 '함께' 어울리는 시간이다.
항상 함께만 있다 보니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생각하는 것과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지 않으면 기운과 사라지고 의기소침해 지는 것은 다르다.

40여일 홀로 여행한 적이 있었다. 그 때에도 나는 한국에 돌아오기 싫었다.
혼자만의 여행은 달콤했고, 나는 함께함 없이도 꽤 오래 버틸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것을 즐기었다고 표현하지 않은 것은 이 글은 읽은 누군가가
'아! 보보는 혼자만의 시간을 좋아하는구나'라고 단정할까 봐 겁이 나서다.(^^)
홀로 여행하는 것, 혼자 있음이 좋은 것은 그것에 자유가 깃들기 때문이다.
홀로 있을 때, 더욱 무너지는 사람들이 있는데, 다행히도 나는 그렇지 않다.
이것이 그나마 자기경영 강사로 살갈 수 있는 까닭인가 보다, 하며 감사해하고 있다.

혼자 있지 않으면 자유롭지 않으냐고 묻는다면, "물론이지"라고 대답해야겠다.
누군가와 함께 있으면 자유의 문제는 그야말로 상황윤리의 문제가 된다.
때(Time)와 장소(Place), 그리고 상황(Occation)에 따라 고려해야 할 요소가 많아진다.
무엇 때문인지, 나는 주변 사람들의 마음 변화를 잘 감지하는 편이다.
좋게 말하면, 다른 이의 호불호에 민감하다여 배려를 잘 한다는 것이다.
내 생각에는 배려의 방향이 타인이 아니라 자신을 향하는 사람은
민감이 아닌 예민으로 빠지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카페에서 작업하다가 노트북 콘센트를 꽂을 때, 옆테이블을 확인한다.
옆테이블에 콘센트가 있다면 상관없지만, 만약 없다면
나는 옆테이블에 가까운 콘센트를 남겨 두고 보다 나쪽에 가까운 곳에 꽂는다.
만사가 이렇다. 착하다고 생각하면 나야 고맙지만 그런 문제는 아닌 듯 하다.
(생각한 바가 있지만 다른 주제를 다룰 때 쓰는 게 나을 것 같다.)

여기까지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사는 모습이다.
누가 시켜서 그런 것도 아니고,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다.
글로 쓰니까 몇 줄 씩이나 되지만, 이렇게 사는 데에는 1~2초가 더 소요될 뿐이다.
늘 함께해 왔던 생각이기에, 별도로 생각할 필요 없고,
어찌 되었든 노트북 전원은 꽂아야 할 테니까.

문제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이다.
다른 이와 함께 있을 때, 남들을 배려하느라 혹은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그 시선을 의식하느라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아가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시선을 의식하는 편은 아니지만
배려하느라 나를 위한 시간을 지켜내지 못하는 경우는 많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피해의식은 없다. 수년 동안 이렇게 살아도 우울증이나
내가 왜 이렇게 살았나, 하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사람은 누구나 서로 돕고 도우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미 수많은 도움을 받아 왔음을 절절히 느끼고 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때의 문제라 함은,
자유 외에도 추구해야 할 가치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사랑이 대표적이다. 자유, 사랑...
참 추상적인 단어이니 사례를 쓰지 않을 수 없다.
글이 길어지더라도 말이다.

이 즈음에서 원래 글의 흐름으로 돌아가자.
나는 지금 '불끄고 음악 듣는 시간' 의 유익을 말하던 중이었다.
첫째 이유로 꿈의 실현을 들었고, 둘째로 자유롭기 때문이라 했다.
그렇다. 음악을 듣는 시각은 하루 일과를 마치고 난 후다.
대체로 10시 30분~11시경이 된 이 시각에는 휴대폰이 조용한 시간이다.
홀로 있을 때 자신을 컨트롤할 수 있다면 완벽한 자유 시간이다.
그 시간을 아무 생각없이 TV 시청에 보내거나
인터넷 포털 카페의 유혹적인 기사에 끌려 시간을 보내버리면 흘러가버리는 시간이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그렇지 않다고 했다.
음악을 듣는 순간, 나는 하루를 잘 살았다는 느낌이 찾아들고
지금 이 순간만큼은 완벽하게 컨트롤한다는 생각이 들기에 좋은 것이다.

사족을 하나 달면,
삶의 작은 영역, 짧은 순간만이라도 스스로를 컨트롤하거나 상황을 이끌어간다면
조금씩 조금씩 자신감이 생겨날 것이고 서서히 삶이 변화되기 시작할 것이다.

이런 말을 붙이고야 말다니, 자기계발 강사라는 직업병인지도 모르겠다.

자유는 좋은 것이지만, 지혜롭게 살고 싶다면
스스로 자유를 희생할 줄 알아야 한다. 또 다른 소중한 가치가 많기 때문이다.
나는 자유로움도 좋지만, 함께 어울릴 때 경험하는 사람 사이의 '관계'도 좋다.
결혼을 하게 되면 나의 자유는 많은 부분 사라질 것이다. 아마도 처음엔 힘들지도 모른다.
그 때가 되어 얼마나 잘 헤쳐나갈지는 모르겠지만, 각오는 하고 있다.
친구들이 자기 아이랑 떨어지기 싫어 출근하기 싫다는 얘기를 하면, 부럽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힘겨움이 있음을 안다. 아이가 울어 밤새 잠을 뒤척이기도 한다.
그러다가 아내와 다투기도 하고, 아이를 혼자만 봐야 한다며 아내가 우울해졌다는 친구도 있다.
어떤 친구는 아내와 번갈아가며 아이를 재워가며 겨우 겨우 지내는 친구도 있다.
이 모든 것은 자유 대신 사랑을 선택한 이들이 겪는 삶의 모습이다.
내가 사랑을 추구하겠다는 것은 사랑의 달콤함 뿐만이 아니라,
이렇듯 사랑이 가져온 삶의 모든 것들을 위해 기꺼이 자유를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다는 의미다.
물론, 상황이 닥쳐봐야 알겠지만 말이다. 그 때, 나의 태도가 돌변한다면
부디 나의 아내가 이 글을 찾아 읽지 않기를 바란다.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자유롭게 살기 힘든 까닭이 바로 이런 점이다.
자유 외에도 추구할 가치가 생겨나기 때문이다.
물론, 자유롭게 살기 힘든 다른 원인도 있다.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는 것 말이다.
자기 기준보다 세상이 기준을 따르느라 자기 삶을 살지 못하는 것도 포함되어야 하리라.

3) 나는 음악이 좋다. 꿈의 실현이기에, 자유롭기에 라는 이유는 나에게서 오는 원인이다.
셋째는 순수하게 음악이 좋기에 나는 혼자만의 음악 감상 시간을 즐기는 게다.
꼬마였을 때부터 늘 음악을 들었고, 카셋트 테이프를 수집하였다.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해, 내가 음악에는 소질이 없다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소질과 관심은 종종 다르기도 한 것이었다.
나는 항상 음악과 함께 작업하고 종종 음악과 함께 잠든다.

블로그 포스팅 치고는 긴 글이었다. 읽어 주신 분들에게 고마움이 든다.
뭐 하나라도 드리고 싶은데 별 다른 게 없다. 다음과 같은 제안으로 맺는다.

하루 중 5분이라도 완벽한 자유 시간,
소박한 바람이라도 이뤄가는 시간을 가져 보세요.
좋으실 거세요. 아주 좋으실 거세요.
자유는 행복의 다른 이름이고, 꿈의 실현은 짜릿한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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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